박형룡·박윤선의 모교 숭실대학교
박형룡·박윤선의 모교 숭실대학교
http://blog.daum.net/kkho1105/3997
Ⅲ. 보수신학은 방배동에 와 있는 듯 보인다.
① 방배동은 한국 보수신학의 “제 2의 야스나야 폴라냐(성지)"인가?(계속)
필자는 한국교회에서 ‘보수신학의 대 센터’가 될만한 신학교들로서 서울 사당동의 총신대학교와 수원시 원천동에 있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와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 소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를 거론하고 논평하였다.
이 제 필자는 한국교회에서 ‘보수신학의 센터’라기보다는 ‘보수신학의 싱크-탱크(think-tank)’ 또는 ‘보수신학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하여 ‘한국 보수신학’의 ‘국제화’ 또는 ‘세계화’를 추진할 수 있는 신학연구기관으로서 서울 상도동에 있는 숭실대학교 소속인 기독교학대학원을 잠시 거론하고자 한다. 이 기독교학대학원을 거론하는 것은 현재 동 대학원의 원장으로 있는 김영한 박사의 존재 때문이다. 김영한 박사는 오래 전에 총신대학교에 학생으로 입학하여 필자로부터 약 1년 동안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배운 적이 있었다. 그 후에 독일 유학을 하여 하이델 베르그대학으로부터 철학박사와 신학박사 학위 두 개를 받을 정도로 노력하였고 실력을 쌓아올린 ‘국제성’이 있는 신학자이다. 김영한 박사는 한국에서 신학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신학자로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한지도 20년이 넘었다.
그는 한국개혁신학회 회장을 지냈고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을 현재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 박사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신학자로서 활동을 시작하던 그의 초기의 신학사상보다 10년 또는 20년이 지나가 버린 오늘날의 그의 후기 신학사상이 더욱 보수주의적이요 더욱 ‘정통적 개혁주의 신학적인 노선’으로 급격히 선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귀국초기의 신학저술인 ‘바르트에서 몰트만까지’(1982)만 보더라도 현대 독일 신학의 ‘신정통주의적 경향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김 박사는 그때만 하더라도 외국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온 때라서 자신의 신학사상이 혼란스럽고 잘 정돈이 안 되어서 그랬다고 겸손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80년대를 벗어나 9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김영한 박사는 신학적으로 영·미국의 ‘웨스트민트터 신앙고백서’를 중심하는 ‘개혁주의신학’에 많이 접근하였고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에 대한 비평을 분명히 하기에 이르렀으며 독일신학자들보다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정통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책을 더 많이 읽고서 저들의 신학세계에 깊숙이 들어갔다는 인상을 짙게 풍기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김영한 교수는 독일 하이데베르그대학의 철학박사요 신학박사이지만 그가 추진한 바 1990년대의 그 자신의 신학사상의 ‘영·미국적 개혁주의화’가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고 필자는 보는 것이다.
2002 년인 현재에도 김영한 박사는 그가 독일 유학을 통하여 배우고 살펴본 바 19세기에서 시작하여 20세기에 와서 그 전성기를 구가한 ‘독일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미련’을 몽땅 내어버리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현재의 신학적 노선은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복음주의적이며 정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의 노선인 것이다. 더욱이 필자가 김영한 박사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는 필자가 선친 박형룡 박사로부터 계승한 ‘보수신학’ 또는 ‘한국적인 보수신학’, 즉 ‘술·담배 않하고 성수주일하는 개혁주의 신학’을 존경하며 필자가 말년에 지금하고 있는 ‘한국 보수신학’의 사상성 정립과 후세대를 위한 그것의 보존작업에 대하여 전적인 공감과 함께 성원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에 필자로부터 총신에서 정통신학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목사들의 수가 굉장히 많고 그들 중에 한국교회 내의 보수주의 계통의 신학교와 신학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가르치고 있는 제자 교수들의 수도 꾀 많으나 그들 중에서 김영한 박사 만큼 필자가 정말 “신학적인 동지의식”과 “목적론적 일치감”을 느끼는 분은 별로 많지 않다는 사실을 필자는 힘주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필자가 김영한 박사에 대하여 기대하는 것은 그가 영·미국의 ‘청교도적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한국 보수신학’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병행시키면서 그의 풍부한 현대 유럽 신학의 지식을 활용하고 참고로 하여 우리 한국에서 복음주의 및 개혁주의 신학이 걸아가야 할 미래의 길을 전망하고 폭넓게 제시하는 일을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숭실대학교는 통합측 장로교회에 소속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 보수신학’의 제 1인자인 박형룡 박사와 제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박윤선 박사가 두 분 다 숭실대학교의 초기의 졸업생들이다. 그러므로 숭실대학교가 경영하고 있는 대학원 중의 하나인 기독교학대학원은 현재 원장인 김영한 박사의 리더십을 좇아서 ‘한국 보수신학’의 ‘싱크-탱크’(think-tank)가 되어 ‘한국 보수신학’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마스터 프랜’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이는 숭실대학교의 옛 동문들 중에 존재하는 두 분의 보수신학자 박형룡과 박윤선에 대한 특별한 예우를 하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참으로 바람직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어찌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필자가 이제 또 다시 한국교회 내에서 ‘보수신학의 센터’로 영구히 자리를 굳힐 만한 신학교로서 한 군데를 더 말한다면 이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 성서대학교이다. 박아론(기독신학교 학장)
http://blog.daum.net/kkho1105/3997
Ⅲ. 보수신학은 방배동에 와 있는 듯 보인다.
① 방배동은 한국 보수신학의 “제 2의 야스나야 폴라냐(성지)"인가?(계속)
필자는 한국교회에서 ‘보수신학의 대 센터’가 될만한 신학교들로서 서울 사당동의 총신대학교와 수원시 원천동에 있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와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 소재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를 거론하고 논평하였다.
이 제 필자는 한국교회에서 ‘보수신학의 센터’라기보다는 ‘보수신학의 싱크-탱크(think-tank)’ 또는 ‘보수신학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하여 ‘한국 보수신학’의 ‘국제화’ 또는 ‘세계화’를 추진할 수 있는 신학연구기관으로서 서울 상도동에 있는 숭실대학교 소속인 기독교학대학원을 잠시 거론하고자 한다. 이 기독교학대학원을 거론하는 것은 현재 동 대학원의 원장으로 있는 김영한 박사의 존재 때문이다. 김영한 박사는 오래 전에 총신대학교에 학생으로 입학하여 필자로부터 약 1년 동안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배운 적이 있었다. 그 후에 독일 유학을 하여 하이델 베르그대학으로부터 철학박사와 신학박사 학위 두 개를 받을 정도로 노력하였고 실력을 쌓아올린 ‘국제성’이 있는 신학자이다. 김영한 박사는 한국에서 신학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신학자로서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한지도 20년이 넘었다.
그는 한국개혁신학회 회장을 지냈고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을 현재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 박사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신학자로서 활동을 시작하던 그의 초기의 신학사상보다 10년 또는 20년이 지나가 버린 오늘날의 그의 후기 신학사상이 더욱 보수주의적이요 더욱 ‘정통적 개혁주의 신학적인 노선’으로 급격히 선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귀국초기의 신학저술인 ‘바르트에서 몰트만까지’(1982)만 보더라도 현대 독일 신학의 ‘신정통주의적 경향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김 박사는 그때만 하더라도 외국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온 때라서 자신의 신학사상이 혼란스럽고 잘 정돈이 안 되어서 그랬다고 겸손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80년대를 벗어나 9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김영한 박사는 신학적으로 영·미국의 ‘웨스트민트터 신앙고백서’를 중심하는 ‘개혁주의신학’에 많이 접근하였고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에 대한 비평을 분명히 하기에 이르렀으며 독일신학자들보다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정통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책을 더 많이 읽고서 저들의 신학세계에 깊숙이 들어갔다는 인상을 짙게 풍기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김영한 교수는 독일 하이데베르그대학의 철학박사요 신학박사이지만 그가 추진한 바 1990년대의 그 자신의 신학사상의 ‘영·미국적 개혁주의화’가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고 필자는 보는 것이다.
2002 년인 현재에도 김영한 박사는 그가 독일 유학을 통하여 배우고 살펴본 바 19세기에서 시작하여 20세기에 와서 그 전성기를 구가한 ‘독일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미련’을 몽땅 내어버리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현재의 신학적 노선은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복음주의적이며 정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의 노선인 것이다. 더욱이 필자가 김영한 박사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는 필자가 선친 박형룡 박사로부터 계승한 ‘보수신학’ 또는 ‘한국적인 보수신학’, 즉 ‘술·담배 않하고 성수주일하는 개혁주의 신학’을 존경하며 필자가 말년에 지금하고 있는 ‘한국 보수신학’의 사상성 정립과 후세대를 위한 그것의 보존작업에 대하여 전적인 공감과 함께 성원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에 필자로부터 총신에서 정통신학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목사들의 수가 굉장히 많고 그들 중에 한국교회 내의 보수주의 계통의 신학교와 신학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가르치고 있는 제자 교수들의 수도 꾀 많으나 그들 중에서 김영한 박사 만큼 필자가 정말 “신학적인 동지의식”과 “목적론적 일치감”을 느끼는 분은 별로 많지 않다는 사실을 필자는 힘주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필자가 김영한 박사에 대하여 기대하는 것은 그가 영·미국의 ‘청교도적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한국 보수신학’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병행시키면서 그의 풍부한 현대 유럽 신학의 지식을 활용하고 참고로 하여 우리 한국에서 복음주의 및 개혁주의 신학이 걸아가야 할 미래의 길을 전망하고 폭넓게 제시하는 일을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숭실대학교는 통합측 장로교회에 소속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 보수신학’의 제 1인자인 박형룡 박사와 제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박윤선 박사가 두 분 다 숭실대학교의 초기의 졸업생들이다. 그러므로 숭실대학교가 경영하고 있는 대학원 중의 하나인 기독교학대학원은 현재 원장인 김영한 박사의 리더십을 좇아서 ‘한국 보수신학’의 ‘싱크-탱크’(think-tank)가 되어 ‘한국 보수신학’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마스터 프랜’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이는 숭실대학교의 옛 동문들 중에 존재하는 두 분의 보수신학자 박형룡과 박윤선에 대한 특별한 예우를 하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참으로 바람직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어찌 말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필자가 이제 또 다시 한국교회 내에서 ‘보수신학의 센터’로 영구히 자리를 굳힐 만한 신학교로서 한 군데를 더 말한다면 이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 성서대학교이다. 박아론(기독신학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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