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서 살펴 본 개혁파 교회관/어거스틴
역사속에서 살펴 본 개혁파 교회관/어거스틴
교회 일치에 앞서 교회론 점검 필요하다 (4)
[기획연재] 역사 속에서 살펴본 개혁파 교회관
20세기 후반의 세계교회는 교회론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별히 교회 성장과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인한 교회의 일치에 대한 관심은, 교회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교회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논의없이 실제적인 방향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기능적 차원의 교회론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교회를 존재(Being)보다는 하나의 가능성(Becoming)으로 보며, 교회의 본질(Nature)보다는 기능(Function)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격동의 20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한 우리는 새롭게 개혁파 교회관을 정립해야 한다. 앞으로 키프리안, 어거스틴, 칼빈, 메이천 등의 교회관을 살펴보며, 개혁파 교회관을 정립해보고자 한다.
(2) 어거스틴의 교회관
어거스틴(St. Augustine of Hippo, 354~430)은 354년 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의 타가스테(Tagaste, 현재 알제리 북쪽의 수크아라스)에서 태어나 어머니 모니카(Monica, 332~387)에 의해 어릴 적부터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러나 그는 젊어서 한때 마니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도로 말미암아 어거스틴은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며, 387년에 33세의 나이로 암브로시우스(Ambrosius) 감독에게 세례를 받고, 392년에는 히포의 장로로 선출되었으며, 395년에는 히포의 감독이 되어 훌륭한 저서를 남기고 430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거스틴은 그의 생애동안 북아프리카 지방에 있었던 도나투스파의 분열에 대한 처리로 고심했다. 그로 하여금 교회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만든 것도 바로 이 도나투스파와의 거듭된 논쟁이었다. 도나투스파(the Donatists)는 도나투스(Donatus)로부터 시작되었다. 도나투스는 어거스틴보다 약 1세기 전에 카르타고의 감독 지위에 있던 인물로서, 그와 그의 일파는 기독교 계율에 관해 대단히 엄격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종류의 죄를 범한 사람은 교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이 교회의 구성원으로 포함되어 있는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죄를 범한 교사들을 통해 과거에 받았던 세례는 모두 무효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도나투스파에 대한 교계 지도자들 사이의 신학적 입장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였다. 북아프리카의 중심지 카르타고의 감독이었던 키프리안은 어거스틴이 평소에 존경하던 인물이었는데, 도나투스파와 신학적 입장을 같이하고 있었다. 키프리안은 박해시 생긴 배교자, 또는 이단자가 베푼 세례의 정당성과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도나투스파의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교회에서 배교자와 이단자만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도나투스파와 같은 교회의 분열자들을 더욱 위험한 사람들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1) 어거스틴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정의하고, 교회의 순정성이 신자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에 달려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나투스파는 “참 교회”를 “이단자는 물론 박해시 신앙의 정조를 지키지 못한 배교자들을 제거해 버린 흠없는 신자들로만 구성된 교회”로 규정하였으며, 이러한 참 교회를 곧 “거룩한 교회”라고 했다. 이러한 도나투스파의 이론에 대항하여 어거스틴은 “교회의 순정성이 신자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사실로부터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가 교회 안에 영적으로 임재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하며, 신자들은 이 교회 안에서 성화되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어거스틴의 생각은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진 세례는 비록 배교자나 이단자의 교회에서 시행된 것이라고 해도 합법적이며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도록 하였으며, 이 문제로 인한 도나투스파의 분열을 부당한 것으로 주장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어거스틴은 도나투스파의 흠 없는 신자들로만 구성된 “참 교회”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취하고, 지상 교회는 유형 교회와 무형 교회, 또는 선택받은 자들로 구성된 영적 교회와 선택받지 못한 자가 섞여 있는 제도적 교회를 구별하여 교회의 이중 구조를 주장했다.
어거스틴은 “하나의 유형적 유형 교회를 어머니로 가지지 못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성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의 세례주의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았으며, 또한 도나투스파의 완전주의적 교회관에도 반대 입장을 취함으로써, 역사적 교회는 근본적으로 세속적 기관이며, 따라서 의인과 악인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현세의 교회를 하나님의 도성과 상이한 것(불가견적∙영적 공동체)으로 인식할 뿐 아니라 또한 동일한 것(역사적∙제도적 공동체)으로 이해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구속 섭리가 인간 역사의 영역에서 실현되어 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도성이 역사적 교회 안에서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강조했다.
어거스틴에게 있어 “역사적 교회는 하나님의 도성의 형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성으로 되어 가고 있는 하나님의 도성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현세적∙역사적 교회가 항상 현재성과 미래성 사이의 긴장과 이중 구조 속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도나투스파의 사회적 이중성이 어거스틴에게 있어 종말론적 긴장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총신대 조직신학 김길성 교수
http://blog.daum.net/kkho1105/3849
교회 일치에 앞서 교회론 점검 필요하다 (4)
[기획연재] 역사 속에서 살펴본 개혁파 교회관
20세기 후반의 세계교회는 교회론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별히 교회 성장과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인한 교회의 일치에 대한 관심은, 교회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교회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논의없이 실제적인 방향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기능적 차원의 교회론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교회를 존재(Being)보다는 하나의 가능성(Becoming)으로 보며, 교회의 본질(Nature)보다는 기능(Function)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격동의 20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한 우리는 새롭게 개혁파 교회관을 정립해야 한다. 앞으로 키프리안, 어거스틴, 칼빈, 메이천 등의 교회관을 살펴보며, 개혁파 교회관을 정립해보고자 한다.
(2) 어거스틴의 교회관
어거스틴(St. Augustine of Hippo, 354~430)은 354년 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의 타가스테(Tagaste, 현재 알제리 북쪽의 수크아라스)에서 태어나 어머니 모니카(Monica, 332~387)에 의해 어릴 적부터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러나 그는 젊어서 한때 마니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도로 말미암아 어거스틴은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며, 387년에 33세의 나이로 암브로시우스(Ambrosius) 감독에게 세례를 받고, 392년에는 히포의 장로로 선출되었으며, 395년에는 히포의 감독이 되어 훌륭한 저서를 남기고 430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거스틴은 그의 생애동안 북아프리카 지방에 있었던 도나투스파의 분열에 대한 처리로 고심했다. 그로 하여금 교회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도록 만든 것도 바로 이 도나투스파와의 거듭된 논쟁이었다. 도나투스파(the Donatists)는 도나투스(Donatus)로부터 시작되었다. 도나투스는 어거스틴보다 약 1세기 전에 카르타고의 감독 지위에 있던 인물로서, 그와 그의 일파는 기독교 계율에 관해 대단히 엄격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종류의 죄를 범한 사람은 교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이 교회의 구성원으로 포함되어 있는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죄를 범한 교사들을 통해 과거에 받았던 세례는 모두 무효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도나투스파에 대한 교계 지도자들 사이의 신학적 입장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였다. 북아프리카의 중심지 카르타고의 감독이었던 키프리안은 어거스틴이 평소에 존경하던 인물이었는데, 도나투스파와 신학적 입장을 같이하고 있었다. 키프리안은 박해시 생긴 배교자, 또는 이단자가 베푼 세례의 정당성과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도나투스파의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어거스틴은 교회에서 배교자와 이단자만을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도나투스파와 같은 교회의 분열자들을 더욱 위험한 사람들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1) 어거스틴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정의하고, 교회의 순정성이 신자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에 달려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나투스파는 “참 교회”를 “이단자는 물론 박해시 신앙의 정조를 지키지 못한 배교자들을 제거해 버린 흠없는 신자들로만 구성된 교회”로 규정하였으며, 이러한 참 교회를 곧 “거룩한 교회”라고 했다. 이러한 도나투스파의 이론에 대항하여 어거스틴은 “교회의 순정성이 신자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사실로부터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가 교회 안에 영적으로 임재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하며, 신자들은 이 교회 안에서 성화되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어거스틴의 생각은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진 세례는 비록 배교자나 이단자의 교회에서 시행된 것이라고 해도 합법적이며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도록 하였으며, 이 문제로 인한 도나투스파의 분열을 부당한 것으로 주장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어거스틴은 도나투스파의 흠 없는 신자들로만 구성된 “참 교회”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취하고, 지상 교회는 유형 교회와 무형 교회, 또는 선택받은 자들로 구성된 영적 교회와 선택받지 못한 자가 섞여 있는 제도적 교회를 구별하여 교회의 이중 구조를 주장했다.
어거스틴은 “하나의 유형적 유형 교회를 어머니로 가지지 못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성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의 세례주의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았으며, 또한 도나투스파의 완전주의적 교회관에도 반대 입장을 취함으로써, 역사적 교회는 근본적으로 세속적 기관이며, 따라서 의인과 악인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현세의 교회를 하나님의 도성과 상이한 것(불가견적∙영적 공동체)으로 인식할 뿐 아니라 또한 동일한 것(역사적∙제도적 공동체)으로 이해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구속 섭리가 인간 역사의 영역에서 실현되어 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도성이 역사적 교회 안에서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강조했다.
어거스틴에게 있어 “역사적 교회는 하나님의 도성의 형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성으로 되어 가고 있는 하나님의 도성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현세적∙역사적 교회가 항상 현재성과 미래성 사이의 긴장과 이중 구조 속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도나투스파의 사회적 이중성이 어거스틴에게 있어 종말론적 긴장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총신대 조직신학 김길성 교수
http://blog.daum.net/kkho1105/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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