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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모세의 실패와 하나님의 승리 (민 20:1-13)

모세의 실패와 하나님의 승리 (민 20:1-13)
설교 : 허순길 교수

(민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중심구절)

이 세상의 삶은 경주장에서 달음질을 하는 것과 같다. 달음질을 하는 사람은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다. 우리의 달음질은 같은 시간에 시작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달음질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시작을 한다. 그러면 이 이달음질은 누가 심판을 하는가가 문제이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이다. 우리 각인의 달음질을 살펴보시고, 상을 받을만한지를 심판하는 것이다. 어느 날 이 달음질을 마치게 될 것이다. 달음질은 잘 달린 사람에게만 있다. 이것을 마치는 순간 우리는 면류관을 받게 된다. 고전 9:19

달음질하는 사람은 종착점에 다가올수록 더욱 긴장을 하게 된다. 종착점 가까이에서 달음질을 포기하면 이때까지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이다. 달음질에 실패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아서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로 실패를 한다. 힘이 모자라거나 경기 규칙을 몰라서 실패를 할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성공적으로 경주를 하였지만 종착점에서 실패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그는 40년동안 잘 달려왔다. 그런데 그는 종착점에 도착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실패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심판자가 준 경기규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세에게 엄청난 비극이다. 우리는 달음질을 구경하는 사람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경기장에 앉아서 구경하고 있지 않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달음질의 규칙을 가지고 달음질을 하고 있다. 이제 모세의 비극적 달음질을 보자. 하나님은 그의 종착점앞에서 말씀하시기를 (민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가 왜 이런 결정을 받아야 하는가? 40년동에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지난날 어느 누구보다 충성된 종으로 생활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약속을 믿으며 살았다. 이스라엘의 반역에 그의 생명을 놓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는가? 그는 마지막 시험에서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본문은 이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째 되는 해에 가데스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가나안 접경이었다. 광야에서 물이 없다는 것은 매우 딱한 일이다. 유목민에게 물은 귀한 것이었다. 그런데 물이 없었다. 그들은 광야 40년동안 물이 없어서 고생을 하였다. 르비딤에서 그들이 모세를 원망할 때 바위에서 생수를 주어 그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스라엘이 가데스에서 물을 찾았지만 그 물을 찾지 못하였고 모세에게 지금 원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20: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민20: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지금 이들은 애굽의 생활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광야에서 어려움의 체험이 모세와 아론에게 있는 것처럼 공박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보면 신자의 공동체에 어려움이 있으면 지도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이를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세와 아론은 그 공박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어 그 문제 해결을 간구하였다. 이때 여호와는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20: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이 지팡이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가리키고 있다. 민 17장을 보면 아론의 지팡이에 살구열매가 열렸다. 하나님은 이 지팡이를 회막안에 있는 증거궤앞에 두게 하였다. 이 지팡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적적 행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엎드려있는 이 모세에게 이 지팡이를 쥐라 그리고 가서 백성을 모으고 반석앞에 물을 내라고 하는 것이다. 모세는 백성을 모았다. 그리고 백성이 보는데서 반석앞에 명령하므로 물을 내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물을 내라고 하면서 말로서 바위로부터 물을 내어야 했다. 이것이 모세에게 주신 마지막 시험이다. 이때의 규칙은 반석을 향하여 말로서 물을 내는 것이다. 그는 반석을 향하여 명령하지 않고 손의 지팡이로 반석을 2번이나 쳤다. 그래서 모세는 실패하였다. 3가지로 살펴보자.
 
 

1. 모세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주는데 실패하였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이 백성의 불만을 듣고 당신앞에 엎드렸을 때 하나님은 백성에 대한 거역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았고, 정죄하지 않고, 형벌을 말하지 않았다. 단순히 자비로운 아버지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기를 원하였다. 그러므로 물이없는 그 백성에게 물을 풍성히 주시고자 하였다. 고전 10:4에 보면 이 반석은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참 반석은 그리스도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멀리서 바라다보시고 그 백성의 현재의 죄를 사해주기를 기뻐하였다. 여호와는 모세에게 그의 백성을 용서하시는 자비로우심을 보이기를 기뻐하였다. 그런데 모세는 이 자비로운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그의 분노를 토로하였다. 그래서 그는 패역한 너희들이여 하면서 고함을 쳤다.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 언제나 반역하는 너희여 들으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자비로운 하나님을 보이지 못한 것이다 진노 가운데서 책망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적은 실수가 아니다. (민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모세는 서 있었다. 그런데 마치 하나님이 패역한 너희여하고 하나님이 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무한한 사랑을 시 106:34 모세가 망령되이 말하였다고 하였다.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잘 전하여야 한다. 우리가 지도자로서 살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예사로 어기는 사람을 보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비로운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하나님을 입술로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에 대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가? 계신 그대로의 하나님, 자비로운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잘못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범하는 죄를 범해서는 되지 않는다
 
 

2. 하나님이 정죄하지 않은 사람을 모세는 정죄하고 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 물을 내랴 여기서 우리가에 생각을 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자기 마음데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모든 사람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그들은 인간 모세, 인간 아론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자비를 보이기를 원하는데 모세는 이 말로서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야 할지 의문을 제기 하고 있다. 그들은이미 이들을 패역한 자로 정죄하고, 이미 너희는 은혜를 받지 못할 자이므로, 이제 너희는 물을 받을 수 없는 자라고 하는 것이다. 모세는 단순한 하나님의 종이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순종만이 있었지 순종할지 말지를 결단할 자리에 있지 않았다.  왜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의문을 표현하고 있는가? 모세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경험하였다. 40년동안 많은 어려움을 당하였다. 목이 곧은 백성, 지도자로서 인정을 해주지 않는 백성.....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었다. 우리도 모세와 같은 생각을 흔히 한다. 단순한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요나를 안다.그는 하나님이 니느웨로 보내는데 그는 다시스로 갔다. 베드로는 형제를 7번용서하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7번까지 용서하리이까라고 묻는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어려워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가 어려워도 이 명령에 순종할 때 참된 마음에 평화가 있고 기쁨이 찾아드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백성앞에서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기의 뜻을 고집하였다. 이것을 말미암아 그는 최후종점 앞에서 실패를 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의혹을 제기하지 않는한 분이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죽기까지 하나님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그는 자기를 죽이는 그 살인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는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그 자비를 보여주는 자기 되자
 
 

3. 지팡이로 반석을 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하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이 이스라엘에게 구원이 있음을 보여주기를 원하였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시33:9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빛이 있으라하면 빛이 있었다. 하나님이 능력이고, 말씀이 행동이다. 하나님은 (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모세는 하나님을 보지 않고 그의 손에 있는 지팡이를 보았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하는 큰 실수였다. 모세가 왜 그렇게 하였는가?

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경우가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이것은 죄이다. 오늘 우리는 과학, 기술, 인간지혜의 시대에 살아간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 기교를 가지고 강단에 서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오늘 그런 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다니는 목사가 많이 있다. 이것은 연약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어 새사람을 만드는 역사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에 새사람으로 새로운 생활을 하는 한국신자는 얼마나 있는가?

나. 이스라엘의 공박을 참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공박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분노하였다. 손은 마음의 도구이다. 마음이 사랑스러움을 느끼면 스다듬는다.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사람을 치기도 한다. 마음의 노가 발하면 손이 운다. 성내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실패하게 되었다. 평생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온 사람이 마지막 길에서 실패를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지 못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바로 섬기는 데 실패하였다. 하나님의 큰종 모세가 실패하였다.

그러면 하나님도 실패를 하는가? 하나님은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거룩을 보여 주었다. 모세는 평생수고 하였으나, 마지막 순간 면류관을 얻지 못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은 너무 엄격하지 않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의 영광이 훼손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과거에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지금 모세는 기도하였을까? 성경은 모세가 기도를 하였다.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에 응답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명기 34장에서 모세는 느보산에서 가나안을 보면서 죽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모세는 예수님의 모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그 역사를 다 이루지 못하였다. 그후에 여호수아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수 있게 된다. 인간은 이렇게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도 영원한 안식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영원한 안식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 계신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모두 범죄하여 영원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죽음 앞에 서게 되면 더욱 느끼게 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오늘 모세의 실패를 보았다. 그렇게 충성된 종이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므로 면류관을 잃어버렸다. 하루의 일을 마지막으로 알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언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 우리는 실패하나 하나님은 그의 일을 계속해 나가신다. 우리는 우리의 실패로 손해를 보아도 하나님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바울을 바라보자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우리의 각자의 삶의가는 길을 끝까지 잘 달려서 영광을 면류관을 잘 받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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