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선교, 개혁주의신학 입각 시작됐다”
“고신선교, 개혁주의신학 입각 시작됐다”
기독교역사학회 학술발표회서 이병수 교수 제기
초기 고신선교…개혁주의 교회건설 실천 의지 빈약
“고신 선교의 역사적 및 신학적 배경은 바로 ‘개혁주의신학’입니다.
이병수 교수(고신대)는 지난 1월 10일 서울 신문로1가 새문안교회 제2교육관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역사학회 270회 학술발표회에서 ‘해방 이후 고신 교단 선교 역사-대만선교를 중심으로’란 주제의 발표를 통해 김영진 선교사의 고신 교단의 해외선교의 정신적 기초에 대한 회고를 인용, “개혁주의 신앙의 교회 건설과 순교 정신이 고신 교단의 설립 정신이었고, 이것이 선교로 이어져갔으며, 이 정신은 고신 교단의 자발적인 학생운동 모임인 학생신앙운동(SFC) 강령에도 잘 표현돼 있다.”고 밝혔다.
고신 교단의 선교운동은 1958년 5월 고신의 첫 선교사인 김영진 목사를 대만에 파송함으로써 시작됐다. 1952년 총노회 조직에 이어 1956년 예장 고신교회(교단) 총회 조직을 기념해 해외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함으로써 이뤄졌다. 그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선교사가 파송되지 못하다가 김영진 선교사 파송 이후 16년만인 1974년 1월 두 번째 원주민 선교사인 유환준 선교사가 파송됐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고신 교단이 김영진 선교사 파송 이후 오랫동안 선교사를 파송하지 못했던 것은 재정적 이유가 가장 큰데, 이것은 결국 신학 부분이 약하고, 교단 전체의 분위기가 선교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또 당시 교단 내부의 분열과 대립, 그리고 승동측과의 합동과 환원 등 정치․행정적인 부분에 너무 치중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 교수는 고신 해외선교의 업적에 대해서 이만열 교수가 고신선교 40년사에서 언급한 내용을 인용해 말했다. △고신 선교가 한국 교회로서는 비교적 초기에 원주민 선교사 파송 △선교부의 조직을 정비하고, 교단적 업무 체계화 △선교훈련 및 평신도 선교사 파송 △선교 업무에 관련된 제반 규정 제정 등이 그것이다.
이 교수는 고신선교 40년사에서 언급된 내용을 인용해 “초기의 고신 해외선교 역사는 비록 고신교회가 개혁주의 교회 건설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고, 고신 교단 산하의 학생운동단체인 SFC가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을 중요한 사명으로 여겼으나 교단 지도자들이 처음부터 개혁주의 외연(外延)에 대한 관심을 가질 만큼 세계교회의 현실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었다.”며 “고신 교단이 치리회를 구성할 당시 해외 선교에까지 관심이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http://kspress.co.kr/kidokkyobo/news/detail.htm?aid=1231856543
기독교역사학회 학술발표회서 이병수 교수 제기
초기 고신선교…개혁주의 교회건설 실천 의지 빈약
“고신 선교의 역사적 및 신학적 배경은 바로 ‘개혁주의신학’입니다.
이병수 교수(고신대)는 지난 1월 10일 서울 신문로1가 새문안교회 제2교육관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역사학회 270회 학술발표회에서 ‘해방 이후 고신 교단 선교 역사-대만선교를 중심으로’란 주제의 발표를 통해 김영진 선교사의 고신 교단의 해외선교의 정신적 기초에 대한 회고를 인용, “개혁주의 신앙의 교회 건설과 순교 정신이 고신 교단의 설립 정신이었고, 이것이 선교로 이어져갔으며, 이 정신은 고신 교단의 자발적인 학생운동 모임인 학생신앙운동(SFC) 강령에도 잘 표현돼 있다.”고 밝혔다.
고신 교단의 선교운동은 1958년 5월 고신의 첫 선교사인 김영진 목사를 대만에 파송함으로써 시작됐다. 1952년 총노회 조직에 이어 1956년 예장 고신교회(교단) 총회 조직을 기념해 해외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함으로써 이뤄졌다. 그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선교사가 파송되지 못하다가 김영진 선교사 파송 이후 16년만인 1974년 1월 두 번째 원주민 선교사인 유환준 선교사가 파송됐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고신 교단이 김영진 선교사 파송 이후 오랫동안 선교사를 파송하지 못했던 것은 재정적 이유가 가장 큰데, 이것은 결국 신학 부분이 약하고, 교단 전체의 분위기가 선교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또 당시 교단 내부의 분열과 대립, 그리고 승동측과의 합동과 환원 등 정치․행정적인 부분에 너무 치중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 교수는 고신 해외선교의 업적에 대해서 이만열 교수가 고신선교 40년사에서 언급한 내용을 인용해 말했다. △고신 선교가 한국 교회로서는 비교적 초기에 원주민 선교사 파송 △선교부의 조직을 정비하고, 교단적 업무 체계화 △선교훈련 및 평신도 선교사 파송 △선교 업무에 관련된 제반 규정 제정 등이 그것이다.
이 교수는 고신선교 40년사에서 언급된 내용을 인용해 “초기의 고신 해외선교 역사는 비록 고신교회가 개혁주의 교회 건설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고, 고신 교단 산하의 학생운동단체인 SFC가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을 중요한 사명으로 여겼으나 교단 지도자들이 처음부터 개혁주의 외연(外延)에 대한 관심을 가질 만큼 세계교회의 현실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었다.”며 “고신 교단이 치리회를 구성할 당시 해외 선교에까지 관심이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http://kspress.co.kr/kidokkyobo/news/detail.htm?aid=1231856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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