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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초대교회사 -박영실 교수

초대교회사 -박영실 교수

역사의 본질
역사란 무엇인가?
레오폴드 본 랑케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대로의 역사” 랑케는 역사는 과학이라고 생각했다. 주관적인 것보다 객관적인 면을 강조했다. 오늘날 평가로 볼 때 랑케의 역사는 지나쳤다. 과거에 일어난 일 실제 그대로 복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 사건의 100% 참여자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랑케를 통해 근대적, 과학적 역사가 시작되었다. 랑케는 역사가 객관성, 자료를 근거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했다. 과거에 무게.
딜타이, 콜링우드는 역사의 주관적인 면 강조. “역사라고 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현재적인 생각일 뿐이다.” 현재에 무게.
E.H.carr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과거와 현재를 아울러 무게를 둠.

현대에는 역사를 종합적 과정으로 생각한다. 사료편찬, 역사편찬.
역사에는 과학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역사는 과학적이지만 않다. 과학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의 대상으로 하지만, 역사는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과학은 정적인 것이지만, 역사는 동적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과 자료라는 측면에서는 과학적 측면이 있다. 자료비평의 측면. 엄격한 관점에서 자료를 검증한다.
자료를 읽고 해석하는 것. 철학으로서의 역사.
역사는 역사가의 필력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역사는 재구성의 과거를 겪는다. 문화, 예술로써의 역사.
 
눅1: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눅1: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눅1: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눅1: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

얼케이른즈는 누가를 1급 역사가라고 말한다.

과학으로써의 역사
눅1: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눅1: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눅1: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예술로서의 역사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철학으로서의 역사
눅1: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
 
기독교 역사

마태가 족보를 담은 이유는?
마태복음이 역사적인 기록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신약이 족보로 시작하는 것은 기독교의 역사를 강조, 성육신에 대한 강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역사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성육신은 기독교 역사이해에서 중요하다. 어거스틴이 플라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플라톤은 어거스틴에게 모세 같은 존재였다.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워지며 플라톤과 이별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성육신 때문이다. 기독교는 역사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을 성육신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은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
역사에는 절망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절망에는 하나님의 희망이 시작된다. 손봉호 “오늘을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선지자적 비관주의를 갖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식이 있다. 미리 내다 봄이 있다. 절망이 깊어지면서 하나님의 개입에 관한 희망이 있다. 기독교 역사관은 비관적일 뿐만 아니라 낙관적이다.

리빙스턴 “사명이 있는 자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에게는 과제가 있다. 우리도 역사를 산출해가며 살아간다.
 
종말론적 구속사관
종말론적이라는 것은 끝에서 본다는 의미다. 그리고 완성된 견지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이 종말론적이라는 의미이다. 다 끝나봐야 아는 것이다. 실제 기독교 역사는 곤두박질 칠 것다. 그리고 하나님의 개입이 되어 대반전으로 인하여 급격하게 역사는 마감될 것이다.

교회의 시작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하여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론이 없다. 그러나 교회의 끝에 관해서는 말이 많다. 필립샤프는 교회의 끝을 590년으로 잡았다. 중세교회의 중요한 특징은 교황의 교권이다. 그레고리 I세와 더불어 교황이 시작되었다. 로마의 주교가 교황이다. 그 시대에 로마 주교의 리더쉽이 필요했고, 그레고리 I세가 그 조건을 만족시켰다. 그때가 590부터이다.

케네시스 스타트 라토렡1)은 교회를 교회의 확장사, 선교사로 보았다. 그는 선교사를 자원했지만, 나가지 못했다. 고대사의 끝은 어느 날 한 순간에 마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해체과정을 겪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의 끝을 서로마제국의 끝을 500년 경으로 잡았다.

윌리엄 래그스테일 케일2)은 서로마제국의 끝인 476년을 초대 교회의 끝으로 보았다.

정치사적인 면에서 476년을 초대교회의 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신사적인 관점에서 초대교회의 끝을 어거스틴의 끝인 430년으로 잡아도 좋다.
교리사적인 관점에서 삼위일체와 기독론의 교리. 4세기 기독교 사상의 형성. 4,5세기는 정통기독교 사상의 형성. 범보편적 교회의 회의. 삼위일체 논쟁 1차 니케아 2차 콘스탄티노플 4차 칼케톤 회의(451년) 기독론 논쟁을 마지막으로 잡는다.

1세기 사도시대
2세기 전반 사도적 교부(속사도)
2세기 중엽 변증시대
3세기 기독교 사상의 형성
4,5세기 기독교 정통 사상의 성립. 범교회의 회의
 
초대교회의 배경
유대적인 배경 : 기독교의 뿌리를 제공하였다.
헬라적인 배경: 실제적인 토양제공
로마적인 배경: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

유대적인 배경
구원이 유대인으로부터 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오셨다. 초대교인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사도들은 히브리파 유대인이다. 집사들은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신약성경도 유대인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최초의 기독교인들이었던 유대인들은 처음에 그들의 신앙을 생각할 때, 과거의 언약의 맥락에서 복음을 받아들였다.
다윗 ‘다윗의 위’ 메시아 대망 사상.
북이스라엘 사람이 멸망하고 포로로 돌아온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남 유다가 포로에서 돌아온 이야기만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에게는 성전이라는 구심점이 있다. 성전은 하나이고, 그 위치는 예루살렘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성전 제사는 유대교의 축이다. 그리고 또 다른 축은 율법이다. 그래서 성전 파괴 후 회당에서는 제사를 드릴 수 없으므로 율법에 집중하게 된다. 나중에 회당은 복음의 기지가 된다.
알렉산더와 더불어 헬라의 물결이 번진다. 알렉산더는 헬라문명을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헬라문명의 사도로 자임했다. 알렉산더 사망후 분할 통치를 할 때 팔레스틴를 다스린 나라는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한 톨레미와 수리아를 수도로 하는 셀리큐스의 영향을 받았다. 처음엔 톨레미의 지배를 받는다. 톨레미는 유대인에게 관용정책을 폈다. 그 후 셀리큐스가 정령한 후에는 강경책을 사용했다. 톨레미1세를 통해서 디아스포라의 거점이 알렉산드리아가 되었다. 디아스포라는 모국어를 잃고 헬라어에 능숙하게 되었다. 톨레미2세는 는 70인경을 번역하게 해주었다.
셀리큐스의 안티오커스는 강경책을 사용했다. 맛다디아 가문은 격렬히 항거했다. 그 시대는 마카비 시대라 부른다.
로마제국은 관용적이었지만 유대의 선발대로 들어온 폼페이우스는 강경책을 사용했다. 2만 명을 죽이고, 지성소를 유린했다. 폼페이우스는 줄리어스 시저에 의해 밀려나서 이집트에서 죽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라 생각했다.
대 헤롯. 그의 죽음 후 그의 세 아들에 의해 분할 상속됨. 아켈라오가 아버지 대신 왕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요셉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을 떠남. 아켈라오는 지독한 통치자. 예수께서 신문 받을 때, 로마 총독의 심문을 받는다. 헤롯의 아들들이 아닌 로마총독에게 심판 받은 이유는 아켈라오가 무자비한 통치로 로마로부터 강판을 당했기 때문이다. 로마는 중심지인 예루살렘을 직할 통치를 할 기회로 삼았다. 갈릴리 나사렛 지역을 담당한 사람은 헤롯 안티파스. 그는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사람이다. 가장 무능했던 둘째 아들이 빌립이다. 행12: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행12:20 “헤롯(헤롯 아그립바 1세 대 헤롯의 손자)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바울이 총독 베스도 앞에서 심문을 받는다. 아그립자 왕 앞에 바울을 세운다. 그 왕은 아그립바 2세이다.

70인역
톨레미 2세. 이집트에 있는 유대인들을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며 히브리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게 했다. 교회의 시작 때 사용한 성경이 70인경이다.
 
산헤드린 공회
산헤드린(함께 앉아서). 대제사장이 의장이다. 민사와 종교적 문제를 심의하는 심의처. 사두개인 바라새인으로 구성된 71명. 산헤드린 공회는 형사문제는 취급할 수 없었다.
 
유대교의 여러 분파

사두개파
성전의 제사를 관장한 사람들이다. 사두개라는 어원을 잘 모른다. 다윗시대 제사장인 사독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않는다. 천사, 부활, 내세도 믿지 않았다. 현세적인 사람들이다. 사두개파는 모세오경만을 받아들였다. 기득권을 쥐고 있던 사람들이다. 당시 로마의 지배를 찬성한 사람들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훼파되면서 그 근거가 없어졌다.
 
바리새파
율법을 구심점을 이루는 집단. 사두개파와 대립. 초자연적인 것을 믿는다. 천사, 부활, 내세를 믿었다. 이들은 구약 전체와 구전되어온 것들 까지 모두 받아들여 율법을 극대화시켰다. 성전파괴 후 유대인의 중심을 잡게 되었다.
 
엣세네파
메시아 대망사상. 종말론적인 공동체. 유리된 곳에서 살았다. 묵시문학적인 성경해석을 발전시켰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 일부가 흘러들어갔다.
 
열심당
극단적 민족주의자들. 게릴라. 대로마항전. 예수님의 제자 시몬.

헤롯당
헤롯을 후원했다.

서기관
율법학자들. 힐렐과 샴마이. 샴마이가 보수주의자였다. 샴마이는 문자주의자이다. 힐렐은 율법이 사건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재 해석될수 있다고 말했다.

디아스포라
분산. 분산된 유대인의 공동체. 분산되어 있는 유대인들이 본토에 산 유대인들 보다 많았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모이는 것이 관습이었다.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은 100에 못 미쳤는데, 유월절에는 200만이 훨씬 많았다. 디아스포라의 근거지는 알렉산드리아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학파의 원조가 필로이다. 필로는 유다이즘과 헬라 철학의 통합을 시도한 사람이다. 70인경이 만들어 진다. 알렉산드리아는 기독교와 헬라 철학과의 통합을 시도했다.

유대인의 공헌(종교적)
유일신 사상. 기독교는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을 수용한 것이다. 모스크에 있는 유일신사상은 유대교의 영향을 받았다. 유일신 사상은 회당을 통해 전파되었다. 여호와의 신앙이 유대인들만의 범주에 한정되었을 때는 예루살렘 성전을 통하여서 여호와의 신앙이 그들 가운데 타나났다. 여호와의 신앙이 유대의 범주를 넘을 때는 각 곳에 전초기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회당이다.
메시아 대망사상.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가 이때이나이까?” “다윗의 자손 예수여”다윗의 자손가운데 메시아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이다.
윤리체계. 십계명과 말씀의 높은 윤리체계.
구약성경. 기독교에 구약성경 제공. 구약은 약속이었고, 기독교가 시작할 때 그 약속의 성취를 보았다.
역사철학. 기독교의 역사철학이 있게 했다. 역사철학이 있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의미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디자인). 그것을 성취하며 완성으로 나아간다.
회당. 바울이 설교 장소로 선호한 회당. 복음전파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로마 헬라 문명
로마는 하드웨어, 헬라는 소프트웨어이다. 로마는 헬라의 사상과 철학을 이어받았다. 헬라는 군사적 정치적인 것을 지배했다. 헬라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지배했다. 어거스틴은 신플라톤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신학을 세운다. 서구 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숨박꼭질이다.

헬라철학자
초기헬라철학자. 이들의 일차적 탐구 대상은 만물의 기원이다. 이들의 무대는 소아시아이다.
소크라테스는 만물의 기원보다 인간 자체에 대한 규명의 문제로 초점이 옮긴다. 철학의 무대는 그리스 본토 아테네로 옮기게 된다. 플라톤은 그 이전 철학자와 소크라테스를 통합하려한다. 플라톤은 보편적인 것을 이원론적으로 생각했다. 보편은 이데아가 있다고 생각했다. 현상과 이데아가 분리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아카데미의 밑에 들어가서 스승을 능가하려 하였다. 플라톤은 이원론적으로 하였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통합하려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체의 추론을 통해 보편의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헤라클레토스 만물은 변한다. 파르메니데스는 만물이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특성에 관심을 갖는다. 그는 교육에 힘을 쏟았다. 인간은 선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에 대한 낙관론. 그에 의해서 철학의 중심은 아테네로 옮김.
플라톤은 헬라의 철학자와 소크라테스를 통합했다. 그러나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졌다. 플라톤의 생각은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실체. 플라톤은 영적인 것만이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현상의 세계는 영적인 세계의 유출이라 생각했다. 현상의 세계는 아무것도 아니다. 허상이다. 신기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에 관심이 있었다. 17세에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플라톤의 제자. 스승이 죽자 아테네를 떠났다. 마케도냐 왕 필립 대왕의 부름을 받고 그의 아들 알렉산더의 스승이 되었다. 소요학파(산책학파)의 이루었다. 산책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인간의 이성을 중시했다. 이성은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으로 나눠진다. 명상적, 활동적 삶을 모두 철학의 대상으로 하였다. 개체는 보편을 반영한다. 개체에서 출발하여 보편으로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의 세계를 소외시키지 않았다. 현상도 의미있는 일부분이 되었다. 육체와 영혼을 통합적으로 생각하였다.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원론적인 접근. 토마스 아퀴나스(Thomism)에게 영향을 주었다. 개체와 보편, 자연과 은총 이성과 계시의 통합.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을 중시. 플라톤은 직관을 중시. 모든 개체를 통해 보편을 알 수 있다고 보았다.
스토아학파
자연법 사상. 제논에 의해서 스토아 학파가 창설되었다고 추정된다. 제논이 공중회랑에서 자주 가르쳤다. 공중 회랑을 스토아라고 불렀다. 스토아 학파는 기독교와 유사하다. 세계주의를 이야기한다. 제논은 유물론자이다. 물질만이 존재한다. 우주 속에 우주 정신이 흐른다고 생각했다. 우주 정신에 순응하며 살 때 행복이고 이것에 불응하며 고통이 따른다고 생각했다. 스토아는 철학이자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범신론적이다. 그래서 자연법 사상, 세계정신이 나오는 것이다. 우주정신에 따라 살 때 평정을 유지 할 수 있다.
필로.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 유대인이라기보다 헬라어에 가까움. 구약성경의 신적 권위만큼 헬라 철학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질 창조와 이원론의 대립. 유대교와 헬라 철학과의 통합을 추구하는 필로는 어려움을 겪었다. 창조의 대역을 맡은 로고스를 만들었다. 물질 창조의 악역을 맡게 했다. 신을 둘로 만들었다.

헬라인의 공헌
헬라어 성경, 헬라 철학

로마제국
초대교회는 로마제국의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로마교회가 멸망하며 초대교회도 끝난다. 로마 제국사와 초대 교회사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제국의 성장. 어거스틴, 신의 도성 1부에서 로마 함락의 책임 논쟁을 규명. 로마도 인간의 나라들처럼 결함이 있는 나라임을 말한다. 2부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예비 되어 있음을 말한다.
제국의 정치와 로마의 평화
공화정은 bc 27년 까지 지속되었다. 공화정은 줄리어스 시저가 끝냈다. 줄리어스 시저는 제정시대로 바꿔버렸다. 줄리어스 시저 암살 된 후, 안토니와 줄리어스 시저의 조카인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 해전을 통해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한다. 이 옥타비아누스가 가이사 아우구스도 이다. 이때부터 팍스 로마나가 시작되었다. 아우구스도는 로마의 제2의 창건자라고 불린다. 악티움 해전은 군사적 승리이다. 이것을 성역화한다. Virgil과 같은 사람이 문학적 채색을 한다. 종교적으로도 채색이 된다. 악티움의 신화는 국가적, 종교적 성역이 된다. 
로마제국의 종교
철학은 지식인이 좋아한다. 교육받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은 종교를 통해 신과 만남을 갖고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자연 종교. 자연 종교는 저급한 것이다. 인격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인격적인 종교가 필요하다. 신비 종교는 의식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의미를 들어내기를 꺼려한다. 그것을 비밀리에 진행한다. 기독교는 전파될 당시 신비종교는 위세가 대단했다. 위드라이즘이라는 신비종교가 군인사이에 퍼졌다.
국가 종교. 국가 종교의 핵은 황제이다. 황제 숭배. 죽은 황제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황제도 숭배하게 되었다. 황제를 숭배하는 것은 그 개인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황제는 로마의 제신을 상징한다. 로마는 황제 숭배를 통해 인류에 은혜가 끼쳐진다고 생각했다. 황제 숭배는 국가 의식이자 인류를 위한다고 생각했다. 국가의 잡신에게 드려지는 제사이다. 황제 숭배는 왕권의 존엄성에 대한 헬라의 생각과 고위직의 관직자를 보호하기 위한 현실적 견해가 합쳐진 것이다.

로마인들의 공헌(정치적)
로마는 보편적, 민주적 국가이다. 우주의 법 아래서 인류가 하나라는 의식이 로마를 통해 발전되었다. 교회 복음에 우호적 환경.
로마법. 시민권. 법집행에 있어서 보편적임. 보편적인 법. 로마의 법은 ad 5세기에 완성. 서구 법의 원형.
 
시민권은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된다.

아우구스투스를 통한 통일
로마의 평화가 이루어짐. 제국의 도로가 로마에서 방사형으로 건설되었다. 바울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도인들이 있었다. 상인과 군인들에 의해서도 복음은 전도되었다.
 
제3장 사도 교회의 모습들
 
그리스도인의 삶
초대교회 교인들인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경건한 삶을 살았다. 초대교회시대는 간단한 시대가 아니다. 유대인으로부터의 박해로부터 이방인으로부터의 박해 가운데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명분을 상실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소수이지만 높은 도덕적 수준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3~5%미만의 그리스도인. 기독교는 염병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순전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박해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매우 경건한 삶을 살았다.
 보수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 신학이다. 그러나 보수 신학의 이상한 경향은 획일적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자신들과 다르다는 한가지만으로 정죄를 한다. 보수교회는 쉽게 정죄한다. 완전 축자 유기적 영감설. 유기적 영감이라는 것은 다양한 그릇의 글이라도,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영감이 있다는 주장. 하나님은 이렇게 다양하신데, 인간은 획일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연적 기질을 말살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적인 모든 특징들이 구속하고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가정. 엡 5,6.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가정이다. 공동체의 모델은 초대교회. 유무상통을 한 초대교회. 이러한 유무상통이 없어진 이유는? 이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모델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공동체는 교회, 그리고 가정이다. 가정은 계산하지 않는다. 가정은 타락 전에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가족 이기주의로 만든다. 플라톤의 <<Republic>>(국가)에서 플라톤은 가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녀 관계는 사람의 번식뿐이다. 플라톤은 현인, 철인 정치를 말한다. 가정은 공동체에 저해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죄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이기적으로 사용한다. 에베소서는 가정의 신성함을 부여한다.
 기독교는 제도 개혁이 일차적 목표가 아니다. 기독교의 가장 핵심은 하나님 중심 가운데 이웃사랑, 휴머니즘, 인간 사랑에 있다.

기독교인들의 예배
유대인에는 두 가지 형태의 예배가 있었다. 첫째는 성전 제사, 둘째는 회당에서의 율법 중심의 예배였다.

7 성례
(유아)세례
견진성사(confirm!!ation)
고해성사
신품성사(사제)
성찬
혼배(혼인)성사
종부성사(죽을 때)

종교개혁 때, 예수님께서 직접제정하신 세례와 성찬만 성례로 인정했다.

침례교만 유아세례 반대한다. 그 이유는 신앙고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아식을 한다.

1. 화체설(transubstantiation)
1215년 4차 lateran 회의에서 들어왔다. 1종 성찬(떡만 있음), 2종 성찬(떡과 잔이 있음)이 있다. 13세기 종교개혁이전의 종교개혁자들(위클리프, 후스)은 성찬을 2종 성찬으로 회복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이후 오랫동안 1종 성찬이 있어 왔다. 상에서 빵을 나눠지기 전, 봉헌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고 생각했다. 잔은 사제가 독식하고 빵은 모든 사람에게 나눠졌다.

2. 공재설(consubstantiation)
육적임재설. 본체가 함께 한다는 말이다.

3. 영적임재설(spiritual presence of Christ)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연합하는 것.

4. 기념설
쯔빙글리의 주장.
 
안식일은 쉼과 선을 행하는 것이다.
 
교회의 직제
케리스마(은사). 
만인제사장직. 칼빈은 직업소명론으로 발전시킴. 20세기에는 크래머의 평신도 신학.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행1: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행10:26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신약시대에 선지자가 있는 이유는?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행15: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이들은 구약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했다. 앞으로 있을 일을 말했다. 장래 일을 인간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께 인봉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도 인봉되어 있는 것으로 나온다.
 
박해와 순교
행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로마황제)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교 때문에 생긴 난동 때문에 로마에서 쫓겨난다. 로마는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구분하지 못했다.

행18: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행18: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행18: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행18: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고
행18:16 저희를 재판 자리에서 쫓아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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