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관점에서 본 예배
역사적 관점에서 본 예배
박영실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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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인간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시29:2). 이런 당위성은 Worship의 어원 역사에 잘 담겨져 있다. 예배의 영어 단어인 worship은 앵글로 색슨어인 “weorthscipe"- "worth"(가치)와 ”ship"(신분)-에서 유래하였다. 존경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예배는 신앙의 필수 불가결한 표현이랄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 제 몫을 돌려 드리는 일인 것이다.
역사상의 다양한 실례들을 통하여 바람직한 예배의 모델을 살펴보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새김질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제한 된 지면상 역사적 예배 실례들의 대략적 기술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양해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1. 초대 교회
초대 교회에 관련되어 남아있는 역사적 문헌들은 살펴보면, 1세기와 2세기 초에 속한 문헌들은 대체적으로 통일된 틀이 없고 단편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보게 된다. 단편적인 기록중 디다케(Didache: 12 사도의 교훈)와 플리니의 편지(the Correspondence between Pliny and Trajan: 112)가 예배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들 기록을 정리해 보면 성찬은 말씀과 더불어 초대교회 시대부터 예배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2세기 중엽에 이르면 예배에 대한 개요를 담은 최초의 문헌이 나타나게 된다.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의 변증서(140년 경)가 그것이다. 저스틴에 따르면, 창조와 주님의 부활을 의미하는 “일요일”은 기독교인 모두가 지키는 “일반 집회”의 날이며, 예배는 말씀 의식과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다락방 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로 볼 때, 2세기 예배 특성은 그리스도 중심적 예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말씀과 성찬이 기독교 예배의 기본구조로 정착됨을 보게 된다. 3세기와 콘스탄틴 회심이전의 예배는 집례자와 회중 사이의 인사와 화답 같은 사소한 추가가 있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인사말에는 현대 예배의 축도적 표현이 나타난다.
4-5세기에 이르러 콘스탄틴의 개종과 더불어 기독교 예배의 역사도 극적인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적 지원 가운데 교회는 양적인 성장을 이룩하고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도 보다 더 분명한 예배 의식의 발전을 이룩한 시대였던 것이다. 물론 이시기에도 예배의 말씀과 성찬이라는 이중적인 구조는 별 다른 변화를 겪지는 않았으나 로마 제국의 중심적인 도시들을 중심으로 해서 각 지역 고유의 특성이 예배의식에 반영되어 발전해갔다.
이 시기의 동방의 예전은 심미적 특성을 지닌 헬라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아 예전에 있어서 상징들이 다양하게 채용되어 신비스러움을 추구한다. 로마인들의 실용적인 성향이 잘 드러나 있는 서방 교회의 예전은 동방의 그것에 비해서 화려하지 못하나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중세 교회
중세 로마 교회의 예배는 특히 성찬에 집중되었고, 이런 현상은 제 4차 라테란 회의(1215년)에서의 화체설의 선포 이후 더욱 가속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찬의 성격에 있어서도 사실상 희생(sacrifice)인 화해적 성격이 강조되어 구약의 제사 제도로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중세는 중보적인 성인들, 특히 성모 숭배와 공적 사상이 널리 퍼지고 고해 성사가 일반화된 기간이었다.
이런 중세의 종교적인 흐름은 예배에 여러 미신적 요소를 가미하여 갖가지 폐습으로 이어졌다. 권위주의적 교회관과 은총의 수단화된 성례전의 집례에 걸맞게 교회 건물은 권위의 자리로 설계되었고 예배 역시 제 형태의 제복과 제스쳐을 동원하여 오감에 어필되도록 창안되었다. 예배 의식 중에 잦은 성경 봉독, 찬송, 기도문의 낭독이 있었고, 교회 축일에 따라 행해지는 축제 의식이 있었다.
3. 종교 개혁자들
중세기의 형식적인 예배에 관한 불만은 개혁의 욕구로 이어졌다. 이때에 교회 예배 개혁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루터, 쯔윙글리, 칼빈 등이 곧 그들이다.
루터는 미사를 모국어로 드려야 한다는 강조하고 1526년에는 독일어로 개역된 미사책을 펴냄으로써 예배 개혁성을 드러냈다. 그는 예배 의식은 성경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성경에서 금지하지 않는 것들은 교회가 필요하다면 보유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 스위스의 개혁가들에 비해서 상대적 개혁 보수성을 드러낸다.
사실 루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관행들을 개혁하길 원했지, 분열을 의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많은 로마 카톨릭의 예배 의식을 그대로 보유했던 것이다. 루터와 로마 카톨릭 교회와 큰 차이는 성찬의 이해이다. 미사를 그리스도 죽음의 반복으로 받아들이는 로마교회와는 달리 루터는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희생에 동참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루터의 성찬론은 그리스도께서 성찬에 육체적으로 임재 하신다 해서 공재설이라 칭한다.
쯔빙글리는 루터에 비해 더 합리적이고 진보적이었다는 것이 성찬의 이해에서 드러난다. 그는 일년에 네 번 정도 성찬을 시행하면 충분하고 믿었고 기념설적인 성찬의 이해를 드러내었다. 그는 예배에서의 모든 상징을 사실상 제거했고 공 예배에서의 모든 음악 대신 시편 찬송을 부르게 했다.
칼빈 이야말로 개혁 신학적 입장에서 예배 전통에 분명한 형식을 부여한 사람이다. 그의 예배 개혁은 성경과 초대 교리신조의 연구 결과라 할 수 있다. 칼빈은 루터보다 더 철저히 중세로마 교회의 예배 의식을 개혁하여 중세 교회의 함정인 의식주의를 극복했다. 그러면서도 칼빈은 급진 개혁을 추구하는 이들과는 달리 예배의 질서를 보존했다.
칼빈의 예배의식은 말씀 예식과 다락방 예식 둘로 이루어진다. 영적 임재설을 취한 칼빈은 성찬을 자주 행하는 것이 좋으나 실제적으로는 한달에 한번 정도 시행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예배 시 시편찬송을 사용할 것을 말하고 있는 데, 특히 회중적인 찬송을 위해서 어린이들 찬송(성가대)을 제시하였다. 칼빈의 제네바 예배 의식(Genevan Service Book)은 다수의 개혁교회의 모범적인 모델로서 역할을 하였다. 칼빈의 영향은 프랑스, 독일, 화란, 덴마크, 스위스, 스코틀랜드, 영국, 그리고 후대에는 미국 장로교에 까지 확대되었다.
종교개혁의 가장 급진적 양상을 보였던 집단은 원시 기독교의 질서 회복을 추구했던 재세례파들을 비롯한 급진적인 개혁자들이다. 이들은 기독인의 삶뿐만 아니라 예배에서도 성경에만 기초한다는 이런 철저성으로 일관하였다 할 수 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을 사실상 없이하였기에, 예배 집행에서의 회중의 자발적인 참여가 돋보인다.
예배 내용에 있어서 말씀 전파를 강조하였고, 라틴어 대신 자국어를 사용함으로 모든 회중이 예배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회중 찬송을 강조했는데, 찬송의 중요 소재는 박해중의 고난과 순교의 내용이 주종을 이뤘다. 침례 시는 받고자 하는 이의 신앙고백을 핵심적 요소로 여겼고, 강도 높게 유아세례를 비판하였다.
4. 현대 개신교회들
개신교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 비해서 예배의 다양성을 추구해 왔다. 루터란들이나 성공회는 상대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예배 의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 의식적 예배 경향을 보인 회중교인들이나 퀘이커 교도 등이 있다. 예배에 있어서 반 의식적 성향을 보인 이들은 고정된 의식은 회중의 다양한 필요를 만족시킬 수 없고 타성을 유발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말씀 중심의 예배가 있다. 후기 회중교인들과 장로교인들의 예배가 이런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철저하게 설교 중심적 예배 순서를 갖는다. 예배 집례자는 주로 회중의 청각에 호소하게 되고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의식들을 제거하려 한다.
또 체험적 예배가 있다. 이런 형태의 예배는 경건주의자, 부흥운동주의자, 그리고 현대 오순절파에서 볼 수 있다. 자유스러운 예배 형식 가운데서 경험할 수 있는 개인의 체험을 강조하니 자연히 예배가 지적, 의지적 요소를 강조하기 보다는 감정적인 측면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오순절 운동에서는 방언( 통역), 예언, 신유 등이 강조되는 은사 중심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마무리하며
이상의 고찰을 통해 나타난 몇 가지 교훈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배 갱신은 항상 성경의 재조명하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 본연의 특성이어야 하는 “성경적”이기를 포기할 때, 예배는 미신화라는 미궁 속에 빠져 버리게 된다.
이 역사적 오류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던 시대는 중세시대였고 종교 개혁자들은 예배의 개혁의 청사진을 성경에서 찾았던 것이다.
둘째, 말씀과 성례라는 예배의 이중적 구조는 초대교회 때부터 역사적 실례로 제시되어져 왔다. 예배 집례자는 두 구조사이의 균형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중세는 너무 후자 쪽으로 치우쳐왔다.
한편 오늘의 장로교회가 말씀중심의 예배를 드림은 좋지만 성례에 대한 적절한 강조점을 회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칼빈은 참된 교회란 말씀이 바로 선포되고 성례가 바로 시행되는 교회라 하지 않았던가!
셋째, 회중의 자발적 참여가 유도되었다. 지나치게 엄격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탈피하고 예배에 참석한 모든 회중의 참여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종교 개혁자들은 회중의 이해와 참여를 위해서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고 라틴어 중심의 예전을 배격하고 자국어로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식주의는 극복해야 하지만 의식의 중요성은 인정해야 한다. 극단적인 의식주의는 미신을 조장한다는 것을 중세사는 우리에게 교훈한다.
그러나 중세사의 의식 지상주의에 대한 반동의 맥락에서 일어났던 개신교회는 의식을 너무 가볍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을 염두 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의식을 지나치게 배격할 때 예배는 단조로움에 빠지고 변덕스러운 집례자의 주관성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제몫을 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 신학도인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사역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이를 위해서 더 많이 연구하고 더 많이 엎드리며 더 많이 준비해야 하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드리는 그 예배 속에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임재하시리라 믿는다.
출처 :주님의 뜰-행원소구 원문보기▶ 글쓴이 : blo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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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실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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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인간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시29:2). 이런 당위성은 Worship의 어원 역사에 잘 담겨져 있다. 예배의 영어 단어인 worship은 앵글로 색슨어인 “weorthscipe"- "worth"(가치)와 ”ship"(신분)-에서 유래하였다. 존경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예배는 신앙의 필수 불가결한 표현이랄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 제 몫을 돌려 드리는 일인 것이다.
역사상의 다양한 실례들을 통하여 바람직한 예배의 모델을 살펴보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새김질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제한 된 지면상 역사적 예배 실례들의 대략적 기술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양해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1. 초대 교회
초대 교회에 관련되어 남아있는 역사적 문헌들은 살펴보면, 1세기와 2세기 초에 속한 문헌들은 대체적으로 통일된 틀이 없고 단편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보게 된다. 단편적인 기록중 디다케(Didache: 12 사도의 교훈)와 플리니의 편지(the Correspondence between Pliny and Trajan: 112)가 예배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들 기록을 정리해 보면 성찬은 말씀과 더불어 초대교회 시대부터 예배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2세기 중엽에 이르면 예배에 대한 개요를 담은 최초의 문헌이 나타나게 된다.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의 변증서(140년 경)가 그것이다. 저스틴에 따르면, 창조와 주님의 부활을 의미하는 “일요일”은 기독교인 모두가 지키는 “일반 집회”의 날이며, 예배는 말씀 의식과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다락방 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로 볼 때, 2세기 예배 특성은 그리스도 중심적 예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말씀과 성찬이 기독교 예배의 기본구조로 정착됨을 보게 된다. 3세기와 콘스탄틴 회심이전의 예배는 집례자와 회중 사이의 인사와 화답 같은 사소한 추가가 있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인사말에는 현대 예배의 축도적 표현이 나타난다.
4-5세기에 이르러 콘스탄틴의 개종과 더불어 기독교 예배의 역사도 극적인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적 지원 가운데 교회는 양적인 성장을 이룩하고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도 보다 더 분명한 예배 의식의 발전을 이룩한 시대였던 것이다. 물론 이시기에도 예배의 말씀과 성찬이라는 이중적인 구조는 별 다른 변화를 겪지는 않았으나 로마 제국의 중심적인 도시들을 중심으로 해서 각 지역 고유의 특성이 예배의식에 반영되어 발전해갔다.
이 시기의 동방의 예전은 심미적 특성을 지닌 헬라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아 예전에 있어서 상징들이 다양하게 채용되어 신비스러움을 추구한다. 로마인들의 실용적인 성향이 잘 드러나 있는 서방 교회의 예전은 동방의 그것에 비해서 화려하지 못하나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중세 교회
중세 로마 교회의 예배는 특히 성찬에 집중되었고, 이런 현상은 제 4차 라테란 회의(1215년)에서의 화체설의 선포 이후 더욱 가속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찬의 성격에 있어서도 사실상 희생(sacrifice)인 화해적 성격이 강조되어 구약의 제사 제도로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중세는 중보적인 성인들, 특히 성모 숭배와 공적 사상이 널리 퍼지고 고해 성사가 일반화된 기간이었다.
이런 중세의 종교적인 흐름은 예배에 여러 미신적 요소를 가미하여 갖가지 폐습으로 이어졌다. 권위주의적 교회관과 은총의 수단화된 성례전의 집례에 걸맞게 교회 건물은 권위의 자리로 설계되었고 예배 역시 제 형태의 제복과 제스쳐을 동원하여 오감에 어필되도록 창안되었다. 예배 의식 중에 잦은 성경 봉독, 찬송, 기도문의 낭독이 있었고, 교회 축일에 따라 행해지는 축제 의식이 있었다.
3. 종교 개혁자들
중세기의 형식적인 예배에 관한 불만은 개혁의 욕구로 이어졌다. 이때에 교회 예배 개혁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루터, 쯔윙글리, 칼빈 등이 곧 그들이다.
루터는 미사를 모국어로 드려야 한다는 강조하고 1526년에는 독일어로 개역된 미사책을 펴냄으로써 예배 개혁성을 드러냈다. 그는 예배 의식은 성경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성경에서 금지하지 않는 것들은 교회가 필요하다면 보유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 스위스의 개혁가들에 비해서 상대적 개혁 보수성을 드러낸다.
사실 루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된 관행들을 개혁하길 원했지, 분열을 의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많은 로마 카톨릭의 예배 의식을 그대로 보유했던 것이다. 루터와 로마 카톨릭 교회와 큰 차이는 성찬의 이해이다. 미사를 그리스도 죽음의 반복으로 받아들이는 로마교회와는 달리 루터는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희생에 동참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루터의 성찬론은 그리스도께서 성찬에 육체적으로 임재 하신다 해서 공재설이라 칭한다.
쯔빙글리는 루터에 비해 더 합리적이고 진보적이었다는 것이 성찬의 이해에서 드러난다. 그는 일년에 네 번 정도 성찬을 시행하면 충분하고 믿었고 기념설적인 성찬의 이해를 드러내었다. 그는 예배에서의 모든 상징을 사실상 제거했고 공 예배에서의 모든 음악 대신 시편 찬송을 부르게 했다.
칼빈 이야말로 개혁 신학적 입장에서 예배 전통에 분명한 형식을 부여한 사람이다. 그의 예배 개혁은 성경과 초대 교리신조의 연구 결과라 할 수 있다. 칼빈은 루터보다 더 철저히 중세로마 교회의 예배 의식을 개혁하여 중세 교회의 함정인 의식주의를 극복했다. 그러면서도 칼빈은 급진 개혁을 추구하는 이들과는 달리 예배의 질서를 보존했다.
칼빈의 예배의식은 말씀 예식과 다락방 예식 둘로 이루어진다. 영적 임재설을 취한 칼빈은 성찬을 자주 행하는 것이 좋으나 실제적으로는 한달에 한번 정도 시행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예배 시 시편찬송을 사용할 것을 말하고 있는 데, 특히 회중적인 찬송을 위해서 어린이들 찬송(성가대)을 제시하였다. 칼빈의 제네바 예배 의식(Genevan Service Book)은 다수의 개혁교회의 모범적인 모델로서 역할을 하였다. 칼빈의 영향은 프랑스, 독일, 화란, 덴마크, 스위스, 스코틀랜드, 영국, 그리고 후대에는 미국 장로교에 까지 확대되었다.
종교개혁의 가장 급진적 양상을 보였던 집단은 원시 기독교의 질서 회복을 추구했던 재세례파들을 비롯한 급진적인 개혁자들이다. 이들은 기독인의 삶뿐만 아니라 예배에서도 성경에만 기초한다는 이런 철저성으로 일관하였다 할 수 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을 사실상 없이하였기에, 예배 집행에서의 회중의 자발적인 참여가 돋보인다.
예배 내용에 있어서 말씀 전파를 강조하였고, 라틴어 대신 자국어를 사용함으로 모든 회중이 예배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회중 찬송을 강조했는데, 찬송의 중요 소재는 박해중의 고난과 순교의 내용이 주종을 이뤘다. 침례 시는 받고자 하는 이의 신앙고백을 핵심적 요소로 여겼고, 강도 높게 유아세례를 비판하였다.
4. 현대 개신교회들
개신교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 비해서 예배의 다양성을 추구해 왔다. 루터란들이나 성공회는 상대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예배 의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 의식적 예배 경향을 보인 회중교인들이나 퀘이커 교도 등이 있다. 예배에 있어서 반 의식적 성향을 보인 이들은 고정된 의식은 회중의 다양한 필요를 만족시킬 수 없고 타성을 유발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말씀 중심의 예배가 있다. 후기 회중교인들과 장로교인들의 예배가 이런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철저하게 설교 중심적 예배 순서를 갖는다. 예배 집례자는 주로 회중의 청각에 호소하게 되고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의식들을 제거하려 한다.
또 체험적 예배가 있다. 이런 형태의 예배는 경건주의자, 부흥운동주의자, 그리고 현대 오순절파에서 볼 수 있다. 자유스러운 예배 형식 가운데서 경험할 수 있는 개인의 체험을 강조하니 자연히 예배가 지적, 의지적 요소를 강조하기 보다는 감정적인 측면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오순절 운동에서는 방언( 통역), 예언, 신유 등이 강조되는 은사 중심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마무리하며
이상의 고찰을 통해 나타난 몇 가지 교훈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배 갱신은 항상 성경의 재조명하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 본연의 특성이어야 하는 “성경적”이기를 포기할 때, 예배는 미신화라는 미궁 속에 빠져 버리게 된다.
이 역사적 오류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던 시대는 중세시대였고 종교 개혁자들은 예배의 개혁의 청사진을 성경에서 찾았던 것이다.
둘째, 말씀과 성례라는 예배의 이중적 구조는 초대교회 때부터 역사적 실례로 제시되어져 왔다. 예배 집례자는 두 구조사이의 균형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중세는 너무 후자 쪽으로 치우쳐왔다.
한편 오늘의 장로교회가 말씀중심의 예배를 드림은 좋지만 성례에 대한 적절한 강조점을 회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칼빈은 참된 교회란 말씀이 바로 선포되고 성례가 바로 시행되는 교회라 하지 않았던가!
셋째, 회중의 자발적 참여가 유도되었다. 지나치게 엄격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탈피하고 예배에 참석한 모든 회중의 참여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종교 개혁자들은 회중의 이해와 참여를 위해서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고 라틴어 중심의 예전을 배격하고 자국어로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식주의는 극복해야 하지만 의식의 중요성은 인정해야 한다. 극단적인 의식주의는 미신을 조장한다는 것을 중세사는 우리에게 교훈한다.
그러나 중세사의 의식 지상주의에 대한 반동의 맥락에서 일어났던 개신교회는 의식을 너무 가볍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을 염두 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의식을 지나치게 배격할 때 예배는 단조로움에 빠지고 변덕스러운 집례자의 주관성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제몫을 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 신학도인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사역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이를 위해서 더 많이 연구하고 더 많이 엎드리며 더 많이 준비해야 하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드리는 그 예배 속에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임재하시리라 믿는다.
출처 :주님의 뜰-행원소구 원문보기▶ 글쓴이 : blo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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