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
개혁신학
◈ 아래의 글은 김향주교수님께서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의 '우물'紙(2001, 가을, 통권 제1호)에 올리신 칼럼입니다 ◈
REFORMED COLUMN
나는 개혁신학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전율함을 가눌 수가 없다. 16세기 종교개혁을 단순한 한 분야의 교리적 변화를 시도하거나 교회의 예배에 대한 형태변화를 시도하는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 자세가 아닌가? 너무나 단순하게 단편적으로 종교개혁을 평가하고 있다는 말이다. 종교개혁을 전후하여 성경교리의 글자 하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며 자신을 불태웠던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을 가슴에 담아본다면, 현재 개혁신학이라는 말을 자신의 유익과 입지를 변호하기 위한 얄팍하고도 가증스런 입술을 함부로 놀려대며 속으로는 악마의 가면을 쓰고 나의 유익을 앞세우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신앙의 규준이 되어야 하지만 교리는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그것은 독선과 아집만 길러낼 뿐이다. 교리는 딱딱한 것이므로 목회에 아무 도움이 안된다. 실천신학이 바로 되어야 교회가 부흥한다. 교리신학은 교회 부흥에 저해 요소이다.' 등등의 말을 들을 때 나의 심장의 피가 거꾸로 솟아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순교의 피 뿌림이 없이는 역사선상에 나타난 적이 없었던 개혁신학, 교리 한 구절을 바로 세우기 위해 눈물과 기도와 오랜 세월을 기다리며 몸부림치던 신앙의 선배들이 이와같은 무지한 소리를 듣고 있다면 그들의 피끓는 심정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2세기경부터 형성된 반쪽도 안되는 짧은 사도신조가 교회에서 신앙고백서로 채택되어 이 신앙 문서 때문에 초대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는가? 그 내용은 너무나 단순하고도 간략하다. 그 내용은 3위1체 하나님을 기초하여 구원을 그 교리로 하여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짧은 내용이지만 너무나 웅장하고, 섬세하고, 장엄하여 가슴을 떨리게 하다못해 엎드러져 고개를 들 수 없는 심정이다. 그것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그처럼 잘 요약해 놓을 수가 없는 걸작중의 걸작인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수없는 순교자들의 피가 로마를 물들게 한 후 4세기부터 니케야 신조, 콘스탄틴노플 신조, 칼케돈 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가 형성된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나는 경고적으로 발악하리만큼 확실하게 소리치고 싶다. 순교의 피는 역사적 개혁신학의 교리를 잉태한다고...... 천년을 잘 먹고, 권력의 칼을 쥐고, 이 세상 군왕들 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며 온갖 범죄를 주의 이름으로 저질렀던 로마 카톨릭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어떤 역사를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 몇 사람의 죽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2차 세계 대전을 앞에 두고 처치힐 수상의 연설문이 생각난다. 그는 소리치며 '우리의 현안 문제가 10이면 10이라는 귀중한 인명의 피와 10이라는 경제와 10이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가장 위급하고도 절박한 현안문제를 다루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온 국민과 군대와 모든 산업이 한 뜻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나는 이 말을 종교개혁 시대의 처절하게 고통 당하던 개혁자들의 심정으로 돌아가 대입해 보고싶다. '종교개혁은 피가 산을 녹일 만큼 많은 순교자를 요구하는 엄청난 현안 문제이므로 우리는 모두 죽기를 각오하지 아니하면 로마 캐톨릭을 개혁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 보다 더 무모한 일입니다.'라는 것을......
이 말을 부인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데도 무식하고도 의식이 없이 개혁신학의 교리를 정면 부정하는 소리들이 일부에서 지껄여지는 대신대학원의 형편을 보면, 개혁신학을 세우기 위한 순교자들의 피가 역사의 한 줄기 작난이거나 사기꾼들의 야합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로마 캐톨릭에서 종교재판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그처럼 고귀한 신앙의 선배들을 얼마나 고문하며 죽였는가? 함부로 교리를 멸시하고 싶으면 로마 캐톨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개신교에 있으면서 왜 로마 교회를 옹호하는가?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헤아릴 수 없는 순교자들의 피가 유럽 전역을 적신 후 다양하고도 값진 교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것도 우연이란 말인가? 그것은 개혁교리는 순교의 피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단호하게 대답하고 싶다. 분명히 그렇다고.
Westminster 신앙고백의 기초가 되었던 1560년 Scotland 신앙고백의 배경을 보자. 1528년부터 개혁신학이 확산되는 것만큼 순교자들이 늘어갔고 순교자들이 늘어가는 것만큼 개혁신학은 확산되어 갔다. 이에 스콧랜드는 개혁교회를 말살하기 위해 영국과 합세하여 닥치는 대로 개신교 목사들을 죽였다. 이 와중에서도 개혁자들은 신앙고백서들을 만들어냈다. 영국의 사절로 참석했던 Randolph의 고백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처럼 중대한 문체를 본적이 없다. '그는 린드세이 경의 말을 인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다. 나는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나는 우리들 중에 가장 늙은 사람이다. 나는 이제 이 값진 것을 만들어 놓은 오늘을 보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다음으로 1561년 벨직 신앙고백의 배경을 보자. 화란의 벨기에 지역은 개혁의 요충지였다. 1618년 Dort 신앙고백을 만들기 위해 모인 장소이기도 하다. 찰스 5세가 개혁교회 말살령을 내리게 되자 1523년 어거스틴의 신학을 따르던 Henry Voes와 John Esch는 말뚝에 묶여 화형을 당했다. 이때 그들은 오직 사도신경과 Te Deum을 외치며 죽어갔다. 그후 그들을 따라 10만 명 이상의 성도들이 순교자로 죽어갔다. 죽어가면서 그들의 신앙고백은 '이 신앙고백에 표현된 바의 진리를 거부당하느니 보다는 차라리 등에 채찍을 받고, 혀를 짤리며, 입에 재갈이 물리며, 온몸이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편이 더 낫다'고 고백하였다. 어쩌면 그들은 '아비나 어미를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의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했던 자들이 아닌가?
또 다시 1563년 하이델버그 신앙고백의 배경을 보자. 이 교리는 루이 6세에 의해 엄청난 수난을 당하게 된다. 이 요리문답을 작성한 주도자들을 죽이고 추방시키는 일을 시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요리문답은 배포 금지와 불태움을 당하게 되었다. 이 요리문답이 출판된 이후에는 칼빈주의적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로마 캐톨릭과 루터파로부터 계속적으로 극심한 수난을 당하여 이단으로 정죄되기에 이르렀다. 역사는 과거를 반복하는가? 한국에서도 어쩌면 그와 같은 일을 자행하였던가?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 같은 천금보다 귀한 그분들을 면직하고 이단으로 정죄하여 강단에서 몰아낸 자들이 누구였던가? 순교가 너무나 값진 것이기에 그분들에게 가당치도 않은 면직과 이단을 뒤집어쓰게 하였단 말인가? 너무나 억울하여 변호할 길도 없었고 울부짖는 소리조차 들을 길이 없었단 말인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순교자들 앞에 엄청난 범죄를 자행하는 이 사악한 양심을 통회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아끼고 또 아끼는 Westminster 신앙고백서의 배경을 보자. 1647년 영국의 정부와 로마 캐톨릭교회는 힘을 합하여 개혁자들을 핍박하는 요새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개혁자들로 형성된 의회와 로마 캐톨릭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정부와 정면 대립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전쟁이 터지고 만 것이다. 당시 군대를 장악하고 있던 크롬웰 장군은 개혁신앙을 가진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는 힘을 모으기 위해 스콧랜드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함께 힘을 모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다. 그 전쟁과 함께 신앙고백서가 작성되었다. 영국은 종교적 전쟁에 의해 피를 흘리고 난 후 신앙고백이 형성되었던 일이 다른 나라와 다르다. 그것은 영국만이 정치적 배경에 의해 종교적인 문제를 국가의 문제로 다루어 나갔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 개혁신학을 가진 자가 핍박과 순교의 제물로 바쳐짐을 바탕으로 신앙고백서가 형성되었으나, 영국만은 전쟁의 피를 제물로 하여 신앙고백서를 형성해 나갔다.
우리 한국 교회는 다행하게도 순교자들의 얼이 깃들어 있다. 이 말은 개혁신학의 얼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개혁신학은 순교의 피와 절대 비례하는 등식을 성립시켜 온 것이 교회사의 역사이다. 그런 한국 교회가 타락하여 가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 타락의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그 타락의 원인은 무엇인가? 피끓는 가슴을 열고 물어보자. 어디서 그 원인이 왔는가를 물어보자.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악마의 소굴을 만들 줄이야...... 그것이 바로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교회의 피 값을 모르는 경고망동한 언사가 아닌가? 개혁신앙은 어떻게 형성 됐으며 어떻게 교회의 밑거름이 되었는가를 조금이나마 안다면, 순교자들의 피 값으로 개혁신앙을 고백하게 되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그처럼 경망스런 말을 함부로 지껄일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개혁신앙은 신앙고백의 신학이요, 순교의 신학이요, 죽는 자를 살리는 신학이요, 생명의 신학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치이다. 나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존경하는 칼빈 선생께서 개혁신학을 거역하는 자들을 향해 '사악한 무리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던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나는 엎어져 한없이 울고 싶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신앙의 자유와 하나님을 마음껏 노래하고 이처럼 부흥의 불길을 일으킬 수 있는 이 엄청난 교회의 성장을 바라보면 기쁘기 한이 없지만 그 성장의 뿌리가 순교의 피를 뿌리면서 우리에게 남겨준 개혁자들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들을 업수이 여기는 무지몽매한 자들의 지껄이는 소리를 들을 때 한없이 울고 싶다.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이 개혁신학을 위해 순교를 각오하는 10명이 있다면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경건한 신학교가 될 터인데......
언제인가 새벽에 차가운 연구실에서 울면서 기도하던 그 때가 다시 나의 심령을 울리고 있다. '오!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여. 언제쯤 마음을 터놓고 개혁신학을 외치는 우리의 걸음걸이가 휴전선을 뚫고 이북으로 중공으로 달려가 땅 끝까지 전파될까? 그날을 말해다오! 바람 앞에 등불처럼 깜박이는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의 개혁신학이여! 그대의 진리가 용광로처럼 타올라서 나를 태워 나의 시체가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의 정문 밑바닥에 묻힐 때가 왔는가? 말해다오!
'거짓은 노예와 수령의 종교이며 진실은 자유의 신'이라고 외쳤던 고리키의 말이 나의 심장을 파고드는 것은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에 거짓이 난무하여 이 숭고한 개혁신학이 뿌리내릴 터가 없어서란 말이냐? 너무 아름다운 꽃은 빨리 시들고 빛나는 구름은 이내 흩어진다더니, 개혁신학 그대는 너무 아름다워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떠나겠다는 말인가? 그대는 너무 찬란한 빛을 가지고 있어 나와 같은 죄인은 만날 수 없다는 말인가? 나의 눈물을 멈추게 해다오! 이 찢어질 것 같은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다오!
사랑하는 나의 개혁신학이여!
http://cafe.daum.net/Creed
◈ 아래의 글은 김향주교수님께서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의 '우물'紙(2001, 가을, 통권 제1호)에 올리신 칼럼입니다 ◈
REFORMED COLUMN
나는 개혁신학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전율함을 가눌 수가 없다. 16세기 종교개혁을 단순한 한 분야의 교리적 변화를 시도하거나 교회의 예배에 대한 형태변화를 시도하는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 자세가 아닌가? 너무나 단순하게 단편적으로 종교개혁을 평가하고 있다는 말이다. 종교개혁을 전후하여 성경교리의 글자 하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며 자신을 불태웠던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을 가슴에 담아본다면, 현재 개혁신학이라는 말을 자신의 유익과 입지를 변호하기 위한 얄팍하고도 가증스런 입술을 함부로 놀려대며 속으로는 악마의 가면을 쓰고 나의 유익을 앞세우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신앙의 규준이 되어야 하지만 교리는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그것은 독선과 아집만 길러낼 뿐이다. 교리는 딱딱한 것이므로 목회에 아무 도움이 안된다. 실천신학이 바로 되어야 교회가 부흥한다. 교리신학은 교회 부흥에 저해 요소이다.' 등등의 말을 들을 때 나의 심장의 피가 거꾸로 솟아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순교의 피 뿌림이 없이는 역사선상에 나타난 적이 없었던 개혁신학, 교리 한 구절을 바로 세우기 위해 눈물과 기도와 오랜 세월을 기다리며 몸부림치던 신앙의 선배들이 이와같은 무지한 소리를 듣고 있다면 그들의 피끓는 심정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2세기경부터 형성된 반쪽도 안되는 짧은 사도신조가 교회에서 신앙고백서로 채택되어 이 신앙 문서 때문에 초대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는가? 그 내용은 너무나 단순하고도 간략하다. 그 내용은 3위1체 하나님을 기초하여 구원을 그 교리로 하여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짧은 내용이지만 너무나 웅장하고, 섬세하고, 장엄하여 가슴을 떨리게 하다못해 엎드러져 고개를 들 수 없는 심정이다. 그것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그처럼 잘 요약해 놓을 수가 없는 걸작중의 걸작인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수없는 순교자들의 피가 로마를 물들게 한 후 4세기부터 니케야 신조, 콘스탄틴노플 신조, 칼케돈 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가 형성된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나는 경고적으로 발악하리만큼 확실하게 소리치고 싶다. 순교의 피는 역사적 개혁신학의 교리를 잉태한다고...... 천년을 잘 먹고, 권력의 칼을 쥐고, 이 세상 군왕들 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며 온갖 범죄를 주의 이름으로 저질렀던 로마 카톨릭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어떤 역사를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 몇 사람의 죽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단 말인가?
2차 세계 대전을 앞에 두고 처치힐 수상의 연설문이 생각난다. 그는 소리치며 '우리의 현안 문제가 10이면 10이라는 귀중한 인명의 피와 10이라는 경제와 10이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가장 위급하고도 절박한 현안문제를 다루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온 국민과 군대와 모든 산업이 한 뜻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나는 이 말을 종교개혁 시대의 처절하게 고통 당하던 개혁자들의 심정으로 돌아가 대입해 보고싶다. '종교개혁은 피가 산을 녹일 만큼 많은 순교자를 요구하는 엄청난 현안 문제이므로 우리는 모두 죽기를 각오하지 아니하면 로마 캐톨릭을 개혁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 보다 더 무모한 일입니다.'라는 것을......
이 말을 부인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데도 무식하고도 의식이 없이 개혁신학의 교리를 정면 부정하는 소리들이 일부에서 지껄여지는 대신대학원의 형편을 보면, 개혁신학을 세우기 위한 순교자들의 피가 역사의 한 줄기 작난이거나 사기꾼들의 야합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로마 캐톨릭에서 종교재판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그처럼 고귀한 신앙의 선배들을 얼마나 고문하며 죽였는가? 함부로 교리를 멸시하고 싶으면 로마 캐톨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개신교에 있으면서 왜 로마 교회를 옹호하는가?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헤아릴 수 없는 순교자들의 피가 유럽 전역을 적신 후 다양하고도 값진 교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것도 우연이란 말인가? 그것은 개혁교리는 순교의 피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단호하게 대답하고 싶다. 분명히 그렇다고.
Westminster 신앙고백의 기초가 되었던 1560년 Scotland 신앙고백의 배경을 보자. 1528년부터 개혁신학이 확산되는 것만큼 순교자들이 늘어갔고 순교자들이 늘어가는 것만큼 개혁신학은 확산되어 갔다. 이에 스콧랜드는 개혁교회를 말살하기 위해 영국과 합세하여 닥치는 대로 개신교 목사들을 죽였다. 이 와중에서도 개혁자들은 신앙고백서들을 만들어냈다. 영국의 사절로 참석했던 Randolph의 고백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처럼 중대한 문체를 본적이 없다. '그는 린드세이 경의 말을 인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다. 나는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나는 우리들 중에 가장 늙은 사람이다. 나는 이제 이 값진 것을 만들어 놓은 오늘을 보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다음으로 1561년 벨직 신앙고백의 배경을 보자. 화란의 벨기에 지역은 개혁의 요충지였다. 1618년 Dort 신앙고백을 만들기 위해 모인 장소이기도 하다. 찰스 5세가 개혁교회 말살령을 내리게 되자 1523년 어거스틴의 신학을 따르던 Henry Voes와 John Esch는 말뚝에 묶여 화형을 당했다. 이때 그들은 오직 사도신경과 Te Deum을 외치며 죽어갔다. 그후 그들을 따라 10만 명 이상의 성도들이 순교자로 죽어갔다. 죽어가면서 그들의 신앙고백은 '이 신앙고백에 표현된 바의 진리를 거부당하느니 보다는 차라리 등에 채찍을 받고, 혀를 짤리며, 입에 재갈이 물리며, 온몸이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편이 더 낫다'고 고백하였다. 어쩌면 그들은 '아비나 어미를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의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했던 자들이 아닌가?
또 다시 1563년 하이델버그 신앙고백의 배경을 보자. 이 교리는 루이 6세에 의해 엄청난 수난을 당하게 된다. 이 요리문답을 작성한 주도자들을 죽이고 추방시키는 일을 시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요리문답은 배포 금지와 불태움을 당하게 되었다. 이 요리문답이 출판된 이후에는 칼빈주의적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로마 캐톨릭과 루터파로부터 계속적으로 극심한 수난을 당하여 이단으로 정죄되기에 이르렀다. 역사는 과거를 반복하는가? 한국에서도 어쩌면 그와 같은 일을 자행하였던가?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 같은 천금보다 귀한 그분들을 면직하고 이단으로 정죄하여 강단에서 몰아낸 자들이 누구였던가? 순교가 너무나 값진 것이기에 그분들에게 가당치도 않은 면직과 이단을 뒤집어쓰게 하였단 말인가? 너무나 억울하여 변호할 길도 없었고 울부짖는 소리조차 들을 길이 없었단 말인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순교자들 앞에 엄청난 범죄를 자행하는 이 사악한 양심을 통회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아끼고 또 아끼는 Westminster 신앙고백서의 배경을 보자. 1647년 영국의 정부와 로마 캐톨릭교회는 힘을 합하여 개혁자들을 핍박하는 요새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개혁자들로 형성된 의회와 로마 캐톨릭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정부와 정면 대립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전쟁이 터지고 만 것이다. 당시 군대를 장악하고 있던 크롬웰 장군은 개혁신앙을 가진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는 힘을 모으기 위해 스콧랜드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함께 힘을 모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다. 그 전쟁과 함께 신앙고백서가 작성되었다. 영국은 종교적 전쟁에 의해 피를 흘리고 난 후 신앙고백이 형성되었던 일이 다른 나라와 다르다. 그것은 영국만이 정치적 배경에 의해 종교적인 문제를 국가의 문제로 다루어 나갔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 개혁신학을 가진 자가 핍박과 순교의 제물로 바쳐짐을 바탕으로 신앙고백서가 형성되었으나, 영국만은 전쟁의 피를 제물로 하여 신앙고백서를 형성해 나갔다.
우리 한국 교회는 다행하게도 순교자들의 얼이 깃들어 있다. 이 말은 개혁신학의 얼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개혁신학은 순교의 피와 절대 비례하는 등식을 성립시켜 온 것이 교회사의 역사이다. 그런 한국 교회가 타락하여 가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 타락의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그 타락의 원인은 무엇인가? 피끓는 가슴을 열고 물어보자. 어디서 그 원인이 왔는가를 물어보자.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악마의 소굴을 만들 줄이야...... 그것이 바로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교회의 피 값을 모르는 경고망동한 언사가 아닌가? 개혁신앙은 어떻게 형성 됐으며 어떻게 교회의 밑거름이 되었는가를 조금이나마 안다면, 순교자들의 피 값으로 개혁신앙을 고백하게 되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그처럼 경망스런 말을 함부로 지껄일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개혁신앙은 신앙고백의 신학이요, 순교의 신학이요, 죽는 자를 살리는 신학이요, 생명의 신학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치이다. 나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존경하는 칼빈 선생께서 개혁신학을 거역하는 자들을 향해 '사악한 무리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던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나는 엎어져 한없이 울고 싶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신앙의 자유와 하나님을 마음껏 노래하고 이처럼 부흥의 불길을 일으킬 수 있는 이 엄청난 교회의 성장을 바라보면 기쁘기 한이 없지만 그 성장의 뿌리가 순교의 피를 뿌리면서 우리에게 남겨준 개혁자들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들을 업수이 여기는 무지몽매한 자들의 지껄이는 소리를 들을 때 한없이 울고 싶다.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이 개혁신학을 위해 순교를 각오하는 10명이 있다면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경건한 신학교가 될 터인데......
언제인가 새벽에 차가운 연구실에서 울면서 기도하던 그 때가 다시 나의 심령을 울리고 있다. '오!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여. 언제쯤 마음을 터놓고 개혁신학을 외치는 우리의 걸음걸이가 휴전선을 뚫고 이북으로 중공으로 달려가 땅 끝까지 전파될까? 그날을 말해다오! 바람 앞에 등불처럼 깜박이는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의 개혁신학이여! 그대의 진리가 용광로처럼 타올라서 나를 태워 나의 시체가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의 정문 밑바닥에 묻힐 때가 왔는가? 말해다오!
'거짓은 노예와 수령의 종교이며 진실은 자유의 신'이라고 외쳤던 고리키의 말이 나의 심장을 파고드는 것은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에 거짓이 난무하여 이 숭고한 개혁신학이 뿌리내릴 터가 없어서란 말이냐? 너무 아름다운 꽃은 빨리 시들고 빛나는 구름은 이내 흩어진다더니, 개혁신학 그대는 너무 아름다워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떠나겠다는 말인가? 그대는 너무 찬란한 빛을 가지고 있어 나와 같은 죄인은 만날 수 없다는 말인가? 나의 눈물을 멈추게 해다오! 이 찢어질 것 같은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다오!
사랑하는 나의 개혁신학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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