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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하나님께서 호흡하시기 좋은 자연

하나님께서 호흡하시기 좋은 자연
 문병호(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환경에 대한 말들이 많다. 학문적 관심을 넘어서서 주의자(主義者)들의 슬로건으로, 이제는 법정 문제로, 나아가서 정치 문제로, 급기야는 법을 초월한 문제로 등장한다. 소위 ‘환경 문제’라는 것 때문에 데모하고, 삼보일배(三步一拜)로 전국을 돌고, 초인적인 단식도 한다. 이를 자연을 지키기 위한 자연인의 몸부림으로 보는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럽다고 할 것이다.
 
환경 문제가 뭔가? 무엇이 문제이고, 왜 문제인가? 도무지 문제가 있는 것인가? 있다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요사이는 환경 정복이라는 말보다는 환경 복구라는 말이, 댐을 짓고 간척 사업을 해서 국부(國富)를 꾀하자는 말보다는 댐과 방조제를 허물어서 생태계를 회복하자는 말이 더욱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 미국의 후버 대통령이나 덴마크의 국부(國父) 그룬트비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닌 듯하다. 오히려 영웅이 있다면 그는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자연이고, 사람으로 말하자면 자연인이다. 긴 터널을 뚫는 포크레인의 역동성보다 한 마리의 산 짐승을 보듬고 있는 자연주의자의 일상적 모습이 더욱 크로즈업 된다.

환경 혹은 환경문제가 자연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라틴어로 보면 자연(natura)이라는 말은 어원상 본질(essentia) 혹은 본체(substantia)라는 뜻을 함의한다. 사람을 포함한 전체 피조물이 빚어진 그대로의 성질(性質)과 성상(性狀)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가 곧 자연이다. 달리 말하면 자연은 피조물이 조물주의 의지(voluntas)대로 머물러 있음을 말한다. 신학적 의미에서 타락한 인류는 죄책과 오염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자연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자연에 속하지도 않는다. 아니 타락한 인류가 속할 자연은 없다. 왜냐하면 인류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전체 피조계가 타락에 속하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자연적(自然的, naturalis)’이라는 말은 ‘거듭난(renatus)’이라는 말과 상대된다. 거듭난 사람만이 자연인이 될 수 있으며, 거듭난 자만이 회복된 자연에 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자연’은 자연주의나 자연신학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주권과 인간의 전적 타락을 고백하는 정통 신학에서만 신학적으로 거론될 수 있는 주제이다. 자연은 자연적이지 않다(natura non est naturalis).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그 운행(運行)을 여전히 주장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전 3:11 전반). 하나님은 지으시고 한가하게 계시는 분(Deus otiosus)이 아니라 구름과 같이 떼를 지어 다니는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조차 간섭하신다. 칼빈이 말했듯이 하나님의 섭리가 없으면 하늘로부터 빗방울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지으신 것을 지키시고, 유지하시고, 완성하신다. 다만 하나님은 개인(個人)과 개물(個物)을 향하여 독자적으로 섭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관계를 통하여서 역사하신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의 극치가 언약(foedus, pactum)이다. 하나님은 관계 가운데 살게 하신다. 이를 위해서 일반은총으로서 가족과 사회를 주시고 그 가운데 질서를 수립하신다. 이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는 동물계와 식물계에도 미친다. 하나님께서 섭리의 손을 거두시면 자연의 먹이 사슬과 신진대사는 다 깨어지고 만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다(창 1:28). 그리고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고 축복하셨다(창 1:29). 하나님은 또한 사람으로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각 생물의 이름을 짓게 하셨다(창 2:19).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영장(靈長)의 권세를 주신 것은 인류가 가정을 이루게 하심으로써 사회(societas)를 형성하게 하시고(창 2:20-25) 하나님의 언약의 당사자가 되게 하신 것이다(창 2:16-17).

만약 아담이 죄를 짓지 않고 순결했다면(si Adam stetisset integer), 인류는 이러한 영장권(靈長權)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는 수고 없이 먹었을 것이며 모든 것을 다스리며 살았을 것이다. 모든 다스림이 수고스럽지 않았을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부합했을 것이다. 즉 자연 그대로 지키고, 다스리고, 개발하고, 정복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한 끼의 곡기(穀氣)를 채우기 위해서 여름날 뙤약볕에 땀을 흘리며 가시덤불을 걷어내고 엉겅퀴를 캐내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창 3:18-19). 이제 자연인은 빚어진 그대로의 사람이 아니라 죄책과 오염으로 물든 죄인이 되었으며, 그 자연인의 손으로 나는 모든 열매는 자연의 소산이 아니라 수고의 소산이 되었다.

죄는 자연을 떠남 자체이다. 자연 훼손 혹은 파괴는 죄의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제 자연은 계발되거나 정복되어진다기보다 회복되어져야 한다. 자연은 회복되어져야 한다. 그런데 자연의 회복은 오직 회복된 인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난 사람만이 자연을 회복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여전히 남겨 놓으신 인류의 영장권이다. 어떤 환경 신학자들은 이를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인류의 목자권(牧者權)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나님은 마치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자연을 돌보고 회복시키는 일을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일꾼들에게 남겨 두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호흡을 회복하심으로써 피조물의 호흡을 회복하시고자 하신다. 그럼으로써 더 큰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신다. 자연은 회복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정복되어야 한다. 자연 앞에 우리는 지배자가 아니라 목자(pastor)로 서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양식으로 준 지구를 약탈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방해하는 것”이다. 오직 거듭난 사람들에 의해서만 자연은 온전히 정복되고 개발되고 다스려진다. 이로써 하나님은 자연을 온전히 회복시키고자 하신다.
http://blog.daum.net/kkho1105/2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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