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신학, 한국 장로교가 서 있는 자리
칼빈의 신학, 한국 장로교가 서 있는 자리
우리는 21세기의 장로교인들로서 16세기 종교 개혁의 후손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이 세상에 들어왔듯이, 개혁 교회의 작은 불씨들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 신자들이 되는 은혜를 누려왔습니다.
개혁 교회의 특징은 널리 알려진 네 가지의 표어로 집약될 수 있습니다: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a Christo),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신앙과 삶의 최고 법칙”(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공식)이 됩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며, 구원은 오직 그 분을 믿음에 있으며, 믿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며,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공로 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종교 개혁은 이러한 네 가지 원리들에 기초해서 신학과 신앙을 삶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운동으로서 전개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의 정신은 마치 큰 물결이 많은 수로로 나누어져 흐르듯이 도도히 흘러왔습니다. 개혁교회는 본 뿌리를 제네바의 수석 목사인 칼빈의 신학에 내리고 있습니다.
존 칼빈(Ioannes Calvinus, Jean Calvin, 1509~1564)은 자신의 일생을 성경의 교사요, 해석자요, 수호자로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젊을 때 칼빈은 카톨릭 사제, 법률가, 기독교 인문주의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갑작스러운 회심(subita conversion)을 경험한 후 그는 오직 성경만을 손에 들고 그것을 해석하고, 가르치고, 그것을 교훈을 삶에 적용하는데 헌신했습니다.
칼빈의 주석과 설교의 강의는 성경 전체를 아우르고 있으며, 그가 다루었던 신학 주제들은 주요한 기독교 교리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 강요는 그 초판이 그의 나이 25세에 탈고되어서 26살에 출판된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큰 획을 긋는 대작이었습니다. 초판의 교리들은 이후 판이 거듭될수록 더욱 정치(精緻)하고 심오하게 전개되어서 1559년 마지막 판은 교리사상(敎理史上) 개혁 신학이라는 큰 일가(一家)를 이루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칼빈은 말씀 중심의 신학을 추구하는 가운데 강단의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선포하는 직분이 그에 의해서 부각되었습니다. 강단의 개혁은 ‘보이는 예배’로부터 ‘들리는 예배’로의 개혁이었습니다. 어거스틴, 존 크리소스톰과 같은 초대 교회 교부들을 따라서 성경의 말씀들이 장과 절의 순으로 매주 선포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는 이를 ‘강해 설교’라고 불렀습니다. 강해설교를 통해서 교회는 영적이며 복음적인 갱신을 이루었습니다.
칼빈은 삼위일체론, 기독론, 인죄론, 예정론, 섭리론, 구원론, 교회론, 성례론, 시민국가론 등에 관한 신학 작품들을 저술했으며, 계시록 등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신, 구약 전체를 주석하거나 강의했습니다. 칼빈은 신, 구약이 그 경륜에 있어서는 다르나 그 실체에 있어서는 동일하다고 봤습니다. 특히 은혜 언약이라는 관점에서 복음과 율법을 역동적으로 파악해서 복음이 생명의 길이지만 율법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경건하고 올바른 삶의 규범으로써 구원의 전체 과정에 작용하는 선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언약 백성으로서 구원을 확신하는 백성이 미래를 묵상하면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교리를 강조했습니다.
칼빈의 교회론은 이후 장로교 정치제도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칼빈은 교회가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와 같고 더 자란 사람에게는 학교와 같다고 했습니다.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가 함께 논의되었으니, 세례는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시작의 표요 성찬은 그 연합의 계속의 표로써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교회론에 기초해 제네바 교회는 지교회 모임(감독자들의 모임인 당회), 각 회중들을 지역으로 묶은 모임(노회 혹은 대회), 그리고 전체 나라(총회)로 구성된 세 단계의 치리회 구조를 갖추었습니다. 이 교회 구조가 스코틀랜드에서 장로교 정치체제로 발전, 변화해 갔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칼빈의 가르침으로부터 교회와 성도의 신앙과 삶에 역사하는 실천적 교리를 도출해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칼빈의 가르침이 제네바에서는 베자로부터 프란시스 뚤레틴에 이르는 제네바 개혁주의로, 불란서에서는 불란서 개혁주의로, 독일에서는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에 기초한 독일 개혁신학으로, 화란에서는 화란 개혁신학으로, 잉글랜드에서는 청교도주의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교로 전개되었습니다. 미국의 장로교는 잉글랜드의 청교도주의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가 역사적으로 어우러진 것입니다.
한국의 장로교는 서구사회에서 토착화된 개혁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개혁교회로써 형성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의 장로교가 한국 개혁주의의 씨앗으로 심겨졌습니다. 그것이 자라는 과정에서 화란 본토와 미국의 개혁 교단으로부터 전해진 화란 개혁주의 신학이 함께 큰 작용을 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와 대, 소요리 문답서의 가르침을 채택함으로써 언약사상에 기초한 구원의 교리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교리를 중시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수용한 장로교는 칼빈의 신학을 충실히 계승해 발전시킨 역사적 개혁주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한국 장로교는 칼빈의 신학 자체와 그것이 개혁주의로 수립되어 가는 과정을 신학적으로 합당하게 파악하는 일로부터 추구되어야 합니다.
한국 장로교는 칼빈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2012년 장로교 100주년과 2015년 광복 70주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말씀 중심의 신학과 참 경건의 신앙을 심화시켜가야 할 전환기적 사명을 부여 지금이 바로 받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성경 말씀의 심오함과 부요함이 배어 나오는 칼빈의 신학에 터를 잡아 참 신학을 추구함으로써 참 교회를 세우고 성도의 참 된 삶의 교리를 세우고 진작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 장로교는 칼빈의 신학으로 다시금 돌아가야 합니다. 그의 신학에 기초해 일치와 연합을 이뤄내야 합니다. 서로 화목케 하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이 시대에 이루어 가야 합니다. 세계 선교와 남북통일의 길을 복음으로 열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분열과 반목과 시기와 분쟁의 시대를 벗어나서 화평과 사랑과 연합과 공존의 시대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노예가 되었던 애굽의 습관을 버리고 참다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2). 우리의 믿음에는 어떤 공로도 없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으로 말미암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를 믿는 자에게만 수여됩니다. 이것이 장로교의 신앙이자 신학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전해진,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유산입니다.
이러한 유산은 칼빈의 신학에 정초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 철학”을 “그리스도의 철학”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We are not our own, but God’s)라는 외침으로써 그 핵심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로교의 유산을 남겨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받고 이 시대에 더욱 발전시켜 가야 합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고전4:7)
문병호 교수 (총신대 신대원)
http://apologia.co.kr/lib/13960
우리는 21세기의 장로교인들로서 16세기 종교 개혁의 후손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이 세상에 들어왔듯이, 개혁 교회의 작은 불씨들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 신자들이 되는 은혜를 누려왔습니다.
개혁 교회의 특징은 널리 알려진 네 가지의 표어로 집약될 수 있습니다: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a Christo),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신앙과 삶의 최고 법칙”(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공식)이 됩니다.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며, 구원은 오직 그 분을 믿음에 있으며, 믿음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며,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공로 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종교 개혁은 이러한 네 가지 원리들에 기초해서 신학과 신앙을 삶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운동으로서 전개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의 정신은 마치 큰 물결이 많은 수로로 나누어져 흐르듯이 도도히 흘러왔습니다. 개혁교회는 본 뿌리를 제네바의 수석 목사인 칼빈의 신학에 내리고 있습니다.
존 칼빈(Ioannes Calvinus, Jean Calvin, 1509~1564)은 자신의 일생을 성경의 교사요, 해석자요, 수호자로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젊을 때 칼빈은 카톨릭 사제, 법률가, 기독교 인문주의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갑작스러운 회심(subita conversion)을 경험한 후 그는 오직 성경만을 손에 들고 그것을 해석하고, 가르치고, 그것을 교훈을 삶에 적용하는데 헌신했습니다.
칼빈의 주석과 설교의 강의는 성경 전체를 아우르고 있으며, 그가 다루었던 신학 주제들은 주요한 기독교 교리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 강요는 그 초판이 그의 나이 25세에 탈고되어서 26살에 출판된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큰 획을 긋는 대작이었습니다. 초판의 교리들은 이후 판이 거듭될수록 더욱 정치(精緻)하고 심오하게 전개되어서 1559년 마지막 판은 교리사상(敎理史上) 개혁 신학이라는 큰 일가(一家)를 이루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칼빈은 말씀 중심의 신학을 추구하는 가운데 강단의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습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선포하는 직분이 그에 의해서 부각되었습니다. 강단의 개혁은 ‘보이는 예배’로부터 ‘들리는 예배’로의 개혁이었습니다. 어거스틴, 존 크리소스톰과 같은 초대 교회 교부들을 따라서 성경의 말씀들이 장과 절의 순으로 매주 선포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는 이를 ‘강해 설교’라고 불렀습니다. 강해설교를 통해서 교회는 영적이며 복음적인 갱신을 이루었습니다.
칼빈은 삼위일체론, 기독론, 인죄론, 예정론, 섭리론, 구원론, 교회론, 성례론, 시민국가론 등에 관한 신학 작품들을 저술했으며, 계시록 등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신, 구약 전체를 주석하거나 강의했습니다. 칼빈은 신, 구약이 그 경륜에 있어서는 다르나 그 실체에 있어서는 동일하다고 봤습니다. 특히 은혜 언약이라는 관점에서 복음과 율법을 역동적으로 파악해서 복음이 생명의 길이지만 율법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경건하고 올바른 삶의 규범으로써 구원의 전체 과정에 작용하는 선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언약 백성으로서 구원을 확신하는 백성이 미래를 묵상하면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교리를 강조했습니다.
칼빈의 교회론은 이후 장로교 정치제도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칼빈은 교회가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와 같고 더 자란 사람에게는 학교와 같다고 했습니다.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가 함께 논의되었으니, 세례는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시작의 표요 성찬은 그 연합의 계속의 표로써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교회론에 기초해 제네바 교회는 지교회 모임(감독자들의 모임인 당회), 각 회중들을 지역으로 묶은 모임(노회 혹은 대회), 그리고 전체 나라(총회)로 구성된 세 단계의 치리회 구조를 갖추었습니다. 이 교회 구조가 스코틀랜드에서 장로교 정치체제로 발전, 변화해 갔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칼빈의 가르침으로부터 교회와 성도의 신앙과 삶에 역사하는 실천적 교리를 도출해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칼빈의 가르침이 제네바에서는 베자로부터 프란시스 뚤레틴에 이르는 제네바 개혁주의로, 불란서에서는 불란서 개혁주의로, 독일에서는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에 기초한 독일 개혁신학으로, 화란에서는 화란 개혁신학으로, 잉글랜드에서는 청교도주의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교로 전개되었습니다. 미국의 장로교는 잉글랜드의 청교도주의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가 역사적으로 어우러진 것입니다.
한국의 장로교는 서구사회에서 토착화된 개혁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개혁교회로써 형성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의 장로교가 한국 개혁주의의 씨앗으로 심겨졌습니다. 그것이 자라는 과정에서 화란 본토와 미국의 개혁 교단으로부터 전해진 화란 개혁주의 신학이 함께 큰 작용을 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와 대, 소요리 문답서의 가르침을 채택함으로써 언약사상에 기초한 구원의 교리와 그리스도인의 삶의 교리를 중시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수용한 장로교는 칼빈의 신학을 충실히 계승해 발전시킨 역사적 개혁주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한국 장로교는 칼빈의 신학 자체와 그것이 개혁주의로 수립되어 가는 과정을 신학적으로 합당하게 파악하는 일로부터 추구되어야 합니다.
한국 장로교는 칼빈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2012년 장로교 100주년과 2015년 광복 70주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말씀 중심의 신학과 참 경건의 신앙을 심화시켜가야 할 전환기적 사명을 부여 지금이 바로 받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성경 말씀의 심오함과 부요함이 배어 나오는 칼빈의 신학에 터를 잡아 참 신학을 추구함으로써 참 교회를 세우고 성도의 참 된 삶의 교리를 세우고 진작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 장로교는 칼빈의 신학으로 다시금 돌아가야 합니다. 그의 신학에 기초해 일치와 연합을 이뤄내야 합니다. 서로 화목케 하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이 시대에 이루어 가야 합니다. 세계 선교와 남북통일의 길을 복음으로 열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분열과 반목과 시기와 분쟁의 시대를 벗어나서 화평과 사랑과 연합과 공존의 시대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노예가 되었던 애굽의 습관을 버리고 참다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2). 우리의 믿음에는 어떤 공로도 없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으로 말미암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를 믿는 자에게만 수여됩니다. 이것이 장로교의 신앙이자 신학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전해진,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유산입니다.
이러한 유산은 칼빈의 신학에 정초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 철학”을 “그리스도의 철학”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We are not our own, but God’s)라는 외침으로써 그 핵심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로교의 유산을 남겨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받고 이 시대에 더욱 발전시켜 가야 합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고전4:7)
문병호 교수 (총신대 신대원)
http://apologia.co.kr/lib/13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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