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여!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하늘이여!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는 글은 한국성경신앙신학회 제20주년 기념특별논문집의 권두언으로 인터넷에 미리 띄웁니다.
하늘이여!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Hear, O Heavens, and give ear, O earth; for the LORD hath spoken
the holy seed shall be the substance.
Arise, shine; for thy light is come.
조석만 목사: 한국성경신앙신학회 회장(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지금으로부터 약 2천7백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는 절규하였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우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 1:2-3) 라고 하였다.
이것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절박한 형편을 묘사한 것이다. 이것은 하늘을 향하고 땅을 향하여 몸부림치는 선지자의 절통한 외침이다. 그 시대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시대였기 때문에(사 6:9-10) 선지자는 외치기를 “들으라” “귀를 기우리라” “소는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였다.
보라! 지금, 이 시대가 선지자 이사야의 시대와 같지 아니한가? 판단하여 보라. 무엇 하나 올바른 것이 있나를, 불신과 반목과 불화와 시기와 질투들을, 그리고 거짓과 속임수와 불법과 허영과 사리사욕의 종자들을, 그리고 뻔뻔스러움과 돌이킴이 없는 모양새들, 그리고 간사스럽고 요사스런 몸짓들을 말이다. 종교와 교육과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그 어느 곳에서 인간의 본연의 양심과 윤리와 도덕과 질서를 찾아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경우에도 종교와 교육이 썩지 아니하면 장래를 기대할 수 있게 마련인데 말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심히 절통하고 또 절통하여 탄식하기를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4절) 하였다.
이사야가 이같이 절통하게 외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 시대의 종교적 타락과 부패에 대하여 절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종교란, 모든 시대의 심장이며, 양심이며, 윤리이며, 도덕이며, 질서이며, 평화이며, 모본인데 종교의 모습이 이그러지고 변질되어 버렸으니 세상을 바로 인도하여 나아갈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종교에서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며, 만홀히 여기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아니하며, 도덕적 부패에 대한 불감증 때문에 가치판단이 전도되어 버렸으니 그 무엇이 이 세상을 바로 잡아 나아갈 수 있겠는가?
성경은 이 세상의 마지막 형편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배반하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네가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1-5)고 하였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 시대의 부패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라”(사 1:6-9) 하였다. 이 말씀은 선지자 시대의 황폐하게 타락하고 황폐하게 망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실례를 들어 적나라하게 지적한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징벌이요 심판이었다. 그러나 한편, 이 글에서 이사야가 한 가닥 소망을 잃지 아니하였던 사실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아무리 타락하고 부패한 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타락하지 아니하고 부패하지 아니한 자를 따로 남겨 두셨다는 사실이다. 이사야는 그 사실을 깨닫고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이사야서에 일관하고 있는 유잔자(遺殘者), 즉 “남은 자“ 사상이다. 이사야 6장 13절에서 보면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하였다. 이그러진 인간 세상,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이 땅위에 하나님은 ”남은 자”를 두신다는 사실이다.
몹시 부패하였던 이사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였다. 이사야는 대답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였다.
오늘날 이 땅위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인가? 다같이 망신창이가 되어버린 자들인가? 아니면 이 시대, 이 땅위의 남은 자인가? 하나님은 이 시대의 남은 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사 60:1)고 말이다.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라고 말이다. 이 땅위의 그루터기들, 거룩한 씨들, 과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 들리는가? 이 부패한 시대에 하나님이 남겨 놓은 자들이 누구인가? 나라와 민족과 세계와 그리고 종교를 바로 잡아 나아갈 거룩한 그루터기는 누구인가?!
「聖經信仰 제20호 권두언」
http://cafe.daum.net/Creed
하늘이여!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Hear, O Heavens, and give ear, O earth; for the LORD hath spoken
the holy seed shall be the substance.
Arise, shine; for thy light is come.
조석만 목사: 한국성경신앙신학회 회장(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지금으로부터 약 2천7백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는 절규하였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우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 1:2-3) 라고 하였다.
이것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절박한 형편을 묘사한 것이다. 이것은 하늘을 향하고 땅을 향하여 몸부림치는 선지자의 절통한 외침이다. 그 시대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시대였기 때문에(사 6:9-10) 선지자는 외치기를 “들으라” “귀를 기우리라” “소는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였다.
보라! 지금, 이 시대가 선지자 이사야의 시대와 같지 아니한가? 판단하여 보라. 무엇 하나 올바른 것이 있나를, 불신과 반목과 불화와 시기와 질투들을, 그리고 거짓과 속임수와 불법과 허영과 사리사욕의 종자들을, 그리고 뻔뻔스러움과 돌이킴이 없는 모양새들, 그리고 간사스럽고 요사스런 몸짓들을 말이다. 종교와 교육과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그 어느 곳에서 인간의 본연의 양심과 윤리와 도덕과 질서를 찾아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경우에도 종교와 교육이 썩지 아니하면 장래를 기대할 수 있게 마련인데 말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심히 절통하고 또 절통하여 탄식하기를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4절) 하였다.
이사야가 이같이 절통하게 외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 시대의 종교적 타락과 부패에 대하여 절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종교란, 모든 시대의 심장이며, 양심이며, 윤리이며, 도덕이며, 질서이며, 평화이며, 모본인데 종교의 모습이 이그러지고 변질되어 버렸으니 세상을 바로 인도하여 나아갈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종교에서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며, 만홀히 여기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아니하며, 도덕적 부패에 대한 불감증 때문에 가치판단이 전도되어 버렸으니 그 무엇이 이 세상을 바로 잡아 나아갈 수 있겠는가?
성경은 이 세상의 마지막 형편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배반하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네가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1-5)고 하였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 시대의 부패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라”(사 1:6-9) 하였다. 이 말씀은 선지자 시대의 황폐하게 타락하고 황폐하게 망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실례를 들어 적나라하게 지적한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징벌이요 심판이었다. 그러나 한편, 이 글에서 이사야가 한 가닥 소망을 잃지 아니하였던 사실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아무리 타락하고 부패한 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타락하지 아니하고 부패하지 아니한 자를 따로 남겨 두셨다는 사실이다. 이사야는 그 사실을 깨닫고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이사야서에 일관하고 있는 유잔자(遺殘者), 즉 “남은 자“ 사상이다. 이사야 6장 13절에서 보면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하였다. 이그러진 인간 세상,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이 땅위에 하나님은 ”남은 자”를 두신다는 사실이다.
몹시 부패하였던 이사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였다. 이사야는 대답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였다.
오늘날 이 땅위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인가? 다같이 망신창이가 되어버린 자들인가? 아니면 이 시대, 이 땅위의 남은 자인가? 하나님은 이 시대의 남은 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사 60:1)고 말이다.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라고 말이다. 이 땅위의 그루터기들, 거룩한 씨들, 과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 들리는가? 이 부패한 시대에 하나님이 남겨 놓은 자들이 누구인가? 나라와 민족과 세계와 그리고 종교를 바로 잡아 나아갈 거룩한 그루터기는 누구인가?!
「聖經信仰 제20호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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