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재물관과 성경신앙
기독교인의 재물관과 성경신앙
조석만교수
대한신학원 학장 / 조직신학
한국성경신앙신학회 회장
글의 차례 / 1. 재물이란?
2. 재물에 관한 성경의 교사
3. 노동의 대가로서의 재물
4. 기독교인의 재물(재산, 금전)관리 문제
나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재물의 출처와 재물획득과 재물관리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1. 재물이란?
재물(또는 재화)이란 보편적으로 인간의 물질적 경제적 생활을 위한 매개물이다. 그것은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경제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경제라고 하는 말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요한 재화를 획득하여 사용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것은 조달과 소비를 필요로 할뿐만 아니라 인간의 소유욕을 충족케 하기도 한다. 그것은 물질세계에 있어서 인간의 존재가치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화에 대하여 욕망을 품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 추구에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 얻은 재물을 사용하며 자기 존재가치의 표현을 하기 위하여 낭비도 하고 절약도 한다. 그런데 경제란 낭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절약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을 경제적이라고 말하게 된다. 그리하여 경제적인 데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재물에 대한 관점은 인간의 보편적인 관념이라든지 어떤 주관적 경제이론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그 근거를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는 계약서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관계를 확증하여 주고 있는 하나님의 보증서이다. 이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일체의 삶의 원리인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으로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여 명령과 법도의 규례를 규정하여 놓으셨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인간은 그 전 생애를 통하여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의 규례를 실천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이다. 이 요구에 화답하는 인간의 생활이야말로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재물에 관한 성경의 교시
(1) 구약성경에서
우선 욥기에 기록된 욥의 고백에서 보면 재물의 출처가 어디인 것을 말하고 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의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인데 하루동안에 수많은 재물의 손실을 보았으며 그의 육신에 불치의 병까지 들고 말았다. 그 때 그는 하나님께 향하여 부르짖기를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오니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라고 하였다. 시편 127:2에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아니하시면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에스겔 26:12에서는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재물을 빼앗을 것이며 네 무역한 것을 노략할 것이며 네 성을 헐 것이며 네 기뻐하는 집을 무너뜨릴 것이며 또 네 돌들과 네 재목과 흙을 다 물 가운데 던질 것이라”고 하셨다. 전도서 5:19에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2) 신약성경에서
무엇보다 누가복음 12:13-21의 어리석은 부자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재물의 의미를 깨닫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받은 소출이 많은 한 부자가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짖고 그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리라고 그 심중에 생각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하셨다. 예수님께서 결론 지으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못한자가 이와 같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6:19-21에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셨고 누가복음 16:13에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보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또 디모데전서 6:17에서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하게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고 가르치고 있다. 또 히브리서 11:26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말씀하였다. 야고보서 5:1-4에는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을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에 살지게 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성경을 상고하여 보건대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재물의 출처는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재물의 복을 누리도록 하셨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재물의 의미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 데에 있다는 것이다. 주로 구약성경에서는 재물은 하나님께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바로 유용하지 아니하면 무가치하다는 것과 재물에 미련을 두는 자는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없으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며 땅의 재물의 가치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일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보겠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3권 19:9-1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은 물질이 풍부해지면 사치해지며 거기에 휘말려들어 정신과 영혼이 현세적 쾌락에 취하게 되며 또다시 새로운 쾌락을 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바로 사용하는 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재물)을 낭비도 말고 재물이 많다하여 허영과 교만하게도 굴지 말고 순수하게 양심을 바로 가지고 하나님의 선물인 재물을 깨끗하게 사용하라”하였다. 칼빈은 신명기 11:15;12:15;22:5을 재료로 한 설교와 사무엘상 25:36-43; 아모스 6:4; 약5:5; 이사야 3:16의 주석 등에서는 성도의 거룩한 생활이란 어떤 육체적 기능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주신 선물을 거절하는데 있지 않고 그것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사용하는데 있다고 했다.
3. 노동의 대가로서의 재물
성경에서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직결되어 있다. 노동은 하나님의 섭리과정에 있어서 합목적적인 것이며 인류문화 건설에 있어서는 필수적 요건이 되어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문화건설을 명령하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문화를 건설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노동명령을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노동의 대가를 받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살후3:10)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창조 6일째에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문화건설의 사명을 주신 대목이다. 이것은 또한 인간에게 노동의 의의와 인간의 존재가치를 부여하신 장면이기도 하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문화를 건설케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인간창조의 목적을 암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과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이 일치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은 첫째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하여, 둘째로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히 하나님을 기뻐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고전 10:31; 롬 11:36; 시 73:25-28; 욥 1:20; 합 3:17-18)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문화건설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노동행위에 의하여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문화건설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노동행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노동행위를 함으로써 인간에게는 참된 보람과 기쁨이 있게 되는 것이다. 에덴의 시절에는 이 같은 보람과 기쁨 그 자체가 노동의 대가를 얻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전 3:10-13) 인간의 노동의 대가는 문화 그 자체이며 문화의 혜택을 누리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인류문화의 필수요건은 인간의 노동행위이며 인간의 노동행위의 효과는 문화건설과 문화를 누리는 혜택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당시에 이미 그렇게 되도록 복되게 하신 사실이다. 우리는 이같은 사실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일반 은총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위대하심을 나타내며 문화를 건설해야만 하는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을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한 노동행위는 신성한 것이며 존엄한 것이며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는 것이다.
본래 에덴에서의 아담의 노동행위는 단순히 먹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에덴에는 생계를 위한 양식이 풍족하였다. 대가를 바라보고 노동하는 그런 형편은 아니었다. 다만 아담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순응하여 노동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낙을 누리면 행복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에덴에서의 노동은 보수라든지 대가를 전제로 하는 상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수단은 아니었다. 다만 능력껏 하나님께 봉사(쓰임받음)하고 필요에 의하여 받는 순수행위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마에 땀이 흘러야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창 3:19)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보수 또는 대가라고 하는 상대가치를 추구하여 노동을 하게 되었다. 타락한 인간의 노동행위는 고통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일반은총인 것이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으리라”고 하는 것은 곧 노동의 대가로서 식물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성경은 가르치기를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셨다” (전 3:10),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3:13), “곡식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신 25:4), “품군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말라” (레 19:13)고 하였다. 성경은 분명히 수고한 자에게, 즉 일한 자에게 마땅히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여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은 또 가르치기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 12:13)하였다. 이것은 수고의 가치, 즉 노동의 가치와 그 보람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르치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사는 자에게 있어서는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시 127:2)라고 하였으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생의 수고, 즉 노동의 대가의 가치는 물질, 즉 재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 기독교인의 재물(재산, 금전)관리 문제
기독교인의 재물관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 중심 사상에 그 기초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 인간은 어리석은 부자의 예(눅 12:13-21)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중심 사상에 기초하여 자의대로 자기의 목적,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재물을 유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분명히 올바른 재물관리에 관하여 가르치셨다.
(1) 재물획득과 재물유용의 문제에 관하여
하나님의 십계명의 제8계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계명은 정당한 방법에 의하여 재물을 획득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목적이 아무리 선하다 하여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선하게 수익을 얻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선한 목적으로 선한 수단과 방법으로 수익을 얻은 재물 또는 금전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유용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쾌락과 허영과 사치를 위하여 낭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또한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다. (잠 21:17) 또한 성경은 구제를 강조하고 있다. (출 22:25; 레 19:10; 잠 11:25; 에 9:22; 마 6:22-24; 9:36; 10:2, 4, 31, ; 신 15:9-10)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에게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였다. (잠 19:17)
그러므로 성경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가르치고 있다. 먹고 마시며 낙을 누리며 사는 일이나 산업을 위한 사업경영에 있어서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문화건설의 사명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만 한다. 이 땅위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복지 사회를 건설하여 나아가기 위하여 재물을 획득하기도 하며 투자도 하여야 할 것이다.
(2) 하나님께 재물(헌금)을 바치는 문제에 관하여
기독교인의 헌물 또는 헌금 문제는 성경의 헌물제도에 준하여야 한다. 구약성경에서는 처음 난 가축의 새끼라든지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다. (출 23:19; 34:26) 특히 십일조 사상이 철저했다. (말 3:8-12) 신약성경에서는 대체로 자유로이 헌금을 했다(고후 9:5-7).
현재 교회들에는 헌금을 강요하여 억지로 헌금을 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교회에서는 부흥회라고 하는 이름으로 모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별미헌금이니 별미축복이니 하는 말을 사용하여 헌금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복채를 받아먹는 수법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헌금이란 어떤 사람의 공갈이나 강요에 의하여 바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올바른 방법대로 자유로운 인간의 의지로 하나님께 바쳐져야만 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헌금의 필요성을 말하며 가르치고 있다. (고전 16:1-2; 9:7-14; 갈 6:6; 빌 4:10-20; 딤전 5:17-18) 구약성경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지파는 유업(분배)을 받지 못하고 제단에 바쳐진 것을 먹으며 살았다. 그러나 바쳐진 헌금이 제사장이나 레위지파가 먹고사는 생활의 수단으로만 쓰여진 것은 아니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데에도 쓰여졌다. (행 6:1) 그리고 성경은 성전건축이나 성전수축을 위한 헌물과 헌금도 하게 한다. (스 1:5-6; 2:68-69; 고전 3:12) 그리고 성경은 헌금을 바친 자가 복을 받는 다는 것을 또한 가르치고 있다. 마음으로 바친 자는 충성하도록 그들의 자원을 더욱 넉넉하게 하여 주신다고 하였다. (고후 9:6-11; 고전 3:11-15; 말 3:10) 고린도전서 16:2에서는 초대교회 때 매주 첫째 날에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었다가 연보하게 된다고 하였다. (고전 3:12-15) 가난한 과부가 교회에 바친 두 랩돈은 주님의 인정을 받았다. (막 12:42) 성경을 상고해 보면 사람이 하나님께 정성으로 바치는 일에는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가난하기 때문에 헌금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이론은 잘못된 것이다.
(3) 십일조에 관하여
십일조 사상은 구약성경 전체를 일관하고 있다. 특별히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말 3:10) 십일조는 하나님께 물질을 바치는 일에 있어서 최소한 기준이다.
성경은 말하기를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특별히 하나님은 인간의 소득의 모든 것과 열의 하나를 구별하여 놓고 십일조를 바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자라고 규정하셨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르치시는 큰 교훈이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그 은혜를 깨닫고 성별하여 하나님을 경외케 하시기 위한 제도가 십일조제도인 것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구약성경에 비하여 자유롭게 연보와 헌물을 바치게 되어 있지만 십일조헌금을 안 바쳐도 된다는 말은 신약성경의 그 어느 한 부분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신약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헌금에 관한 교사는 십일조 이상의 헌금을 바치는 자유로운 헌금사상이다. (행 2:44; 5:2) 성경은 말하기를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충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고후 8:2)고 하였다.
(4) 세금과 십일조에 관하여
나라에 대한 국민의 의무 중에는 세금을 바치는 문제가 있다. 국민이면 누구든지 그의 수입 중에서 소정의 세금을 나라에 바치게 되어있는 국법을 지키는 것이 국민된 도리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인 동시에 또한 지상나라 백성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에 십일조를 바치는 일과 세상나라에 세금을 바치는 이대의무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 22:21; 막 12:17; 눅 20:25)고 하셨다.
이상에서 기독교의 재물관은 한마디로 철저히 하나님중심 사상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성경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화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 1:21) 이것은 욥의 신앙고백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어야 한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으니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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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만교수
대한신학원 학장 / 조직신학
한국성경신앙신학회 회장
글의 차례 / 1. 재물이란?
2. 재물에 관한 성경의 교사
3. 노동의 대가로서의 재물
4. 기독교인의 재물(재산, 금전)관리 문제
나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재물의 출처와 재물획득과 재물관리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1. 재물이란?
재물(또는 재화)이란 보편적으로 인간의 물질적 경제적 생활을 위한 매개물이다. 그것은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경제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경제라고 하는 말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요한 재화를 획득하여 사용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것은 조달과 소비를 필요로 할뿐만 아니라 인간의 소유욕을 충족케 하기도 한다. 그것은 물질세계에 있어서 인간의 존재가치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화에 대하여 욕망을 품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 추구에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 얻은 재물을 사용하며 자기 존재가치의 표현을 하기 위하여 낭비도 하고 절약도 한다. 그런데 경제란 낭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절약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을 경제적이라고 말하게 된다. 그리하여 경제적인 데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재물에 대한 관점은 인간의 보편적인 관념이라든지 어떤 주관적 경제이론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그 근거를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는 계약서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관계를 확증하여 주고 있는 하나님의 보증서이다. 이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일체의 삶의 원리인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으로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여 명령과 법도의 규례를 규정하여 놓으셨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인간은 그 전 생애를 통하여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의 규례를 실천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이다. 이 요구에 화답하는 인간의 생활이야말로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재물에 관한 성경의 교시
(1) 구약성경에서
우선 욥기에 기록된 욥의 고백에서 보면 재물의 출처가 어디인 것을 말하고 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의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인데 하루동안에 수많은 재물의 손실을 보았으며 그의 육신에 불치의 병까지 들고 말았다. 그 때 그는 하나님께 향하여 부르짖기를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오니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라고 하였다. 시편 127:2에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아니하시면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에스겔 26:12에서는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재물을 빼앗을 것이며 네 무역한 것을 노략할 것이며 네 성을 헐 것이며 네 기뻐하는 집을 무너뜨릴 것이며 또 네 돌들과 네 재목과 흙을 다 물 가운데 던질 것이라”고 하셨다. 전도서 5:19에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2) 신약성경에서
무엇보다 누가복음 12:13-21의 어리석은 부자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재물의 의미를 깨닫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받은 소출이 많은 한 부자가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짖고 그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리라고 그 심중에 생각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하셨다. 예수님께서 결론 지으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못한자가 이와 같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6:19-21에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셨고 누가복음 16:13에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보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또 디모데전서 6:17에서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하게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고 가르치고 있다. 또 히브리서 11:26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말씀하였다. 야고보서 5:1-4에는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을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에 살지게 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성경을 상고하여 보건대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재물의 출처는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재물의 복을 누리도록 하셨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재물의 의미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 데에 있다는 것이다. 주로 구약성경에서는 재물은 하나님께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바로 유용하지 아니하면 무가치하다는 것과 재물에 미련을 두는 자는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없으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며 땅의 재물의 가치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일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보겠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3권 19:9-1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은 물질이 풍부해지면 사치해지며 거기에 휘말려들어 정신과 영혼이 현세적 쾌락에 취하게 되며 또다시 새로운 쾌락을 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바로 사용하는 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그러므로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재물)을 낭비도 말고 재물이 많다하여 허영과 교만하게도 굴지 말고 순수하게 양심을 바로 가지고 하나님의 선물인 재물을 깨끗하게 사용하라”하였다. 칼빈은 신명기 11:15;12:15;22:5을 재료로 한 설교와 사무엘상 25:36-43; 아모스 6:4; 약5:5; 이사야 3:16의 주석 등에서는 성도의 거룩한 생활이란 어떤 육체적 기능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주신 선물을 거절하는데 있지 않고 그것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사용하는데 있다고 했다.
3. 노동의 대가로서의 재물
성경에서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직결되어 있다. 노동은 하나님의 섭리과정에 있어서 합목적적인 것이며 인류문화 건설에 있어서는 필수적 요건이 되어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문화건설을 명령하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문화를 건설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노동명령을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노동의 대가를 받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살후3:10)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창조 6일째에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문화건설의 사명을 주신 대목이다. 이것은 또한 인간에게 노동의 의의와 인간의 존재가치를 부여하신 장면이기도 하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문화를 건설케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인간창조의 목적을 암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과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이 일치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은 첫째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하여, 둘째로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히 하나님을 기뻐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고전 10:31; 롬 11:36; 시 73:25-28; 욥 1:20; 합 3:17-18)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문화건설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노동행위에 의하여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문화건설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노동행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노동행위를 함으로써 인간에게는 참된 보람과 기쁨이 있게 되는 것이다. 에덴의 시절에는 이 같은 보람과 기쁨 그 자체가 노동의 대가를 얻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전 3:10-13) 인간의 노동의 대가는 문화 그 자체이며 문화의 혜택을 누리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인류문화의 필수요건은 인간의 노동행위이며 인간의 노동행위의 효과는 문화건설과 문화를 누리는 혜택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당시에 이미 그렇게 되도록 복되게 하신 사실이다. 우리는 이같은 사실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일반 은총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위대하심을 나타내며 문화를 건설해야만 하는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을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한 노동행위는 신성한 것이며 존엄한 것이며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는 것이다.
본래 에덴에서의 아담의 노동행위는 단순히 먹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에덴에는 생계를 위한 양식이 풍족하였다. 대가를 바라보고 노동하는 그런 형편은 아니었다. 다만 아담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순응하여 노동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낙을 누리면 행복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에덴에서의 노동은 보수라든지 대가를 전제로 하는 상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수단은 아니었다. 다만 능력껏 하나님께 봉사(쓰임받음)하고 필요에 의하여 받는 순수행위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마에 땀이 흘러야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창 3:19)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보수 또는 대가라고 하는 상대가치를 추구하여 노동을 하게 되었다. 타락한 인간의 노동행위는 고통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일반은총인 것이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으리라”고 하는 것은 곧 노동의 대가로서 식물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성경은 가르치기를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셨다” (전 3:10),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3:13), “곡식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신 25:4), “품군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말라” (레 19:13)고 하였다. 성경은 분명히 수고한 자에게, 즉 일한 자에게 마땅히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여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은 또 가르치기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 12:13)하였다. 이것은 수고의 가치, 즉 노동의 가치와 그 보람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르치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사는 자에게 있어서는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시 127:2)라고 하였으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생의 수고, 즉 노동의 대가의 가치는 물질, 즉 재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 기독교인의 재물(재산, 금전)관리 문제
기독교인의 재물관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 중심 사상에 그 기초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 인간은 어리석은 부자의 예(눅 12:13-21)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중심 사상에 기초하여 자의대로 자기의 목적,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재물을 유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분명히 올바른 재물관리에 관하여 가르치셨다.
(1) 재물획득과 재물유용의 문제에 관하여
하나님의 십계명의 제8계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계명은 정당한 방법에 의하여 재물을 획득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목적이 아무리 선하다 하여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선하게 수익을 얻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선한 목적으로 선한 수단과 방법으로 수익을 얻은 재물 또는 금전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유용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쾌락과 허영과 사치를 위하여 낭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또한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다. (잠 21:17) 또한 성경은 구제를 강조하고 있다. (출 22:25; 레 19:10; 잠 11:25; 에 9:22; 마 6:22-24; 9:36; 10:2, 4, 31, ; 신 15:9-10)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에게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였다. (잠 19:17)
그러므로 성경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가르치고 있다. 먹고 마시며 낙을 누리며 사는 일이나 산업을 위한 사업경영에 있어서 인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문화건설의 사명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만 한다. 이 땅위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복지 사회를 건설하여 나아가기 위하여 재물을 획득하기도 하며 투자도 하여야 할 것이다.
(2) 하나님께 재물(헌금)을 바치는 문제에 관하여
기독교인의 헌물 또는 헌금 문제는 성경의 헌물제도에 준하여야 한다. 구약성경에서는 처음 난 가축의 새끼라든지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다. (출 23:19; 34:26) 특히 십일조 사상이 철저했다. (말 3:8-12) 신약성경에서는 대체로 자유로이 헌금을 했다(고후 9:5-7).
현재 교회들에는 헌금을 강요하여 억지로 헌금을 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교회에서는 부흥회라고 하는 이름으로 모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별미헌금이니 별미축복이니 하는 말을 사용하여 헌금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복채를 받아먹는 수법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헌금이란 어떤 사람의 공갈이나 강요에 의하여 바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올바른 방법대로 자유로운 인간의 의지로 하나님께 바쳐져야만 하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헌금의 필요성을 말하며 가르치고 있다. (고전 16:1-2; 9:7-14; 갈 6:6; 빌 4:10-20; 딤전 5:17-18) 구약성경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지파는 유업(분배)을 받지 못하고 제단에 바쳐진 것을 먹으며 살았다. 그러나 바쳐진 헌금이 제사장이나 레위지파가 먹고사는 생활의 수단으로만 쓰여진 것은 아니다.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데에도 쓰여졌다. (행 6:1) 그리고 성경은 성전건축이나 성전수축을 위한 헌물과 헌금도 하게 한다. (스 1:5-6; 2:68-69; 고전 3:12) 그리고 성경은 헌금을 바친 자가 복을 받는 다는 것을 또한 가르치고 있다. 마음으로 바친 자는 충성하도록 그들의 자원을 더욱 넉넉하게 하여 주신다고 하였다. (고후 9:6-11; 고전 3:11-15; 말 3:10) 고린도전서 16:2에서는 초대교회 때 매주 첫째 날에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었다가 연보하게 된다고 하였다. (고전 3:12-15) 가난한 과부가 교회에 바친 두 랩돈은 주님의 인정을 받았다. (막 12:42) 성경을 상고해 보면 사람이 하나님께 정성으로 바치는 일에는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가난하기 때문에 헌금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이론은 잘못된 것이다.
(3) 십일조에 관하여
십일조 사상은 구약성경 전체를 일관하고 있다. 특별히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말 3:10) 십일조는 하나님께 물질을 바치는 일에 있어서 최소한 기준이다.
성경은 말하기를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특별히 하나님은 인간의 소득의 모든 것과 열의 하나를 구별하여 놓고 십일조를 바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자라고 규정하셨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르치시는 큰 교훈이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그 은혜를 깨닫고 성별하여 하나님을 경외케 하시기 위한 제도가 십일조제도인 것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구약성경에 비하여 자유롭게 연보와 헌물을 바치게 되어 있지만 십일조헌금을 안 바쳐도 된다는 말은 신약성경의 그 어느 한 부분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신약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헌금에 관한 교사는 십일조 이상의 헌금을 바치는 자유로운 헌금사상이다. (행 2:44; 5:2) 성경은 말하기를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충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고후 8:2)고 하였다.
(4) 세금과 십일조에 관하여
나라에 대한 국민의 의무 중에는 세금을 바치는 문제가 있다. 국민이면 누구든지 그의 수입 중에서 소정의 세금을 나라에 바치게 되어있는 국법을 지키는 것이 국민된 도리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인 동시에 또한 지상나라 백성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에 십일조를 바치는 일과 세상나라에 세금을 바치는 이대의무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 22:21; 막 12:17; 눅 20:25)고 하셨다.
이상에서 기독교의 재물관은 한마디로 철저히 하나님중심 사상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성경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화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 1:21) 이것은 욥의 신앙고백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어야 한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으니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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