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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서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서론
(조석만 교수)
 
Ⅰ.  기독교 신앙과 신학적 분별
  혹자는 말하기를 신앙과 신학은 일치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신학은 무(無)의미 한 것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신학이란 신앙내용의 해석학이므로 신앙 없는 신학이나 신학 없는 신앙은 각각 괴리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과 신학은 반드시 일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계에 눈을 돌리게 되면 신앙과 신학의 일치 불일치의 분별적 인식 없이 무자각적으로 시대 조류에 편승하여 나가고 있는 경향을 보게 된다.
  이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분별 적인 인식이 선행되어야 함을 통감하는 바이다.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근본적인 분별은 정통과 비(非)정통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정통이란 역사적 기독교의 입장을 의미하며 비(非)정통이란 비(非)역사적 기독교의 입장을 의미하는 말이다.  기독교의 비(非)정통에는 기독교 자유주의 즉 기독교적 인문주의 또는 인문주의적 기독교와 신비주의를 비롯한 사이비 기독교가 있다. 
  그런데 정통과 비(非)정통의 논쟁에 있어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신학적 논쟁은 있어 왔지만 신비주의를 비롯한 사이비 기독교와의 신학적 논쟁은 없다.  자유주의는 신학적 체계와 논리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논쟁의 대상이 되지만 신비주의는 개인의 주관적 종교체험이나 신앙체험을 절대시하여 신학적 체계와 논리성을 결여하고 있으므로 논쟁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한 올바른 분별적 인식을 갖게 된다면 현대적 기독교의 혼탁한 사조 속에서 역사적 기독교와 비역사적 기독교의 신앙과 신학에 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1.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근본적인 차이점.
 

1) 보수주의(Conservatism)란?
사도적 역사적 기독교회의 성경신앙의 전통을 지켜 나아가는 정통적 입장을 의미한다. 전통(tradition)이란 역사적 사실을 전승 또는 계승하는 것을 의미하며 정통(orthodoxy)이란 똑바로 올바르게 계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전통주의 또는 정통주의라고 한다.  그러므로 전통은 정통이 되어야 하며 정통은 전통이 되어야 한다.
 

2) 자유주의(Liberalism)란?
  비(非)사도적 비(非)역사적 비(非)성경신앙적 기독교회의 입장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성경의 교리는 어떻든 어떻게 믿어도 좋으며 교리와 전통과 정통으로부터 또는 하나님과 성경과 교회로부터 자유롭게 또는 해방되어 보려는 입장을 의미한다.
 

3)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역사적 배경.
  보수주의는 하나님의 섭리 사에 의한 계시진리인 성경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주어진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세, 구약시대의 선지자들, 예수 그리스도, 사도들(초대 교회), 어거스틴, 칼빈, 종교개혁자들, 19세기 보수주의자들, 그리고 현재에로 연속되는 기독교회의 역사성에 근거를 두며 자유주의는 철학의 이성적 진리에 입각하여 있으며 고대 희랍철학, 르네상스, 근대철학, 기독교적 인문주의(인문주의적 기독교) 즉 근대주의, 그리고 현대에 이르는 비(非)기독교적 역사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4) 신앙과 신학
(1) 보수주의에서는 신앙과 신학은 불가 분리의 관계이며 성경으로부터 신조, 신조로부터 신학, 신학은 다시 성경에로 돌아간다고 하는 원칙에 의하여 신학을 논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어떤 개인 한 사람이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믿는 주관적 신앙이 아니며 신학은 어떤 개인 한 사람의 신학자가 자기 나름대로의 사상을 아무렇게나 표명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기독교회가 역사를 통하여 고백해 온 객관적 신앙을 기초로 하여 신학을 논하게 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2항에는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규준이다” 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이 신앙과 생활은 물론 신학에 있어서도 객관적 규준이 됨을 의미한다.
 

(2) 자유주의에서는 신앙과 신학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시키며 성경으로부터 신학이라는 직접적 방법에 의하여 신학을 논한다(신조 제거).  이 경우 신학에 있어서 신앙고백은 없다.  어디까지나 성경은 한낱 학문의 자료로만 사용될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신학자 개인의 주관적 신앙에 기초하여 자기의 사상을 자기 나름대로 표명한다.  이것은 성경을 규준으로 인정하는 전통적 입장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2. 근대신학사조
 

  기독교의 신학 사조는 고대 교부시대로 올라서 그 근원을 찾게 된다.  초기 기독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보면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바 기독교 교리에 대립하는 두 사상 즉 유대교적인 것과 영지주의적인 것이 있었다.  대체로 전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경향이었으며 후자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경향이었다.  그리고 이 두 사상적 경향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이성일인격과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관한 성경교리를 옹호하였던 기독교회의 정통적 입장이 있었다.
  이리하여 고대 기독교회에서는 많은 교리 논쟁이 있었다.  중세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교리 논쟁은 끝이지 아니하였으며 특히 로마 카톨릭교회의 스콜라철학 시대에는 신학과 철학을 동일시하는 경향으로 나가다가 16세기 종교개혁기에 이르러 스콜라철학은 쇠퇴하였다.  한편 문예부흥 운동에 의하여 기독교회 안에는 근대적 인문주의 사상이 침투하기 시작하여 기독교적 인문주의 근대사조가 그 모습을 들어내면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19세기에 이르러 근대적 인문주의 기독교 자유주의 신학체계를 갖춘 근대신학이 나타났다.
 

1) 근대신학과 현대신학의 구분.
  근대신학이라는 말은 현대신학과 연관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실, 근대신학이니 현대신학이니 하는 말은 비(非)정통적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신학 즉 근대적 기독교 자유주의 신학의 대명사이다.  신학적으로 근대주의란 근대신학의 사조를 일컫는 말로서 넓은 의미로는 19세기 슐라이엘막허 이후 현재까지의 모든 자유주의신학의 경향을 전체적으로 일컫는 용어이다.   사실, 근대라는 말은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시작되는 근대적 인본주의 세계가 현대까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현대를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으며 제한적 의미로는 제1차세계대전과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대전환 기와 더불어 과학 문명의 획기적 발달과 국제 정세의 급진적 변화의 시대인 20세기와 구별하여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시대를 가리키기도 한다.
  근대적 기독교 자유주의 신학사조를 대별하여 근대주의, 신근대주의, 후기근대주의로 3구분한다.  신학사적으로 근대신학과 현대신학을 구분함에 있어서는 제1차세계대전을 분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은 근대신학 사조시대이며 그 이후는 현대신학 사조시대이다.  따라서 현대신학을 전기 현대신학과 후기 현대신학으로 나누게 되는데 전자는 근대주의신학에 대하여 신근대주의신학 즉 20세기 초의 신정통주의신학의 경향을 의미하며 후자는 후기 근대주의신학 즉 20세기 후반의 급진신학(Radical Theology)의 경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급진신학은 세속화신학의 유형들로서 잡다한 신학적 명칭과 잡다한 양상을 가지고 있다.  희망의 신학, 역사의 신학, 과정신학, 사신신학, 상황윤리, 해방신학 등 아무데나 ‘신학’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면 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들로서 정통신학적 입장에서 평가할 경우에 과격신학 또는 반동신학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는 유형들이다.  다시 해방신학의 유형들을 열거하면 민중(해방)신학, 여성(해방)신학, 흑인(해방)신학, 농민(해방)신학 정치신학, 혁명신학 등 이른바 제3세계의 신학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다.
  정통주의 신학적 입장에서 평가할 때 급진신학(후기근대주의) 이전의 신정통주의신학(신근대주의)은 온건한 자유주의 신학으로 규정한다.  그 이유는 신정통주의신학은 정통주의신학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며 자유주의신학에 대해서는 수용적이기 때문이다.
 

2) 현대신학의 동향.
  유럽세계는 16세기 문예부흥 기로부터 18세기 계몽시대에 이르는 사이에 인문주의자들은 물론 인문주의적 기독교에서도 줄곧 종교에는 무관심해 왔다.  그런데 19세기 슐라이엘막허의 주관적 감정에 의한 신비주의 종교론이 나타나면서부터 인문주의적 기독교 사상계에는 종교적인 관심의 풍조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로의 관심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 경건의식에 의한 종교심리학적 체험과 관념적이며 사변적인 종교철학적 풍조를 이루었다.  그것은 정통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도전이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칼 바르트(Karl Barth)를 위시하여 신정통주의 신학운동이 일어나면서 종교보다는 하나님께로 관심이 나타나기도 하였으나 각양 각색의 비(非)정통신학적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이리하여 현대신학을 어떤 고정적인 선에서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하고 분명히 규정지어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모든 사상이 어떤 사조를 따라 형성되듯이 신학사상도 어떤 신학 사조를 따라 그 지류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대체적으로 몇 가지 경향성이 있게 마련이다.
  우선 현대신학의 역사적 분기점인 제1차세계대전의 직후에 시작되었던 신정통주의신학의 양상을 보면 칼 바르트의 초역사적 계시신학적 입장을 비롯하여 에밀 부른너의 자연계시신학적 입장, 루돌프 불트만의 비신화화의 신학, 프리드릭히 고가르텐의 세속화신학, 폴 틸리히의 문화신학 등이 나타났다.  이 모든 신학적 입장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의 인본주의적 기독교 신앙과 신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을뿐만 아니라 일반문화, 사회, 정치 이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 왔다.
  20세기 후반의 후기근대주의 경향에는 몰트만의 ‘희망신학’(1964)을 비롯하여 플랫쳐의 ‘상황윤리’(1966), 알타이져와 헤밀톤의 ‘사신신학’(1966), 하비콕스의 ‘세속화 도시’(1975), 죤 콥의 ‘과정신학’(1976) 등의 저술들이 등장함으로써 현대신학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되었다.
  세속화신학은 기독교의 토착화의 문제를 잇슈로 하여 민속전승적 문화의 다른 종교와의 대화의 길을 열어 놓고 종교다원주의적 경향으로 나아가는 한편 사회개혁 혹은 사회혁명의 명목으로 인간 해방운동을 전개하여 나아갔다.  우선 종교적으로는 신으로부터, 성경으로부터, 교리로부터, 교회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며 다른 면으로는 정치적 억압을 받으며, 사회적 부조리로 인한 인간 차별을 받으며, 경제적 빈곤으로 고통 당하는 계층을 해방하기 위하여 투쟁 운동을 확산시켜 나아갔다.
  이 같은 풍조는 포괄적으로 말해서 사회운동의 경향으로서 WCC의 최대 관심사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WCC 안에는 이 같은 국제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 기관으로서 ‘국제 문제 및 인종차별투쟁교회 위원회’(The Commission of the Churches on International Affairs and the Program to Combat Racism)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여러 정책결정기관 중의 하나인데  WCC총회의 폐회 기간에 실제적으로 활약하는 기관이다.  WCC는 이미 1975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개최되었던 제5차 총회에서 해방신학을  WCC신학으로 정식으로 채택한 바 있는 것을 보아서도  WCC에서는 인간해방의 문제에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한편 오늘날 20세기 후반의 후반기에 해당하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유독히 한국에서 종교다원주의의 논쟁의 열기가 매우 뜨겁게 달아올랐던 사실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소급하여 올라가서 1980년대 초에 변선환 교수의 교회 안과 밖에서 구원론이 한국 교계에 큰 논란거리가 된바 있었는데 1990년대 초에는 보다 강력한 논쟁으로 발전하여 나타났다.
  그밖에 또 한편으로는 뉴 에이지 운동을 들 수 있다.  이 운동은 외적으로는 어떤 모양새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모든 분야의 저변에서 확대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어떤 고정적인 조직망도 없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인간의 정신 속을 파고드는 매력이 있다.  이 운동은 명칭 그대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의식’을 갖게 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이 운동은 세계를 하나 되게 하려는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이 운동의 기본 사상은 ‘만물은 하나이며 신이다’라는 것이다.  만물이 하나이므로 세계도 하나이며 종교도 하나이며, 만물이 신이므로 인간도 신이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뉴에이지 운동’은 세계가 하나 되게 하는 변혁을 일으키기 위하여 정보사회의 모든 매체를 이용하려고 한다.  종교, 사상, 사람, 봉사, 과학, 그리고 각종 기관들을 상호 연관시켜서 무수한 연락망(networks)에 의하여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있다.  WCC와 같은 세계일치운동은 철저한 조직을 통하여 외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New Age의 세계일치운동은 무조직으로 문화 전반에 걸쳐서 저변 활동을 벌려 나가고 있다.
  유사 이래로 오늘날과 같이 인간의 정신세계가 혼탁하고 혼돈하고 혼동하고 혼미한 시대는 일직이 없었다.  온통 인간중심주의 사조 속에서 각양 각색의 물질 세계의 삶과 관계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만이 최대 최고의 관심사로 되어 있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 중심의 영적 세계 혹은 정신세계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관계로부터 출발하는 세계와 역사와 인생의 가치관 확립에 관한 문제라든지 하나님 중심의 교회 건설과 하나님 중심의 문화 건설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몹시 둔감해져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오늘날 우리는 인본주의의 극치를 향하여 줄달음치고 있는 최후의 현상을 보고도 여전히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것이 있는가 볼찌어다”(렘애1:12)
 
 
 
Ⅱ. 대신의 신앙과 신학의 본
 

  대신(大神)은 교단의 선언문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장로교회이며 개혁파교회이며 프로테스탄트 정통교회이며 복음주의 교회이다. 개혁파교회의 신앙이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주권신앙이다.  이것은 개혁파교회의 신앙과 신학의 골격이다.  칼빈은 이 하나님의 주권교리를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에서 명쾌하게 논술하였다.  16-17세기의 모든 개혁파의 신조들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준하고 있다.
  개혁파의 권위 있는 신조들을 든다면 제1스위스 신조(1536), 프랑스 신조(1559), 스코틀랜드 신조(1560), 벨직 신앙고백서(1561), 하이델베르그 신조(1563), 제2 스위스 신조(1566), 돌트 신조(161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17세기 이래로 개혁파교회의 기준 문서로 확정되어 있다.
  개혁파교회는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첫째 규준으로 믿으며 신앙고백서를 두 번째의 규준으로 믿는다.  신앙고백서를 제2 규준으로 믿는 것은 신앙고백서가 성경교리 그대로 체계적 항목으로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혁파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은 철저하게 성경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고 성경의 무오성과 절대 권위를 믿었던 사도들의 신앙고백과 니케아 신조,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 칼케돈 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의 입장을 지켜 나아가는 것이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정통신학의 고전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것은 사도 신조를 비롯하여 위에 열거한 기독교회의 고전적 기본 신조에 명시하고 있는 신앙적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회의 정통성 또는 전통성은 성경의 모든 교리를 믿는 모든 기독교회가 기독교회사를 통하여 일관성 있게 지켜 나아가고 있는 신앙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혁파교회의 신앙적 입장을 프로테스탄트 전통 혹은 정통주의 혹은 보수주의라고 일컬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파교회의 신학은 성경과 신앙과 신학이라는 삼원칙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개혁파교회의 신학적 특징은 어떤 개인의 신앙을 학적으로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정통기독교회의 신앙고백을 학문적으로 석명(釋名)하는 것이다(본 교단 선언문 <교리> 제5항 참조).  성경해석에는 문화적, 역사적 해석 등 여러 가지 인문학적인 고찰도 필요하지만 성경을 전적으로 믿지 않고는 성경의 올바른 뜻을 알아 낼 수 없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개혁파신학에서는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한다.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신학은 결국 올바른 기독교회의 신학이라 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의 성경해석에 의하면 성경의 기록에 오류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학문의 지식이나 어떤 신학자 개인이 자기의 상상력으로써 성경을 임으로 핵석하거나 임의로 q변역 하기도 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기독교회가 역사를 통하여 고백해 온 정통적 신앙고백서를 무시하고 성경으로 직접 신학을 논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교리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교리>라고 하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이 같은 사람들을 우리는 자유주의 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리로부터 즉 성경의 권위로부터 혹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교리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보려는 의지를 갖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가르침 즉 성경신앙의 교리에 입각하여 있다.  그것을 우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서에서 밝히고 있다.  대신(大神) 교단의 (헌법) 첫 머리의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회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칼빈주의 개혁파교회의 신학의 체계에 있어서 성경, 신앙고백, 신학이라는 3원칙을 가지고 즉 성경으로부터 신앙고백, 신앙고백으로부터 신학이라는 원리에 입각하여 신학을 논하며 수립해 나아가는 것이다.
  학문이란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인데 그릇된 관점을 제시하게 되면 그릇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반대로 올바른 관점을 제시하게 된다면 올바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어떤 학문이든 인류문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신학도 마찬가지로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폭 넓은 분야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16세기 이래로 인문주의 학문의 영향과 종교개혁자들의 학문의 영향은 근대세계의 2대 산맥의 역할을 하였고, 19세기 후반의 역사적 비평적 성경연구법은 성경의 무오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20세기 초의 세속화신학의 경향은 사회 운동에 크게 영향을 미친 사실을 보게 된다.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적 성경해석은 기독교의 이질화 혹은 종교혼합의 경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길잡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성경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파신학은 어디까지나 기독교회의 정통성을 지켜 나아가는 일에 있어서 올바른 성경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http://cafe.daum.net/Creed/6xB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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