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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진정한 목회자상

진정한 목회자상
조석만교수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목회자상”이라면 우선 교회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교회에 관하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5-30장에서 규정하고 있다.  거기서 참된 교회의 모습을 세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신,구약성경)이 바로 설교되는 교회요 둘째로, 성례전이 바로 집행되는 교회요 셋째로, 신자의 권징(훈련)이 바로 시행되는 교회이다.  이 셋은 프로테스탄트 정통교회의 진정한 교회의 표지(標識)로서 지상교회의 참 모습이다.
 
  지상교회는 악과 싸우는 교회요, 비진리와 싸우는 교회요, 세상과 싸우는 교회인 동시에 승리해 나가는 전투적 교회이다(계 2장, 3장, 고전5:6-7).  하나님은 이 같은 교회를 세우심에 있어서 진정한 목회자를 요구하신다.
 

1. 진정한 기독교회
 

  진정한 기독교회란 프로테스탄트 정통교회를 이르는 말이다.  이 교회는 16세기 기독교회 개혁자들의 정신에 입각한 진정한 성경적 개혁파 교회를 의미한다.  개혁파교회는 칼빈의 기독교 개혁정신에 입각한 정통적 복음주의 교회이다. 
 
  칼빈은 신과, 기독관, 구원관은 물론이고 교회 제도 및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분명히 하였다.  루터파교회는 멜랑히톤의 영향을 받아 신인협력설로 기울어졌고 후에 예정론을 버리고 만인구원론에 떨어지고 말았다.  루터주의는 신앙칭의를 강조하였으나 그 근본 원리는 주관적, 인간학적 종교의 영역을 철저하게 탈피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에 반하여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 원리를 강조하여 보다 객관적 신학적 원리를 발전시켜 나갔다.
 
  기독교에 있어서 개혁이란, 수선(修繕)이나 개선(改善)의 의미가 아니라 초대 기독교회의 참된 성경적 신앙의 교회로 돌아가는 복귀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  그 근본원리는 첫째로, 성경의 절대권위(형식 원리)요, 둘째로, 성령의 독점적 은총의 활동(실질 원리)이요, 셋째로, 만인사제(만인이 하나님과 직통함)이다.  이 셋은 정통적 기독교회의 복음주의 신학의 실질 원리를 확립하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셋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역에 의하여 죄인이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어 신앙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원리이다.  이 원리는 칼빈주의 5대강령에 표현되어 있다.  칼빈주의는 전적 타락, 무조건 선택, 제한적 속죄, 불가항력적 은총, 성도의 견인과 구원의 확신에 관한 교리를 확립하였다.  이에 정통적 복음주의 교회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 신앙을 토대로 하고 있다. 
 
  하나님 주권 사상은 예정신앙, 즉 섭리 신앙을 낳는다.  프로테스탄트 정통교회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말씀 중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중심의 신앙적 생활을 실천하여 나가는 것이다.
 

2. 진정한 기독교회의 진정한 목회자상
 

  진정한 기독교회의 진정한 목회자상은 대체로 다섯 가지 면에서 집약해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주권 신앙이 철저한 목회자,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목회자, 예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 가르치는 자로서의 목회자, 예수님의 3직 대행자로서의 목회자라야 할 것이다.
 

1) 하나님의 주권 신앙이 철저한 목회자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자기를 복종케 하는 목회자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주권은 이사야(사64:8)나 예레미야(렘18:2-6)나 바울(롬9:21)이 말한 바와 같이 토기장이의 이야기에서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라”고 한 것을 이사야서에서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전적으로 복종하심으로써 구속사역을 이루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소극적으로, 적극적으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권 신앙을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의 주권 신앙을 가진 목회자는 매사에 있어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는 목회자이다.
 

2)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목회자
 
  제자란 말은 ‘따르는 자’라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본 받는 자’라는 의미도 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고 했다.  왜냐하면 바울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자가 되려면 우선 예수님의 제자로서 손색이 없어야 한다.  마태복음 8:19-22에서 한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라 가겠다고 할 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거절하셨고,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말하기를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소서”했을 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여기 머리둘 곳이 없으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는 제자, 그가 바로 정통적 기독교회(개혁파교회)의 목회자이다.
 
  예수님의 인기가 한창 상승하는 기미를 알고 간사스럽게, 야비하게 접근하는 교활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유리한 방법으로 저 편리할 때로 사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예수님으리 따라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는 세속적인 헛된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성직자의 모습을 갖추어야만 할 것이다.
 

3) 예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사도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롬1:1, 갈1:10, 빌1:1, 딛1:1)이라고 하였으며 야고보도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약1:1)라고 했으며, 사도 베드로도(벧후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시몬 베드로”라고 했다.  그리고 사도 요한도 자기를 “종 요한”이라고 말했다.  종이라고 하는 것은 주인의 소유물이요, 주인에게 복종하여야만 되는 존재이다.  종이 주인에게 복종하는 데에는 겸손과 봉사와 희생적 행위가 따른다.  성경에서 보면 종의 형상은 겸손과 봉사와 희생이라고 하는 3요소로 되어 있다.
 

(1) 겸손
 
  참된 겸손의 의미는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바 “명령대로 행한 후에도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눅17:10)고 하신 그대로 행하는 자이다.  또한 이사야 53장에서 볼 수 있는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2-3절)라고 묘사된 부분에서 지극히 겸손하신 예수님의 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2) 봉사와 희생(고후11:23, 사53:2)
 
  바울의 봉사정신은 동양적인 사상 혹은 불교나 이교적 인과응보 사상과 같은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초자연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희생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봉사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행위를 의미한다.  로마서 5:7-8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대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였느니라”고 하였다.  이것은 허영심이나 명예욕이나 물질욕으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나 인과응보의 사상에 의하여 선을 추구하는 행위와 달리,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순결하게 희생하는 가장 고귀한 삶의 자세인 것이다.  옛 선인들의 신앙생활은 대단히 청렴결백한 청빈생활이었는데 오늘날의 지도자들은 너무나 과욕하고, 사치스럽고, 허영스럽다.
 

(3) 종은 주님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자각하여야 한다.
 
  로마서 14:7-8에서 보면 “우리들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칼빈은 이 같은 사실에 관하여 그의 [기독교 강요] 제3권 7장 1절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주님께 무조건 순종해야 된다”라고 하였다.  주님의 종이 된 자는 인간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종이 된 자는 주님을 떠나서 주님을 거역해서는 못사는 법이다.
 

4) 가르치는 자로서의 목회자
 
  건전한 교회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쳐야 하고, 둘째로 하나님께 대한 바른 예배행위가 있어야 하고, 셋째로 신자의 훈련(권징)이 바로 실시되어야 한다.  잘 가르치는 교회로서 가르침을 잘 받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신자의 훈련 또는 권징이 바로 행하여져야 한다.
 
  목회자는 무엇보다 우선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만 한다.  에스겔서 2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에스겔에게 말씀하시기를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찌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찌어라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찌니라”(6-7)고 하셨다.
 
  칼빈의 신앙고백서 제20항목 [하나님의 말씀에 쓰임 받는 사람으로서의 목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히 쓰임 받는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양 무리를 양육하며, 말씀으로 가르치며, 설득하며, 권위하며, 견책하는 동시에 그릇된 교리와 사탄의 속임수에 대항하며, 순수한 성경의 교리를 자기의 꿈이나 환상이나 자기 도취의 어리석은 생각과 혼동하는 사람을 우리는 교회의 목사로 믿을 수 없다.  우리는 자기가 위탁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며, 치리하며, 지도하는 일 외에 또 다른 권능이나 권위를 목사에게 돌릴 수 없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서만 명령하며, 거부하며, 약속하며, 권위와 권능을 가진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목사는 맡겨진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없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진실히 쓰임 받는 목사를 하나님의 사자 또는 사신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목사에게서 듣는 것을 마치 하나님에게서 듣는 것처럼 듣지 아니하면 안 된다.  목사의 직무는 하나님에게서 위탁(위임)한 교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직무임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우리는 의혹을 품게 하는 모든 일과 거짓 선지자와 복음의 순수성을 버리고 자기 멋대로 지어낸 말을 하는 사람을 목사라고 인정할 수 없으며, 지지할 수 없으며, 참고 견딜 수도 없다.  차라리 그러한 자는 하나님의 백성에 의하여 축출 당해야 하며,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한 자를 노략질하는 이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칼빈은 건전한 교회 건설을 위하여 신앙 교육을 실시했는데, 그 재료로서는 교리문답서였다.  16세기 이래로 정통적 기독교회에서는 신앙 교육을 위하여 성경을 보다 쉽게, 체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의 교리를 가르쳐 왔다.  개혁파교회에는 웨스트민스터 대, 소요리문답서가 있다.  그리고 보다 수준 높은 교육을 위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채용하였다.  정통적 기독교회의 교육을 위한 가장 훌륭한 기본적인 교리문답서와 신앙고백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것을 교회교육 재료로 한다는 것은 교리적 기준(표준)이나 교육 이념이 없는 마구잡이 식의 교회 교육인 것이다. 
 
  철저한 기독교적 신앙 교육을 통하여 확실하고 올바른 성경신앙을 확립하고 참된 교회를 건설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의하여 가르치지만 그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교육 이념에 의한 교육 내용이다.  교육 이념에 의한 교육 내용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교육의 성패가 결정되는 법이다.  교육방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교육 이념에 의한 교육 내용이다.
 
  교회에서 설교를 통하여 교육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어떻든지 설교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정통적 교회의 설교의 특색은 교리적 설교이다(사까기바라 저(著), 성서독해술(聖書讀解術)).  설교란 성경의 몇 장 몇 절부터 몇 장 몇 절까지의 의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여 가르치는 것이다. 교리란 성경의 체계적 진리를 말한다.  즉 성경은 진리의 교리와 무관할 수 없고 성경을 떠난 교리란 있을 수 없다.  성경을 잘 가르치려면 철저하게 교리(성경)를 가르치지 아니하면 안 된다.
 

5) 예수님의 삼직(三職) 대행자로서의 목회자
 
  삼직이란 제사장직, 예언자직, 왕직을 의미한다. 목사는 다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삼직(三職) 대행의 임무를 다하여야 한다.  마태복음 28:19에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셨고 요한복음21:15-17에서는 “어린 양을 먹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들 성경 구절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요, 종들인 자에게 부여하신 삼직 대행의 임무를 뜻하는 것이다.
 
  칼빈의 <신앙안내서> 제30장 <교회의 목사와 그 권위>라는 제목에서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목사는 공적으로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순수한 교리로 가르치며, 선한 모범을 보이며, 모든 사람에게 거룩하고 순결한 생활을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 같은 훈련과 질서를 경시하는 자는 사람에게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해서도 악을 행하는 자이다.  아니, 이러한 자는 이단자로서 교회의 공동체로부터 물러나야 한다(마18:15-17).  교회가 이 같은 직무를 떠나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이는 주님께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10:40, 요13:20)고 말씀하신 대로 중대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목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주님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거절하는 것은 주님을 거절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목사는 주님으로부터 특별할 훈령(訓令)을 받은 자이다.  주님은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고 약속하셨다.
 

  시대적으로 어려운 때를 만났다.  사이비 기독교의 세력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분명한 정통적 기독교회의 목회자상을 확립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이 시대에 대하여 신앙적 통찰력을 가지고 대처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http://blog.daum.net/kkho1105/8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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