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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양심적 병역거부 어떻게 봐야 하나

특별기고 / ‘양심적 병역거부’ 어떻게 봐야 하나 - “병역거부 허용은 종교적 특혜”
희생 따르는 의무징병제 정당한 국가요구 정의실현 위해 수행해야
 
최근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문자 그대로 신봉하고 따르는 ‘여호와의 증인’이 군복무를 거부한 사건을 놓고 한 지방법원은 무죄판결을 내린 반면 세 곳의 다른 지방법원은 유죄판결을 내림으로써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급기야는 대법원이 개입하여 지방법원의 판결을 잠정 중단시키고 직접 판결에 나서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까지는 전통적으로 유죄판결을 내려왔던 이 사안에 대하여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리게 된 것은 최근의 급격한 사회변동과 무관하지 않다. 그동안 6·25 세대가 차지했던 한국 사회의 주류는 이 세대가 고령화로 인하여 무대로부터 물러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대에 의하여 교체되기 시작했다. 새 세대의 특징은 여러 가지로 요약된다. 전란의 참상을 직접 체험해 본 일이 없는 점, 북한군보다는 미군이 보여준 한국 국민들에 대한 오만한 태도에 체험적으로 더 익숙해 있는 점, 공산주의와 자유주의가 대결하던 시대의 산물인 냉전적인 이념적 대립구도로부터 벗어나 있는 점, 사상적으로는 진보적이며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점 등이 이 세대의 특징을 형성한다. 이런 사회구성층의 변화는 정치, 경제, 문화, 도덕 등 사회전반에 걸친 변화를 추동시키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 정당이 야당으로 물러나고 다소 진보 성향을 보이는 정당이 여당으로 부상했고, 경제적으로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보다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다수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으며, 성전환자에게 호적을 부여하고, 동성애자들의 입지가 넓어지고 있으며, 이혼과 더불어 전통적인 가정의 해체가 급속히 진행되는 등 문화와 도덕의 다원화 및 상대주의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례에 대한 무죄판결은 이와 같은 사회변동의 한 표현이다.
여기서 우리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신앙의 자유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정당한가, 또한 특정한 실정법 하에서 살아가야 하는 기독 시민으로서 정당한 윤리적 행동인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절대적으로 살인을 금지시키는 계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계명은 개인이 개인적인 이유로 직접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행동을 금지시키는 계명으로서, 국가기관을 통하여 시행되는 살인 곧, 사형의 집행이나 정당한 전쟁에서의 살인까지도 금지시키는 계명은 아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보복을 하지 말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명령을 주실 때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서 원수는 하나님 자신이 친히 갚겠다고 약속하셨다(롬12:17-21). 바울이 ‘하나님이 친히 원수 갚는다’는 말을 하고 난 후에 곧 이어서 국가의 사법권을 예시한 것은 사법권을 통한 형벌의 시행이 하나님이 친히 원수 갚는 방법임을 말하는 것이다(롬13:1-7).
고의적으로 살인을 범한 자에 대하여 국가가 신중하고 정당한 재판절차를 거쳐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나,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방어를 위한 전쟁을 수행하거나, 불의한 폭력으로 고통받는 타국민을 폭력으로부터 해방시키거나 국제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공격전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이 부과하신 정당한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이와 같은 국가기관에 들어가서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반은총과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의 도구로 일하는 태도로서 정당한 것이며, 국가기관에 들어가서 임무를 수행할 때 기독교인은 사랑의 원리가 아닌 공정성의 원리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 기독교인은 국가기관 혹은 공적인 영역에서 공정성의 원리에 의거하여 일함으로써 사적인 영역에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삶을 가능케 하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임무를 수행한다. 기독교인이 국가기관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한 개인으로서는 마음에 깊은 아픔을 느끼면서도 국가가 정당하게 요구할 때는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때로는 사형집행이나 전쟁에서의 살인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이스라엘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때로는 단호하게 살인을 명령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국방의 임무는 국민의 큰 희생이 요구되는 임무다. 전쟁과 훈련의 속성상 신체적으로 가장 건강할 때 복무해야 하는데, 이 때는 한 개인의 성인으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기간이기도 하다. 한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간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국방의 임무는 생명을 담보로 잡고 수행해야 하는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임무이며, 미래를 위하여 창조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단순하고 소모적인 작업이다.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자원모병제를 채택할 경우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지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극히 예외적인 몇 개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의무징병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신앙양심의 이유 때문에 군복무를 거부하는 행위를 평가할 때 바로 이와 같은 국방의 의무의 속성을 고려에 넣어야 한다. 만일 군복무가 오늘날의 미국이나 옛날의 로마시민들의 경우에서처럼 국민의 권리로 인식되어서 자원병에 한하여 주어지는 것이라면 병역거부와 같은 문제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양심상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아예 군복무신청을 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복무가 희생이 요구되는 의무징병제일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첫째로, 희생이 요구되는 의무징병제도 하에서 병역거부를 허용해 주는 것은 거부자에게 특혜를 베푸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가 특정한 종교를 신봉하는 자로 하여금 종교활동을 하지 못하게 통제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그에게 특혜를 허용하는 것도 공정성의 원리에 따라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국가의 본질적 성격에 어긋나는 관행이다. 기독교인의 윤리적 실천이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라면 기독교인은 오히려 희생이 요구되는 군복무에 솔선수범하여 응해야 한다. 기독교인은 국가기관이나 군 내부의 고위직에 근무하는 사람에게 청탁을 하거나 아니면 체중조절과 같은 부당한 방법으로 군복무를 피해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만일 신앙의 양심상의 이유로 끝까지 군복무를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국가는 국가의 정당한 법적 요구에 불응한 행위에 대하여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군복무에 뒤따르는 희생에 상응하는 희생을 거부자에게 부과함으로써 공정성의 원리를 실현해야 한다. 그것은 형벌의 시행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군복무만큼 희생이 요청되는 어떤 다른 임무를 부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때 이 다른 임무는 그 희생의 정도가 군복무와 최소한 상응하거나 아니면 군복무보다 더 무거운 것이어서 다른 국민들이 군복무 대신에 이 임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지 않을 정도의 것이라야 한다. 동시에 이 임무는 거부자의 내면적인 신앙의 자유를 부당하게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셋째로, 한 국가가 외적의 침입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고, 생명의 희생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온 국민이 인정할 만큼 분명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리하여 국민의 희생이 국민이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될만한 정도라면, 의무징병제 하에서라 할지라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공익근무와 같은 조치를 통하여 대체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여전히 세계에서 중무장한 수백만 명의 군 병력이 첨예하게 대치해 있고, 언제든지 대량살상전이 발발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군복무의 희생이 너무 크기 때문에 병역거부를 인정하기가 어렵다. 이때 끝끝내 신앙양심의 이유 때문에 병역을 거부하려면 국가의 제재는 흔쾌히 받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신앙을 지키는 길이 편할 수만은 없다. 때로는 순교가 요구되기도 하는 것이 신앙의 길이다.
더하여, 건전한 시민의 의무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종교가 있다면 이때는 그 종교가 과연 정당한 종교인가, 혹시 광신적이고 사회에 폐해를 끼치는 종교는 아닌지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끝>

김은홍 기자 등록일 2004-06-07
http://blog.daum.net/kkho1105/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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