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윤 명예총장 은퇴기념 논문집
신복윤 명예총장 은퇴기념 논문집
칼빈의 신학과 한국교회의 과제>-신복윤 명예총장 은퇴기념 논문집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2
우리는 모두 남송(南鬆) 신복윤 교수님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적 진실은 남송이 가진 총체적 모습과는 상당한 간격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 거리감을 어떻게 좁히며, 이 틈새를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물론 “틈새를 어떻게 메울 수 있는가?”하는 질문 보다 “왜 메워야 하는가?”하는 질문은 선
행한다. 틈새를 메울 필요성을 느낄 때, 메우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왜 메워야 하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나 쉽다. 왜냐하면 남송은 우리가 제대로
알 가치가 있는 분이시며, 우리 모두가 지금이라도 그를 더욱 더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송을 더 알고 싶은 이유는 분명하다. 모든 사람들이 남송을 ‘신사’라고 말하고, ‘영
국신사’라고 말하며, 유영기 교수는 한 수 더 떠서 ‘영국신사 보다 더 영국신사다운 분’이라
고 말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김준곤 목사님 보다 더 잘 말한 분이 없다. “신복윤 박사님은
보기 드문 미남에다 키가 크고 청아하며 품성과 언행이 고상하여 풍기는 인상이 모두들 첫
눈에 영국신사 같다고들 했다”(43쪽).
그렇지만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남송은 신사요 나아가 영국신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더욱 알기 어렵다. 게다가 영국 런던에는 안개도 많아 더욱 보기 어렵다. 신사는 늘 고
요하며 성질도 내지 않고 격정도 없어 우리는 그분이 참으로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그는 늘 모형적이고, 범사에 모범적이며, 어떤 실수도 하지 않는다. “그는 변함도 없고 회전
하는 그림자도 없다.”(약 1:17).
우리는 어떻게 남송을 더 깊이 알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신박사님의 사
모님에게 물어 보면, 아마 가장 신랄하고, 적나라한 모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의
고통에는 무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나 몰라라” 하는 결코 신사답지 않은 모습에 대해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인간적 모습 때문에 우리는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우리는 남송의 친구들과 동료들과 제자들의 말과 글을 통하여 그를 보다 가까이 그리고 전
체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인생의 정황 속에서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남송의 친
구, 동료, 제자의 프리즘에 비친 남송의 모습을 봄으로써, 그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
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한 면만 보고 있으며 그것도 대부분 평면으로 보고 있다. 그러
나 가까운 친구와 동료들은 더 깊은 인생의 굴곡 속에서 그를 보았고 그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오늘 남송의 친구들과 제자들이 바친 이 책에서 남송은 한 명의 인간과 신학
자로서 우리에게 선명하게 다가 오고 있다.
이 책의 기고자들은 한결 같이 남송을 사랑하고 있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귀한 글을 쓰셨
고 이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되었다.
책의 제목은 <칼빈의 신학과 한국교회의 과제>이며 크게 3부로 구성된다.
제 1부는 ‘신복윤 박사의 삶과 신학’을 다룬다.
첫 번째 글인 신복윤 박사의 연보 및 저작 목록은 그가 평생 쓴 글들을 색인 형태로 우리에
게 보여준다. 3번 항에는 ‘학술 논문 목록’이 있다. 여기에서는 남송이 <신학정론>에 쓴 글
로부터 시작된다(1983-2000). 이어서 바로 <신학지남>에 기고된 글(1959-1980)이 제시된다.
아마 합동신학대학원을 중심으로 제시하기 위해 연대기적 순서를 도치시킨 것 같다. 남송은
역사적으로 ‘총신’에서 사역을 시작하였으므로 <신학지남>의 글이 <신학정론> 앞에 오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어서 <기타 정간물>에 실린 글이 소개되는데 여기에 보면 <기
상>, <현대사조>, <현대종교>, <월간목회>, <성경과 신학>, <빛과 소금>, <목회와 신학>
등 다양한 정간물에 남송이 기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글은 남송이 친히 쓴 글로서 ‘교의학의 원천’이란 제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남
송이 평생 믿고 가르친 신학 사상의 진수가 여기에 있다. 그는 이제 ‘신학의 원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고 계신다. 이 글은 그의 ‘백조의 노래’처럼 들린다. 그 동안 보고 들은 어떤
글 보다 선명하며, 이제는 그의 사상이 눈으로 보듯이 뚜렷이 제시된다.
세 번째로 김준곤 목사님이 ‘나의 친구, 신복윤 박사’ 라는 글을 기고하셨다. 남송의 삶이 마
친 오래된 사진첩을 보는 것처럼, 상세하게 묘사된다. 신목사님이 김목사님의 주선으로 신혼
여행을 온양 온천 호텔로 갔으며, 그 때에는 “아무데서도 살 수 없는 오렌지 한 봉지를 미
군 PX에서 구하여 드린”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요나단과 다윗과 같은 우정을 여기에서
느낀다.
1부 마지막 글에서 김재성 교수가 ‘신복윤 교수의 조직신학과 한국 교회사적 의의’를 다루어
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박형룡 박사가 남송의 결혼 주례자였으며, 외국 유학의 길도 열어 주
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남송은 박형룡과 이렇게 역사적 연속성을 갖고 있지만, 정작 칼
빈주의를 한국교회에서 심화시킨 분은 남송임을 저자는 말해주고 있다.
남송의 삶과 신학을 다룬 후, 이어서 제 2부는 ‘칼빈의 신학’을 제 3부는 ‘한국교회의 과제’
를 다룬다. 그러나 2부와 3부는 내용에 있어서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 모든 기고자들이 2부
에서 ‘칼빈의 신학’을 다루면서 ‘한국교회의 과제’를 고심하고 있으며 3부의 기고자들 역시
‘한국교회의 과제’를 다루면서, 그 뿌리와 답을 ‘칼빈의 신학’에서 찾는다.
제 2부에는 8개의 글이 실려 있다. 첫 글인 한철하의 ‘칼빈신학과 신학공관’은 압권이다. 한
철하의 진수가 여기에 담겨 있다. 이 글이 여기에 담긴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여겨진다. 한
철하는 ‘기독교의 중심 진리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가 생각하는 ‘중심진리’
는 환원적은 아니다. 그는 기독교의 중심 진리를 칼빈을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요,
하나님께서 나를 종당에는 구원하여 주시어 영생을 누리게 하여 주실 것을 믿고 바라보는
신앙”으로 설정한다. 이 신앙은 ‘신앙의 각 조항들’(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재림 등)과
유기적으로 불가분리의 관계로 이어져 있으므로 “그 어느 한 조항도 무너지면 신앙의 중심
도 무너지므로 어느 한 조항도 등한시되지 않도록 보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73쪽). 그리고
현대 서양신학이 ‘이 중심 진리에서 이탈되어 있으므로’ 칼빈의 신학공관을 ‘온 세계신학계’
에게 전파할 것을 요청한다.
이어서 김재성은 “칼빈의 반삼위일체주의와의 논쟁”을, 박일민은 “생명윤리에 대한 칼빈주
의적으로 접근”을, 이승구는 “칼빈 신학에서의 코람 데오 사상”을, 안명준은 “21세기를 위한
해석자: 칼빈의 해석학에서 성령의 역할”을, 최홍석은 “칼빈의 신형상론”을, 황성철은 “칼빈
당시 제네바 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를, 김학유는 “복음서에 나타난 칼빈의 선교사상”
을 다룬다.
제 3부에는 윤영탁 교수의 “여호와의 종 엘리야”를 필두로 13개의 글이 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보면, 구약(성주진), 신약(박형용, 유영기, 조병수, 김정훈), 조직신학(송인규, 신현수),
교회사(김영재, 오덕교, 서요한), 설교 (박영선), 선교(문상철)의 관점에서 칼빈주의에 근거한
한국교회의 과제를 살피고 있다. 성서신학적 관점에서는 ‘언약신학’을 견지하면서, 구체적으
로 한국교회가 가장 당면하고 있는 ‘율법’과 ‘순종’의 현실적 문제(성주진, 송인규)와 ‘믿음과
행위의 문제’(신현수)를 신학적으로 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송인규는 “선악과 미스터리”를 조직신학과 윤리신학적 관점에서 수학문제를 풀듯이 흥미진
진하게 풀어간다. 어려운 라틴어 표현도 재미 있게 사용해 간다(posse non peccare [죄를
안 지을 수 있음], non posse non peccare [죄를 안 지을 수 없음], posse non peccare/non
posse peccare[죄를 안 지으려면 안 지을 수 있음], non posse peccare [죄를 지을래야 지을
수 없음]). 그는 ‘선악수’ 라는 새로운 신조어도 만들었다.
교회사에서 김영재는 “신사참배와 한국교회의 대응에 대한 반성”의 글에서 한국교회가 “정
작 신사참배를 교회적으로 회개하지 않으면서도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목숨을 바친 순교자
주기철 목사를 모시는 일에는 성의를 다하는 역사의식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음”을 잘 지적
하며 “지금이라도 신사참배의 역사에 대해 교파마다 교단마다 총회적으로나 연합적으로 회
개해야 함”을 촉구한다. 오덕교는 “뉴잉글랜드 청교도의 건국 이념”을 다루면서 한국교회의
고질병인 ‘분리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제시하며 우리의 배타적 자세를 견제하고 문화
변혁적 입장을 견지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여러 친구들과 동료들과 후학들의 눈에 비친 남송 신복윤은 개혁신학의 진수를 온 몸에 담
은 인격적 신학자로 비쳐지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 ‘여호와의 종 엘리야’가 되신 남송의 믿
음과 신학이 오늘 엘리사가 된 우리 후학들을 통해 다음 세대에도 이어져 가길 바란다.
본원 원장, 총신대 신대원 구약학 교수
http://blog.daum.net/kkho1105/6599
칼빈의 신학과 한국교회의 과제>-신복윤 명예총장 은퇴기념 논문집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2
우리는 모두 남송(南鬆) 신복윤 교수님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적 진실은 남송이 가진 총체적 모습과는 상당한 간격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 거리감을 어떻게 좁히며, 이 틈새를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물론 “틈새를 어떻게 메울 수 있는가?”하는 질문 보다 “왜 메워야 하는가?”하는 질문은 선
행한다. 틈새를 메울 필요성을 느낄 때, 메우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왜 메워야 하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나 쉽다. 왜냐하면 남송은 우리가 제대로
알 가치가 있는 분이시며, 우리 모두가 지금이라도 그를 더욱 더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송을 더 알고 싶은 이유는 분명하다. 모든 사람들이 남송을 ‘신사’라고 말하고, ‘영
국신사’라고 말하며, 유영기 교수는 한 수 더 떠서 ‘영국신사 보다 더 영국신사다운 분’이라
고 말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김준곤 목사님 보다 더 잘 말한 분이 없다. “신복윤 박사님은
보기 드문 미남에다 키가 크고 청아하며 품성과 언행이 고상하여 풍기는 인상이 모두들 첫
눈에 영국신사 같다고들 했다”(43쪽).
그렇지만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남송은 신사요 나아가 영국신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더욱 알기 어렵다. 게다가 영국 런던에는 안개도 많아 더욱 보기 어렵다. 신사는 늘 고
요하며 성질도 내지 않고 격정도 없어 우리는 그분이 참으로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
그는 늘 모형적이고, 범사에 모범적이며, 어떤 실수도 하지 않는다. “그는 변함도 없고 회전
하는 그림자도 없다.”(약 1:17).
우리는 어떻게 남송을 더 깊이 알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신박사님의 사
모님에게 물어 보면, 아마 가장 신랄하고, 적나라한 모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의
고통에는 무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나 몰라라” 하는 결코 신사답지 않은 모습에 대해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인간적 모습 때문에 우리는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우리는 남송의 친구들과 동료들과 제자들의 말과 글을 통하여 그를 보다 가까이 그리고 전
체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인생의 정황 속에서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남송의 친
구, 동료, 제자의 프리즘에 비친 남송의 모습을 봄으로써, 그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
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한 면만 보고 있으며 그것도 대부분 평면으로 보고 있다. 그러
나 가까운 친구와 동료들은 더 깊은 인생의 굴곡 속에서 그를 보았고 그 모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오늘 남송의 친구들과 제자들이 바친 이 책에서 남송은 한 명의 인간과 신학
자로서 우리에게 선명하게 다가 오고 있다.
이 책의 기고자들은 한결 같이 남송을 사랑하고 있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귀한 글을 쓰셨
고 이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되었다.
책의 제목은 <칼빈의 신학과 한국교회의 과제>이며 크게 3부로 구성된다.
제 1부는 ‘신복윤 박사의 삶과 신학’을 다룬다.
첫 번째 글인 신복윤 박사의 연보 및 저작 목록은 그가 평생 쓴 글들을 색인 형태로 우리에
게 보여준다. 3번 항에는 ‘학술 논문 목록’이 있다. 여기에서는 남송이 <신학정론>에 쓴 글
로부터 시작된다(1983-2000). 이어서 바로 <신학지남>에 기고된 글(1959-1980)이 제시된다.
아마 합동신학대학원을 중심으로 제시하기 위해 연대기적 순서를 도치시킨 것 같다. 남송은
역사적으로 ‘총신’에서 사역을 시작하였으므로 <신학지남>의 글이 <신학정론> 앞에 오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어서 <기타 정간물>에 실린 글이 소개되는데 여기에 보면 <기
상>, <현대사조>, <현대종교>, <월간목회>, <성경과 신학>, <빛과 소금>, <목회와 신학>
등 다양한 정간물에 남송이 기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글은 남송이 친히 쓴 글로서 ‘교의학의 원천’이란 제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남
송이 평생 믿고 가르친 신학 사상의 진수가 여기에 있다. 그는 이제 ‘신학의 원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고 계신다. 이 글은 그의 ‘백조의 노래’처럼 들린다. 그 동안 보고 들은 어떤
글 보다 선명하며, 이제는 그의 사상이 눈으로 보듯이 뚜렷이 제시된다.
세 번째로 김준곤 목사님이 ‘나의 친구, 신복윤 박사’ 라는 글을 기고하셨다. 남송의 삶이 마
친 오래된 사진첩을 보는 것처럼, 상세하게 묘사된다. 신목사님이 김목사님의 주선으로 신혼
여행을 온양 온천 호텔로 갔으며, 그 때에는 “아무데서도 살 수 없는 오렌지 한 봉지를 미
군 PX에서 구하여 드린”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요나단과 다윗과 같은 우정을 여기에서
느낀다.
1부 마지막 글에서 김재성 교수가 ‘신복윤 교수의 조직신학과 한국 교회사적 의의’를 다루어
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박형룡 박사가 남송의 결혼 주례자였으며, 외국 유학의 길도 열어 주
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남송은 박형룡과 이렇게 역사적 연속성을 갖고 있지만, 정작 칼
빈주의를 한국교회에서 심화시킨 분은 남송임을 저자는 말해주고 있다.
남송의 삶과 신학을 다룬 후, 이어서 제 2부는 ‘칼빈의 신학’을 제 3부는 ‘한국교회의 과제’
를 다룬다. 그러나 2부와 3부는 내용에 있어서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 모든 기고자들이 2부
에서 ‘칼빈의 신학’을 다루면서 ‘한국교회의 과제’를 고심하고 있으며 3부의 기고자들 역시
‘한국교회의 과제’를 다루면서, 그 뿌리와 답을 ‘칼빈의 신학’에서 찾는다.
제 2부에는 8개의 글이 실려 있다. 첫 글인 한철하의 ‘칼빈신학과 신학공관’은 압권이다. 한
철하의 진수가 여기에 담겨 있다. 이 글이 여기에 담긴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여겨진다. 한
철하는 ‘기독교의 중심 진리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가 생각하는 ‘중심진리’
는 환원적은 아니다. 그는 기독교의 중심 진리를 칼빈을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요,
하나님께서 나를 종당에는 구원하여 주시어 영생을 누리게 하여 주실 것을 믿고 바라보는
신앙”으로 설정한다. 이 신앙은 ‘신앙의 각 조항들’(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재림 등)과
유기적으로 불가분리의 관계로 이어져 있으므로 “그 어느 한 조항도 무너지면 신앙의 중심
도 무너지므로 어느 한 조항도 등한시되지 않도록 보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73쪽). 그리고
현대 서양신학이 ‘이 중심 진리에서 이탈되어 있으므로’ 칼빈의 신학공관을 ‘온 세계신학계’
에게 전파할 것을 요청한다.
이어서 김재성은 “칼빈의 반삼위일체주의와의 논쟁”을, 박일민은 “생명윤리에 대한 칼빈주
의적으로 접근”을, 이승구는 “칼빈 신학에서의 코람 데오 사상”을, 안명준은 “21세기를 위한
해석자: 칼빈의 해석학에서 성령의 역할”을, 최홍석은 “칼빈의 신형상론”을, 황성철은 “칼빈
당시 제네바 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를, 김학유는 “복음서에 나타난 칼빈의 선교사상”
을 다룬다.
제 3부에는 윤영탁 교수의 “여호와의 종 엘리야”를 필두로 13개의 글이 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보면, 구약(성주진), 신약(박형용, 유영기, 조병수, 김정훈), 조직신학(송인규, 신현수),
교회사(김영재, 오덕교, 서요한), 설교 (박영선), 선교(문상철)의 관점에서 칼빈주의에 근거한
한국교회의 과제를 살피고 있다. 성서신학적 관점에서는 ‘언약신학’을 견지하면서, 구체적으
로 한국교회가 가장 당면하고 있는 ‘율법’과 ‘순종’의 현실적 문제(성주진, 송인규)와 ‘믿음과
행위의 문제’(신현수)를 신학적으로 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송인규는 “선악과 미스터리”를 조직신학과 윤리신학적 관점에서 수학문제를 풀듯이 흥미진
진하게 풀어간다. 어려운 라틴어 표현도 재미 있게 사용해 간다(posse non peccare [죄를
안 지을 수 있음], non posse non peccare [죄를 안 지을 수 없음], posse non peccare/non
posse peccare[죄를 안 지으려면 안 지을 수 있음], non posse peccare [죄를 지을래야 지을
수 없음]). 그는 ‘선악수’ 라는 새로운 신조어도 만들었다.
교회사에서 김영재는 “신사참배와 한국교회의 대응에 대한 반성”의 글에서 한국교회가 “정
작 신사참배를 교회적으로 회개하지 않으면서도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목숨을 바친 순교자
주기철 목사를 모시는 일에는 성의를 다하는 역사의식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음”을 잘 지적
하며 “지금이라도 신사참배의 역사에 대해 교파마다 교단마다 총회적으로나 연합적으로 회
개해야 함”을 촉구한다. 오덕교는 “뉴잉글랜드 청교도의 건국 이념”을 다루면서 한국교회의
고질병인 ‘분리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제시하며 우리의 배타적 자세를 견제하고 문화
변혁적 입장을 견지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여러 친구들과 동료들과 후학들의 눈에 비친 남송 신복윤은 개혁신학의 진수를 온 몸에 담
은 인격적 신학자로 비쳐지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 ‘여호와의 종 엘리야’가 되신 남송의 믿
음과 신학이 오늘 엘리사가 된 우리 후학들을 통해 다음 세대에도 이어져 가길 바란다.
본원 원장, 총신대 신대원 구약학 교수
http://blog.daum.net/kkho1105/6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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