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윤리적 측면에서 본 자살
2009년 봄호(통권 298호) 기독교윤리적 측면에서 본 자살
이상원 교수(총신대 신대원 윤리학)
-삼손의 죽음에 대한 이해-
신학지남(298호)에서 이한수 교수와 이상원 교수가 동시에 자살에 대한 논문을 기고했다. 이한수 교수는 "성경신학적 측면에서 본 자살"을 이상원 교수는 "기독교윤리적 측면에서 본 자살"을 기고했다.
두 교수의 자살에 대한 견해는 대동소이하나, 삼손의 죽음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르다.
이한수 교수는 이상원 교수의 "정당화될 수 있는 규범적 근거"를 지닌다는 평가에 대해서 삼손의 죽음에 대한 이해를 거부한다(이한수, [신학지남, 289호], p. 35-36). 이한수 교수는 삼손이 하나님의 영이 떠난 상태에서 죽음을 당하였고, 죄의 결과로 인한 응보적 죽음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상원 교수는 280호에서 제시된 "자살과 교회의 대책"에 대한 논문을 다시 재고해서 작성된 논문임을 밝혔다(p, 55). 논문 제목은 "기독교윤리적 측면에서 본 자살"로 재조정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자살에 대한 정의, 심리학자들의 견해, 교회사적 의의 등과 더불어 성경의 사례들을 제시하였다. 성경 사례에서 사사기의 삼손의 예가 등장한다.
이상원 교수는 삼손의 죽음에 대한 폄하한 주석의 실례들을 제시하면서, 삼손의 죽음은 이기적인 죽음이 아니라, 사사의 소명에 의한 숭고한 죽음임을 제시하였다. 윤리적으로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회복의 증거라고 제시한 것이다(p. 68-69). 이러한 구약 주석으로 카알 델리취와 박윤선 주석을 제시하였다.
삼손의 죽음에 대해서 이한수 교수와 이상원 교수의 견해가 정반대의 견해가 대두되었다. 매우 국지적인 문제이지만, 삼손이 회복된 죽음이냐, 이기적인 죽음인가에 대한 결정을 사사기를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사사들이 비록 이상한 행동을 한 적이 있지만(입다, 기드온) 직무를 박탈당한 사사는 없었다. 삼손도 사사의 직무를 박탈되었다고 성경은 명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삼손의 죽음으로 블레셋의 다곤 신전을 무너뜨린 업적으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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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교수는 결론에서 자살이 6계명을 어긴 분명한 죄이지만, 신자의 구원에 대해서는 성경적 제시가 명시적으로 없다고 결언하였다. 저자는 칼빈의 주장이라고 것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구원의 긴박성을 주장하면서 글을 맺는다. 두 제시가 매우 모호하며 독자에게 미결정 상태로 이끄는 결론이다.
이상원 교수의 결론은 자살과 구원의 문제는 일방적으로 규정하지 말것을 제시한다(p. 76). 자살이 구원의 문제를 결정한다고 루터나 칼빈이 가르치지 않았으며, 개혁교회에서 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에서 자살이 '6계명을 어긴 살인 행위'라는 것을 강조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없다는 것이다. 목회적 돌봄을 통해서 자살을 방지할 것을 촉구하였다.
두 교수가 자살에 대한 구원론적 결정 구조를 회피하였다. 그것은 사회통념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자살이든지 자연사이든지 누구든지 사람의 구원의 문제를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자기에게 없는 생명결정권을 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현재에 만연한 정신적 질환(우울증)과 사회적 문제들에서 쉽게 발생되는 자살은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다. 중세시대의 자살은 명예를 위한 자살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자살은 명예가 아닌, 경제, 정신적 문제에 의한 자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를 위한 자살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생명으로 결정을 촉구하는 행동(금식, 자살)등은 비인격적인 것이다
http://blog.daum.net/kkho1105/3861
이상원 교수(총신대 신대원 윤리학)
-삼손의 죽음에 대한 이해-
신학지남(298호)에서 이한수 교수와 이상원 교수가 동시에 자살에 대한 논문을 기고했다. 이한수 교수는 "성경신학적 측면에서 본 자살"을 이상원 교수는 "기독교윤리적 측면에서 본 자살"을 기고했다.
두 교수의 자살에 대한 견해는 대동소이하나, 삼손의 죽음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르다.
이한수 교수는 이상원 교수의 "정당화될 수 있는 규범적 근거"를 지닌다는 평가에 대해서 삼손의 죽음에 대한 이해를 거부한다(이한수, [신학지남, 289호], p. 35-36). 이한수 교수는 삼손이 하나님의 영이 떠난 상태에서 죽음을 당하였고, 죄의 결과로 인한 응보적 죽음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상원 교수는 280호에서 제시된 "자살과 교회의 대책"에 대한 논문을 다시 재고해서 작성된 논문임을 밝혔다(p, 55). 논문 제목은 "기독교윤리적 측면에서 본 자살"로 재조정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자살에 대한 정의, 심리학자들의 견해, 교회사적 의의 등과 더불어 성경의 사례들을 제시하였다. 성경 사례에서 사사기의 삼손의 예가 등장한다.
이상원 교수는 삼손의 죽음에 대한 폄하한 주석의 실례들을 제시하면서, 삼손의 죽음은 이기적인 죽음이 아니라, 사사의 소명에 의한 숭고한 죽음임을 제시하였다. 윤리적으로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회복의 증거라고 제시한 것이다(p. 68-69). 이러한 구약 주석으로 카알 델리취와 박윤선 주석을 제시하였다.
삼손의 죽음에 대해서 이한수 교수와 이상원 교수의 견해가 정반대의 견해가 대두되었다. 매우 국지적인 문제이지만, 삼손이 회복된 죽음이냐, 이기적인 죽음인가에 대한 결정을 사사기를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사사들이 비록 이상한 행동을 한 적이 있지만(입다, 기드온) 직무를 박탈당한 사사는 없었다. 삼손도 사사의 직무를 박탈되었다고 성경은 명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삼손의 죽음으로 블레셋의 다곤 신전을 무너뜨린 업적으로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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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교수는 결론에서 자살이 6계명을 어긴 분명한 죄이지만, 신자의 구원에 대해서는 성경적 제시가 명시적으로 없다고 결언하였다. 저자는 칼빈의 주장이라고 것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구원의 긴박성을 주장하면서 글을 맺는다. 두 제시가 매우 모호하며 독자에게 미결정 상태로 이끄는 결론이다.
이상원 교수의 결론은 자살과 구원의 문제는 일방적으로 규정하지 말것을 제시한다(p. 76). 자살이 구원의 문제를 결정한다고 루터나 칼빈이 가르치지 않았으며, 개혁교회에서 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에서 자살이 '6계명을 어긴 살인 행위'라는 것을 강조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없다는 것이다. 목회적 돌봄을 통해서 자살을 방지할 것을 촉구하였다.
두 교수가 자살에 대한 구원론적 결정 구조를 회피하였다. 그것은 사회통념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자살이든지 자연사이든지 누구든지 사람의 구원의 문제를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자기에게 없는 생명결정권을 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현재에 만연한 정신적 질환(우울증)과 사회적 문제들에서 쉽게 발생되는 자살은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다. 중세시대의 자살은 명예를 위한 자살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자살은 명예가 아닌, 경제, 정신적 문제에 의한 자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를 위한 자살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생명으로 결정을 촉구하는 행동(금식, 자살)등은 비인격적인 것이다
http://blog.daum.net/kkho1105/3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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