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성경 해석학
리챠드 C. 갬불, 간결성과 용이성: 칼빈의 해석학의 이해를 위하여
칼빈의 성경 해석학 안명준
머리말
이 책은 1992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Th.M. 논문을(The Methodology of Brevitas and Facilitas as the Hermeneutic Principle of John Calvin) 부분적으로 번역하고 약간에 수정을 한 칼빈의 해석학에 관한 논문이다. 에드가(William Edgar) 교수의 엄격한 지도하에 완성을 보았다. 그를 비롯한 누슨(Robert D. Knudsen) 교수, 및 데비스(D. Clair Davis) 교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칼빈의 신학에 관한 연구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여러 분야로 연구되어 왔지만 해석자로서 칼빈은 깊이 있게 조사되지 않았다. 칼빈의 신학은 칼빈이 어떻게 성경의 본문을 해석하는지와 필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이 관계는 칼빈이 자신의 기독교 강요 서두에서 확고하게 설명한다. 한국 교회가 칼빈의 신학의 절대적인 영향속에서 성장해 왔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칼빈을 신학자 이전에 성경의 학자로서 또는 성경의 해석학자로서는 잘 이해하지 못한 실정이다. 결국 칼빈을 완전하게 이해를 못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칼빈의 해석학에 관한 본 논문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본 논문은 칼빈 이전의 해석학의 방법들에 대해 칼빈이 어떻게 비판 했는지를 연구했고, 특별히 종교 개혁 시대의 여러 개혁자들의 성경 해석학을 칼빈의 입장에서 다루었다. 논문을 시작할 때 좀더 창의적인 방법으로 쓰기 위하여 많은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칼빈의 핵심적인 성경 해석학 원리인 간결하고 용이한(brevitas et facilitas) 방법론의 구조와 방법론의 구성 요소들을 찾아 냈다. 칼빈의 해석학 방면으로는 최근의 이론이며 흥미가 있는 논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독자들을 돕기위해 지금까지 칼빈의 해석학에 관계된 참고 문헌을 모두 실었다.
간결하고 용이한 방법론은 목회와 신학에(1996, 4, 5) 실은 내용이기 때문에 앞에 있는 내용과 조금씩 중복되는 문장이 있고 목회자를 위하여 실제적으로 썼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부록으로 리챠드 갬불의 논문(Richard C. Gamble, Brevitas et Facilitas: Toward an Understanding of Calvin's Hermeneutic,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47, 1985, 1-17,)을 번역했다. 필자는 이 논문을 기초하여 현재의 논문을 발전시켰다. 끝으로 한국 칼빈학회에서 발표한 “칼빈 해석학 연구의 역사적 고찰”을 실었다.
끝으로 부족한 자에게 칼빈의 신학을 불어 넣어 주신 칼빈의 관한 대 신학자이신 南松 신복윤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안명준
목차
1. 서론
2. 칼빈 이전의 해석학
A. 교부들과 로마 카톨릭 교회의 해석학
1. 오리겐
2. 암부로스
3. 제롬
4. 어거스틴
5. 로마 카톨릭 교회
B. 종교 개혁 시대의 해석학
1. 에라스무스
2. 루터
3. 쯔빙글리
4. 멜랑톤
5. 불린저
6. 부쩌
3. 존 칼빈의 해석학 원리로서 간결하고 용이한(Brevitas et Facilitas) 방법론
A. 간결하고 용이한 방법론이란?
B. 간결한 방법론
1. 반 장황성
2. 축소성
3. 보존성
4. 관계성
C. 용이한 방법론
1. 반 강요성
2. 반 모오성
3. 반 억측성
4. 단순성
5. 적절성 혹은 자연성
6. 자유성
4. 결론
부록: 리챠드 C 갬불의 간결성과 용이성: 칼빈의 해석학의 이해를 위하여
(Richard C. Gamble, Brevitas et Facilitas: Toward on Understanding of Calvin's Hermeneutic,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47 (1986): 1-17)
안명준, 칼빈 해석학 연구의 역사적 고찰 - Brevitas et Facilitas 방법을 중심으로-
참고 문헌
리챠드 C. 갬불의
간결성과 용이성: 칼빈의 해석학의 이해를 위하여
I. 간결성과 용이성(Brevitas et Facilitas)
파커의1) 선구적인 책 칼빈의 신약 주석들 이후로 칼빈의 해석 방법론에 관하여 발표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은 파커의 연구 범위가 신약에 제한되고, 독자들로 하여금 그가 발견한 것들이 단지 학자적인 연구의 시작이라는 인상을 남겼다는 점에서는 좋은 상황이 아니다. 사실 그는 그 책의 서문에서 “현재의 책은 서문이다”2)라고 언급했다. 파커의 책은 제한된 범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철저한 연구를 위한 중요한 기초를 놓았다.
16세기 해석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칼빈의 해석 방법론을 재구성하는데 갖는 하나의 문제점은 그들이 멜랑톤의3) “Erotematum dialectices, de methodo"와 같은 작품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해석에 대한 서언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 문제점을 어렵게 만든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칼빈의 해석 방법, 즉 어떻게 그가 성경의 의미를 말하는지를 조사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 의미를 알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을 조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칼빈은 어떤 방법으로 자기의 주석을 썼을까? 이 질문에 대답을 말한 곳은 칼빈의 친구요 히브리어 교수였던, 시몬 그리내우스 (Simon Grynaeus)4) 앞으로 쓴 로마서 주석의 헌사에 나타난다. 거기서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둘이 생각했던 것은 해석자의 주된 목적은 분명한 간결성(perspicua brevitate)에 있다는 것이다. 그가 설명할 저자의 의도를(mentem scriptoris) 밝히는 것이 그의 의무이 기 때문에 그가 저자의 의도로 부터 벗어 날수록 더욱 더 그는 자기의 목적을 벗어나서 그의 목표로 부터 방황 할 것이다. . . 우리는 표현의 용이성을(facilitati) 위하여 노력하 며, 동시에 장황한 주석을(prolixis commentariis) 갖고 독자들을 방해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간결성을 사랑하는 것에서(amore compendii) 결코 움직 이지 않을 것입니다.5)
그 헌사는 칼빈이 그의 처음 주석을 소개 했을 때인 1540년에 출판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칼빈이 해석자의 목표가 성경 저자의 정신을(unfolding the mind of the Biblical writers)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목적이 성공하는 것은 독자들을 저자의 의미로 부터 멀어지게 하는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칼빈의 나이 30살에 말했던 해석 원리였다. 이 해석 이론은 그의 삶을 통하여 계속 되었을까? 1557년에 우리는 그의 시편 주석 서문에서 그 근본 원리가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말하기를:
가르침의 단순한 스타일을 위함과 모든 피상적인 것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나는 거의 대 부분 반박하는 일을 삼가한다. . . 나는 내가 침묵함으로써 독자들이 의심과 혼란에 빠지 는 것을 제외하고는 반대 의견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동시에 내가 훌륭한 자료를 많이 모아서 제시한다면, 많은 사람이 기뻐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세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알고 있다.6)
이것은 성경 저자의 정신을 밝혀야 한다는 언급을 제외하고 로마서의 서문에 언급된 동일한 방법론이다. 그러나 칼빈이 우리에게 준 부가적인 자료는 더욱 더 그의 해석학의 구조를 세우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칼빈이 자신의 가르치는 스타일을 단순하게 유지시킨 것과, 그가 16세기에 즐길 수 있는 여가로서 대적들을 반박하는 일에 일반적으로 절제 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 자료는 칼빈의 방법을 분석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대개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대적들과 논쟁에 뛰어드는 것을 거절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그 문제를 위해 그를 지지하는 의견들 까지도 제거한다. 예외가 있는 것은 반대 의견을 언급하지 않은 결과가 독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의문점을 갖게될 경우에 한하여 있었다. 친구나 또는 대적에게 대해 상세하게 조사하기를 제거한 것이 칼빈 해석 방법의 의식적인 역할이었다.
우리는 이런 간단한 조사로 부터 어떤 일반적인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대부분의 학자들은7) 칼빈의 해석학 방법론의 주된 특징으로 간결성과 용이성을(brevitas et facilitas) 인정한다. 칼빈은 그의 주석을 초보적인 학생들에게 이해하도록 썼고, 해석학의 원리로서 그의 토론을 본문에 제한시키며, 성경 저자의 정신을 밝혀주며, 여러 해석들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았다.
II. 무엇을 따르지 말아야 하나?
16세기에 따를 만한 해석적 모델이 전혀 없이는 않았다. 물론 칼빈은 몇 곳에서 언급했듯이 에라스무스, 루터, 멜랑톤, 그리고 부쩌의 작품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곧 알겠지만 칼빈은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전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이들 주석가들을 세밀하게 조사하는 것은 이 논문의 범위를 지나치는 것이기에 가능한 그들의 방법을 간결하게 요약하려고 한다. 에라스무스는 그의 성경 주석들에서 풍유적인 해석을 사용하고, 성경의 도덕적 의미를 강조했다. 오리겐과 제롬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어거스틴으로 부터8) 그의 해석학 원리들을 끌어왔던 그는 성경은 여러가지 의미들을9)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루터 또한 풍유를 사용했고,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이해할 때는 파버 스타푸렌시스(Faber Stapulensis)의 전통을 따랐다.10) 멜랑톤은 그의 주석에서 중심 주제 방법론을(the loci methodology) 발전시켰다. 아마도 루돌프 아그리코라(Rodulf Agricola)의 분석법을11) 기본으로 사용한 멜랑톤은 문학적인 작품으로서 성경의 중심 개념을 찾으려 했다. 함께 모아진 중심 개념들은 전체 자료의 내용을 요약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주제(topoi) 라고 불렀으며, 씨세로는 그것을 중심 주제(loci)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멜랑톤이 그의 모든 성경 주석에서 따른 방법론이었다.12) 끝으로 마틴 부쩌는 loci 방법에 덧붙여서 주석을 연속적으로 쓰는 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풍유을 반대하고, 주석 작품에서 짧은 의역, 강해, 해석, 그리고 관찰을 포함시켰다.13)
그러나 이들의 방법들은 칼빈이 볼때 심각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로마서 주석에서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칼빈의 분석을 보기에 앞서 칼빈은 성경의 적절한 해석적 원리로서 풍유를 거절한 부쩌와 실질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했으나,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작품은 많은 점에서 완전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 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내우스께 쓴 헌사에서 우리는 멜랑톤과 부쩌에 관한 칼빈의 견해를 얼핏 알 수 있다. 거기서 그는 멜랑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그의 유일한 목표는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들만 다룬 것 같읍니다. 그는 이런 것들은 상세하게 다루지만, 평범한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려운 것들을 그냥 지나쳐 버렸읍니다.”14) 멜랑톤의 문제는 그가 성경에 관해 장황하게 쓴것이 아니라, 충분하게 쓰는데 실패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멜랑톤이 본문을 선택하여 주석을 한다는 점에서 편견을 주목한다. 이것은 멜랑톤이 loci 방법론을 정확하게 따랐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했다. 이 방법은 사람이 어떤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관해서 대답을 할 때는 그 대답에 연구가 제한 됩니다. 물론 멜랑톤은 충분하게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칼빈이 문제를 삼는 것은 성경의 어떤 부분들과 중요한 부분들이 설명없이 지나치게 된다는 것이다. 칼빈은 아마도 어떤 해석자가 하나님 말씀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 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아마도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런 결과는 주석을 균형있게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부쩌는 어떻습니까? 칼빈은 말하기를:
마지막으로 부쩌가 있읍니다. 그는 그의 책을 출판함으로써 최종적인 말을 주었읍니다. 그러나 부쩌는 너무나 장황하여서 바쁜 사람들이 읽을 수가 없었고, 너무 심오해서 이해 력과 주의력이 없는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읍니다. 그가 다루는 주제가 어떤 것이든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정신의 힘을 통하여 많을 것들을 제안 하지만, 그 는 멈춰야 할 때를 자신이 알지 못했읍니다.15)
부쩌는 말을 적게 사용한 멜랑톤과 같은 문제점을 갖지 않았지만, 그러나 반대로 말을 많이 사용한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칼빈이 멜랑톤과 부쩌가 주석한 내용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두 경우에 있어서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칼빈은 부쩌가 주석한 방법에 대하여 비판을 한다. 부쩌의 주석을 읽는 사람들은 쉽게 혼란되고, 본문에 관해 명쾌한 견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된다. 칼빈은 말하기를
(이런 작가들은) 그들 가운데서 다양합니다. 이 사실은 어떤 의견을 따라야 할지 망설이 는 연약한 독자들에게 어려움을 줍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내가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없 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준다면 나는 이 작품을 쓰는데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16)
여기서 칼빈은 자기 자신의 로마서 주석을 언급하고 있다. 칼빈은 부쩌의 방법이 평범한 목회자가 많은 분량의 페이지를 읽고 해석에 관한 결론을 이해하는데 너무나 힘든 것으로 평가한다. 칼빈은 성경을 간결하고 쉽게 설명을 줌으로써 바쁜 목회자가 부담을 갖지 않게 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적절한 해석 방법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끈다.
III. 무엇을 따라야 하나
칼빈이 제안한 방법을 학자들은 중용의 방법(a via media approach)이라고 부른다. 그는 멜랑톤의 방법을 단절하고, 성경의 모든 절들을 연속적으로 주석했다. 그는 간결성과 용이성의(brevitas et facilitas) 정신을 유지하면서 부쩌의 방법을 거절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것은 다른 해석가들에 대해 길게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그가 성경의 교훈을 가능한 간단하고 분명하게 전달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성경 해석에 대한 적절한 방법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 서론과 그의 첫 주석인 1540년의 로마서 주석 보다 일년 앞서 쓴 1539년의 편지에 잘 요약 되어있다. 독자들은 기독교 강요안의 모든 부분에서 종교의 개요을 포함하고 있어서 만일 그것을 잘 이해한다면, “신학을 하는 후보자가 성경에서 그가 특별히 찾아야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과 그가 그 내용을 목표와 연결하여 결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17)라고 한다. 여기에 기독교 강요와 성경 주석과의 밀접한 관계성이 있다. 칼빈은 그 관계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방법을 따러서, 내가 성경의 주석을 요약해서 출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긴 교리 적인 논쟁을 할 필요가 없고, 일반적인 문제로 부터 벗어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건한 독자들이 필요한 도구로서 현재의 작품을 알면서 성경을 접근한다면, 그는 이런 점에서 큰 난관과 지리함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계획이(로마서 주석 에서) 분명하게 반영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몇 마디의 말로서 서술하는 것 보다도 본 서 자체가 그 목적을 밝히기를 좋아한다.18)
그러므로 근본 진리(loci communes) 위한 필요성이 기독교 강요(Institutes)을 항상 참조하게 한다.
IV. 존 크리소스톰
칼빈과 동시대인 16세기 해석의 간단한 조사로 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칼빈의 해석 방법론을 위한 열쇠나 모델을 그 당시의 어떤 사람도 주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찰력있는 칼빈의 학도는 칼빈의 사상에 교부들의 영향을 즉시 인식하게 된다. 칼빈이 그의 기독교 강요를 통하여 인용한 어거스틴도 그의 해석의 모델이 되지 못했다.19) 그러므로 우리는 칼빈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교부들 이외에 세계로 가야 한다.
칼빈 자신이 우리로 주시하게 하는 곳은 크리소스톰의 설교학 서문(Preface to the Homilies of Chrysostom)이다.20) 그는 그것이 프랑스어로 번역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라틴어 서문이다. 거기서 칼빈을 크리소스톰의 해석의 우수성을 높게 말하고, 크리소스톰이 헬라 교부들 가운데 아타나시우스, 바젤, 그리고 그레고리 보다도 더 좋은 해석가라고 주장한다. 그를 터툴리안, 암부로스, 그리고 어거스틴을 포함한 다른 라틴 교부들 보다도 더 좋은 해석자로 본다. 칼빈은 말하기를:
어거스틴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다른 사람들 보다도 믿음에 대한 가르침에 뛰어난다. 그 의 영성은 그가 성경적으로 해석 할때 좋다. 그러나 그는 아주 솔직하지 못하다. 이것은 그가 확고하지 않고 튼튼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21)
그러나 크리소스톰에 관해 칼빈은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의 저자 크리소스톰의 최고의 장점은 그의 폭표가 성경의 참된 의미를 벗어나는 일 이 결코 없다는 것이다. 또 본문의 참된 의미를 왜곡하는 일에 자신을 결코 허락하지 않 았다는데 있다.22)
위 진술을 이점에서 헬라의 명 설교자가 칼빈의 방법론에 하나의 근원을 제공해 준다는 것을 칼빈 자신의 증언으로 부터 보여준다.
물론 칼빈과 크리소스톰 사이에 신학적인 차이점에 관해 논쟁이 즉시 일어날 수 있을것이다. 확실히 칼빈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하나님과 우리들 자신 사이에 크리스찬의 소명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로 나눈 크리소스톰의 신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에 칼빈은 하나님께서만 우리의 소명과 선택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비록 이런 강한 신학적인 차이점이 존재 하였지만, 또 오늘날 보다도 보다도 16세기에 더욱 더 분명했던 차이점 이었지만 칼빈은 신학생들이 크리소스톰을 읽도록 강력히 추천했다.23) 크리소스톰은 칼빈의 마음에서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이 신학 때문이 아니라. 그의 신학에도 불구하고 찬사의 대상이 되었다. 크리소스톰에게 그렇게도 큰 가치를 준 것은 그가 제안한 해석 방법이었다. 칼빈은 적어도 부분적이지만 자기의 방법으로 그 방법을 합병하였다.24)
V. 칼빈의 방법론의 근원- 수사학
칼빈이 잘 훈련받은 휴머니스트였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세네카의 관용론에(Seneca's De Clementia) 대한 주석을25) 기억할 필요가 있다. 휴머니스트의 훈련은 칼빈이 성경 해석학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이것은 대답하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칼빈은 그의 휴머니스트 배경을 버릴 수가 없었고, 버리지도 않았다.26) 많은 점에서 칼빈은 그가 훈련받은 휴머니스트 전통에 머물러 있었다. 특별히 본문 비평 주석(critical apparatus)에 관련해서 칼빈은 휴머니스트들의 방법을 승인했다.27) 예를들면 칼빈은 부데의(Bude) 역사적인 연구 결과들을 도움받아 성경의 본문을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연구를 사용하였다.28)
칼빈이 수사학을 훈련받은 것은 그의 휴머니스트 배경의 일부분 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칼빈이 수사학을 그의 사상에 최우선 순위를 돔으로써 그가 성경을 주석할 때 휴머니스트 전통에 계속 있었다고 한다.29) 이런 견해는 분명히 부데까지 거슬러 가는데, 어떤 학자들은 씨세로(Cicero)와 퀼틸리안(Quintilian)이 정의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칼빈이 수사학을 정의 했다고 말한다.30) 칼빈이 세네카의 주석을 썼을 당시에 그가 회심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학자들은 칼빈이 실제적인 사용을 통하여 의미를 성실하게 평가하는 점을 보고 그를 미래의 주석가로서 또 성경 신학자로서 인정한다.31) 세네카 주석 또 성경 주석들에 관한 해석가로서 칼빈이 역사의 가치와 상용의 개념을 계속 사용했다고 추정하는 것도 가치가 있다.32) 이런 분야들에 있어서- 수사학, 의미를 평가하는 것, 그리고 역사의 개념- 많은 학자들은 칼빈의 인문주의 훈련이 주석시에 성경의 본문을 분석하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이해한다.33)
수사학과 그것이 칼빈의 성경 주석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그의 인문주의 훈련과 그의 후기의 작품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접촉점(point of contact)이었다. 브린(Q. Breen)은 주장하기를 지혜는 웅변과 손을 맞잡고 간다는 씨세로의 주장을 칼빈이 명확하게 따른다고 한다.34) 만일 월리스(E. David Willis)의 분석이 정확하다면, 칼빈 당시에 두개의 수사학의 전통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칼빈이 따른 것은 씨세로 학파였다.35) 다른 학파는 수사학을 설득의 문제로 보았는데, 설득한다는 입장은 옳고 그름의 일이 아니었다. 파티는(C. Partee) 이해하기를 칼빈이 고전과 교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 이 수사학 학파를 선호한다고 한다.36)
비록 이 견해는 많은 사람에 의해 지지를 받지 않지만, 두개의 비 연속성이(discontinuity) 있다. 저자의 입장은 비 연속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칼빈의 성경 해석학을 충분하게 인식하는데 적합할 것 같다.
인문주의자로서 혹은 인문주의적인 수사학자로서 칼빈과 성경 주석가로서 칼빈 사이에 비연속성의 일반적인 원리를 제시하기 전에 이 이론에 반대되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저자가 아는 한에서, 어느 누구도 세네카의 주석자인 칼빈과 성경의 주석가인 칼빈의 비 연속성을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자의 확신은 두 주석 사이에 수사학적 스타일에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비 연속성을 주장할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 했듯이 성경 저자의 의도를 밝히려는 목적을 달성 한다는 것은 독자가 저자의 의도로 부터 멀어질 수 있는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칼빈은 관용론에서(De Clementia) 이 해석 방법을 따랐는가? 비록 그것을 충분히 입증하기 위해서는 관용론을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어야 하지만, 사실상 칼빈은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지 않았다. 베틀즈와 휴고의 주장은 칼빈의 스타일을 보여준 권위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르네상스 시대의 주석가들은 본문의 주제를 벗어나서 길게 설명하는 전통을 갖고 있었는데, “칼빈 역시 주제에서 벗어나는 유혹을 받았고, 가끔 이탈 한다37)“고 한다. 칼빈은 비록 르네상스 작가들과 같이 극단적이지 아니지만, 베틀즈와 휴고는 칼빈이 본문의 주제를 이탈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전통을 떠난 것으로는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한 칼빈이 표준적인 정의들을 인용한 것을 주목한다.38)
앞서 우리가 알았던 것은 칼빈이 일반적으로 반대자들을 반박하는데 절제했다는 것이며, 반대자나 친구들의 견해를 너무 자세하게 조사하는 일을 제거한 것은 그의 성경 해석의 의식적인 역할 이었다. 이것이 관용론 주석에서도 사실인가? 그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다. 베틀즈와 휴고에 따르면 칼빈은 세네카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른 저자들의 적절한 비교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것은 칼빈의 방법론 안에 있다.39) 이 방법은 성경 저자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제거한 그의 성경 주석들에서 초기에 사용한 방법과 거의 대조적이다. 다른 저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주석 방법을 통해서 성경 저자의 의미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베틀즈와 휴고의 대작을 몇번 인용한 것이 궁극적인 증명을 주지 못한다 치더라도 의심의 여지 없이 세네카의 해석가로서 칼빈과 성경 해석가로서 칼빈 사이에는 방법의 일치성은 없다.
VI. 성경 그 자체
성경 그 자체가 우리에게 하나의 주석 방법을 제공하는가? 칼빈에게 있어서는 이것은 분명한 주장이었다. 성경안에는 칼빈이 표현한 교묘한 수사학(frivolous rhetoric)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 교묘한 수사학은 세상의 수사학이다.40) 세상적인 수사학에서 사람들은 저자들이 교묘한 표현들을 많이 사용함으로 명예심과 야망을 불러 일으키며, 화려하게 꾸미고 사람의 귀를 긁어주어, 결국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칼빈은 이런 종류의 수사학과 바울이 그것에 반대한 선포를 어떻게 관련시켰는지를 주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문학적 형식의 이런 타입과 대조적으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역사하며, 동시에 인간에게 그 능력을 확신시키는 성경의 주권을 안다. 성경은 세상 수사학의 모든 웅변들 보다도 더욱 더 힘이 있다. 성경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은 자기 자신의 웅변을 가지고 있다.41) 그는 말의 장식으로 하지 않고, 내면의 광채를 통하여 역사하신다.42)
칼빈은 성경 그 자체에 돌아가서 말하기를 성경의 어떤 저자들은 아름다운 수사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생각하기를 모세와 이사야도 아름다운 문학적인 형식으로 썼다고 했다.43) 그는 우리에게 상기시키기를 모세와 이사야는 그들의 문체에 관한한 헬라와 라틴 수사학자들에게 찬사를 받았다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 아모스와 같은 책들은 이것들과 같은 아름다운 문체를 보여주지 않지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멧세지가 있다. 성경 전체는 어떻게 구성 되었는가? 각 책들간에 분명한 차이점이 있지만, 그러나 성경의 모든 책들은 하나의 통일된 수사학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답은 그렇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수사학자들의 견지에서 볼 때 많은 곳에서 아름답고 예술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문학적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물론 그것들 가운데 한가지는 산문체에 해당한다. 칼빈 당시의 많은 수사학의 비판자들은 성경은 세련되지 않은 문학적인 작품 이었다는고 간주한 점을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칼빈은 어느 정도 그 비판에 동의한다. 칼빈이 사물을 보는 견해는 세상의 지혜는 항상 성경의 말씀과 멧세지를 부끄러워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또 다른 좋은 특징적인 점이 있다. 칼빈이 주장하는 것은 씨세로의 아름다움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또 플라톤의 사상을 갖고 있는 그런 책들이 성경과 같은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인 것을 안다.44)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서 그것은 형성 되었기에 바울과 같은 사람들의 단순한 언어가 성령의 꾸민없이 역사하는 힘을 전달한다. 이런 단순한 언어의 내용이 하늘나라의 최고의 신비를 계시한다! 칼빈은 말하기를 대부분의 성경 스타일은 아주 단순하고 자연적이다.45) 글을 쓰는데는 두가지의 스타일이 있는데, 한가지는 세속적이며 교만한 방법으로 쓰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놀라운 단순성을 갖고 쓰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서로 아주 대조적이다. 그런데 궁극적인 진리를 계시하는 것은 바로 단순한 스타일이다. 하나님은 섭리가운데 자신의 언어를 단순한 스타일로 적응시킴으로써 칼빈이 부른 교묘한 수사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잃어 버릴 수 없는 수사학적 아름다움을 포함하고 있다. 문학적인 형식을 만들때 우아한 산문체가 아닌 수사학적 아름다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또 멧세지의 내적인 조화가- 형식의 모든 부분들의 조화- 반드시 있어야 한다.46) 성경은 어떻게 조화가 잘 되었는가? 성경은 참으로 놀라움을 보여 줍니다. 모세, 이사야, 아모스, 바울의 책들이 문학적 형식에 있어서 매우 다르지만 어떻게 완전한 통일성을 갖을 수 있겠읍니까? 확실히 성경은 단지 인간의 권위를 훨씬 넘어선 작품이다. 창세기로 부터 계시록까지 사상의 완전한 조화가 있다. 우리가 성경적인 수사학에 관해서 칼빈의 견해를 알아 보는 것이 좋겠다.
성경적 수사학의 첫번째 전제는 이것은 세상의 수사학과 정반대이다. 후자는 교묘한 수사학이며 전자는 성경적인 웅변으로 불러진다. 성경적인 수사학은 교묘한 수사학 보다 더 힘이 있고, 효과적이고 고상하다. 무슨 이유에서 인가? 그 이유는 방법 자체에 있다. 교묘한 수사학은 분석을 위한 모델로서 이방의 문학 방법을 사용한다. 칼빈은 성경 안에서 성령께서 자신을 목동이나 철학자에게 말씀하시는 자신의 단순하며 고상한 언어를 찾아 낸다. 교묘한 수사학에서 사람들은 저자가 자신을 찬양하기 위한 수사학적 모든 방법을 다 쓰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바벨탑을 여전히 세우고 있다.
교묘한 수사학을 거절한 칼빈은 성경의 단순성을 중시하고 그 스타일을 자신의 방법으로 본받으려고 했다. 이런 스타일은 그의 주석에서 특별하게 두드러지고, 심지어 그의 설교에 조차도 더욱 더 주목 할 만하다.47) 이 단순성이 물론 기독교 강요에 경우 그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좀더 복잡하다는 면에서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 강요에서 조차도 그 배열의 조화가 있다는 점에서 칼빈이 성경적인 웅변을 따르려고 시도한 점이 발견된다. 이 점에 있어서 칼빈은 한 예로 당시의 멜랑톤의 신학통론(Loci Communes)과 같은 다른 책들과 아주 대조적이다.
이것은 우리로 첫번째 나의 소제목인 간결성과 용이성(brevitas et facilitas) 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 해석학의 궁극적인 전체는 성경의 명료한 간결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의미에 있어서 간결하다. 즉 거기에는 해석의 복수성은 없다. 그것은 의미에 관한한 간결하고 분명하며, 단지 인간 저자가 찬양을 받기 위한 많은 말을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다. 본 저자의 결론은 칼빈의 해석학 방법이 성경안에서 발견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VII 결론
우리는 칼빈의 해석 방법 안에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인문주의 영향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 간결성의 개념 조차도 고대 수사학으로 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48) 교부들의 자료들 또한 마찬가지 임을 관찰했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칼빈이 16세기로 부터 떠나야 할 것이다. 모든 영향들은 학문적인 연구들에서 잘 논의 되었다. 그러나 본인의 확신은 칼빈이 교묘한 수사학이 개념을 분석한 것과 그것과 해석 방법론에 관계에 적절한 관심을 보여 주지 못했다.
교묘한 수사학은(Rhetorique frivole) 간결성과 용이성에(brevitas et facilitas) 아주 대조적이다. 교묘한 수사학은 바울의 방법과 반대가 되는 것으로 칼빈이 비판을 했다. 간결성과 용이성은 비록 부분적으로 르네상스 개념이지만 칼빈이 이 방법을 따른 것은 자신의 방법을 성경의 방법에 따른데서 근거하고 있다. 이것이 이 논문의 중심 주제이다. 확실한 결론들이 다음과 같다.
칼빈의 해석 방법에 대한 대부분의 많은 가정들이 수정되어야 한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의 예를 든다면 파커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몇 문장으로 방법에 관한 칼빈의 견해가 발견되는데, 첫번째, 방법은 목표를 위한 유일한 수단인데, 그것을 위해 최종적인 주장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중요한 일은 성경이 이해되 어야 한다는 것과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뗳게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두번 째이다. 성경은 간결함(compendium)으로써 뿐만 아니라, 긴 주석(prolix commentarii)으 로도 충실하게 설명될 수 있다.49)
이것은 실제로 정당한 주장이 아니다. 파커 자신이 지적한 것처럼, 칼빈은 멜랑톤의 편파성을 비판했다. 그러나 동시에 파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는(칼빈) 이 방법 자체를 전혀 비판하지 않았고, 본문을 해석하는데 그 약점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한다.”50) 특별히 칼빈이 멜랑톤과 부쩌, 그리고 다른 개혁자들의 방법들을 정확하게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파커의 진술은 옳다. 그러나 칼빈에 있어서는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들을”51) 생략하는 일은 성경을 주석할 때 그의 강한 의도가 아니었다. 그들의 방법을 솔직하게 말로써 거절한 것이 아마도 그를 조급하고 교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가 왜 글로써 거절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본 논문에서 취급할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파커가 지적한 것같이52) 칼빈은 자기의 방법이 멜랑톤 그리고 부쩌의 방법과 차이점이 있으며, 그들의 방법 보다도 훨씬 우수하다고 생각한 점은 강조되어야 한다.
왜 칼빈 조차도 주석을 쓰는데 힘들어 했는지 다시 한번 질문을 해 봐야 한다. 그 이유가 칼빈이 “인간의 작품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용기를 갖고”53) 한 것인가? 아니다. 칼빈의 동기는 그것 보다도 더 심오하다. 칼빈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자기의 해석 방법론에 적용한 성경 해석학 이었다. 칼빈은 물론 동시대의 해석가들의 단점들을 알고 있었다. 칼빈이 시도한 점을 그가 프로테스탄트 주석의 패턴을54) 단절하고 성경 해석의 평생 과업으로 동기를 준 간결성과 용이성의 성경적 방법으로(to a biblical method of brevitas et facilitas) 돌아간 것이었다.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Philadelphia
http://blog.daum.net/holylife2/17208234
칼빈의 성경 해석학 안명준
머리말
이 책은 1992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Th.M. 논문을(The Methodology of Brevitas and Facilitas as the Hermeneutic Principle of John Calvin) 부분적으로 번역하고 약간에 수정을 한 칼빈의 해석학에 관한 논문이다. 에드가(William Edgar) 교수의 엄격한 지도하에 완성을 보았다. 그를 비롯한 누슨(Robert D. Knudsen) 교수, 및 데비스(D. Clair Davis) 교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칼빈의 신학에 관한 연구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여러 분야로 연구되어 왔지만 해석자로서 칼빈은 깊이 있게 조사되지 않았다. 칼빈의 신학은 칼빈이 어떻게 성경의 본문을 해석하는지와 필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이 관계는 칼빈이 자신의 기독교 강요 서두에서 확고하게 설명한다. 한국 교회가 칼빈의 신학의 절대적인 영향속에서 성장해 왔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칼빈을 신학자 이전에 성경의 학자로서 또는 성경의 해석학자로서는 잘 이해하지 못한 실정이다. 결국 칼빈을 완전하게 이해를 못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칼빈의 해석학에 관한 본 논문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본 논문은 칼빈 이전의 해석학의 방법들에 대해 칼빈이 어떻게 비판 했는지를 연구했고, 특별히 종교 개혁 시대의 여러 개혁자들의 성경 해석학을 칼빈의 입장에서 다루었다. 논문을 시작할 때 좀더 창의적인 방법으로 쓰기 위하여 많은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칼빈의 핵심적인 성경 해석학 원리인 간결하고 용이한(brevitas et facilitas) 방법론의 구조와 방법론의 구성 요소들을 찾아 냈다. 칼빈의 해석학 방면으로는 최근의 이론이며 흥미가 있는 논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독자들을 돕기위해 지금까지 칼빈의 해석학에 관계된 참고 문헌을 모두 실었다.
간결하고 용이한 방법론은 목회와 신학에(1996, 4, 5) 실은 내용이기 때문에 앞에 있는 내용과 조금씩 중복되는 문장이 있고 목회자를 위하여 실제적으로 썼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부록으로 리챠드 갬불의 논문(Richard C. Gamble, Brevitas et Facilitas: Toward an Understanding of Calvin's Hermeneutic,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47, 1985, 1-17,)을 번역했다. 필자는 이 논문을 기초하여 현재의 논문을 발전시켰다. 끝으로 한국 칼빈학회에서 발표한 “칼빈 해석학 연구의 역사적 고찰”을 실었다.
끝으로 부족한 자에게 칼빈의 신학을 불어 넣어 주신 칼빈의 관한 대 신학자이신 南松 신복윤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안명준
목차
1. 서론
2. 칼빈 이전의 해석학
A. 교부들과 로마 카톨릭 교회의 해석학
1. 오리겐
2. 암부로스
3. 제롬
4. 어거스틴
5. 로마 카톨릭 교회
B. 종교 개혁 시대의 해석학
1. 에라스무스
2. 루터
3. 쯔빙글리
4. 멜랑톤
5. 불린저
6. 부쩌
3. 존 칼빈의 해석학 원리로서 간결하고 용이한(Brevitas et Facilitas) 방법론
A. 간결하고 용이한 방법론이란?
B. 간결한 방법론
1. 반 장황성
2. 축소성
3. 보존성
4. 관계성
C. 용이한 방법론
1. 반 강요성
2. 반 모오성
3. 반 억측성
4. 단순성
5. 적절성 혹은 자연성
6. 자유성
4. 결론
부록: 리챠드 C 갬불의 간결성과 용이성: 칼빈의 해석학의 이해를 위하여
(Richard C. Gamble, Brevitas et Facilitas: Toward on Understanding of Calvin's Hermeneutic,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47 (1986): 1-17)
안명준, 칼빈 해석학 연구의 역사적 고찰 - Brevitas et Facilitas 방법을 중심으로-
참고 문헌
리챠드 C. 갬불의
간결성과 용이성: 칼빈의 해석학의 이해를 위하여
I. 간결성과 용이성(Brevitas et Facilitas)
파커의1) 선구적인 책 칼빈의 신약 주석들 이후로 칼빈의 해석 방법론에 관하여 발표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은 파커의 연구 범위가 신약에 제한되고, 독자들로 하여금 그가 발견한 것들이 단지 학자적인 연구의 시작이라는 인상을 남겼다는 점에서는 좋은 상황이 아니다. 사실 그는 그 책의 서문에서 “현재의 책은 서문이다”2)라고 언급했다. 파커의 책은 제한된 범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철저한 연구를 위한 중요한 기초를 놓았다.
16세기 해석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칼빈의 해석 방법론을 재구성하는데 갖는 하나의 문제점은 그들이 멜랑톤의3) “Erotematum dialectices, de methodo"와 같은 작품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해석에 대한 서언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 문제점을 어렵게 만든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칼빈의 해석 방법, 즉 어떻게 그가 성경의 의미를 말하는지를 조사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 의미를 알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을 조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칼빈은 어떤 방법으로 자기의 주석을 썼을까? 이 질문에 대답을 말한 곳은 칼빈의 친구요 히브리어 교수였던, 시몬 그리내우스 (Simon Grynaeus)4) 앞으로 쓴 로마서 주석의 헌사에 나타난다. 거기서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둘이 생각했던 것은 해석자의 주된 목적은 분명한 간결성(perspicua brevitate)에 있다는 것이다. 그가 설명할 저자의 의도를(mentem scriptoris) 밝히는 것이 그의 의무이 기 때문에 그가 저자의 의도로 부터 벗어 날수록 더욱 더 그는 자기의 목적을 벗어나서 그의 목표로 부터 방황 할 것이다. . . 우리는 표현의 용이성을(facilitati) 위하여 노력하 며, 동시에 장황한 주석을(prolixis commentariis) 갖고 독자들을 방해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간결성을 사랑하는 것에서(amore compendii) 결코 움직 이지 않을 것입니다.5)
그 헌사는 칼빈이 그의 처음 주석을 소개 했을 때인 1540년에 출판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칼빈이 해석자의 목표가 성경 저자의 정신을(unfolding the mind of the Biblical writers) 보여 주는 것으로 이해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목적이 성공하는 것은 독자들을 저자의 의미로 부터 멀어지게 하는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칼빈의 나이 30살에 말했던 해석 원리였다. 이 해석 이론은 그의 삶을 통하여 계속 되었을까? 1557년에 우리는 그의 시편 주석 서문에서 그 근본 원리가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말하기를:
가르침의 단순한 스타일을 위함과 모든 피상적인 것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나는 거의 대 부분 반박하는 일을 삼가한다. . . 나는 내가 침묵함으로써 독자들이 의심과 혼란에 빠지 는 것을 제외하고는 반대 의견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동시에 내가 훌륭한 자료를 많이 모아서 제시한다면, 많은 사람이 기뻐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회를 세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알고 있다.6)
이것은 성경 저자의 정신을 밝혀야 한다는 언급을 제외하고 로마서의 서문에 언급된 동일한 방법론이다. 그러나 칼빈이 우리에게 준 부가적인 자료는 더욱 더 그의 해석학의 구조를 세우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칼빈이 자신의 가르치는 스타일을 단순하게 유지시킨 것과, 그가 16세기에 즐길 수 있는 여가로서 대적들을 반박하는 일에 일반적으로 절제 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 자료는 칼빈의 방법을 분석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대개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대적들과 논쟁에 뛰어드는 것을 거절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그 문제를 위해 그를 지지하는 의견들 까지도 제거한다. 예외가 있는 것은 반대 의견을 언급하지 않은 결과가 독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의문점을 갖게될 경우에 한하여 있었다. 친구나 또는 대적에게 대해 상세하게 조사하기를 제거한 것이 칼빈 해석 방법의 의식적인 역할이었다.
우리는 이런 간단한 조사로 부터 어떤 일반적인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대부분의 학자들은7) 칼빈의 해석학 방법론의 주된 특징으로 간결성과 용이성을(brevitas et facilitas) 인정한다. 칼빈은 그의 주석을 초보적인 학생들에게 이해하도록 썼고, 해석학의 원리로서 그의 토론을 본문에 제한시키며, 성경 저자의 정신을 밝혀주며, 여러 해석들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았다.
II. 무엇을 따르지 말아야 하나?
16세기에 따를 만한 해석적 모델이 전혀 없이는 않았다. 물론 칼빈은 몇 곳에서 언급했듯이 에라스무스, 루터, 멜랑톤, 그리고 부쩌의 작품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곧 알겠지만 칼빈은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전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이들 주석가들을 세밀하게 조사하는 것은 이 논문의 범위를 지나치는 것이기에 가능한 그들의 방법을 간결하게 요약하려고 한다. 에라스무스는 그의 성경 주석들에서 풍유적인 해석을 사용하고, 성경의 도덕적 의미를 강조했다. 오리겐과 제롬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어거스틴으로 부터8) 그의 해석학 원리들을 끌어왔던 그는 성경은 여러가지 의미들을9)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루터 또한 풍유를 사용했고,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이해할 때는 파버 스타푸렌시스(Faber Stapulensis)의 전통을 따랐다.10) 멜랑톤은 그의 주석에서 중심 주제 방법론을(the loci methodology) 발전시켰다. 아마도 루돌프 아그리코라(Rodulf Agricola)의 분석법을11) 기본으로 사용한 멜랑톤은 문학적인 작품으로서 성경의 중심 개념을 찾으려 했다. 함께 모아진 중심 개념들은 전체 자료의 내용을 요약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주제(topoi) 라고 불렀으며, 씨세로는 그것을 중심 주제(loci)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멜랑톤이 그의 모든 성경 주석에서 따른 방법론이었다.12) 끝으로 마틴 부쩌는 loci 방법에 덧붙여서 주석을 연속적으로 쓰는 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풍유을 반대하고, 주석 작품에서 짧은 의역, 강해, 해석, 그리고 관찰을 포함시켰다.13)
그러나 이들의 방법들은 칼빈이 볼때 심각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로마서 주석에서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칼빈의 분석을 보기에 앞서 칼빈은 성경의 적절한 해석적 원리로서 풍유를 거절한 부쩌와 실질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했으나,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작품은 많은 점에서 완전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 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내우스께 쓴 헌사에서 우리는 멜랑톤과 부쩌에 관한 칼빈의 견해를 얼핏 알 수 있다. 거기서 그는 멜랑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그의 유일한 목표는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들만 다룬 것 같읍니다. 그는 이런 것들은 상세하게 다루지만, 평범한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려운 것들을 그냥 지나쳐 버렸읍니다.”14) 멜랑톤의 문제는 그가 성경에 관해 장황하게 쓴것이 아니라, 충분하게 쓰는데 실패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멜랑톤이 본문을 선택하여 주석을 한다는 점에서 편견을 주목한다. 이것은 멜랑톤이 loci 방법론을 정확하게 따랐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했다. 이 방법은 사람이 어떤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관해서 대답을 할 때는 그 대답에 연구가 제한 됩니다. 물론 멜랑톤은 충분하게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칼빈이 문제를 삼는 것은 성경의 어떤 부분들과 중요한 부분들이 설명없이 지나치게 된다는 것이다. 칼빈은 아마도 어떤 해석자가 하나님 말씀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 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아마도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런 결과는 주석을 균형있게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부쩌는 어떻습니까? 칼빈은 말하기를:
마지막으로 부쩌가 있읍니다. 그는 그의 책을 출판함으로써 최종적인 말을 주었읍니다. 그러나 부쩌는 너무나 장황하여서 바쁜 사람들이 읽을 수가 없었고, 너무 심오해서 이해 력과 주의력이 없는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읍니다. 그가 다루는 주제가 어떤 것이든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정신의 힘을 통하여 많을 것들을 제안 하지만, 그 는 멈춰야 할 때를 자신이 알지 못했읍니다.15)
부쩌는 말을 적게 사용한 멜랑톤과 같은 문제점을 갖지 않았지만, 그러나 반대로 말을 많이 사용한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칼빈이 멜랑톤과 부쩌가 주석한 내용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두 경우에 있어서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었다.
칼빈은 부쩌가 주석한 방법에 대하여 비판을 한다. 부쩌의 주석을 읽는 사람들은 쉽게 혼란되고, 본문에 관해 명쾌한 견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된다. 칼빈은 말하기를
(이런 작가들은) 그들 가운데서 다양합니다. 이 사실은 어떤 의견을 따라야 할지 망설이 는 연약한 독자들에게 어려움을 줍니다. 나는 생각하기를 내가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없 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준다면 나는 이 작품을 쓰는데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16)
여기서 칼빈은 자기 자신의 로마서 주석을 언급하고 있다. 칼빈은 부쩌의 방법이 평범한 목회자가 많은 분량의 페이지를 읽고 해석에 관한 결론을 이해하는데 너무나 힘든 것으로 평가한다. 칼빈은 성경을 간결하고 쉽게 설명을 줌으로써 바쁜 목회자가 부담을 갖지 않게 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적절한 해석 방법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끈다.
III. 무엇을 따라야 하나
칼빈이 제안한 방법을 학자들은 중용의 방법(a via media approach)이라고 부른다. 그는 멜랑톤의 방법을 단절하고, 성경의 모든 절들을 연속적으로 주석했다. 그는 간결성과 용이성의(brevitas et facilitas) 정신을 유지하면서 부쩌의 방법을 거절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것은 다른 해석가들에 대해 길게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그가 성경의 교훈을 가능한 간단하고 분명하게 전달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성경 해석에 대한 적절한 방법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 서론과 그의 첫 주석인 1540년의 로마서 주석 보다 일년 앞서 쓴 1539년의 편지에 잘 요약 되어있다. 독자들은 기독교 강요안의 모든 부분에서 종교의 개요을 포함하고 있어서 만일 그것을 잘 이해한다면, “신학을 하는 후보자가 성경에서 그가 특별히 찾아야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과 그가 그 내용을 목표와 연결하여 결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17)라고 한다. 여기에 기독교 강요와 성경 주석과의 밀접한 관계성이 있다. 칼빈은 그 관계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방법을 따러서, 내가 성경의 주석을 요약해서 출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긴 교리 적인 논쟁을 할 필요가 없고, 일반적인 문제로 부터 벗어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건한 독자들이 필요한 도구로서 현재의 작품을 알면서 성경을 접근한다면, 그는 이런 점에서 큰 난관과 지리함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계획이(로마서 주석 에서) 분명하게 반영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몇 마디의 말로서 서술하는 것 보다도 본 서 자체가 그 목적을 밝히기를 좋아한다.18)
그러므로 근본 진리(loci communes) 위한 필요성이 기독교 강요(Institutes)을 항상 참조하게 한다.
IV. 존 크리소스톰
칼빈과 동시대인 16세기 해석의 간단한 조사로 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칼빈의 해석 방법론을 위한 열쇠나 모델을 그 당시의 어떤 사람도 주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찰력있는 칼빈의 학도는 칼빈의 사상에 교부들의 영향을 즉시 인식하게 된다. 칼빈이 그의 기독교 강요를 통하여 인용한 어거스틴도 그의 해석의 모델이 되지 못했다.19) 그러므로 우리는 칼빈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교부들 이외에 세계로 가야 한다.
칼빈 자신이 우리로 주시하게 하는 곳은 크리소스톰의 설교학 서문(Preface to the Homilies of Chrysostom)이다.20) 그는 그것이 프랑스어로 번역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라틴어 서문이다. 거기서 칼빈을 크리소스톰의 해석의 우수성을 높게 말하고, 크리소스톰이 헬라 교부들 가운데 아타나시우스, 바젤, 그리고 그레고리 보다도 더 좋은 해석가라고 주장한다. 그를 터툴리안, 암부로스, 그리고 어거스틴을 포함한 다른 라틴 교부들 보다도 더 좋은 해석자로 본다. 칼빈은 말하기를:
어거스틴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다른 사람들 보다도 믿음에 대한 가르침에 뛰어난다. 그 의 영성은 그가 성경적으로 해석 할때 좋다. 그러나 그는 아주 솔직하지 못하다. 이것은 그가 확고하지 않고 튼튼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21)
그러나 크리소스톰에 관해 칼빈은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의 저자 크리소스톰의 최고의 장점은 그의 폭표가 성경의 참된 의미를 벗어나는 일 이 결코 없다는 것이다. 또 본문의 참된 의미를 왜곡하는 일에 자신을 결코 허락하지 않 았다는데 있다.22)
위 진술을 이점에서 헬라의 명 설교자가 칼빈의 방법론에 하나의 근원을 제공해 준다는 것을 칼빈 자신의 증언으로 부터 보여준다.
물론 칼빈과 크리소스톰 사이에 신학적인 차이점에 관해 논쟁이 즉시 일어날 수 있을것이다. 확실히 칼빈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하나님과 우리들 자신 사이에 크리스찬의 소명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로 나눈 크리소스톰의 신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에 칼빈은 하나님께서만 우리의 소명과 선택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비록 이런 강한 신학적인 차이점이 존재 하였지만, 또 오늘날 보다도 보다도 16세기에 더욱 더 분명했던 차이점 이었지만 칼빈은 신학생들이 크리소스톰을 읽도록 강력히 추천했다.23) 크리소스톰은 칼빈의 마음에서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이 신학 때문이 아니라. 그의 신학에도 불구하고 찬사의 대상이 되었다. 크리소스톰에게 그렇게도 큰 가치를 준 것은 그가 제안한 해석 방법이었다. 칼빈은 적어도 부분적이지만 자기의 방법으로 그 방법을 합병하였다.24)
V. 칼빈의 방법론의 근원- 수사학
칼빈이 잘 훈련받은 휴머니스트였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세네카의 관용론에(Seneca's De Clementia) 대한 주석을25) 기억할 필요가 있다. 휴머니스트의 훈련은 칼빈이 성경 해석학을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이것은 대답하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칼빈은 그의 휴머니스트 배경을 버릴 수가 없었고, 버리지도 않았다.26) 많은 점에서 칼빈은 그가 훈련받은 휴머니스트 전통에 머물러 있었다. 특별히 본문 비평 주석(critical apparatus)에 관련해서 칼빈은 휴머니스트들의 방법을 승인했다.27) 예를들면 칼빈은 부데의(Bude) 역사적인 연구 결과들을 도움받아 성경의 본문을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연구를 사용하였다.28)
칼빈이 수사학을 훈련받은 것은 그의 휴머니스트 배경의 일부분 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칼빈이 수사학을 그의 사상에 최우선 순위를 돔으로써 그가 성경을 주석할 때 휴머니스트 전통에 계속 있었다고 한다.29) 이런 견해는 분명히 부데까지 거슬러 가는데, 어떤 학자들은 씨세로(Cicero)와 퀼틸리안(Quintilian)이 정의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칼빈이 수사학을 정의 했다고 말한다.30) 칼빈이 세네카의 주석을 썼을 당시에 그가 회심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학자들은 칼빈이 실제적인 사용을 통하여 의미를 성실하게 평가하는 점을 보고 그를 미래의 주석가로서 또 성경 신학자로서 인정한다.31) 세네카 주석 또 성경 주석들에 관한 해석가로서 칼빈이 역사의 가치와 상용의 개념을 계속 사용했다고 추정하는 것도 가치가 있다.32) 이런 분야들에 있어서- 수사학, 의미를 평가하는 것, 그리고 역사의 개념- 많은 학자들은 칼빈의 인문주의 훈련이 주석시에 성경의 본문을 분석하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이해한다.33)
수사학과 그것이 칼빈의 성경 주석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그의 인문주의 훈련과 그의 후기의 작품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접촉점(point of contact)이었다. 브린(Q. Breen)은 주장하기를 지혜는 웅변과 손을 맞잡고 간다는 씨세로의 주장을 칼빈이 명확하게 따른다고 한다.34) 만일 월리스(E. David Willis)의 분석이 정확하다면, 칼빈 당시에 두개의 수사학의 전통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칼빈이 따른 것은 씨세로 학파였다.35) 다른 학파는 수사학을 설득의 문제로 보았는데, 설득한다는 입장은 옳고 그름의 일이 아니었다. 파티는(C. Partee) 이해하기를 칼빈이 고전과 교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 이 수사학 학파를 선호한다고 한다.36)
비록 이 견해는 많은 사람에 의해 지지를 받지 않지만, 두개의 비 연속성이(discontinuity) 있다. 저자의 입장은 비 연속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칼빈의 성경 해석학을 충분하게 인식하는데 적합할 것 같다.
인문주의자로서 혹은 인문주의적인 수사학자로서 칼빈과 성경 주석가로서 칼빈 사이에 비연속성의 일반적인 원리를 제시하기 전에 이 이론에 반대되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저자가 아는 한에서, 어느 누구도 세네카의 주석자인 칼빈과 성경의 주석가인 칼빈의 비 연속성을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저자의 확신은 두 주석 사이에 수사학적 스타일에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비 연속성을 주장할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 했듯이 성경 저자의 의도를 밝히려는 목적을 달성 한다는 것은 독자가 저자의 의도로 부터 멀어질 수 있는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칼빈은 관용론에서(De Clementia) 이 해석 방법을 따랐는가? 비록 그것을 충분히 입증하기 위해서는 관용론을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어야 하지만, 사실상 칼빈은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지 않았다. 베틀즈와 휴고의 주장은 칼빈의 스타일을 보여준 권위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르네상스 시대의 주석가들은 본문의 주제를 벗어나서 길게 설명하는 전통을 갖고 있었는데, “칼빈 역시 주제에서 벗어나는 유혹을 받았고, 가끔 이탈 한다37)“고 한다. 칼빈은 비록 르네상스 작가들과 같이 극단적이지 아니지만, 베틀즈와 휴고는 칼빈이 본문의 주제를 이탈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전통을 떠난 것으로는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한 칼빈이 표준적인 정의들을 인용한 것을 주목한다.38)
앞서 우리가 알았던 것은 칼빈이 일반적으로 반대자들을 반박하는데 절제했다는 것이며, 반대자나 친구들의 견해를 너무 자세하게 조사하는 일을 제거한 것은 그의 성경 해석의 의식적인 역할 이었다. 이것이 관용론 주석에서도 사실인가? 그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다. 베틀즈와 휴고에 따르면 칼빈은 세네카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른 저자들의 적절한 비교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것은 칼빈의 방법론 안에 있다.39) 이 방법은 성경 저자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제거한 그의 성경 주석들에서 초기에 사용한 방법과 거의 대조적이다. 다른 저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주석 방법을 통해서 성경 저자의 의미를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베틀즈와 휴고의 대작을 몇번 인용한 것이 궁극적인 증명을 주지 못한다 치더라도 의심의 여지 없이 세네카의 해석가로서 칼빈과 성경 해석가로서 칼빈 사이에는 방법의 일치성은 없다.
VI. 성경 그 자체
성경 그 자체가 우리에게 하나의 주석 방법을 제공하는가? 칼빈에게 있어서는 이것은 분명한 주장이었다. 성경안에는 칼빈이 표현한 교묘한 수사학(frivolous rhetoric)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 교묘한 수사학은 세상의 수사학이다.40) 세상적인 수사학에서 사람들은 저자들이 교묘한 표현들을 많이 사용함으로 명예심과 야망을 불러 일으키며, 화려하게 꾸미고 사람의 귀를 긁어주어, 결국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칼빈은 이런 종류의 수사학과 바울이 그것에 반대한 선포를 어떻게 관련시켰는지를 주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문학적 형식의 이런 타입과 대조적으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역사하며, 동시에 인간에게 그 능력을 확신시키는 성경의 주권을 안다. 성경은 세상 수사학의 모든 웅변들 보다도 더욱 더 힘이 있다. 성경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은 자기 자신의 웅변을 가지고 있다.41) 그는 말의 장식으로 하지 않고, 내면의 광채를 통하여 역사하신다.42)
칼빈은 성경 그 자체에 돌아가서 말하기를 성경의 어떤 저자들은 아름다운 수사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생각하기를 모세와 이사야도 아름다운 문학적인 형식으로 썼다고 했다.43) 그는 우리에게 상기시키기를 모세와 이사야는 그들의 문체에 관한한 헬라와 라틴 수사학자들에게 찬사를 받았다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 아모스와 같은 책들은 이것들과 같은 아름다운 문체를 보여주지 않지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멧세지가 있다. 성경 전체는 어떻게 구성 되었는가? 각 책들간에 분명한 차이점이 있지만, 그러나 성경의 모든 책들은 하나의 통일된 수사학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답은 그렇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수사학자들의 견지에서 볼 때 많은 곳에서 아름답고 예술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문학적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물론 그것들 가운데 한가지는 산문체에 해당한다. 칼빈 당시의 많은 수사학의 비판자들은 성경은 세련되지 않은 문학적인 작품 이었다는고 간주한 점을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칼빈은 어느 정도 그 비판에 동의한다. 칼빈이 사물을 보는 견해는 세상의 지혜는 항상 성경의 말씀과 멧세지를 부끄러워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또 다른 좋은 특징적인 점이 있다. 칼빈이 주장하는 것은 씨세로의 아름다움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또 플라톤의 사상을 갖고 있는 그런 책들이 성경과 같은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인 것을 안다.44)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서 그것은 형성 되었기에 바울과 같은 사람들의 단순한 언어가 성령의 꾸민없이 역사하는 힘을 전달한다. 이런 단순한 언어의 내용이 하늘나라의 최고의 신비를 계시한다! 칼빈은 말하기를 대부분의 성경 스타일은 아주 단순하고 자연적이다.45) 글을 쓰는데는 두가지의 스타일이 있는데, 한가지는 세속적이며 교만한 방법으로 쓰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놀라운 단순성을 갖고 쓰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서로 아주 대조적이다. 그런데 궁극적인 진리를 계시하는 것은 바로 단순한 스타일이다. 하나님은 섭리가운데 자신의 언어를 단순한 스타일로 적응시킴으로써 칼빈이 부른 교묘한 수사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잃어 버릴 수 없는 수사학적 아름다움을 포함하고 있다. 문학적인 형식을 만들때 우아한 산문체가 아닌 수사학적 아름다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또 멧세지의 내적인 조화가- 형식의 모든 부분들의 조화- 반드시 있어야 한다.46) 성경은 어떻게 조화가 잘 되었는가? 성경은 참으로 놀라움을 보여 줍니다. 모세, 이사야, 아모스, 바울의 책들이 문학적 형식에 있어서 매우 다르지만 어떻게 완전한 통일성을 갖을 수 있겠읍니까? 확실히 성경은 단지 인간의 권위를 훨씬 넘어선 작품이다. 창세기로 부터 계시록까지 사상의 완전한 조화가 있다. 우리가 성경적인 수사학에 관해서 칼빈의 견해를 알아 보는 것이 좋겠다.
성경적 수사학의 첫번째 전제는 이것은 세상의 수사학과 정반대이다. 후자는 교묘한 수사학이며 전자는 성경적인 웅변으로 불러진다. 성경적인 수사학은 교묘한 수사학 보다 더 힘이 있고, 효과적이고 고상하다. 무슨 이유에서 인가? 그 이유는 방법 자체에 있다. 교묘한 수사학은 분석을 위한 모델로서 이방의 문학 방법을 사용한다. 칼빈은 성경 안에서 성령께서 자신을 목동이나 철학자에게 말씀하시는 자신의 단순하며 고상한 언어를 찾아 낸다. 교묘한 수사학에서 사람들은 저자가 자신을 찬양하기 위한 수사학적 모든 방법을 다 쓰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바벨탑을 여전히 세우고 있다.
교묘한 수사학을 거절한 칼빈은 성경의 단순성을 중시하고 그 스타일을 자신의 방법으로 본받으려고 했다. 이런 스타일은 그의 주석에서 특별하게 두드러지고, 심지어 그의 설교에 조차도 더욱 더 주목 할 만하다.47) 이 단순성이 물론 기독교 강요에 경우 그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좀더 복잡하다는 면에서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 강요에서 조차도 그 배열의 조화가 있다는 점에서 칼빈이 성경적인 웅변을 따르려고 시도한 점이 발견된다. 이 점에 있어서 칼빈은 한 예로 당시의 멜랑톤의 신학통론(Loci Communes)과 같은 다른 책들과 아주 대조적이다.
이것은 우리로 첫번째 나의 소제목인 간결성과 용이성(brevitas et facilitas) 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 해석학의 궁극적인 전체는 성경의 명료한 간결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의미에 있어서 간결하다. 즉 거기에는 해석의 복수성은 없다. 그것은 의미에 관한한 간결하고 분명하며, 단지 인간 저자가 찬양을 받기 위한 많은 말을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다. 본 저자의 결론은 칼빈의 해석학 방법이 성경안에서 발견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VII 결론
우리는 칼빈의 해석 방법 안에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인문주의 영향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 간결성의 개념 조차도 고대 수사학으로 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48) 교부들의 자료들 또한 마찬가지 임을 관찰했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칼빈이 16세기로 부터 떠나야 할 것이다. 모든 영향들은 학문적인 연구들에서 잘 논의 되었다. 그러나 본인의 확신은 칼빈이 교묘한 수사학이 개념을 분석한 것과 그것과 해석 방법론에 관계에 적절한 관심을 보여 주지 못했다.
교묘한 수사학은(Rhetorique frivole) 간결성과 용이성에(brevitas et facilitas) 아주 대조적이다. 교묘한 수사학은 바울의 방법과 반대가 되는 것으로 칼빈이 비판을 했다. 간결성과 용이성은 비록 부분적으로 르네상스 개념이지만 칼빈이 이 방법을 따른 것은 자신의 방법을 성경의 방법에 따른데서 근거하고 있다. 이것이 이 논문의 중심 주제이다. 확실한 결론들이 다음과 같다.
칼빈의 해석 방법에 대한 대부분의 많은 가정들이 수정되어야 한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의 예를 든다면 파커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몇 문장으로 방법에 관한 칼빈의 견해가 발견되는데, 첫번째, 방법은 목표를 위한 유일한 수단인데, 그것을 위해 최종적인 주장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중요한 일은 성경이 이해되 어야 한다는 것과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뗳게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두번 째이다. 성경은 간결함(compendium)으로써 뿐만 아니라, 긴 주석(prolix commentarii)으 로도 충실하게 설명될 수 있다.49)
이것은 실제로 정당한 주장이 아니다. 파커 자신이 지적한 것처럼, 칼빈은 멜랑톤의 편파성을 비판했다. 그러나 동시에 파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는(칼빈) 이 방법 자체를 전혀 비판하지 않았고, 본문을 해석하는데 그 약점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한다.”50) 특별히 칼빈이 멜랑톤과 부쩌, 그리고 다른 개혁자들의 방법들을 정확하게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파커의 진술은 옳다. 그러나 칼빈에 있어서는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들을”51) 생략하는 일은 성경을 주석할 때 그의 강한 의도가 아니었다. 그들의 방법을 솔직하게 말로써 거절한 것이 아마도 그를 조급하고 교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가 왜 글로써 거절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본 논문에서 취급할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파커가 지적한 것같이52) 칼빈은 자기의 방법이 멜랑톤 그리고 부쩌의 방법과 차이점이 있으며, 그들의 방법 보다도 훨씬 우수하다고 생각한 점은 강조되어야 한다.
왜 칼빈 조차도 주석을 쓰는데 힘들어 했는지 다시 한번 질문을 해 봐야 한다. 그 이유가 칼빈이 “인간의 작품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용기를 갖고”53) 한 것인가? 아니다. 칼빈의 동기는 그것 보다도 더 심오하다. 칼빈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자기의 해석 방법론에 적용한 성경 해석학 이었다. 칼빈은 물론 동시대의 해석가들의 단점들을 알고 있었다. 칼빈이 시도한 점을 그가 프로테스탄트 주석의 패턴을54) 단절하고 성경 해석의 평생 과업으로 동기를 준 간결성과 용이성의 성경적 방법으로(to a biblical method of brevitas et facilitas) 돌아간 것이었다.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Philadelphia
http://blog.daum.net/holylife2/17208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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