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개혁주의신학자

출애굽기 강의 2

출애굽기 강의 2
김성수 교수
 
21장
세속세계에서의 노예는 어떤 의미인가? 영구적으로 주인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이런 당시의 노예제도에 비춰본다 면은 6년 섬기고 내 보내라 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6년 후에 강제적으로 자유케 함으로 이스라엘 내에서는 어떤 한 사람이 절대적 소유를 나타내지 못한다. 이스라엘 내에서는 모든 사람이 형제이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절대적 소유를 나타내지 못함을 말한다. 또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소유권이 없음을 말한다.
제도적으로 회복을 만듦을 볼 수 있고, 근본적으로 동등 됨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섬겨라 함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종의 예를 드는가? 인간관계에서의 가장 극단적 관계이기에 이 관계가 인간적 관계에서 해결된다면 나머지 관계는 다 해결되기에 예증적인 표현이다. 모든 상하질서인 인간관계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이다.
남자 종과 여종의 차이가 있는데 상전이 아내를 줄 경우에는 아내와 자식은 주인의 소유가 됨을 말하는데, 만일 자유케 되는 종이 주인과 아내를 사랑함에 영구적 종이 되길 원함은 영구적으로 귀를 뚫어 그 사람의 소유가 됨을 말하고 있다. 강제로 인해 종이 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이유가 있을 때(가족 때문에) 종이 될 수 있다. 여기서는 가정의 귀중함을 말하고 자한다. 노예라 할 찌라도 가정의 유대를 유지할 수 있도록 주인은 배려해야 됨을 말한다.
여종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여종의 경우 6년만에 나가면 곤란한 일을 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자기의 첩이나 아내로 살아야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그래서 나가라 하지 말아 라고 한다. 만약 나가게 될 경우는 주인이 종을 아내나 첩으로 사용치 않음을 말하고 있다. 출 21:8 여종을 자유케 하게 될 때 속전을 받지 않음은 타국인에게 팔지 말아라 함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쫓겨나서 이방우상종교와 타락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심각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인으로 독특한 정체성에 위험이 오기 때문에 외국에는 팔지 말라! 라고 말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비록 여종이라 할 찌라도 이스라엘인으로 영적 은혜와 권리를 박탈하지 말라는 보장을 한다.
정식 며느리처럼 대하고(21:9절) 주인이 다른 아내로 삼을 때도(21:10절) 세 가지 의무를 다해라.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를 거부하지 말라! 아내로써의 권리를 가짐을 말한다. 아내 권리에 대한 보장을 말한다. 이스라엘 내에서의 종을 품꾼처럼 대하라! 라고 말한다.
21:12-
과실치사와 고의적 살인을 구별하는데 악한 의도에서 고의적 살인은 제단에서 끌어내서 죽여라. 부모를 폭행하면 죽여라! 인신매매들도 죽여라! 어린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어린아이가 겪는 위험은 여종을 타국에 파는 경우와 똑 같다. 영적 살인이다!
쌍방 폭력에 의해 일어난 여러 경우 중 돌이나 연장을 사용하면 죽지 않고 상해를 당해 불구가 안되면 사형은 면하지만 치료를 낫을 때까지 하며, 손해 배상을 해야된다.
종의 경우도 폭력의 책임을 못 면한다.
싸움 도중 임산부의 유산(21:22)했는데 아이가 살면 벌금형이며 죽으면 인간적으로 똑같이 대한다. 이것은 낙태시술과 관련되어 있는데 태아를 죽이는 것도 살인 행위임을 말한다.
 

2000/11/21 
시험 : 율법 주심의 의의(출애굽과 관련하여)
치다. 폭력을 말하면서 정도가 지나치면 살인이 되는데, 과실 치사는 살의가 없기에 벌을 경감시키면서도 그러나 오살에 경우엔 제단에 끌어내어 죽이라. 보응을 받게 한다.
출21장 15절부터
살인자에게 처하는 형벌은 극형에 처하게 하는데, 폭력의 경우는 구분된다. 폭력의 대상이 부모일 땐 죽이라고 한다. 폭력의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형벌의 가중이 정해진다.
유괴해서 파는 행위에 대해서도 극형에 처하게 한다.
연장으로 심각하게 상해를 함과 중간적으로 폭행이라 할 수 없는 것(유괴, 부모 저주 등)은 전체적 흐름 속에서 폭력의 이야기 중에 말하고 있음으로 이것도 일종의 폭력이라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이 짐작된다. 이러한 죄악은 예외 없이 사형에 처한다.
죽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언급된 범죄는 공동체 적인 삶 속에서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질서를 파괴하고 손상시키는 것들이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범죄행위는 공동체의 질서를 위태롭게 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살인, 폭행 등 이런 행위를 한 사람은 공동체의 존립을 위태하게 하는 심각한 자이기에 공동체에서 끊어야 한다. 신약에서는 출교로 설명할 수 있다.(고전 5장. 너희가운데 쫓아내라!)
종의 죽음에 대해서 종이 죽을 경우는 주인도 처벌을 당한다. 종도 근본적으로 보장함을 볼 수 있다.
아이 밴 여자의 생명을 잃는 일이 발생경우와 생명을 잃지 않는 경우로 나뉘는데, 잃지 않을 경우는 벌금으로 한다.
출 21:22에 아인 밴 여자 이야기
당시엔 어린아이들이 잘 죽었다. 그러므로 태아 경우에 생명을 책임지라는 것은 억지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죽음은 태아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서구 사회는 낙태에 대해서 강력히 행하다가 성의 개방으로 낙태에 대해 부드러워졌다.
낙태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강간을 당해 임신한 경우 등 여러 가지 난감한 경우는 죄로 인한 불행한 경우이다.
성의 목적을 쾌락으로 보기 때문에 성범죄가 생기게 된다. 이 중요한 목적은 부부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경건한 씨를 잉태케 하는 것인데, 지엽적인 목적인 성적쾌감이 앞서게 된다.
바울도 아내를 거룩하게 취하라! 성 관계를 정결하고 거룩하게 하며, 신자의 생활에 거룩한 부분으로 행해야 됨을 말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ojo por ojo, diente por diente)는 다른 사람에게 끼친 손해 정도만 끼치게 해라. 이 법을 다른 맥락에서 볼 필요도 있다. 말하자면 인간의 실제적 상황인 역사적 배경 속에서 볼 수 있는데 가인 계통인 라멕이 지은 시에서 자기에게 사소하게 가한 것을 77배나 갚겠다. 잔인한 복수심이 생기는 것이다. 잔인한 복수심에 대한 제어의 역할의 뜻도 있다.
22장
도적질이 경우는 4,5배로 변상케 한다.
22장 18절-19절 신접 한 자는 영적 간음자 이다.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자녀 신분을 더럽히는 것이며, 짐승과 행위 하는 자는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약한 자를 억누르고 착취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준다. 약한 자의 관심에서 계속 보여주기를 형제에 대해 돈을 꾸어줄 때 받을 수 있는데 가난한 사람인 경우에 받지 말라고 한다. 당연히 받을 수 있는데 받지 않는 것은 긍휼의 마음이다. 그 다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웃의 겉옷을 전당 잡았거든 해지기 전에 주라고 한다. 맨 몸으로 추워 벌벌 떨 것인데 그런 사람의 처지를 돌려주라고 한다. 이것 역시 긍휼의 마음이다.
하나님 백성의 삶의 규범. 다른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삶에 있어서 자세는 남의 삶의 원리를 인정해주는 것이고, 만일 그들에게 손해를 끼쳤으면 철저히 책임을 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삶의 규범은 남의 것 건드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랑에까지 나아가야 됨을 말한다. 이것은 내가 반드시 해야 될 책임이 없기에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임을 말한다.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거짓 증언은 다른 사람의 해를 끼치는 것은 폭력에 해당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거짓증언은 히브리어로 폭력의 뜻을 가지고 있다.(폭력. 거짓증언) 약한 자들 중에서도 악한 자들도 많다.
제일 어리석은 것이 다른 사람이 악하게 한다고 내가 악하게 하는 것이다.
가난한 자! 힘없다고 억울하게 죽이면 안 된다. 악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내어 버려 두지 않는다.
신자의 긍휼은 말 못하는 짐승에까지 확대 될 수 있다.
안식일에도 소와 나귀와 개까지도 쉼을 얻게 하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의 적극적인 면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안식일 논쟁인 병자를 고치는 것의 합당한 것이냐? 예수님은 대답을 특별하게 하시는데 고쳐서 살리는 것이 안식일 정신이다! 라고 말한다. 안식일의 적극적 이해가 안되면 이해되지 않는다. 바리새인은 안식에 대한 오해로 '일을 하지 않아야 된다' 라는 편협적인 생각을 함으로 충돌이 올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십계명의 확대시킴을 볼 수 있고, 이 법을 어떤 맥락으로 관찰해야됨을 알 수 있다. 즉 안식! 하나님께서 만물을 선하신 뜻대로 모든 축복과 은혜를 누리게 하는 것이 교훈의 목표이다. 죄로 인해 파괴된 것을 복구, 개조하는 행위이다. 도저히 공동체에 속할 수 없는 사람들에 죽이라는 것은 소극적인 의미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이다. 이러한 법들은 깨어진 법들을 회복하는 것이며 안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여태까지는 일대일의 관계를 말했지만, 이젠 절기를 말한다. 절기는 이스라엘이 공동체로 하나님을 섬기는 교제의 형식이다.
절기와 관련해서 이야기 하다가 엉뚱하게 23장20절의 내용이 나온다. 갑자기 이 이야기가 왜 나오는가?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어떤 인물을 보내겠다" 앞선 인물을 우리를 이끌고 "길에서 보호하시겠다". 라고 한다. 이런 일을 하신 주인공을 보내겠다 라고 한다. 21절엔 그 앞에서 스스로 조심하라! 나보다 높은 분에서 조심하게 된다. 우리의 죄악을 묵인하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내 이름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23장 20-22 하나님 앞에선 우리가 어떤 자여야 되는가? 를 말해주고 있다.
성령께서 하나님이심을 표현하는 신적 표현이다.
이때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는데, 이제부터는 하나님 사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데, 구름기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에 임재하여 이스라엘을 인도하는데 애굽의 발길을 끊으심에 대해서 표현할 때 여호와의 사자로 구름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자라는 분을 보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임하신 방식인데 이분은 인간도 아니요, 천사도 아니다.
 

2000/11/28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거기서 하나님께서 제일 처음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낸 목적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너희를 내게로 데려왔다." 출애굽의 진정한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다. 이스라엘을 가까이 나아오게 한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으로 나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하게 되길 원하시며,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다. 하나님을 만날 때 옷을 빨고,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고 즉 자신을 성결케 하는 크게 얘기하면 자기에게로 부르시고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속한 현장인 시내산에 강림하였기에 이러한 만남 때문에 성결하라! 라 말씀하신다. 율법이란 명칭으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성결의 법칙은 상당히 광범하다. 일반적으로 성결한 것은 제의적 형태인 의식들이었다. 일상생활과는 전혀 상관없는 신당과 제물 등 특별히 드리는 것과는 상반된 것을 요구하신다. 이중적인 신자의 삶이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출 20장에서 말하는 거룩한 삶과 규범의 영역은 우리의 모든 생활영역을 다 포함하고 있다. 심지어 짐승과 농토까지 포함하고 있다. 물론 일반 종교의 제의적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제의의 의미는 다르다! 거룩한 삶의 영역이 한없이 포괄적이고 광범할 뿐 만 아니라. 굉장히 깊다. 마음속에 대한 것이 순종의 형태에 나타난다. 이것이 하나님 섬김의 거룩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이 23장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크게 얘기하면 1. 이스라엘을 구원한 목적. 2.하나님과의 만남에 있어서는 거룩한 성별을 요구 3. 거룩함이 무엇이냐 이 모두가 율법주심의 목적이다.
24장 언약체결
모세와 아론 그리고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70인 장로를 올라오게 하신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들을 올라 오라! 라고 명하시는 하나님. 이것은 어떤 내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에게 오게 하심에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 올라오라는 명령을 듣고 순종치 않고 모세는 언약의식을 행한다. 구조상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들을 올라 오라 명하시고 언약의식을 행하고 명령을 따라 오른다. 바로 따르지 않고 언약의식을 행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아가는 필수적 조건 가운데 언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건을 붙이기를 모세만 나아오게 하고 나머진 근접할 수 없게 하는데, 무언가 이스라엘이 자유롭게 나아올 수 없게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언약의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모든 율례를 고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출21장1절에 "네가 백성 앞에 세울 율례는 이러하니라" 이 제목이 23장까지 전체내용을 포괄한다. 하나님께서 그가 요구하신 성결의 선포를 모든 백성이 한 목소리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라고 말한다.
제사를 드릴 때 뿌린 피에 대해 말하길 언약의 피라 말한다. 이것은 언약의 역할에 중요한 역할 함을 볼 수 있다. 모세는 언약체결의식을 행한 후에야 올라갔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함으로 나아올 수 없음을 보여주는데 이런 점과 관련해서 언약의 피의 의식에 관련되어 질 수 있다. 출19장에서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시니 만날 준비를 하라 하시면서 요구하신 것은 성결이었다. 이 성결이 얼마나 엄중한 요구인가면은 어겼을 때에 죽임을 당 케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엄중한 것을 볼 수 있다.
언약의식에 피를 부각시키는 것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도 잔을 나누면서 언약의 피라 말씀하시는데 출 23장의 상황을 전제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피 뿌림이 있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내게 가까이 오라는 명령을 따를 수 가 있었다. 24장 이 내용은 복잡한데, 율법의 기능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것을 말한다. 율법의 기능 중에 순종과 관련이 있고, 이것과 관계해서 언약의 피는 어떤 역할을 하며, 피를 제단과 백성들에게 반반 뿌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나님께는 어떤 의미를 가지며, 백성들에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를 말한다. 그때 그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을 만나 뵈었는데 그들이 만난 하나님에 대한 묘사는 어떤 의미를 말하는가? 하나님의 발 아래가 녹보석과 같았다는 것은 임재 영역이 지극히 아름답다는 것을 말하며, "하늘처럼 맑았다" 라는 의미는 하늘 영역 자체와 같이 순전하였다 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땅에 속하지 아니한 영광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변화산에서의 예수님의 옷이 흰옷에 광채를 말하는데 아무리 사람이 세탁을 해도 그 보다 희게 할 수 없는 즉 그의 영광이 이 땅에 속하지 아니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를 상징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귀인들을 치지 않으셨고, 먹고 마시는 것을 행했다. 이것은 교제를 말하며, 하나님과 신령한 교통을 가졌다는 뜻을 말한다. 요한1서에서의 사귐은 이것을 배경으로 설명한 것이다.
언약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언약의 본질은 나는 네 하나님이고 너는 내 백성이 되라! 이것이 언약의 본질이다.
율법이 여기에 개입되는 데 율법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며, 그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율법은 가르치는 것 뿐 만 아니라 그들에게 행하기 위한 것이다. 제사행위에 의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 규범을 말하고 있다. 모세에게 제일 먼저 말씀하신 것은 "성막을 지어라" 라고 명하신다. 성소 공간은 하늘의 영적 존재들이 사방을 둘러싼 형태를 가지고 있다. 욥기에서 세계역사를 결정하시는 장소를 하나님 앞에 영들이 좌정한 모습을 설명한다. 비록 지상에 있지만 성막, 성소 이 공간은 하늘 영역을 설명한다. 히브리서는 성소를 하늘의 모형이라 말한다. 모세에게 내가 네게 보인 식양(설계도)대로 해라. 성소라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보좌를 말하며 그 진정한 보좌는 하늘에 있음을 말한다.
성막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 보좌에 대한 상징이라 보면은 이 것이 언약과 밀착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언약은 부르심과 교제함, 통치함을 이루기 위함. 성소도 통치와 부르심과 교제함을 볼 수 있다. 성소의 진행 과정을 보면은 중앙에 성소가 위치하고 3지파씩 나누어 나아가고 있다. 외인이 가까이 가면 칼로 쳐죽이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영적 원리를 상징하고 있다. 성소를 건설해서 봉헌하는 것으로 출애굽기는 끝이 난다.
25장부터 31장까지의 내용이 35장부터 마지막까지 거의 중복된다. 그 중간에 특별한 사건인 금송아지 사건이 기록되어있다.
금송아지 사건의 발단은 모세가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돌판을 받기 위해 40주야를 머무는 동안에 산아래 사람들이 지쳐서 아론을 위협하여 우리를 위해 신을 만들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왜 그렇게 하냐면은 우리를 인도한 모세가 40일 동안 아무소식이 없자! 모세 대신 인도할 신을 만들어내라! 이런 백성들의 요구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들의 요구 속에 영적 상태를 암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상을 만들어내라는 요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세가 없어졌기 때문인데, 이것은 어떤 형태의 신을 요구하는 것인가? 눈으로 볼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는 신을 요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행해서 그와 상의할 수 있었음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충족이 되었는데, 우선 이들의 이런 요구는 이들의 신앙의 성격이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모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영이라는, 육적인 감각 차원을 초월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눈에 안 보인다'는 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고, 이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깨닫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영적인 존재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영적 임재도 실제적 만지고 보는 것 보다 더 깊음 체험임을 몰랐던 것이고, 하나님도 자신들이 볼 수 있는 모양으로 나타내 보이길 원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그 안에 가둬버리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내려 버리는 것이다. 피조물의 한계 속에 가둬버리는 것을 말아라! 라는 명령을 간과하고 만다.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모습을 본 모세는 돌판을 던져버린다. 그 돌판은 언약의 증거 판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깨뜨린 것은 언약이 파기되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사실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책망하시지 않는 것이다. 이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하신 약속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 모세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한다. 모세는 하나님께 탄원한다. 모세의 탄원으로 하나님은 돌이키시고 용서하겠다고 한다.
금송아지 사건은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한 오해 때문에 나오는데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한 가르침이 33장에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가라 하면서 "나의 사자를 너 보다 먼저 보내어 그 땅의 백성들을 축출하리라!" 말씀하신다. 그것은 회복하신 것을 말하며 이 사자의 동행이 출애굽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사실로 이스라엘은 자신의 죄를 슬퍼하고 회개한다. 하나님은 이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의 회막을 진밖에 놓도록 한다. 이것이 나중엔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로 성막을 둘러 외인이 접근하지 못하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무(無)로 돌리시겠다는 계획을 철회하시고 다시 역사를 재확인하는 것과 사자를 보냄은 사자의 역할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모세는 마지막 부분에서 중요한 요청을 하는데, 나와 함께 보내실 그 분에 대해 알기를 원했고 또 한가지는 나로 주의 길을 알게 하여 주를 알게 해달라고 한다. 이 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요청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이 육적 감각을 벗어난 하나님을 제대로 몰랐기에 모세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신 사실에 대해서 깊이 알려달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자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나의 얼굴이라 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의 핵심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것이 핵심이라 말한다. 다른 이방과 구별된 것은 하나님의 동행이다!
그와 동시에 내가 은혜를 베풀자에게만 베풀겠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며 자신을 나타내심에 대한 한계를 보여준다. "네가 내 얼굴은 보지 못하고 내 등만을 볼 것이다" 뒷모습은 제대로 구별하지 못함을 말하는데 모세가 경험하는 하나님은 뒷모습에 불구함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다 나타내시면 그 영광을 감당할 자가 아무도 없음을 말한다. 사람으로서는 신적 본질에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말한다. 이와는 달리 말씀이 육신 되어 예수께서 역사 안으로 오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얼굴이다. 완전히 나타낸 형상이다.
http://blog.daum.net/kkho1105/7080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