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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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자

하나님의 명칭

하나님의 명칭
 
성경에 나타난 모든 이름들은 다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담은 모든 짐승들에게 그 본성을 따라 이름을 주었고,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한 것은 생명 곧, 모든 산자의 어미란 의미로 주어졌다. 라멕은 안위의 뜻으로 노아라고 하였고, 아브람에게 많은 무리의 아비가 될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 고쳤다(창17:5,15). 예수님은 승천 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었고, 신자들은 새 예루살렘에서 새 이름을 받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이름은 그 사람 혹은 사물의 본질적인 특성을 나타내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도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계시일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셨다(출20:7).
슬로밋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며 저주할 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저주한 사람을 진 밖으로 끌어내어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하신 후, 또 경고하기를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저주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레24:10-16)고 하셨다.
이렇게 여호와의 이름은 두렵고 거룩하여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이러한 이름은 오직 하나이지만 그 풍부한 속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계시되었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아무렇게나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로 주어졌고, 많은 이름들이 있지만 다른 이름으로 바꿀 수 없는 본질적인 이름들이다.

그의 이름은 밖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완전성(속성)과 동일하다. 여호와의 이름은 그의 영광과 동일하여 아름답기 한이 없고(시8:1),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능력과 동일하며(출15:3),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시105:3)고 하신 말씀에도 성호가 곧 하나님 자신임을 보인다.
따라서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 욕되게 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그 큰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겔36:23), 이스라엘이 넘어져도 언약을 영원히 세우시니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다. 환난날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를 높이 드신다(시20:1).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이기 때문에 의인이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는다(잠18:10).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할지니 내가 복을 주리라고 하셨고(민6:27), 어디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기념하는 속에 강림하사 복을 주시되(출20:24), 특히 그 이름을 위하여 세워진 성전에 그는 계신다(삼하7:13).
그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므로 환란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신다(대하20:9).
그는 주의 이름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며(시54:1),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신다(삼상12:22). 여호와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노하기를 더디하며(사48:9), 그의 이름을 인하여 우리를 인도하신다(시31:3).
따라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전파하며 고백하고 두려워하며 크게 하고 영화롭게 해야 한다(창4:26, 12:2, 출9:16, 신28:58, 사26:8).

신약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은 더욱 깊고 풍부하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독생자이신 말씀이 우리에게 성부 하나님을 나타내셨기 때문인데 예수는 세상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다(요17:6).
인자 외에는 아무도 성부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으므로 인자의 소원대로 아버지를 계시하시는 자에게만 하나님이 참으로 알려진다(마11:27).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 성부가 함께 하시고, 아들을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자임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하나님께 관한 모든 지식에 대한 보증이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다는 의미를 지닌 예수의 이름은 그리스도의 독특한 이름이다. 누구든지 그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으며 오직 그의 이름만 불러야 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행4:12). 예수의 이름으로 이적과 기사가 행해지며(행4:7, 30),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고(행2:38),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며(요1:12),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일5:13).
두 세 사람이 그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예수도 그들 중에 계시며(마18:20), 누구든지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주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이루어 주신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예수의 제자 된 것을 사람 앞에서 시인한다.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은 또한 하나님과 교제하는 증표가 된다. 실상인즉 구원에 이르는 모든 축복이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며,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의 새 이름이 그 위에 곧 그의 이마에 있어 세세토록 주와 함께 왕노릇하게 된다(계3:12, 22:4).
이러한 하나님의 이름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아무렇게나 부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계시하셨으므로 자신이 어떠함을 비로소 우리에게 보이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 거룩과 축복, 모든 속성과 덕, 곧 하나님의 본질이 그의 이름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름이 성경에 여러 모양으로 계시될 때, 의인관적 혹은 신인동형적 표현으로 나타났다.
 

 
 
 
의인관적 표현
 
비록 말씀이 육신이 되었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육체를 가지셨다고 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성부 하나님을 잘 아시는 독생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셨고, 또 영은 뼈와 살이 없다고 하셨다(눅24:39).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인간적인 언어로 표현되었다.
 
성경에는 여기 저기 이렇게 의인간적 표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성경이 의인관적이다(H. Bavinck,  G.D. II, 68).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찾아오시는 일, 곧 육신이 되신 말씀에 관하여 증거한다.
말하자면 성경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 비하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신적 차원에서 말씀하셨다면, 어떠한 피조물도 그것을 이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초부터 하나님은 스스로 자기를 낮추셔서 인간적인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도 모두 지상적이고, 인간적 관계로부터 빌어 쓰여졌다. 피조물에게 특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적용된 것이다.
 
특히 인간의 각 부분, 지체, 감각, 행동 등이 그대로 하나님에게 적용되었다.
예컨대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라"고 하셨다(출33:20). 여호와의 눈은 인생을 통촉하시고(시11:4), 야곱을 눈동자 같이 지키셨다(신32:10).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넉넉히 고기를 먹일 수 있는 하나님의 손은 짧지 않다(민11:23). 이와 같이 여호와의 입술(사30:27), 그의 팔(출15:16), 그의 콧김(출15:18), 그의 손가락(출8:19), 그의 품(시74:11), 그의 품속(요1:18), 그의 발등상(사66:1) 등 성경은 신인동형적 표현을 그대로 쓰고 있다.

다음으로 인간의 감정적 정황이 하나님에게 그대로 쓰여졌다.
 
예컨대 기뻐하심(사62:5), 슬퍼하심(시78:40), 근심하심(시63:10), 염려하심(신32:27), 오래 참으심, 특히 그의 질투하심(출20:5, 신32:21), 후회하심(신32:36), 미워하심(신16:22), 원수를 갚으심(롬12:19) 등도 다 의인관적 표현이다.
 
그밖에 모든 인간적인 언행심사와 행동이 하나님에게 적용되었다.
사실여부를 알고자 하심(창18:21), 기억하심(출2:24), 안식하심(창2:2), 일하심(요5:17), 보시려고 강림하심(창11:5), 향기를 흠향하심(창8:21), 보좌에 앉으심(시9:7), 일어나심(시68:1), 거니심(레26:12), 손바닥에 새기심(사49:16), 막대기로 세상을 치심(사11:4), 상처를 싸매심(시147:37), 관을 씌우심(시8:5), 띠 띠우심(시18:32) 등.

 
더욱이 직명과 가족 관계에 쓰이는 명칭을 그대로 하나님께 쓸 경우가 많다.
신랑(사61:10), 남편(사54:5), 아버지(신32:6), 경영자(히11:10), 농부(요15:1), 목자(시23:1), 치료자(출15:26) 등.

심지어 생물 및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비유적으로 그에게 적용되었다.
사자(사31:4), 독수리(신32:11), 어린 양(사53:7), 암탉(마23:37), 새벽별(계22:16), 등불(계21:23), 떡(요6:35), 반석(신32:4), 성전(계21:22) 등.

 
더욱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이름들 예컨대 엘(강한 자), 여호와(존재자), 아버지 (아들) 등의 이름도 모두 피조물에게 먼저 적용된 개념이었는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발탁되어 그 의미의 차원이 높여졌다.

심지어 소위 비공유적 속성, 예컨대 불변성, 비의존성 등도 피조물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본질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고, 시공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개념을 부정하는 소극적 개념들이다.
 
이와 같이 전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존귀한 이름들이 하나님 자신을 알리는데 쓰여졌다. 생물체나 무생물이나 유기물이나 무기물이나를 불구하고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는데 쓰여졌다.
 
하나님의 본성은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여 인간의 모든 감각 밖에 있지만, 또한 만물 속에 그 자신의 영광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세계는 하나님과 대립하여 맞서 있는 독립적인 존재이거나 제 2의 신이 아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그 부요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피조물의 이름을 따라서 불리어질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인적으로 부르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피조물의 수준으로 낮추셔서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1. 구약의 명칭들
 
(1) El
      강하고 권능있는 분, 경외의 대상
 
     Elohim
      강하고 권능있는 분, 경외의 대상 
 
 
     Elyon
      숭고한 자, 존귀와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의 지고성을 나타냄 (창14:9-20, 민24:16, 사14:14)
 
      그런데 이 명칭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고유명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다음을 보라
        (a) 우상들이나(시95:3, 96:5)
        (b) 사람들에게(창33:10, 출7:1)
        (c)  통치자들에게(삿5:8, 출21:6, 22:8-, 시82:1)도 사용된 용례 있음
 
 
(2) Adonai
      하나님을 전능하신 통치자, 모든 것의 굴복을 받으시며, 사람을 종으로 소유하시는 분으로 묘사
 
(3) 이 숭고하신 분이 피조물과의 교제에 들어가시기 위해 자신을 비하하셨다는 명칭이 있다.
     Saddai
 
     El-Shaddai
    
     이 역시 하나님의 위대성을 강조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복과 위안의 근원 이   되신다는 것을 나타냄 (출6:3을 보라)
 
(4) Yahweh
     자신을 은혜의 하나님으로 계시, 언약의 관계에서 불변하시다는 것을 지시함
 
    Yahweh-Tsebaot (만군의 여호와)
 
 
 
2. 신약의 명칭들
 
(1) 데오스 - 엘, 엘로힘, 엘룐의 번역어
 
 
(2) 큐리오스 - 주(主)
     아도나이와 여호와(야훼)를 대신한 이름
     신민(神民)의 소유자, 지배자로서의 하나님
     왕의 권세와 권위를 가지신 분으로서의 하나님
 
 
(3) 파테엘
http://blog.daum.net/kkho1105/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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