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강의
이사야서 강의
김 성 수 교 수
앗수르에 의한 북 이스라엘 멸망, 바벨론에 의한 앗수르의 멸망, 바사에 의한 바벨론의 멸망은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사건이다. 앗수르에 멸망당하지 않은 유다를 이스라엘의 ‘남은자’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유다의 멸망은 동질의 사건이다. 단지 100여년 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났을 뿐이다. 남은자를 멸망시킬 바벨론이 바사에 망한 것과 그로 인해 유다가 해방된 것, 앗수르가 침입했다가 망한 사건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건의 전조요 시작이다. 이것은 100년 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한 사건이다. 성격이 동일할 만큼 이 두 사건은 하나의 역사적 흐름이다. 「부패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몰락의 역사」 앗수르가 침입했다가 망한 것은 사 10장에서 그 오만함 때문에 처벌하심으로 유다를 구하겠다는 말씀의 1차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사 10장의 이스라엘의 해방은 히스기야 시대에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 구원은 메시야를 통한 구원이요, 방식은 매우 독특한 것임을 말하는 만큼 히스기야의 구원은 성취이면서 완전한 성취는 아니다. 이것을 더 분명히 해 주는 것이 히스기야에 예언된 마지막 예언 바벨론 포로와 히스기야 시대의 평안 즉 히스기야의 구원은 점정적이고 일시적 구원이며 긍극적인 것은 아니다.
사 14장 블레셋 멸망 예언.
사 20장 예언 성취와 동시에 애굽 멸망 예언.
예언의 성취된 역사적 사건이 기존의 예언을 확대시키는 의미가 있다. 즉, 예언의 성취는 또 다른 예언의 계기가 된다. 이런 독특한 구조를 염두에 두면 사 36장 이하는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이며, 그 성취는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모든 세력이 멸망되리라는 더 큰 구원을 선포하는 계기가 된다.
히스기야는 아하스의 아들인데 부자(父子)는 매우 다르다. 아하스는 확실한 구원을 약속하지만 앗수르를 의지했다. 그 결과 예언 성취와 함께 앗수르의 위기를 당하리라는 경고를 받았다. 히스기야 시대의 위기는 아하스의 불신앙 때문이다. 아버지와 비교하면 히스기야는 달리 눈앞에 대적을 두고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할 때 놀라운 구원을 베푸셨다. 즉, 히스기야말로 참 임마누엘이 아닌가 착각할만 한데 히스기야의 병과 바벨론 사건 등을 통해 히스기야의 구원이 참 구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사 40장 이하에 완전한 구원을 말하고 있다. 사 11장까지의 내용은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약속, 심판은 앗수르의 침입 그러나 구원은 긍극적 구원을 말한다. 따라서 앗수르 멸망이 이스라엘 긍극적 해방과 거리가 있는데 그것은 전조요 예시이다. 구원의 시작됨에서 완전한 구원을 내다보며 예언한 것이 40장 이하이다.
40장의 내용의 첫 시작이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마음에 고하라 철저하게 심판하시겠다는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마음속에 깊은 뜻을 말씀하시되 위로하다.
그 이유는 죄값이 치루어졌기 때문이다. 유다의 포로 기간과 관련 혹독한 심판 고난이 그들의 죄값이 있었고 고통 당함으로 배나 치름 받았다고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고통 당한다고 그들의 죄가 사해지는가 이스라엘이 포로기간에 겪었던 흑심한 고난이 죄값 치름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사야는 한 음성을 듣는다. 외치는자가 누군가 40장 이하가 긍극적 구원에 대한 예언이요 상당기간 무지에 가두어 두겠다는 6장과 상응 관계가 있다. 사 6장은 외치는자 즉, 천사의 음성으로 문지방이 떨렸다.
heavenly voice 세례요한은 음성의 화신 즉, 천생의 외침이 세례요한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사역에 여호와의 길을 평탄케 하라. 모든 육체가 그 영광을 함께 보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오심을 전제로 한다. 즉, 오시는 하나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 그 장소는 광야 죽음의 땅, 심판의 땅이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땅에 찾아오시는데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으로 황폐화된 죽음의 땅에서 하나님 맞을 준비를 하라. 하나님의 오심과 더불어 그 영광 하나님이 어떤 분임이 드러나고 모든 육체가 보리라.
외치라 모든 육체는 풀, 꽃.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반드시 이를 것임을 말한다. 우선 찾아 오시는 곳이 시온 예루살렘이다. 그 오심의 성격은 그의 강력으로 오실 것이요. 통치의 팔로 임하실 것이다. 그의 능력 강력으로 오시는 오심이다. 그의 능력의 결과로 얻으시는 것은 상급이 그에게 있다. 그의 양떼를 목자와 같이 끌어 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의 능력으로 통치한 결과가 그의 양떼이다. 그의 능력으로 그의 백성을 얻으신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찾아오시는 의미에 대해 간략히 말함. 시온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능력 권세가 막강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 앞에서 세상 나라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27ff 야곱아......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깊은 실의에 낙담한 이스라엘의 모습 이와 같은 심판에 대한 그의 백성을 찾아오셔서 새힘으로 불러 일으키시되 너희 하나님은 세계 열강 보다 능력있고 무한한 능력과 지혜의 하나님이고 이 세상의 정치세력 너희를 망하게 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에게는 아직도 소망이 있다. 여호와를 바랄 여지가 있다. 여호와를 바라는 자 그를 의지 하는 자 새 힘을 얻을 것이다. 심판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자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찾아 오시고 그를 바라는 자에게 양떼를 삶고 새힘으로 강건케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40장 이하에 보면 구원 예언이 학대되어 종말에까지 비친다. 40장 이하는 교회의 구원이 열방 세계와 관련해서 거론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심판 당한 그 백성을 찾아 오셔서 구원한 소망의 근거에 의해 41장 이하에서 이렇게 말한다. 섬들은 조용히 하고 나라들은 그 힘을 새롭게 하여 나아오라 따져보자.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이방을 불러 하나님 앞에 심문 당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주관하시는 천지의 주제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다. 모든 우상은 결국 거짓 것이요 마지막날에는 그 정체가 드러나 그를 버릴 것이고 여호와 홀로 한 하나님임이 드러 날 것이다.
이방을 불러 누가 참된 하나님인가를 묻는다. 물론 당시 이스라엘은 열방의 속박에 있기 때문에 그 백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 결코 힘이 없으셔서 능력이 부족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실제는 너희를 망하게 한 것처럼 보인 열방 신들은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백성을 위한 배려 일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온 피조물의 모든 세계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세계 모든 민족을 다스리심을 드러내는 표로 동쪽에서 누가 이런 인물을 일으켰는가
즉, 동방에서 일으킬 인물을 말한다. 이 인물은 위대한 정복자이다. 그를 누가 세웠는가 4절 나 여호와가 시작이요 나 여호와가 끝이니다.
이세상의 모든 일을 시작자와 종결자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시작이요 끝이다.
앞으로 출현할 동방의 정복자가 이스라엘 구원과 관계 있을 것이라는 것을 8절에 암시한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끝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종된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은 불변.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에 택함받은 종이요 아브라함의 후손 아브라함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이다. 너와 나의 관계는 여전하다는 말씀과 동방에서 출현할 자를 말씀한 것 같이 나타나는 것은 매우 의도적이다. 이렇게 한 의미는 앞으로 출현할 동방의 인물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하나님의 오심과 강력한 나라가 되리라.
25절에서 앞의 언급 하나님께서 동방의 정복자를 일으키리라는 것을 반복하여 심하 시킨다. 이것은 온 천지의 유일한 하나님임을 나타내기 위해 세우리라는 것을 더 분명히 하고 기필코 열방을 다시 부른다. 이전의 일들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 우리가 연구하여 종국을 알리라 후 대사를 말해보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유일한 참된 하나님임을 나타내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과거 역사 중에서 내가 이런 의도를 가지고 이것은 내가 한 일이라고 한 것이 있으면 내놔 봐라. 앞으로 이 일을 내가 이 목적을 가지고 하리라 한 것이 있으면 말해 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누가 이 역사를 주장하는 존재인가를 증명해 보자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를 좌지우지 하실 분이라는 것이다. 예언은 역사를 마음대로 주관할 수 없는 자는 할 수 없는 말이다. 따라서 시대를 예언하는 것은 그가 역사의 주관자임을 나타낸다. 누가 세상 만사를 움직이는가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엘리야 시대에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 걸음 발전해서 세계 역사가 누구의 뜻대로 되어지느냐를 가지고 참 하나님을 가름해 보자는 뜻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것은 역사의 주관자 적어도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 혹은 그 이상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내 놓을 수 없다. 즉, 신이 아니다. 25절 이하 열방의 신들은 역사를 주관하는 절대자이심을 나타 낼 수 없는 반면에 25절 이하는 내가 역사의 주관자임을 나타낸다. 이내 임한 일 북쪽에서 한 나라를 일으켜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 이 일은 앗수르 침공을 뜻한다. 앗수르 멸망을 통해 이스라엘을 희생한 역사도 이에 이루어 졌다. 미래의 일 동방으로부터 그가 내 이름을 부르리라.
하나님은 과거와 미래의 역사에서 이것은 내 뜻대로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 질 일이다. 즉, 내가 하나님임을 증명하신다. 41장에서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 혹은 하나님됨을 증명하면서 앞으로 동방에서 한 정복자를 일으키리라.
42장 이전 예언의 맥락에서 한 특별한 인물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택한 특별한 종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모든 인물에게 의로운 통치를 이룰 통치자이며 11장의 메시야를 연상하게 한다. 그런데 동방에서 일으킬 정복자가 바로 이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동방의 정복자는 바사국의 고레스를 말한다. 그러나 42장의 내용을 면밀히 보면 고레스와는 다른 분이다. 성령이 임하여 공의로운 통치를 베풀리라 그 다음 2절 이하 가운데 그는 큰소리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그러면서 진정 힘으로 공의를 베풀리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그 외로운 통치를 열방이 바라게 될 것이다. 그 분의 통치의 성격과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온유한 긍휼의 통치. 고레스는 이런 통치자는 아니다. 특히 6절 이하에서 이들을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한다. 그가 할 일은 소경의 눈을 뜨며 갇힌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이분의 사역은 분명히 해방 사역이다. 그것을 눈먼자의 눈을 띄우는 사역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어두운 가운데 거하는 자를 해방시키는 사역과 관련 영적 무지 영적 맹목을 일깨우는 사역이다. 6장과 관련 하나님께서 당분간 영적 무지에 가두어 두어 심판을 받게 할 것이다는 것과 관련된 무지를 일깨우는 사역 이쯤되면 고레스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구원의 핵심은 심판의 백성을 찾아오시며 그들을 강력한 능력으로 인하사 양 떼를 모아 백성 삼으실 것이다. 그 구원과 관련 동방의 정복자를 일으키리라. 그 다음 영적 맹목에서 깨울 종을 일으키리라는 말씀을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찾아 오 셔서 이루실 구원은 하나님이 보내신 인물을 통해 이루리라.
특히 42장의 종의 사역과 관련 백성의 언약이 방의 빛으로 흑암에 갇힌자를 자유케 하실 일에 대해 9절에서 보다 이전 일이 일어나겠고 새 일을 고하도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구원은 새로운 일, 새로운 전기가 되는 일 일 것이다. 앞에서 하나님의 종의 사역을 맨 처음에 눈먼자의 눈을 띄울 것이다. 맹목을 설명하는 말이 18절에 나타난다.
귀머거리, 눈먼자, 누가 눈먼자냐, 누가 귀머거리냐 바로 나의 종과 내가 보낸자들이 바로 귀머거리요, 눈먼자들이다. 누가 여호와의 종처럼 눈먼자 이겠느냐? 여호와께서 의를 탈취 굴속에 잡히고 옥에 갖히도다.
눈먼자, 귀머거리 갇혔다 등의 표현으로 볼 때 여호와의 종과 긴밀한 관계가 있으나 여호와의 종이 눈먼자라고 한데서 혼란스럽다. 여기서 여호와의 종 나의 종은 광범하다. 하나님께서 불러 일으키는 특수한 인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였다 (41장).
특히 눈먼 하나님의 종은 이스라엘 영적으로 무지한 장님과 같은자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율법을 위대하게 하셨을지라도 도적맞고 탈취 당했다. 이것은 육적 물리적 표로 노예 상태만이 아니다. 영적 상태의 사로잡힌 상태를 나타낸다. 율법 하나님의 계시를 바로 알지 못한다 영적 무지상태 이 무지로 인한 심판의 결과가 옥에 갇힌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25ff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가리켜 내 종이 소경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혹독한 심판 가운데 있는데 몸이 타는데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지 못하고 마음에 두지도 않는 상태이다.
43장 8절 장님되고 귀머거리된 내 백성을 이끌어 내다. 내 종 외에는 누가 귀머거리 눈먼자 이겠는가 이종은 이스라엘이라는 해석이 여기서 정당화된다. 하나님께서 불러내는 대상이 두사람이다. ① 그의 종으로 세우는 사람들 이스라엘 ② 열방 이방 사람들 너희가 신인 증거를 대라. 증인을 대라. 그들의 신은 우상이요 허깨비들이다.
10절 이하 너희들은 나의 증인이다. 하나님이 참되심을 증명해 줄 증인은 너희들이다. 바로 너희들이 나의 증인이요 너희들은 내가 참 하나님임을 알고 보고 깨닫게 할 목적으로 나의 택한 종이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내가 고하였고, 구원하였고, 선포하였고, 외인이 아니다. 즉,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셨기 때문에 낮선 분이 아니다. 여기에 한가지 하나님께서 열방과 이스라엘을 함께 불러내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증인이며 그 이유는 그 역사가운데 자신을 알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부를 때 그들은 장님이다. 즉, 눈먼자들을 불러 하나님을 증명하는 증인으로 삼으시겠다. 즉, 이것은 장님의 눈을 띄어서 증인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 일을 하실 분이 42장의 여호와의 종을 전제한 것이다.
14절 이하 지금 이스라엘을 망하게한 바벨론의 멸망 예언 바벨론의 멸망은 유다의 자유 해방을 의미한다. 이 구원 자유에 대해 16절 이하 하나님을 가리켜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며 말과 병거를 물속에 잠기게 하사 잠잠케 하신 분이다. 이것은 홍해 사건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그런데 18절 이 전일을 기억지 말라 새 일을 행하리니 이미 싹트고 있다. 광야 가운데 내가 길을 낼 것이요 메마른 당에 시내를 흐르게 함으로써 들의 짐승으로 나를 존경케 하리라. 이 백성은 나를 위해 나의 찬송을 열방에 선전케 하려함이다. 옛 출애굽을 기억도 하지 말아라. 새 일을 일으키리라. 즉, 앞으로 일으킬 구원은 첫 출애굽과 비교할 때 비교되지 않을 만큼 위대한 구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눈먼 백성 자기 몸이 타지만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백성을 증인되게 하실 터인데 바벨론 멸망으로 출애굽사건을 상기시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옛 구원과 비교가 되지 않는 새 구원을 이스라엘에 체험케 하심으로 이 구원을 체험한 자들로 하나님의 찬송을 열방에 선전하고 영광 돌리게 하겠다는 말이다.
22절 이하에 야곱은 나를 피곤케 한다. 그러나 내가 너희 기대 제사를 명하였을 때 너희가 나를 섬겨 곤비해 지라고 할 것이 아니라 너희 죄로 나를 너희 범죄로 나를 곤비케 하였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하나님을 섬기는 위치에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도 하나님을 피곤하게 해 왔다. 제사를 원한 것도 아니다.
25절 나는 너희 죄악을 사하시는 분이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섬김을 받는 분 이라기 보다 죄를 사하는 분이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는 관계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 죄사함의 은혜를 통해 그 영광을 드러 낼 뿐이다.
44장 1절 이하~3절 ;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리라. 즉, 나의 성령을 그 자손에게 부으시리라. 이로 인하여 시냇가의 풀처럼 이스라엘이 무성하게 되리라.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의 생수 즉, 성령님을 부으심으로 다시 살게 번성케 하리라는 것이다. 메시야의 사역으로 맹목에서 깨어나 생명을 누리는 성령의 역사는 신약에서 분명해 진다. 이미 죄사함 분임을 말씀하고.
28절 이하에 예루살렘의 회복을 말하면서 이것을 고레스가 이루리라. 고레스는 나의 목자요 내 기쁨을 이루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목자로 삼아 세우실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세워 구원을 이루게 하셨다고 말한다. 나의 메시야 나의 목자로 부른 그를 통해 교회를 재건케 하실 놀라운 파격적인 일이다. 앞으로 행하실 구원과 관련해서 세 종류의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여호와의 종 이스라엘의 백성.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특별한 분 왜 같이 불리워졌는가. 이스라엘 구원의 매개자가 혼란스럽다. 고레스를 통한 예루살렘의 회복. 42장의 고레스와 전혀 다른 여호와 의종 그도 역시 통치자. 44장 마지막 45장 초두.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할 것이다. 가는 곳마다 승리케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요 그 목적은 그를 통해 그의 교회를 회복하고 재건하시는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일으키셔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여러 약소 민족이 자기 고토에 돌아가 이전 자기 종교를 섬길 수 있도록 한 사람이다. 이러한 조치로 이스라엘이 회복되었다. 그러므로 뒤의 내용은 한쪽은 바벨론의 멸망 선포와 함께 그들의 신들의 무력한 거짓 신 임을 말하고 있다. 47장도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미래의 구원은 바벨론 멸망으로 이스라엘 회복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42장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한 구원은 이 보다 위대한 것이요. 그 구원자는 고레스와 일치하지 않은 분이다. 맨 처음 주제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제임을 고레스와 관련해서 설명하지만 42장은 고레스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사역을 감당할 것이다. 영적 장님 됨을 일깨우겠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인 되게 하겠다. 고레스는 이 사역을 감당한 적이 없다. 49장 1인칭 표현의 한 인물 하나님의 비밀 병기는 세움 받는 사람 날카로운 것 화살같은 비밀 병기는 그의 일이다. 즉, 말씀사역을 통한 통치 정복의 모습 3절에 이 분을 가리켜 종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가 너로 영광받을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추가된다. 이 분의 사역에 대해 5절 내가 모태에서 부터 나의 종으로 형성한 자다. 야곱을 돌이키고 이스라엘을 모을자 모이지 않으려 하는 이스라엘을 돌이키는 자이다. 이 분의 일은 야곱 이스라엘을 돌이키는 분이다. 이 분이 이스라엘이라면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돌이킨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이 종의 사역을 야곱지파를 일으키며 남은자를 돌이키는 사역이라는 말이 있다. 이스라엘을 남은자로 본다면 남은자가 남은자를 돌이킨다는 말이 되어 맞지 않다. 따라서 이 종을 42장의 종으로 보는 것은 6절 이하에 이방의 빛으로 세운다는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 42장 6절 백성의 언약 이방의 빛 사역의 동일성을 갈망 할 때 나의 종 하나님의 종은 42장의 하나님의 종과 동일 인물이다. 그러면 왜 이 종을 가리켜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가 이것은 53장, 55장에서 더 분명해 지지만 적어도 여기서 특별한 종이요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웠다. 이것은 이분은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 만큼 이스라엘과 밀착된 분이다. 이분은 교회라고 불리울 수 있을 만큼 교회와 밀착된 분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말한다. 이분은 수고하였고 보상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인데 그 보상이 하나님이 그를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을 삼은 것이다.
백성의 언약은 6, 8절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 재건하시는 사역.
이방의 빛 6. 나의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는 사역.
이 분이 자기의 수고로 말미암은 보상은 백성의 언약 이방의 빛으로 무너진 교회를 회복시키고 이 구원을 세계에 전하여 많은 사랑으로 이복에 동참케 하는 것이다. 즉, 그의 백성을 얻는 것이 보상이다. 42장에는 이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을 양떼 이스라엘 자체라고 말씀하신다. 19절 이하 교회의 번창에 대해 자리가 없을 만큼 번창하리라. 50장 1절 어미는 교회 이스라엘이다. 너희 범죄 때문에 네 어미가 버림 받았다. 이스라엘 심판의 원인이 범죄 이다. 4절 1인칭의 인물 말씀으로 곤비한 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알게 하신 자이다. 영적으로 무지하여 하나님을 배역하는 자에 대한 말씀.
연약하고 곤비한 이스라엘을 도울 분이 아무 죄도 없이 고난을 수치를 당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6절 내용 어떤 의미에서 자원하여 자발적으로 고난과 수치를 당하는 모습 7절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그 결국이 수치로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 도우심으로 수치를 당치 아니 하리라는 것이 특별한 선생에 대해 이스라엘은 듣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세우는 사역자의 성격 연약한 자를 말씀으로 도우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높아질 것인가.
51장 의를 추구하는 자는 들으라. 의로와지기를 원하는 자를 하나님을 구하는 자로 표현한다. 이 의는 특별한 의 즉, 자기의 의가 아니고 하나님을 구하는 하나님에게서 얻어지는 의이다. 하나님을 바라볼 것을 말씀하면서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말씀하면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말씀하신다. 이것은 한 사람을 불러 하나님이 축복하여 많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됨은 그의 부르심과 축복하심으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한 다음 죽음의 땅 광야를 에덴처럼 회복하고 기쁨과 찬송 소리를 들리게 할 것이다. 앞으로 교회를 긍휼히 여겨 광야 같은 곳을 에덴처럼 회복하리라는 것을 시온의 회복의 초창기처럼 하나님의 주권적 뜻 그의 축복하심으로만 이루어질 것임을 말씀하신다. 너희는 오직 이와 같은 하나님을 바랄 것이고 이와 같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의를 바랄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유일한 소망 의롭게 하실 유일한 분임을 선언하고 9절 이하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용기를 얻은 선지자 이사야의 간구 기도가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입으시고 예전에 이스라엘의 대적 애굽을 멸하시고 구원하신 것 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로 약속하신 대로 이루실 것을 간구. 12절 응답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위로자 이시요 긍휼히 여기시는 분. 13절 이하 선지자는 이와 같은 축복을 받게 될 것을 격려하는 말을 한다. 일어나 자신을 일깨워 용기를 가질 것을 권하여 심판의 때가 끝날 것을 선언한다. 이것은 40장 초두와 관계 있다. 이제는 심판의 때가 끝나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영화롭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외면의 때가 끝나고 시온을 향하신 때가 된 것을 말씀하신 다음 이 소식을 전하는 자의 모습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가를 말한다. 53장 여호와의 종에 관한 내용 - 많은 수난으로 고난과 죽음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죄 없는 의인으로서의 죽음이다.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하는 대속적 죽음이다. 이 분의 죽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됨을 얻는다. 얼핏 보면 40장 이하에서도 바벨론에 망하여 흩어진 이스라엘의 구원은 정치적, 물리적 자유로 말해 지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이 참된 위로가 아니고 더 깊은 뜻이 깔려 있음을 군데 군데 암시하는데, 42장에서 어떤 구원자를 말하는데 이 구원자는 물리적, 정치적 정복과는 거리가 먼 구원을 행하시는 분. 눈을 띄우는 분. 영적 맹목과 깊은 관계가 있는 하나님을 배역하던 이스라엘의 영적 맹목으로 인하여 사로잡힌 상태에서 해방.
45장 고레스 언급으로 인한 예루살렘에 회복 정치적, 물리적 자유의 인상을 주지만 이스라엘의 근본적 문제는 그의 범죄는 속박 세력을 죄라고 하는 사실을 강조.
뒤로 갈수록 죄 문제와 의 문제가 부가된다. 이런 글의 흐름은 이스라엘의 패역으로 말미암은 심판 즉, 물리적 심판은 긍극적 심판이 아니다. 긍극적 심판이 아닌데서 해방되는 것은 긍극적 해방이 아니다. 근본적 죄 문제를 자꾸 말하는 것은 그들의 근본적 문제 즉, 가장 무서운 적은 죄라는 것을 지적한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속박 세력의 정체를 말하고 하나님의 종의 자유케 하는 사역은 그 백성의 죄를 처리하는 사역임을 말한다. 즉, 이스라엘이 참으로 해방되어야 할 속박세력은 주인 만큼 근본적 해방 구원은 죄로부터 해방 구원이다. 이스라엘의 근본적 원수는 죄이며 그 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죄로부터의 해방인 만큼 근본적 자유를 주는 구원이다. 이스라엘의 참된 해방은 앗수르나 바벨른으로 부터의 해방이 아니요 죄로부터의 해방이다. 이 근본적 해방 대신에 정치적 해방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 앞으로 베푸실 구원자의 모습. 고레스 세상의 정복자. 42장 영적 무지에 사로잡혀 범죄하는 백성의 눈을 뜨게해서 구원 하는자.
이것을 연결시키면 결국 고레스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통해 사로잡힌 땅에서 돌아오게 한 것은 긍극적 구원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의 상징이요 예표 였다. 즉, 고레스는 진정한 의미의 구원자가 아니고 참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에 불과했다.
42장 이 특별한 종은 이스라엘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스라엘과 종의 밀착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말한다. 이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근거가 된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지신 것이 되는가 ? 그것은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의 밀접한 연합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의 택정하심에 따라 이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하나 되었기에 그리스도의 공로가 전가되고 대속적 죽음이 가능하고 그로 말미암은 사죄가 가능하다.
55장 신자들이 그와 같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통치에 동참하게 될 것을 말씀함으로 끝난다.
56장 이하 이러한 과거, 현재, 미래를 앞에 둔 이스라엘이 어떤 태도로 살아야 될 것인가가 기록되어 있다.
http://blog.daum.net/kkho1105/7081
김 성 수 교 수
앗수르에 의한 북 이스라엘 멸망, 바벨론에 의한 앗수르의 멸망, 바사에 의한 바벨론의 멸망은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사건이다. 앗수르에 멸망당하지 않은 유다를 이스라엘의 ‘남은자’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유다의 멸망은 동질의 사건이다. 단지 100여년 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났을 뿐이다. 남은자를 멸망시킬 바벨론이 바사에 망한 것과 그로 인해 유다가 해방된 것, 앗수르가 침입했다가 망한 사건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건의 전조요 시작이다. 이것은 100년 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한 사건이다. 성격이 동일할 만큼 이 두 사건은 하나의 역사적 흐름이다. 「부패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몰락의 역사」 앗수르가 침입했다가 망한 것은 사 10장에서 그 오만함 때문에 처벌하심으로 유다를 구하겠다는 말씀의 1차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사 10장의 이스라엘의 해방은 히스기야 시대에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 구원은 메시야를 통한 구원이요, 방식은 매우 독특한 것임을 말하는 만큼 히스기야의 구원은 성취이면서 완전한 성취는 아니다. 이것을 더 분명히 해 주는 것이 히스기야에 예언된 마지막 예언 바벨론 포로와 히스기야 시대의 평안 즉 히스기야의 구원은 점정적이고 일시적 구원이며 긍극적인 것은 아니다.
사 14장 블레셋 멸망 예언.
사 20장 예언 성취와 동시에 애굽 멸망 예언.
예언의 성취된 역사적 사건이 기존의 예언을 확대시키는 의미가 있다. 즉, 예언의 성취는 또 다른 예언의 계기가 된다. 이런 독특한 구조를 염두에 두면 사 36장 이하는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이며, 그 성취는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모든 세력이 멸망되리라는 더 큰 구원을 선포하는 계기가 된다.
히스기야는 아하스의 아들인데 부자(父子)는 매우 다르다. 아하스는 확실한 구원을 약속하지만 앗수르를 의지했다. 그 결과 예언 성취와 함께 앗수르의 위기를 당하리라는 경고를 받았다. 히스기야 시대의 위기는 아하스의 불신앙 때문이다. 아버지와 비교하면 히스기야는 달리 눈앞에 대적을 두고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할 때 놀라운 구원을 베푸셨다. 즉, 히스기야말로 참 임마누엘이 아닌가 착각할만 한데 히스기야의 병과 바벨론 사건 등을 통해 히스기야의 구원이 참 구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사 40장 이하에 완전한 구원을 말하고 있다. 사 11장까지의 내용은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약속, 심판은 앗수르의 침입 그러나 구원은 긍극적 구원을 말한다. 따라서 앗수르 멸망이 이스라엘 긍극적 해방과 거리가 있는데 그것은 전조요 예시이다. 구원의 시작됨에서 완전한 구원을 내다보며 예언한 것이 40장 이하이다.
40장의 내용의 첫 시작이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마음에 고하라 철저하게 심판하시겠다는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마음속에 깊은 뜻을 말씀하시되 위로하다.
그 이유는 죄값이 치루어졌기 때문이다. 유다의 포로 기간과 관련 혹독한 심판 고난이 그들의 죄값이 있었고 고통 당함으로 배나 치름 받았다고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고통 당한다고 그들의 죄가 사해지는가 이스라엘이 포로기간에 겪었던 흑심한 고난이 죄값 치름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사야는 한 음성을 듣는다. 외치는자가 누군가 40장 이하가 긍극적 구원에 대한 예언이요 상당기간 무지에 가두어 두겠다는 6장과 상응 관계가 있다. 사 6장은 외치는자 즉, 천사의 음성으로 문지방이 떨렸다.
heavenly voice 세례요한은 음성의 화신 즉, 천생의 외침이 세례요한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사역에 여호와의 길을 평탄케 하라. 모든 육체가 그 영광을 함께 보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오심을 전제로 한다. 즉, 오시는 하나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 그 장소는 광야 죽음의 땅, 심판의 땅이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땅에 찾아오시는데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으로 황폐화된 죽음의 땅에서 하나님 맞을 준비를 하라. 하나님의 오심과 더불어 그 영광 하나님이 어떤 분임이 드러나고 모든 육체가 보리라.
외치라 모든 육체는 풀, 꽃.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반드시 이를 것임을 말한다. 우선 찾아 오시는 곳이 시온 예루살렘이다. 그 오심의 성격은 그의 강력으로 오실 것이요. 통치의 팔로 임하실 것이다. 그의 능력 강력으로 오시는 오심이다. 그의 능력의 결과로 얻으시는 것은 상급이 그에게 있다. 그의 양떼를 목자와 같이 끌어 모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의 능력으로 통치한 결과가 그의 양떼이다. 그의 능력으로 그의 백성을 얻으신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찾아오시는 의미에 대해 간략히 말함. 시온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능력 권세가 막강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 앞에서 세상 나라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27ff 야곱아......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깊은 실의에 낙담한 이스라엘의 모습 이와 같은 심판에 대한 그의 백성을 찾아오셔서 새힘으로 불러 일으키시되 너희 하나님은 세계 열강 보다 능력있고 무한한 능력과 지혜의 하나님이고 이 세상의 정치세력 너희를 망하게 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에게는 아직도 소망이 있다. 여호와를 바랄 여지가 있다. 여호와를 바라는 자 그를 의지 하는 자 새 힘을 얻을 것이다. 심판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자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찾아 오시고 그를 바라는 자에게 양떼를 삶고 새힘으로 강건케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40장 이하에 보면 구원 예언이 학대되어 종말에까지 비친다. 40장 이하는 교회의 구원이 열방 세계와 관련해서 거론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심판 당한 그 백성을 찾아 오셔서 구원한 소망의 근거에 의해 41장 이하에서 이렇게 말한다. 섬들은 조용히 하고 나라들은 그 힘을 새롭게 하여 나아오라 따져보자.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이방을 불러 하나님 앞에 심문 당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주관하시는 천지의 주제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다. 모든 우상은 결국 거짓 것이요 마지막날에는 그 정체가 드러나 그를 버릴 것이고 여호와 홀로 한 하나님임이 드러 날 것이다.
이방을 불러 누가 참된 하나님인가를 묻는다. 물론 당시 이스라엘은 열방의 속박에 있기 때문에 그 백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 결코 힘이 없으셔서 능력이 부족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실제는 너희를 망하게 한 것처럼 보인 열방 신들은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백성을 위한 배려 일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온 피조물의 모든 세계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세계 모든 민족을 다스리심을 드러내는 표로 동쪽에서 누가 이런 인물을 일으켰는가
즉, 동방에서 일으킬 인물을 말한다. 이 인물은 위대한 정복자이다. 그를 누가 세웠는가 4절 나 여호와가 시작이요 나 여호와가 끝이니다.
이세상의 모든 일을 시작자와 종결자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시작이요 끝이다.
앞으로 출현할 동방의 정복자가 이스라엘 구원과 관계 있을 것이라는 것을 8절에 암시한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끝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종된 이스라엘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은 불변.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에 택함받은 종이요 아브라함의 후손 아브라함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이다. 너와 나의 관계는 여전하다는 말씀과 동방에서 출현할 자를 말씀한 것 같이 나타나는 것은 매우 의도적이다. 이렇게 한 의미는 앞으로 출현할 동방의 인물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하나님의 오심과 강력한 나라가 되리라.
25절에서 앞의 언급 하나님께서 동방의 정복자를 일으키리라는 것을 반복하여 심하 시킨다. 이것은 온 천지의 유일한 하나님임을 나타내기 위해 세우리라는 것을 더 분명히 하고 기필코 열방을 다시 부른다. 이전의 일들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 우리가 연구하여 종국을 알리라 후 대사를 말해보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유일한 참된 하나님임을 나타내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과거 역사 중에서 내가 이런 의도를 가지고 이것은 내가 한 일이라고 한 것이 있으면 내놔 봐라. 앞으로 이 일을 내가 이 목적을 가지고 하리라 한 것이 있으면 말해 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누가 이 역사를 주장하는 존재인가를 증명해 보자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를 좌지우지 하실 분이라는 것이다. 예언은 역사를 마음대로 주관할 수 없는 자는 할 수 없는 말이다. 따라서 시대를 예언하는 것은 그가 역사의 주관자임을 나타낸다. 누가 세상 만사를 움직이는가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엘리야 시대에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 걸음 발전해서 세계 역사가 누구의 뜻대로 되어지느냐를 가지고 참 하나님을 가름해 보자는 뜻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것은 역사의 주관자 적어도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 혹은 그 이상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내 놓을 수 없다. 즉, 신이 아니다. 25절 이하 열방의 신들은 역사를 주관하는 절대자이심을 나타 낼 수 없는 반면에 25절 이하는 내가 역사의 주관자임을 나타낸다. 이내 임한 일 북쪽에서 한 나라를 일으켜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 이 일은 앗수르 침공을 뜻한다. 앗수르 멸망을 통해 이스라엘을 희생한 역사도 이에 이루어 졌다. 미래의 일 동방으로부터 그가 내 이름을 부르리라.
하나님은 과거와 미래의 역사에서 이것은 내 뜻대로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 질 일이다. 즉, 내가 하나님임을 증명하신다. 41장에서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 혹은 하나님됨을 증명하면서 앞으로 동방에서 한 정복자를 일으키리라.
42장 이전 예언의 맥락에서 한 특별한 인물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택한 특별한 종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모든 인물에게 의로운 통치를 이룰 통치자이며 11장의 메시야를 연상하게 한다. 그런데 동방에서 일으킬 정복자가 바로 이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동방의 정복자는 바사국의 고레스를 말한다. 그러나 42장의 내용을 면밀히 보면 고레스와는 다른 분이다. 성령이 임하여 공의로운 통치를 베풀리라 그 다음 2절 이하 가운데 그는 큰소리를 내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그러면서 진정 힘으로 공의를 베풀리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그 외로운 통치를 열방이 바라게 될 것이다. 그 분의 통치의 성격과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온유한 긍휼의 통치. 고레스는 이런 통치자는 아니다. 특히 6절 이하에서 이들을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한다. 그가 할 일은 소경의 눈을 뜨며 갇힌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이분의 사역은 분명히 해방 사역이다. 그것을 눈먼자의 눈을 띄우는 사역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어두운 가운데 거하는 자를 해방시키는 사역과 관련 영적 무지 영적 맹목을 일깨우는 사역이다. 6장과 관련 하나님께서 당분간 영적 무지에 가두어 두어 심판을 받게 할 것이다는 것과 관련된 무지를 일깨우는 사역 이쯤되면 고레스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구원의 핵심은 심판의 백성을 찾아오시며 그들을 강력한 능력으로 인하사 양 떼를 모아 백성 삼으실 것이다. 그 구원과 관련 동방의 정복자를 일으키리라. 그 다음 영적 맹목에서 깨울 종을 일으키리라는 말씀을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찾아 오 셔서 이루실 구원은 하나님이 보내신 인물을 통해 이루리라.
특히 42장의 종의 사역과 관련 백성의 언약이 방의 빛으로 흑암에 갇힌자를 자유케 하실 일에 대해 9절에서 보다 이전 일이 일어나겠고 새 일을 고하도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구원은 새로운 일, 새로운 전기가 되는 일 일 것이다. 앞에서 하나님의 종의 사역을 맨 처음에 눈먼자의 눈을 띄울 것이다. 맹목을 설명하는 말이 18절에 나타난다.
귀머거리, 눈먼자, 누가 눈먼자냐, 누가 귀머거리냐 바로 나의 종과 내가 보낸자들이 바로 귀머거리요, 눈먼자들이다. 누가 여호와의 종처럼 눈먼자 이겠느냐? 여호와께서 의를 탈취 굴속에 잡히고 옥에 갖히도다.
눈먼자, 귀머거리 갇혔다 등의 표현으로 볼 때 여호와의 종과 긴밀한 관계가 있으나 여호와의 종이 눈먼자라고 한데서 혼란스럽다. 여기서 여호와의 종 나의 종은 광범하다. 하나님께서 불러 일으키는 특수한 인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였다 (41장).
특히 눈먼 하나님의 종은 이스라엘 영적으로 무지한 장님과 같은자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율법을 위대하게 하셨을지라도 도적맞고 탈취 당했다. 이것은 육적 물리적 표로 노예 상태만이 아니다. 영적 상태의 사로잡힌 상태를 나타낸다. 율법 하나님의 계시를 바로 알지 못한다 영적 무지상태 이 무지로 인한 심판의 결과가 옥에 갇힌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25ff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가리켜 내 종이 소경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혹독한 심판 가운데 있는데 몸이 타는데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지 못하고 마음에 두지도 않는 상태이다.
43장 8절 장님되고 귀머거리된 내 백성을 이끌어 내다. 내 종 외에는 누가 귀머거리 눈먼자 이겠는가 이종은 이스라엘이라는 해석이 여기서 정당화된다. 하나님께서 불러내는 대상이 두사람이다. ① 그의 종으로 세우는 사람들 이스라엘 ② 열방 이방 사람들 너희가 신인 증거를 대라. 증인을 대라. 그들의 신은 우상이요 허깨비들이다.
10절 이하 너희들은 나의 증인이다. 하나님이 참되심을 증명해 줄 증인은 너희들이다. 바로 너희들이 나의 증인이요 너희들은 내가 참 하나님임을 알고 보고 깨닫게 할 목적으로 나의 택한 종이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내가 고하였고, 구원하였고, 선포하였고, 외인이 아니다. 즉,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셨기 때문에 낮선 분이 아니다. 여기에 한가지 하나님께서 열방과 이스라엘을 함께 불러내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증인이며 그 이유는 그 역사가운데 자신을 알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부를 때 그들은 장님이다. 즉, 눈먼자들을 불러 하나님을 증명하는 증인으로 삼으시겠다. 즉, 이것은 장님의 눈을 띄어서 증인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 일을 하실 분이 42장의 여호와의 종을 전제한 것이다.
14절 이하 지금 이스라엘을 망하게한 바벨론의 멸망 예언 바벨론의 멸망은 유다의 자유 해방을 의미한다. 이 구원 자유에 대해 16절 이하 하나님을 가리켜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며 말과 병거를 물속에 잠기게 하사 잠잠케 하신 분이다. 이것은 홍해 사건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그런데 18절 이 전일을 기억지 말라 새 일을 행하리니 이미 싹트고 있다. 광야 가운데 내가 길을 낼 것이요 메마른 당에 시내를 흐르게 함으로써 들의 짐승으로 나를 존경케 하리라. 이 백성은 나를 위해 나의 찬송을 열방에 선전케 하려함이다. 옛 출애굽을 기억도 하지 말아라. 새 일을 일으키리라. 즉, 앞으로 일으킬 구원은 첫 출애굽과 비교할 때 비교되지 않을 만큼 위대한 구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눈먼 백성 자기 몸이 타지만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백성을 증인되게 하실 터인데 바벨론 멸망으로 출애굽사건을 상기시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옛 구원과 비교가 되지 않는 새 구원을 이스라엘에 체험케 하심으로 이 구원을 체험한 자들로 하나님의 찬송을 열방에 선전하고 영광 돌리게 하겠다는 말이다.
22절 이하에 야곱은 나를 피곤케 한다. 그러나 내가 너희 기대 제사를 명하였을 때 너희가 나를 섬겨 곤비해 지라고 할 것이 아니라 너희 죄로 나를 너희 범죄로 나를 곤비케 하였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하나님을 섬기는 위치에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도 하나님을 피곤하게 해 왔다. 제사를 원한 것도 아니다.
25절 나는 너희 죄악을 사하시는 분이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섬김을 받는 분 이라기 보다 죄를 사하는 분이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는 관계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 죄사함의 은혜를 통해 그 영광을 드러 낼 뿐이다.
44장 1절 이하~3절 ;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리라. 즉, 나의 성령을 그 자손에게 부으시리라. 이로 인하여 시냇가의 풀처럼 이스라엘이 무성하게 되리라.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의 생수 즉, 성령님을 부으심으로 다시 살게 번성케 하리라는 것이다. 메시야의 사역으로 맹목에서 깨어나 생명을 누리는 성령의 역사는 신약에서 분명해 진다. 이미 죄사함 분임을 말씀하고.
28절 이하에 예루살렘의 회복을 말하면서 이것을 고레스가 이루리라. 고레스는 나의 목자요 내 기쁨을 이루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목자로 삼아 세우실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세워 구원을 이루게 하셨다고 말한다. 나의 메시야 나의 목자로 부른 그를 통해 교회를 재건케 하실 놀라운 파격적인 일이다. 앞으로 행하실 구원과 관련해서 세 종류의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여호와의 종 이스라엘의 백성.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특별한 분 왜 같이 불리워졌는가. 이스라엘 구원의 매개자가 혼란스럽다. 고레스를 통한 예루살렘의 회복. 42장의 고레스와 전혀 다른 여호와 의종 그도 역시 통치자. 44장 마지막 45장 초두.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할 것이다. 가는 곳마다 승리케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요 그 목적은 그를 통해 그의 교회를 회복하고 재건하시는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일으키셔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여러 약소 민족이 자기 고토에 돌아가 이전 자기 종교를 섬길 수 있도록 한 사람이다. 이러한 조치로 이스라엘이 회복되었다. 그러므로 뒤의 내용은 한쪽은 바벨론의 멸망 선포와 함께 그들의 신들의 무력한 거짓 신 임을 말하고 있다. 47장도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미래의 구원은 바벨론 멸망으로 이스라엘 회복으로 보기 쉽다. 그러나 42장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한 구원은 이 보다 위대한 것이요. 그 구원자는 고레스와 일치하지 않은 분이다. 맨 처음 주제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제임을 고레스와 관련해서 설명하지만 42장은 고레스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사역을 감당할 것이다. 영적 장님 됨을 일깨우겠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인 되게 하겠다. 고레스는 이 사역을 감당한 적이 없다. 49장 1인칭 표현의 한 인물 하나님의 비밀 병기는 세움 받는 사람 날카로운 것 화살같은 비밀 병기는 그의 일이다. 즉, 말씀사역을 통한 통치 정복의 모습 3절에 이 분을 가리켜 종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가 너로 영광받을 이스라엘이라는 말이 추가된다. 이 분의 사역에 대해 5절 내가 모태에서 부터 나의 종으로 형성한 자다. 야곱을 돌이키고 이스라엘을 모을자 모이지 않으려 하는 이스라엘을 돌이키는 자이다. 이 분의 일은 야곱 이스라엘을 돌이키는 분이다. 이 분이 이스라엘이라면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돌이킨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말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이 종의 사역을 야곱지파를 일으키며 남은자를 돌이키는 사역이라는 말이 있다. 이스라엘을 남은자로 본다면 남은자가 남은자를 돌이킨다는 말이 되어 맞지 않다. 따라서 이 종을 42장의 종으로 보는 것은 6절 이하에 이방의 빛으로 세운다는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 42장 6절 백성의 언약 이방의 빛 사역의 동일성을 갈망 할 때 나의 종 하나님의 종은 42장의 하나님의 종과 동일 인물이다. 그러면 왜 이 종을 가리켜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가 이것은 53장, 55장에서 더 분명해 지지만 적어도 여기서 특별한 종이요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웠다. 이것은 이분은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 만큼 이스라엘과 밀착된 분이다. 이분은 교회라고 불리울 수 있을 만큼 교회와 밀착된 분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말한다. 이분은 수고하였고 보상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인데 그 보상이 하나님이 그를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을 삼은 것이다.
백성의 언약은 6, 8절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 재건하시는 사역.
이방의 빛 6. 나의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는 사역.
이 분이 자기의 수고로 말미암은 보상은 백성의 언약 이방의 빛으로 무너진 교회를 회복시키고 이 구원을 세계에 전하여 많은 사랑으로 이복에 동참케 하는 것이다. 즉, 그의 백성을 얻는 것이 보상이다. 42장에는 이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을 양떼 이스라엘 자체라고 말씀하신다. 19절 이하 교회의 번창에 대해 자리가 없을 만큼 번창하리라. 50장 1절 어미는 교회 이스라엘이다. 너희 범죄 때문에 네 어미가 버림 받았다. 이스라엘 심판의 원인이 범죄 이다. 4절 1인칭의 인물 말씀으로 곤비한 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알게 하신 자이다. 영적으로 무지하여 하나님을 배역하는 자에 대한 말씀.
연약하고 곤비한 이스라엘을 도울 분이 아무 죄도 없이 고난을 수치를 당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6절 내용 어떤 의미에서 자원하여 자발적으로 고난과 수치를 당하는 모습 7절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그 결국이 수치로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 도우심으로 수치를 당치 아니 하리라는 것이 특별한 선생에 대해 이스라엘은 듣지 않을 것을 말씀하시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세우는 사역자의 성격 연약한 자를 말씀으로 도우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높아질 것인가.
51장 의를 추구하는 자는 들으라. 의로와지기를 원하는 자를 하나님을 구하는 자로 표현한다. 이 의는 특별한 의 즉, 자기의 의가 아니고 하나님을 구하는 하나님에게서 얻어지는 의이다. 하나님을 바라볼 것을 말씀하면서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말씀하면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말씀하신다. 이것은 한 사람을 불러 하나님이 축복하여 많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됨은 그의 부르심과 축복하심으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한 다음 죽음의 땅 광야를 에덴처럼 회복하고 기쁨과 찬송 소리를 들리게 할 것이다. 앞으로 교회를 긍휼히 여겨 광야 같은 곳을 에덴처럼 회복하리라는 것을 시온의 회복의 초창기처럼 하나님의 주권적 뜻 그의 축복하심으로만 이루어질 것임을 말씀하신다. 너희는 오직 이와 같은 하나님을 바랄 것이고 이와 같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의를 바랄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유일한 소망 의롭게 하실 유일한 분임을 선언하고 9절 이하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용기를 얻은 선지자 이사야의 간구 기도가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입으시고 예전에 이스라엘의 대적 애굽을 멸하시고 구원하신 것 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로 약속하신 대로 이루실 것을 간구. 12절 응답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위로자 이시요 긍휼히 여기시는 분. 13절 이하 선지자는 이와 같은 축복을 받게 될 것을 격려하는 말을 한다. 일어나 자신을 일깨워 용기를 가질 것을 권하여 심판의 때가 끝날 것을 선언한다. 이것은 40장 초두와 관계 있다. 이제는 심판의 때가 끝나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영화롭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외면의 때가 끝나고 시온을 향하신 때가 된 것을 말씀하신 다음 이 소식을 전하는 자의 모습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가를 말한다. 53장 여호와의 종에 관한 내용 - 많은 수난으로 고난과 죽음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죄 없는 의인으로서의 죽음이다.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하는 대속적 죽음이다. 이 분의 죽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됨을 얻는다. 얼핏 보면 40장 이하에서도 바벨론에 망하여 흩어진 이스라엘의 구원은 정치적, 물리적 자유로 말해 지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이 참된 위로가 아니고 더 깊은 뜻이 깔려 있음을 군데 군데 암시하는데, 42장에서 어떤 구원자를 말하는데 이 구원자는 물리적, 정치적 정복과는 거리가 먼 구원을 행하시는 분. 눈을 띄우는 분. 영적 맹목과 깊은 관계가 있는 하나님을 배역하던 이스라엘의 영적 맹목으로 인하여 사로잡힌 상태에서 해방.
45장 고레스 언급으로 인한 예루살렘에 회복 정치적, 물리적 자유의 인상을 주지만 이스라엘의 근본적 문제는 그의 범죄는 속박 세력을 죄라고 하는 사실을 강조.
뒤로 갈수록 죄 문제와 의 문제가 부가된다. 이런 글의 흐름은 이스라엘의 패역으로 말미암은 심판 즉, 물리적 심판은 긍극적 심판이 아니다. 긍극적 심판이 아닌데서 해방되는 것은 긍극적 해방이 아니다. 근본적 죄 문제를 자꾸 말하는 것은 그들의 근본적 문제 즉, 가장 무서운 적은 죄라는 것을 지적한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속박 세력의 정체를 말하고 하나님의 종의 자유케 하는 사역은 그 백성의 죄를 처리하는 사역임을 말한다. 즉, 이스라엘이 참으로 해방되어야 할 속박세력은 주인 만큼 근본적 해방 구원은 죄로부터 해방 구원이다. 이스라엘의 근본적 원수는 죄이며 그 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죄로부터의 해방인 만큼 근본적 자유를 주는 구원이다. 이스라엘의 참된 해방은 앗수르나 바벨른으로 부터의 해방이 아니요 죄로부터의 해방이다. 이 근본적 해방 대신에 정치적 해방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 앞으로 베푸실 구원자의 모습. 고레스 세상의 정복자. 42장 영적 무지에 사로잡혀 범죄하는 백성의 눈을 뜨게해서 구원 하는자.
이것을 연결시키면 결국 고레스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통해 사로잡힌 땅에서 돌아오게 한 것은 긍극적 구원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의 상징이요 예표 였다. 즉, 고레스는 진정한 의미의 구원자가 아니고 참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에 불과했다.
42장 이 특별한 종은 이스라엘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스라엘과 종의 밀착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말한다. 이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근거가 된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지신 것이 되는가 ? 그것은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의 밀접한 연합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의 택정하심에 따라 이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하나 되었기에 그리스도의 공로가 전가되고 대속적 죽음이 가능하고 그로 말미암은 사죄가 가능하다.
55장 신자들이 그와 같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통치에 동참하게 될 것을 말씀함으로 끝난다.
56장 이하 이러한 과거, 현재, 미래를 앞에 둔 이스라엘이 어떤 태도로 살아야 될 것인가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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