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서 강의5(김성수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선지서 강의5(김성수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질문)
이스라엘의 진정한 회복은 그리스도에게서부터이다.
남유다, 북이스라엘 어느 한쪽에 대해서만 말하는게 아니라 실상은 전체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는 예언이다.
모세언약이 파기되었느냐 존속하느냐? 답은 yes & no이다.
2001년 3월 27일
이사야서
선지자들의 모범으로서 표본으로서 이사야서를 취급하고자 한다.
1:1을 보면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Uberschrift (superscript) → 정경 선지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 누구의 계시라,
이 계시가 누구에게 주어졌는가를 밝히고 있다.
다음에는 이 계시가 무엇에 관한 것인가, 계시의 대상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계시가 주어진 시기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이사야서는 이 3가지를 다 밝히고 있다. 어떤 경우는 1-2가지가 빠진 것이 있다.
왜 선지서들은 이것과는 달리 역사서라고 부르는 책들을 보면 일체 서두같은 것이 없다. 그런데 왜 선지서에서는 꼭 서두에 이런 형식을 갖고 있는가? 이 3가지 요소가 함축하는 의미를 종합하면 이 글(계시)은 특정인을 통하여, 특정시대에 특정대상을 향하여 주어진 말씀이라. 이 글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 그의 계시로 받아들여야 하고 결코 인간적인 차원의 글, 사색, 연구, 상상에 근거한 인간의 창작으로 생각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가 유다에 대해서 본 환상이라고 해서 마치 이사야가 깊은 묵상이나 사색 끝에 파악한 어떤 내용인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으나 약간 표현을 달리해서 다른 선지서의 내용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는 표현과 비교해보면 결코 사람이 생각하거나 파악한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가 누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물론 이 말은 선지자가 전혀 사색, 연구, 묵상하지않고 그들의 감정과 무관하게 기계적으로 기록되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성경을 살펴보면 계시가 주어지는 방편은 매우 다양하다. 선지자의 사색, 감정, 묵상 정신적인 것과 지적 활동을 통해 주어지는 것도 많다. 다니엘서와 같이 천사가 직접와서 이야기하는 계시도 있지만 누가복음에서 보듯 모든 일을 차례대로 살피고 따져서 본 통상적 계시방식도 제외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인간의 일반적 정신적, 지적인 것이 개입했다 할지라도 인간의 창작을 초월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배하시는 성령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계시를 받은 선지자의 이름을 명시하므로 선지자의 위치를 말하고 있다. 계시받은 선지자의 이름은 항상 기록함으로 전달한 자가 누구냐라는 하나님이 누구를 통해 계시한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전달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괄호속에 넣을 수 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해도 차이가 없다. 성경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이다. 동시 이 계시는 특정시대를 산 특정대상을 향해 주어진 말씀이므로 계시를 이해할 때는 특정시대의 특정인들이 처하였던 역사적 상황, 창출되었던 역사와 관련되어서 이해를 해야 한다. 선지서마다 계시가 주어진 시기가 있다는 것은 계시 이해함에서 시대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암시를 준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이상(계시)라고 되어있다. 여기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선 이것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계시인가 아니면 동시에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인가 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만약 이것이 그들에게도 주어진 계시라는 것이라면 조금 문제가 생긴다. 유다나 예루살렘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게 아니다. 열방들, 후일에 나타날 민족과 나라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러면 이것이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계시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말씀이 선포된 주된 대상은 이스라엘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의 교회에 준 말씀이다. 그러면 왜 내용중에 이방에 관한 심판이나 구원이 나오는 내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방에 관한 여러 가지 일들은 항상 누구를 통해서 연결되는가? 이스라엘을 통하게 되어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은 이스라엘을 부르신 목적 자체가 이방에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중보자적 역할을 포함하고 있기에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 이것(계시의 대상)을 자꾸 따지느냐하면, 10여년전에 아모스와 같은 것은 교회에 주어진 말씀이라고 보기보다는 이 시대, 사회에 주어진 말씀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아모스를 자세히 읽어보면 이것은 일반 사회를 향한 말씀이 아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이다. 이 계시가 누구에게 주어졌는가를 분별하지 않으면 적용에 오류와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계시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자꾸 말한다.
원칙적으로 계시의 말씀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주신 말씀이다. 그러나 내용중에 나오는 이방에 관한 내용은 항상 그 말씀이 이방에게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렇게 된다. 미래의 이방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이 확장될 것인데 그런데 이방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전제한다.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사19장 애굽에 관한 예언을 보면 나중에 애굽과 앗시리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무리에 들것인데 이때 이스라엘의 역할이 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방에게 확장될 개방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가지 면을 잘 고려해야 한다.
교회가 반정부 활동을 나서야 하느냐? 실제적으로 참여해야 하느냐는 예민한 문제가 대두될 때 상당히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요소가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교회밖 세상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느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그러면 이런 말씀이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http://blog.daum.net/kkho1105/7082
질문)
이스라엘의 진정한 회복은 그리스도에게서부터이다.
남유다, 북이스라엘 어느 한쪽에 대해서만 말하는게 아니라 실상은 전체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는 예언이다.
모세언약이 파기되었느냐 존속하느냐? 답은 yes & no이다.
2001년 3월 27일
이사야서
선지자들의 모범으로서 표본으로서 이사야서를 취급하고자 한다.
1:1을 보면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Uberschrift (superscript) → 정경 선지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 누구의 계시라,
이 계시가 누구에게 주어졌는가를 밝히고 있다.
다음에는 이 계시가 무엇에 관한 것인가, 계시의 대상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계시가 주어진 시기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이사야서는 이 3가지를 다 밝히고 있다. 어떤 경우는 1-2가지가 빠진 것이 있다.
왜 선지서들은 이것과는 달리 역사서라고 부르는 책들을 보면 일체 서두같은 것이 없다. 그런데 왜 선지서에서는 꼭 서두에 이런 형식을 갖고 있는가? 이 3가지 요소가 함축하는 의미를 종합하면 이 글(계시)은 특정인을 통하여, 특정시대에 특정대상을 향하여 주어진 말씀이라. 이 글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 그의 계시로 받아들여야 하고 결코 인간적인 차원의 글, 사색, 연구, 상상에 근거한 인간의 창작으로 생각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가 유다에 대해서 본 환상이라고 해서 마치 이사야가 깊은 묵상이나 사색 끝에 파악한 어떤 내용인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으나 약간 표현을 달리해서 다른 선지서의 내용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는 표현과 비교해보면 결코 사람이 생각하거나 파악한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가 누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물론 이 말은 선지자가 전혀 사색, 연구, 묵상하지않고 그들의 감정과 무관하게 기계적으로 기록되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성경을 살펴보면 계시가 주어지는 방편은 매우 다양하다. 선지자의 사색, 감정, 묵상 정신적인 것과 지적 활동을 통해 주어지는 것도 많다. 다니엘서와 같이 천사가 직접와서 이야기하는 계시도 있지만 누가복음에서 보듯 모든 일을 차례대로 살피고 따져서 본 통상적 계시방식도 제외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인간의 일반적 정신적, 지적인 것이 개입했다 할지라도 인간의 창작을 초월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배하시는 성령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계시를 받은 선지자의 이름을 명시하므로 선지자의 위치를 말하고 있다. 계시받은 선지자의 이름은 항상 기록함으로 전달한 자가 누구냐라는 하나님이 누구를 통해 계시한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전달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괄호속에 넣을 수 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해도 차이가 없다. 성경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이다. 동시 이 계시는 특정시대를 산 특정대상을 향해 주어진 말씀이므로 계시를 이해할 때는 특정시대의 특정인들이 처하였던 역사적 상황, 창출되었던 역사와 관련되어서 이해를 해야 한다. 선지서마다 계시가 주어진 시기가 있다는 것은 계시 이해함에서 시대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암시를 준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이상(계시)라고 되어있다. 여기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선 이것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계시인가 아니면 동시에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인가 라는 질문이 가능하다.
만약 이것이 그들에게도 주어진 계시라는 것이라면 조금 문제가 생긴다. 유다나 예루살렘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게 아니다. 열방들, 후일에 나타날 민족과 나라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러면 이것이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계시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말씀이 선포된 주된 대상은 이스라엘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의 교회에 준 말씀이다. 그러면 왜 내용중에 이방에 관한 심판이나 구원이 나오는 내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방에 관한 여러 가지 일들은 항상 누구를 통해서 연결되는가? 이스라엘을 통하게 되어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은 이스라엘을 부르신 목적 자체가 이방에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중보자적 역할을 포함하고 있기에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 이것(계시의 대상)을 자꾸 따지느냐하면, 10여년전에 아모스와 같은 것은 교회에 주어진 말씀이라고 보기보다는 이 시대, 사회에 주어진 말씀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아모스를 자세히 읽어보면 이것은 일반 사회를 향한 말씀이 아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이다. 이 계시가 누구에게 주어졌는가를 분별하지 않으면 적용에 오류와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계시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자꾸 말한다.
원칙적으로 계시의 말씀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주신 말씀이다. 그러나 내용중에 나오는 이방에 관한 내용은 항상 그 말씀이 이방에게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그렇게 된다. 미래의 이방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이 확장될 것인데 그런데 이방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전제한다.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사19장 애굽에 관한 예언을 보면 나중에 애굽과 앗시리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무리에 들것인데 이때 이스라엘의 역할이 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방에게 확장될 개방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가지 면을 잘 고려해야 한다.
교회가 반정부 활동을 나서야 하느냐? 실제적으로 참여해야 하느냐는 예민한 문제가 대두될 때 상당히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요소가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교회밖 세상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느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그러면 이런 말씀이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http://blog.daum.net/kkho1105/7082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