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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서 연구 - 김성수 교수

사무엘서 연구 - 김성수 교수
 
사무엘(מבזנ󰔄)
사시기, 룻기, 사무엘서는 왕조의 확립에 대한 기록읻. 사무엘은 사사요, 선지자인데, 역대기에는 레위족속으로 나오고 사무엘상에는 에브라임지파로 나온다. 대개 보면 지파들이 자기 산지에서만 산 것이 아니고 다른 지파 산지에서도 살았다고 보면 사무엘은 레위족속으로서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다고 보인다.
1장은 엘가나의 가정 - 경건한 가정을 말함.
두 아내 󰠆󰠏󰠏 한 나 - 무자 : 엘가나의 사랑은 받음
󰠌󰠏󰠏 브닌나 - 자식 있음
브닌나가 한나를 경멸한다.
“barren woman moyif”→ 엘리사벳 - 요한, 마노아 - 삼손, 사라 - 이삭
여자가 하나님의 간섭으로 아이를 낳은 주제들은 그 아이를 통한 특별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가르친다.
한나가 그 아들을 평생 나실인으로 바치겠다는 서원을 한다. 성별하여 드리겠다는 서원을 한다. 한나즈이 중얼거리는 기도와 서원을 보고 엘리는 그가 술취한 것으로 안다. 엘리는 한나 가정의 경건함을 판별하지 못하는 영적 우둔함을 보인다. 그러나 한나의 기도 내용을 듣고 하나님의 축복을 한다. 한나가 아이를 낳아 젖 뗀 후 하나님께 바친다.
2장 한나의 노래(기도송, 찬양송)
한나의 찬송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시편을 보면 대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인데 기도와 찬양의 구분이 없다).
하나님이 그녀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기쁨.
hwhy 같이 거룩한 자가 없으시며 주 밖에 다른 이가 없다.
전능하시고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이 모든 인간 행사를 아신다. 즉,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찬양한다.
하나님 통치의 성격을 구명
한나에게 임한 결과 󰠆󰠏󰠏 용사의 활을 꺾으시며 : 배부른 자 거지 : 무산자 일곱 아들
󰠌󰠏󰠏 넘어진 자는 띠를 띠도다 : 배고픈 자 풍부 : 많은 자 쇠약
여기서 철저한 통치의 주권성이 나온다. 하나님 뜻대로 하시는 통치의 특성.
여호와는 죽이시기도 하고 살리시기도 하신다.
이 한나의 기도는 사무엘서 전체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특성은 또한, 어떤 자들에게 임하는가를 보여준다.
󰠆󰠏󰠏 거룩한 자(경건한 자)의 발을 지키심
󰠌󰠏󰠏 악신은 어둠 중에서 침묵케 하심
주권은 인간 편에서의 경건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뢰하는 자 : 이것은 결코 인간 공로주의적인 경건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 신뢰의 자세는 하나님의 통치를 움직인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할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2장은 한나의 경험한 구원의 성격을 보편화시켜 말한 것이다. 10절에 보면 기도와 간구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jussive -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를 쳐부수며 하늘 우뢰로 치시리로다 → 대적 멸망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하시고 → 통치의 편재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 →왕권의 능력 → 승리
자기의 기름 부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
그의 대적의 패배와 하나님 통치의 확장은 그의 왕응ㄹ 통해 이루어질 것을 말한다. 그 왕은 하나님 통치의 대행이며 그의 뿔은 높아질 것이다.
한나의 기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단지 개인의 사소한 일을 과장해서 ㅁ라한 것인가? 아니면 후대의 편집자가 사무엘의 왕국 수립적 사역을 안 경험을 토대로 해석했는가? 아니면 성령께서 한나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것인가?
한나는 단순히 자신의 원체험에 국한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구원, 세계통치로 확대시키고 있고, 특히 약한 것에 임하시는 구원의 주권적 특성을 발전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대적을 멸하심으로 그의 통치가 땅 끝까지 이루어질 것과 그 일의 Modvitior(중보자)의 뿔을 높이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상태를 볼 때 상당히 시사적인 것이다.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던 비참한 이스라엘을 구원한 다윗왕국에 대한 예언이다. 이 예언을 사무엘의 출생과 관련시켜 말한 것은, 사무엘의 특성이 왕국수립의 준비 역할로서 충분할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누가복음 1장에서 사가랴의 엘리사벳의 노래(세례 요한의 출생)와 거의 비슷하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출현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관계는 사무엘과 다윗의 관계와 같다. 왕의 준비 역할과 그 왕의 오심을 말하는 것 - 왕국 수립의 역할.
사무엘과 엘가나의 경건한 모습과 대조적으로 엘기 가정의 불경건한 모습이 나온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이다. 이들은 여호와를 알지 않음. = âdy âl. 제사 드리는 중에 고기를 낚아채감 - 하나님의 제사제도를 능멸함.
사무엘의 어린 시절이 나온다. 엘리가 엘가나와 한나를 축복하여 하나님께서 3남2녀를 주신다.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hwhy Mî) 자라난다. : 이것이 자랄 때의 특성임. 이어 엘리의 아들들이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겁탈함.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를 책망하는데,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예배의식(Cult)을 멸시하는 죄를 크게 징벌하시겠다고 한다. 예배는 삶을 반영한다는 견해를 Negative하게 받아들이는 오류는 예배(cult) 자체를 부인하려는 경향을 가지는데 하나님께서는 직접 제정하시는 cult를 잘못 드리는 자들을 엄히 다스리신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cult sin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었다. 이것을 하나님 멸시한 죄라고 한다. 즉, cult를 멸시한 것 = 하나님을 멸시한 것. 그래서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멸시할 것이며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리라’고 하신다.
심판의 내용 : 네 집에 노인이 없을 것. 이스라엘의 복된 날에 너는 환난을 볼 것.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을 것.
언약의 확인 :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세우고, 그가 내 뜻대로 할 것 → 그를 통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라.
이것은 엘리 가정의 멸망과 사무엘의 흥황을 다루는 좁은 범위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영원성을 지닌 견고한 집에의 건축을 말하며 특히 엘리의 직분을 27절에 출애굽과 아론의 가문 전체에 관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론 제사장 직분 = 영원한 충실한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의 사건은 표징(sign)이라는 것. 이것은 앞으로 올 본격적 사건의 sign의 의미인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제사직분의 타락과 멸망을 sign한다고 한다면, 새로운 제사장 직분의 필요와 오심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원한 제사장의 오심을 기대하게 한다. 즉, 멜시세덱의 반차를 기대하게 한다. 실로의 파괴사건은 아론족속의 제사장 직분의 멸절인 것이다.
이 예언의 성격은 사무엘의 역할을 포함할 뿐 아니라 그 역할 이상의 영원적 의미를 지닌다. 사무엘의 역할은 이 예언의 영원성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대조 󰠆󰠏󰠏 아론계열 - 출애굽과 제사제(그림자), 실로, 홉니와 비느하스의 sign
󰠌󰠏󰠏 충실한 제사장 - 견고한 집
3장 사무엘이 여호와를 섬길 때
hwhy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보이지 않음 = Nyzh = 엘리의 눈이 어두워져서 잘 보이지 않음 = 이것은 엘리의 영적 무감각의 상태를 암시적으로 표현.
하나님의 계시의 중보자로서의 엘리 사역이 끝났음을 말하며, 사무엘을 부르셔서 새로운 사역을 맡기심이다. 11-14절에 나오느 엘리 가정에 대한 심판은 용서받지 못한다. 19절에 사무엘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받아 그 말이 권위 있음을 볼 수있다. 이는 사무엘을 hwhy의 선지자로 세우심이다.
4장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
하나님의 심판이 전쟁을 통해 나타난다. 전쟁은 패하고 전령이 엘리에게 궤 빼앗긴 일을 말하자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는다.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이를 낳고 그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부른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음을 말한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되어 있는데 그것이 떠났음을 말한다.
*제사장 가문의 몰락과 법궤 빼앗긴 사건
하나님이 실로에서 떠나셨고 이스라엘을 떠났음을 알 수 있다. 실로성과 직결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의 엘리의 징벌은 하나님의 떠나심을 의미한다. 실로는 이제 황폐되고 하나님의 처소는 시온이 선택된다. 그 이후 아론의 제사장 직분이 쇠약해진다. 그런데 법궤는 블레셋 진영에 가자마자 하나님의 재앙을 몰고 온다.
cult symbol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믿음의 문제이다. 불신앙한 이스라엘에게 있어 ‘법궤’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상징의 역할을 나타내지 않았으나, 이방 블레셋에 있어 ‘법궤’는 다시 하나님이 참 선이심을 드러내는 일을 하였다. 하나님은 신앙 벗이 움직일 수 있는 분이 아니심을 알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동적 기ㅖ처럼 법궤만 들고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님을 보이신 것이다.
이러한 cult symbol에 대한 태도는 오늘날 성찬제도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관련된다. 의식은 그 의미가 우리의 진정한 믿음에서 드러난다. ‘떡과 포도주’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 법궤는 다시 블레셋의 신들을 쳐부수고 영광 가운데 이스라엘로 오신다.
6장 벧세메스로 법궤가 오는데 사람들이 그 안을 보다가 죽는다. 이 일로 법궤는 이제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게 되고 거룩히 구별된 엘리아살이 지키게 된다.
7장 지난 시간에는 사무엘의 출생과 엘리 가문의 몰락에 관하여 봤는데사무엘의 출생은, 한나의 노래에서 암시하듯 새 시대의 출현과 관련된 출생이며, 후에 메시야 사역의 에배자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것을 살폈다.
사무엘의 나실인적 헌신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을 감당한다. 엘리 제사장은 당시 영적, 소경적 상태를 대표하느 쇠퇴의 성격을 묘사하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능멸하는 배역에 앞장선다. 엘리 가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완전히 몰락하고, 사무엘이 선지자와 사사의 사역을 겸하여 새로운 시대를 연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시작하시는새로운 일, 새 시대의 일은 ‘미스바에서의 회개’로 시작된다. 기럇여아림에 언약궤가 있은지 20년 된 후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회집한다.
‘미스바 성회’ - 전심으로 hwhy를 섬기겠다는 회개의 모임이었다. 블레셋이 미스바로 오는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은 사무엘에게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이다. 하나님을 붙잡으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을 믿은 것이다. 사무엘이 번제 드릴 때 하나님이 블레셋을 쳐서 패하게 하신다. 에벤에셀 =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8장 사무엘이 새로운 시대의 예비사역자임을 밝힘.
사무엘이 늙어 아들들에게 사사를 시킴. 여기서 그의 늙음은 그의 시대가 끝남을 의미한다. 그 사역의 때가 끝나고 진짜로 새 시대의 주인공이 올 것을 암시한다. cf) 세례 요한의 사역이 끝난 후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됨과 같음.
사무엘의 아들들이 뇌물을 취하고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하자 이스라엘이 불만을 드러내고, 왕을 세우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 요구 속에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반역적 요소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 요구의 어디에 그런 요소가 있는가? 왕 제도의 요구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었는가? 그것은 그들이 왕을 요구하는 것이 열방과 같이 통치되기를 원하여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열방처럼’이라는 말이 하나님을 거스린 요소인 것이다.
신명기17장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할 때 열방적 왕을 요구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러므로 왕 제도가 하나님의 기뻐하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직접통치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자유주의 신학에서 암픽티오니와 왕 제도의 갈등을 말하는 논리에서 나온다. 또한 보수주의에서도 왕 제도를 기버하시지 않았었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사무엘상 초두에 이미 하나님께서 왕 제도를 두시려는 뜻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2:10절에 ‘hwhy께서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라고 하고 있다.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가 하나님을 거스린 요소는 ‘열방처럼’ 왕을 요구한데 있었지만, 왕 제도 자체를 하나님ㅁ이 금한 것은 아니었다.
열방처럼 왕을 달라는 것은, 결국 이스라엘이 바라는 ‘왕의 상’을 보여주는데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왕의 상인 것이다. 7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나를 거부한다’고 하시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요구는인간적인 왕을 요구한 것이다. 이 요구를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인 반역의 연장으로 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10절에서 저들이 요구한 왕의 실상들을 보이신다. ‘너희를 다스릴 왕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자기의 사병으로 삼고 자기 사적 노예로 만들고, 딸들을 노비로 삼고, 재산을 왕실화시키고, 경제적 착취를 시도할 것이고, 모두 왕의 종이 될 것이다’
이 제도는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통치 대리자로의 왕이 아니라 백성을 착취하고 종으로 삼는 왕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열방의 왕 제도의 실상이며, 타락한 열방의 참 모습인 것이다. 세상적 제도의 모습을 억압과 착취의 성격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세상의 통치원리는 ‘힘의 논리’요, ‘지배적인 논리’이다(교회의 통치는 불신 세상의 통치원리로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반드시 왕을 달라고 고집한다.
그들은 반드시 왕이 있어야 하는데 열방과 같이되어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라는 요구를 한다. 열방의 군대는 훈련된 병사들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은 열방의 조직력과 힘에 매료되어 그렇게 조직화해야한다고 생각했다(교쇠가이렇게세상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에 매료당하면 자기의 기술을 의지하고 자기 방법으로 해볼려고 한다).
이스라엘은 그 전쟁을 더 이상 하나님의 손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들의 방법과기술로 싸워보겠다는 것이다. 약속의땅의 전쟁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여하에 달려 있는데도 이스라엘은, 순종하기 보다는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이겨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불신앙이고, 배역하는 것이다.
그들의 실패의 진정한 원인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에 있음을 깨달아야 할 그들이 그것을 깨닫기는 커녕 자기들의 전쟁기술 부족으로 생각하여 열방의 조직력을 바란 것이다.
‘우리 왕이 우리 앞에 나가 우리의 전쟁을 하게 할 것이라’ 하나님께 전쟁의 승패가 달린 것을 믿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께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쟁을 우리가 하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곧 하나님의 전쟁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의 전쟁을 우리가 스스로 처리하기를 요구했고 그래서 그들의 힘 있는 왕을 요구했다. 이들의 요구대로 얻은 첫 왕은 사울의 못브에서 볼 수 있다. 사울은 용사의 모습으로 능히 싸움에 나갈 용장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등장은 실패로 끝난다.
9장 사울 왕의 출현
사울 : lyê rôbg(유력한 자의 태생) 그는 키가 크고 준수한 자이었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를 잃어버려 아들 사울에게 찾으라고 하자 그는 나귀를 찾으러 다닌다. 이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임하사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신다.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의 손에서 건져낼 자’라고 하심.
이 표현은 사울 선택이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울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백성의 악한 요구에 따라 내려진 왕인 것이 분명한 만큼 결국 사울의 왕됨은 다윗왕조의 선택과는 다르다. 사울은 선택받을 때에 하나님의 신이 충만한 사람이 되었다. 그때 그는 겸손한 모습을 가진다(21절).
10장 사울에 대한 부정적 평가
19절에는 백성의 악한 요구가 불신앙의 요구인 것을 말하고 백성에게 제비를 뽑게 한다. 이때 사울이 뽑힌다. 이 일은 출애굽 이후 계속 배역해온 역사의 연장으로 기록된다.
11장 사울에 대한 긍정적 평가
암몬(나하스) 사람을 사울이 쳐서 이긴다. 사무엘이 길갈에거 사울을 왕으로 삼는다. 이는 사울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을 잠시 보인 것이다.
12장 길갈 - Covenant Making. 여기서 왕을 세우는 의미는 백성의 요구한 악한 의도대로 한 것을 명백히 밝히기 위하여 이곳에서 왕을 세운다. hnh → ‘이제 왕이 너희앞에 행하니느라’ 17절을 보면 너희가 왕을 구한 일이 여호와의 목적에서 범한 죄악이 크다고 말한다. 그날에 우뢰와 비를 보내리라고 하자 백성이 hwhy와 사무엘을 두려워한다. 20절에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오직 돌이켜 헛된 신을 좇지말라고 권면한다. hwhy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을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고로 너희를 버리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크신 이름 때문에. 이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긍정적으로 쓰신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13장에서 15장까지는 사울의 불순종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13장 사울이 실패한 사건
사울이 직속부대를 주둔시킨다. 이때 블레셋과의 전쟁이 나온다. 블레셋 - 병거 3만, 마병 6천, 백성도 해변의 모래처럼 많음. 이 전쟁에서 사울과 이스라엘이 두려워 떨며 사무엘이 늦게 오자 그것을 기다리지 못한 사울이 친히 번제를 드린다(번제와 화목제). 사무엘이 도착하여 이를 책망하지 사울은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사무엘의 대답을 보면,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나이다. 이 불순종 때문에 사울은 버림받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왕이 되게 하겠다고 선언한다.
* 사울의 역사에서 말해주는 것은 사람이 요구한 인간적인 왕은 결코 하나님을 순종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그의 종말이 어떠할 것인가를 예시하여 준다.
14장 요나단의 사건
요나단의 승리가 나오고, 사울은 전쟁 끝날 때까지 금식을 명한다. 이 사울의 명령은 참으로 경박한 것이었다. 즉 사울의 경솔한 명령이었다. 요나단이 꿀을 먹으매 사람들이 말리자 요나단이 사울의 경박한 명령을 비평한다. 이 일을 통하여 우리는 사울의 경솔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15장 결정적인 사울의 불순종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철저히 Mrê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 일을 보시고 사울을 택한 것을 후회하셨고(sorry),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보지 않는다. 즉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심이다. 그리고 사무엘이 아말렉왕 아각을 찢어 죽인다. 즉, 하나님께서 Mrê(렴절)하라는 명령에 순종한다.
16장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부음
사무엘이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보러간다. 장자 엘리압을 보고 사무엘이 기름 부으려 하자 하나님께서는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사울 왕의 특성이고, 백성들이 요구하는 왕의 특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윗을 보매 그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고 말하는 데, 여기서 눈이 빼어남은 암시적 표현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건히 모시는 자의 특성이다. 그 예로서 우리는 엘리와 사무엘을 볼수 있다. 엘리 제사장은 눈이 침침하였다. 반면 그 당시 사무엘은 여호와를 섬기는 자였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붓자 다윗이 hwhy의 신에 크게 감동된다. 이어 그는 사울의 수금 타는 자가 된다. 또 21절에 사울의 병기든 자가 된 것을 볼 수 있다.
17장 블레셋과 전쟁
15절에 보면 다윗이 항상 사울 곁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부친에게 왕래하였다. 다윗의 등장에서 중요한 것은 사울이 다윗을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냐고 묻는다. 16장과 17장은 두 개의 tradition의 이질적 삽입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16장과 17장의 다윗의 못브은 실제로 다른 모습이다. 수금 타는 자로서의 다윗과 용사로서의 다윗은 서로 다르다. 그리고 이 면은 굉장히 중요한 다윗의 두 국면이다. 사무엘하 23:1절의 다윗의 마지막 말에서 볼 수 있다.
󰠆󰠏󰠏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Singer)로서의 모습
󰠌󰠏󰠏 메시야(기름부음 받은 자)로서의 모습
이렇게 볼 때 음악가 다윗과 용사 다윗의 기록은 의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 음악가로서의 다윗과 계시 받은 자로서의 다윗의 모습이 사무엘하23:3절에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시편 저자가 다윗임을 볼때 음악은 굉장히 중요하다. 즉, 음악의 위치가 성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찬양하는 것은 히브리말로 hbn라고 하여 예언과 동일시 하고 있다.
사무엘상 17장부터 사울(하나님이 버린 자)의 몰락과 다윗(하나님이 택한)의 강성이 나타난다. 계속해서 다윗의 경건을 볼 수 있다.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다고 함.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도와준 놉 제사장들을 모두 죽인다. 이것은 사울이 다윗을 돕는 자들을 이렇게 한다느 위헙적 사건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전화위복되어 아비아달이 에봇을 가지고 다윗에게로 오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이어 사울의 최후가 등장한다. 그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대답치 아니하시므로 답답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아 사무엘을 불러오게 한다(삼상28장). 이것은 초혼술과 흡사한대 다른 곳의 성경이 내증하는것은 아니다. 당시의 사무엘은 SATAN의 장난이며, 사울이 직접 사무엘을 본 것도 아니고, 신접한 여인만이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노인은 사울의 최후를 예언한다.
그러면 어떻게 SATAN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가? 성경은 거짓 선지자도 앞날을 예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잘못된 것이라는 증거는, 예언의 결과가 사울을 살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울을 엎드러지게 했다는 데 있다.
이스라엘의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가자 다윗음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옮겨온다. 이는 사무엘하 7장에서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심이다(성전은 하나님의 집). 이스라엘의 통일(내부 정리)이 끝나고 주변 정복기록(주변 정리)이 나온다. 내치에서 외치로 넘어가는 중간에 사무엘하 7장이 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하자.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집을 지어주겠다고 하신다. 여기 다윗의 집은 바로 다윗왕조를 말한다. 10절에 보면 사사시대처럼 불안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왕국이 되게 하겠다고 하신다. 다윗왕조를 통해 영원한 집을 건축하심이다.
① 사사시대의 불안정 → 다윗시대로 안정
여호수아는 원칙적 정복이었고, 사사시대는 실패며, 비로소 다윗시대 때 실제로 안식이 완성된다.
② 󰠆󰠏󰠏 사사시대 → 사사를 통해 다스림
󰠌󰠏󰠏 다윗시대 → 다윗을 통해 다스림. 사사는 당대에 그쳤으나 다윗왕조는 영원한 후대의 통치로 통치조직의 안정을 이루게 된다. 이 말의 핵심은 영원한 왕조를 이루는데 이스라엘의 왕권은 하나님의 뜻임을 알리는 것이다.
모세시대부터 하나님께선 계속 지도자를 세워오셨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잠정적 지도자들이다. 그러나 이제 영원한 왕권을 통해 통치가 안정되기 시작한다. 모세부터 왕국시대를 발전적 흐름으로 본다면 왕국성립은 긍정적인 것이다.
신명기 17장을 보면 백성들이 왕을 세우겠다고 하면 왕을 세우라고 하시면서 왕은 은, 금, 여자,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왕은 세상적 재력, 부력으로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후궁(여자)을 거느리는 것은 외교적 술책과 관련된 것으로 인간적인 것이 아니기를 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외교술책으로 정략결혼을 한다는 것은 권력유지의 핵심수단이다. 그렇다면 이 명령(첩을 두지 말라)의 의미는 하나님 왕국의 왕의 통치의 근거와 힘이 왕의 노력(외교, 금력, 경제)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왕의 타락은 직접으로 백성의 ■ㅏㅌ락에 영향을 미치므로 그 만큼 엄격한 경고의 말을 명하신 것이다.
*왕조의 성립은 왜 하나님께서 ‘열방처럼 왕을 달라느 ㄴ백성의 요구’와 관련시켰는가? 기드온과 사울의 경우 그 왕에 대한 요구를 하나님은 하나님 왕권에 대한 반역의 행위로 보신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왕조의 성립을 말씀하시면서 반역적 요소를 포함시키는가? 이러한 부정적 언급은, 왕국성립의 역사가 반역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예언적 시각으로 말해진 것이다.
ex)율법명령하고 나서 백성들에게 너희가 지킬 수 없다는 부정적 예언을 말한 것과 같다.
* 사무엘하 7장에서 또 하나 언급된 것은 다윗의 몸에서 날 자를 통해 성전건축이 될 것이라는 예언, 성전건축의 의미는 성막으로 떠돌아다니신 하나님의 방랑에 대하여 하나님의 안식을 말하는 것이다.
󰠆󰠏󰠏 광 야 → 천막생활 → 하나님은 성막
󰠌󰠏󰠏 가나안 → 정착 → 하나님은 성전 = 안식하심
출애굽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느 다윗 - 솔로몬의 역사에서 일단락(구원-안식)된다. 마태복음 초장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한 단락의 역사로 보는 것의 의미가 있다.
http://blog.daum.net/kkho1105/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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