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란 무엇인가? (예장총회신학부조사위원회 보고 자료)
중보기도란 무엇인가? (예장총회신학부조사위원회 보고 자료)
예장 합동 총회신학부 조사연구 총회보고자료
중보기도란 무엇인가?
딤전 2:1-2 에 보면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한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를 섬기려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는 기도의 네가지 종류인데 그 중 세번째 도고하는 용어는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도고(intercession prayer)는 글자 그대로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기도이다.
<중보기도의 능력>이란 책에 보면 (35p) 중보기도에 관련된 용어로 첫째 합심을 말한다. 합심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고 설명한다.
이러한 내용을 중보기도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한 표현이 아니고 행 1 에 나타난 120 명의 성도들이 합심기도하여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지, 이것을 중보기도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은 표현인 것 같다.
<기독교 대백과 사전>의 중보기도에 보면 전체교회와 국가와 성직자와 귀족과 평민을 위해 중재하고 고인을 기리는 기도의 형태로 성공회 교회법 55조(1604년)는 설교에 앞서서 설교자들이 이 기도를 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기원을 보면 고대의 전례에서 설교나 복음서 낭독 이후에 등장했던 흔히 연도 형태의 도고 중보기도에 유래했다.
이것은 로마카토릭의 성 금요일 전례의 기도문과 일반 라틴 미사문의 독립된 오레무스에 잔존하여 있다
9 세기경 사제는 일요일과 축일의 미사에서 설교후에 모든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고인을 추모아였다. 처음에 그것은 사제의 재량에 맡겨졌으나 점차적으로 일정한 형태를 펴 나갔다.
오늘날 중보기도는 대학교와 재판설교와 국가 절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한국교계에서 중보기도라 하여 많은 교회들이 사용하는 것은 유감그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 맺는 말
조직신학 기독론(p234)> 에 보면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시킬 중보의 자격은 성경에 명시되어 잇다. 중보의 자격은
1) 그는 반드시 사람이실 것이라 하였다. 그리스도가 천사의 성질을 취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인성을 취해 입으신 이유는 그가 우리 인류를 구속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2) 그는 반드시 무죄하실 것이라 하였다.
3) 그는 반드시 신적 인격이실 것이다. 위의 내용은 예수그리스도를 지적한 것이요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거나 개인의 기도를 부탁받아 하는 기도를 중보기도라 말 할 수 없고 다만 " 합심기도", "개인기도", "부탁기도"라는 단어를 사용함이 타당하다 보아야 겠다. 중보기도는 예수님의 대제사장 기도에만 사용되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소위 요즈음 말하는 타인을 위한 기도를 중보기도라 함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중보사역을 약화시킬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러므로 타인을 위한 기도를 이웃을 위한 (남을 위한)기도라 함이 합당하다고 본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jungbogido2008/7365897
예장 합동 총회신학부 조사연구 총회보고자료
중보기도란 무엇인가?
딤전 2:1-2 에 보면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한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를 섬기려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는 기도의 네가지 종류인데 그 중 세번째 도고하는 용어는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도고(intercession prayer)는 글자 그대로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기도이다.
<중보기도의 능력>이란 책에 보면 (35p) 중보기도에 관련된 용어로 첫째 합심을 말한다. 합심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고 설명한다.
이러한 내용을 중보기도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한 표현이 아니고 행 1 에 나타난 120 명의 성도들이 합심기도하여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지, 이것을 중보기도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은 표현인 것 같다.
<기독교 대백과 사전>의 중보기도에 보면 전체교회와 국가와 성직자와 귀족과 평민을 위해 중재하고 고인을 기리는 기도의 형태로 성공회 교회법 55조(1604년)는 설교에 앞서서 설교자들이 이 기도를 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기원을 보면 고대의 전례에서 설교나 복음서 낭독 이후에 등장했던 흔히 연도 형태의 도고 중보기도에 유래했다.
이것은 로마카토릭의 성 금요일 전례의 기도문과 일반 라틴 미사문의 독립된 오레무스에 잔존하여 있다
9 세기경 사제는 일요일과 축일의 미사에서 설교후에 모든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고인을 추모아였다. 처음에 그것은 사제의 재량에 맡겨졌으나 점차적으로 일정한 형태를 펴 나갔다.
오늘날 중보기도는 대학교와 재판설교와 국가 절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한국교계에서 중보기도라 하여 많은 교회들이 사용하는 것은 유감그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 맺는 말
조직신학 기독론(p234)> 에 보면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시킬 중보의 자격은 성경에 명시되어 잇다. 중보의 자격은
1) 그는 반드시 사람이실 것이라 하였다. 그리스도가 천사의 성질을 취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인성을 취해 입으신 이유는 그가 우리 인류를 구속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2) 그는 반드시 무죄하실 것이라 하였다.
3) 그는 반드시 신적 인격이실 것이다. 위의 내용은 예수그리스도를 지적한 것이요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거나 개인의 기도를 부탁받아 하는 기도를 중보기도라 말 할 수 없고 다만 " 합심기도", "개인기도", "부탁기도"라는 단어를 사용함이 타당하다 보아야 겠다. 중보기도는 예수님의 대제사장 기도에만 사용되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소위 요즈음 말하는 타인을 위한 기도를 중보기도라 함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중보사역을 약화시킬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러므로 타인을 위한 기도를 이웃을 위한 (남을 위한)기도라 함이 합당하다고 본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jungbogido2008/7365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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