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주의해야할운동

세계교회협의회와 종교다원주의

세계교회협의회와 종교다원주의
 
WCC 한국 총회, 환영할 일인가?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한국에서 총회를 개최할 계획이 알려지면서, 이 대회를 한국교회가 환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한국지부격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원교회들은 이를 환영하며,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 충실하려고 하는 교회들은 환영하지 않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 대표자 김삼환 목사(장로교 통합, 명성교회)의 주도로 한국총회 개최가 확정되었다고 알려지자 일간지들은 이를 환영하는 보도문을 실었다. 이 총회를 기회로 하여 기독교가 이웃종교에 대해서도 상호존중과 대화를 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자 모 교단은 한국 총회 개최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했다.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 주요 까닭이었다. 장로교 합동교단도 환영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로교 고신교단은 한국교회의 신학적, 신앙고백적 사안에 대하여 사의성 있게 입장을 분명히 천명하는 전통을 지녀왔다.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 한국 총회 개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뚜렷한 입장을 표방하지 않고 있다. 교단 안의 신학자들과 교단 실세 그룹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이 교단이 경영하는 고려신학대학원은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에 대한 신학적인 이견차이를 둘러싸고 한 차례 거친 진통을 겪은 바 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총회를 어디서 개최하든 그것은 그 단체의 선택사항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그 총회의 한국 개최를 환영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과제이다. 교회연합은 언제나 환영할 일이다. 분열과 상처 많은 교회들이 일치운동을 통해 협력하고 개혁해 나가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신앙고백적 기초를 무시하면서까지, 그리그도의 유일성과 성경의 계시관을 부인하면서까지, 교회연합이나 일치운동을 환영하는 것은 잘못이다, 따라서 그러한 성격을 가진 세계 기구의 한국 총회 개최는 환영할 일이 못된다.
세계교회협의회가 결과적으로 교회를 병들게 하고 결국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에 걸린 것 같이 죽어가는 교회가 되도록 작용한다면 이를 환영해야 할 까닭이 있는가? 교회가 타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동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말하면 세상을 칭찬하고 존경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까?
필자는 에큐메니칼운동, 즉 교회연합일치운동을 긍정적으로 본다. 무조건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군대식 근본주의 입장을 배격한다. 진보계 일치운동 안에도 일면 바람직한 것들이 있다.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다원주의를 공식 천명하고, 역사적 기독교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이 단체를 이끌어 가는 유럽과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교회들이 생명력을 상실하고 있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진리는 타종교와의 대화(dialogue) 속에서 발견된다,’ ‘성령의 구원 역사는 이웃종교에도 발견된다’는 따위의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 포용주의를 천명하면서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 대한 불일치를 보이는 세계기구의 흐름의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협의회를 어떻게 볼 것이며, 교회연합과 일치는 어떤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 세계교회 협의회의 한국 총회는 한국교회에 유익한 것을 가져다 줄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필자의 <에큐메니칼운동과 다원주의>(2005, 본문과현장사이, 도서출판 영문총판)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역사와 성격 그리고 교회연합일치운동의 실체를 분석한다. 세계교회협의회 한국 총회 개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신자들의 수평이동이 심한 한국교회 상태에서, 신자들은 쟈신이 속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믿고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따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교회가 적그리스도적이며 배교적이며 이단을 훨씬 넘어서는 종교다원주의나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성을 부정하는 교회협의회를 지지, 지원하고 있다면 그것은 신자들을 기만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세계교회협의회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해 준 역사적 기독교와는 별개의 종교이다. 기독교라는 이름은 동일하지만 그 내용은 완연히 다르다. 세계교회협의회 한국 총회를 계기로 복음적인 교회들의 사회참여적 활동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고, 또 이 단체를 적극 지원하는 교회들, 특히 장로교 통합, 기장, 감리교회 등이 자신들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아래의 글은 세계교회협의회의 정체성을 다루는 위 책의 제6장 “세계교회협의회와 종교다원주의”를 옮긴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역사와 정체를 개괄적이면서도 정확하게 파악한다. 각주와 관련 사진들은 생략한다. 토론과 비평은 책을 근거로 이루어지기 바란다. 홈페이지 reformanda.co.kr에 사진과 함께 게재되어 있다. 이 홈페이지에 실린 종교다원주의와 에큐메니칼운동과 관련된 기타 논문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세계교회협의회와 종교다원주의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기독교―
1. 사도적 신앙을 고백하는가?
세계교회협의회는 장대한 규모와 매혹적인 프로그램들을 가진 에큐메니칼 단체이다. 2005년 1월 현재 그리스정교회와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교회를 포함하여 342개의 교단과 단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로마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프로테스탄트교회의 가시적(可視的) 일치와 친교를 목적으로 삼고, 성만찬을 중심으로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1를 표방한다.
뉴델리 총회(1961, 제2차)가 채택한 세계교회협의회 헌장은 예수 그리스도와 삼위일체 하나님이 교회일치의 기초라고 말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성서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원자로 고백하고, 한 하나님, 곧 성부·성자·성령의 영광을 위한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 싶어 하는 교회들의 친교(코이노니아)이다”2고 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표는 “하나의 사도적 신앙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떡을 떼고, 공동의 기도에 참여하고, 인류에 대한 증거와 봉사에 참여하고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면서, 성령으로 하나의 충만한 연합과 친교를 가지는 데 있다”3고 한다.
“성서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며 구원자다”고 하는 위 문구는 매우 훌륭해 보인다. 그러나 기독교의 최소한의 신앙고백도 하지 않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기독교 에큐메니칼 단체의 신앙고백 문구로는 지나치게 간단하다. 로마가톨릭교회로 하여금 이와 비슷한 것을 표명하라고 하면 훨씬 더 구체적인 고백문을 제시할 것이다. “성서에 따라”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에 대한 서술이 아니다.4 세계교회협의회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에 대한 높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 용어를 사용하지만 전혀 다른 개념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며 구원자이다”는 서술도 유서 깊은 기독교와 다른, 자유주의 기독교가 말하는 기독론·신론·구원론을 깔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산하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1990년에 ‘하나의 신앙고백’(Confessing One Faith)5을 채택했다.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의 신앙’을 언급하며 각 교회와 지역교회가 이러한 신앙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문건은 ‘에큐메니칼’ 시각으로 해석된 신학, 특히 교회관을 담고 있다. 1993년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위원회 제5차 대회는 개 교회와 지역교회의 다양성과 연속성을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히13:8) 하나님과 구주로 고백할 수 없거나, 성경이 선포하고 사도 공동체가 설교한 구원과 인간의 궁극적 운명에 대해 함께 고백할 수 없는 다양성은 부당하다”6고 서술한다. 교회의 통일성은 경전인 성경의 복음진리(갈2:5,14)와 훗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안에 제시된 부연된 가르침들 위에 근거해 있다. 이 통일성과 이에 대한 가르침들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아니고, 교회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양성의 기초이다. 성서는 다양한 메시지와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성서가 기록된 상황들이 다양하고, 이 성서에 대한 접근방법과 해석방법이 다양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고백문은 액면 그대로 보면 복음주의자들도 환영할 만하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사도적 신앙과 성경에 기초한 단체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제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신학적 개념을 부여한다. (2) 문건은 문건일 뿐 회원교회·회원단체·구성원들에 대한 규제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 (3) 이 단체의 방향과 흐름은 위 문건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4) 이 단체의 교리 선언문들은 자체의 실질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5) 이 단체가 신앙고백 중심의 기구가 아니므로 상반된 신학을 가진 회원단체나 개인을 규제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의사도 없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 사항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자, 종교혼합주의자, 종교다원주의자들을 포용한다. (6) 오히려 그런 류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이 단체를 이끌고 있다. (7) 성경의 권위와 기독교의 중추 교리를 공적으로 분명하게 고백하지 않고서도 여전히 이 단체의 회원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세계교회협의회가 ‘사도적 신앙’(One Apostolic Faith)과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고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문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성경적이고 교리적으로 건전한 에큐메니칼 단체로 보는 것은 오판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이형기 교수(역사신학)는 세계교회협의회의 고백문건들과 박형룡 박사의 정통신학을 견주면서 상호 일치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초대교회의 에큐메니칼 공의회 운동과 세계교회협의회 중심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동일선상에 두고 전자와 후자를 등등한 관점에서 평가한다.7 초대교회의 니케아공의회, 콘스탄티노플공의회, 칼케돈공의회와 같은 에큐메니칼 총회를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들과 동등한 위치에 둔다.
그러나 고대교회의 에큐메니칼 총회와 세계교회협의회는 그 지향점이 같지 않다. 전자는 ‘교리’ 중심의 총회였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신앙과 교리를 굳게 다지고 이단을 철저하게 배격했다. 주후 500년 전까지 개최된 에큐메니칼 공의회는 연합 단체의 총회가 아니라 ‘교회’의 총회였다. 교리 작성과 이단 정죄를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말씀·진리·교리에 마음을 열고 이단에 등을 돌린 총회였다.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는 교리·신조·진리 중심의 단체가 아니다. 교제·성찬 중심의 단체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등지고 종교다원주의에는 마음을 열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90년에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공식 선언했다. 유서 깊은 기독교가 고백하고 천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을 포기했다. 종교다원주의를 공식 표방한 것은 이 단체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것이다.
2. 바아르선언문(1990)
세계교회협의회 종교간대화위원회[살아있는 신앙인들과의 대화 분과]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범위를 전 세계 종교 간의 대화로 확대시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71년에 ‘타종교의 신앙인들과 이데올로기들과 대화를 위한 소분과’를 만들었고, 1979년에는 ‘대화지침’(Guideline on Dialogue, 1979)을 내놓았다. 그 뒤로 이 단체는 심화되는 종교 간의 대화 경향을 주목하면서, 1988년에 프로테스탄트교회, 로마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신학자 21명을 초청하여 연구를 하도록 했다. 이들은 3년 동안 스위스 마을 바아르에서 ‘내 이웃의 신앙과 나의 신앙: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한 신학적 발견들’이란 주제로 연구했다. ‘바아르선언문’(Baar Statement, 1990)은 그 결과를 종합한 것으로 종교다원주의를 분명하게 표방하고 있다.8 이 선언문은 로마가톨릭교회의 바티칸공의회가 1965년에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내용을 담아 반포한 ‘비그리스도에 관한 선언’과 ‘종교자유에 관한 선언’과 맞먹는 획기적인 것이다.
이 선언문의 핵심은 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나라와 백성 가운데 항상 존재하듯이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타종교에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만물 가운데 임재하여 활동하며, 그는 모든 나라와 민족의 하나님이므로, 그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 또한 전 인류와 종교들을 포용한다고 선언한다. (다음과 같다)
인간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들 가운데 임재하여 활동하시는 하나님께 응답해 왔으며, 그 만남을 고유한 방식으로 증언해 오고 있다. 이 증언들 속에 구원·완전성·깨달음·인도·휴식·해방을 추구하고 발견한 신앙적인 역정(歷程)이 메아리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증언들에 지극히 진지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항존(恒存)해 있었음을 자각한다. 기독교인인 우리의 증언이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경험한 구원의 사역에 그 초점이 모아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제한할 수 없다’(CWME, 산안토니오, 1989). 타종교인들을 이웃으로 가진 우리의 증언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행하시는 일들을 인정하는 포용성을 근거로 해야만 한다’(CWME, 산안토니오, 1989).
우리는 종교 전통의 다원성이 하나님께서 각 나라와 민족과 관계하시는 다양한 방식의 결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다양성과 풍성함의 표현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의 종교적 탐색과 발견 가운데 함께 계셨음을 인정하며, 그들의 가르침 속에 지혜와 진리가 있고, 그들의 삶 속에 사랑과 경건이 있는 이상, 우리 가운데 있는 지혜·통찰·지식·이해·사랑·경건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가진 그것들이 성령의 선물(열매)인 것이 분명하다.(중략)
종교의 다원성 속에 현존하시는 만유의 주 하나님을 신앙한다면, 그분의 구원 사역이 어느 특정 대륙·문화·민족에 국한된다는 편협한 사고를 더 이상 고집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의 여러 민족과 나라가 보존해 온 각기 고유한 종교적 증언들을 무시하는 처사는 하나님이 인류의 아버지이며 만유의 주라는 성서적 메시지를 결국 부인하는 결과에 해당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과 예측 불가능한 장소에서 활동하신다.9
바아르선언문은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시적, 인격적 위임에만 국한시키는 신학을 넘어설 것을 천명한다. 성육하신 그리스도 속에서 전체 인류 가족은 언약으로 하나님과 결합되어 있다. 하나님의 구원 활동은 모든 피조물과 인류 역사 가운데 현존한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보여주시듯 그는 영과 진리로써 하나님을 섬기려는 모든 사람들을 수용한다. “예수의 지상 사역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일면 제한된 것처럼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지만(마10:23), 그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유월절의 신비로써 이 제한은 초극(超克)된다. 십자가의 부활은 하나님이 신비한 구원의 역사에 내재한 보편적 차원을 우리에게 일깨운다”10고 말한다.
이 선언문은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가 다양한 방식으로 중계되고 매개된다고 한다. 교회 밖의 사람들도 자기의 종교 전통에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그 구원의 섭리 아래 있다. 타종교인들의 삶과 전통 속에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활동하심을 고백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11 우리는 타종교인들의 세계 속에 현현되는 구원의 신비를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들 가운데 성취하셨고 또 성취하실 일들을 존경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종교 간의 대화는 일방통행로가 아니라 쌍방교차로이다. 이웃 종교인들에게서 배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종교다원주의와 대화적 실천의 도전은 기독교 신앙의 신선한 이해, 새로운 질문들, 그리고 더 나은 표현을 규명해 가야할 우리 기독인들이 마땅히 서야 할 자리의 한 부분이다”12고 말한다.
(이상과 같은) 바아르선언문이 말하는 ‘대화’는 종교 간의 상호이해나 협력을 위한 의사소통의 차원을 넘어서 기독교가 타종교에 대해 고수해 온 기존의 배타적인 교리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포기하고 타종교와 진리담론 속에서 진정한 진리를 찾는 노력을 뜻한다. 이처럼 세계교회협의회는 성령 하나님이 타종교 안에서도 구원역사를 펼친다고 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유일절대 조건이라는 유서 깊은 기독교의 구원론을 더 이상 고백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한다.
김경재는 바아르선언문을 호평하면서 선교사들이 구원자‘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소개한 시대 이전에도 “진리 자체이시며 신성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성령’의 임재 속에서 모든 민족과 역사와 전통 속에 현존하시며 구원의 사역을 지속해 오셨다는 고백이다”13고 말한다. “성령의 구원활동은 기독교 성립보다, 성경의 형성보다, 선교사의 활동보다, 교회당의 건립보다 언제나 앞서고 보다 근원적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전통에 국한되거나 제한당하지 않는다는 고백이다. ‘성령의 임재’라는 기독교적 표현은 보다 보편적 언어로서 ‘로고스의 임재,’ ‘다르마[달마]의 임재,’ 또는 ‘신의 임재’라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14고 한다.
3. 성령의 구원역사와 타종교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다원주의를 ‘고백’하는 것은 ‘복음과 문화’ 사이의 연속성에 대한 이 단체와 그 산하 단체들의 논의와 성명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제3세계 교회들이 세계교회협의회에 대거 참가한 뉴델리 총회(제3차, 1961)는 복음과 문화, 복음과 타종교의 문제를 공식적으로 거론했다. 뱅쿠버 총회(1983)도 이를 구체적으로 논의했고, 하라레 총회(제8차, 1998)는 복음과 문화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종교다원주의를 더욱 확실하게 표방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캔버라 총회(1991)에서 정현경 박사가 초혼제를 지낸 것을 계기로 복음과 문화의 관계에 더욱 큰 관심을 가졌다.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는 제네바(1992)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이 단체 산하 기구인 복음전도세계대회(CWME, 1996)는 브라질 살바도르에서 ‘하나의 복음과 다양한 문화’의 관계를 다루었다. ‘하나의 희망으로 부르심: 다양한 문화들 속에 있는 복음’이라는 주제로 모였다.
이 대회의 제4분과는 ‘하나의 복음, 다양한 표현들’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문화와 하나의 복음의 관계를 논했고, 타종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적극 권장했다. 복음이 문화 속에 성육하는 양상들과 문화가 복음을 조명하고 성육화(Incarnation)시킨다고 했다. 문화가 복음이해를 조명, 고양시키기도 하고 복음의 의미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가치들을 창조하고 인간 공동체의 새로운 형태들을 탄생시킨다고 말했다. “문화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며, 인간의 자유와 창의성의 표현이다.”15 피조세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화를 거쳐 사람들에게 미치며, 인간은 문화를 수단으로 하나님께 반응한다. “타종교인들 안에 있는 성령의 열매”16를 인정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피조세계 속에 자신에 대한 증거를 남겨놓았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에 한계를 둘 수 없다. 성부 하나님과 성령은 타종교 안에서도 역사한다고 서술한다.
복음주의계 교회는 선교사가 복음과 문화 사이에서 씨름하며, 선교지역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고 사랑하며 그것들 가운데서 비복음적인 것들을 복음으로 변혁시키려고 도전해야 한다고 본다. 피선교지 문화의 가치와 싱징들을 존중하지만 무조건 다 수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음이 문화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다양한 문화적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와 산하 선교단체들이 말하는 복음과 문화는 이런 류의 관계가 아니라 양자가 서로에게 작용하고 서로를 변개(變改)시키는 관계이다. 서로에게 조명(照明)하고 서로에게 도전한다. 토착문화 속에서 역사하는 신적인 것(the divine which is already at work there)과 토착민의 거룩성에 대한 감(the people’s own sense of the holiness)을 강조한다.17 “도처에 있는 개 교회들은 점증하는 다종교 상황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인류 공동체에 대한 희망에 대해 설명하도록 부름을 받았다”18고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유일무이한 절대 종교라는 생각을 버리고 타종교와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타종교와의‘대화’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이다. 이것은 상호 존경과 다른 종교들로부터 배우려는 개방성을 요구한다. 기독교인들은 대화 파트너를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상대방을 회심시키려고도 하지 않아야 한다. 회심은 성령께서 일으키신다. [대화는]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에 대해 증거하는 것을 포함한다.”19 여기서 말하는 ‘증거’는 복음제시가 아니라 기독교 서클 안에서 얻은 종교경험을 타종교에 들려주는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다원주의 를 ‘고백’하는 것은 산하 기구들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 다른 종교에도 있다고 거듭 천명하는 데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한 편에서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 같은 문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인류와 피조세계의 아버지이며, 성령께서 타종교 안에서도 구원역사를 수행하고 계시므로 따라서 우리가 타종교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산안토니오 세계선교대회의 서술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구원에 이르는 다른 길을 제시할 수 없다.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에 대해서 그 어떤 제한도 둘 수 없다”는 것을 재 확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안토니오와 더불어 우리의 이와 같은 확신들과 증거의 교역은 타신앙을 가진 사람들 안에 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주장한 내용과 긴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긴장을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그것을 해소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San Antonio, 32,33).20
앞에서 언급했듯이, 세계교회협의회는 다종교, 다문화 사회에 존재하는 제3세계 교회들이 대거 참여한 뉴델리 총회(1961) 때부터 타종교와의 대화의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거론했다. 그 뒤로 하나님은 불교·힌두교·이슬람교·도교 등 다른 종교 안에도 역사하고 계시므로 우리가 상호 존경심을 가지고 타종교들에서 배워야 하고, 그 종교들을 판단하지 않아야 하며, 타종교인들을 회심시키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발전했다. 타종교인들을 돕고 자신의 종교 경험을 들려주어야 한다고 본다. 교회가 타종교인을 사랑하고, ‘대화’하며, ‘하나님의 선교’에 함께 참여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드려지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알려진다고 생각한다.21
에큐메니칼 운동의 종교다원주의 흐름은 세계교회협의회 하라레 총회(1998)가 채택한 선교성명서(Mission and Evangelism in Unity Today)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공산주의 동구권과 구소련 연방의 붕괴와 시장경제의 지구촌화를 보면서 만든 이것은 오늘날의 세계의 특징이 지구화(Globalization), 포스트 모더니티(Post-Modernity), 현대인이 자신을 삶의 주인이라고 믿는 현상 등이라고 지적한다.
이 성명서에 포함된 ‘지구화의 상황’에 대한 논의는 ‘우리 시대의 선교 패러다임’(Mission Paradigms for our Times)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며 이 단체의 관심 분야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주목할 것은 복음과 문화의 관계(세 번째 항)와 타종교와의 대화(네 번째 항)이다. 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가 21세기에 기독교 선교에 닥쳐 올 가장 심각한 도전들 가운데 하나라고 걱정하면서도 그것에 성큼 다가가고 있다. 요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충만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았다. 급속하게 확산되는 지구화는 모든 현실의 가치를 경제적이고 재정적인 범주들로 축소시킨다. 이것은 야비하고 통제를 벗어난 자유시장 경제와 최첨단 기술로 표현된다. 이로 인해 점증하는 비인간화 현상은 교회의 선교에 도전한다.22 새로운 종교운동들의 일어남과 청소년들의 종교경험을 향한 열망은 우리 시대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오늘날의 영성(Spirituality)은 흔히 인격 성장, 통합적인 건강, 머리가 깨끗해짐, 감정의 통제를 위한 일련의 기술과 방법들이다. 성취와 의미의 원천을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지 않고 오히려 인간 존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신적인 능력을 일깨우는 데서 찾으려고 한다.23
둘째,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살도록 부름 받았다. 그런데도 개인주의가 삶의 모든 차원에 침투하고 있다. 개인이 실재와 실존의 유일한 규범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구원을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로 이해하고,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역할을 소홀히 한다.24 영원한 친교를 누리고 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본성상 관계적 존재이다. 인간 삶의 관계 차원은 하나의 주어진, 존재론적 실재이다. 따라서 참된 인간론은 관계적이고 공동체적이어야 한다.25
셋째, 우리는 각 문화 속에 복음을 성육화 하도록 부름 받았다. 방콕대회(CWME, 1973)는 “문화는 그리스도의 음성에 응답하는 인간의 목소리를 형성한다”고 했다. 복음과 문화의 불가분의 관계성에 대한 논의가 최근에 더욱 뜨거워졌다. 캔버라 총회(1991)와 다른 에큐메니칼 단체들은 복음을 어떤 역사적 교회들의 전통들과는 전혀 다르게 표현하려는 문화화 신학(Inculturation Theologies)에 대한 열띤 토론을 펼쳤다. 1990년대에 지역별 정체성 때문에 빈번하게 난폭한 갈등이 생겼고, 종족과 문화에 바탕을 둔 핍박이 있었다. 이것들은 선교가 문화의 도전들을 새롭게 취급하도록 강권한다.26
문화는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이며, 인간 창의성의 표현이다. 문화는 본유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두 가지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다.27 살바도르대회는 ‘인간의 정체성은 문화를 거쳐 형성되기 때문에 문화에 참여함이 없이는 인간이 되는 길이 결코 없다’고 지적했다.
‘하나님의 선교’는 성육화 방법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방법에 따른 선교는 일정한 맥락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안 되고, 나아가서 특정 맥락 속에서 제기되는 도전들을 구체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증거는 모든 상황에서 지역문화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문화화 된 신앙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다. 모든 문화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으며, 그 어떤 문화도 하나님께서 인간과 관계를 맺는데 자기가 유일한 규범이라고 생각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28
복음이 하나의 문화와 진정으로 상호작용을 할 때 비로소 그것은 그 문화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복음은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신학적인 의미를 가진다. 복음은 문화의 어떤 측면들을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다른 측면들에는 도전하고, 비판하고, 변혁시킨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 문화는 기독교화 되며 복음의 운반자가 된다. 동시에 문화는 복음이해와 표현을 돕고 조명하며, 풍요롭게 하며, 때로는 도전한다. 불의를 산출하고 영속시키며 인권을 억압하고 피조세계에 대한 지탱 가능한 관계맺음을 방해하는 문화의 측면들도 있다. 복음은 이것들에 도전한다.29
넷째, 우리는 증거와 대화를 위해 부름 받았다. 증거와 대화는 다종교 사회인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지역에 있는 교회들의 관심사로 여겨져 왔으나, 최근에는 증가된 이민으로 인하여 종교다원성이 전 지구의 현실이 되었다. 어떤 곳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자유를 누리고 살며, 상호존경과 이해의 정신으로 다른 사람들과 협조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종교적 비관용이 점증(漸增)하고 있다.30
산안토니오세계선교대회와 살바도르세계선교대회(1995)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각각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그 어떤 길도 가리킬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제한할 수는 없다. 분명, 이 두 명제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이 긴장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31 선교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교회 밖에서, 하나님이 타 종교 공동체에서 어떻게 일하시는가에 대해 정확히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일하고 계시는 것은 분명하다고 하는 인식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32
교회가 선교와 관련하여 숙고해야 할 것은 타종교인들이나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는 성령의 현존에 대한 이해이다. 살바도르대회는 사랑과 정의 그리고 갈등을 해결하려는 연대투쟁과 비폭력적 수단들을 지적하고 있다. 성령의 열매들에 대해 말하는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이 이 문제를 위한 길라잡이로 인용되고 있다. 타종교인과 다른 신앙인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사랑. 기쁨, 화평, 온유, 양선, 절제, 인내 등)는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고 있는 분명한 증거이다.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와 타종교 신앙인들과의 대화 그리고 이 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은 받은 은사를 따라 이 두 가지 가운데 그 어느 하나를 더 강조할 수 있다.33
진정한 대화가 성사되려면 상대방 종교의 정체와 신앙내용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증거가 타종교와의 대화보다 앞선다고 말할 수도 있다. 복음전도는 하나님께서 제공한 자유와 화해를 선포하면서 이미 그리스도를 따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역하는 사람들에게 합류하라고 초대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대화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 예수님의 명령에 대한 하나의 증거이며,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어떤 맥락에서는 겸손히 자기를 비우는 선교(kenotic mission)에 충실하려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은 지배가 아니라 봉사의 삶 속에서 항상 피해에 노출된 삶을 사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삶을 따르는 길이다.34
다섯째, 우리는 복음진리를 선포하도록 부름 받았다. 우리 시대의 큰 도전들 가운데 하나는 서구 철학자들과 과학자들 사이에서 발전된, 점증하는 상대주의이다. 포스트 모던(post-modern) 사고에서 정치·사회·경제·문화·종교 영역에 절대적이고 진리개념이 과격하게 문제시되고, 배격당하고 있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보다는 상호 간에 평행되며 공생하는 보편적 ‘진리들’이 있다.35
4. 다양한 구원의 길
세계교회협의회는 종교다원주의를 ‘고백’하며 기독교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새로운 기독교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 단체를 주도하는 지도자들의 사상에서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전 총무 에밀리오 카스트로(Emilio Castro)는 “세계교회협의회의 공식 신학이란 것은 없다. 그런 것이 결코 있을 수도 없다. 우리는 한 교회가 아니다. 심지어 신하 교회 안에도 신학의 다양성이 있다”36고 말한다. 전 총무 유진 카슨 블레이크는 “연합된 교회는… 신앙의 신학적 형식들의 광범위한 다양성을 포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37고 말한다. 진 마리 틸라드(Jean-Marie Tillard)는 “하나님의 교회는 심지어 가장 놀라운 일치 시대 동안에도 항상 다원적 형태였다. 실천의 차원에서도 교훈의 차원에서도 그러했다”38고 한다. 이 단체의 핵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라이문도 파니카는 에큐메니칼 토론의 목표가 “다양한 기독교 신앙 고백들을 초월하며 또한 내재하는 원리에 보다 더 깊고 충실한 항상 어떤 새로운 일치점에 있다”39고 말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교회의 통일성을 세례를 받는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고 정규적으로 갖는 성찬 교제에서 찾는다.40 성찬을 나누는 범위 안에서 모든 기독교인들은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동등한 사람으로 영접할 수 있으며, 기독교인들은 교리에 대한 심사 없이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또한 함께 일하는 목회 사역이 가능하다고 본다.41 전술했듯이, 이러한 특징은 종교개혁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성경, 교리)을 교회의 표지로 여긴 것과 다르다.
콘스탄티노플 에큐메니칼 교구가 파송한 세계교회협의회 상임대표 메트로폴리탄 에밀리아노스(Metropolitan Emilianos)는 말하기를 “인간적인 또는 신적인 어떤 법도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교리와 예배 의식의 차이들 때문에 다른 자녀들을 돕는 것을 중지시킬 수는 없다…. 교회 역사는 요컨대 교리의 차이가 선교 활동에 협력하지 못할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42고 말한다.
뱅쿠버 총회(1983, 제5차)는 힌두교, 불교, 유태교, 이슬람교, 시크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공석에서 연설을 들었다. 이 총회의 지도자들은 인디안 토템주상을 세우고 신학자들은 타종교의 예배 의식에 참석했다. 이 총회는 “우리는 우리가 증거하는 예수의 탄생, 생애, 죽음, 부활의 독특성을 주장하는 한편, 다른 신앙인들의 종교적 진리 추구에도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이 있음을 인정한다. […] 대화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어떻게 활동하는가를 더 명확하게 분별하게 되고, 타종교인들이 궁극적 실재(존재)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찰(洞察)과 경험에 대해 감사하게 되기를 바란다”43고 선언했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종교간대화위원회 의장 더크 멀더(Dirk C. Mulder)는 “하나님의 영은 모든 곳에서 역사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계시는 항상 어떤 방식으로든 구원적이지 않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종교 간의] 대화에서 단지 우리의 신앙을 더 잘 증거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고 있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새로운 빛들을 가지기 위해 배우고 들어야 한다는 확신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44고 말한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출간한 『성경과 타종교인들』(The Bible and People of Other Faiths, 1985)45은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한다. 저자 웨슬리 아리아라자(전 세계교회협의회 종교간대화위원회 의장)는 “절대적 의미의 진리는 어느 누구도 파악할 수 없다. 우리는 예수에 관한 기독교의 주장들을 성 요한과 성 바울과 성경이 그렇게 말한다고 하여 그것이 절대적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46고 한다. 자신이 기독교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1) 성경이 명확한 기독론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며, (2) 서로 다르고 모순되는 기독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며,47 (3) 성경의 언어는 신앙의 언어이므로 문자 그대로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48
앞에서 언급한 더크 멀더는 “당신은 불교인이나 힌두교인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물론이죠, 그렇고 말구요”49 하고 답했다. 그는 “기독교의 신, 힌두교의 신, 이슬람교의 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힌두교적 이해, 이슬람교적 이해가 있을 뿐이다. […] 타종교인도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자매요, 순례자이지 이방인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한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다. […] 힌두교인은 회개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동료 순례자이다”50고 말했다. 기독교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이 전도에 가장 큰 방해거리라고 했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참된 증거에 가장 큰 방해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는 요인을 골라내라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절대적 주장이라고 말할 것이다”51고 했다.
세계교회협의회와 그 산하 단체들이 타종교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선언한 것은 그들이 말하는 구원이 기독교의 구원과 동일한가에 대한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이 아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의 홍정수 교수(조직신학)는 “기독교적인 의미의 구원이 타종교에도 존재하는지, 그리고 존재한다면 그런 길이 우리의 길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우리는 아직 충분히 모른다”52고 하면서 특정 상대방을 충분히 알기까지는 구원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복음주의 선교신학자 피터 바이엘하우스(Peter Beyerhaus, 전 독일 튀빙겐대학교 교수)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의 초대로 서울에서 ‘종교다원주의’에 대해 강연(2004.11.12.)했다. 종교혼합주의와 종교다원주의가 흥행하면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부정되고 유서 깊은 기독교가 심각하게 도전당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세계교회협의회에서 행한 정현경 박사의 초혼제(1991), 로마가톨릭 교황청이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개최한 세계종교인평화기도회(1987), 세계교회협의회의 종교 간의 대화 등을 그 사례로 꼽았다. 세계교회협의회의 다원주의적 상대주의(Pluralistic Relativization)는 그리스도에게 상대적인 자격을 부여하고 또 그리스도 밖에도 다른 경배의 대상, 구원의 길이 있음을 인정하며, 혼합주의적 침식(Syncretistic Undermining)이 한 종교가 다른 종교를 정복하기 위해 그 종교에 침투하는 전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기독교가 침식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혼합주의가 신(新)영지주의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53
바이엘하우스는 적그리스도가 역사적 기독교에서 나온다는 점과 그것이 기독교 신앙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대체’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종교를 초월하는 단일 정치·사회·경제·문화 체제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접목시켰다. 혼합주의와 다원주의는 (1) ‘강압적 단일화’를 지향하며, (2) 연합·일치·통합을 양심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근본주의자로’로 평가절하하며, (3) 근본주의 신앙을 교회와 인류 발전의 적으로 규탄하며, (4) 전통적인 기독교 복음전도와 선교를 근본주의자들의 사역으로, 불법행위로 보고 이를 금하도록 요구한다고 했다.54
세계교회협의회는 ‘사도적 신앙’(One Apostolic Faith)을 고백하고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의 친교’로 시작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에 바탕을 둔 이 단체는 점차 세속화 되어 지금은 ‘타종교에도 성령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있다’고 말한다. 이 단체가 종교다원주의를 ‘고백’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사도적 신앙’을 부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 단체의 고백문건은 문건일 뿐 그것이 구성원들과 회원교회들의 믿는 바를 규제하지 않으며, 시작할 때 내세운 고백문건과 현재 이 단체가 실제로 믿고 고백하고 지향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최덕성, <에큐메니칼운동과 종교다원주의>, 131-154쪽에서 옮김]

최덕성 교수 (전 고려신학대학원, 역사신학)
자료출처 http://cosamo.net/bbs/view.php?id=education&no=83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