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 WCC 운동은 무엇인가?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 WCC 운동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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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9월 24일 (목) 11:12:13 [조회수 : 8585] 이명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가 2013년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될 예정이라고 한다. 며칠 동안 <국민일보> 메인 면을 통해 세계교회협의회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지난 2009년 9월 16일, 서울 잠실동 롯데호텔 월드에서 제10차 총회 유치 기념 감사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김형오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 한승수 국무총리 등 교계 관계자 1,000여 명이 참석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축하 영상을 보내기도 했다.
WCC는 세계 110개국 349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세계 최대 기독교 기구이다. WCC는 지난달 3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중앙위원회를 열어 최종 투표를 벌여 부산을 개최지로 선정했다고 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110개국에서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정교회 등 349개 교단, 5억 8,000만 명이 가입한 세계 최대 개신교 협의회 체제로, 7년마다 나라를 바꿔가면서 총회를 열고 있다.
1961년 인도 뉴델리의 3차 총회 이후 아시아에서 52년 만에 열리게 된 부산 제10차 총회는 가시적으로는 한국 개신교 역사에 있어서의 큰 경사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이고 중차대한 기독교적인 축제가 종교 혼합주의와 다원주의 정신에 의해 주도되어왔다는 사실이다. 정체성이 의심스러운 WCC(세계교회협의회)가 2013년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을 목도하면서 한편으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종교개혁자들이 목숨 걸고 개혁을 단행했던 것은 교회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집단인 가톨릭의 그릇된 신앙고백 때문이었다. 심각하게 오염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개혁을 단행했고 오늘의 기독교가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 안에서는 진리와 교리, 교회와 신앙의 진정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닌 것 같다.
WCC가 무엇인지 정확한 정보를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에 읽었던 WCC(세계교회협의회)와 관련된 책을 다시 손에 들었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최덕성/본문과현장사이)와 <WCC운동 비판>(박영호/CLC). 두 책을 통해 WCC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이 협의회가 마치 지상 최대의 목적인 양 왜 그토록 교회 일치 운동을 주장하고 있는지, 한국교회가 나아갈 신앙의 지표와 진정성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한국교회의 극심한 분열 상태는 어떤 형태로든 개혁되고 교정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화합이나 가시적 일치만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연합·일치 운동은 위험천만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이 두 책에서 저자들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에서는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 무차별주의로 흐르고 있는 작금의 형태를 우려하며, 지향해야 할 교회 연합·일치 운동과 지양해야 할 운동을 가려서 소개한다. WCC가 어떤 것인지, 얼마나 자유주의신학, 종교 다원주의, 혼합주의에 물들어 있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논조를 펼치고 있다. 아울러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성경에 바탕을 둔 신앙고백의 일치와 진리 안에서 일치가 전제된 교회 연합·일치 운동만이 정당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또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교리 및 교리 교육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말한다. 설교는 진리 체계를 제시하기보다는 축복, 평안, 윤리, 인간관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이런 풍토에서 진행되는 교회 연합·일치 운동은 교리 무관심주의를 조장하고 교파 간에 신앙고백의 차이가 없다고 하는 신앙 무차별주의를 심는다는 것이다.
교회 연합·일치 운동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교회 간의 신학적 차이가 본질적으로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오늘의 신학이 교리 논쟁에서 벗어나 다원화 사회에서 대화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학문 활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신학적 다양성을 수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리는 뒷전이고 화합이 먼저이고 연합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리와 신학을 용납하는 연합활동을 하다가 종국에 가서는 단일 교단으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신학을 수용하고 모든 종교 이론을 포괄하는 단일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은 종교개혁자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교회의 표지인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으로 밀어내고, 친교, 성찬, 사회 참여 성격의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통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아우르고 사도적 신앙과 탈사도적 신앙을 동시에 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유럽 교회를 비롯해 서양 교회들이 생명력을 잃고 쇠퇴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신학적 다원주의와 에큐메니칼 운동과 교리 때문이다. 미국의 주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추락 현상을 연구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듯이 "교회가 자유주의 신학, 세속주의, 현대주의에 오염되어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학적인 이유인 것이다.
그것은 자유주의 기독교의 강령을 따라 에큐메니칼 운동, 다원주의, 타 종교와의 대화를 지향해온 결과이다. 신앙 무차별주의라고 하는 '죽음의 병'이 교회의 정체성과 생명력을 앗아갔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유주의 기독교를 지향하는 교회와 중도 노선을 지향하는 교회와 신학적으로 모호한 입장을 가진 교회들, 즉 회중교회, 미합중국 장로교회,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영국 감리교회, 미국 연합감리교회, 독일 루터교회는 그 좋은 예들이다.
이처럼 현대판 자유주의신학인 종교 다원주의는 자유주의 기독교와 에큐메니칼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탈구조주의, 상대주의, 혼합주의, 민족문화, 종교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 성향과 맞물려 폭넓게 파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에큐메니칼'은 헬라어 '오이쿠메네'에서 유래한 단어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세상'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에큐메니칼이라는 단어는 주로 친교, 성만찬, 하나님 선교 중심의 세계 교회 운동과 동일시되고 있다. 윌리엄 템플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이 언급된 이래 지금까지 이 운동은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움직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에큐메니칼 선교는 국가, 교파, 교리의 차이를 넘어서 사회, 문화, 환경 등 지구의 전 영역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19세기까지의 세계 선교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수행하는 복음 전도에 초점을 모았던 반면에 현대주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자연, 우주 만물, 창조 세계, 생명 공동체, 사회윤리, 공동 선교, 지구촌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 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48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선교 협의체로 출범한 이래 점차 정치 문제와 사회 이념 구현에 관심을 높였다고 한다.
타 종교와의 대화를 부르짖는 나이로비 총회(제4차, 1975)부터는 종교 혼합주의 경향을 띠었다고 언급한다. 종교 다원주의를 공식 표방한 바아르 선언문(1990)을 발표한 직후에 모인 캔버라 총회(1991)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의 종교 대표자들을 초청하여 그들과 함께 대화하며 함께 기도했다. 이 총회가 교회사적인 한 획을 그은 모임으로 평가되는 것은 종교 혼합주의, 종교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용에 의하면, 캔버라 총회를 준비한 괄라룸플 대회(1990)는 성령께서 교회와 인류 사회, 나아가서는 모든 생명체들과 우주 만물에 내재해 계신다고 선언했으며 성령을 '창조되지 않은 에너지'로 규정했다. 이것은 기독교가 고백해온 성령의 편재성을 재확인한 것이 아니라, 만물에 내재해 있는 영을 성령으로 천명했다는 사실이다. 죽은 영들을 불러내고 그들에게 기도를 올리는 초혼제로 시작한 것과 이 모임을 '20세기의 오순절 사건으로 평가'한 것을 보면 세계교회협의회가 어떤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세계 교회 운동의 변천을 살펴보면 처음에 개최된 암스테르담 총회(1948년)는 기독교적 고백에 입각하여 모였고, 웁살라 총회(1968년)는 개 교회와 지역 교회의 보편성을 인류의 보편성과 관련시키면서 사회참여와 사회정의 실현을 교회의 선교 과제로 천명했다.
나이로비 총회(1975)는 개 교회와 지역 교회들의 협의회를 통한 친교를 추구했으며, 뱅쿠버 총회(1983)는 개 교회와 보편 교회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세계교회연합회와 같은 에큐메니칼 단체를 보편 교회로 인식하는 교회관을 지향했다. 캔버라 총회(1991)는 친교를 부각시키고 교회의 나눔과 참여를 강조했다. 저자는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 다원주의를 고백하며 기독교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새로운 기독교라고 말한다.
뱅쿠버 총회(1983, 제5차)는 힌두교, 불교, 유태교, 이슬람교, 시크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공석에서 연설을 들었으며, 이 총회 지도자들은 인디언 토템 주상을 세우고 신학자들은 타 종교의 예배 의식에 참석했다. 이 총회는 "우리는 우리가 증거하는 예수의 탄생, 생애, 죽음, 부활의 독특성을 주장하는 한편, 다른 신앙인들의 종교적 진리 추구에도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이 있음"을 인정했다.
캔버라 총회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자. 세계선교협의회(WCC)의 정체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제7차(1991) 세계선교협의회(WCC) 캔버라 총회에서는 정현경 박사(신학자)가 연출한 종교적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탈기독교화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캔버라 총회는 '오소서 성령이여'라는 주제로 회집되었고, 한국의 감리교회와 장로교 기장, 통합의 대표자 10명과 조선기독교연맹 대표 두 명을 포함한 약 2,000명의 세계 지도자들(회원교회 316명, 정회원 889명)이 모여 예배, 발표, 토론 행사를 가졌다. 정현경의 초혼제는 전체 총대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조 강연과 함께 올려졌다고 한다.
무대에 오른 정현경은 강연을 종교적 퍼포먼스로 진행했다. 호주 원주민 두 사람과 호주 한인 교회 청년들로 구성된 춤추는 사람들을 동원했고 토속 춤을 추게 했으며, 이어서 객석의 불이 꺼지고 호주 원주민 악사가 무대에 등장해 전통 악기를 연주했다. 원주민 무용수가 나와 땅을 축복하는 춤을 추었고 한국인 풍물패가 나와 징과 괭과리를 치면서 굿판을 벌였고, 춤을 추면서 무대를 돌며 초혼제 제단을 만들고 상, 촛대, 향, 초혼문 등을 무대 중앙에 놓았다고 한다.
정현경은 상복을 연상케 하는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와 창호지에 쓴 영문 초혼문을 읽어 내려가면서 한 맺힌 영들과 피조물들의 영들의 내림을 기원하는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한 맺힌 성령이여, 오소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로 시작되는 정현경의 초혼문 원고 일부는 다음과 같다.
"오소서, 우리들의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하여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검둥이 여종, 이집트 여인 하갈의 영이여. 오소서, 그의 아내 밧세바에 대한 다윗 왕의 욕정 때문에 다윗에 의하여 전쟁터로 보내져 죽임을 당한 충성스런 군인, 우리아의 영이여. 오소서,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자신을 마중 나온 첫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한 아버지 입다의 믿음의 희생물이 된 그의 딸의 영이여."
계속해서 정현경은 예수님이 탄생할 때에 헤롯의 군사들에 의해 살해당한 남자 아이들의 영, 잔다르크의 영, 마녀사냥으로 말미암아 불타 죽은 중세기 여인들의 영, 십자군 전쟁 때 희생된 사람들의 영, 기독교가 식민지주의 시대와 이교도 세계에 대한 우월 의식을 지니고서 선교하던 시대에 학살된 토착민들의 영을 차례로 불러들였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있다. 현대주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에 있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신학적 정체성은 이 단체의 '꽃'으로 극찬을 받은 한국인 신학자 정현경 박사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알 수 있다.
정현경은 유니온신학교를 나왔다. 유니온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교다. 1891년 1월 20일 챨스 브리그스는 유니온신학교에 폭탄선언을 했다. 브리그스가 총장 취임 강연을 할 때 아담스 예배실은 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성경은 종이에 글씨를 인쇄해서 제본한 책이며,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고, 학생들에게서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브리그스 때부터 미국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신학교가 되었고 정통주의에서 벗어난 유니온신학교는 지금도 그대로 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유니온신학교에서 배운 학생들이 또 교계로 진출해 그들의 견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급하고 있다. 정현경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학교는 교회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신학교가 가는 방향으로 교회도 간다. 거의 필연적으로 신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졸업생들은 그 교수들의 견해에 영향을 받는다. 오히려 그들은 흔히 그들의 교수들을 능가하며 그들의 빗나간 관점들을 극단까지 몰고간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교들이 한번 자유주의로 발을 들여놓게 되면 머지않아 그들을 표본으로 따르는 교파들도 그렇게 된다." (해롤드 린셀, <교회와 성경무오성>)
WCC의 변천 과정들을 보면서 우려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계속해서 확대되어갈 것이고 지금까지의 그 모든 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교회는 점점 더 분별력을 잃고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번 진리를 양보하고 길을 내어주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나아간다.
저자의 말대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분열된 교회들의 통합, 외형적 단일화보다, '한국교회의 최우선 개혁의 대상은 변질되어가는 교회의 신학과 고백을 바로 잡는 것'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 무차별주의'의 위험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는 일이다. 교회의 생명과 사활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이다. 신앙의 토대를 허무는 자유주의 기독교를 배격하고 현대판 거짓 교사들을 규제하고 그것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벤자민 워필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의 가장 큰 위협은 반기독교 세력이 아니다. 이슬람이 아무리 칼을 들이대도 기독교를 없앨 수는 없다. 아무도 불교가 기독교를 삼킬 것이라고 걱정하지 않는다. 도리어 시대마다 등장하는 타락한 기독교야말로 기독교의 생명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존재다."
에큐메닉스(Ecumenics:세계교회운동학)의 아버지 존 매카이는 교회를 세계 선교 공동체로 규정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정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각각 자기의 죄와 실수를 인정하고 하나의 에큐메니칼 교회를 구성할 것을 재촉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고백주의 신학을 용납하지 않아야 하고 포용적인 새로운 신학을 만들어야 한다.
메카이가 오늘날의 세계교회협의회의 모습과 신학을 접한다면 어떨까?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랄 것이다. 교회의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문을 열어준 그 틈바구니로 기독교의 근본을 부정하고 교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원수가 들어온 것을 보고 크게 놀랄 것이다.
한국교회가 과거사를 덮고 연합하고 일치하여 복음 사역에 전력해야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무조건 덮어놓고 가시적인 연합과 일치는 능사가 아니다. '진리 안에서'의 협력이고 연합이어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에큐메니스트들이 즐겨 사용하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는 말씀은 신앙고백이 일치하는 사람들의 하나됨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의 중추 교리를 거부하거나 다양한 신학을 가진 교회들의 교제, 연합, 일치를 말하고 있지 않다. 이 말씀의 대전제는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4:1)는 가르침이다. (258p)
한국교회의 연합·일치 운동을 주도하고 에큐메니칼 운동을 대변하는 단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다. 전자는 진보계 교회들의 연합체이며 후자는 보수계 교회들의 연합체로 알려져 있다. 주목할 것은 이 단체들이 '진리 안에서 하나됨'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외형의 일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고, 자유주의 기독교와 정통 기독교를 포괄하는 새로운 신학을 만들어내자고 하면서 '다양성 속의 일치'를 강조한다. 교회 연합·일치 운동은 유서 깊은 기독교 신학과 신앙고백과 교리가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신념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일치를 위한 만남을 주도하면서도 교황 제도, 교황 수장권 등을 결코 포기하거나 자신의 교리와 제도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의 말대로 가톨릭 교회에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교황좌에 종속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한국의 보수계 교회들은 세계교회협의회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자유주의 신학과 신신학을 수용하고, 공산주의 운동과 무관하지 않으며, 세계 단일 교회를 구성하려고 한다는 것 때문이다. 또한 가톨릭 교회와 일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종교 다원주의를 천명하고 있고, 포용주의 태도를 가진 것도 환영 못할 이유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에 가입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다가 1959년에 오늘날의 합동, 통합 교단으로 분열했다.
<한상동과 그의 시대>(이상규)에서 박윤선은 "세계기독교연합회가 교리 무관주의에서 연합 정신을 고조함에 대하여 우리는 그것을 성경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예수의 이름으로 실상은 진정한 예수를 반대함과 같은 것을 주장하는 교파로 그들은 그 회에 환영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니다(고후 6:14-18, 418p)"라고 말했다.
로이드 존스는 <분열된 복음주의>(이안 머리/부흥과 개혁사)에서 에큐메니칼 운동 신학에 가장 거부감을 느꼈던 부분은 진리를 통한 연합보다는 교단 간의 연합을 추구했다는 점이라고 했으며, <시대의 표적>(로이드존스)에서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우리를 '진리와 소금이 되게 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무엇보다도 하나가 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 안에 증후군처럼 일어나고 있는 교회 연합·일치 운동의 북소리를 들으면서 경각심을 일깨우며 쓴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일독을 권한다.
WCC 운동 비판
<WCC운동 비판>(박영호 저/기독교문서선교회)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WCC 운동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며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논조를 펼치며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오늘의 한국교회 앞에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한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분석, 평가 및 비판하지 않는다면 한 그리스도인 정원사로서 "정원사의 위치마저 상실하겠기에 본서를 저술하는 것"이라고 저서 의도를 밝히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양떼들의 감독자로 세움을 받은 사역자로서, 신학을 연구하는 학도로서, 그리고 신학도를 지도하는 교수로서 신앙의 양심을 절대로 저버릴 수가 없어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 WCC를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된 교회 연합 기구라고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단체가 교리적, 신앙적 정통성을 포기하고 그토록 배교와 불신앙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WCC의 주도 아래 진행된 신학은 종교 다원주의로서,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종교들의 통합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절대적인 유일 구원 종교 사상으로 주장하는 입장에서 돌아서서, 기독교도 다른 타 종교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보고 연합과 일치 운동을 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WCC의 신학 입장은 '모든 종교는 동일해서 다 절대자에게 이를 수 있고, 보편적인 길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무속 종교들과 아프리카의 토착 종교, 여성 숭배, 마녀들의 종교, 마술, 점성술,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까지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또한 무당의 춤을 성령의 역사로 보며 영지주의를 정당한 기독교로 승인하고 영지주의 이단의 대표적인 저작인 <도마복음>을 사복음서들과 동등한 교회의 정경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WCC는 선교의 개념 자체가 보수주의 기독교 또한 복음주의 기독교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WCC는 선교를 복음 전파를 통한 영혼 구원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회복지 증진과 정치적 민주주의 구현 등을 현재 교회가 할 선교 사업으로 본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서 WCC는 '어느 누구도 성이나 인종, 신념, 피부색, 성직 안수에 있어서의 성차별 등에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면서 동성연애자들을 교회에서 수용할 것을 주장하며 게이나 레즈비언들도 인권을 존중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WCC의 선교 개념은 한마디로 '넓어진 선교 개념'이다. 그것은 전통적 선교 개념인 전도뿐만 아니라, 또한 사회·정치 활동을 포함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처음부터 교회의 사회참여와 교회들의 연합을 위하여 창설되었고 계속 그 일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WCC의 배경이 되는 2대 관심은 사회 문제와 교회의 연합 문제였다. WCC는 이와 같이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요 결실이요 주요 수단이다.
저자는 WCC의 성경 연구는 양식 비평과 편집 비평에서 문학 비평으로 전환되고 있음도 지적한다. 성령의 영감에 의해 계시를 받아 기록한 것도 아니고, 또 사건과 사실과 가르침의 기록이 아니라 저자들이 소설처럼 창작한 것이라는 문학 비평이 만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가 공식적으로 발족된 것은 앞에서 언급하였다시피 1948년 8월 23일부터 24일까지의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였다. WCC의 본부는 스위스의 제네바에, 사무소는 미국의 뉴욕시에 있다.
저자는 WCC의 역사적 배경과 발전 과정을 시작으로 해서 WCC 총회의 동향,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 비판, 인종차별 투쟁 사업 비판, WCC의 해방을 위한 교육, 성경적 교회 연합의 원리,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과 WCC, 한국기독교협의회의 동향 등의 순서로 책의 내용을 구성했다. WCC 총회가 어디서 어떻게 개최되었고 그 배경과 주제를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분석·비판하고 궁극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한국교회가 이 시대를 참으로 분별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시대의 배교와 타협과 혼동에 물들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고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 성도는 사도들과 선지자들, 교부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 청교도 후예들이 물려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사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청교도적 개혁주의, 전통적 정통 보수 신앙과 신학을 수호하기 위해서 배교와 타협, 그리고 혼동을 일으키는 WCC 운동을 비판하는 횃불을 들어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참으로 신앙을 지키기 힘든 세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단이 문제가 아니라, 안에서 무너져내리는 것들이 문제라는 점이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재림 직전에 말세의 징조에 대해 분명히 예언하셨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 24:11-12)
2013년 제10회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는 어떻게 치뤄질지 자못 궁금하고, 우려된다. 분명한 것은 WCC 운동은 분명히 하나의 신학적 혼합주의 운동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많은 교파들을 통합하여 로마 가톨릭과도, 심지어 이방 종교들과도 사상적 조화를 시도하고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혼합주의요 절충주의다. 현재로선 총회 유치 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인 박종화 목사의 말대로 "WCC 제10차 총회가 한국교회가 세계를 위해 빛과 소금으로 봉사하는 올바른 계기"(국민일보)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참된 교리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에 대한 우리의 관점,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한 신성을 역설하는 것-동정녀 탄생, 이적과 초자연적인 것, 그의 속죄, 희생, 대속, 죽음, 그리스도의 문자적이고 육체적인 부활, 성령의 인격과 그 사역 등이다. 이러한 것들이 구원의 진수가 되는 교리들이다. 그것이 전파되어야 할 교리요, 교회의 참된 표지로 첫 번째가 되는 메시지이다. 교회는 이러한 것들을 믿기 때문에 언약 가운데서 함께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로이드 존스,<시대의 표적>,339p)
한국교회 안에 증후군처럼 일어나고 있는 교회 연합·일치 운동의 북소리를 들으면서 경각심을 일깨우는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최덕성/본문과현장사이), 오늘의 한국교회 앞에 배교화 불신앙으로 타락된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분석 평가한 <WCC 운동 비판>(박영호.기독교문서선교회), 일독을 권한다.
자료출처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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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9월 24일 (목) 11:12:13 [조회수 : 8585] 이명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가 2013년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될 예정이라고 한다. 며칠 동안 <국민일보> 메인 면을 통해 세계교회협의회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지난 2009년 9월 16일, 서울 잠실동 롯데호텔 월드에서 제10차 총회 유치 기념 감사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김형오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 한승수 국무총리 등 교계 관계자 1,000여 명이 참석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축하 영상을 보내기도 했다.
WCC는 세계 110개국 349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세계 최대 기독교 기구이다. WCC는 지난달 3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중앙위원회를 열어 최종 투표를 벌여 부산을 개최지로 선정했다고 한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110개국에서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정교회 등 349개 교단, 5억 8,000만 명이 가입한 세계 최대 개신교 협의회 체제로, 7년마다 나라를 바꿔가면서 총회를 열고 있다.
1961년 인도 뉴델리의 3차 총회 이후 아시아에서 52년 만에 열리게 된 부산 제10차 총회는 가시적으로는 한국 개신교 역사에 있어서의 큰 경사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이고 중차대한 기독교적인 축제가 종교 혼합주의와 다원주의 정신에 의해 주도되어왔다는 사실이다. 정체성이 의심스러운 WCC(세계교회협의회)가 2013년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을 목도하면서 한편으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종교개혁자들이 목숨 걸고 개혁을 단행했던 것은 교회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집단인 가톨릭의 그릇된 신앙고백 때문이었다. 심각하게 오염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개혁을 단행했고 오늘의 기독교가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 안에서는 진리와 교리, 교회와 신앙의 진정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닌 것 같다.
WCC가 무엇인지 정확한 정보를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에 읽었던 WCC(세계교회협의회)와 관련된 책을 다시 손에 들었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최덕성/본문과현장사이)와 <WCC운동 비판>(박영호/CLC). 두 책을 통해 WCC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이 협의회가 마치 지상 최대의 목적인 양 왜 그토록 교회 일치 운동을 주장하고 있는지, 한국교회가 나아갈 신앙의 지표와 진정성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한국교회의 극심한 분열 상태는 어떤 형태로든 개혁되고 교정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화합이나 가시적 일치만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연합·일치 운동은 위험천만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이 두 책에서 저자들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에서는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 무차별주의로 흐르고 있는 작금의 형태를 우려하며, 지향해야 할 교회 연합·일치 운동과 지양해야 할 운동을 가려서 소개한다. WCC가 어떤 것인지, 얼마나 자유주의신학, 종교 다원주의, 혼합주의에 물들어 있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논조를 펼치고 있다. 아울러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성경에 바탕을 둔 신앙고백의 일치와 진리 안에서 일치가 전제된 교회 연합·일치 운동만이 정당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또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교리 및 교리 교육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말한다. 설교는 진리 체계를 제시하기보다는 축복, 평안, 윤리, 인간관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이런 풍토에서 진행되는 교회 연합·일치 운동은 교리 무관심주의를 조장하고 교파 간에 신앙고백의 차이가 없다고 하는 신앙 무차별주의를 심는다는 것이다.
교회 연합·일치 운동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교회 간의 신학적 차이가 본질적으로 심각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오늘의 신학이 교리 논쟁에서 벗어나 다원화 사회에서 대화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학문 활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신학적 다양성을 수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리는 뒷전이고 화합이 먼저이고 연합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리와 신학을 용납하는 연합활동을 하다가 종국에 가서는 단일 교단으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신학을 수용하고 모든 종교 이론을 포괄하는 단일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은 종교개혁자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교회의 표지인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으로 밀어내고, 친교, 성찬, 사회 참여 성격의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통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아우르고 사도적 신앙과 탈사도적 신앙을 동시에 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유럽 교회를 비롯해 서양 교회들이 생명력을 잃고 쇠퇴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신학적 다원주의와 에큐메니칼 운동과 교리 때문이다. 미국의 주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추락 현상을 연구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듯이 "교회가 자유주의 신학, 세속주의, 현대주의에 오염되어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학적인 이유인 것이다.
그것은 자유주의 기독교의 강령을 따라 에큐메니칼 운동, 다원주의, 타 종교와의 대화를 지향해온 결과이다. 신앙 무차별주의라고 하는 '죽음의 병'이 교회의 정체성과 생명력을 앗아갔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유주의 기독교를 지향하는 교회와 중도 노선을 지향하는 교회와 신학적으로 모호한 입장을 가진 교회들, 즉 회중교회, 미합중국 장로교회,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영국 감리교회, 미국 연합감리교회, 독일 루터교회는 그 좋은 예들이다.
이처럼 현대판 자유주의신학인 종교 다원주의는 자유주의 기독교와 에큐메니칼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탈구조주의, 상대주의, 혼합주의, 민족문화, 종교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 성향과 맞물려 폭넓게 파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에큐메니칼'은 헬라어 '오이쿠메네'에서 유래한 단어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세상'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에큐메니칼이라는 단어는 주로 친교, 성만찬, 하나님 선교 중심의 세계 교회 운동과 동일시되고 있다. 윌리엄 템플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이 언급된 이래 지금까지 이 운동은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움직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에큐메니칼 선교는 국가, 교파, 교리의 차이를 넘어서 사회, 문화, 환경 등 지구의 전 영역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19세기까지의 세계 선교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수행하는 복음 전도에 초점을 모았던 반면에 현대주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자연, 우주 만물, 창조 세계, 생명 공동체, 사회윤리, 공동 선교, 지구촌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 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48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선교 협의체로 출범한 이래 점차 정치 문제와 사회 이념 구현에 관심을 높였다고 한다.
타 종교와의 대화를 부르짖는 나이로비 총회(제4차, 1975)부터는 종교 혼합주의 경향을 띠었다고 언급한다. 종교 다원주의를 공식 표방한 바아르 선언문(1990)을 발표한 직후에 모인 캔버라 총회(1991)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의 종교 대표자들을 초청하여 그들과 함께 대화하며 함께 기도했다. 이 총회가 교회사적인 한 획을 그은 모임으로 평가되는 것은 종교 혼합주의, 종교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용에 의하면, 캔버라 총회를 준비한 괄라룸플 대회(1990)는 성령께서 교회와 인류 사회, 나아가서는 모든 생명체들과 우주 만물에 내재해 계신다고 선언했으며 성령을 '창조되지 않은 에너지'로 규정했다. 이것은 기독교가 고백해온 성령의 편재성을 재확인한 것이 아니라, 만물에 내재해 있는 영을 성령으로 천명했다는 사실이다. 죽은 영들을 불러내고 그들에게 기도를 올리는 초혼제로 시작한 것과 이 모임을 '20세기의 오순절 사건으로 평가'한 것을 보면 세계교회협의회가 어떤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세계 교회 운동의 변천을 살펴보면 처음에 개최된 암스테르담 총회(1948년)는 기독교적 고백에 입각하여 모였고, 웁살라 총회(1968년)는 개 교회와 지역 교회의 보편성을 인류의 보편성과 관련시키면서 사회참여와 사회정의 실현을 교회의 선교 과제로 천명했다.
나이로비 총회(1975)는 개 교회와 지역 교회들의 협의회를 통한 친교를 추구했으며, 뱅쿠버 총회(1983)는 개 교회와 보편 교회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세계교회연합회와 같은 에큐메니칼 단체를 보편 교회로 인식하는 교회관을 지향했다. 캔버라 총회(1991)는 친교를 부각시키고 교회의 나눔과 참여를 강조했다. 저자는 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 다원주의를 고백하며 기독교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새로운 기독교라고 말한다.
뱅쿠버 총회(1983, 제5차)는 힌두교, 불교, 유태교, 이슬람교, 시크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공석에서 연설을 들었으며, 이 총회 지도자들은 인디언 토템 주상을 세우고 신학자들은 타 종교의 예배 의식에 참석했다. 이 총회는 "우리는 우리가 증거하는 예수의 탄생, 생애, 죽음, 부활의 독특성을 주장하는 한편, 다른 신앙인들의 종교적 진리 추구에도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이 있음"을 인정했다.
캔버라 총회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자. 세계선교협의회(WCC)의 정체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제7차(1991) 세계선교협의회(WCC) 캔버라 총회에서는 정현경 박사(신학자)가 연출한 종교적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탈기독교화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캔버라 총회는 '오소서 성령이여'라는 주제로 회집되었고, 한국의 감리교회와 장로교 기장, 통합의 대표자 10명과 조선기독교연맹 대표 두 명을 포함한 약 2,000명의 세계 지도자들(회원교회 316명, 정회원 889명)이 모여 예배, 발표, 토론 행사를 가졌다. 정현경의 초혼제는 전체 총대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조 강연과 함께 올려졌다고 한다.
무대에 오른 정현경은 강연을 종교적 퍼포먼스로 진행했다. 호주 원주민 두 사람과 호주 한인 교회 청년들로 구성된 춤추는 사람들을 동원했고 토속 춤을 추게 했으며, 이어서 객석의 불이 꺼지고 호주 원주민 악사가 무대에 등장해 전통 악기를 연주했다. 원주민 무용수가 나와 땅을 축복하는 춤을 추었고 한국인 풍물패가 나와 징과 괭과리를 치면서 굿판을 벌였고, 춤을 추면서 무대를 돌며 초혼제 제단을 만들고 상, 촛대, 향, 초혼문 등을 무대 중앙에 놓았다고 한다.
정현경은 상복을 연상케 하는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와 창호지에 쓴 영문 초혼문을 읽어 내려가면서 한 맺힌 영들과 피조물들의 영들의 내림을 기원하는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한 맺힌 성령이여, 오소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로 시작되는 정현경의 초혼문 원고 일부는 다음과 같다.
"오소서, 우리들의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하여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검둥이 여종, 이집트 여인 하갈의 영이여. 오소서, 그의 아내 밧세바에 대한 다윗 왕의 욕정 때문에 다윗에 의하여 전쟁터로 보내져 죽임을 당한 충성스런 군인, 우리아의 영이여. 오소서,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자신을 마중 나온 첫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한 아버지 입다의 믿음의 희생물이 된 그의 딸의 영이여."
계속해서 정현경은 예수님이 탄생할 때에 헤롯의 군사들에 의해 살해당한 남자 아이들의 영, 잔다르크의 영, 마녀사냥으로 말미암아 불타 죽은 중세기 여인들의 영, 십자군 전쟁 때 희생된 사람들의 영, 기독교가 식민지주의 시대와 이교도 세계에 대한 우월 의식을 지니고서 선교하던 시대에 학살된 토착민들의 영을 차례로 불러들였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있다. 현대주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중심에 있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신학적 정체성은 이 단체의 '꽃'으로 극찬을 받은 한국인 신학자 정현경 박사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알 수 있다.
정현경은 유니온신학교를 나왔다. 유니온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교다. 1891년 1월 20일 챨스 브리그스는 유니온신학교에 폭탄선언을 했다. 브리그스가 총장 취임 강연을 할 때 아담스 예배실은 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성경은 종이에 글씨를 인쇄해서 제본한 책이며,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고, 학생들에게서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브리그스 때부터 미국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신학교가 되었고 정통주의에서 벗어난 유니온신학교는 지금도 그대로 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유니온신학교에서 배운 학생들이 또 교계로 진출해 그들의 견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급하고 있다. 정현경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학교는 교회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신학교가 가는 방향으로 교회도 간다. 거의 필연적으로 신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졸업생들은 그 교수들의 견해에 영향을 받는다. 오히려 그들은 흔히 그들의 교수들을 능가하며 그들의 빗나간 관점들을 극단까지 몰고간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교들이 한번 자유주의로 발을 들여놓게 되면 머지않아 그들을 표본으로 따르는 교파들도 그렇게 된다." (해롤드 린셀, <교회와 성경무오성>)
WCC의 변천 과정들을 보면서 우려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계속해서 확대되어갈 것이고 지금까지의 그 모든 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교회는 점점 더 분별력을 잃고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번 진리를 양보하고 길을 내어주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나아간다.
저자의 말대로 오늘날 한국교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분열된 교회들의 통합, 외형적 단일화보다, '한국교회의 최우선 개혁의 대상은 변질되어가는 교회의 신학과 고백을 바로 잡는 것'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 무차별주의'의 위험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는 일이다. 교회의 생명과 사활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이다. 신앙의 토대를 허무는 자유주의 기독교를 배격하고 현대판 거짓 교사들을 규제하고 그것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벤자민 워필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의 가장 큰 위협은 반기독교 세력이 아니다. 이슬람이 아무리 칼을 들이대도 기독교를 없앨 수는 없다. 아무도 불교가 기독교를 삼킬 것이라고 걱정하지 않는다. 도리어 시대마다 등장하는 타락한 기독교야말로 기독교의 생명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존재다."
에큐메닉스(Ecumenics:세계교회운동학)의 아버지 존 매카이는 교회를 세계 선교 공동체로 규정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정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각각 자기의 죄와 실수를 인정하고 하나의 에큐메니칼 교회를 구성할 것을 재촉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고백주의 신학을 용납하지 않아야 하고 포용적인 새로운 신학을 만들어야 한다.
메카이가 오늘날의 세계교회협의회의 모습과 신학을 접한다면 어떨까?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랄 것이다. 교회의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문을 열어준 그 틈바구니로 기독교의 근본을 부정하고 교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원수가 들어온 것을 보고 크게 놀랄 것이다.
한국교회가 과거사를 덮고 연합하고 일치하여 복음 사역에 전력해야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무조건 덮어놓고 가시적인 연합과 일치는 능사가 아니다. '진리 안에서'의 협력이고 연합이어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에큐메니스트들이 즐겨 사용하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는 말씀은 신앙고백이 일치하는 사람들의 하나됨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의 중추 교리를 거부하거나 다양한 신학을 가진 교회들의 교제, 연합, 일치를 말하고 있지 않다. 이 말씀의 대전제는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4:1)는 가르침이다. (258p)
한국교회의 연합·일치 운동을 주도하고 에큐메니칼 운동을 대변하는 단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다. 전자는 진보계 교회들의 연합체이며 후자는 보수계 교회들의 연합체로 알려져 있다. 주목할 것은 이 단체들이 '진리 안에서 하나됨'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외형의 일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고, 자유주의 기독교와 정통 기독교를 포괄하는 새로운 신학을 만들어내자고 하면서 '다양성 속의 일치'를 강조한다. 교회 연합·일치 운동은 유서 깊은 기독교 신학과 신앙고백과 교리가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신념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일치를 위한 만남을 주도하면서도 교황 제도, 교황 수장권 등을 결코 포기하거나 자신의 교리와 제도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의 말대로 가톨릭 교회에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교황좌에 종속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한국의 보수계 교회들은 세계교회협의회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자유주의 신학과 신신학을 수용하고, 공산주의 운동과 무관하지 않으며, 세계 단일 교회를 구성하려고 한다는 것 때문이다. 또한 가톨릭 교회와 일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종교 다원주의를 천명하고 있고, 포용주의 태도를 가진 것도 환영 못할 이유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에 가입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다가 1959년에 오늘날의 합동, 통합 교단으로 분열했다.
<한상동과 그의 시대>(이상규)에서 박윤선은 "세계기독교연합회가 교리 무관주의에서 연합 정신을 고조함에 대하여 우리는 그것을 성경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예수의 이름으로 실상은 진정한 예수를 반대함과 같은 것을 주장하는 교파로 그들은 그 회에 환영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니다(고후 6:14-18, 418p)"라고 말했다.
로이드 존스는 <분열된 복음주의>(이안 머리/부흥과 개혁사)에서 에큐메니칼 운동 신학에 가장 거부감을 느꼈던 부분은 진리를 통한 연합보다는 교단 간의 연합을 추구했다는 점이라고 했으며, <시대의 표적>(로이드존스)에서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우리를 '진리와 소금이 되게 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무엇보다도 하나가 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 안에 증후군처럼 일어나고 있는 교회 연합·일치 운동의 북소리를 들으면서 경각심을 일깨우며 쓴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일독을 권한다.
WCC 운동 비판
<WCC운동 비판>(박영호 저/기독교문서선교회)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WCC 운동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며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논조를 펼치며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오늘의 한국교회 앞에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한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분석, 평가 및 비판하지 않는다면 한 그리스도인 정원사로서 "정원사의 위치마저 상실하겠기에 본서를 저술하는 것"이라고 저서 의도를 밝히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양떼들의 감독자로 세움을 받은 사역자로서, 신학을 연구하는 학도로서, 그리고 신학도를 지도하는 교수로서 신앙의 양심을 절대로 저버릴 수가 없어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 WCC를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된 교회 연합 기구라고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단체가 교리적, 신앙적 정통성을 포기하고 그토록 배교와 불신앙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WCC의 주도 아래 진행된 신학은 종교 다원주의로서,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종교들의 통합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절대적인 유일 구원 종교 사상으로 주장하는 입장에서 돌아서서, 기독교도 다른 타 종교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보고 연합과 일치 운동을 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WCC의 신학 입장은 '모든 종교는 동일해서 다 절대자에게 이를 수 있고, 보편적인 길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무속 종교들과 아프리카의 토착 종교, 여성 숭배, 마녀들의 종교, 마술, 점성술,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까지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또한 무당의 춤을 성령의 역사로 보며 영지주의를 정당한 기독교로 승인하고 영지주의 이단의 대표적인 저작인 <도마복음>을 사복음서들과 동등한 교회의 정경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WCC는 선교의 개념 자체가 보수주의 기독교 또한 복음주의 기독교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WCC는 선교를 복음 전파를 통한 영혼 구원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회복지 증진과 정치적 민주주의 구현 등을 현재 교회가 할 선교 사업으로 본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서 WCC는 '어느 누구도 성이나 인종, 신념, 피부색, 성직 안수에 있어서의 성차별 등에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면서 동성연애자들을 교회에서 수용할 것을 주장하며 게이나 레즈비언들도 인권을 존중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WCC의 선교 개념은 한마디로 '넓어진 선교 개념'이다. 그것은 전통적 선교 개념인 전도뿐만 아니라, 또한 사회·정치 활동을 포함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처음부터 교회의 사회참여와 교회들의 연합을 위하여 창설되었고 계속 그 일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WCC의 배경이 되는 2대 관심은 사회 문제와 교회의 연합 문제였다. WCC는 이와 같이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요 결실이요 주요 수단이다.
저자는 WCC의 성경 연구는 양식 비평과 편집 비평에서 문학 비평으로 전환되고 있음도 지적한다. 성령의 영감에 의해 계시를 받아 기록한 것도 아니고, 또 사건과 사실과 가르침의 기록이 아니라 저자들이 소설처럼 창작한 것이라는 문학 비평이 만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가 공식적으로 발족된 것은 앞에서 언급하였다시피 1948년 8월 23일부터 24일까지의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였다. WCC의 본부는 스위스의 제네바에, 사무소는 미국의 뉴욕시에 있다.
저자는 WCC의 역사적 배경과 발전 과정을 시작으로 해서 WCC 총회의 동향,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 비판, 인종차별 투쟁 사업 비판, WCC의 해방을 위한 교육, 성경적 교회 연합의 원리,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과 WCC, 한국기독교협의회의 동향 등의 순서로 책의 내용을 구성했다. WCC 총회가 어디서 어떻게 개최되었고 그 배경과 주제를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분석·비판하고 궁극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한국교회가 이 시대를 참으로 분별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시대의 배교와 타협과 혼동에 물들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고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 성도는 사도들과 선지자들, 교부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 청교도 후예들이 물려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사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청교도적 개혁주의, 전통적 정통 보수 신앙과 신학을 수호하기 위해서 배교와 타협, 그리고 혼동을 일으키는 WCC 운동을 비판하는 횃불을 들어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참으로 신앙을 지키기 힘든 세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단이 문제가 아니라, 안에서 무너져내리는 것들이 문제라는 점이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재림 직전에 말세의 징조에 대해 분명히 예언하셨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 24:11-12)
2013년 제10회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는 어떻게 치뤄질지 자못 궁금하고, 우려된다. 분명한 것은 WCC 운동은 분명히 하나의 신학적 혼합주의 운동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많은 교파들을 통합하여 로마 가톨릭과도, 심지어 이방 종교들과도 사상적 조화를 시도하고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혼합주의요 절충주의다. 현재로선 총회 유치 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인 박종화 목사의 말대로 "WCC 제10차 총회가 한국교회가 세계를 위해 빛과 소금으로 봉사하는 올바른 계기"(국민일보)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참된 교리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에 대한 우리의 관점,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한 신성을 역설하는 것-동정녀 탄생, 이적과 초자연적인 것, 그의 속죄, 희생, 대속, 죽음, 그리스도의 문자적이고 육체적인 부활, 성령의 인격과 그 사역 등이다. 이러한 것들이 구원의 진수가 되는 교리들이다. 그것이 전파되어야 할 교리요, 교회의 참된 표지로 첫 번째가 되는 메시지이다. 교회는 이러한 것들을 믿기 때문에 언약 가운데서 함께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로이드 존스,<시대의 표적>,339p)
한국교회 안에 증후군처럼 일어나고 있는 교회 연합·일치 운동의 북소리를 들으면서 경각심을 일깨우는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최덕성/본문과현장사이), 오늘의 한국교회 앞에 배교화 불신앙으로 타락된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분석 평가한 <WCC 운동 비판>(박영호.기독교문서선교회), 일독을 권한다.
자료출처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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