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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변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2)

기독교 변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2)
 
포스트모던시대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종교다원주의는 어찌 할 수 없는 시대의 한 현상이다. 또한 교회의 세속화, 이단들의 득세는 이미 성경의 예언대로 되어지는 일들이라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사실이 이렇다하여 그냥 비성경적인 종교다원주의와 교회의 세속화를 그대로 방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시 칼빈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무소불의한 교황에 맞선 것은 오직 비진리에서 참된 진리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만약 종교개혁자들이 살아 있었다면 바로 이 시대에 또 한 번 개혁의 깃발을 높이 올렸을 것이 틀림없다.
 
지금 교회를 보라! 교회가 세상의 문화를 선도하고 길을 안내해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상 문화가 교회문화를 지도해 주고 입장이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사람 수에 목숨을 걸다보니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화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교회에 받아드리고 있다. 심지어 어느 교회는 불신자들을 교회에 끌어 드리기 위해서 흡연실을 만들어 놓았고, 또한 어느 교회는 ‘요가’를 문화 프로그램으로 도입하였다. 요가는 분명히 힌두교나 다름없는 것이다. 인도에는 3억3천만 개의 신들이 있다고 한다. 요가는 바로 이 신들중에 뱀, 원숭이 등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교회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요가를 문화 프로그램으로 실시하고 있는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라 혼합종교 집단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교회마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밴드와 드럼을 쳐대며 무슨 가시인지도 알 수 없는 랩노래를 하느랴 정신이 없다. 교회 예배당은 이제 적어도 경건은 사라지고 이들의 무대 공연장으로 바뀐지 오래이다.
 

  하나님께 제사(예배)드릴 때 누가 춤추고 뛰고 했다고 성경에 나와 있는가? 적어도 예배만큼은 창조주 하나님께 피조물이 최고의 경건으로 드려야 한다.
 

  교회나 교단들을 보라! 교회의 머리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교회문제가 발생되면 성경을 기준으로 해결해야한다. 성경이 바로 교회문제의 해결잣대이다. 성경의 권위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순종해야 한다. 이유나 항변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순종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찌 된 것인지 교회의 질서를 세상 법정이 사랑을 강조하며 화해를 유도하고, 그렇지 않으면 호되게 야단을 치며 잡아주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송구스럽기 짝이 없는 이름을 주셨다. 너희는 빛이다. 너희는 소금이다. 빛과 소금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를 세상이 야단을 치며 훈계해 주는 수준이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주님께서는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마18:7). 자기들의 어떤 지위와 권위와 이권, 학연, 자존심 문제로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실족케 하고 있는가? 그저 두려울 뿐이다.
 

  종교다원주의, 교회의 세속화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정말 어디에도 없단 말인가? 나는 2003.7.7일 목사 안수를 받았으니 목회 년 수야 만7년이 채 안 된다. 이렇게 짧은 년 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기독교 변질에 대한 대안’을 분명한 소신과 함께 가지고 있다. 가면 갈수록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지지하는 교단과 교회들이 늘어갈 것이다. 이는 재미 신학자 김명도 박사가 지적했듯이 이런 현상은 그만큼 빨리 교회들이 성경의 진리에서 떠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그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신학자들이나 교회들이 성경을 떠난다는 것이다.
 

  사실 종교다원주의자들과 싸운다는 것은 이제 별의미도 성과도 없어졌다. 쉽게 말해서 싸운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싸울수록 세상 사람들의 조소와 비난으로 더욱 복음의 문이 협소해질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신관과 구원관을 귀가 따갑도록 가르쳐야 한다. 사탄은 말세가 가까울수록 자기들의 최후가 다가옴을 알고 구원의 확신을 흔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바울은 엡6:10-17절에서 “악한 날에 사탄과 대적하며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바른 신관 및 구원관을 가지고 있으면 종교다원주의사상은 그 어디에도 발을 붙일 수가 없을 것이다. 어둠은 빛이 오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아무리 종교다원주의자들이나 이단들이 아무리 극성을 떨고 세력을 넓혀가도 진리 앞에서는 정체가 드러나 그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얼마 전(2010.1.7일)에 나는 울산까지 찾아가서 합동측 총회장님께 개척6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필한 ‘대,소교리문답강해’5권과 편지를 동봉하여 전달해 드리고 온 적이 있다. 그 다음날 서정배 목사님과 나는 늦은 밤에 통화를 하면서 종교다원주의, 교회의 세속화 등 문제를 가지고 많은 공감대를 가지며 감격하였다. 목사님은 통화 후에 ‘상황윤리에 근거한 열린예배는 W.C.C 보다 더 경계해야’라는 귀한 자료를 메일로 보내주셨다. 서목사님이 보내준 자료를 보면 이미 열린예배가 얼마나 성경에서 이탈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이 시대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걱정은 하고 있지만 속 시원하게 답을 내 놓지는 못하고 있어서 더욱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는 장로교단의 뼈대요 골격인 ‘대,소교리문답서’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연구에 6년 동안 미쳐오면서 그 답을 분명하고 너무나도 확실하게 찾았다.
 

  결론적으로 답은 이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피를 뿌리며 지켜온 참된 ‘교리(신도게요서 및 대,소교리문답)’와 참된 ‘신앙고백(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을 교회는 그대로 받아 드리고 우리 자신과 후손들에게 가르쳐주고 배워야만 한다. 이 방법 외에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확신한다. 그렇다고 나는 교리주의자는 아니다. 교리는 진리일 수 없다. 그러나 김성린 전 고신대학교 부총장이 지적한대로 ‘교리의 진위여부’는 성경을 기준하여 판정되어야 하고, 동시에 성경의 진리를 바로 깨닫고 고백함으로써 공적으로 확립이 된 교리는 성경과 더불어 불변의 진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교회에서 교리를 가르치고 싶으나 교재가 없거나 마땅치 않다고들 하소연 한다. 나도 사실 이 문제를 가슴에 저리도록 품고 몸부림치다가 6년 만에 5권의 교리서를 내 놓게 된 것이다. 기존 교리 교재의 빈약한 부분과 각종 이단 및 풍부한 자료들을 굶주린 사자처럼 수없이 찾아다닌 끝에 모두가 궁금한 것들을 찾아 실었다. 특히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 대전주아내교회 남정웅 목사, 재미신학자 김명도 박사,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석만 교수 등을 직접 및 간접(저서)의 만남으로 개혁주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더욱 질을 높일 수 있었다. 
 

  나는 최근에 유석근 목사가 지은 ‘밝혀진 적그리스도의 정체(예루살렘)’라는 책을 대충 넘기면서도 가톨릭의 정체에 치를 떨었다. 그동안 교리를 연구 및 집필하면서 가톨릭은 성경에서 이미 이탈했음을 많은 부분에서 발견했지만 이토록 적나라하게 밝힌 책은 처음 봤다.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의 부흥을 빌미로 가톨릭의 영성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받아 드리는 것을 볼 때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실례로 가톨릭에서 가져오거나 영향을 받은 프로그램(뜨레스디아스, 관상기도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장로교단 목회자라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제25장 교회 6호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을 텐데도 좋게 여기며 받아 드리는 것을 보면 정말 아이러니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대,소교리문답 제4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교리문답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고 알았다면 감히 하나님이 무서워서 절대로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경이나 교리문답은 한결같이 ‘하나님외에는 그 어디에도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또한 타종교인들이 신이라고 자처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이거나 인간이 만든 수공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시115편). 이 사실을 들어 타종교인들과 흑백을 가리자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리이기에 저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만큼은 이 진리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중에서 ‘신실하심’과 ‘진실하심’이 있다. 이 속성에 의해 하나님의 최후의 종말론적 심판은 변개되거나 수정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사야서의 외침이다.
 

 다음 주에 마지막회가 소개됩니다.
 
http://cafe.daum.net/krdi/JKtg/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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