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의 차이-- 자유주의에 의한 기독교
기독교와의 차이-- 자유주의에 의한 기독교
자유주의 신학에 의하면, 기독교는 교리와 별개의 한 경험 혹은 생활이며, 교리는 기독교적 경험 혹은 생활을 한 시대의 사고 방식으로 표현한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며 따라서 교리는 시대마다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한다고 한다.
교리를 경시하는 이러한 태도는 자유주의 신학의 초기로부터 볼 수 있는 태도이었다. 19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쉴라이엘마허는 말하기를, 종교는 감정이나 직관에 근거하며, 종교의 핵심은 이성적 증명과 토론이 아니고 감정이며 항상 그러하였고, 종교인에게 하나님은 하나의 경험,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라고 했다. 19세기 중엽, 릿츨도 좀 다른 각도에서이긴 하지만 말하기를, 종교는 이론적이어서는 안되며, 하나님은 사람의 가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원리이며, 구원받는다는 것은 새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19세기 말, 하르낙도 주장하기를, 사람이 스스로 경험한 종교만 고백될 수 있으며, 다른 모든 신조나 신앙고백은 예수의 견해에 의하면 위선적이고 파멸적이라고 했다. 하르낙에 의하면,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아버지시요 모든 사람이 서로 형제라는 데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했고,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선구자들이었다.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은 처음부터 기독교의 본질을 교리와 별개의 경험 혹은 생활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들에 의하면, 기독교 교리, 더 정확히 말하여 전통적 교리들은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되었고 현대의 철학적, 과학적 도전 앞에 변경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었다.
윌리암 호던은 자유주의 신학의 기본적 태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자유주의의 방식은 기독교 신학을 현대화하고자 하는 시도를 포함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주장하기를, 기독교계의 초기 신조들이 작성되었던 이후 세계는 급격히 변해 왔고 그래서 그 신조들은 현대인에게 낡고 비실제적이게 들린다고 한다. 우리는 기독교를 현대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사고 방식들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해리 E. 포스딕은 주장하기를,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 즉 '영속적 경험들'을 표현해야 하고, 이것들을 과거에 표현되었던 '변하는 범주들'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예를 들어 기독교의 영속적 경험은 하나님께서 악을 이기실 것이라는 확신이었으며, 이것은 전통적으로 악을 파괴하고 선을 세우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범주로 묘사되어 왔고, 우리는 더 이상 이 낡아빠진 범주[재림]를 보존할 수 없지만 여전히 이 고대의 사고 방식이 표현하려고 했던 진리를 믿을 수 있다고 했다.
메이천은 자유주의 신학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현대 자유주의가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이다. 기독교의 특수한 점들, 즉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기독교 교리들과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속(救贖)의 교리들에 대해 과학적 반론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자는 이 특수한 점들을 단지 종교의 어떤 일반 원리들의 시대적 상징들로 생각하며, 그 일반 원리들을 건지려고 하고, 또한 그것들을 '기독교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출처] 기독교와의 차이--자유주의에 의한 기독교 (보수장로교친교회) |작성자 옛신앙
http://cafe.naver.com/cpf2010.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9
자유주의 신학에 의하면, 기독교는 교리와 별개의 한 경험 혹은 생활이며, 교리는 기독교적 경험 혹은 생활을 한 시대의 사고 방식으로 표현한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며 따라서 교리는 시대마다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한다고 한다.
교리를 경시하는 이러한 태도는 자유주의 신학의 초기로부터 볼 수 있는 태도이었다. 19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쉴라이엘마허는 말하기를, 종교는 감정이나 직관에 근거하며, 종교의 핵심은 이성적 증명과 토론이 아니고 감정이며 항상 그러하였고, 종교인에게 하나님은 하나의 경험,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라고 했다. 19세기 중엽, 릿츨도 좀 다른 각도에서이긴 하지만 말하기를, 종교는 이론적이어서는 안되며, 하나님은 사람의 가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원리이며, 구원받는다는 것은 새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19세기 말, 하르낙도 주장하기를, 사람이 스스로 경험한 종교만 고백될 수 있으며, 다른 모든 신조나 신앙고백은 예수의 견해에 의하면 위선적이고 파멸적이라고 했다. 하르낙에 의하면,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아버지시요 모든 사람이 서로 형제라는 데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들을 부정했고,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선구자들이었다.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자유주의 신학은 처음부터 기독교의 본질을 교리와 별개의 경험 혹은 생활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들에 의하면, 기독교 교리, 더 정확히 말하여 전통적 교리들은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되었고 현대의 철학적, 과학적 도전 앞에 변경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었다.
윌리암 호던은 자유주의 신학의 기본적 태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자유주의의 방식은 기독교 신학을 현대화하고자 하는 시도를 포함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주장하기를, 기독교계의 초기 신조들이 작성되었던 이후 세계는 급격히 변해 왔고 그래서 그 신조들은 현대인에게 낡고 비실제적이게 들린다고 한다. 우리는 기독교를 현대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사고 방식들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해리 E. 포스딕은 주장하기를,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 즉 '영속적 경험들'을 표현해야 하고, 이것들을 과거에 표현되었던 '변하는 범주들'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예를 들어 기독교의 영속적 경험은 하나님께서 악을 이기실 것이라는 확신이었으며, 이것은 전통적으로 악을 파괴하고 선을 세우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범주로 묘사되어 왔고, 우리는 더 이상 이 낡아빠진 범주[재림]를 보존할 수 없지만 여전히 이 고대의 사고 방식이 표현하려고 했던 진리를 믿을 수 있다고 했다.
메이천은 자유주의 신학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현대 자유주의가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이다. 기독교의 특수한 점들, 즉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기독교 교리들과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속(救贖)의 교리들에 대해 과학적 반론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자는 이 특수한 점들을 단지 종교의 어떤 일반 원리들의 시대적 상징들로 생각하며, 그 일반 원리들을 건지려고 하고, 또한 그것들을 '기독교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출처] 기독교와의 차이--자유주의에 의한 기독교 (보수장로교친교회) |작성자 옛신앙
http://cafe.naver.com/cpf2010.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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