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음성듣는 관상기도 탈성경
하나님 음성듣는 관상기도 탈성경
기도는 약속 믿고 구하면 시행보장
기도는 약속 믿고 구하면 시행보장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의도 관상기도 행위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계시의 완료를 믿을진저 성경의 계시를 통해서 계시와 예언으로 성령님의 조명을 받음이 바른 신앙이다.
성경계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신 경우는 아담과 하와(창3:9-13,16-19), 아브람(창12:1-3) 예수님의 침례(세례)의 현장(마3:13-17), 바울의 다메섹 도상과 아나니아(행9:1-22) 등이다. 이것은 인간의 의도나 그 어떠한 방법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위로부터 아래를 향한 성경의 형성과정에서 역사요, 관상기도의 결과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관상기도의 매력은 신인 합일에 하나님과의 대화, 그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는 것이나, 성경에 관상기도의 근거가 없으므로 이를 행하여 나타나는 가시적인 그 어떠한 현상인 주관적인 감정과 직관에 의한 느낌을 성경이 보장하지 않는다.
인간이 의도한 성경을 임의해석의 사상에 의한 방법론 적용에서 비롯되는 것들은 신비주의 경향의 사람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을 기독교에 확산시키는 명분은 교회성장이나 목회성공과 전도라는 수단으로 빌미를 삼아 프로그램화된 것들이다. 혹여 이것이 어떠한 구체적인 결과를 얻어낸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성령님의 열매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 말씀의 결과는 반드시 그 수나 몸집에 비례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성경대로 오직 믿음(롬1:17)과 성령충만으로(엡5:18) 사는 것이 성도의 삶이다. 하나님이 들려주시지 않는 것을 들으려는 태도가 불경한 것일 뿐 아니라, 이미 믿음을 떠나 시험에 입문한 것이다.
이들이 듣는다는 하나님의 음성은 자기최면에 따른 암시의 결과인 심리적인 현상의 하나이던지, 아니면 어두움의 영의 역사가 복합된 것으로 본다.
성도의 기도는 1:1의 대화라고 여겨서 내 한마디에 이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6:7),
성부께서는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6:8). 성도의 기도 결과는 오직 믿음으로(약1:6-8)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고,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시고(1요5:14), 아시느니라(마6:8), 주시지 않겠느냐(마6:11), 갚으시리라(마6:6), 열릴 것이니라(마7:7-8),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요16:24), 믿고 구한 것은 다 받으리라(마21:22),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요14:13), 약속이 된 것이다.
참된 기도는 성경에 시행을 약속한 것을 의존한 기도이다. 기도의 시작이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다. 기도하고 나서 주관적인 직관이나 느낌으로 응답을 가리는 것이 아님에도 이 함정에 빠져 있는 경우가 일반이다. 이러니 기도는 많이 하지만 그 얼마나 답답한가? 이 지경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이론과 실제에 현혹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을 따름은 근본 믿음으로 임하는 기도의 시작이 아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기도를 탈선한 관상기도 레노바레의 방법론은 이방 종교와 가톨릭의 기도 문화를 도입한 만트라(진언) 행위로 성도의 기도 모범이 아니다.
자료출처: http://www.chptp.org/ 기독교이단대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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