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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령의 세례

2. 성령의 세례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3332
 
오순절주의와 은사운동은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신자가 또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감리교회와 성결교회의 교리적 사상과 비슷하고 무디의 협력전도자이었던 알 에이 토리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오순절 사건의 의미
성령 세례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사건과 직접 관계된다. 그러면 사도행전 2장에 증거된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이중적(二重的)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특수한 의미요, 하나는 일반적 의미이다.

특수한 의미
오순절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역사(歷史)의 과정에서 시대적 분기점을 이루는 몇 가지 특수한 의미들을 가진다.
첫째로, 오순절 사건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의 성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성령의 강림을 예언하셨었다. 이사야 32:15,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에스겔 36:27, “또 내 신[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요엘 2:28, 29, “그 후에 내가 내 신[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예수께서도 공생애 말기와 그의 승천 직전에 성령의 강림을 예언하셨었다. 요한복음 14:16, 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한복음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사도행전 1:4, 5,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 오순절 사건이었다.
둘째로, 오순절 사건은 성령께서 지상에 강림하셔서 이제 교회 가운데 거하시는 것을 의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사역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영께서 약속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제 구원받은 성도들 즉 신약 교회 속에 영원히 거하시며, 그들의 성화(聖化)와 다른 이들을 위한 전도의 일을 하게 하신다. 신약 교회는 구약 교회가 일찌기 경험하지 못했던 성령의 영원한 내주(內住)하심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셋째로, 오순절 사건은 성령의 활동 시대가 시작됨을 의미하였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본체에 있어서 한 분으로서 교회와 늘 함께 계시고 함께 활동하시지만, 특히 신약 교회 시대는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활동하시는 시대라고 표현할 수 있다. 사도행전 4:8,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사도행전 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사도행전 8:39, “둘이 물에서 올라갈 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사도행전 10: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사도행전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사도행전 15: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사도행전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사도행전 16:7,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사도행전 18:5,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성령에 이끌리어--전통본문].” 사도행전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물론, 때때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활동하셨다. 사도행전 9:4, 5,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 . .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도행전 9:10,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사도행전 9:34,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사도행전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이상과 같은 의미들에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은 다시 반복될 수 없는 단회적(單回的) 사건이었다. 헤르만 바빙크의 다음과 같은 말은 적절하다: “오순절에 발생했던 성령의 이러한 보내심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역사상 독특한(unique) 사건이다. 창조와 성육신과 같이, 그것은 오직 한 번 발생했다. 중요성에 있어서, 그것과 동등한 성령의 어떤 허락하심이든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잉태시에 인성을 취하셨고 결코 그것을 다시 버리지 않으시듯이, 성령께서도 오순절에 교회를 그의 거처와 성전으로 택하셨고 결코 그것으로부터 다시 분리되지 않으신다”(Herman Bavinck, Our Reasonable Faith, p. 386).

일반적 의미
그러나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은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성령을 받은 사건이라는 일반적 의미도 가진다. 성령께서는 이 날 그 신자들 속에 처음 들어오셨고 영원히 그들 안에 거하셨다. 신자들 속에 성령께서 들어오시는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오순절은 반복된다. 즉, 죄인들이 구원 받을 때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그들 속에 들어가시고, 그들을 인치시고, 영속적으로 그들 속에 거하시는 것이다. 사도행전 10:44이 증거하듯이, 성령께서는 베드로의 전도를 듣고 믿는 고넬료의 가족들에게 내려오셨고, 그들 속에 들어오셨다. 사도행전 19:6의 에베소의 제자들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들은 바울의 전도를 듣고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안수 받을 때, 또한 성령을 처음으로 받았다. 성령께서 최초로 그들에게 들어오신 것이었다.
이와 같이, 이미 지상에 강림하여 계신 성령께서는 교회의 새 회원이 되는 새 신자의 심령에 들어가신다. 물론 신성을 가지신 성령께서 위로부터 들어가시는지, 옆에서 들어가시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무한하신 영,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세례의 의미
그러면 성령세례란 무엇인가? 성령세례란 전통적으로 생각해 온 대로 성령께서 신자들 속에 처음으로 들어오시는 사건인가, 아니면 오순절파나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이미 믿어 구원 받은 자들 즉 성령이 그 안에 계시는 자들에게 두번째의 경험으로 충만하게 부어지시는 사건인가?
신약성경에서 성령의 세례라는 말이 나오는 곳은 사도행전 1:5과 사도행전 11:16과 고린도전서 12:13뿐이다. 사도행전 1:5의 성령의 세례는 오순절 사건을 가리켰다. 오순절의 성령세례는 성령께서 신자들 속에 처음 들어오신 사건인 동시에, 이미 믿던 자들 속에 두번째의 경험으로 들어오시되 충만하게 부어지신 사건이었다. 사도행전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사도행전 11:16의 성령세례는 성령께서 고넬료의 가족들에게 최초로 들어오신 사건이었다. 15절,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이 경우에는, 사도행전 1:5의 경우와 달리, 대상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비로소 듣고 믿었을 때 일어났던 사건이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2:13의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와 신자의 신비적 연합을 의미한다. “우리가 . .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동일한 사건이다.
이상의 세 성경 구절들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개념은 성령세례가 성령께서 신자들 속에 최초로 들어오시는 사건이라는 전통적 개념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오순절 사건의 일반적 의미와 동일하다. 성령세례란 성령께서 신자들 속에 처음 들어오셔서 그들 속에 영원히 거하시는 사건이다.
그것은 곧 신자의 중생(重生) 사건과 동일하다. 신자는 중생시 성령을 받고 그것이 곧 성령의 세례인 것이다. 중생시 받는 성령을 성령의 세례라고 부르는 것은 성령께서 그 시간에 우리의 더러운 죄를 씻으시고 우리의 죽었던 영혼을 살리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령의 구원하시는 사건인 것이다.
오순절파는 사도행전 1:5에 근거하여 믿는 자가 두번째의 경험으로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하지만, 오순절 사건 이전의 제자들과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상황이 다르다. 왜냐하면 오순절 사건 이전의 제자들은 아직 성령을 받기 전이었지만, 오늘날의 신자들은 믿을 때 이미 다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령세례의 시간
성령세례가 성령께서 최초로 신자 속에 들어오시는 사건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성령세례의 때에 관하여 성경 역사상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야 한다.
오순절 사건 이전에는, 사람들이 예수 믿은 후에 성령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 예수님을 이미 믿었고 이미 깨끗함 곧 중생(重生)을 얻었다. 요한복음 1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요한복음 7:39,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16장에서 성령을 약속하셨고, 또 사도행전 1:4, 5에서도 승천하시기 직전에 성령세례를 약속하셨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오순절 사건 이전에 예수님을 진실히 믿었으나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었고, 예수님 승천하신 지 약 10일 후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경우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을 받은 것은 시간적으로 달랐다.
그러나 오순절 사건 이후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 사도행전 10, 11장의 고넬료의 경우,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 혹은 성령세례는 시간적으로 동시적이었다. 그것들은 두 개의 별개의 사건들이 아니었다. 또 사도행전 19장에 기록된 에베소의 제자들의 경우도 자세히 읽어 보면, 그들이 요한의 세례만을 아는 자들이었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듣고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을 받았다. 또 고린도전서 12:13도 성령세례와 중생 사건을 동일한 사건으로 증거한다. “우리가 . .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한 몸이 되는 것은 중생 사건이다.
더욱이,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다 성령을 받았다고 가르치고 있다.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성령 안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 에베소서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께서는 인만 치고 떠나신 것이 아니고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을 인치심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요한일서 2:20, 27,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성령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 . .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내주하시는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내주하시는 성령]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고린도전서 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께서 예수 믿는 우리 속에 오셔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하신 것이다.
또한, 세례(洗禮)라는 말은 죄 씻음과 새롭게 됨을 표시하는 것인데, 신약성경은 예수 믿는 자들이 성령 안에서 씻음과 새롭게 됨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성령세례와 같은 뜻이다. 고린도전서 6:11,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디도서 3:5-7,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단지, 사도행전 8:15-17에 기록된 사마리아 교인들의 경우만은 예외적이었다. 오순절파는 이 구절을 가장 중요시하며 이 구절에 근거하여 예수 믿는 것과 성령세례 받는 것을 분리시키려 한다. 그러나 그 성경 본문 16절은 그것이 예외적이었음을 보인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라.” ‘오직 . . . 만’이라는 표현은 사마리아 신자들이 성령 받지 못한 것이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즉, 이 구절은 오순절 사건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을 받는 법이었는데, 사마리아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J. A. Alexander, Acts, p. 332).
사마리아 교인들의 경우가 예외적이었던 이유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가지고 있었던 특별한 신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오래도록 종교적 간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들 보기에 반쯤 이방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만일 처음부터 사도들이 그 곳에 내려가 전도해서 예수 믿는 자들을 얻었다면, 아마 성령 강림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한 자는 사도가 아니고 집사인 빌립이었다.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인들에게 성령을 주시는 일을 지연시키셨던 것 같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도들이 파송되어 그 곳에 가서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성령께서 강림하셨고, 사마리아 교인들과 유대의 교인들과의 영적 일체성은 확증되었다.
사도시대에 이 한 가지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약성경이 전체적으로 오순절 사건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 곧 성령세례를 시간적으로 분리시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성경에는 신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든가 성령세례를 받으라는 명령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령을 받는 것 혹은 성령세례가 예수 믿는 자가 두번째의 경험으로 경험하는 어떤 것이 아니고, 그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혹은 그가 중생했을 때 이미 받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미 성령을 받았고 성령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또다시 성령 받기를 구하거나 성령 세례 받기를 간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단지 이미 오신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우리의 영육의 각 부분과 각 기능에서 충만히 역사하시도록 그에게 겸손히 복종하고 그를 의지할 것만 남아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오순절에 성령의 부으심은 그가 교회 속으로 최초로 그리고 실제로 오심이었다. . . . 그리스도의 몸의 새 부분들은 외부로부터 교회에 추가되며, 성령께서는 몸으로부터 새 지체들 속으로 부어지듯이 그 새 부분들 속으로 부어지셨다. . . . 이것은 또한 오늘날 왜 새 회심자들이 오직 일상적인 방식으로 성령을 받는가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 . . 또한, 성령의 다른 하나의 부으심이나 세례를 위한 기도가 부정확하고 참된 의미가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한 기도는 실제로 그 오순절 기적을 부정한다. 왜냐면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그 분은 우리에게 더 오실 수 없기 때문이다”(A. Kuyper, The Work of the Holy Spirit, pp. 115, 126, 127).
에취 씨 쥐 무울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서신서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성령의 세례를 구하라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 . . 보다 더 효과적 봉사를 위해 성령세례를 기다리는 행위는 잘못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미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을 이루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이미 소유한 것으로 충만해지기 위해 가장 겸손한 신앙으로 우리 영혼과 삶의 모든 길과 부분들을 여는 것이다”(H. C. G. Moule, Person and Work of the Holy Spirit, pp. 222, 223). 또한 레만 스트라우스도 같은 신념에서 말하기를, “성령세례를 중생 경험과 별개로 보는 가르침은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 . . . 성령세례는 봉사의 능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다시 태어난 자들로 그리스도의 지체를 이루게 하는 것과 관계된다”고 했다(레만 스트라우스, 성령론, 132-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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