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예배 인본주의적 열린예배 폐지되어야 한다
열린예배 인본주의적 열린예배 폐지되어야 한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990
많은 교회들에서 열린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몇몇 대형교회들도 이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이와 더불어, 경배와 찬양과 문화 사역도 아울러 신학적으로 고찰해 보기를 원한다.
열린 예배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1. 불신자들은 포용할 수 있기 위해서 열린 예배가 필요하다.
2.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대중매체에 길들여진 세대에게는 새로운 복음 접근법이 필요하다.
3. 변화는 세상 속에서 교회도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4. 서구의 교회-성장하는 몇몇 교회 포함-에서 열린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고, 가시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열린 예배의 신학적인 부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예배의 대상은 성삼위 하나님이시다.
인간이 예배의 방법을 고안하거나 성경에 제시된 것 외에 임의로 바꾸어서는 안된다. 열린 예배는 불신자에 대한 전도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자연인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의 제시를 통하여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며,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영원히 지옥에서 의식적인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담대히 전해야 한다. 결코 인간의 기호에 맞추고,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교회가 세상과 닮아가서는 안된다. 세상은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다르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는 편협함과 정체성을 상실한 채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고 내어준 나머지, 이제는 교회에 출석하고 믿는다는 것 외에는 그리스도인을 특징짓는 근본적인 요소들마저 퇴색되어 버렸다. 예배는 인간을 위해서, 인간의 편의에 의해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 열린 예배는 신실한 말씀 전파를 통한 영혼의 회심을 뒤로 한 채, 비성경적인 요소들을 교회 안에 끌어들여 교회를 극장화시켜 버렸다. 이에 예배에 반드시 있어야 할 엄숙함이나 경건함은 상실되고, 값싼 감정주의와 성급한 결신이 물결치고 있다. 예배의 개혁없이는 기독교의 개혁은 요원하다.
2. 열린 예배는 지극히 인본주의적이다.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데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한 불신자가 교회에 와서 느껴야 할 것은 편안함이나 따뜻함 이전에 자신의 양심의 괴로움, 심지어 매를 맞고 있다는 느낌나저 들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더하거나 덜하지 않고 전하면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이전에, 죄를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분이시다. 흔히 교회 차량이나 전도지, 전도 플래카드에서 볼 수 있는 문구인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문구는 비성경적이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그리고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그들을 변화시켜 주시지 않는 한, 그들은 죄악의 노예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한다. 세상은 오늘날 교회를 비웃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경건하고 거룩해서가 아니라, 뒤떨어져 있으면서도 세상을 뒤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교회를 보고 조소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설교를 약화시킨 채 우리가 사람들을 모을 수 있고, 그들을 믿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철저히 인본주의적인 생각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행위이다.
3. 열린 예배는 주객이 전도되어 있다.
교회의 이름으로 모여서는 문화 생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채 정작 설교 시간은 극히 적게 주어지거나, 상실되어 있다. 경배와 찬양 모임들도 청소년들에게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만, 생활과 삶과 가치관과 인격의 변화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이루어짐을 기억해야 한다. 열린 예배는 그럴듯 하고, 인간적으로 매우 달콤하지만, 그곳에는 참된 복음은 상실되어 있다. 믿기만 하면 구원얻는다는 신앙지상주의의 신학이 이 예배의 저변에 깔려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기준을 우리의 수준으로, 함부로 낮출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교회는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정작 그들이 교회에 왔을 때 주어야 할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옛 복음에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청교도들과 같이 기독교를 엄격하게 제시하여야 한다. 좁고 협착한 구원의 길을 많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멸망의 길로 넓힐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4. 열린 예배는 회심자를 얻을 수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없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나 기독교 문화 사역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복음으로만 사람이 새로워질 수 있고, 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열린 예배는 불신자들로 하여금 잘못된 복음과 참된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하다. 열린 예배의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전락시켜 버린다. 열려 있어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이지, 예배 자체가 인간의 수준과 인간의 형편에 맞추어져서는 안된다. 문화 자체를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실상은 사람 자체가 완전히 타락되어 있는데, 환부를 도려내지는 않고, 상처만을 감싼다면 더 깊은 불행을 낳는다. 열린 예배의 가장 큰 부정적인 요소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에게 회심하지 않았으면서도,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한 영혼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가 다름 아닌 교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열린 예배는 폐지되어야 한다. 이것은 불필요한 일들에 우리의 정력을 소모하게 만들고, 감정주의를 낳고, 일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리고 정작 주어져야 할 자연인에 대한 말씀 선포의 기회를 잃게 하고, 기독교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것이 도입된 서구의 교회들 가운데서 이 열린 예배로 인해 이제는 비어버린 예배당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는 철저히 신본주의이다. 그것이 우리의 기호에 맞지 않더라도, 시대에 조금 뒤떨어져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변하지 않았고, 타락한 인간의 이성과 마음도 변하지 않았으므로, 변하는 시대와 사상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를 변화시키기에 필요충분한 것이다. 한국교회 예배의 갱신을 촉구한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990
많은 교회들에서 열린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몇몇 대형교회들도 이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이와 더불어, 경배와 찬양과 문화 사역도 아울러 신학적으로 고찰해 보기를 원한다.
열린 예배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1. 불신자들은 포용할 수 있기 위해서 열린 예배가 필요하다.
2.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대중매체에 길들여진 세대에게는 새로운 복음 접근법이 필요하다.
3. 변화는 세상 속에서 교회도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4. 서구의 교회-성장하는 몇몇 교회 포함-에서 열린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고, 가시적으로 성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열린 예배의 신학적인 부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예배의 대상은 성삼위 하나님이시다.
인간이 예배의 방법을 고안하거나 성경에 제시된 것 외에 임의로 바꾸어서는 안된다. 열린 예배는 불신자에 대한 전도를 목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자연인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의 제시를 통하여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며,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영원히 지옥에서 의식적인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담대히 전해야 한다. 결코 인간의 기호에 맞추고,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교회가 세상과 닮아가서는 안된다. 세상은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다르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는 편협함과 정체성을 상실한 채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고 내어준 나머지, 이제는 교회에 출석하고 믿는다는 것 외에는 그리스도인을 특징짓는 근본적인 요소들마저 퇴색되어 버렸다. 예배는 인간을 위해서, 인간의 편의에 의해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 열린 예배는 신실한 말씀 전파를 통한 영혼의 회심을 뒤로 한 채, 비성경적인 요소들을 교회 안에 끌어들여 교회를 극장화시켜 버렸다. 이에 예배에 반드시 있어야 할 엄숙함이나 경건함은 상실되고, 값싼 감정주의와 성급한 결신이 물결치고 있다. 예배의 개혁없이는 기독교의 개혁은 요원하다.
2. 열린 예배는 지극히 인본주의적이다.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데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한 불신자가 교회에 와서 느껴야 할 것은 편안함이나 따뜻함 이전에 자신의 양심의 괴로움, 심지어 매를 맞고 있다는 느낌나저 들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더하거나 덜하지 않고 전하면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이전에, 죄를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분이시다. 흔히 교회 차량이나 전도지, 전도 플래카드에서 볼 수 있는 문구인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문구는 비성경적이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그리고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그들을 변화시켜 주시지 않는 한, 그들은 죄악의 노예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한다. 세상은 오늘날 교회를 비웃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경건하고 거룩해서가 아니라, 뒤떨어져 있으면서도 세상을 뒤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교회를 보고 조소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설교를 약화시킨 채 우리가 사람들을 모을 수 있고, 그들을 믿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철저히 인본주의적인 생각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행위이다.
3. 열린 예배는 주객이 전도되어 있다.
교회의 이름으로 모여서는 문화 생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채 정작 설교 시간은 극히 적게 주어지거나, 상실되어 있다. 경배와 찬양 모임들도 청소년들에게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만, 생활과 삶과 가치관과 인격의 변화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이루어짐을 기억해야 한다. 열린 예배는 그럴듯 하고, 인간적으로 매우 달콤하지만, 그곳에는 참된 복음은 상실되어 있다. 믿기만 하면 구원얻는다는 신앙지상주의의 신학이 이 예배의 저변에 깔려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기준을 우리의 수준으로, 함부로 낮출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교회는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정작 그들이 교회에 왔을 때 주어야 할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옛 복음에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청교도들과 같이 기독교를 엄격하게 제시하여야 한다. 좁고 협착한 구원의 길을 많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멸망의 길로 넓힐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4. 열린 예배는 회심자를 얻을 수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없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나 기독교 문화 사역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복음으로만 사람이 새로워질 수 있고, 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열린 예배는 불신자들로 하여금 잘못된 복음과 참된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하다. 열린 예배의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로 전락시켜 버린다. 열려 있어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이지, 예배 자체가 인간의 수준과 인간의 형편에 맞추어져서는 안된다. 문화 자체를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실상은 사람 자체가 완전히 타락되어 있는데, 환부를 도려내지는 않고, 상처만을 감싼다면 더 깊은 불행을 낳는다. 열린 예배의 가장 큰 부정적인 요소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에게 회심하지 않았으면서도,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한 영혼에게 가장 위험한 장소가 다름 아닌 교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열린 예배는 폐지되어야 한다. 이것은 불필요한 일들에 우리의 정력을 소모하게 만들고, 감정주의를 낳고, 일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리고 정작 주어져야 할 자연인에 대한 말씀 선포의 기회를 잃게 하고, 기독교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것이 도입된 서구의 교회들 가운데서 이 열린 예배로 인해 이제는 비어버린 예배당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는 철저히 신본주의이다. 그것이 우리의 기호에 맞지 않더라도, 시대에 조금 뒤떨어져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변하지 않았고, 타락한 인간의 이성과 마음도 변하지 않았으므로, 변하는 시대와 사상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를 변화시키기에 필요충분한 것이다. 한국교회 예배의 갱신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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