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주의해야할운동

유익한 음악과 해로운 음악의 차이점

유익한 음악과 해로운 음악의 차이점
앨런 아니브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2415
 
서문
  우리는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의 차이를 말할 수 있는가? 같은 가사라도 그 음악에 따라 그것이 관능적(sensual)인지 영적(spiritual)인지의 차이를 가질 수 있다. 성령님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어 가르치시고 위로하시며 때로는 꾸짖기도 하시며 나를 바로잡아 주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노래를 들을 때도 성령님께서 역사를 하시는 것이다. 비록 가사가 축복된 것일지라도 그 음악이 저속하다면 우리는 그 노래로부터 거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찬송을 들을 때 우리는 “성령님, 이 노래가 유익합니까? 아니면 해롭습니까? 라고 물을 수 있다.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가 시험하라. 어떤 노래 가사나 음악이 좋은지 나쁜지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속삭임을 경청해야 한다. 그 노래 안에 나쁜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노래를 부르지도 말고 듣지도 말아야 한다. 해로운 노래는 우리의 속 사람을 해치기 때문이다.

1. 조심하라(Be careful)
  (벧전 5:8-9),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문이다.
  가다레노 지방의 마귀에게 고통 당하는 한 사람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옥 외에는 어디든지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을 알라. 가다레노 지방의 미친 마귀에게 잡힌 한 사람으로부터 예수님이 마귀를 쫓아내어 주셨다. 만일 내가 마귀를 허용한다면 그는 내 안에 머물고 나를 마음대로 끌고 다닐 것이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원한다. 돼지 안에 있어야 할 마귀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지배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오늘날 마귀는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주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하는데 성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귀에게 사용되어 나쁜 음악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발광을 하고 있으며 그들은 그것이 마치 성령이 역사로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들을 시험하라”

2. 행진곡 대 춤곡(March Music versus Dance Music)
  행진곡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의욕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음악 형식이다. 그런데 마귀는 이것을 대적하기 위해 이를 댄스곡으로 대치하여 한다. 이 두 음악 형식의 차이는 박자의 강약이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것에 관심이 있다면 마귀는 우리의 육신적인 것을 흔들어 영적인 것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이다. 좋은 음악에는 반드시 나쁜 음악이 나오고 그것이 더 기세를 펴는 것이다.
  행진곡은 첫 박자와 셋째 박자에 액센트가 붙는다. “하나(강), 둘(약), 셋(중강), 넷(약)” 그런데 댄스곡은 “하나(약), 둘(강), 셋(약), 넷(강)”과 같이 액센트의 위치를 바꾸어 놓는 것이다. 행진곡은 군대의 전진을 위한 행진 리듬을 사용하지만, 댄스곡은 그 자리에 머물러서 관능적인 것을 즐기려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살전 5:21). 아무 음악이나 마구 받아들이지 말고 선한 것과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주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무엇인지 입증하라”(엡 5:10). 이 음악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우리는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 영과 혼과 몸을 축복하시기 위해 음악을 주셨다. 음악에는 이 세 가지를 축복하기 위한 세 가지 요소들이 있다.  영은 우리가 하나님께 접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영이 죽어있으므로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없다. 음악도 그런 음악을 좋아하게 된다.

3. 음악의 삼 요소 - 멜로디, 화음 그리고 리듬
  음악의 선율은 우리의 영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접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화음과 리듬이 없이도 어떤 음악을 노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11장 “저 십자가 가까이(Jesus, Keep Me Near the Cross)"를 노래해 보자. 이 멜로디는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 주제는 기도이다. 나는 선율을 허밍 하므로 영적인 축복을 누릴 수 있다. 멜로디만으로도 주님과 친밀한 사귐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주님을 생각하도록 돕는다. 이것이 멜로디의 역할이다.
  한편 음악의 화음은 우리의 혼을 위한 것이다. 혼은 우리의 느낌과 감정 그리고 애정이 있는 곳이다. 어떤 찬송가의 멋진 화음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은 희노애락을 느낀다. 장조와 단조 음악은 우리의 감정을 좌우한다. 같은 음악이라도 장조로 부르면 안정되고 즐겁지만 단조로 바꾸면 슬퍼질 것이다. 우리는 기쁨이 필요하지만 어느 때는 슬픔도 표시해야 할 때가 있다.
  (예) “아흔 아홉 양 저 우리에 다 편히 있어도” 장조와 단조로 부를 때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최후 심판의 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주님 다시 오실 때가지 잘 보존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음악의 삼 요소는 올바르게 사용되어야 한다.

4. 텍스트 페인팅(Text Painting) - 음악은 가사의 내용을 잘 들어 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무성영화 시대 음악의 역할은 매우 컸다. 급박한 스릴, 애환, 절망 등의 내용을 음악으로 더욱 돋보이게 만든 것이다.
  음악가들은 어떤 사건이나 가사에 대해 그 내용을 청중들에게 더욱 실감나게 전달해주기 위해 멜로디와 화음과 리듬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어떤 드라마틱한 영화라도 거기에서 배경 음악을 빼고 보면 매우 싱거운 것이 될 것이다.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음악처럼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없다.
  음악가들은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서 어떤 그림을 그리며 거기에 맞는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어떤 아름다운 소녀를 생각하면서 사랑의 노래를 만들기도 한다.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 무한한 신비를 느끼며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찬송가는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하심과 위엄을 생각하며 만든 것이다.

5. 거룩함의 아름다움(The Beauty of Holiness)
  (시 29:2), “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드리며 거룩함의 그 아름다움으로 주께 경배할지어다.” 우리가 주님께 경배할 때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드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과 노래가 거룩함이 없다면 이것이 하나님께 경배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면 따라서 거룩함의 아름다움만이 그분께 합당한 것이다.
  아무리 그 얼굴이 아름다운 숙녀라고 그녀에게 거룩함이 빠져있다면 하나님께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음악도 그것이 얼마나 예술적으로 정교하고 멋있게 보여도 거룩함이 없다면 하나님께 드릴 가치가 없다.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함께 가는 것이다.
  하늘 나라의 천사들의 음악은 거룩한 것이다. 그런데 천사장 루시퍼는 작은 북과 피리를 부는 자였다(겔 28:13).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모세의 인도를 따라 부른 노래는 거룩한 노래였다. 구속의 노래. 그런데 그들이 시내산 아래서 모세를 기다리지 못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불렀던 노래는 저속한 노래였다. 그들은 춤추며 뛰놀았던 것이다. 노래가 그 부르는 자의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다윗은 악기 만드는 자였으며 그 악기를 잘 연주하는 자로서 유명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들의 대를 이어 현악기와 관악기를 잘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연주가 빼어난 것은 그들이 연습을 철저히 하고 정성을 다 해서 하기 때문이다. 같은 악기라도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음색과 기분이 전혀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색소폰을 바르게 연주하는 것을 좀처럼 듣기 힘든다. 사람들은 거룩한 것보다 육신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찬양해야 한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거룩하시며 성경 말씀도 거룩한 말씀이다. 우리가 주님을 노래로 찬양하려면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이런 거룩함은 우리 영과 혼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목소리나 악기의 선택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시66:1-2),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그분의 이름의 존귀하심을 노래하고 그분의 찬양을 영화롭게 할지어다” 우리의 찬양은 기쁨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이름의 존귀함이 나타나야 하며 그분의 찬양이 영화롭게 되어야 한다. 우리가 목소리로 노래를 하거나 악기로 연주할 때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가져오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실제적으로는 음악이 하나님을 오히려 욕되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6. 유익한 리듬과 해로운 리듬들(Good Rhythms and Bad Rhythms)
  리듬에는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이 있다. “주님의 말씀은 견고한 기초니”란 찬송을 부를 때 만일 경쾌하고 가벼운 징글 벨 터치로 그 노래를 연주한다면 그 분위기를 가사 내용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의 전통적인 음악은 깊고 묵직하며 설득력이 있다. 멋진 텍스트 페인팅이다. 그러므로 이 노래를 부르는 자는 가득찬 목소리, 풍부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어울리는 것이다. 이 노래를 하나님의 확고부동한, 뛰어나심을 나타낸다.
  “내 영혼 평안해”란 찬송의 각 절마다 내용이 변한다. “주 공중의 구름을 타고 올 때 큰 나팔과 찬송 소리” 이 시점에서는 분위기가 바뀌어 팡파르가 있다. “저 마귀가 우리를 삼키려고...”에는 팡파르를 넣을 수 없다. 그밖에 “면류관 드리세”, “만유의 대왕” 등은 매우 장엄한 노래이다. 이 노래들의 리듬들은 단순하면서도 힘이 들어 있다.
  찬송가의 가사를 잘 나타내기 위해 음악이 그것이 돋보이도록 텍스트 페인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노래가 평안인지, 묵상인지, 기쁨인지, 주님의 위대함인지에 따라 음악이 달라진다. “능력있는 예수처럼 누가 내게 힘주랴, 내 영혼에 기쁨 주신 생명보다 귀한 주”에 현대의 소란한 박자를 넣으면 그 찬양은 망치게 되는 것이다. 이 웅장한 옛 찬송가에 60년대의 밴드들이 노래했던 저속한 리듬을 넣어 사람의 관능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키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가사에 이상한 리듬을 넣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시도를 한다. “오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을 이상한 재스 풍의 리듬으로 사람을 흥분시키려고 한다.  
  부기(boogie)와 부르스(blues) 풍은 댄스 음악들로서 찬송가에 쓰기에 적합하지 못한 곡들이다. 그런데 이런 리듬들이 “나는 연약하오나 주의 권능 크시니”란 찬송가에 붙여져서 미국 남부 가스펠 스타일로 부른다. 이처럼 남부 가스펠 음악가들은 재즈 식의 리듬을 사용함으로서 많은 믿음의 찬송가들을 파괴하고 있다.
  잘못된 박자에 액샌트를 넣을 때 그것은 댄스 음악으로 바뀌게 되고 그것은 우리의 육신에 호소하므로서 사람들의 인기를 얻게 된다. 레코드 상인들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음악들이 더 많이 만들어져 팔리고 있다.

7.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
  우리가 해로운 음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 음악이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때때로 해로운 음악을 듣는 훌륭한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 그런 음악을 듣는다면 그들은 오래지 않아 영적인 파산을 당하게 될 것이다. 현대주의 신학자나 목회자들은 이것을 아무런 제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육신적인 사람은 육신적인 음악을 좋아하게 된다.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 계속 머물고자 원치 않는다면 육신의 정욕이 우리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처음에 맥주 한 모금을 마신다면 그 다음에 한 두 잔 마시게 되며 알코홀 중독자도 처음에는 소량의 술로 시작하는 것이다. 조그만 악이 나중에는 큰 악으로 변하게 된다. 이것이 곧 눈덩이 효과인 것이다.
  마귀는 사람들을 거룩함으로부터 이끌어내기 위해 이런 경로를 사용한다. 예전에는 마귀경배에 관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음악이 서서히 세속화함으로써 이제는 찬송가와 일반 가요와의 구분이 힘들게 되었다. 리듬이 관능적으로 바뀌면 선율과 화음이 영적이라도 그것이 무너지는 것이다. 음악의 삼 요소 중에서 리듬이 가장 적게 중요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리듬이 음악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것이 육신을 자극하는 것이다.

8. 싱커페이션(Syncopation)
  리듬의 또 다른 유형은 싱커페이션이다. 이것은 박자의 강박과 약박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을 지속적으로 할 때 관능적(몸을 흔들고 싶게 만드는)이 된다. 어린이 찬송가 가운데“별 하나에  싣고 ....”란 찬송도 그런 예이다. 부기 리듬은 8박자에 싱코페이션을 넣은 리듬이다. 이런 것을 빠르고 크게 연주하면 성적인 호소를 강화하게 된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리듬들은 “폴리 리듬” 즉 복합적인 리듬 사용은 사람들을 관능으로 몰고 간다. 재즈는 여기서 나온 리듬이다. 이것을 록의 무대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소음을 내고 화음도 불협을 사용한다. 거기에는 영이나 혼을 위한 것이 전혀 없고 단지 육을 자극하는 것이다.
  랩(Rap) 음악이 그런 것이다. 거기에는 멜로디나 화음이 필요 없다. 많은 젊은지들이 이런 음악에 심취되어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 그들은 마귀적인 음악에 통제를 받으므로 자신들의 영과 혼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9. 젊은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들의 음악으로 접근할 것인가?
  그리스챤 록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런 음악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세상과 같이 우리의 음악을 연주한다거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동의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면 당신은 그들에게 주님이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즉 그분이 계시며, 거룩하시고, 이 세상은 거룩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옷 모양과 머리 모양과 말씨와 생활 습관이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교회 밖의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 교회 문턱을 낮추면 교회 안에 세속의 물결이 들어야 교회 자체가 부패되고 그들에게 줄 어떤 것도 상실하게 된다. 교회는 거룩함이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의 음악도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음악을 평가할 때 이런 것들을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1) 리듬이 어떠한가? (리듬 악기를 사용하는가?)
(2) 볼륨(크기)이 어떠한가?
(3) 속도가 어떠한가?
(4) 부르는 사람의 몸의 태도가 어떠한가?

  당신이 그 노래에서 관능적이며 땅에 속한 리듬을 들을 때 그것을 멀리하라.
오늘날의 교회 음악이 대중을 위한 선동적인 음악이 될 때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즐기는 음악(Entertainment)과 공연하는 음악(Performance)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 글 공유하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