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예배
열린 예배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3265
릭 워런(Rick Warren)의 새들백(Saddleback) 공동체 교회
릭 워런 박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새들백 공동체 교회의 목사이며 '목적에 끌린 교회 건립하기' 연수회의 지도자이다. 지난 1월, 데니스 코스텔라 박사는 워런이 인도하는 세미나들 중 하나에 참석했는데, 거기에서 워런은 전통적 교회를 극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로 변형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가르쳤다:
1) 현대적 스타일의, 비(非)위협적 '구도자(求道者) 집회'가 전통적 일요일 예배를 대체해야 한다.
2) 복장은 평상복 차림이어야 한다.
3) 음악은 현대적이어야 한다.
4) 설교는 구원받은 자들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똑같이, 종종 심리학과 격려적인 성경본문을 섞는 설교 후에, 자신들에 대해 좀더 기분 좋게 생각할 수 있도록 오직 긍정적인 내용이어야 한다.
5) 교회의 사역들은 대중의 필요들을 충족시키도록, 우울, 무절제한 식사, 불임(不姙), 동성연애자들의 가족이나 친구, 낙태 후의 일, 별거(別居) 등을 위한 후원 그룹들을 가지고 준비되어야 한다.
6) 교리적 교훈은 일요일들에 교회 전체에게 주지 말고, 예배 시간과 별도로 소그룹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한다.
7) 실용주의적(實用主義的) 타협의 정신이 우세해야 한다.
열린 예배, 교회 내의 문화 행사
요즈음 일부 교회들에서는 '열린 예배'라고 하여서 교회의 전통적 예배 모범을 깨뜨리고 예배 시간에 멀티비젼(대형 스크린에 비쳐지는 그림들), 드라마, 무용, 세속적 형식(록이나 랩 스타일)의 복음 성가와 밴드, 혹은 심지어 청바지 형태의 복장을 도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 어떤 교회들은 '문화 학교'를 개설하여 영어 회화, 꽃꽂이, 바이올린 등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런 경향들은 이전에는 자유주의적 교회들에서 시도되었던 바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복음주의라고 하는 교회들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이 '영성'(靈性)이 있는 활동이며, 심지어 이런 교회들이 '사도적 모범을 좇는 교회들'이라고 선전된다. 이런 류의 교회들은 이런 방식으로 많은 청중들을 모으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대형교회가 목회의 성공이라고 인식하는 대중의 평가에 이끌리어, 많은 목사들은 '여하튼 교회가 숫적으로 커지고 봐야 한다'는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류의 교회 행태, 목회 행태는 심히 불성실하고 인위적이게 보인다. 우선, 정말 '열린 예배'가 바람직한 형식이라면, 먼저 기도와 성경 연구와 신중한 토론을 통해 목사들의 임직 서약 때 하나님 앞에서 수락했던 '예배 모범'을 고쳐야 할 것이다. 어떻게 목사가 신앙 양심의 거리낌 없이,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며 받아들였던 '예배 모범'과 반대되는 예배 형식을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는가?
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엄숙하고 질서 있게 행해지고 예배 음악들이 아름답고 안정되게 연주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성경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라고 말했다(시 96:9). 또 바울 사도는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했고(고전 14:33), 또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빌 1:9, 10). 우리는 질서 있고 가장 아름답고 선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예배 순서가 찬송과 기도와 설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을 보이고 있다. 고린도전서 14:26,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사도행전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이런 말씀은 전통적 예배가 성경적임을 보인다.
또한, 교회의 문화적 행사들은 성경의 교훈들에도, 초대 교회의 모범에도 맞지 않는다.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본연의 임무와 사명이 있다. 그것은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의 일이다. 특히, 전도는 예수님 자신의 사명이었고, 그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일이었다. 초대 교회는 이 임무들과 사명에 충실하였다. 어느 시대이든지, 교회는 오직 이 임무들과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성경은 개인의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만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이 아니고, 또한 교회 생활이나 목회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인간적 생각과 지혜로 예배하거나 교회를 운영하지 말고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예배하고 목회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심히 혼란스런 오늘날 교회들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지시하는 정확무오한 유일한 규범이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교회를 운영하고 목회해야 한다.
열린 교회가 참 교회의 모습인가?
한 기독교 신문은 열린 교회를 지향하는 한 교회로서 서울의 목동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한 교회를 소개하였다. 그 교회는 예배당 경내에 예식장, 커피숍, 알뜰 매장, 문구점 등이 있다. 이웃 주민들은 교회의 모든 시설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고 생활필수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예식장은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예비부부 모임 등 가족 콘서트가 있고, 일일 찻집을 통해 구제 기금도 마련하고, 바이올린반, 꽃꽂이반, 영어회화반 등 문화학교가 개설되어 있다. 교회 본당도 음악발표회나 음악사랑동호회, 세미나 등에 개방되어 있다. 그 교회 담임목사는 '교회가 교인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새들백 커뮤니티 교회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러기 위해 교회는 외딴섬이 되지 않도록 다양하게 다리를 많이 놓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역사회가 교회를 생각할 때 나와 관계가 없다는 벽을 허물고 나를 위해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된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목회 비전으로 교회의 본질과 기능을 회복하여 초대교회처럼 성경적 교회상을 체험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 신문은 그 목사를 '젊은 목회자 중 가장 깨어있는 지도자'라고 묘사하였다.
그러나 소위 이러한 '열린 교회'가 오늘날의 참 교회의 모습인가? 그것이 과연 교회의 본질과 기능을 회복하여 초대 교회와 같은 성경적 교회상을 이루어 가는 일인가? 우선, 분명한 것은 그런 교회가 전통적 교회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통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며 말씀 배우고 기도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곳으로서 세상과 구별된 조용하고 경건한 곳이었다. 그러나 '열린 교회'는 그런 모습과 전혀 대조된다. 신앙의 선조들은 참 교회를 이루려고 애썼는데, 참 교회란 성경이 계시하는 모습의 교회이다. 성경은 교회를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분명히 계시한다. 교회가 믿지 않는 세상을 위해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만, 그렇다고 교회와 세상이 뒤섞여도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와 세상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신앙의 선진들은 참 교회란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전파되고 성례가 바르게 시행되고 훈련과 권징이 성실히 시행되는 교회라고 보았다. 이 특징들은 불신자들이 받기 어려운 것들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백성에게 가서 전도하여 제자를 삼고 그가 명하신 모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마 28:19, 20). 주의 '모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중생치 못한 자들에게는 좀이 쑤시고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일이며 그런 신앙 훈련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는 설교 내용을 축소해서는 안되며 성경의 모든 말씀을 성실히 강론하고 그대로 믿고 살도록 훈련시키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되며, 또 필요할 때는 권징도 시행해야 한다.
신앙의 선진들은 교회의 임무가 세 가지라고 보았다. 첫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며, 둘째는 교인들을 신앙적으로 건립하는 일이며, 셋째는 세상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일이다. 이것은 성경적 확신이었다. 교회는 이 세 가지의 임무를 다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교회의 예배는 우리의 신앙의 선진들이 가르쳐 준 대로 경건하고 엄숙하게 드려져야 한다. 또 성경 말씀을 배우는 것, 기도회로 모이는 것, 각 구역이나 부서의 모임 등 교회의 공적 집회들이나 활동들도 다 성도들 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특히 전도를 빙자하여 교회 자체를 세속화시키거나 예배나 영적 건립의 기능과 임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또 전도는 성경에 계시된 방식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주관적 생각이나 시대의 풍조를 따라 교회의 모습을 제멋대로 그리거나 교회의 사명을 제멋대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에 밝히 계시되어 있고 신앙의 선조들이 바르게 이해하고 힘써 왔던 '옛길'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예배와 영적 건립과 전도의 일에 조용히 충실해야 한다.
축제가 대중에게 접근하는 모델인가?
2001년 8월 10-11일, 미국 아이다호주 보이스에서의 루이스 팔라우의 축제는 10만명이 모였다. 이것은 많은 교단들에 속한 375개 교회들의 목사들과 교인들이 1년 동안 기도하고 협력한 결과이었다. 천주교회도 포함되었다. 게임과 음악과 오락이 그 기간을 가득채웠고 팔라우는 매일 밤 말했다. 그는, "축제는 [젊은이의] 마음에 접근하는 첩경인 것 같다. 그것은 대중에게 접근하는 이 세대의 모델이다"라고 말했다.
현대적 춤으로 찬양과 경배?
오늘날 교회들 속에는 찬양집회나 교회행사에 빠른 비트의 음악에 따라 현란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아이들이 등장하였다. 10여년 전부터 등장한 전통적 발레와 한국 무용 등을 사용한 워십댄스와 달리, 힙합, 디스코, 째즈, 하우스, 탭댄스 등의 현대적 춤을 예배와 찬양에 도입하는 이런 흐름은 현대기독교댄스(Contemporary Christian Dance)라고 불리운다. 이런 젊은이들의 요구를 수용해 낮은 울타리 아카데미, 온누리교회 등에서 발 빠르게 교육과정을 개설했다고 한다.
현대기독교음악이라는 것이 교회음악을 속화시키더니 이제는 그보다 한 걸음 더 진보한 현대기독교댄스라는 것이 교회를 혼란시키고 속화시키려 한다. 하나님을 사람 기분에 좋은 방식으로 섬겨서는 안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성경 교훈대로 경건함과 단정함으로 섬겨야 한다.
참된 예배
아서 핑크(Arthur W. Pink)는 요한복음 강해 중 요한복음 4:23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오늘날 '예배'라는 용어가 담고 있는 뜻들이 영적이기보다 육신적이고, 내면적이고 경건하기보다 외형적이고 구경거리적이다. 예배는 우리가 아는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드리는 것이며, 육신과 그것의 감각을 끄는 모든 것은 참된 예배를 손상시킨다. 예배는 눈이나 귀로 드리는 것이 아니고, '영으로' 즉 새 본성으로 드리는 것이다. 오 우리가 얼마나 멀리 정로에서 떠났는지! 현대적 '예배'는 주로 육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고안된다. 즉 그것은 아름다운 주위 환경과 감각적인 음악과 흥미 있는 이야기들을 가진 '밝고 매력적인 예배'이다. 이것은 얼마나 하나님을 조롱하며 모독하는 것인가! 찬양대는 누구에게 노래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인가 아니면 사람들에게인가? . . . 노래의 매력이 '설교의 어리석음'을 대치하였다. 그러나 음악이 잘못인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재능을 주지 않으셨는가? 물론 그러나, 우리가 지금 비평하는 것은, 육신적이고 사람의 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전문적이며 구경거리적인 교회 합창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영으로' 예배해야 하고 단지 육체적 감각으로 해서는 안된다.
하이벨즈의 윌로우크릭 지도자 정상회의
북미에서 3만명 이상의 지도자들과 장래 지도자들은 2003년 8월 7-9일까지 전세계의 교회 및 사업 지도자들의 모임인 연례적인 지도자 정상회의에 참여할 것이다. 그 모임은 미국 시카고 부근에 있는 빌 하이벨즈의 윌로우크릭 공동체 교회로부터 시작되었고 미국과 캐나다의 60개 곳에 인공위성으로 방송된다. 연사들은 하이벨즈, 캐렌 휴즈(죠지 부쉬의 전 대통령 자문관), 앤디 스탠리(애틀란타 부근의 노스포인트 공동체 교회의 목사), 짐 콜린스, A. R. 버나드 등을 포함한다. 윌로우크릭 협회는 2003년 지도자 정상회의를 조직하고 있다. 그것은 9,500개 이상의 교회들(이단들을 포함하는)의 초교파적 세계적 조직이며 현재 매년 1000교회씩의 비율로 성장하고 있다. 하이벨즈는 매년 계속해서 자유주의적 로버트 슐러를 위한 연사이다.
'워십 댄스'에 대해
기독신학의 김석한 부학장은 "워십 댄스(worship dance)가 예배 구성요소인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최근에 한국교회는 전대(前代)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교회문화 행사종목인 예배춤(워십 댄스)이 예배에 도입되어 만연(蔓延)되는 추세에 있다. 아마도 종교적 여흥(餘興)(religious entertainment)을 즐기려는 회중들의 유희적 성향과 젊은이들의 오락적 취향에 맞추려는 열린 예배에 기생(寄生)하여 유입된 프로그램으로 보여진다. . . . 춤은 어떤 경축행사나 절기에서 신의 은총에 대한 환희의 극치를 표현하는 것인데 예배의 한 구성요소로 도입하는 것은 예배를 유희화(遊戱化)하여 사람의 관심과 만족을 주려는 인본주의가 된다. 예배의 본질은 경건에 있고 경건은 영적인 내재성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어떤 몸짓이나 신체적 작용을 통해 시각화(視覺化)하는 것은 아니다. . . . 성경에도 구약의 제의(祭儀)적 성전예배 때에나 신약예배에 춤의 순서가 구성된 근거는 없다. 춤은 구원받은 신자들의 감격을 종교행사적인 순서로 도입하여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워십 댄스(예배춤)란 말 자체가 부적절하다. 강단이 예술무대가 되고 예배순서가 오락화하는 것은 예배의 타락이며 예배타락은 기독교를 무너지게 함을 교회들은 유념해야 한다."
출처:옛신앙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3265
릭 워런(Rick Warren)의 새들백(Saddleback) 공동체 교회
릭 워런 박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새들백 공동체 교회의 목사이며 '목적에 끌린 교회 건립하기' 연수회의 지도자이다. 지난 1월, 데니스 코스텔라 박사는 워런이 인도하는 세미나들 중 하나에 참석했는데, 거기에서 워런은 전통적 교회를 극적으로 성장하는 교회로 변형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가르쳤다:
1) 현대적 스타일의, 비(非)위협적 '구도자(求道者) 집회'가 전통적 일요일 예배를 대체해야 한다.
2) 복장은 평상복 차림이어야 한다.
3) 음악은 현대적이어야 한다.
4) 설교는 구원받은 자들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똑같이, 종종 심리학과 격려적인 성경본문을 섞는 설교 후에, 자신들에 대해 좀더 기분 좋게 생각할 수 있도록 오직 긍정적인 내용이어야 한다.
5) 교회의 사역들은 대중의 필요들을 충족시키도록, 우울, 무절제한 식사, 불임(不姙), 동성연애자들의 가족이나 친구, 낙태 후의 일, 별거(別居) 등을 위한 후원 그룹들을 가지고 준비되어야 한다.
6) 교리적 교훈은 일요일들에 교회 전체에게 주지 말고, 예배 시간과 별도로 소그룹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한다.
7) 실용주의적(實用主義的) 타협의 정신이 우세해야 한다.
열린 예배, 교회 내의 문화 행사
요즈음 일부 교회들에서는 '열린 예배'라고 하여서 교회의 전통적 예배 모범을 깨뜨리고 예배 시간에 멀티비젼(대형 스크린에 비쳐지는 그림들), 드라마, 무용, 세속적 형식(록이나 랩 스타일)의 복음 성가와 밴드, 혹은 심지어 청바지 형태의 복장을 도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 어떤 교회들은 '문화 학교'를 개설하여 영어 회화, 꽃꽂이, 바이올린 등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런 경향들은 이전에는 자유주의적 교회들에서 시도되었던 바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복음주의라고 하는 교회들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이 '영성'(靈性)이 있는 활동이며, 심지어 이런 교회들이 '사도적 모범을 좇는 교회들'이라고 선전된다. 이런 류의 교회들은 이런 방식으로 많은 청중들을 모으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대형교회가 목회의 성공이라고 인식하는 대중의 평가에 이끌리어, 많은 목사들은 '여하튼 교회가 숫적으로 커지고 봐야 한다'는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류의 교회 행태, 목회 행태는 심히 불성실하고 인위적이게 보인다. 우선, 정말 '열린 예배'가 바람직한 형식이라면, 먼저 기도와 성경 연구와 신중한 토론을 통해 목사들의 임직 서약 때 하나님 앞에서 수락했던 '예배 모범'을 고쳐야 할 것이다. 어떻게 목사가 신앙 양심의 거리낌 없이,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며 받아들였던 '예배 모범'과 반대되는 예배 형식을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는가?
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엄숙하고 질서 있게 행해지고 예배 음악들이 아름답고 안정되게 연주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성경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라고 말했다(시 96:9). 또 바울 사도는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했고(고전 14:33), 또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빌 1:9, 10). 우리는 질서 있고 가장 아름답고 선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예배 순서가 찬송과 기도와 설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을 보이고 있다. 고린도전서 14:26,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사도행전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이런 말씀은 전통적 예배가 성경적임을 보인다.
또한, 교회의 문화적 행사들은 성경의 교훈들에도, 초대 교회의 모범에도 맞지 않는다.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본연의 임무와 사명이 있다. 그것은 예배와 영적 성장과 전도의 일이다. 특히, 전도는 예수님 자신의 사명이었고, 그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일이었다. 초대 교회는 이 임무들과 사명에 충실하였다. 어느 시대이든지, 교회는 오직 이 임무들과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성경은 개인의 신앙과 생활에 있어서만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이 아니고, 또한 교회 생활이나 목회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인간적 생각과 지혜로 예배하거나 교회를 운영하지 말고 오직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예배하고 목회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심히 혼란스런 오늘날 교회들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지시하는 정확무오한 유일한 규범이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교회를 운영하고 목회해야 한다.
열린 교회가 참 교회의 모습인가?
한 기독교 신문은 열린 교회를 지향하는 한 교회로서 서울의 목동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한 교회를 소개하였다. 그 교회는 예배당 경내에 예식장, 커피숍, 알뜰 매장, 문구점 등이 있다. 이웃 주민들은 교회의 모든 시설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고 생활필수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예식장은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예비부부 모임 등 가족 콘서트가 있고, 일일 찻집을 통해 구제 기금도 마련하고, 바이올린반, 꽃꽂이반, 영어회화반 등 문화학교가 개설되어 있다. 교회 본당도 음악발표회나 음악사랑동호회, 세미나 등에 개방되어 있다. 그 교회 담임목사는 '교회가 교인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새들백 커뮤니티 교회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고 그러기 위해 교회는 외딴섬이 되지 않도록 다양하게 다리를 많이 놓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역사회가 교회를 생각할 때 나와 관계가 없다는 벽을 허물고 나를 위해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된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목회 비전으로 교회의 본질과 기능을 회복하여 초대교회처럼 성경적 교회상을 체험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 신문은 그 목사를 '젊은 목회자 중 가장 깨어있는 지도자'라고 묘사하였다.
그러나 소위 이러한 '열린 교회'가 오늘날의 참 교회의 모습인가? 그것이 과연 교회의 본질과 기능을 회복하여 초대 교회와 같은 성경적 교회상을 이루어 가는 일인가? 우선, 분명한 것은 그런 교회가 전통적 교회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통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며 말씀 배우고 기도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곳으로서 세상과 구별된 조용하고 경건한 곳이었다. 그러나 '열린 교회'는 그런 모습과 전혀 대조된다. 신앙의 선조들은 참 교회를 이루려고 애썼는데, 참 교회란 성경이 계시하는 모습의 교회이다. 성경은 교회를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분명히 계시한다. 교회가 믿지 않는 세상을 위해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만, 그렇다고 교회와 세상이 뒤섞여도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와 세상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신앙의 선진들은 참 교회란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전파되고 성례가 바르게 시행되고 훈련과 권징이 성실히 시행되는 교회라고 보았다. 이 특징들은 불신자들이 받기 어려운 것들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백성에게 가서 전도하여 제자를 삼고 그가 명하신 모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마 28:19, 20). 주의 '모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중생치 못한 자들에게는 좀이 쑤시고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일이며 그런 신앙 훈련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는 설교 내용을 축소해서는 안되며 성경의 모든 말씀을 성실히 강론하고 그대로 믿고 살도록 훈련시키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되며, 또 필요할 때는 권징도 시행해야 한다.
신앙의 선진들은 교회의 임무가 세 가지라고 보았다. 첫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며, 둘째는 교인들을 신앙적으로 건립하는 일이며, 셋째는 세상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일이다. 이것은 성경적 확신이었다. 교회는 이 세 가지의 임무를 다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교회의 예배는 우리의 신앙의 선진들이 가르쳐 준 대로 경건하고 엄숙하게 드려져야 한다. 또 성경 말씀을 배우는 것, 기도회로 모이는 것, 각 구역이나 부서의 모임 등 교회의 공적 집회들이나 활동들도 다 성도들 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특히 전도를 빙자하여 교회 자체를 세속화시키거나 예배나 영적 건립의 기능과 임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또 전도는 성경에 계시된 방식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주관적 생각이나 시대의 풍조를 따라 교회의 모습을 제멋대로 그리거나 교회의 사명을 제멋대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에 밝히 계시되어 있고 신앙의 선조들이 바르게 이해하고 힘써 왔던 '옛길'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예배와 영적 건립과 전도의 일에 조용히 충실해야 한다.
축제가 대중에게 접근하는 모델인가?
2001년 8월 10-11일, 미국 아이다호주 보이스에서의 루이스 팔라우의 축제는 10만명이 모였다. 이것은 많은 교단들에 속한 375개 교회들의 목사들과 교인들이 1년 동안 기도하고 협력한 결과이었다. 천주교회도 포함되었다. 게임과 음악과 오락이 그 기간을 가득채웠고 팔라우는 매일 밤 말했다. 그는, "축제는 [젊은이의] 마음에 접근하는 첩경인 것 같다. 그것은 대중에게 접근하는 이 세대의 모델이다"라고 말했다.
현대적 춤으로 찬양과 경배?
오늘날 교회들 속에는 찬양집회나 교회행사에 빠른 비트의 음악에 따라 현란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아이들이 등장하였다. 10여년 전부터 등장한 전통적 발레와 한국 무용 등을 사용한 워십댄스와 달리, 힙합, 디스코, 째즈, 하우스, 탭댄스 등의 현대적 춤을 예배와 찬양에 도입하는 이런 흐름은 현대기독교댄스(Contemporary Christian Dance)라고 불리운다. 이런 젊은이들의 요구를 수용해 낮은 울타리 아카데미, 온누리교회 등에서 발 빠르게 교육과정을 개설했다고 한다.
현대기독교음악이라는 것이 교회음악을 속화시키더니 이제는 그보다 한 걸음 더 진보한 현대기독교댄스라는 것이 교회를 혼란시키고 속화시키려 한다. 하나님을 사람 기분에 좋은 방식으로 섬겨서는 안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성경 교훈대로 경건함과 단정함으로 섬겨야 한다.
참된 예배
아서 핑크(Arthur W. Pink)는 요한복음 강해 중 요한복음 4:23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오늘날 '예배'라는 용어가 담고 있는 뜻들이 영적이기보다 육신적이고, 내면적이고 경건하기보다 외형적이고 구경거리적이다. 예배는 우리가 아는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드리는 것이며, 육신과 그것의 감각을 끄는 모든 것은 참된 예배를 손상시킨다. 예배는 눈이나 귀로 드리는 것이 아니고, '영으로' 즉 새 본성으로 드리는 것이다. 오 우리가 얼마나 멀리 정로에서 떠났는지! 현대적 '예배'는 주로 육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고안된다. 즉 그것은 아름다운 주위 환경과 감각적인 음악과 흥미 있는 이야기들을 가진 '밝고 매력적인 예배'이다. 이것은 얼마나 하나님을 조롱하며 모독하는 것인가! 찬양대는 누구에게 노래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인가 아니면 사람들에게인가? . . . 노래의 매력이 '설교의 어리석음'을 대치하였다. 그러나 음악이 잘못인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재능을 주지 않으셨는가? 물론 그러나, 우리가 지금 비평하는 것은, 육신적이고 사람의 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전문적이며 구경거리적인 교회 합창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영으로' 예배해야 하고 단지 육체적 감각으로 해서는 안된다.
하이벨즈의 윌로우크릭 지도자 정상회의
북미에서 3만명 이상의 지도자들과 장래 지도자들은 2003년 8월 7-9일까지 전세계의 교회 및 사업 지도자들의 모임인 연례적인 지도자 정상회의에 참여할 것이다. 그 모임은 미국 시카고 부근에 있는 빌 하이벨즈의 윌로우크릭 공동체 교회로부터 시작되었고 미국과 캐나다의 60개 곳에 인공위성으로 방송된다. 연사들은 하이벨즈, 캐렌 휴즈(죠지 부쉬의 전 대통령 자문관), 앤디 스탠리(애틀란타 부근의 노스포인트 공동체 교회의 목사), 짐 콜린스, A. R. 버나드 등을 포함한다. 윌로우크릭 협회는 2003년 지도자 정상회의를 조직하고 있다. 그것은 9,500개 이상의 교회들(이단들을 포함하는)의 초교파적 세계적 조직이며 현재 매년 1000교회씩의 비율로 성장하고 있다. 하이벨즈는 매년 계속해서 자유주의적 로버트 슐러를 위한 연사이다.
'워십 댄스'에 대해
기독신학의 김석한 부학장은 "워십 댄스(worship dance)가 예배 구성요소인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최근에 한국교회는 전대(前代)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교회문화 행사종목인 예배춤(워십 댄스)이 예배에 도입되어 만연(蔓延)되는 추세에 있다. 아마도 종교적 여흥(餘興)(religious entertainment)을 즐기려는 회중들의 유희적 성향과 젊은이들의 오락적 취향에 맞추려는 열린 예배에 기생(寄生)하여 유입된 프로그램으로 보여진다. . . . 춤은 어떤 경축행사나 절기에서 신의 은총에 대한 환희의 극치를 표현하는 것인데 예배의 한 구성요소로 도입하는 것은 예배를 유희화(遊戱化)하여 사람의 관심과 만족을 주려는 인본주의가 된다. 예배의 본질은 경건에 있고 경건은 영적인 내재성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어떤 몸짓이나 신체적 작용을 통해 시각화(視覺化)하는 것은 아니다. . . . 성경에도 구약의 제의(祭儀)적 성전예배 때에나 신약예배에 춤의 순서가 구성된 근거는 없다. 춤은 구원받은 신자들의 감격을 종교행사적인 순서로 도입하여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워십 댄스(예배춤)란 말 자체가 부적절하다. 강단이 예술무대가 되고 예배순서가 오락화하는 것은 예배의 타락이며 예배타락은 기독교를 무너지게 함을 교회들은 유념해야 한다."
출처:옛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