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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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운동 비판

에큐메니칼 운동 비판

첫째로 W.C.C. 운동의 가장 치명적 약점은 신학적 자유주의 및 혼합주의이다.
뉴우델리에서 채택된 교리적 입장은 그전보다는 기독교적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역시 혼합주의적 경향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가 이제까지 알려진 큰 진리‚중 최고의 더 큰 진리‚이므로 다른 종교에도 한 자리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1955년 5월 1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신앙의 축제‚(The Festival of Faith)에서 잘 나타났으니 이 모임에는 불교, 힌두교, 유대교, 모스렘교 및 기독교 대표들이 다 함께 참석하였다. 이 모임은 당시 W.C.C.의 국제 문제 분과위원장이었던 놀드 박사에 의해 사회되었다.
종교의 다원적인 존재성에 직면하여 세속적 에큐메니즘은 복음의 유일성을 포기하고 세속주의에 빠져들므로써 복음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의 참 진리는 에큐메니즘의 부분적 진리‚혹은 반진리에 큰 위협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 에큐메니칼 신학의 큰 약점은 발표되고 축소된 교리에서 보다 오히려 침묵된 그 면에서 온갖 이단이 들어 올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고 있고 또 이단적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급진주의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용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의 좋은 예로 1966년 12월 미국 마이아미에 모였던 N.C.C. 총회에 참석한 대표들의 신앙 고백을 들 수 있다. 그 총회에 참석한 200여 총대 중 33%가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란 고백을 할 수 없다고 했고, 36%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을 부인했고, 31%가 말세의 실재성을 의심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나 W.C.C.에 복음적인 신학을 가진 교파나 교인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 수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소수이며 대다수의 지도자들은 신신학자들이며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다. 이것은 교리적으로 누구나 들어 올수 있는 문을 넓게 열어 놓았을 뿐 아니라 불신앙의 인물들이 처음부터 지도권을 잡도록 제도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둘째로 W.C.C. 운동은 교회가 가지는 구령의 영적 사명보다 사회 참여의 면을 고조하고 있다.
교회가 사회적, 국가적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먼 교회의 사명이 있는 것으로 보고 사회 참여의 문제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용어들로 표현되어 다루어지고 있는 데에 문제가 된다.
그들은 경제, 산업, 정치, 국제문제 등 생활상 여러 가지 방면의 문제들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며 간섭하려 든다. 일찍이 미국 N.C.C.의 회장이었던 가드만은 경제, 산업, 사회, 정치, 국제, 생활등 여러 문제가 교회 책임 밖에 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지났다‚ 말하였다.
W.C.C.의 선계선교 및 복음 전도 위원회‚는 각국의 약 500여개의 도시 산업 선교회‚와 접촉하면서 관장한다. 그래서 이 단체는 각국의 정부와 심한 마찰을 빚고 있다.
W.C.C.는 신앙, 교리, 진리에 대해서는 한가지도 명백한 답을 주지 않았으나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현제적이며 세속적인 문제에 대하여는 확신을 가지고 교회나 국가를 향하여 지도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또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교회는 구령의 영적문제에 최고 최대의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사회 참여의 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라고 한다. 또 국가는 교회와 구분된 영역의 기관이므로 교회가 가지는 관심은 간섭하거나 압력을 가하는 데까지 이를 수 없다.
셋째로 W.C.C.는 구원을 여러 가지 현세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으로 보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맑스주의를 따른다.
그들은 오늘의 구원은 바로 현제적인 모든 억압,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 한다. 정치적으로 억압당하는 대중,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대중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에큐메니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맑스주의를 따른다. 맑스주의는 W.C.C.의 이데오로기와 조화를 이룬다. 그들은 해방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공산주의의 분배원리와 폭력을 사용한다.
W.C.C.는 런더너에서 활동하는 호전적인 블랙파워‚집단을 지원하고 아프리카의 무장폭력단들에게 특별 지원금을 보낸다. 그들은 이런 원리에서 해방신학을 만들었다. 이 해바아신학은 한국에서 민중신학이 되었다. 민중신학은 계급의식‚, 계급투쟁‚, 의식화교육‚을 통해서 민중조직을 가진 뒤에 저항, 도전, 투쟁의 힘을 양성하여 그 민중의 힘과 역량으로 파업, 폭력, 그리고 사회혁명이나 체제혁명을 노리는 용공주의적 혁명전략으로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다.
넷째로 W.C.C.는 용공적인 집단이다.
공산주의는 기독교와 공존할 수 있는가? 그와 같은 사실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 공산주의는 기독교의 적이요 박해자이며, 인류의 적이다. 그 근본 이유는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살아 있는 조물주 하나님을 믿는데 공산주의는 근본적으로 변증법적인 유뮬론을 믿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 칼 막스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W.C.C.적 에큐메니칼 운동은 공산주의를 용납하고 있으니 이는 비진리 운동이며 용공적인 운동이다. 그 예로서 W.C.C.가 공산주의 국가에서 온 대표들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대표들 중에는 강력한 공산주의자들이 있어 W.C.C.에서 공산주의를 공공연히 선전한 사실이다. 제2회 에반스톤 대회에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50여명의 대표가 참석하였는데 그 중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온 로맏카(Hromadeka), 항가리에서 온 피터(Peter)등의 강력한 공산주의자들이 적지 않게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은 직접 공산주의를 공공연히 선전하면서 중앙위원으로 크게 활약했다. 제2회 대회에서는 중공에서 대표가 오지 않았다고 하여 매우 상심한 나머지 전회원 중에 광고하여 유감의 뜻을 표하였다.
제3회 대회에서는 직접 소련에서 16명의 대표가 와서 일층 더 본격적인 공산주의 선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N.C.C.는 중공의 승인을 정부에 강요하였다. 이런 단체를 용공적이 아니라고 한다면 억지 밖에 아무것도 아니라.
W.C.C.의 신학에서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는 자유세계에 대해 더 이상의 군사적 이데오로기적 위협이 아니고 오히려 억압받고 박탈된 제3세계인들을 위한 자유의 신자이며 물질적 축복자로 나타난다. 미국은 자유가 없는 곳이며 세계 정치의 골칫거리이며 무자비한 경제적 제국주의의 세계적 체계로 해석된다. 이렇게 그들은 공산주의를 찬양한다.
다섯째로 W.C.C.는 교회의 통일만을 고조한 나머지 복음적인 면보다 성례적인 면에 더 치중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 신교의 제 W.C.C. 교파는 점차 이 성례전적인 면을 강조하여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의식적 통일을 통하여 세계 교회 형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 성만찬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두드러진 비중을 차지하여 가고 있으며 교파 통합의 한 방편이 되어가고 있다. 교파간의 상호 교제만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는 때에 성례전에 대한 어떠한 해석이 문제시 되지 않는다. 고로 하나님의 말씀에의 순종보다 성찬에의 참여 자체에 더 치중하고 있다. 이것은 말씀과 성례는 불가분리라고 가르친 개혁주의를 떠남이 되는 것이다. 성례에 말씀의 기본진리의 확증이 따르지 않는 한 그것만으로는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이 성례전 강조로 인하여 W.C.C.의 신교 지도자들이 로마 교회의 교리를 수납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결국 이 로마 교회의 성례교리 수납은 우상숭배에 이르고 만다.
교회적 희생에서 의식적 통일을 기도하는 W.C.C.는 아무래도 ƒ하나의 세계 교회„를 지향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론 대주교(M.L. Loane)나 W.C.C.의 전 총무였던 비셀„트 후프트 박사, 그리고 W.C.C. 운동의 주도적인 신학자 매카이 박사(John A. Mackay)도 이 사실을 시인하는 발언을 했다.
사실상 1948년 W.C.C.가 처음 암스텔담에서 모일 때 내세운 모토가 ƒ한 세계에 하나의 교회„였음을 상기할 때 W.C.C.적 에큐메니칼 운동이 하나의 제도적인 세계 교회를 지향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극한 대립으로 인한 분열>
먼저 1957년 9월 19일부터 부산 중앙교회에서 모인 제 42회 총회에서 에큐메니칼에 대한 태도가 결정됐다.
● 에큐메니칼 위원회의 보고
① 조직
위원장 - 한경직, 서기 - 정규오, 위원 - 한경직, 정규오, 황은균, 박형롱, 박병훈, 유호준, 안광국, 전필순
② 에큐메니칼 운동과의 관계
㉠ 1948년 암스텔담에서 모인 W.C.C. 대회에 김관식 목사가 참석하였다가 귀국하여 보고하므로 정식 가입이 되었다.
㉡ 1954년 미국 에반스톤에서 모인 W.C.C. 대회에 본회에서 김현정, 명신홍 두 목사가 대표로 참석하였다.(유호준 목사는 N.C.C. 총무로 참석했다)
③ 에큐메니칼 운동이란 무엇인가?
에큐메니칼이란 말은 헬라어 오이쿠메네에서 나온 말로서 우주 혹은 한 집이라는 뜻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지도자 중에는 두 가지의 사상적 조류가 있는데 ㉠ 전 교파를 합동하여 단일 교회를 목표로 하는 이와 ㉡ 교회간의 친선과 연합을 목표로 하는 이가 있다.
④ 본 위원회의 태도
친선과 협조를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과거에나 현재에도 참가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참가하기로 하였다.
⑤ 청원
㉠ 관하 각 교회에 본 운동에 대한 사실을 조화시키기 위하여 팜플렛을 내고자 하니 출판비 30만원을 허락하여 주실 것.
㉡ 본 위원회를 계속 허락하여 주시고 위원으로 인톤, 마삼락, 김형모, 명신홍 4인을 보강하여 주실 것.
이상과 같이 이미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태도는 제42회 총회에서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N.A.E.측에서는 W.C.C.적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하여 용공, 신신학, 사회복음주의, 단일교회를 주장함을 지적하면서 그것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W.C.C.측과 N.A.E.측의 대결은 제44회 총회를 앞두고 서로 자기편의 총대를 많이 뽑을려고 다투게 되었다. 그 예로 경기노회는 정기노회에서 N.A.E.측이 18명, W.C.C.측에서 10명이 당선되었는데 다시 임시노회를 열어 W.C.C.측이 26명 N.A.E. 측이 2명이 되도록 변경하였고 두 개의 총대 명단이 총회에 상정되었다.
제44회 총회는 1959년 9월 24일에 대전중앙교회에서 모이게 되었다. 이 총회는 처음부터, 경기노회 총대권 문제로 중대한 국면에 부딪혔다. 그러나 총대 명단은 W.C.C.측으로 낙착이 되었다. 그리하여 총회의 대세는 150대 121로 에큐메니칼 진영의 승리로 되었다. 그러나 총회는 총대 명단 문제로 다시 소란해졌고 11월까지 정회하자는 안이 가결되었다.
이렇게 되자 W.C.C.측 총대 148명이 대전 미락 식당에서 회의를 열고 그 결의에 의하여 차를 대절하여 그날 밤으로 서울로 올라와 연동교회에서 통합총회를 조직했으며 N.A.E.측은 11월 24일에 승동교회에서 속개 총회를 열었다. 전자를 통합측이라 하며 후자를 합동측이라 한다. 이리하여 한국 장로교회는 또 한 번의 쓰라린 분열의 잔을 마셨다.
출처 : 전용복 한국장로교회사 성광문화사 1980
http://blog.daum.net/kkho1105/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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