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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의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3317
 
에큐메니칼 운동이란 무엇인가? 마틴 마티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세계의 분열된 기독교회들이 자기들의 본질적 일체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일치와 재(再)연합을 향해 움직이는 시도”라고 정의했다(The Encyclopedia America, IX, 623). 로버트 브라운은 에큐메니칼 운동을 “분열된 기독교 가족을 재연합시키려는 관심”이라고 표현했다(The Encyclopedia of Religion, V, 20).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요 결실이요 주요 수단인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진술하기를,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표는 “한 거룩한, 공동적, 사도적 교회의 유형적(有形的) 일체성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Gathered for Life: The Official Report of the Sixth As- sembly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p. 51). 이상의 설명들에서 볼 수 있듯이, 에큐메니칼 운동은 세계의 모든 기독교회들을 재(再)연합시키려는 운동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역사적 고찰
19세기 말의 특기할 사건들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고찰해 본다면, 우선 19세기 말 특기할 만한 몇 가지 사실들이 있었다.
첫째는 선교의 부흥이었다. 이로 인하여,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선교회들이 조직되고, 곳곳에서 선교 대회들이 열렸다.
둘째로, 1846년 복음주의자 연맹(Evangelical Alliance)이 영국에서 조직되었다. 이 단체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으나 교회 연합체로서의 의의를 가진다.
셋째로, 기독학생운동이 일어났다. 이 때 기독 청년 단체들(YMCA, YWCA)이 설립되었고 학생자원 해외선교운동이 일어났다. 1895년에는 세계 기독 학생 연맹(WSCF)이 조직되었다(David P. Gaines,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pp. 5-17).
 
1910년의 세계 선교 대회
1910년 영국 에딘버러에서 세계 선교 대회가 열렸다. 연구자들은 보통 이 선교 대회를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미국 감리교 평신도이었던 죤 모트의 활약으로 159개의 선교회들로부터 1196명의 총대들이 모였던 이 대회는 이름 그대로 세계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모였던 세계 대회이었다(William H. T. Gairdner, Echoes from E- dinburgh 1910, p. 50). 이 대회의 한 결과로, 1921년에 국제 선교 협의회(IMC)가 조직되었는데, 이것은 최초의 세계적 에큐메니칼 기구이었으며, 1961년 세계교회협의회에 병합되었다.

생활과 봉사 운동
1925년, 스웨덴 웁살라의 대주교 나단 죄더블롬의 주도 아래,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생활과 봉사의 세계 기독교 대회’가 모였는데, 이 대회의 관심은 사회 정치 문제들에 대한 기독교적 원리들의 적용이었다. 이 대회로부터 시작하여 생활과 봉사(Life and Work) 운동이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모임들이 있었다(The Stockholm Conference 1925, ed. G. K. A. Bell, pp. 1-37).

신앙과 직제 운동
1927년, 미국 감독교회의 감독 촬스 브렌트를 중심으로, 스위스 로잔에서 ‘신앙과 직제의 세계 대회’라는 또 하나의 세계적 회의가 열렸는데, 이 대회의 관심은 교회의 일체성(一體性, unity)의 회복 문제이었다. 이 대회로부터 시작하여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운동이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모임들이 있었다(Faith and Order, ed., N. H. Bate, pp. 508-26).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생활과 봉사 운동과, 신앙과 직제 운동이 서로 연합하는 움직임이 있게 되었고, 그 결과 1948년 네델란드의 암스텔담에서 마침내 세계교회협의회가 조직되었다(The First Assembly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ed. Willem A. Visser 't Hooft, p. 14). 이와 같이, 세계교회협의회 조직의 배경이 되는 3대 관심은 선교, 사회 문제, 교회의 일체성이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요 결실이요 주요 수단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1948년 창립 총회 이후, 1954년 미국 에반스톤에서 제2차 총회, 1961년 인도 뉴델리에서 제3차 총회, 196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제4차 총회, 1975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제5차 총회를 열었고, 1983년 캐나다 뱅쿠버에서 제6차 총회,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제7차 총회, 1998년 아프리카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제8차 총회를 열었다.

비평적 연구의 필요성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비평적 연구는 다음 몇 가지 점에서 필요하다.
첫째로, 우리는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세력과 영향력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91년에 117개국의 311 회원 교단들에 소속된 4억 이상의 기독교인들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였다(Christian News, 1991년 4월 8일, 1쪽).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 대한기독교감리회(기감측), 구세군 등이 세계교회협의회의 회원이다. 그러므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문제점들을 성실히 폭로하고 비평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모든 교회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가담하고 있든지 있지 않든지 간에,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성경적 근거와 신적 승인을 주장하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제1차 총회는 선언하기를,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땅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한다. 그가 우리를 이 곳 암스텔담에 모으셨다”고 했다.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21),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등의 성경 구절들을 즐겨 인용함으로써 에큐메니칼 운동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과 직제 사무국 행정 사무관인 한스-게오르그 링크는 말하기를, “(에베소서 4:3을 언급하면서) 일체성에 대한 사도의 권면과 일체성을 위한 우리의 현재의 추구는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고 이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한 주님께 대한 불순종이 된다”고 하였다(Apostolic Faith Today, p. 1). 이러한 주장들은 에큐메니칼 진영 안팎의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들에게 혼란의 목소리로 남아 있다.
셋째로, 더욱이 최근에 복음주의자들이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이전보다 더 우호적 태도를 보인다.
이전에는 보수적 교회들이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과 세계교회협의회를 비성경적이라고 간주해 왔었다. 사실상, 세계교회협의회는 창립 당시부터 그 지도층에 죤 베네트, 브롬리 옥스남, 헨리 반 듀젠, 추첸 차오, 대주교 죄더불롬, 윌리엄 템플 등 신학적 자유주의자들을 포함하고 있었다(Carl McIntire, Modern Tower of Babel, pp. 139-206; David Hede- gard, Ecumenism and the Bible, pp. 171-214).
그러나 1983년 세계교회협의회 제6차 총회시 “뱅쿠버의 복음주의자들: 공개 편지”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복음주의자들 다수의 선언문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도자들이 복음의 핵심을 신봉하는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명백히 받으신’자들이므로, 복음주의자들이 에큐메니칼 지도자들로부터 물러나지 말고 기쁘게 그들을 영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일치와 갱신을 추구하는 모든 노력들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우리의 결심을 공적으로 선언할 압박을 느꼈다”(M. H. Reynolds, The World Council of Chruches: The Cup of the Lord or the Cup of Devils?, pp. 16-20).
이 공개 편지의 서명자들은 미국 풀러 신학교의 선교학 교수이며 미국장로교회(PCA) 목사인 아더 글라서,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WEF)의 전총무이었던 월드론 스카트,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 간사인 로버트 영블러드, 고든-콘웰 신학교 교수인 리차드 러블레스, 개혁주의 에큐메니칼 협의회(REC)의 총무인 폴 슈로텐보어 등 200여명이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할 때,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비평적 연구가 필요하고, 만일 에큐메니칼 운동이 비성경적인 운동으로 판명된다면, 우리는 이 운동의 잘못을 널리 알리고 진실한 교회들에게 인식시켜 그들로 하여금 이 운동에 참여치 않게 하고 또 이 운동으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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