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신학적 포용주의--전체적 고찰
2. 신학적 포용주의--전체적 고찰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3319
앞에서 살펴본 세계교회협의회의 공식적 진술들과 제안들은 겉으로 보기에 매우 그럴 듯하다.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와 에큐메니칼 운동의 자료들을 조금만 더 자세히 읽어 본다면, 심지어 위의 네 가지 내용들도 단지 형식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그것들은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이 교회 일체성을 위해 주장하는 형식적(形式的) 기초에 불과하다. 에큐메니칼 운동에서의 교회 일체성의 실제적(實際的) 기초는 신학적 포용주의(神學的 包容主義, theological inclusivism)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기독교회들 안에 있는 다양한 신학들을 비평 없이 포용하면서 교회의 일체성을 강조하며 추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분석
1. 다양한 신학들을 용납함
첫째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적 포용주의는 세계교회협의회와 그 지도자들이 다양한 신학들을 용납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전총무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말하기를, “세계교회협의회의 공식적 신학이란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이 결코 있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 교회가 아닙니다. 심지어 교회들 안에서도 신학의 다양성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One World, January-February 1986, p. 5). 세계교회협의회의 전총무 유진 카슨 블레이크도 교회 연합을 위해 제안하기를, “연합된 교회는 그 공동성 안에서 (그리고 그 공동성 때문에) 신앙의 신학적 작성 형식들의 광범위한 다양성을 포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The Ecumenical Review, 38 <1986>, 146). 세계교회협의회는 선교에 대한 한 선언문에서 진술하기를 자신이 “공통적 신앙의 다양한 표현”을 추구한다고 했다(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 search, 7 <1983>, 68).
2000년 2월, ‘교회일치운동의 역사와 현황’이라는 제목의 제1회 에큐메니칼 포럼의 기조 발제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인 박종화 목사는 교회의 영적 측면을 강조하는 부류[보수적 교회]와 교회의 사회참여적 역할을 강조하는 부류[진보적 교회]는 한 동전의 양면과 같고, 이 둘을 포함하는 통합적 에큐메니즘이 크게 강조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한국 상황의 경우, 지금에 와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새롭게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 동안 에큐메니칼 운동은 에반젤리칼[복음주의] 운동과의 대립 구도로 자리 매김되는 축소된 위상을 지녀왔으며, 이런 이분법적 구도는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심화된 상태의 ‘적대적 냉전 구조’에서 파생되고 강화된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교회연합신문, 2000년 2월 13일, 8쪽).
2. 신학적 다양성을 정당화함
둘째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적 포용주의는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이 그 운동 안에 있는 신학적 다양성을 비평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당화한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신학적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정당화는 두 방면에서 관찰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 신학적 다양성을 역사적 관점에서 정당화한다. 임마누엘 설리반, “1963년 몬트리얼에서의 신앙 직제 대회는 신학적 대화가 11, 16세기의 대분열 이전 시대들 즉 교회 안에 어느 정도의 건전한 다양성과 다원주의 뿐만 아니라 신앙의 기본적 일치가 있었던 시대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하였다(Ecumenical Trends, 15 <1986>, 4). 진 마리 틸라드(Jean-Marie Tillard)도 말하기를, “하나님의 교회는 심지어 가장 놀라운 일치의 시대들 동안에도 항상 다원적 형태이었다. 이것은 실천의 차원에서도 교훈의 차원에서도 그러했다”고 하였다(Different Theologies, Common Responsibility: Babel or Pentecost?, p. 63).
한편, 어떤 이들은 그 신학적 다양성을 신학적 관점에서 정당화한다. 콘스탄티노플 에큐메니칼 교구의 대표자인 메트로폴리탄 다마스키노스 파판드루는 이렇게 말한다: “성육신 진리가 각 시대에 취한 역사적 복장은 진리의 본질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교회의 문제점은 그 회원들 중의 어떤 이들이 본질과 형식을 더 이상 구별할 줄 몰라서 형식적인 점들을 본질적인 것으로 취급하거나(전통주의의 오류) 혹은 중심적인 본질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잘못된 개혁론의 오류)”(Towards Visible Unity, p. 87). 하딩 마이어도 반문하여 말하기를, “우리 교회들의 분리의 역사 전체에 걸쳐서 교리적 정죄는 결코 근본적 차이점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단지 개인적 차이점에 근거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라고 한다(Ecumenical Trends, 15 <1986>, 40).
3. 에큐메니칼 행위들
셋째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적 포용주의는 그 지도자들의 다음과 같은 에큐메니칼 행위들에서도 드러난다.
(1) 포용주의적 교리 진술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교회의 일체성을 위해 기독교 교리를 포용주의적으로 표현하기를 제안하고 강조한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 직제 위원회 이전 의장인 니코스 니씨오릴스는 말하기를, “우리는 일체성을 위하여 진리를 정의하여야 한다. . . . 교회가 발언하는 모든 교리들은 교회의 교제를 회복하는데 의무적이라는 불가피한 명제는 절대적으로 참되고 필요하다”고 한다(Ecumenical Trends, 15 <1986>, 181). 라이문도 파니카도 말하기를, 에큐메니칼 토론의 목표는 “다양한 기독교 신앙 고백들을 초월하며 또한 내재하는 원리에 보다 더 깊이 충실하는 항상 어떤 새로운 일치점이다”라고 한다(Journal of Ecumenical Studies, 19 <1982>, 781).
(2) 상호 인정과 성찬 교제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또한 교회의 일체성을 위해 서로를 인정하고 성찬의 교제를 나누기를 제안하고 강조한다. 교회연합협의회(COCU; 이 단체는 1999년 1월 명칭을 CUC로 바꿈)의 소위 ‘언약’(Covenant- ing)은 한 세례 안에서 회원들을 서로 인정할 것, 서로를 교회들로 인정할 것, 안수 받은 목사들을 서로 인정하고 화해할 것, 정규적인 성찬 교제를 나눌 것 등을 포함하였다(Covenanting toward Unity: From Consensus to Communion, pp. 9-20). 르로이 개릿도, 일체성의 실제적 적용으로 제안하기를, 모든 기독교인들은 서로의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동등한 자로 영접할 수 있으며, 기독교인들은 교리적 심사 없이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또한 함께 일하는 목회 사역이 가능하다고 했다(Theology Today, 40 <1984>, 446).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미 합중국 장로교회(PCUSA),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및 미국 개혁교회(RCA)는 국내외 선교 협력과 목회자 상호 인정 등을 포함한 ‘전면적’ 교단 교류를 선언한 합의서를 수용하였다. 미 합중국 장로교회 외의 다른 세 교단들은 1997년 총회에서 이미 그것을 수용했고, 미 합중국 장로교회는 1998년 3월 19일 현재 172개 노회 중 표결을 끝낸 111개 노회 중 109개 노회가 그것을 찬성함으로써 확정된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기독신문, 1998년 3월 25일, 16쪽.)
1993년 12월 한국 장로교 협의회 운영위원회는 1994년 사업 계획으로 각종 강단 교류, 신학생 예배 강단 교류, 연합 예배 등을 결의했다(“장로교 연합활동 활성화,” 기독교보, 1993년 12월 11일, 7쪽).
2000년 2월 한국 장로교 총연합회(대표 회장: 김도빈 목사)는 내장산 관광호텔에서 한국 장로교 연합과 일치 간담회를 열었다. 그 모임에서 ‘한국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 모색’이라는 제목의 주제 강연에서 전병금 목사는 “처음부터 기구적인 통합을 모색하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연합교회의 형태를 갖춰가면서 점진적인 통합을 이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과제들로서 교단간의 강단교류 활성화, 총회에 상호 사절단 파견, 2000년 장로교 총회 개회예배 함께 드리기, 같은 지역 안에서의 연합예배와 성찬식, 세계 개혁교회 연맹 참여로 국제 교회와의 연합 강화 등을 제안하였다. 논찬에서 김재규 목사(예장 대신측 총회장)는 “한국교회에서 사상 논쟁이 사라졌다는 발제에 동감을 표하고,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가 대화하면 사상 논쟁은 무너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일치를 위해 “우선 실현 가능한 선교, 예배에 대한 것만이라도 구체적으로 실천해가자”고 주장하였다. (기독교보, 2000년 2월 12일, 10쪽.)
(3) 선교 활동에서의 협력
또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교회의 일체성을 위해 선교 활동에서 서로 협력할 것을 제안하고 강조한다. 앞에서 언급한 교회연합협의회(COCU)의 언약은 선교와 전도에 함께 참여할 것을 포함하였다(Covenanting toward Unity, pp. 14-16). 콘스탄티노플 에큐메니칼 교구의 세계교회협의회 파송 상임대표인 메트로폴리탄 에밀리아노스는 말하기를, “인간적인 혹은 신적인 어떤 법도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교리적 혹은 예배 의식적 차이점들 때문에 다른 자녀들을 돕는 것을 중지시킬 수는 없다. . . . 교회 역사는 요컨대 교리적 차이점들이 선교 활동에 협력치 못할 이유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인다”라고 하였다(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s, 72 <1983>, 258).
(4) 협의체들의 구성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미 1948년에 세계교회협의회라는 세계적인 협의체를 구성하였다. 또 각 나라에서는 교회협의회(NCC)들이 구성되어 있고 지역적으로도 협의체들이 있다. 또한 미국 안에서는 9개 교단들로 시작된 교회연합협의회(COCU; 이 단체는 1999년 1월 명칭을 Churches Uniting in Christ=CUC로 바꿈)가 있다.
한국의 개신교 17개 교단의 총회장 및 총무 23명은 2000년 7월 6일 연세대에서 간담회를 갖고 한국 개신교 전체를 대표하는 연합기구를 만드는 역할을 담당할 ‘한국교회연합준비위(가칭)’를 구성하였다. 참여한 교단들은 예장 통합, 예장 대신, 감리교, 기장, 기하성, 기성, 기침, 구세군, 정교회 등이다.
교단 대표들은 90년대 이후 침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 한국 개신교가 사는 길은 연합과 일치밖에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최성규 기하성 총회장은 “지금의 위기감을 넘어서는 길은 진보와 보수, 개혁과 복음 등 이분법을 넘어서 형제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의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주요 교단들이 주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예장 합동, 예장 고신, 예장 개혁 등 보수교단들의 참여, 그리고 현존하는 양대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의 해체 등의 큰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이번 모임의 초청자였던 기장측의 전병금 목사는 “한국 교회가 이번에 하나되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흔들리며 앞으로 상당 기간 연합하기 어렵다는 각오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 2000년 7월 10일, 21쪽.)
4.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세계교회협의회의 손짓
수십년 동안 자유주의적 경향을 보였던 세계교회협의회(WCC)는 근래에 와서 복음주의자들에게 호의적인 손짓을 보이고 있다. 1998년 12월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제8차 총회는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의 지도자인 죠지 반더벨드를 주요 연사로 내세웠다. 또한 세계교회협의회 지도부는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에 파송된 월드 비젼의 공식적 대표인 독일 루터교회의 쿠르트 방게르트 목사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였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10월 15일.)
미국교회협의회는 새 조직체의 시작을 탐구하기 위해 천주교인들과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만날 것이라고 한다. AP통신에 의하면, 이런 제안의 통지문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와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에 보내졌다. 미국교회협의회는 지난해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새 에큐메니칼 모험이 필요하다고 결정했었다. (Calvary Contender, 2000년 6월 15일.)
비평
1. 바른 교리와 바른 신학은 기독교에 본질적임
무엇보다 생각할 점은, 바른 교리와 바른 신학은 기독교에 본질적이라는 사실이다. 교리(敎理, doctrine)는 진리의 언어적 표현 혹은 명제적(命題的, propositional) 진술을 가리키며, 신학(神學, theology)이란 그러한 교리들을 체계적으로 정돈한 것, 즉 하나님의 진리들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가리킨다. 성경은 기독교가 하나님의 확실하고 불변적인 진리들 위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히 계시한다. 이 사실로부터 당연히 내려지는 결론은, 신학의 중심적 내용은, 만일 그 신학이 바른 신학이라면, 변하지 않으며 변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바른 교리와 바른 신학은 기독교에 본질적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신학들을, 그것도 그것들이 서로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비평 없이 받아들이는 신학적 포용주의는 명백히 비성경적인 잘못이며 기독교회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2. 교회의 일체성도 교리적 성격을 가짐
또한, 교회의 일체성도 교리적 성격을 가진다. 교회의 일체성의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요한복음 17장과 에베소서 4장은 교회의 일체성의 대상과 성격을 통해 그 일체성의 교리적 성격을 잘 보인다. 그 구절들에 의하면, 교회의 일체성이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사시고 성령께서 인치신 자들의 일체성(엡 1:3-14),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의 일체성이며(요 17:9), 하나님 안에서의, 진리 안에서의 일체성이다(요 17:11, 21). 다시 말해, 교회의 일체성은 바른 진리와 교리 안에서의, 그 위에서의 일체성인 것이다.
워필드는 바르게 말하기를,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인의 일체성은 신자들의 공통적 기독교 신앙 위에 기초하였다. 그리스도 안의 일체성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에 대한 불신실함 위에 세워질 수 없다”라고 하였다(B. B. Warfield, "True Church Unity," Selected Shorter Writ- ings, p. 302). 마틴 로이드-죤스도, “진리와 교리를 떠난 일체성이란 없다”고 바르게 말하였다(Martin Lloyd-Jones, The Basis of Chris- tian Unity, p. 50). 그러므로, 교회의 일체성이라는 이름 아래 신학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은 명백히 비성경적이다.
3. 교회는 바른 교리들을 지킬 의무를 가지고 있음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들을 전달받았고 현재 소유하고 있으며 또 그 진리들을 간직하고 지키라[보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데살로니가후서 2:15,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遺傳, 전통)을 지키라.” 디모데후서 1:13, 14,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바른 말들의 표준을 지키라].” 기독교의 정통 교리들은 근본적 교리들을 내포한다. 개신교회의 주류적 교파들은 공통적으로 믿고 고백하는 교리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공통적 근본 교리들은 교회의 일체성의 기초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이나 죤 오웬도 기독교의 본질적 교리들을 그리스도인의 일체성의 기초로 간주했다(Institutes, IV. i. 12; The Works of John Owen, XV, 106). 그러므로, 바른 교리들을 지킬 교회의 의무를 생각할 때, 바른 교리들을, 적어도 역사적 개신교회들의 공통적 근본 교리들을, 보존함이 없는 신학적 포용주의는 명백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잘못이다.
4. 교회는 이단들을 배격할 의무를 가지고 있음
더욱이, 교회는 이단들을 배격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로마서 16:17, “너희의 교훈을[너희가 배운 교리를]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 유다서 3,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는 기독교의 전통적, 정통적 신앙 사상을 부정하는, 갖가지 형태의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이 유행하고 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그것이 무슨 전문적 명칭으로 분류되든지 간에 일반적으로 기독교의 초자연적 사실들과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형벌적 의의 속성,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 복음의 핵심인 그의 형벌적 대리적 속죄 사역, 그의 육체적 부활, 그의 재림 등을 부정하고 있다. 그것들은 교회 역사상 어느 이단 종파의 사상보다도, 심지어 우상숭배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 천주교회의 신학보다도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로부터 크게 탈선한 이단이다. 메이천의 분석과 평가대로, 자유주의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자연주의적, 비(非)속죄적 종교이며, 단순히 한 이단이 아니라 전혀 기독교가 아니다(J. Gresham Machen, Christianity and Liberalism). 그러므로, 바른 믿음에서 떠난 이단들을 배격해야 할 교회의 의무를 생각할 때, 기독교계 안에 있는 다양한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함이 없는 신학적 포용주의는 명백히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큰 오류이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3319
앞에서 살펴본 세계교회협의회의 공식적 진술들과 제안들은 겉으로 보기에 매우 그럴 듯하다.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와 에큐메니칼 운동의 자료들을 조금만 더 자세히 읽어 본다면, 심지어 위의 네 가지 내용들도 단지 형식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그것들은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이 교회 일체성을 위해 주장하는 형식적(形式的) 기초에 불과하다. 에큐메니칼 운동에서의 교회 일체성의 실제적(實際的) 기초는 신학적 포용주의(神學的 包容主義, theological inclusivism)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기독교회들 안에 있는 다양한 신학들을 비평 없이 포용하면서 교회의 일체성을 강조하며 추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분석
1. 다양한 신학들을 용납함
첫째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적 포용주의는 세계교회협의회와 그 지도자들이 다양한 신학들을 용납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전총무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말하기를, “세계교회협의회의 공식적 신학이란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이 결코 있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 교회가 아닙니다. 심지어 교회들 안에서도 신학의 다양성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One World, January-February 1986, p. 5). 세계교회협의회의 전총무 유진 카슨 블레이크도 교회 연합을 위해 제안하기를, “연합된 교회는 그 공동성 안에서 (그리고 그 공동성 때문에) 신앙의 신학적 작성 형식들의 광범위한 다양성을 포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The Ecumenical Review, 38 <1986>, 146). 세계교회협의회는 선교에 대한 한 선언문에서 진술하기를 자신이 “공통적 신앙의 다양한 표현”을 추구한다고 했다(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 search, 7 <1983>, 68).
2000년 2월, ‘교회일치운동의 역사와 현황’이라는 제목의 제1회 에큐메니칼 포럼의 기조 발제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인 박종화 목사는 교회의 영적 측면을 강조하는 부류[보수적 교회]와 교회의 사회참여적 역할을 강조하는 부류[진보적 교회]는 한 동전의 양면과 같고, 이 둘을 포함하는 통합적 에큐메니즘이 크게 강조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한국 상황의 경우, 지금에 와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새롭게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 동안 에큐메니칼 운동은 에반젤리칼[복음주의] 운동과의 대립 구도로 자리 매김되는 축소된 위상을 지녀왔으며, 이런 이분법적 구도는 신학적이라기보다는 심화된 상태의 ‘적대적 냉전 구조’에서 파생되고 강화된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교회연합신문, 2000년 2월 13일, 8쪽).
2. 신학적 다양성을 정당화함
둘째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적 포용주의는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이 그 운동 안에 있는 신학적 다양성을 비평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당화한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신학적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정당화는 두 방면에서 관찰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 신학적 다양성을 역사적 관점에서 정당화한다. 임마누엘 설리반, “1963년 몬트리얼에서의 신앙 직제 대회는 신학적 대화가 11, 16세기의 대분열 이전 시대들 즉 교회 안에 어느 정도의 건전한 다양성과 다원주의 뿐만 아니라 신앙의 기본적 일치가 있었던 시대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하였다(Ecumenical Trends, 15 <1986>, 4). 진 마리 틸라드(Jean-Marie Tillard)도 말하기를, “하나님의 교회는 심지어 가장 놀라운 일치의 시대들 동안에도 항상 다원적 형태이었다. 이것은 실천의 차원에서도 교훈의 차원에서도 그러했다”고 하였다(Different Theologies, Common Responsibility: Babel or Pentecost?, p. 63).
한편, 어떤 이들은 그 신학적 다양성을 신학적 관점에서 정당화한다. 콘스탄티노플 에큐메니칼 교구의 대표자인 메트로폴리탄 다마스키노스 파판드루는 이렇게 말한다: “성육신 진리가 각 시대에 취한 역사적 복장은 진리의 본질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교회의 문제점은 그 회원들 중의 어떤 이들이 본질과 형식을 더 이상 구별할 줄 몰라서 형식적인 점들을 본질적인 것으로 취급하거나(전통주의의 오류) 혹은 중심적인 본질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잘못된 개혁론의 오류)”(Towards Visible Unity, p. 87). 하딩 마이어도 반문하여 말하기를, “우리 교회들의 분리의 역사 전체에 걸쳐서 교리적 정죄는 결코 근본적 차이점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단지 개인적 차이점에 근거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라고 한다(Ecumenical Trends, 15 <1986>, 40).
3. 에큐메니칼 행위들
셋째로,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적 포용주의는 그 지도자들의 다음과 같은 에큐메니칼 행위들에서도 드러난다.
(1) 포용주의적 교리 진술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교회의 일체성을 위해 기독교 교리를 포용주의적으로 표현하기를 제안하고 강조한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 직제 위원회 이전 의장인 니코스 니씨오릴스는 말하기를, “우리는 일체성을 위하여 진리를 정의하여야 한다. . . . 교회가 발언하는 모든 교리들은 교회의 교제를 회복하는데 의무적이라는 불가피한 명제는 절대적으로 참되고 필요하다”고 한다(Ecumenical Trends, 15 <1986>, 181). 라이문도 파니카도 말하기를, 에큐메니칼 토론의 목표는 “다양한 기독교 신앙 고백들을 초월하며 또한 내재하는 원리에 보다 더 깊이 충실하는 항상 어떤 새로운 일치점이다”라고 한다(Journal of Ecumenical Studies, 19 <1982>, 781).
(2) 상호 인정과 성찬 교제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또한 교회의 일체성을 위해 서로를 인정하고 성찬의 교제를 나누기를 제안하고 강조한다. 교회연합협의회(COCU; 이 단체는 1999년 1월 명칭을 CUC로 바꿈)의 소위 ‘언약’(Covenant- ing)은 한 세례 안에서 회원들을 서로 인정할 것, 서로를 교회들로 인정할 것, 안수 받은 목사들을 서로 인정하고 화해할 것, 정규적인 성찬 교제를 나눌 것 등을 포함하였다(Covenanting toward Unity: From Consensus to Communion, pp. 9-20). 르로이 개릿도, 일체성의 실제적 적용으로 제안하기를, 모든 기독교인들은 서로의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동등한 자로 영접할 수 있으며, 기독교인들은 교리적 심사 없이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또한 함께 일하는 목회 사역이 가능하다고 했다(Theology Today, 40 <1984>, 446).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미 합중국 장로교회(PCUSA),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및 미국 개혁교회(RCA)는 국내외 선교 협력과 목회자 상호 인정 등을 포함한 ‘전면적’ 교단 교류를 선언한 합의서를 수용하였다. 미 합중국 장로교회 외의 다른 세 교단들은 1997년 총회에서 이미 그것을 수용했고, 미 합중국 장로교회는 1998년 3월 19일 현재 172개 노회 중 표결을 끝낸 111개 노회 중 109개 노회가 그것을 찬성함으로써 확정된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기독신문, 1998년 3월 25일, 16쪽.)
1993년 12월 한국 장로교 협의회 운영위원회는 1994년 사업 계획으로 각종 강단 교류, 신학생 예배 강단 교류, 연합 예배 등을 결의했다(“장로교 연합활동 활성화,” 기독교보, 1993년 12월 11일, 7쪽).
2000년 2월 한국 장로교 총연합회(대표 회장: 김도빈 목사)는 내장산 관광호텔에서 한국 장로교 연합과 일치 간담회를 열었다. 그 모임에서 ‘한국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 모색’이라는 제목의 주제 강연에서 전병금 목사는 “처음부터 기구적인 통합을 모색하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연합교회의 형태를 갖춰가면서 점진적인 통합을 이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과제들로서 교단간의 강단교류 활성화, 총회에 상호 사절단 파견, 2000년 장로교 총회 개회예배 함께 드리기, 같은 지역 안에서의 연합예배와 성찬식, 세계 개혁교회 연맹 참여로 국제 교회와의 연합 강화 등을 제안하였다. 논찬에서 김재규 목사(예장 대신측 총회장)는 “한국교회에서 사상 논쟁이 사라졌다는 발제에 동감을 표하고, 열린 보수와 열린 진보가 대화하면 사상 논쟁은 무너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일치를 위해 “우선 실현 가능한 선교, 예배에 대한 것만이라도 구체적으로 실천해가자”고 주장하였다. (기독교보, 2000년 2월 12일, 10쪽.)
(3) 선교 활동에서의 협력
또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교회의 일체성을 위해 선교 활동에서 서로 협력할 것을 제안하고 강조한다. 앞에서 언급한 교회연합협의회(COCU)의 언약은 선교와 전도에 함께 참여할 것을 포함하였다(Covenanting toward Unity, pp. 14-16). 콘스탄티노플 에큐메니칼 교구의 세계교회협의회 파송 상임대표인 메트로폴리탄 에밀리아노스는 말하기를, “인간적인 혹은 신적인 어떤 법도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교리적 혹은 예배 의식적 차이점들 때문에 다른 자녀들을 돕는 것을 중지시킬 수는 없다. . . . 교회 역사는 요컨대 교리적 차이점들이 선교 활동에 협력치 못할 이유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인다”라고 하였다(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s, 72 <1983>, 258).
(4) 협의체들의 구성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미 1948년에 세계교회협의회라는 세계적인 협의체를 구성하였다. 또 각 나라에서는 교회협의회(NCC)들이 구성되어 있고 지역적으로도 협의체들이 있다. 또한 미국 안에서는 9개 교단들로 시작된 교회연합협의회(COCU; 이 단체는 1999년 1월 명칭을 Churches Uniting in Christ=CUC로 바꿈)가 있다.
한국의 개신교 17개 교단의 총회장 및 총무 23명은 2000년 7월 6일 연세대에서 간담회를 갖고 한국 개신교 전체를 대표하는 연합기구를 만드는 역할을 담당할 ‘한국교회연합준비위(가칭)’를 구성하였다. 참여한 교단들은 예장 통합, 예장 대신, 감리교, 기장, 기하성, 기성, 기침, 구세군, 정교회 등이다.
교단 대표들은 90년대 이후 침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 한국 개신교가 사는 길은 연합과 일치밖에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최성규 기하성 총회장은 “지금의 위기감을 넘어서는 길은 진보와 보수, 개혁과 복음 등 이분법을 넘어서 형제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의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주요 교단들이 주체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예장 합동, 예장 고신, 예장 개혁 등 보수교단들의 참여, 그리고 현존하는 양대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의 해체 등의 큰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이번 모임의 초청자였던 기장측의 전병금 목사는 “한국 교회가 이번에 하나되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흔들리며 앞으로 상당 기간 연합하기 어렵다는 각오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 2000년 7월 10일, 21쪽.)
4.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세계교회협의회의 손짓
수십년 동안 자유주의적 경향을 보였던 세계교회협의회(WCC)는 근래에 와서 복음주의자들에게 호의적인 손짓을 보이고 있다. 1998년 12월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제8차 총회는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의 지도자인 죠지 반더벨드를 주요 연사로 내세웠다. 또한 세계교회협의회 지도부는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에 파송된 월드 비젼의 공식적 대표인 독일 루터교회의 쿠르트 방게르트 목사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였다. (Calvary Contender, 1999년 10월 15일.)
미국교회협의회는 새 조직체의 시작을 탐구하기 위해 천주교인들과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만날 것이라고 한다. AP통신에 의하면, 이런 제안의 통지문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와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에 보내졌다. 미국교회협의회는 지난해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새 에큐메니칼 모험이 필요하다고 결정했었다. (Calvary Contender, 2000년 6월 15일.)
비평
1. 바른 교리와 바른 신학은 기독교에 본질적임
무엇보다 생각할 점은, 바른 교리와 바른 신학은 기독교에 본질적이라는 사실이다. 교리(敎理, doctrine)는 진리의 언어적 표현 혹은 명제적(命題的, propositional) 진술을 가리키며, 신학(神學, theology)이란 그러한 교리들을 체계적으로 정돈한 것, 즉 하나님의 진리들에 대한 체계적 지식을 가리킨다. 성경은 기독교가 하나님의 확실하고 불변적인 진리들 위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히 계시한다. 이 사실로부터 당연히 내려지는 결론은, 신학의 중심적 내용은, 만일 그 신학이 바른 신학이라면, 변하지 않으며 변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바른 교리와 바른 신학은 기독교에 본질적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신학들을, 그것도 그것들이 서로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비평 없이 받아들이는 신학적 포용주의는 명백히 비성경적인 잘못이며 기독교회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2. 교회의 일체성도 교리적 성격을 가짐
또한, 교회의 일체성도 교리적 성격을 가진다. 교회의 일체성의 근거로 자주 인용되는 요한복음 17장과 에베소서 4장은 교회의 일체성의 대상과 성격을 통해 그 일체성의 교리적 성격을 잘 보인다. 그 구절들에 의하면, 교회의 일체성이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사시고 성령께서 인치신 자들의 일체성(엡 1:3-14),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의 일체성이며(요 17:9), 하나님 안에서의, 진리 안에서의 일체성이다(요 17:11, 21). 다시 말해, 교회의 일체성은 바른 진리와 교리 안에서의, 그 위에서의 일체성인 것이다.
워필드는 바르게 말하기를, “신약성경의 그리스도인의 일체성은 신자들의 공통적 기독교 신앙 위에 기초하였다. 그리스도 안의 일체성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에 대한 불신실함 위에 세워질 수 없다”라고 하였다(B. B. Warfield, "True Church Unity," Selected Shorter Writ- ings, p. 302). 마틴 로이드-죤스도, “진리와 교리를 떠난 일체성이란 없다”고 바르게 말하였다(Martin Lloyd-Jones, The Basis of Chris- tian Unity, p. 50). 그러므로, 교회의 일체성이라는 이름 아래 신학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은 명백히 비성경적이다.
3. 교회는 바른 교리들을 지킬 의무를 가지고 있음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들을 전달받았고 현재 소유하고 있으며 또 그 진리들을 간직하고 지키라[보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데살로니가후서 2:15,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遺傳, 전통)을 지키라.” 디모데후서 1:13, 14,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바른 말들의 표준을 지키라].” 기독교의 정통 교리들은 근본적 교리들을 내포한다. 개신교회의 주류적 교파들은 공통적으로 믿고 고백하는 교리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공통적 근본 교리들은 교회의 일체성의 기초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이나 죤 오웬도 기독교의 본질적 교리들을 그리스도인의 일체성의 기초로 간주했다(Institutes, IV. i. 12; The Works of John Owen, XV, 106). 그러므로, 바른 교리들을 지킬 교회의 의무를 생각할 때, 바른 교리들을, 적어도 역사적 개신교회들의 공통적 근본 교리들을, 보존함이 없는 신학적 포용주의는 명백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잘못이다.
4. 교회는 이단들을 배격할 의무를 가지고 있음
더욱이, 교회는 이단들을 배격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로마서 16:17, “너희의 교훈을[너희가 배운 교리를]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 유다서 3,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는 기독교의 전통적, 정통적 신앙 사상을 부정하는, 갖가지 형태의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이 유행하고 있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그것이 무슨 전문적 명칭으로 분류되든지 간에 일반적으로 기독교의 초자연적 사실들과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형벌적 의의 속성,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 복음의 핵심인 그의 형벌적 대리적 속죄 사역, 그의 육체적 부활, 그의 재림 등을 부정하고 있다. 그것들은 교회 역사상 어느 이단 종파의 사상보다도, 심지어 우상숭배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 천주교회의 신학보다도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로부터 크게 탈선한 이단이다. 메이천의 분석과 평가대로, 자유주의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는 자연주의적, 비(非)속죄적 종교이며, 단순히 한 이단이 아니라 전혀 기독교가 아니다(J. Gresham Machen, Christianity and Liberalism). 그러므로, 바른 믿음에서 떠난 이단들을 배격해야 할 교회의 의무를 생각할 때, 기독교계 안에 있는 다양한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함이 없는 신학적 포용주의는 명백히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큰 오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