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주의해야할운동

3. 신학적 포용주의--성경관

3. 신학적 포용주의--성경관
자료출처http://blog.daum.net/kkho1105/3320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적 포용주의는 이상의 전체적 고찰에서 뿐만 아니라, 또한 구체적인 몇 가지 점들에서도 확인된다. 우선 그것은 잘못된 성경관의 포용에서 나타난다.

분석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 직제 위원회의 모임들에서 채택된 다섯 개의 공식적 보고서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① 1949년의 왜담 보고서(“성경 해석을 위한 지침들”), ② 1963년의 몬트리얼 보고서(“성경, 전통 및 전통들”<Bible, Tradtion, and traditions>), ③ 1967년의 브리스톨 보고서(“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한 해석학적 문제의 중요성”), ④ 1971년의 루베인 보고서(“성경의 권위”), ⑤ 1977년의 로컴 보고서(“신약성경과의 관계에서의 구약성경의 중요성”) 등이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이것들을 묶어서 성경: 에큐메니칼 운동에서의 그것의 권위와 해석(The Bible: Its Authority and Interpretation in the Ecumenical Movement, ed., Ellen Flesseman-van Leer)이라는 책을 내었다.
이 책에 담긴 보고서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성경관에 있어서 포용주의 입장을 취한다. 브리스톨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성경관들을 제시한다: ① 성경은 교회가 전적으로 의존하는 유일한 진리의 규범이다, ② 성경은 교회 안에서 계속적 생명을 가졌던 동일한 전통의 산물이다, ③ 성경은, 입구가 여럿인 기독교 진리의 종합관(varigated complex)에서의 한 요소에 불과하다. 그런 다음, 그 보고서는 “우리는 이 입장들 중의 어느 것도 배타적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진술한다(pp. 38, 39).
또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포용적이다. 몬트리얼 보고서는 성경 해석에 관한 다음과 같은 여섯 개의 다른 원리들을 제시한다: ①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② 성경의 중심 주제(center)가 해석의 열쇠이다, ③ 성경은 성령의 인도 아래 개인의 양심에게 말한다, ④ 교회의 생각(mind)이 해석의 열쇠이다, ⑤ 교회의 가르치는 자들(magisterium)이 그 관리인(guardian)인 신앙의 저장물(the deposit of faith)이 해석의 열쇠이다, ⑥ 신조들이 해석의 열쇠이다. 그런 다음, 그 보고서는 말하기를, 우리는 자신의 해석 원리를 “자명하거나 결정적인 것으로 혹은 다른 모든 것들보다 우월한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한다(pp. 22, 38).
그러나 이 책에서 세계교회협의회는 특히 다음과 같은 명백한 잘못들을 포용하고 있다.

1. 성경의 문학적, 역사적 비평을 받아들임
첫째로,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대한 문학적, 역사적 비평을 공인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브리스톨 보고서는 말하기를, “성경은 일군(一群)의 문학적 문서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문학적 문서들의 연구에 사용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 . . [그러므로] 문학적 비평적 방법이 필요하다”(p. 31), “성경은 그 많은 부분에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 . . 전통들과 기록물들은 이스라엘과 초대 교회에서 전달되어 내려 왔으며, 흔히 오랜 기간 동안 결합되고 후대의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 재작성되고 재해석되었다. . . . [그러므로] 역사적 비평적 방법이 필요하다”(Ibid.). 책의 편집자 플레스만-반 리어는 이 보고서에 대해 논평하면서 말하기를, “그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문학적 역사적 비평을 사용하는 학자적 주석의 과정을 전적으로 긍정한다”라고 한다(p. 45).
루베인 보고서도 진술하기를, “성경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서 기원한 인간 문서들의 집합으로, 그리고 과거의 모든 다른 문학적 문서를 위해 채택된 절차들을 따라서, 연구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 . . 역사적 비평적 연구에 근거하여 성경 학자들은 최근 수십년 동안에 많은 애매한 점들을 분명하게 해결했다. . . . 그 연구 방법은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라고 한다(Ibid.).

2. 성경 속에 신학의 다양성과 상호 충돌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함
둘째로,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 속에 신학의 다양성과 상호 충돌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브리스톨 보고서는 진술하기를, “성경은 매우 다양한 문학적 전통들의 집합을 포함하는데, 그 내용들은 흔히 서로 긴장 속에 있다. . . .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때때로 진짜 모순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 . .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그것들이 참으로 모순적인 곳에서 이것은 성경 시대 자체 안에서의 실제 신학적 불일치들로 돌아갈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서로 다른 사회적 혹은 역사적 상황들에 기인했을 것이다”라고 한다(pp. 31, 32).

3. 성경 사건들의 역사성을 부정함
셋째로,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 사건들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그것들을 해석된 역사로 본다. 루베인 보고서는 이렇게 진술한다: “성경 학자들은 무엇보다 성경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건들이 모든 경우들에서 이미 해석된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 . . 보도된 사건들은 그러므로 결코 ‘순수한(bare) 사실들’이 아니고 오직 성경 저자들에 의한 해석의 옷을 입고서만 항상 우리에게 접근한다. . . . 우리는 성경에서 해석되지 않은 사건들이 없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p. 48).
또한, 세계교회협의회는 1984년에 우리의 공통적 신앙의 뿌리들이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거기에는 죠지 판텔리스(Jorge Pantelis)의 자유주의적 글이 비평 없이 실려 있다(“The ‘Apostolic Faith’ in Rela- tion to the Teaching and Deeds of Jesus,” in The Roots of Our Common Faith, pp. 41-53). 판텔리스는 성경 학자들이 예수님의 ‘명확한’ 역사적 생애를 재구성하는데 실패했다는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받아들인다(p. 41). 사복음서의 기적 이야기들을 논하면서, 그는 말하기를, “저 이야기들은 분명히 초대 교회가 예수님의 생애의 그 측면을 어떻게 다른 방식들로 확장하기를 좋아했는지를 보인다”고 한다(p. 43). 또한, 변화산 사건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그는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이야기가 부활 사건 이후의 제자들의 경험임을 동의한다”고 말한다(p. 50).

4.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함
넷째로,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한다.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직접적으로 성경이 더 이상 신앙과 행위의 규범이 되지 못함을 주장한다. 루베인 보고서는 진술하기를, “우리는 성경이 일차적으로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에서 따라야 할 표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 . . 우리는 [성경을] 모든 문제와 모든 상황을 위한 규범으로 변경시켜서는 안된다. . . . 성경은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부과되는 규범이 아니다”고 한다(p. 56). 그 대신, 그 보고서는 성경의 “관계적 권위”(relational authority)를 주장한다. 즉 성경의 권위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한다. 그 보고서는 진술하기를, 성경의 권위는 “사람들이 그것을 권위있는 것으로 경험할 때에만 현재적 실재이다”고 한다(p. 48). 덧붙여서, 이 보고서는 성경의 영감이나 성경 저자들의 목격자적 성격도 성경의 신적 권위에 본질적이지 않다고 말한다(pp. 49, 54).
이상의 성경관으로부터 다음의 두 가지 결과들을 가지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첫째로, 성경 구절들을 증거 구절들(proof texts)로 인용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브리스톨 보고서는 말하기를, “흔히 해왔듯이 고립된 성경 본문을 ‘증거 구절들’로 인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다(p. 32). 둘째로, 성경의 명확한 메시지(the definite message)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몬트리얼 보고서에 대해 논평하면서, 플레스만-반 리어는 말하기를, “특정한 문제에 관해 성경의 메시지나 성경의 교리에 대해 더 이상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다. . . . 어떤 [성경] 본문도 어떤 현재의 교리적 혹은 윤리적 질문에 대해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고 한다(pp. 4, 11).

비평
1. 성경의 문학적, 역사적 비평을 용납함에 대하여
첫째로,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의 문학적, 역사적 비평을 용납한다. 에드가 크렌쯔는 성경의 문학적 비평과 역사적 비평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학적 비평(Literary Criticism)은 저자의 저작 목적, 사용된 문학 형식, 작품의 완전성과 신빙성, 그리고 그것의 자료들을 결정한다. 역사적 비평(Historical Criticism)은 작품이 쓰여진 역사적 상황과 그 작품의 선(先)역사에 관계한다”(Biblical Studies Today, p. 17).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간의 말이므로 위의 접근 방식들이 어떤 타당성을 가질지도 모른다. 워필드는 말하기를, “개혁 교회들은 성경의 모든 말씀이 예외 없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그러나 그것과 더불어 그들은 그 모든 말씀이 인간의 말임을 똑같이 명백하게 믿는다”라고 했고(“Inspiration and Criticism,” in Revelation and Inspira- tion, pp. 397, 398), 헤르만 바빙크도 성경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또한 전적으로 인간 저자들의 산물임을 주장했다(G. C. Berkou- wer, Holy Scripture, p. 25). 아브라함 카이퍼는 심지어 역사 비평 연구를 수납했으며, 단지 그것이 추구한 지나친 부분들을 반대했다(Ibid., p. 15). 도날드 거스리는 말하기를, “참된 문학적 비평이 고등한 성경관과 공존할 수 없다는 타당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Biblical Criticism: Historical, Literary, and Textual, p. 121).
그러나 문제는, 문학적 역사적 비평 방식을 취하는 비평가들이 실제적으로 두 가지의 잘못된 전제들 혹은 선입견들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첫째로, 비평가들은 초자연적 사건들이 불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단지 현대인들이 초자연적 사건들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리차드 소울런은 말하기를, “엄격히 말하면, 역사적 비평 방식이라는 용어는 실재(reality)에 대한 인간의 현재적 경험이 과거에 무엇이 발생할 수 있을지 혹은 없을지를 결정할 객관적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역사적 추론의 기본원리를 가리킨다”고 했다(Richard N. Soulen, Handbook of Biblical Criticism, p. 99).
둘째로, 비평가들은 성경책들이 문자 그대로 참된 책들이 아니라고 전제한다. 즉 성경의 문자적 신빙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방법론은 내적 증거들로부터 성경책들의 진실성, 신빙성을 결정하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 가설적 비평적 방법에 의한 결론은 성경이 그 언급된 저자들의 작품이 아니고 후대의 익명의 편집자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들 그리고 이런 류의 비평 방식은 매우 주관적일 뿐이다. 현대인들이 성경의 초자연적 사건들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근거하여 옛날에 성경 역사에서 일어난 계시적, 초자연적 사건들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참되고 정당한 변론이 될 수 없다. 비록 현재 경험치 못하는 것일지라도 과거에 발생했던 사건들이라면 그것들은 인정되고 수납되어야 한다. 또한 성경책들이 그 주장된 저자들의 작품이 아니고 후대의 익명의 편집자의 것이라는 생각도 전적으로 주관적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류의 불신앙적, 파괴적 비평 방식이 건전하고 정당한 성경 연구의 방식으로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2. 성경에 신학적 상호 충돌이나 모순이 있다는 생각에 대하여
둘째로,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신학적 상호 충돌이나 모순이 있다는 생각을 용납한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단순히 인간 저작들의 모음으로 본다면 상호 충돌이니 모순이니 하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이며 하나님이 성경의 참 저자이심을 믿는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성경의 통일성의 교리는 성경 영감과 신적 권위의 교리 안에 내포되어 있다. 촬스 핫지는 말하기를, “만일 성경책들이 그것들이 주장하는 그것, 즉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 책들은 한 생각의 작품이며, 그 생각은 곧 하나님의 생각이다. 이 사실로부터, 성경이 성경과 모순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라고 했다(Charles Hodge, Systematic Theology, I, 187).

3. 성경 사건들의 역사성을 부정함에 대하여
셋째로,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 사건들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 계시들은 역사적 성격을 가졌다. 성경 저자들은 진실한 증거자들이었다. 성경의 권위는 일차적으로 역사적 권위이다. 즉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은 진실한 증인들의 증거에 근거한 것이므로 믿을 만하다. 따라서 성경에 증거된 사건들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의 성격과, 성경 저자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진실한 증거성을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곧바로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파괴적인 오류이며 무서운 이단인 것이다.

4.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함에 대하여
넷째로,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한다.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성경의 객관적 권위 대신에 ‘관계적 권위’를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신정통주의적 성경관이다. 물론, 성경의 관계적 권위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며 성령께서 성경의 신적 권위를 사람에게 확신시키시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5은 진술하기를, “성경의 무오한 진리와 신적 권위에 대한 우리의 완전한 납득과 확신은 우리 마음 속에서 말씀에 의해 그리고 말씀과 함께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으로부터 온다”고 했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의 성경관의 문제는,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하고 관계적 권위만을 주장하는 데 있다.
그러나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개신교회들의 공통적인 기본 원리를 근본에서부터 뒤엎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모든 성경은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 되도록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주어졌다”고 진술했다. 루터교회의 일치신조는 “모든 교의들과 모든 박사들이 평가되고 판단되어야 할 유일한 규칙과 규범은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적이고 사도적인 글들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고 진술했다. 영국교회의 39개 신조도 “무엇이든지 [성경에서] 읽을 수 있고 그것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아무에게도 그것을 신앙의 조항으로 믿도록 요구되어서는 안된다”고 진술했다. 이와 같이, 개신교회들은 공통적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절대적, 객관적 규범이라는 확신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개신교회들의 공통적인 기본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의 부정은 성경 자체의 명백한 증거들과 충돌한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성경의 객관적, 신적 권위를 명백히 증거하셨다. 주 예수님은 “성경은 폐할 수 없다”고 밝히 선언하셨다(요 10:35). 바울 사도도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전통들]을 지키라”고 명령하였다(살후 2:15).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규범이라고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다. 이 기초가 무너지는 곳에 참 기독교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 기초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적 성경관을 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포용주의는 명백히 잘못이다.

이 글 공유하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