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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에 대한 구속사적 고찰(6)

방언에 대한 구속사적 고찰(6) by 이 천우
 
(신)오순절주의자들은, 꼭 그들이 아닐지라도 우리 주변에 방언을 하는(듯한) 사람이 많이 있는데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된 것이겠습니까?
이 문제에 앞서 먼저 이것부터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방언을 하던지간에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복음적인가? 하는 점입니다. 성경이 방언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방언을 하고 안 하고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라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반대입니다.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던지간에 지금 우리 눈 앞에서는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보다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 그 자체에 신뢰감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 방언을 하게 된 과정을 보면 이것이 전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게 된 것이라고 보여지지 않습니다. 방언을 구해야 한다는 주장에 의해 방언을 달라고 구합니다. 그때 참으로 비신앙적인 방법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무엇인가를 강하게 반복적으로 외우는 가운데 방언이 터졌다고 하는 경우를 보는데 어떻게 방언이 사람이 달라고 하며 구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응답으로 주시고 합니까? 가령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말씀, 곧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던 제자들이 방언을 구해서 방언을 하게 된 것입니까? 성령께서 어떤 일을 위해 성령의 주도에 의해서 된 것인데 말입니다. 이는 그 후에 사도들이 주님의 명령을 좇아 온 땅에 교회를 세워나가는 복음 전도 사역을 수행하는 중에 있은 방언이나, 또한 세워진 교회 속에서 있은 다양한 은사의 하나인 방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한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방언이 철저하게 개인적인 체험과 은사에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이 받은 성령 세례는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된 구원론적인 것이었지 은사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의 성령 세례 베푸심은 그 세례가 지니고 있는 원리를 드러내시는 것이었으며, 그에 대한 계시적 의미의 표적으로서 방언이 있었던 것이지 개인적 체험을 갖게 해 주시며 그 체험의 선물로서 방언을 하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방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방언을 받지 못한 사람은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이라고 하는데 바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봅시다. "우리는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였느니라"(고전 12:13)고 하였으며, 또한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고전 12:30) 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을지라도 누구나 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까? 방언을 말하게 한 사람이 있고, 또 다른 은사로 주신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방언을 못하면 성령 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하는 말은 참으로 가당치 않은 틀린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신교를 막론하고, 오순절주의.개혁주의를 막론하고 방언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단언하건대, 오늘날의 방언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고 하는 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를 저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가 아니면 그런 일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다른 영에 이끌려서 예수를 주시라고 하는 일,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한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열심인 것이 아니라, 다른 일에 열심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방언운동이니 신유운동이니 하는 은사주의가 그렇습니다. 이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는 그들이 구하는 방언이나 신유를 허용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게 합니다.
따라서 방언이 하나님이 말하게 해 주셔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단에게 미혹되어 행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한 예가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방언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령 세례 받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하여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까 은사 우월주의(영웅주의)에 빠지게 되어 방언을 말하는 것이 자기 의가 됩니다. 기도하면 방언으로 말하려고 합니다. 바울이 권면 했던 통역이 같이 있어야 하고, 통역이 없으면 잠잠하라고 한 것 자체가 무시가 됩니다. 교회의 질서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교회가 어지러워질 때,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모습을 잃어버릴 때 이것은 사단이 가장 바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시라고 할 사람이 없다, 예수를 저주한다"는 말은 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그리스도의 교회를 복음에서 이탈하게 하여 뭐가 뭔지 다시 말해서 어떤 교회가 참된 교회인지를 모르게 하는 참 교회로 만들어가지 않는 데에서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방언이란 성령이 주시는 은사를 정욕으로 삼게 하여 실은 가장 성경의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합니다. 방언을 한다면 얼마나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래서 얼마나 성경을 알아갔느냐, 은혜와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깊이 있게 알아갔느냐 하는데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렇습니까? 방언에 매달리고 그것만을 신앙의 방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사실 성경으로부터는 가장 멀어집니다. 먼저 방언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에서조차 신뢰를 갖지 않게 되지 않습니까? 단지 방언을 한다는 그 자체에 신뢰를 갖는 것이 아닙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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