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에 대한 구속사적 고찰(4)
방언에 대한 구속사적 고찰(4) by 이천우
앞에서 방언을 다루면서 방언 은사가 잘못 이해되었을 때 교회 내에 끼친 심각한 피해를 보면서 방언 은사의 바른 사용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와 함께 현대 교회가 양분화 된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교회에 방언 은사가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를 놓고 지금도 방언 은사는 행해진다고 보는 교회와 지금은 방언 은사는 행해지지 않는다고 보는 교회로 양분되어 있고 이에 대한 서로의 주장은 교회가 대립되는 관계로까지 몰고 갔습니다. 하나는 오순절의 영향을 받은 교회이며, 다른 하나는 개혁주의 영향을 받은 교회입니다. 그러면 왜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에 대한 각 파의 주장을 살펴 본 후에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은사의 성질을 이해함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1.오순절주의 은사론
'오순절주의'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오순절 사건처럼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오순절에 있은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그때 성령 세례가 베풀어졌을 시에 제자들이 경험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때 주어진 성령의 선물인 방언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방언을 받지 못하면 그 사람은 성령 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하는 주장이 됩니다. 그 증거로 오순절에서의 방언을 말함과 사마리아에서의 성령이 주어짐(행 8:2-1), 고넬료 가정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 세례를 베푸심과 방언을 행하게 함(행 10:44-46),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성령 세례를 베푸심과 방언을 행하게 함(행 19:1-6)을 듭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오순절에 있은 성령의 강림을 구원론적 이해에서 성령 세례의 사건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구원하시는 중생과 내주의 원리에서 보지를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사역을 두 단계로 봅니다. 첫 번째 단계는 성령의 중생케 하는 사역입니다. 자연인이 성령에 의하여 복음을 깨닫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입니다. 성령 받기 위하여 모인 120명의 제자들은 오순절 이전에 이미 거듭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성령 세례가 베풀어지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오순절에 있은 성령 강림 사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토레이(Torrey)는 이 두 과정을 분별하여 말하기를, "성령 세례는 성령의 중생케 하는 사역과는 구분되며 그것에 뒤따라오며 또 첨가적인 성령의 작용이다.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더라도 아직 성령으로 세례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중생에는 생명의 부여가 있고 그것을 받는 사람은 사역을 위한 자격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견해는 오순절주의의 성령 세례에 대한 기초가 되는데 디 기(D. Gee)는 이것을 요약적으로 말하기를, "신약은 확실한 역사적 사실로서 중생시에 성령이 처음 들어온 이후 신자들이 성령을 그 분의 원래적이고 유일한 인격으로서 특별하고도 인격적으로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지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체험을 '성령 세례'라 부르며 그 목적은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부여하는데 있다. 그것에 특징적으로 수반되는 것은 열매가 아니라 은사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오순절파 신학자인 윌리암스(E. S. Williams)는 "중생에서는 성령이 주체요 대속의 피가 수단이며 중생이 그 결과이다. 성령으로의 세례에서는 그리스도가 주체요('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 성령이 수단이며 능력의 부여가 그 결과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디기와 윌리암스에 있어서는 성령 세례가 신자의 생활에 나타나는 두 번째 체험으로서 이를 통해 능력을 받고 보통 방언을 수반하는 체험인 것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오순절의 성령 세례 사건이 반복적인 사건으로서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되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에 제자들이 경험하였던 경험이 오늘날에도 모든 성도들에게 그대로 경험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성령 세례는 곧 방언을 받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그들 모든 사람은 누구나 성령 세례의 불체험과 방언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영향은 그대로 우리네 교회에 미쳐 여기에 의해서 오늘날 성도들은 체험적인 신앙과 그렇게 방언을 받으려고 몸부림을 치며 별 수단을 다해서라도 방언을 받으려고 하는 잘못된 풍토가 생겨났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네 교회의 모습입니다. 방언 신학 '방언의 이해와 유익'이란 책(이천수, 도서출판 영성목회, pp.92-93)에서 하는 말을 들어봅시다. "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서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방언을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2절에도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는 자의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은 움직이고 일하는 것인데,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을 통해서 나타나고 일하는 것이 은사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을 모신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생명(운동력)이 와 있고, 믿음을 가지고 몸을 움직일 때 즉,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고, 귀신들린 자에게 나가라고 명하고, 뱀을 집게 될 때, 성령은 역사하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방언이 나오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지르면 방언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말하게 하십니다."
이런 영향 속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신자가 갖는 생각은 참으로 병폐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방언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자신도 믿음 생활을 잘 하겠다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모교단 신문에 실린 모교회 전도위원장이 한 말에서 보겠습니다. "…또 십일조에 대한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그런데 아까워서 드릴 수가 없었어요. 저는 방언하는 사람을 부러워했어요. 방언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는 거다 생각하고 기도했어요. 나에게 방언을 하게 하시면 하나님 나라를 의심하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겠다고…이 기도를 드리고, 이 삼일쯤 지나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2.신오순절주의
신오순절주의의 역사는 대체로 1960년대 성공회 목사인 데니스 베네트(Dennis Bennett)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에서 시작한 것으로 봅니다. 베네트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한 부부가 있었는데 그들은 교회에 잘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교회에 잘 나오며 십일조 생활도 잘 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네트 목사와 함께 시무하는 친구 모사가 그 이유를 묻자 그들은 성령의 체험을 받았다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부를 중심으로 12명이 한 그룹을 만들어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두 목사는 그 그룹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주간을 통해서 성경공부를 하였는데 그러는 중에 베네트 목사는 자기에게 없는 경험이 그룹에는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베네트 목사는 자신도 같은 체험을 하기 위해서 기도했고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두 번째는 짤막하게나마 방언을 하게 되었으며 세 번째는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이 나오도록 격려하였는데 갑자기 베네트 목사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말들을 성령이 자신의 입술에 담아 주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베네트 목사는 자신의 경험을 교회에 말하였고 이로 인해 논쟁이 일어났으며 베네트 목사는 사임하게 되어 다른 교회로 옮겼는데 그러는 사이에 그의 교회에는 몇몇 신오순절 그룹들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오순절 그룹 안에 이미 있어왔던 체험과 같은 것이 개신교 교단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알린 결과가 되었으며 그 이후로 비슷한 사건들이 감리 교회와 장로 교회, 침례 교회, 루터파 교회 안에서도 일어났다는 보고가 나왔으며, 로마 카톨릭 안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이 후로 신오순절 운동은 빠르게 확산되어 갔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세계 각 대륙에 퍼져 나갔습니다.
신오순절주의의 특징은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무기력한 신앙 속에서 성령 세례를 바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신오순절 운동은 그 기원을 살펴볼 때 오순절주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이 쓴 책들은 성령의 체험과 은사에 초점이 모아져 있는데 이 책들을 읽고서 신앙 생활에 만족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이 해결책을 찾았다고 하며, 이 신오순절주의자들은 그룹을 형성하여 자기들의 경험을 확산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성령 세례, 곧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선물 곧 방언과 기타 은사를 받을 것을 주장했기 때문에 이들을 오순절주의자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은사 운동'(charismatic movement)이라고 부릅니다. 이 운동을 주장하는 신오순절주의자들은 기성 교회 안에 오순절의 불을 붙이자는 것입니다.
3.개혁주의 교회
개혁주의 교회는 칼빈에 의해서 시작되어집니다. 루터가 이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왔던 종교개혁의 불길을 일으켜 그 시작을 열었다면 칼빈은 종교개혁을 완성시킨 사람입니다. 개혁주의 교회란 카톨릭 교회와 구별시키기 위해 붙인 이름입니다. 카톨릭 교회를 구교라고 부르며 개혁주의 교회를 신교라고도 부릅니다.
개혁주의 교회는 복음주의 교회입니다. 칼빈은 마태복음 3장 11절 이하에 대한 주석에서 예수님이 베푸시는 성령 세례에 관하여 언급하기를, "그리스도만이 외적 세례(요한의 물세례)가 나타내고자 하는 어떠한 은혜라도 베푸신다는 것인데 이는 그가 그 자신의 피로써 양심을 깨끗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옛 사람을 죽게 하고 중생의 영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칼빈에게 있어서는 성령 세례는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통하여 인간에게 행하시는 전체 구원 사역, 곧 죄를 씻음, 옛 사람의 죽임, 중생 등을 의미합니다. 칼빈은 오순절의 성령 세례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렇게 장엄한 방식으로 성령을 보내심이 주께서 그의 택하신 자들을 끊임없이 감동시키는 감추어진 은혜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그분께서 요한의 증거를 그것에다 결착시킨 것은 마땅한 일이다"라고 하면서, "사도들이 그 자신들만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 외에도 거기에는 그가 그의 성령 선물을 충만한 정도로 부어 주심으로써 그의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우주적 은혜가 반영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거두인 바빙크(H. Bavinck)는 오순절에 있은 성령 강림(성령 세례)의 사건에 관한 언급에서 그 사건이 성령의 중생의 사역이라고 하면서 말하기를 이날 있은 "성령의 부으심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첫 시대에 있었던 것으로서 모든 종류의 특수한 능력과 사역들을 수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오순절에 있은 방언, 사도행전에 기록된 다른 특수한 사건들, 예컨대 사도들이 담대히 말하는 것이나, 믿음의 특별한 힘, 기쁨, 지혜, 예언, 이적 행함 등 이 모든 것은 사도의 첫 시대에 있었던 제한된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는 사도들에게 성령의 부어주심이 있는 것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언급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를 이루어 가심으로서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사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들을 능력있게 이끌고 나가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에 관한 일로서 방언이 있었으며, 믿음이 담대함, 이적을 행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그들이 복음에 지혜 있는 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신)오순절주의자들이 말하는 성령 세례인 곧 능력 받음, 방언과 기타 은사를 받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견해인 것입니다.(*)
앞에서 방언을 다루면서 방언 은사가 잘못 이해되었을 때 교회 내에 끼친 심각한 피해를 보면서 방언 은사의 바른 사용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와 함께 현대 교회가 양분화 된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교회에 방언 은사가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를 놓고 지금도 방언 은사는 행해진다고 보는 교회와 지금은 방언 은사는 행해지지 않는다고 보는 교회로 양분되어 있고 이에 대한 서로의 주장은 교회가 대립되는 관계로까지 몰고 갔습니다. 하나는 오순절의 영향을 받은 교회이며, 다른 하나는 개혁주의 영향을 받은 교회입니다. 그러면 왜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에 대한 각 파의 주장을 살펴 본 후에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은사의 성질을 이해함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1.오순절주의 은사론
'오순절주의'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오순절 사건처럼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오순절에 있은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그때 성령 세례가 베풀어졌을 시에 제자들이 경험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때 주어진 성령의 선물인 방언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방언을 받지 못하면 그 사람은 성령 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하는 주장이 됩니다. 그 증거로 오순절에서의 방언을 말함과 사마리아에서의 성령이 주어짐(행 8:2-1), 고넬료 가정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 세례를 베푸심과 방언을 행하게 함(행 10:44-46),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성령 세례를 베푸심과 방언을 행하게 함(행 19:1-6)을 듭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오순절에 있은 성령의 강림을 구원론적 이해에서 성령 세례의 사건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구원하시는 중생과 내주의 원리에서 보지를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사역을 두 단계로 봅니다. 첫 번째 단계는 성령의 중생케 하는 사역입니다. 자연인이 성령에 의하여 복음을 깨닫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입니다. 성령 받기 위하여 모인 120명의 제자들은 오순절 이전에 이미 거듭났다고 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성령 세례가 베풀어지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오순절에 있은 성령 강림 사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토레이(Torrey)는 이 두 과정을 분별하여 말하기를, "성령 세례는 성령의 중생케 하는 사역과는 구분되며 그것에 뒤따라오며 또 첨가적인 성령의 작용이다.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더라도 아직 성령으로 세례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중생에는 생명의 부여가 있고 그것을 받는 사람은 사역을 위한 자격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견해는 오순절주의의 성령 세례에 대한 기초가 되는데 디 기(D. Gee)는 이것을 요약적으로 말하기를, "신약은 확실한 역사적 사실로서 중생시에 성령이 처음 들어온 이후 신자들이 성령을 그 분의 원래적이고 유일한 인격으로서 특별하고도 인격적으로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지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체험을 '성령 세례'라 부르며 그 목적은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부여하는데 있다. 그것에 특징적으로 수반되는 것은 열매가 아니라 은사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오순절파 신학자인 윌리암스(E. S. Williams)는 "중생에서는 성령이 주체요 대속의 피가 수단이며 중생이 그 결과이다. 성령으로의 세례에서는 그리스도가 주체요('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 성령이 수단이며 능력의 부여가 그 결과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디기와 윌리암스에 있어서는 성령 세례가 신자의 생활에 나타나는 두 번째 체험으로서 이를 통해 능력을 받고 보통 방언을 수반하는 체험인 것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오순절의 성령 세례 사건이 반복적인 사건으로서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되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에 제자들이 경험하였던 경험이 오늘날에도 모든 성도들에게 그대로 경험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성령 세례는 곧 방언을 받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그들 모든 사람은 누구나 성령 세례의 불체험과 방언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영향은 그대로 우리네 교회에 미쳐 여기에 의해서 오늘날 성도들은 체험적인 신앙과 그렇게 방언을 받으려고 몸부림을 치며 별 수단을 다해서라도 방언을 받으려고 하는 잘못된 풍토가 생겨났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네 교회의 모습입니다. 방언 신학 '방언의 이해와 유익'이란 책(이천수, 도서출판 영성목회, pp.92-93)에서 하는 말을 들어봅시다. "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서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방언을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2절에도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는 자의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은 움직이고 일하는 것인데,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을 통해서 나타나고 일하는 것이 은사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을 모신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생명(운동력)이 와 있고, 믿음을 가지고 몸을 움직일 때 즉,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고, 귀신들린 자에게 나가라고 명하고, 뱀을 집게 될 때, 성령은 역사하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방언이 나오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지르면 방언을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말하게 하십니다."
이런 영향 속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신자가 갖는 생각은 참으로 병폐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방언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자신도 믿음 생활을 잘 하겠다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모교단 신문에 실린 모교회 전도위원장이 한 말에서 보겠습니다. "…또 십일조에 대한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그런데 아까워서 드릴 수가 없었어요. 저는 방언하는 사람을 부러워했어요. 방언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는 거다 생각하고 기도했어요. 나에게 방언을 하게 하시면 하나님 나라를 의심하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겠다고…이 기도를 드리고, 이 삼일쯤 지나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2.신오순절주의
신오순절주의의 역사는 대체로 1960년대 성공회 목사인 데니스 베네트(Dennis Bennett)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에서 시작한 것으로 봅니다. 베네트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한 부부가 있었는데 그들은 교회에 잘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교회에 잘 나오며 십일조 생활도 잘 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네트 목사와 함께 시무하는 친구 모사가 그 이유를 묻자 그들은 성령의 체험을 받았다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부를 중심으로 12명이 한 그룹을 만들어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두 목사는 그 그룹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주간을 통해서 성경공부를 하였는데 그러는 중에 베네트 목사는 자기에게 없는 경험이 그룹에는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베네트 목사는 자신도 같은 체험을 하기 위해서 기도했고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두 번째는 짤막하게나마 방언을 하게 되었으며 세 번째는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이 나오도록 격려하였는데 갑자기 베네트 목사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말들을 성령이 자신의 입술에 담아 주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베네트 목사는 자신의 경험을 교회에 말하였고 이로 인해 논쟁이 일어났으며 베네트 목사는 사임하게 되어 다른 교회로 옮겼는데 그러는 사이에 그의 교회에는 몇몇 신오순절 그룹들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오순절 그룹 안에 이미 있어왔던 체험과 같은 것이 개신교 교단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알린 결과가 되었으며 그 이후로 비슷한 사건들이 감리 교회와 장로 교회, 침례 교회, 루터파 교회 안에서도 일어났다는 보고가 나왔으며, 로마 카톨릭 안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이 후로 신오순절 운동은 빠르게 확산되어 갔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세계 각 대륙에 퍼져 나갔습니다.
신오순절주의의 특징은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무기력한 신앙 속에서 성령 세례를 바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신오순절 운동은 그 기원을 살펴볼 때 오순절주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이 쓴 책들은 성령의 체험과 은사에 초점이 모아져 있는데 이 책들을 읽고서 신앙 생활에 만족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이 해결책을 찾았다고 하며, 이 신오순절주의자들은 그룹을 형성하여 자기들의 경험을 확산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성령 세례, 곧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선물 곧 방언과 기타 은사를 받을 것을 주장했기 때문에 이들을 오순절주의자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은사 운동'(charismatic movement)이라고 부릅니다. 이 운동을 주장하는 신오순절주의자들은 기성 교회 안에 오순절의 불을 붙이자는 것입니다.
3.개혁주의 교회
개혁주의 교회는 칼빈에 의해서 시작되어집니다. 루터가 이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왔던 종교개혁의 불길을 일으켜 그 시작을 열었다면 칼빈은 종교개혁을 완성시킨 사람입니다. 개혁주의 교회란 카톨릭 교회와 구별시키기 위해 붙인 이름입니다. 카톨릭 교회를 구교라고 부르며 개혁주의 교회를 신교라고도 부릅니다.
개혁주의 교회는 복음주의 교회입니다. 칼빈은 마태복음 3장 11절 이하에 대한 주석에서 예수님이 베푸시는 성령 세례에 관하여 언급하기를, "그리스도만이 외적 세례(요한의 물세례)가 나타내고자 하는 어떠한 은혜라도 베푸신다는 것인데 이는 그가 그 자신의 피로써 양심을 깨끗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옛 사람을 죽게 하고 중생의 영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칼빈에게 있어서는 성령 세례는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통하여 인간에게 행하시는 전체 구원 사역, 곧 죄를 씻음, 옛 사람의 죽임, 중생 등을 의미합니다. 칼빈은 오순절의 성령 세례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렇게 장엄한 방식으로 성령을 보내심이 주께서 그의 택하신 자들을 끊임없이 감동시키는 감추어진 은혜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그분께서 요한의 증거를 그것에다 결착시킨 것은 마땅한 일이다"라고 하면서, "사도들이 그 자신들만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 외에도 거기에는 그가 그의 성령 선물을 충만한 정도로 부어 주심으로써 그의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우주적 은혜가 반영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거두인 바빙크(H. Bavinck)는 오순절에 있은 성령 강림(성령 세례)의 사건에 관한 언급에서 그 사건이 성령의 중생의 사역이라고 하면서 말하기를 이날 있은 "성령의 부으심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첫 시대에 있었던 것으로서 모든 종류의 특수한 능력과 사역들을 수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오순절에 있은 방언, 사도행전에 기록된 다른 특수한 사건들, 예컨대 사도들이 담대히 말하는 것이나, 믿음의 특별한 힘, 기쁨, 지혜, 예언, 이적 행함 등 이 모든 것은 사도의 첫 시대에 있었던 제한된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는 사도들에게 성령의 부어주심이 있는 것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언급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를 이루어 가심으로서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사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들을 능력있게 이끌고 나가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에 관한 일로서 방언이 있었으며, 믿음이 담대함, 이적을 행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그들이 복음에 지혜 있는 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신)오순절주의자들이 말하는 성령 세례인 곧 능력 받음, 방언과 기타 은사를 받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견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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