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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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로마의 계시

6. 로마의 계시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이 교육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상을 여행할 기회를 갖게 된 지금 나는 그 말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다. 로마 도시를 방문하게 되면서 내 눈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이 과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선교 여행으로 다른 나라를 방문하게 될 때 나는 거의 중도에 멈추지 않고 목적지로 곧바로 날아간다. 그러나 1997년 11월, 알바니아를 여행하려고 할 때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 항공 노선의 항공 스케쥴이 바뀌게 되면서 로마에서 이틀이나 머물게 되었다.
 

비록 로마에 있는 여러 주요 역사적 장소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어도 이번 기회로 내 눈으로 직접 로마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로마 관광을 예약한 후 핵심 장소들을 관광하기로 하였다. 그때 잠깐 로마에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게 되었다.
 

트레비 분수(the Trevi Fountain)
 

관광 안내원이 우리를 맨 처음 인도한 곳은 트레비 분수였다. 이 분수는 르네상스 기간에 지어진 조각이다. 분수를 볼 때 나를 역겹게 만드는 점을 발견하였다. 이 분수는 교황 클리멘스 12세(Clemens XII)가 지은 것으로서 아주 화려하였다. 그러나 내 관심을 끈 것은 분수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분수 중앙에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넵튠 신(the god Neptune)의 모습이었다. 교황 클리멘스 12세는 다른 교황과 마찬가지로 카톨릭 교회의 영적 머리였다. 우리 모두가 알듯, 넵튠과 같은 이방신은 성경의 하나님께 가증한 존재였다.
 

관광을 하는 사람 중에는 안내원이 알려주는 이 중요한 정보에 대하여 놀라는 표정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방 종교를 포함하는 기독교의 모습은 전혀 기독교적일 수 없다는 것은 성경학자가 되어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안내원이 말하는 바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책자를 구입하였는데 안내원이 말하는 내용이 확증되었다.
 

분수를 바라보면서 내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떠 올랐다. 나의 모계쪽 조상들은 이 분수가 세워질 즈음에 프랑스에서 화란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왔다. 유그노(Huguenots)로서 카톨릭 교회의 핍박을 피하여 도망친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의 친척들은 도망을 치지 못하고 카톨릭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것에 함께 하였다고 하여 잔인하게 죽게 되었다.
 

잠깐이지만 내 안에서 감정이 끓어 올랐다. 나의 조상들이 얼마나 무섭고 비참한 체험을 하였는지가 희미하게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16세기 이후 캐톨릭 교회 내에 신학적인 개혁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트레비 분수는 전혀 이러한 개혁을 말해 주고 있지 않았다. 만일 개혁이 있었다면 카톨릭 교회의 지도자들이 관광객들로 하여금 이렇게 알도록 내 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책자를 통하여 트레비 분수는 이방 종교에 해당한다고 선언함으로 관광객들로 하여금 아무 오해가 없도록 하였을 것이다.
 

판테온 (Pantheon)
 

로마시 관광에서 두 번째로 서게 된 곳은 판테온이었다. 판테온은 기원전 27년 마르커스 아그립바(Marcus Agrippa)에 의하여 세워진 건물로서 여러 신들에게 따로 봉헌된 거룩한 전이다. 이곳은 인류가 신과 상호 계약을 맺은 후에 전을 세우고 설립하고 유지하는 곳이었다 (Gianfranco Ruggieri, Guide to the Pantheon, (ATS Italia, Rome, 1995), 3.)
 

판테온은 2000년 이상 된 건물로서 여전히 웅장한 모습을 띄고 있지만 더 인상적인 요소가 있다. 이 이방 신전은 고대 점성술가들이 하늘의 별들을 관찰하기 위한 장소였다는 점이다. 세계 여러 곳의 다른 이방 문화처럼 로마 사람들도 가장 거룩한 날들 - 년 중 가장 긴 날과 짧은 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등 - 에 그들의 신들을 접해 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건물은 돔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 중앙에 구멍이 나 있어서 모든 건물이 마치 거룩한 해시계의 역할을 하는 듯하였다. 판테온에 대한 안내서를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일광은 고전적인 의미로 볼 때 “거대한 시계”이다. 일광은 해시계 및 방첨탑(obelisk)에 의해서 춘-추분의 경우 어떤 특정 장소를 지적해 주며, 일반적으로는 시간을 말해준다. 판테온의 경우 그 안에 혁신적인 요소가 있다. 일광이 성전의 내부로 들어온다. 그러면 정확하게 춘분과 추분, 태양의 지점을 말해줄 뿐 아니라 시간이 흐름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거대한 제단의 위치는 항상 그림자가 있지만, 정오에 성전 입구에서 제단을 향하여 바라볼 경우 태양을 볼 수 있다.
안내서에서 “거대한 제단”이라는 언급과 판테온 안에서 빛이 어떻게 어디로 비췬다고 설명하는지를 주목하라. 이 “거대한 제단”은 현재 카톨릭 교회의 제단을 말한다. 이 건물의 내부에는 여러 카톨릭 성자들에게 봉헌된 14개의 작은 신전들이 있다.
 

예를 들어, 마돈나의 돌 (the Madonna of Stone)이라고 불리는 제 3의 작은 신전 안에는 1523-1524년에 로렌조 로토(Lorenzo Lotto)에 의해 조각된 상(像)이 있다. 유명한 예술가 라파엘로(Raffaello)는 판테온에 자신의 시체를 묻어달라는 유서를 남긴 후에 이 조각물을 헌납했다. 1844년에 라파엘로의 무덤에 정말로 라파엘로가 묻혀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무덤을 열었다. 이때 교황 그레고리 16세는 시체를 잘 보관하기 위해 로마 대리석관을 기증했다. 그 대리석관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졌다: “이곳에 라파엘로가 잠들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 모든 만물의 어머니인 자연은 자신이 정복될까 두려워했고 그가 죽어가는 동안에는 자연은 자신마저 죽게 될까 두려워했다.”
 

카톨릭 교회가 특정 거룩한 날들에 판테온 신전을 사용하는 것은 흥미롭다. 판테온에 대한 안내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성모 승천 대축일은 교회 내에서 특별히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이러한 행사 때는 거룩한 예식을 집행하였는데 그리스도와 동정녀의 동상이 위로 들려져서 지붕의 돌기 부분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었다. 오순절 때는 장미 잎사귀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오순절의 4째 일요일에는 교황이 금빛의 장미를 축복한 후 그 장미를 받을 자격이 있는 기독교의 왕들에게 보내어졌다.
이러한 내용들을 관찰하면서 나는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내용이 기억이 났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4-15).
 

구약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주의 백성들에게 이방 신전들을 무너뜨리라고 지시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절대로 이방 신전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해서는 안된다. 기독교와 바벨론은 절대로 혼합되어서는 안된다. 그러할 경우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대성당 (바실리카)
 

로마 관광에서 세 번째로 간 곳은 바티칸이었다. 관광의 마지막 코스였다. 버스는 바티칸에서 여러 블록 떨어진 곳에 주차하였다. 버스에서 한 사람씩 내리는 동안 관광 안내원이 빨리 한 곳으로 모이라고 손짓을 했다. 그후 그곳에 대한 소개를 하였다.
 

우리는 방첨탑처럼 생긴 가로등이 양쪽 길가에 서 있는 넓은 대로를 바라보는 코너에 서게 되었다. 우리가 서 있는 화해의 길(Via del Conciliazione)로부터 앞을 바라볼 때 불쑥 솟은 거대한 돔을 볼 수 있었다. 그 돔 앞에는 거대한 이집트 방첨탑이 땅바닥으로부터 솟아올라 돔의 뾰족탑과 완벽한 정렬을 이루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걷자 원형으로 된 지역에 닿게 되었다. 내가 멀리서 보았던 대형의 방첨탑이 원형으로 줄을 선 콜로네이드에 쌓여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콜로네이드는 우리 버스가 주차한 곳에서 보였던 그 돔을 지탱하는 큰 건물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관광 안내원이 교황의 도시에 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는 동안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내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을 시간을 주었다. 나는 안내원에게 다가가서 왜 이집트의 이방 방첨탑이 특별한 이 자리에 세워져 있는지를 물었다. 안내원은 내게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같은 날 나는 바티칸과 시스틴 채플을 설명하는 책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 책에 나온 방첨탑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25 미터 높이의 이 기둥은 기원전 1935년 이전에 세워진 것이다. 플리니가 쓴 자연의 역사(Natural History)에 이 기둥이 언급되어 있다. 이 방첨탑(또는 기둥)은 황제 갈리귤라(Caligula)가 그의 바티칸 원형 극장을 위해 수입해 온 것이다. 바티칸 원형 극장은 후에 네로의 원형 극장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곳에서 베드로가 순교하였다. 후에 핍박을 무릅쓴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의 시체를 장사 지내주었다.
이 책은 이 방첨탑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왜 그것이 지금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 매우 중요한 통찰력을 주고 있었다. 그 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방첨탑이 그곳으로 옮겨진 다음 약 1세기 후에 방첨탑 주변에는 사각의 고급스러운 광장이 세워졌다. 이는 이전 성 베드로 숭배의 형태 중 하나로서 역사 속에서 가장 첫번째 이정표가 되었던 것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곳을 방문하면서 마치 성자(Saint)의 몸을 만진 것처럼 여겼으며 이곳을 가장 거대하고 순수한 “접촉 유물”로 여기고 예배하였다.
나는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영적 세계를 접할 수 있다고 언급한 내용을 발견한 적이 없다. 성경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한다 (딤전 2:5). 이집트인들과 다른 이방 문화는 마귀의 영역에 접하기 위해 둘 기둥을 사용한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남근을 상징하는 기둥을 아세라 라고 불렀다.
 

열왕기상 15장을 보면 이방 풍습과 관련한 흥미로운 장면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왕상 15:9-13).
 

성경의 하나님은 사탄적인 우상들을 파괴할 것을 명령하신다. 몇몇 사람들은 로마 카톨릭 교인들이 그들의 예배 장소에 어떤 물리적인 물건들을 세우는 것은 영적으로 좋은 의도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음을 확신한다. 카톨릭 교회를 세우고 있는 기본적인 믿음의 원칙들이 철저하게 성경적으로 점검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비성서적인 믿음들과 혼합될 때 다른 복음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다른 복음은 사람들을 위험한 영적 지역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전통
 

당신은 어떤 특별한 비성경적인 종교 행위나 믿음을 받아들인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또는 거센 반대를 겪은 적이 있는가? 그들은 “우리는 우리의 전통에 따라 옳게 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전통을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다스릴 권위로서 받아들여야 마땅한 것인가?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전통이란 과거 세대의 문화적 요소의 유산으로서 생각의 형태나 어떤 특별한 행위가 계속 전수되는 것을 말한다. 많은 문화와 종교적인 관점을 취하는데 있어서 전통은 과거에 해왔던 것을 계속 유지시키는데 매우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어떤 사람은 어떤 전통의 행위가 전혀 타당하지 않고 심지어 옳지 않은 것임을 인식하면서도 그 전통적 행위를 끊거나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믿음의 시스템인 기독교의 경우도 전통이 없지 않다. 그러나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실행되고 있는 여러 전통들이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는 경우들이 흔하다. 이러한 전통들은 성경 외 계시로서 성경에 추가된 인간의 사상 및 사색들이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이러한 특별한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는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라고 말하였다 (골 2:8-9).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간절한 마음과 대단한 염려 가운데 쓴 이 내용을 따라야 할 것이다. 성경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영적 필요를 다 만족시킨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사탄은 언제나 인류로 하여금 추가적인 계시를 추구하도록 격려하여 왔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이러한 잘못을 저지를 경우 인류는 그 잘못에 상응하는 대가를 항상 치루어야 한다.
 

사람들이 인간들의 전통을 의지하는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경고를 외쳤던 구약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바리새인들에게 경고하셨다: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막 7:6-8).
 

이사야와 예수님의 말씀은 전통의 권위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되기 위해서는 전통과 진리를 구별한 후에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성도가 언제 성자가 되는가?
 

성자(saint)라는 단어는 성경 용어이다. 그러나 이 단어를 나름대로 정의하는 그리스도인 부류들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믿기를 사람이 선행을 해야 성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결코 선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성자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성자에 대한 바른 정의일까?
 

교회의 관리들이 본이 되는 삶을 산 사람들에게 성자의 자격을 주는 것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이룬 업적이나 선한 행위들 때문에 이러한 직위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을 더욱 문자적으로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들은 영생에 들어가는 티켓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완전하신 분이심을 깨달음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행을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옷”으로 여긴다. 그들은 “사람이 아무리 선하더라도 충분히 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떤 쪽이 맞고 틀리는지 알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어떤 사람이 인간의 노력으로 성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내용이 한 구절도 없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행으로 성자의 자격을 얻게 된다고 배우게 되는 것일까?
 

기독교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 죽으셨는지 알아야 한다. 성경은 죄에 대하여 말하는데 죄란 법을 어긴 것으로서 죄를 범한 인류는 죽음으로 판결되었다. 사람 중에는 완전하게 의로운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직 유일하게 완전하신 분이시다. 그분을 믿는 것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만일 어떤 기독교 지도자가 선포하길, 사람이 인간의 선함으로 성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빠뜨리는 심각한 범죄이다. 성경에 의하면 성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때 구원은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직위를 부여하는 그러한 종류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성 베드로의 대성당에 있으면서 나는 죽은 사람들의 사당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죽은 사람들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 죽은 사람들은 카톨릭 교회에 의하여 성자의 직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이었다. 죽은 자들에게 기도하는 그 사람들은 분명히 그들의 기도로 인하여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성경은 죽은 자에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죄라고 언급한다 (참조, 신 18:9). 그러한 종교 행위로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과 더 멀어질 뿐이다.
 

거룩한 문
 

로마에서 하루를 체류하며 관광할 때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소화해 내려면 아마 평생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곳에 있는 몇 시간 내로 몇 가지 근본적인 원칙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은 내 평생에 함께 하였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건축과 예술면에서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지만, 이러한 물리적인 면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것을 주목할 수 있었다. 성소에 들어 가기 전에 관광 안내원이 우리를 “거룩한 문(the Holy Door)” 앞으로 데리고 갔다.
 

성 베드로의 내부 성소는 5개의 큰 문들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 그들 중에 4개의 문은 열려있다. 거룩한 문이라고 불리는 5번째 문은 매 25년마다 열리는 오직 카톨릭 희년에만 열리게 되어 있다. 거룩한 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바티칸에서 팔리는 바티칸 이라는 책에 요약되어 있다:
오른 쪽 마지막의 비코 콘포르티(Vico Conforti: 1950)의 작품은 16개의 전통적인 화판에 구원을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 중 하나는 희년을 그렸다. 문은 거룩한 문이다. 이 문은 거룩한 해에만 열린다. 다른 때에 그 문은 벽돌로 쌓여 벽 속에 갇혀 이다. 각 희년 초에 교황은 은 망치로 벽돌을 부수는 시늉을 한다.
바티칸에 실린 기사들을 보면 카톨릭의 희년과 거룩한 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설명되어 있다. 저자 로라 그래기(Laura Draghi)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벨 - 희년 - 은 고대 희브리인들이 모든 과거의 노예 상태로부터 자유를 선포하는 해로서 매 50년마다 양 뿔로 만든 나팔을 불었다. 모든 빚이 탕감되었고 노예들을 해방되었으며 재산과 땅은 본래 주인에게로 회복되었다. 1300년 보니페이스 8세에 의해 그리스도와 성자들에 의하여 마련된 “은혜의 보물(Treasury of Merit)”로부터 모든 믿음의 회원들에게 첫번째로 전반적인 죄사함을 허용하는 위대한 해를 희년으로 선포한 것은 당연하겠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이 해에 로마에 위치한 4개의 사도의 대성당을 순례함으로 고해성사를 보인다. 그 네 곳은 성 요한 라테란, 성 베드로, 산타 마리아 마기오르,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이다.
물론 고해성사는 카톨릭의 구원에 있어서 언제나 중요한 요소였다. 비록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만을 믿는 구원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지만, 고해성사의 교리와 연옥 교리는 역사 가운데 카톨릭 교회가 기금을 마련하는데 큰 이익을 보았다. 처음에 카톨릭의 희년은 매 100년마다 발생했다. 그러다가 50년으로 줄고, 그 후 25년마다 열리게 되었다. 로라 드래기는 그녀의 글에서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였는지 문서화하였다:
그러나 희년의 개념은 보니페이스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로마에서 13세를 맞이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군중들이 성 베드로 대성당을 순례하면서 엄청난 용서가 나타나고 있다는 군중의 소리를 인가한 것이었다. 교황의 선포는 대성당의 서판에 기록되었다. 그 내용은 사람의 귀에 울리는 듯한 라틴 구절로 선포되었다. “매 100년마다 로마에는 희년이 있을 것이다.”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겼을 때 로마 사람들은 희년의 축제를 끝까지 고집했으며 오히려 히브리인들을 따라 100년이 아닌 매 50년마다 희년을 기념하였다. 그러나 1350년에 로마를 찾은 순례자들은 성 베드로의 보좌가 비어있는 것과 도시가 지진에 의해 황폐케 된 것, 그리고 1348년 전염병으로 인해 로마 인구가 줄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다. 수세기 동안 희년 축제는 히브리인들처럼 50년으로 하기도 하고 또는 예수님의 사역 기간인 33년으로 하기도 하다가 식스터스 4세(Sixtus IV)가 거룩한 해를 매 25년마다 거행하기로 결정함으로 이 문제는 종결되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매 25년마다 죄를 탕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사람들이 어떤 장소를 순례하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탕감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성경에서 발견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마틴 루터를 분개하게 하였던 카톨릭 교회의 여러 오류 중에 하나이다. 어떻게 이러한 “순례적 면죄부” 이단이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추적이 가능하다:
1475년 희년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공식적인 법령에 그 모습을 드러냈고 문서로 인쇄되어 믿는 자들 사이에 뉴스와 기도 제목으로 나누어졌다. 1500년 문제 많은 교황 알렉산더 4세 보르기아는 희년과 예배 의식을 연결하여 거룩한 문을 여는 아름다운 예식을 소개하였다.
당신은 아마 내가 왜 카톨릭의 희년과 거룩한 문에 대하여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로마를 관광할 때 안내원이 말하길 거룩한 문이 2000년에 희년을 맞이하여 교황에 의해 열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1999년 12월 24일 성탄 이브에 교황 요한 바울 2세가 공식적으로 카톨릭 희년을 위해 거룩한 문을 열었다.
 

수백만의 카톨릭 신자들이 카톨릭 희년을 맞이하여 로마를 방문하였다. 물론 거룩한 문을 방문하도록 격려되었다. 나는 관광 안내원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이 유일한 기회를 놓치지 않을 예정이냐고 물었다. 이때 안내원의 대답은 열정적으로 “당연하다” 라고 하였다. “이곳 로마에 살기 때문에 더욱 유리합니다. 나는 죄가 많기 때문에 매일 이 문을 걸어서 지나갈 계획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카톨릭 지도자들 간에도 거룩한 문은 단지 상징적인 것이지 구원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카톨릭 교회가 실제로 무엇을 믿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관광 안내원은 구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람에게 있어서 구원이란 거룩한 아버지(교황)에 의해 제정된 어떤 예식 또는 교리가 전부였다.
 

참된 복음이 다른 복음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희년에 거룩한 문을 수천 수만번 걷는다고 하여 구원이 발생할 수 없다. 그러한 종교 행위로는 결코 구원 받을 수 없다. 오직 구원을 제공하는 문은 하나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라고 하셨다 (요 10:9).
 

마리아에 의한 구원
 

뉴스위크 잡지 1997년 8월 25일 호에 “마리아의 의미: 그녀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교회 내에 뜨거워지다” 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다. 카톨릭 교회는 언제나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거룩한 헌신을 강력하게 강조하여왔지만 이 기사는 “마리아 신학(Mariology)”이 더 높아지고 있음을 문서화하였다. 이 기사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카톨릭 교도들이 교황에게 새로운 교리를 선포할 것을 탄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리아가 어머니의 상태에서 “동-구속주(Co-redemptrix), 즉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모든 은혜의 중보자요 변호인”으로 승격되기를 청원했다.
 

오하이오 주, 스투벤빌(Steubenville)의 프랜시스칸 대학(Franciscan University)의 교수인 마크 미라밸(Mark Miravalle)은 이 청원을 한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그의 믿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는 세권의 책을 썼으며 여러 번 교황을 만나 뵈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나는 서기 2000년이 되기 전에 마리아에 관한 진리를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라고 말하였다. 그는 결론을 내리길, “무오류하신 교황께서 이 생각을 인정만 하신다면 정정된 마리아 교리는 최고 수준의 계시된 진리가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마리아를 동-구속주(Co-Redeemer)로 선포하려는 미라밸의 사명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람한 것으로 느껴지겠지만, 오히려 미라밸을 지지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지지자들이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마리아가 나타났다고 하는 사당들을 방문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장소들과 함께 파티마(Fatima), 구아달루프(Guadalupe), 메주고르제(Medjugorge) 등은 미사를 드리기 위한 영적 과열 지점들이 되었다.
 

이러한 운동들은 성경의 한계선을 넘어서는 상태로 마리아를 추앙하고 있다. 성경은 그녀가 처녀였지만 평생 처녀였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은 그녀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는 마리아와 관련한 다른 교리들, 즉 무원죄 잉태설(the immaculate conception), 및 마리아 승천설 같은 비성경적 교리들을 포용하여 마리아에게 매우 뛰어난 자리를 허락하였다.
 

뉴스위크 기사는 교황이 157 개의 국가로부터 4백만의 서명이 들어있는 새로운 교리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새로운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평균 매달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서명을 한 사람들 중에는 고인이 된 캘커타(Calcutta)의 머더 테레사가 있고 거의 500명의 주교들과 고인이 된 뉴욕의 존 오커너(John O’Conner) 추기경을 포함한 42명의 추기경이 있었다. 뉴스위크 지에 의하면 “로마에서 이토록 조직적인 청원은 있어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 케네쓰 우드워드(Kenneth Woodward)가 말한 것처럼 “카톨릭 교도들이 교황에게 무오류 선언을 간청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아직 교황 요한 바울 2세가 이 청원에 대하여 공식적인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뉴스위크 에 기사를 쓴 케네쓰 우드워드는 교황이 무오류 선언을 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믿고 있다. 그는 기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폴랜드의 수호 성자로서 와도위쓰(Wadowice) 출신의 이 교황에서 마리아는 언제나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져왔다. 그는 또한 마리아가 1981년 암살 시도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주었다고 믿고 있다. 그는 비록 공식적인 교리 선포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마리아를 5번 이상 “동-구속주”로 언급하였다. 그는 마리아의 역할에 대하여 50번 이상의 주일 설교를 통해 선포하였고 종종 구속에 있어서 그녀의 “동역(co-operation)”을 강조하였다.
만일 이 청원이 성공하면 역사적인 기독교는 새로운 교리를 포용하게 되면서 로마 카톨릭에 의해서 다시 한번 완벽하게 변하게 될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의 흘린 보혈로 이루어진 구속을 함께 이룬 장본인이 될 것이다. 또한 신도들은 마리아를 통해서 기도와 청원을 드려야만 할 것이며 그러한 기도만이 예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가 될 것이다.
 

몇 년 내로 카톨릭 교회 내에 발생할 일들을 주목하는 것은 흥미롭다. 성경은 분명히 선포하길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오직 한분의 중보자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딤전 2:5). 마리아는 동-구속주로 승진시키려는 지지자들은 성경을 한번이라도 고려해 보는 것이 지혜로운 것은 아닐까?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면서 죄 많은 인간들이 그들의 마음 속에서 발상해서 만든 것들을 열광적으로 포용할 때 우리는 속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성경이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 기독교의 이름으로 마지막의 커다란 미혹이 있을 것을 경고하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 그 마지막 미혹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황도 분명히 성경을 읽는 것으로 확신하건대 나는 그가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쓴 내용을 보았으면 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이 쓰기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골 1:13-15).
 

판카마마(Panchamama)는 누구인가?
 

캐롤 다미안(Carol Damian) 박사는 마이애미의 플로디다 국제 대학의 시각 예술 분야의 교수이다. 라틴 아메리카 예술에 권위를 가진 뛰어난 학자로서 그녀는 안데스 산맥의 동정녀 (the Virgin of the Andes) 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저자가 페루 쿠스코(Cuzco)에 있는 카톨릭 수녀원을 방문한 때 생겼다. 그곳은 한때 잉카 제국의 수도로서 1마일이나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였다.
 

랜칠레 월간 항공 잡지 1996년 11월호에 다미안 교수는 어떻게 자기의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실었다:
특별히 그림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특히 수녀원 박물관에 있는 젊은 여인들은 그 그림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동정녀 마리아(내 생각일지도 모른다)의 커다란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데 안내원이 경의를 보내는 어투로 설명하길 이 그림은 판카마마, 즉 어머니 지구신(the Earth Mother)으로서 안데스 산맥을 수호하는 신이라고 하였다.
다미안 박사는 안내원이 판카마마를 설명할 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그 글에 쓰고 있다. 그녀는 더 알고 싶어서 질문했다고 한다:
왜 동정녀 마리아를 판카마마라고 부르는지 설명 바랍니다. 누가 판카마마입니까? 사실 그림은 내가 본 그림과는 좀 다르게 그려졌지만 그럼에도 그 그림은 카톨릭의 동정녀 마리아처럼 보이는데요. 어떻게 로마 카톨릭 수녀원에 있는 사람이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나요?
그 글에 의하면 다미안 박사는 15년 동안 매해 그 수녀원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페루의 여러 시골 교회들을 방문하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더 많은 동정녀 마리아의 그림을 발견하게 되었고 안내원의 도움으로 지역 신도들로부터 케쿠아(Kechwa) 원주민 언어를 통역해서 관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언제나 같았다. 동정녀 마리아는 서로 다른 여러 이름을 취하고 있었으며 다른 복장과 다른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또한 다른 물체와 특징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안데스인들의 동정녀였다. 그녀는 판카마마, 즉 어머니 지구신이었으며 또한 달의 여신이었고, 그들이 코야(Coya)라고 부르는 잉카 황후의 왕족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매우 사랑했다.
어떤 비평가는 다미안 교수의 연구를 왜곡된 해석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 여러 곳을 방문해 보면 이방 신들이 카톨릭 교회 내에 변장하여 들어온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나는 남부 멕시코의 산 크리스토발(San Christobal)에 있는 카톨릭 교회 앞에서 닭들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목격했다. 교회 내부에는 죽은 사람들을 위한 여러 사원들이 있었다. 예배하는 자들은 그들의 가장 값비싼 것들을 희생 제물로 드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로마 카톨릭 교회 지도자들에게 카톨릭 교회 내에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지 알려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카톨릭 교회 내에 이미 이방 종교와 섞인 카톨릭 교회들은 그 교회 내에서 제거되어야 하지 않을까?
 

1994년 사건이 있은 후부터 나는 더욱 염려하게 되었다. 1994년에 “제 3의 새천년을 위한 기독교 사명: 카톨릭과 복음주의자들이 하나가 되다”라는 문서 계약이 있었다. 이 문서에 척 콜슨(Chuck Colson), 팻 로벗슨(Pat Robertson), 빌 브라이트(Bill Bright)와 같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서명을 하였다. 카톨릭이 복음이 무엇인지 완전히 혼동하고 있는 때에 전도를 위해서 그들과 연합하겠다는 이러한 계약은 내가 볼 때 불경한 연합이다.
 

팻 로벗슨과 교황
 

수세기 동안 카톨릭 교회의 권력층은 대중을 위한 성경 해석은 오직 믿을 만한 특수 그룹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고 가르치며 그러한 시스템을 세워왔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은 하나님의 풍성한 경륜에 대하여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곳 저곳의 성경 몇 구절을 전통 및 교리와 혼합 시켜서 가르쳤다. 따라서 참된 영적 양식이 공급될 수 없었다. 성경은 성경 자체에 대하여 언급하길,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한다 (딤후 3:16-17).
 

개신교도들은 언제든지 성경을 읽고 연구할 수 있는 자유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성실과 열심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개신교도들 중에는 과거에 카톨릭 교도들이 강요받은 것과 똑 같은 상태를 더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이 읽고 연구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연구한 후에 그들에게 말해줄 것을 의지한다는 점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것처럼 우리는 성경 연구를 열심히 해야 한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5). 만일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못하는 지도자를 의지한다면 우리는 잘못 인도함을 받게 될 것이다.
 

오늘날 로마 카톨릭과 화해를 하는 것이 세계적인 부흥의 열쇠라고 확신하는 많은 유명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팻 로벗슨은 “제 3의 새천년을 위한 기독교 사명: 카톨릭과 복음주의자들이 하나가 되다” 라는 문서에 서명을 한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그는 카톨릭과의 연합이 옳은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의 뉴스 편지에 이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CBN 방송의 창립자인 팻 로벗슨이 거룩한 분 교황 요한 바울 2세를 만났다. … 그는 이 만남을 아주 따스한 만남이라고 설명하였다. “나는 이 만남이 역사적 사건이라고 믿습니다.” 로벗슨은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뉴욕의 추기경 존 오커너를 방문하신 교황을 맞이하였다. 만남은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교황이 집전했던 미사를 마친 후에 한 시간 가량 있었다. 로벗슨은 교황을 칭하길, “주님의 겸손하시고 자상하신 종” 이라고 하였다. .. 로벗슨은 교황에서 CBN이 기독교의 일치와 세계 복음화를 위해 힘쓰겠다는 다짐의 편지를 드렸다. 로벗슨은 또한 교황의 최근 기독교 통합을 위한 회람 편지 모든 것이 하나가 될지라 로 인해 자신마저도 격려를 받았다고 편지를 썼다. 로벗슨은 또한 교황이 최근 카톨릭 교도들에게 기독교의 일치를 위해 헌신하라는 부름을 한 점에 대해 교황을 높이 칭송했다. …
교황과 팻 로벗슨
 

팻 로벗슨 및 여러 복음주의자들이 교황 및 카톨릭 교회와의 새로운 연합에 대하여 열광적인 반면, 교황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매크마혼(T. A. McMahon)이 “복음주의적 기만”이라는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통합 일치가 양방향이라고 신문사들이 보도에 있어서 심각한 실수를 했던지 아니면 팻 로벗슨이 스스로 속아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오레곤 사람들(Oregonian) 잡지는 두 번의 해드라인에 걸쳐 로벗슨의 목표를 좌절시키는 기사를 내었다: “교황이 남미에서 개신교의 활동을 막다.” “교황이 중미의 교회들을 보호하기 위한 성명을 발표하다.”
 

이 연합 신문사의 첫째 기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 주 교황의 방문은 다른 교회로 개종한 로마 카톨릭 신도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려는 노력을 포함한다.” 두 번째 기사는 교황이 보는 “복음주의-카톨릭”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한다: “전통적으로 중미에서 카톨릭 교회가 우월한 자리에 있었다. 이에 대한 개신교의 정면 도전에 대하여 교황 요한 바울 2세는 지난 화요일에 개신교 선교사들을 향하여 비난하길 그들이 로마 카톨릭 내에 혼동과 불안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팻 로벗슨 및 여러 복음주의자들이 바라는 통합과 로마 카톨릭이 꿈꾸는 통합과는 전혀 다른 것임이 자명하게 드러났다. 예를 들어, 기독교 통합을 추진하는 바티칸 비서장 추기경 어거스틴 비아(Augustine Bea)의 언급을 살펴보자:
만일 현재 진행중인 로마 카톨릭의 통합 운동 및 모험, 포용을 교리적 차원에서 재점검하는 것으로 본다면 이는 로마 카톨릭을 크게 오해한 것이다. 현재 교회가 하려는 것은 고정된 교리들을 현 시대에 맞게 더욱 창의적으로 추진하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록을 좀더 분명히 하고 싶다. 팻 로벗슨이 뉴욕에서 교황을 만나기 몇 달 전에 요한 바울 2세는 바티칸에서 주일 설교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기독교의 통합은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성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에게 부여한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교회의 통합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뜻을 받아들여 주교들의 사도적 권위 및 베드로의 후계자들과의 교통을 인정해야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
개신교와 카톨릭을 그토록 오랫동안 분리시켜 놓았던 바로 그 교리적 문제에 대하여 조금도 타협함이 없는 카톨릭 교회와의 교회 통합이 개신교 교회에 어떻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인가? 개신교의 복음적 교회에 이러한 통합을 가능케 하는 어떤 동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출처] 바벨론 포도나무와 새 포도주 - 로마의 계시 - 로저 오클랜드
http://blog.naver.com/thebloodofx/2008701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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