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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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뱀의 능력

15. 뱀의 능력
 
잠언 16장에서 솔로몬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초가 될만한 매우 중요한 성경적 원칙을 선포한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 16:3). 신자가 된 이후에 나는 영적인 여정 가운데 있어 왔다. 나는 어떤 길을 따라가야 하는지 분명하게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그 길에 항상 머물렀던 것은 아니었다. 어려운 시간도  있었고 깊은 골짜기의 시간도 있었다.
 
나의 영적 여정은 진리를 찾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인하여 이 여정을 달려오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내게 미혹 받은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셨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속고 산다. 성경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라고 언급한다 (렘 17:9).
 
내 사역의 처음 15년은 그리스도인들을 훈련시켜서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이었다. 성경적 진리를 촉진시키기 위한 나의 열망은 복음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영적으로 강한 양들이 잃은 양들을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사건들과 상황을 겪게 되면서 다른 각도에서 나의 소명을 보게 되었다. 여러 곳을 여행 다니면서 기독교가 미혹에 빠져 있으며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독교가 비성경적인 사상과 체험에 신속하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마치 전염병이 번지는 것 같았다. 각 개인의 그리스도인들, 교회들, 여러 기독교 기관들이 이름만 기독교이지 실제로는 성경을 기초로 하고 있지 않았다. 사실 전개되고 있는 기독교 동향은 성경이 마지막 때에 발생하기로 예언한 대배교와 같은 선상에 있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선교 기관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성경 중심의 믿음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베뢰아”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파수꾼으로 부르셨다. 물론 이 사역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내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신자가 된 이후 기독교는 절대적으로 믿던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우리의 생명의 첫째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타협한다면 그들은 경고를 받아야 한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지난 2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내게 전 세계를 여행할 기회를 주셨다. 여러 나라에서 성경적인 기독교를 볼 수 있었지만, 한편 산불이 난 것처럼 전 세계에 비성경적인 사상과 가르침이 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무지 말도 안되는 여러 종교의 사상들과 믿음들이 교회에 침투하고 있었다. 오스트렐리아, 북미, 남미, 러시아, 동 유럽, 서 유럽, 중국, 일본, 영국 등, 어디서든지 그러한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정말로 영적 “각성”이 분명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현상들을 보면서 이러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지금 이 땅의 교회들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인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받을 때 사람들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웃고 절제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흔들리는 현상은 무엇일까? 가슴이 타는듯한 뜨거운 느낌, 갓난 아기를 낳는 것처럼 고통하는 신음 소리, 우리에서 뛰쳐나온 야생 동물처럼 행동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현상일까? 아무리 성경을 찾아보고 연구하여도 이러한 현상들이 성령에 의하여 발생하고 있다는 성경적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새 포도주 운동’을 지지하는 자들은 다르게 주장하지만, 나는 그들이 잘못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성경 어디에서도 성령으로 충만한 신자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다르게 설명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정말로 “그것”이 뭘까?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새로운 것은 없다.
 
대학을 다닐 때 나는 역사를 싫어했다. 필수 과목으로 역사를 택하지 않고 철학을 택하였다.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나는 역사를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지금은 여행을 다닐 때마다 각 나라와 지역의 역사를 알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하고 있다. 어디서든지 현재와 미래를 알고 싶으면 과거의 역사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했다.
 
성경은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로서 성령으로 감동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경을 연구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역사를 볼 수 있게 된다. 불행하게도 인류는 “하나님의 이야기(History: His Story)”인 성경을 통하여 배우는 것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선택하신 이 민족에게 주의 능력을 보여주셨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주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주께 순종하면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고 만일 불순종하면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신명기를 예로 보자: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신 30:15-19).
 
성경을 대충 읽어보아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순종보다는 불순종을 선택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사사기의 내용은 이러하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사 2:11-14).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그들이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경고하기 위하여 주의 선지자들을 보내셨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씀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참된 선지자와 반대의 메시지를 외치는 거짓 선지자들의 음성을 따라갔다. 예레미야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거짓 선지자가 미래의 평화와 안전을 예언하고 있을 때 예레미야는 조국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간청했다. 예레미야 11장을 보도록 하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으로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따라 섬겼은즉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도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주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고난 가운데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리라.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대로 그 수치스러운 물건의 제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을 쌓았도다. 그러므로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 그들이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내게 부르짖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서 듣지 아니하리라” (렘 11:9-14).
 
비록 예레미야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살았던 선지자였으나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성경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우리는 위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 중에 마귀의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날 최대의 사기꾼이 사람들을 속이고 있지 않는가? 미혹에 빠져 있으면서 영적으로 각성 되었다고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무도 사탄의 궤계에서 예외일 수 없다. 만일 과거에 그 뱀이 사람들을 미혹하였다면 오늘 날에도 유혹하지 않을 리 만무하다.
 
주님 안에 거하라
 
교육이란 우리의 생각을 정보로 맺어주는 과정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는 자들보다 훨씬 더 특권을 누린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의 모든 생각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는 선택을 하는 반면 하나님과의 가까운 관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선택을 피하여야 한다.
 
미혹자 사탄은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는 인간을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교묘하게 인간을 속일 수 있을 만큼 영리하다. 인간은 타락 이후 정욕의 통치를 받아왔다. 따라서 누군가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정욕과 싸워 이겨야 한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적어 놓았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16-24).
 
바울이 나열하는 육체의 일들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다. 우리는 이 성경 구절로부터 육체란 부패하였고 죄성으로 가득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체를 십자가에 죽여야 한다. 그러나 완전하게 죽지 않는다. 따라서 언제나 육체와 성령 사이에 전쟁이 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롬 7:14-15).
 
갈라디아서 5장은 타락한 인간들의 행위들을 나열하여 놓았는데,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도 죄악을 저지를 수 있으며 죄악으로 가득 찰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한다. 또한 마귀적인 일들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많은 실례들이 문서화되어 있다.
 
최고의 사기꾼 사탄은 거짓의 아비이다. 그는 사람들을 영원한 지옥으로 보내길 원하며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속이기를 원한다. 절대로 속이는 뱀의 능력을 과소 평가하지 말라. 비록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신 분이 계시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의도적으로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 14:23-24).
 
기독교로부터 신비주의로 빠져듬
 
우리는 뉴에이지가 시작되는 것을 느끼고 있다. 뉴에이지 책이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각성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이 변화의 과정 중에 어떤 때는 감정적 치유, 가치관의 획기적인 변화, 그리고 존재의 심오한 신비 영역을 체험한다.” (Christina and Stainslav Grof, The Stormy Search for Self: A Guide to Personal Growth through Transformation Crisis, (G. P Putnam and Sons, New York, 1990), back cover.)
 
내 자신을 격렬히 찾으며 (The Stormy Search for Self)는 영적 현상에 대하여 세계적으로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크리스티나(Christina)와 스테니스라브 그로프(Stanislav Grof)가 쓴 책이다. 이 책의 서론을 보면 그들은 영적 개발이란 모든 인간 안에 내재한 진화적인 가능성을 계발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잠재 능력에 닿을 수 있도록 영적인 변화를 체험하도록 돕는다.
 
크리스티나 그로프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호눌룰루에서 자라났다. 전통적인 가치에 따라 얌전하게 살았던 전형적인 소녀였다. 10살이 되었을 때 집 근처의 정교회(Episcopal)를 다니면서 “예수님을 향한 열정”을 지녔다. 2년 후 그녀는 교회의 정교인이 되었다. 크리스티나 자신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매우 헌신된 그리스도인이었다. “제게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사셨던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생생하게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분은 제게 실제였으며 어디서나 함께 하셨습니다” (Ibid., 9). 
 
그러나 삶의 후반에서 그녀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급격하게 변하였다. 그녀의 개인적인 증거에 의하면, 그녀는 요가에 관심을 가지다가 남부 인도에서 온 스와미 먹타난다(Swami Muktananda) 라는 이름을 가진 구루(Guru: 종교적 체험 지식을 가진 특수 선생)를 만나게 된다. 이 구루는 자신이 “자아를 실현하여 샥티팥 (영적 각성) 선생이라고 불리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샥티팥 선생은 영적 계발을 추구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영적인 충격이나 에너지를 깨울 수 있는 말이나 만짐이나 주목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Ibid., 11).
 
수련장에서 스와미 먹타난다를 만난 사건은 크리스티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녀는 말을 들어보자: “나는 먹타난다와 그의 세계를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수련회 둘째 날에 나는 전혀 기대치 않은 샥티팥을 받게 되었습니다. 명상을 하는 기간에 먹타난다는 나를 바라보더니 그의 손으로 내 이마를 여러 차례 때렸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놀라운 일이 그녀에게 발생하였다:

  
 “갑자기 나는 높은 전류에 닿은 것처럼 몸이 흔들리는데 도무지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호흡은 저절로 가빠졌으며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나의 의식 속에서는 수천만개의 비전들이 스쳤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흐느껴 울었습니다. 또한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고통과 환희에 빠져 들었습니다. 힘이 넘치기도 했다가 잔잔해지기도 했습니다. 사랑과 두려움, 깊음과 높음을 느꼈습니다.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하였습니다. 나는 더 이상 그것을 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알라딘 램프의 지니가 병 밖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Ibid., 11). 
  
영적인 선생이 다른 사람의 머리에 손을 댈 때 어떤 에너지가 선생으로부터 그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신비한 어떤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은 여러 종교에서 흔한 일이다. 종종 이러한 능력을 받은 사람은 뒤로 자빠진다. 쓰러진 후 등을 땅에 대고 눕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생명이 마치 어떤 급한 동작에 연결된 것 같이 느낀다. 그 사람은 내적으로 기쁨과 평강을 주는 어떤 새로운 깊은 영적 실체에 연결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 그는 그 신비한 감정을 서술할 수 있다. 이후로 그는 새로운 영적 실체를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이 사람이 다시 “샥티팥”을 받게 되면 이 사람은 이제 “샥티팥” 선생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기독교 “샥티팥”?
 
신비에 기초한 기독교에 대하여 쓴 나의 첫 작품인 새 포도주인가 오랜 속임수인가 (New Wine or Old Deception) 을 연구하면서 나는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Rodney Howard Browne)이 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로드니 목사는 주장하길 자신은 “거룩한 웃음”의 은사와 “취함(drunkenness)”의 은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믿기에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한 후에 “기름부음”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고 했다.
 
새 포도주 운동 (The New Wine Movement) 지지자들에 의하면 하워드 브라운이 받은 “기름부음”은 전달이 가능하다. 당신이 “그것”을 받으면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기름부음”을 위하여 특별한 사람들을 지정하셔서 그들을 창구로 사용하신다고 믿는다. 또한 이 권능은 온 세상에 부어져서 대 부흥을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일이 주님 재림 하시기 전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워드 브라운은 새 포도주 운동의 다른 지도자들과 지지자들처럼 자신은 하나님을 만났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기름부음”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자격을 주셨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마치 용암의 물로 된 불과 같았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내 몸에 휘발류를 뿌린 후에 불을 붙인 것 같았습니다. 가장 잘 설명한다면, 전등에서 전구를 빼다가 그 소켓에 내 손가락을 꽂은 것 같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Rodney Howard-Browne, Manifesting the Holy Ghost. (R. H. B. E. Publications, 1992). 16.) 
  
거룩한 웃음 및 취함(drunkenness)의 은사를 배포함으로 인하여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은 대단히 유명해졌다. 이 두 은사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새로운 성령의 물결을 부으시는 여러 외적 증거 중에 둘이라고 한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 성령은 세계적인 성령의 물결을 통하여 세계적인 영적 각성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이다. 조절할 수 없는 정신나간 듯한 웃음은 지금으로부터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한다.
 
무신론에서 신비주의로
 
스테니스라브 그로프는 크리스티나의 남편이다. 그는 무신론자였는데 세계적인 영적 각성으로 영적 여정을 시작하게 된 사건이 있다. 스테니스라브 그로프 박사는 20년 동안 환각제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에 대하여 연구하면서 인간의 무의식의 영역 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는 그 책에서 자신도 기독교에서 동방 신비주의로 영적인 여정을 시작한 자기 아내와 비슷한 영적인 체험을 하였던 것을 기록하고 있다.
 
스테니스라브는 1931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그에서 태어났다. 무신론자로 자라나면서 그는 시그먼드 프로이드의 심리 분석에 대한 개괄적 강의들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프로이드의 이 책은 그로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프로이드의 꿰뚫는 지식, 가차없는 논리, 꿈과 언어로 상징되는 애매한 영역에 대한 이성적인 이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 자신을 격렬히 찾으며 에서 스테니스라브 그로프는 어떻게 무신론자에서 신비주의자가 되었는지 자신의 영적 여정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어렸을 때에 나는 종교적인 행사를 접한 적이 없었습니다. 내 부모님들은 저와 제 형제들에게 그 어떠한 특정 교회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나이가 자라나면 스스로 종교 문제를 택하기를 원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종교 및 동방 철학에 지적인 관심이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무신론자였습니다. 프라그의 챨스 약학 대학에서의 6년간의 공부는 나의 무신론적 세계관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어디서든 서방 약학 훈련의 특성은 물질적이고 기계적인 사고를 지지합니다. 더욱이 그 당시 프라그 및 동유럽의 나라들의 교육 시스템은 막시스트 사상으로 물들어있었기 때문에 더욱 물질적인 사고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주의나 신비주의로 나아가는 개념에 대하여는 모든 커리귤럼에서 조심스럽게 삭제되었으며 조롱의 대상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Ibid., 19). 
  
1950년대 후반에 스테니스라브는 스위스 베젤의 환각제 약학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1956년 그는 초기 실험을 치른 주인공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첫번째 환각제에 대한 강의에서 “환각은 무의식 세계로 들어가는 왕족의 길”이라고 서술하였다. 스테니스라브는 심리학에서 붙들고 있는 전통적인 관점으로부터 근본적으로 갈라지는 체험을 하였다:

  
 “나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어떤 우주적인 차원의 드라마의 중앙에 있었습니다. 빅뱅을 체험하였으며 어둡고 흰 통로를 지났습니다. 태양보다 수 천억배 더 크고 강한 초신성이 터지는 것과 일체되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때 여러 많은 이상한 현상들을 목격하였습니다. 무한한 전파를 발사하는 펄사 중성자 별들, 막대한 에너지를 발출하는 쿼사 준성 별 등.. 우주의 주요한 사건들을 목격하였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위대한 신비적 글들을 읽게 되면서 내가 겪은 이러한 체험들이 그들의 것들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Ibid., 22). 
  
그로프의 체험은 계속되었으며 여러 신비적인 만남들을 갖게 되었다. 그는 고대 신비적 전통과 동방 영적인 철학들이 언급하는 동일한 체험들을 갖게 되었다. 그것 중에는 강력한 힘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죽음과 재탄생을 연거퍼 겪는 체험들도 있었다. 다른 체험들은 인류와 하나가 되는 느낌,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 나아가 우주와 하나가 되는 느낌도 있었다. 그를 찾은 고객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문화로부터 온 신들(Deities) 및 악령들을 보았음을 보고하였으며 다양한 신화적인 영역에 방문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스테니스라브 그로프에게 과연 무슨 일이 발생하였던 것일까? 그가 과연 실제로 초자연적인 영의 세계를 접한 것일까? 그의 체험들에 대하여 자연 물질 세계관으로 이해될 수 있을까? 좀더 나은 통찰력을 갖기 위해서 그로프 자신의 설명을 들어보면 매우 도움이 된다:

  
 “나는 알더스 헉슬리(Aldus Huxley)가 소위 ‘영원한 철학’이라고 칭하였던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철학은 우주와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며 존재란 우주로부터 역사와 장소에 따라 작은 변수들과 요소들로 나타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깨달음들을 얻도록 돕는 유사한 지도들(maps)이 수세기 동안, 아니 수만년 동안 여러 문화 속에 있어 왔습니다. 여러 형태의 요가들, 부다(Buddhist)의 가르침들, 티벳 바즈라야나 신비 체험 의식들, 도교, 힌두의 수피교(Sufism), 카발라, 기독교적 신비주의, 카스머르 샤이비즘(Kasmir Shaivism) 등은 이러한 지도들 중에 몇 가지 예들입니다” (Ibid., 24-25).  
  
크리스티나와 스테니스라브의 증언으로부터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종교적인 능력을 만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든 무신론자에게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열반(Nirvana)을 향한 문이 활짝 열리면서 그리로 들어가는 체험들은 다양할 수 있다. 영적인 각성을 위하여 열리는 문은 칼 막스던, 예수 그리스도이던, 신비주의던, 종교던, 마약이던 아무 것이나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성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러한 경고를 하였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후 11:14-15).
 
쿤달리니 (Kundalini)
 
스테니스라브와 크리스티나 그로프는 둘 다 영적인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전달하는 영적인 에너지에 대한 설명은 고대 인도 문학에서 발견되며 이를 나타내는 용어로는 “쿤달리니(Kundalini)”라고 한다. 쿤달리니에 대한 다른 용어는 뱀의 능력이다. 잠재된 쿤달리니는 주로 남성의 음경에 세너번 감긴 뱀을 나타낸다. 쿤달리니를 깨우기 위한 실행으로는 명상, 또는 영적으로 개발된 선생이나 구루를 만나는 것, 또는 동양 종교와 관련한 여러 종류의 종교적 행위들이 있다. 어떤 경우는 특이한 종교적인 행위 없이도 갑자기 쿤달리니가 자발적으로 살아 일어나는 일들도 있음이 보고되었다.
 
쿤달리니, 곧 뱀의 능력은 일반적으로 불로 그려진다. 체험자들에 의하면 쿤달리니가 활동하게 되면 뱀은 “샥키” 라고 불리는 불 같은 형태로 바뀌며 인간의 등뼈를 통하여 움직인다고 한다. 쿤달리니를 체험한 각 개인마다 황홀경을 체험하였다. 이때 신체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는 각 개인에 따라 여러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그로프 부부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의 등뼈에는 아래로부터 위로 뜨꺼운 열이 올라가면서 강력한 에너지를 느낍니다. 그러면 그들의 몸은 발작을 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흔들리고 몸이 꼬입니다. 그들의 감정은 엄청난 에너지로 인하여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심한 감정의 기폭을 나타냅니다. 분노, 염려, 슬픔, 기쁨, 황홀경에 사로 잡힘 등의 모습이 나타나지요. 이 과정에서 각 개인들은 그들의 몸과 정신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오직 쿤달리니 에너지의 강력한 움직임이 이들을 다스릴 뿐입니다. 이러한 현상 중에는 의도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웃음들, 눈물들, 방언들, 전에 알지 못하던 노래들을 부리는 현상들, 영적인 주문을 외는 모습들, 요가 자세를 취하는 모습들, 다양한 동물들의 소리를 내거나 동물들처럼 움직이기도 합니다.” (Ibid., 78).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로프 부부에 의하여 서술된 뱀의 능력과 관계한 행위들은 현재 새 포도주 운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신경쓰이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내 자신을 격렬히 찾으며 라는 책은 1990년에 발행되었다. 새 포도주 운동과 이에 관련하여 나타나는 현상들은 1994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내에 새로운 가르침이나 동향이 나타날 때마다 우리는 반드시 성경으로 확인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연구할 때 뱀의 능력에 의하여 나타나는 현상들을 결코 성령의 사역으로 간주할 수 없다.
 
내가 쿤달리니 현상을 새 포도주 운동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연결시킬 때 여러 사람들이 와서 내가 “성령을 모욕하는 지점까지 왔다”고 경고하였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그러한 운동을 좇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기분이 나쁠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새 포도주 운동은 성령의 이름으로 행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성령의 가르침도 아니며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다. 뱀의 역사이다.
 
당신은 이를 알고도 가만히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 일에 대하여 책임을 묻지는 않겠는가?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또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질문을 많이 생각하며 성경적인 대답을 구하였다. 그후 나의 마음은 부담을 갖게 되었다.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괴한 일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신약의 초대 교회에 경고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 11:2-4).  
[출처] [새 포도주..] 15. 뱀의 능력
http://blog.naver.com/yoochinw/130069246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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