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코스
알파코스
Alpha Course
(2001 년 7월 Dave Hunt Newsletter)
자료출처 http://cafe.daum.net/ciak/6KEc/403
질문: Alpha Course 라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답변: 알파 코스는 영국 홀리 트리니티 브람튼 (Holy Trinity Brompton, HTB) 성공회 교회 직원으로 봉직한 Nicky Gumbel 이 시작한 사역임. 10 년 전 작은 규모로 시작하여 토론토 블레싱 (Toronto Blessing) 을 도입하고 나서 폭발적으로 성장하였음. 토론토 블레싱은 1994 년에 HTB 에 도입되었음. 기독교의 대부분의 교단들과 로마 가톨릭에서도 도입하고 있음. Gumbel 은 교황 요한 바오로 II 의 발언들을 인용하고 있으며, Vatican II 공의회 문서들을 읽어본 후에도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로마 교리에 아무런 충돌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알파 코스는 로벗트 슐러, 켄터베리 대 주교 George Carey 등의 인정을 받고 있다.
Carey 는 동성애자들을 인정하고 있으며, 로마 가톨릭교회와 완전 통합을 후원하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힌두교와도 영적 동행을 할 것을 주장하는 인물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복음주의자들 중, J. I. Packer 나 Os Guinness, Luis Palau, Gordon Fee,
및 Leighton Ford 등의 인물들도 동조하고 있다.
알파 코스 내용의 많은 부분이 복음주의적이고 성서적이지만, 알파의 강조점은 진리의 내용 보다는 경험에 있는 것 같다. 알파가 주장하는 회심 (conversion, 중생)은 복음을 통한 그리스도께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두고 있다. 알파가 증거하는 복음은 하나님이 말씀, 성령에 의한 죄에 대한 가책과 진정한 회개등이 아니라, 초자연적 능력, 곧 치료와 방언 등을 (복음의 증거로) 여기고 있다.
그들의 간증들은 성령 침례, 새로운 기도 생활, 성경에 대한 흥미, 교회 출석 등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미사에 대한 관심 등이며, 알파 코스가 얼마나 위대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가에 관한 것들이며, 그들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와 그가 치루신 죄에 대한 대가, 하나님의 심판 회개, 구원 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알파 코스로 어떻게 (자신의 삶이) 변화되었는가에 있다.
비데오 인터뷰를 통해서 Gumbel 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실패한 것 같다.
이 코스의 강조점은 성령을 받는 주말 프로그렘이다 (The major feature is the special weekend when the Holy Spirit is received).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는가를 가르치는 내용은 방언은사에 그 강조점이 주어지고 있다. 훈련 교범을 보면 사람이 방언을 시작하기 위해서 다른 언어를 말해 보도록 권장하고 있다. 구원받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은데도 Gumbel 은 성령을 받도록 권하고, 또 받을 수 있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Gumbel 은 토론토 블레싱에 완전 매료되어서 그 경험을 마치 1 만 볼트의 전류가 자기 몸을 통과한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HTB 교회를 통해서 토론토 블레싱이 영국과 유럽에 전파되었다. 알파는 동물들의 부르짖음, 넘어지는 것들 (이것 들을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고 주장함), 괴성(怪聲)과 웃음소리 등 . . .상상도 할 수 없는 소음들을 다 (성령의 일로) 인정하고 있다.
Personal Freedom Outreach (PFO), The Quarterly Journal
"The Alpha Course, Final Answer or Fatal Attraction?"
by G. Richard Fisher (1998)
Christianity Today 지가, 1998 년 4 월 27 일 자로 발행한 월간지에,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David C. Cook Communications 사의 전면 광고를 냈을 때 누가 감히 그 (광고 내용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있을 것인가? 더욱이, 그 광고에 J. I. Packer 나 Alister McGrath, Luis Palau, 및 Leighton Ford 같은 유명인사들의 추천서가 함께 들어있을 때 누가 주저할 것이며, 누가 감히 순간적으로라도 의심할 수 있을 것인가? 틀림없이 이는 동승할 가치가 있는 마차(馬車)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알파 프로그렘은 대단한 사상으로 여겨진다. 그럴 것이 위에 언급한 무게있는 사람들의 추천과 (주말 수양회 및 구릅 토의 등 방법으로) 기독교 신앙을 향상하는 비결을 가르친다는데. . .적어도 알파는 극상의 판매 효과를 위한 최상의 포장을 하고 나타난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인기란 그 내용의 진실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산타 크로스 나 이스터 바니 등은 당연히 실존 인물이나 실체들이 되어야할 것이 아닌가! 인기란 자동적으로 진리와 동일하다거나 혹은 진리를 창조해 내지도 않는다.
알파의 뿌리
알파 코스는 영국 런던에 소재한 성공회 소속 Holy Trinity Brompton 교회에서 Nicky
Gumbel 과 Sandy Millar 라는 교직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 뿌리는 1977 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제의 알파 코스는 Gumbel 이 1990 년대부터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알파 코스는 언제든지 수정 가능한 코스라고 항상 말하고 있다.
Dave Hunt 는 “런던의 홀리 트리니티 브람튼 은 . . . 영국과 유럽에 거룩한 웃음을 전파한 중심지가 되었다”라고 전하고 있다.1 이 교회는 쓰러뜨리는 예배와 “죽이는” (‘입신’
을 의미함) 마라톤으로 알려진 교회이며, 그 뿌리는 전(前) 토론토 에어포트 빈야드 교회의 담임 목사 John Arnott 의 기름부음에 의해서 발생한 역사들이라고 하는 것들에 있다. (소위 예배 때) “성령을 너무 많이 마신” 브람튼 교인들을 위해서는 교회에서 텍시를 불러 집에 까지 대려다 주었다. 이와 같은 일들은 고린도 전서 14 장에 기록된 질서있는 예배 규정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짓들이다.
Stephen Hill 이라고 하는 부흥사는 풀로리다 펜사콜라에 소재한 Brownsville Assembly of God 교회의 복마전 감독자인데, 그는 HTB 교회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강력한 “성령으로 죽임” (slaying in the Spirit, ‘입신’을 뜻한 듯) 의 “능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가 “능력”을 전달하는 한 전달 통로로 믿고 있다. Hill 을 개인적으로 경험해본 우리들로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내려 가기를 원하시면, 내려 가십시오'이다.2
“브라운스빌 폭포” (The Brownsville Outpouring) (즉 “성령의 쏟아부어짐”으로 알려진)
운동은 년 간 수십억 불의 수입을 올리는 각종 “부흥” 상품 판매의 가두 흥행 쇼가
되었다.3 The Pensacola News Journal 지는 브라운스빌 지도자들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과, 그들이 엄청난 현찰을 거두어들이고 그 중 일부가 개인의 부동산 속으로 잠적해 버리는 사례를 보도한 바 있다. 브라운스빌의 “능력”은, 아이크 (Ike) 목사의 말과 같이, 결국 “달라 능력” (green power) 인 듯하다.
알파 영국 (Alpha Brits)
Christianity Today 지는 1998 년 2 월 9 일 자 기사에서 “알파 브릿트가 상륙하다” (The Alpha-Brits Are Coming) 이라는 표제 하에 4 페이지에 달하는 특집으로 알파 코스를 다루고 있다. 투데이 지는 ALPHA 를 첫 머리 글자들로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A", 'Anyone', 누구든지, 기독교의 신앙에 대하여 좀 더 알고자 하는 자는; "L",
'Learning and Laughter' 배우며 웃는; “P", 파스타(먹으면서 교제하는) 음식; “H", 'Help-
ing', 서로 서로 도와주며 (소 구릅에서 강의 내용에 따라 야기된 문제들을 토의함); “A",
'Ask anything', 어떠한 질문도 너무 단순 것이 없으며, 어떠한 질문도 적대적인 것도 없다 는 의미이다.4
그러나 이 기사에서 투데이 지는 다른 의견들도 다루고 있다: 모든 사람이 알파 땅에서 편안한 것은 아니다.
“전염적인 열정, 기업가(企業家) 정신, 성장을 위한 대담한 계획등이 알파 최고 지도자 들의 상표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알파를 응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교 회 지도자들은 알파 교리가 너무 은사주의 적이다, 너무 경험 위주 이며, 전통 교회들 에 대해서 너무 부정적이다고 비판하고 있다. 영국 쉐필드 대학교의 종교 및 사회 연구 소 소속 링컨 신학원 장인 마틴 퍼시 (Martyn Percy)는 알파에 대해서 말하기를, “순 례 (巡禮, pilgrimage) 가 아니라, 여행 봇짐 (package)에 불과하다”고 평하고 있다. “알파는 자신감을 가지고는 있지만 기독교의 편협한 표현이며, 그것은 교회 내의 성령 의 사역 보다는 개인의 성령 경험을 강조하고 있으며. . .지적 난제를 도외시한 복음전 도 보다는 개인 경험주의로 지향하고 있다고 비판한바 있다.”5
그와 유사한 다른 많은 유행품처럼 알파 프로그렘도 데이빗드 C. 쿡 커뮤니게이션의 그럴사한 광고 효과에 덕을 보고, 세계적 성공을 즐기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적어도 현제는.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광고에 의하면, 1997 년 한 해만도 50 만명 이상이 이 코스를 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알파 소품(小品)들
알파 코스는 비데오, 카셋트, 책들, 소책자들, 간증들 및 인도자들의 비데오와 안내서들 등으로 전비(戰備)가 가추어져 있다. 이 모든 제품구입에는 수 백불의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알파 코스와 프로그렘들은 광체가 나는 여러 개인 간증들에 의해서 진흥되고 있지만, 면밀히 검토해 보면 성서적 진실에 미치지 못하는 많은 약점들이 가득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 8:20 절 말씀,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 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에게 정녕 빛이 없음이라” (. . .it is because there is no light in them) 는 말씀이 기억된다. 짐 존스라는 자도, 가이아나에서 그의 마지막 생애를 마치는 순간에도, 빛나는 간증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집단적인 응원이 진리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지에 실린 과거 펑크 락 가수였던 키드 프레스트리지 (Keith Prestridge) 간증에 의하면:
프레트리지는 알파의 주말 (수양회 때 경험한) 성령에 대해서 권투 선수 같은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이 내게 안수할 때, 나는 해방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도 알지 않아 요? 성령을 느껴본 사람들은 어떻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고 있지요. 마치 한바탕 싸우고
나서 갑자기 쓰러져버리는 느낌 말입니다."6
여러분은 성령께서 사람을 권투선수처럼 쓰러트리는 구절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마치 존 윔버가 예수님을 수모 역도(力道) 선수들처럼 사람을 쓰러트리고 다니는 모습으로 설명한 것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7 성령님을 "느낀다"는 것은 성경에서 더 찾아보기 힘든 표현이다. 알파 코스는 대부분 빈야드나 은사주의 교회들에서 받아드려지고 있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나 성공회나 기타 여러 구릅에서도 사용하고 있다.8 딤 전 4:13, 16 절 말씀에도 불구하고 교리적 문제들은 무시되어 버리고 있다.
알파 비판
영국에서 출판되고 있는 기독교 연구 네트웍 져널 (The Christian Research Network
Journal CRN)지는 알파 프로그렘을 분석하고 다음 여섯 개 항목의 비판을 제시했다. 져널 지는 알파 코스는: "대량으로 과도하게 과장된 영적 기만이다. . .기독교 회심과 경험에 대한 전적으로 부적합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9 다음은 크리스 핸드 (Chris Hand)의 알파 분석이다:
1. 알파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 .그들은 성경에서 계시된 하나님을 우리 에게 제시하고 있지 않다. 알파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2. 알파가 다루고 있는 인간의 난제는 성경이 다루고 있는 것만큼 심각한 것이 아니다. . . .알파는 우리가 서 있는 상태에 대하여 강한 용어를 피하고 불분명한 말들을 사 용하고 있음으로 우리의 상태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죄란 우 리들의 삶을 망가트려 놓는 모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죄의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알파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경고하지 않고 있다. 알파는 하나님 께서 보시는 눈으로 우리를 보게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큰 태만이다.
3. 알파의 예수님은 성경의 예수님이 아니다. . .알파 코스 안에 "예수님은 죽으셨는 가?"라는 항목이 있지만, 그들은 이 질문에 대한 최종적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다.
4. 알파의 하나님 사랑은 성경의 하나님 사랑이 아니다. . .성경의 하나님은 사랑이시지 만 그 사랑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그런 사랑이다. 하나님의 거룩성과 완전 성이 문맥에서 배제된 사랑은 우리에게 그 사랑의 의미가 무의미하다.
5. 알파의 성령은 성경의 성령님이 아니다. . .알파의 '성령'은 성경 밖에서 역사하는 느 낌을 준다. 누구이든지 간에, 알파의 주말 (수양회)에서 받아드린 성령은 성경의 성 령은 아니다. 이 신비스런 손님들이 누구이든지간에, 그들은 뉴 에이지 열광분자들 과도 평안하게 어울릴 것이며, 비 기독교인들과도 별 문제 없을 것이다.
6. 알파의 회심은 성경의 회심은 아니다. . .그 것 (회심)은 대부분, 거룩함에 대한 어떠 한 깨달음도 없으며 죄로부터 구원받아야할 필요에 대한 어떠한 깨달음도 없이 그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정적 경험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 고,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 것은 우리 에게 진리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진술하고 있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상태를 충분이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고 있으며, '복음'을 우리에게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10
알파는 그저 옛 "성령 바텐더"의 주제에 새로운 의상을 입힌 것에 불과하다. 토론토와 브라운스빌의 재 상영에 불과하다. 다음과 같은 표제를 다시 붙이면 적합할 것 같은 운동이다: "광란의 단계들" "나의 느낌 속에서 하나님의 발견" "내부 동물의 방출". 그 결과들은 옛 에슬란 구릅들과 다를 바 없으며, 괴성의 치료와 마약 경험의 환희 같은 것이다.
알파의 결핍들
엘런 하우 (Allan Howe) 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알파 코스의 중심에 있는 것은 기독교의 복음이 아니라, 소위 "성령 주말"이란 것이며,
그 것은 "토론토 축복"에 들어가는 입교 절차를 약간 눈가림한 것이다. HTB 교회의
Nicky Gumbel 은 1994 년 5 월 토론토에서 돌아온 South-West London Vineyard
교회의 엘리노어 멈포드 (Eleanor Mumford) 의 "축복"을 받은 바 있다. 이 사건 이후
성령받기 위한 토론토 스타일의 가르침이 중심이 되었다. 한 알려지지 아니한 전도 도 구가 이렇게 해서 정통과 이단의 혼합된 제품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11
알파의 떨림과 굽기 (Alpha Shake and Bake)
CRN 져널에 기제된 Nicky Gumbel 의 말을 면밀하게 검토해보면, 알파 코스의 정체를 아는데 방향을 잡을 수가 있다. Gumbel 은 조금도 주저 없이 사람들을 밀교(密敎)적 경험으로 몰아가고 있다. 의식 상태의 변화, 자기 최면, 자아상실의 감정전입 등으로 이끌어서,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주장하고 있다. Gumbel 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사용하여서 사람들을 이끌고 궁극적인 목표인 히스테리, 자제력 상실, 정신상실 등에 이르게 한다. Gumbel 은 말하기를, 성령 주말의 목적은 각종의 이상한 출현들 (나
타남) 육체적 전율등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고 한다. 다음 내용을 보자:
때로 사람이 충만을 받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잎같이 떤다. 또 다른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숨을 들이마시는 것 같이 성령을 들여 마신다. 때로는 충만과 함께 신체적
열기를 손이나 기타 신체의 다른 부분에 실제로 느낀다. 어떤 사람은 온 몸이 "달아 오
른" (glowing all over) 체험을 하기도 한다. 한 여자는 온 몸에 "액체 열"을 느꼈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은 뜨겁지도 않은데 손에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12
이런 것은 몰몬 교도들이 "가슴이 타는" 체험들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은
느낌을 위해서 진리가 희생된 예들이지만, 우리는 몸의 저림이나, 감각적 느낌이나, 주관적
이며 항상 오류가 있는 인상들에 따라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이다.
이러한 경험은 이방신 쿤달리니 (Kundalini)를 섬기는 이방인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들인 것을 Gumbel 은 알아야할 것이다. 쉐이커 교도들의 극단적 감정표출들을 연구한 에드워드
엔드류스 (Edward Andrews) 는 Gumbel 이 진술하고 있는 내용과 동일한 현상들을 보고하고 있다. 알파 운동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들이 멀리나마 기독교와 연관이 있다고 격려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다. 그것들은 오히려 자기 최면, 암시, 의식 상태의 변개, 혹은 심지어는 아마 귀신들린 것이거나 사탄적 신비주의 같은 것일 수 있다.
알파 코스는 새로운 경험들을 추구하는 사회, 곧 새로운 무아경의 추구, 무절제한 감정주의 등을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는 큰 성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의 맑은 빛에 조명하여 보면 그것은 엄청난 실패이다. 누가 그것을 발표했거나, 공증했거나 간에, 최종적 질문은:
어떻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를 이루는가?” 에 있다.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Gumbel 은 시사하기를 알파 코스는 변화해 가고 있다고 했다. 오늘의 알파가 내일의 알파는 아니라는 뜻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Gumbel 은 말하기를: "우리는 아직 모든 것이 완전한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알파는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13
알파 근원
본인은 Gumbel 의 저서 "인생의 문제들"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바로 알파의 주 교과서이다. 이 263 쪽에 달하는 책은, 잘못된 (교리의 주장자인) 존 윔버와 같은 사람들의 주장들도 포함하고 있지만, 대체로 주류 복음주의 작가들의 의견을 따르고 있다. 본인은 거의 전적으로 CRN Jounal 기사 내용에 동의하고 있지만, 약간 다른 견지에서 강조점을 다루고, 어떤 점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들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마귀에게도 제 몫을 준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CRN 은 "알파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인생의 문제점들"
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교리를 제시하고 있지도 않고,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과, 특성들에 대한 교리를 가르치려고 시도하고 있지도 않다. 알파 지도자들은 아마 자기들의 기독교 신앙 입문에 대한 가르침은 기초적인 것이며 어떤 특정 주제들에 제한된 것들이라고 답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책은 예수님, 구원 및 기독교인의 삶에 관한 것이지, 다른 책들처럼 성경 전체의 조직 신학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전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기본 교리도 가르치지 않는다면, 전도받은 사람을 각종 정신적 우상들이나 뉴 에이지 사고방식들과 같은 잘못된 사고들 속에 그대로 둔 채로 그 사람을 회심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알파는 하나님의 인격 부분을 지나쳐 버리고 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 가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없이 전도를 했다는 것은 의심스러운 일이며 잘못된 일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 CRN 은 전적으로 옳게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 알파가 다루고 있는 인간의 문제는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상태보다 훨씬 심각하지 아니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래도 공정하게 평가를 한다면, Gumbel 은 "죄의 타락"이나 "죄의 권세" "죄의 형벌"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는 하다.14 로마서 3:23 절 말씀을 설명하고도 있다.15 Gumbel 은 또한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악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결과 야기된 우리들의 범죄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16 Gumbel 이 책의 처음 부분에서 다루고 있는, 죄의 결과들에 대한 강조는 독자들의 신분을 구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고는 있다. Gumbel 은 이 점에서는, 다른 문제를 다루는데와 같이, 완전히 요점을 잃은 것은 아니다.
다음 코멘트는 (CRN 의 주장하는 바에 대해서), "알파의 예수는 성경의 예수가 아니다"는 내용에 관한 것이다.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의 특성을 다루는 내용에서 Gumbel 은 좌쉬 멕도웰 (Josh McDowell), C. S. 루이스 (C. S. Lewis), F. F. 부르스
(F. F. Bruce) 등의 저서들로부터 직접 인용하고 있다. 예수님의 신성, 예언의 성취들, 구세주의 부활 등에 대해서 Gumbel 은 비교적 잘 다루고 있다. 위에 언급된 세 사람의 신학자들로부터 다른 것을 베껴올 수는 없을 것이다. Gumbel 의 책 중, "예수는 왜 죽으셨는가?"
라는 제목의 내용은 본인이 만족할 만큼 충분히 대속, 십자가,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그 다음 코멘트, 곧 "알파의 하나님 사랑은 성경의 하나님 사랑이 아니다"라는 부분은 첫 번 부분의 내용과 같이 (Gumbel 의) 결핍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다른 모든 특성들과 균형을 상실한 채 하나님의 사랑의 특성 만을 강조한 나머지 독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되 있다. 거룩과 공의가 없는 사랑은 아예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알파의 성령은 성경의 성령이 아니라"는 (CRN 의) 관찰에 대해서, Gumbel 은 약 13 쪽의 지면을 사용하여 비교적 주류의 성령 관을 기록하고 있다.17 "인생의 문제들"에서 제시된 성령은 정통적이며 교과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큰 문제는 그 다음 페이지에 담긴 내용들에 있다: "성령은 어떻게 역사하며 신자들에게 무엇을 행하시는가?"라는 제목의 부분에 기록된 내용이 문제다.
바로 여기에서, Gumbel 은 성서적 바른 길에서 벗어나 추측과 감정주의의 황혼지대로 들어가 버렸다. 알파의 성령은, 성령의 열매를 맺히게 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생활을 돕는 보혜사 (Comforter) 가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각종 괴상한 일들과 광란적 일들을 하게하는 변덕스런 존재로 기술되고 있다. 그의 주제곡은 아마 "흔들고, 떨고 굴러라"는 제목이 어울릴 것 같다. 성화 (sanctification) 에 관해서, 누가 이단을 말하려고 한다면, 바로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발견되는 개심자들 (converts) 이란, 온통 추측과, 인간의 상상, 및 극단적 감정 표출 등의 가시덤불과 잡목 속에 넘어지고 딩구는 자들 밖에는 없다.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방언에 대한 가르침과, 신체의 부분들이 탄다는 느낌 등에 관한 가르침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18 존 윔버가 가르친 지식의 말씀의 (은사)에 대한 가르침을 믿으라고 권하고 있다.19 신유에 관한 신구(新舊) 견해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20 환상과, 음성과, 꿈들에 대한 지도를 받으라고 권하고도 있다.21 산실(産室)이 변하여 새 신자들을 위한 황혼과 미로(迷路)가 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전형적인 은사주의 식품들이며 Gumbel 은 성경의 어떤 부분들이 역사적인 것이며 기술(記述, descriptive) 적인 것인지, 혹은 어떤 것이 규범(規範, prescriptive) 적인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오늘날에는 아무도 홍해를 가르는 일을 되풀이한 사람이 없으며,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오게 하거나, 죽은 자를 살리거나,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탈옥하게 하는 일들을 하는 사람이 없다. 오직 사람이 감정적으로 혹은 상태의 변경을 통해서 일어나는 선정(煽情)주의만 있을 뿐이다. 사실은, Gumbel 의 성령 역사에 대한 억측은 오늘날 성령과 그 분의 사역을 잘못 나타내고 있다. 선정주의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많지만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는 대단히 빈약하다. 이 분야에 대한 CRN 의 비판은 "정확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CRN 은 "알파의 회심은 성경의 회심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지적에 대해서는 오직 시간이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바탕에 의한 회심들이나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 의한 회심(悔心)들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회심자들은 (그들이 회심자들이라면 말이다), 의식변화, 무절제의 감정 주말(週末), 꿈과 환상들의 추구 등의 류사 (流沙, quicksand, 빠져 들어가는 모래사장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으며 장래에 소망이 없이 쓸려 내려가 버릴 것이다. CRN 이 자세하게 보도하고 있는 회심 간증들은 의심스러운 이야기들이며, 기독교인의 경험들이라기 보다는 사교(邪敎)적 신비주의에 가까운 것들이다. 우리는 오직 이들 "회심자들"에 대해서 애통할 뿐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들이 참으로 중생한 것인지 아니면 사산(死産)한 것인지를 아실 뿐이다.
알파 천국
CNR 이 다루지 아니한 한 가지 주요 분야는 Gumbel 의 "천국 도래 (Kingdom Now)" 신학이라는 것이다. "천국 도래 (혹은 천국 현재)" 라는 신학은 (통치주의, 혹은 승리주의로 불리우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궁극적, 완전한 천국에 약속된 신체적 건강의 축복들의 거의 전부를 (충분한 믿음으로) 받아 누릴 수 있다는 신학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천국의 거의 모든 은택을 현재 여기서 (here and now) 받아서 누리기 시작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미래 천국의 물체적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환상에 대한 Gumbel 의
주장이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천국은 '현재'와 '아직' (기다리는) 나라이다." Gumbel 은 또한 말하기를, 오는 세계는 원칙적으로 이 세계에서 실현될 수 있다. 그는 단정하기를:
"우리는, 오는 세상이 역사 속에 뚫고 들어온, 때의 중간에 살고 있다. 옛 세상은 계속 되고 있지만, 세 시대의 세력들이 이 세대 안에 일어났다. . . .신유는 예수님께서 시작 하신 천국의 표적들 중 하나이며 오늘 날 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께서 오늘 날도 기적으로 치료하실 것을 기대해야할 것이며 그 것은 하나님 나라의 활동의 한 부분이다."23
변증학자 헹크 헤네그레프 (Hank Hanegraaff) 는 천국 도래에 대한 허상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가짜 부흥의 지도자들은 천국 도래를 요구하고 있다!---천국에 수반되는 모든 물질적 부와, 대중으로부터의 찬사들과, 신체적 건강과 세상의 권세 등 모든 것을 이생에서 (받 아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다."24
Gumbel 은 그의 천국 도래의 신학을 두 성경 구절들에 대한 오해에 근거하여 주장하고 있다. 첫 번째는, 막 16:15-20 절 말씀이다. (이 구절은 논쟁이 되고 있는 구절이다). 그의 주장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점에 있어서도 그는 선택적이다. 그는 이 구절을 강하게 밀고 나가지는 않고, 오히려 그는 독사(毒蛇)들을 다루고 있거나 혹은 공도묘지를 깨끗하게 비울 수 있을런지 모르는 것으로 암시하고 있다. 왜 다 (한 거번에) 할 수는 없는지?
마가복음 16 장은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다. 역사적으로 성경에 대한 정통 입장은 성경의 신적 감동과 그 원본의 무오성이다. 아무도 그 전거가 의심되는 몇 개의 구절에 주요 신학적 주장을 근거해서는 않된다. 어떤 구절의 내부적 증거와 외부적 증거를 바탕으로하여 이러한 구절들을 받아드리지 아니한다고 해서 기독교인의 삶에 관한 교리는 조금도 변질되지 않는다.25
찰스 어드만 (Charles R. Erdman) 은 마가복음 주석에서 확인하기를,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은 일반적으로 후기 기록자가 첨가한 부록으로 이해된다."26
제네바 바이블 (The Geneva Bible) 은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에 대한 제설에 대해서:
학자들 간에 이 복음서의 끝 부분의 근원에 대해서 상이한 견해들이 있다. 어떤 헬라 어 사본들에는 이 부분이 들어 있지 않다. 어떤 사본들에는 이 9-20 절 (긴 끝 [longer Ending] 사본으로 알려짐) 을 포함하고 있으며, 혹은 어떤 사본에서는 "짧은
끝" (Shorter Ending) (1 절 정도로 마침) 으로 되어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사본들로 인하여 어떤 학자들은 9-20 절 부분을 마가가 기록하지 않고 후기에 다른 사람이 첨가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27
"천국 도래"의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Gumbel 은 계속해서 우리가 예수님 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는 요 14:12 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만약 Gumbel 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그는 정기적으로 사람들이 물 위로 걷도록 인도해야할 것이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되풀이 할 것이며, 죽은 자들을 살려야할 것이며, 변화된 몸을 보여줄 수 있어야할 것이며, 물을 포도주로 바꿀 수 있어야할 것이며, 불치병들을 대량으로 치료할 수 있어야할 것이며, 풍랑을 잠잠케 할 것이며, 물고기의 입에서 셋돈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 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히 Gumbel 은 자기가 가르치는 내용의 모델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넘어지게 하고, 두통이 살아졌다고 하고 팔굼치가 뜨거워졌다고 하는 정도는 예수님 사역의 능력과 범위에 비교하면 만화적 환상과 기만에 불과한 것이다.
Gumbel 은 정직하게 많은 성경해석 학자들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더 큰 일이란 많은 죄인들이 회심하는 일이 (예수님께서 일하실 때 보다는) 더 광범하게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고 지적했어야할 것이다. "더 큰"이라는 말은 능력의 범위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의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애 동안 하신 사역은 십자가 밑에서 불과 몇 명이 회심했을 뿐이다. 주님의 부활 후 사역은 사도들과 교회를 통해서 수백만의 구원을 경험한 것이다.
알렉산더 멕클레렌 (Alexander Maclaren) 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크고 작은) 비교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하신 제한된 영역과 작은 결과들과, 전 세 계에 걸쳐 성취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복음 사역의 결과에 대한 비교에 있다. 주님의 사 역보다 그의 종들이 이룬 보다 광범하고 완전한 영적 결과의 성취에 대한 비교를 의미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당신의 생애와 입술로 사람 영혼을 구하신 때 가능했 던 것보다 한 비천한 그리스도인이 다른 한 죄인을 불러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한 일이 주님 때의 하신 일에 비해서 더 큰일 된다는 의미이다."28
또한, 유명한 성경학자 올리버 그린 (Oliver B. Greene) 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헬라어 학자들은 말하기를 '그리고 이것들 보다 큰 것을 그가 하리라' (And greater
than these shell he do') 는 뜻이다. "일들 (works)" 이라는 말이 없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물리적 기적을 의미하고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수님의 뜻은 죽은 자를 살리거나 병든 몸을 고치거나 하는 것 보다 더 큰 규 모의 것을 의미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 보다 무언가
더 큰 것을 수행했다. 그리고 나는 예수님께서는 바로 복음 전파를 의미하신 것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부활하셔서 높이 올리심을 받은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만민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파하고, 어둠에 있는 영혼들에게 빛을 향하게 하여 불신자 들을 성령으로 중생케하는 일들이 문둥병자를 깨끗케하고 손마른 자의 손을 고치는 일 보다는 훨씬 더 큰 일이다."29
헤리 아이언사이드 (Harry Ironside) 박사의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의 복음을 불과 열 한 명의 제자들에게 맡기시고 땅 끝 까지 전하라고 명 하신 후, 이 장면을 떠나실 때, 온 세상은, 이스라엘의 극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방 종교를 믿는 불신의 어둠 속에 있었다. 그러나 불과 3 백년 내에 이방신을 섬기던 로마 제국의 모든 신전들은 거의 폐쇄되었으며, 회심자들은 수 백만에 달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더 큰 일이다. 수 세기의 역사를 통해 (하신 것 같이) 주님께서는 이 사 역을 계속하실 것이다.30
찰스 라이리 (Charles Ryrie) 는 요 14:12 절 말씀에 대해서:
(복음의 전 세계 전파를 통해서) 더 큰 범위에, 그리고 (영적 속량과 오순절 이래 무수 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몸 안에 인도하여 넣는) 효과를 의미한다.31
제네바 스타디 바이블 (Geneva Study Bible) 의 요한복음 주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4:12 의 보다 큰 일들. 개개인의 신자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 보다 더 큰 기 적을 행하리라고 예수님께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한 교회의 일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 보다 그 숫자에 있어서나
영토에 있어서 '더 큰' 것을 하리라는 뜻이다."32
어떠한 의미에서 이든지 간에, 천국은 "지금" 도래했는가? 물론 천국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화되었다. 천국의 "현재" 양상이 왕께서 질병을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이 땅에 걸어 다니 실 때 그 일부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완전한 천국의 순간적 모습을 보게 하셨다. 승천하신 이후, 주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속죄와 구속과 구원을 통하여 천국의 영적 축복들을 제공하시고 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요 18:36) 고 하셨다. 온전한, 완성된 천국은 앞으로 올 것이다.
심지어는 주일학교 아이도 이 땅이 하늘나라는 아니며 그래서 우리는 나라가 임하옵시며 라고 기도하는 것을 알고 있다. 완전하고 최종적인 천국은 왕께서 다시 오실 때 도래할 것이다 (마 26:29).
우리의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을 입을 날이 올 것이다 (고린도 전서 15 장). 우리는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다 (롬 8:23).
조지 엘던 레드 (George Eldon Ladd) 는 영적 축복들 (및 현재의 중보적 천국의 은택들)과 훗날 완성되고 완전한 천국이 그 모든 축복들과의 예리한 차이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메시아의 구원이 임재한 (도래한) 사실이 예수님께서 병든자들을 치료하실 때에 "구원" 이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혈루증으로 부터의 구출을 의미하며 (막 5:34), 소경이 보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막 10:52), 귀신이 쫓겨나는 것을 의미하며 (눅 8:36), 심지어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 을 의미한다 (막 5:23).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해방들이 메시아적 구원이 도래한 것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말씀하셨다 (마 11:4-5). 이러한 것들은 최종적으로 몸의 영생을 의 미하는 종말적 하나님 나라의 삶을 약속하는 보증들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영 혼들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전 인간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33
레드는 계속해서:
"이러한 신체적 해방들에 대한 제한은 장차 나타날 것들과 비교되는 현재 천국의 상태 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 종말의 천국에서는 "부활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 들" 모두가 (눅 20:35) 부활한 후의 불멸의 영생 속에서 질병과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다. 천국의 현재 사역 기간 [곧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중]에는 이 구원의 능 력이 불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미친 것이다. 병든자들과 불구자들 모두가 다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다. 모든 죽은 자들이 다 살아난 것도 아니다. 복음서의 기록에 보면 오직 세 사람만이 죽음에서 살아났을 뿐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과 직접 접촉을 통해서, 혹은 제자들을 통해서 고침을 받았다 (막 6:56). 천국의 구원의 능력은 아직 우 주적으로 역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34
ALF - 알파
알파의 결핍들은 알파의 장점들에 비해 너무 크다. 이 결핍들을 ALF 를 첫 머리 글들로 표현할 수 있겠다:
Advocating Kingdom Now theories (천국 도래 이론들에 대한 옹호)
Locked into fickle emotions (변덕스러운 감정의 포로)
Faulty biblical understanding (잘못된 성서적 이해)
Gumbel 은 상당한 진실들을 말하고 있지만 오류가 더 많다. 알파 코스는 대단히 잘 포장되었지만 '이 콜리' (e. coli)를 포함한 음식과 같다. 영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위험이 많다. 순진한 사람들은 작은 아이디에 현혹되어 슬며시 들어온 큰 오류를 묵과할 수 있다.35
그 사상은 훌륭하게 생각되었던 관계가 결국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과 같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치명적 사상이다. 알파 코스는 사람들을 이끌어 성경 공부를 인도한다고는 했지만 결국은 그들을 이끌어 자신의 감정들과 경험들에게로 향하게하는 코스이다. 알파 코스는 우회하며 윤회는 정함 없는 감정과 육신적 느낌들과 자기 중심 속으로 향하게 하여 영혼에 대한 참 사랑으로부터 격리시켜버린다. 이 코스는 사람들을 넋을 잃고, 혼돈케하여 종래는 더 악화된 상태로 빠지게한다. 소위 성령 주말이라고 하는 것들은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과 매일 동행하는 건전하고 균형있는 신앙생활과는 비교도 않된다.
교회 목사로서 나는 단 하루도 무슨 프로그렘이다, 비데오다, 혹은 교과 과정들이다 하는 것들을 소개하는 전화를 걸어 교회가 '되어가도록' 돕다는 물건을 파는 소개광고를 받지 않는 때가 거의 없다. 나의 신념은 나의 교회를 '되어가도록' 돕는 것은 성경 밖에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이런 저런 유행들을 판매하는 상품들로 마음이 팔려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단호하게 '노' 라고 대답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위 부흥 제품들이나, 기독교를 상품화하고 창녀화 시키는 것들에 눈을 돌리기 보다는 매일 성경과 마주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위해 일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딤후 3:15-17).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 가는 것들과 목숨을 위협하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들로부터 눈을 다시 돌려 우리들의 지역 교회를 위해 전력을 쏟을 것이며, 사역을 위해서 은사를 사용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Alpha Course
(2001 년 7월 Dave Hunt Newsletter)
자료출처 http://cafe.daum.net/ciak/6KEc/403
질문: Alpha Course 라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답변: 알파 코스는 영국 홀리 트리니티 브람튼 (Holy Trinity Brompton, HTB) 성공회 교회 직원으로 봉직한 Nicky Gumbel 이 시작한 사역임. 10 년 전 작은 규모로 시작하여 토론토 블레싱 (Toronto Blessing) 을 도입하고 나서 폭발적으로 성장하였음. 토론토 블레싱은 1994 년에 HTB 에 도입되었음. 기독교의 대부분의 교단들과 로마 가톨릭에서도 도입하고 있음. Gumbel 은 교황 요한 바오로 II 의 발언들을 인용하고 있으며, Vatican II 공의회 문서들을 읽어본 후에도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로마 교리에 아무런 충돌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알파 코스는 로벗트 슐러, 켄터베리 대 주교 George Carey 등의 인정을 받고 있다.
Carey 는 동성애자들을 인정하고 있으며, 로마 가톨릭교회와 완전 통합을 후원하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힌두교와도 영적 동행을 할 것을 주장하는 인물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복음주의자들 중, J. I. Packer 나 Os Guinness, Luis Palau, Gordon Fee,
및 Leighton Ford 등의 인물들도 동조하고 있다.
알파 코스 내용의 많은 부분이 복음주의적이고 성서적이지만, 알파의 강조점은 진리의 내용 보다는 경험에 있는 것 같다. 알파가 주장하는 회심 (conversion, 중생)은 복음을 통한 그리스도께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두고 있다. 알파가 증거하는 복음은 하나님이 말씀, 성령에 의한 죄에 대한 가책과 진정한 회개등이 아니라, 초자연적 능력, 곧 치료와 방언 등을 (복음의 증거로) 여기고 있다.
그들의 간증들은 성령 침례, 새로운 기도 생활, 성경에 대한 흥미, 교회 출석 등과 로마 가톨릭 교회의 미사에 대한 관심 등이며, 알파 코스가 얼마나 위대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가에 관한 것들이며, 그들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와 그가 치루신 죄에 대한 대가, 하나님의 심판 회개, 구원 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알파 코스로 어떻게 (자신의 삶이) 변화되었는가에 있다.
비데오 인터뷰를 통해서 Gumbel 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실패한 것 같다.
이 코스의 강조점은 성령을 받는 주말 프로그렘이다 (The major feature is the special weekend when the Holy Spirit is received).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는가를 가르치는 내용은 방언은사에 그 강조점이 주어지고 있다. 훈련 교범을 보면 사람이 방언을 시작하기 위해서 다른 언어를 말해 보도록 권장하고 있다. 구원받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은데도 Gumbel 은 성령을 받도록 권하고, 또 받을 수 있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Gumbel 은 토론토 블레싱에 완전 매료되어서 그 경험을 마치 1 만 볼트의 전류가 자기 몸을 통과한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HTB 교회를 통해서 토론토 블레싱이 영국과 유럽에 전파되었다. 알파는 동물들의 부르짖음, 넘어지는 것들 (이것 들을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고 주장함), 괴성(怪聲)과 웃음소리 등 . . .상상도 할 수 없는 소음들을 다 (성령의 일로) 인정하고 있다.
Personal Freedom Outreach (PFO), The Quarterly Journal
"The Alpha Course, Final Answer or Fatal Attraction?"
by G. Richard Fisher (1998)
Christianity Today 지가, 1998 년 4 월 27 일 자로 발행한 월간지에,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David C. Cook Communications 사의 전면 광고를 냈을 때 누가 감히 그 (광고 내용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있을 것인가? 더욱이, 그 광고에 J. I. Packer 나 Alister McGrath, Luis Palau, 및 Leighton Ford 같은 유명인사들의 추천서가 함께 들어있을 때 누가 주저할 것이며, 누가 감히 순간적으로라도 의심할 수 있을 것인가? 틀림없이 이는 동승할 가치가 있는 마차(馬車)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알파 프로그렘은 대단한 사상으로 여겨진다. 그럴 것이 위에 언급한 무게있는 사람들의 추천과 (주말 수양회 및 구릅 토의 등 방법으로) 기독교 신앙을 향상하는 비결을 가르친다는데. . .적어도 알파는 극상의 판매 효과를 위한 최상의 포장을 하고 나타난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인기란 그 내용의 진실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산타 크로스 나 이스터 바니 등은 당연히 실존 인물이나 실체들이 되어야할 것이 아닌가! 인기란 자동적으로 진리와 동일하다거나 혹은 진리를 창조해 내지도 않는다.
알파의 뿌리
알파 코스는 영국 런던에 소재한 성공회 소속 Holy Trinity Brompton 교회에서 Nicky
Gumbel 과 Sandy Millar 라는 교직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 뿌리는 1977 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제의 알파 코스는 Gumbel 이 1990 년대부터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알파 코스는 언제든지 수정 가능한 코스라고 항상 말하고 있다.
Dave Hunt 는 “런던의 홀리 트리니티 브람튼 은 . . . 영국과 유럽에 거룩한 웃음을 전파한 중심지가 되었다”라고 전하고 있다.1 이 교회는 쓰러뜨리는 예배와 “죽이는” (‘입신’
을 의미함) 마라톤으로 알려진 교회이며, 그 뿌리는 전(前) 토론토 에어포트 빈야드 교회의 담임 목사 John Arnott 의 기름부음에 의해서 발생한 역사들이라고 하는 것들에 있다. (소위 예배 때) “성령을 너무 많이 마신” 브람튼 교인들을 위해서는 교회에서 텍시를 불러 집에 까지 대려다 주었다. 이와 같은 일들은 고린도 전서 14 장에 기록된 질서있는 예배 규정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짓들이다.
Stephen Hill 이라고 하는 부흥사는 풀로리다 펜사콜라에 소재한 Brownsville Assembly of God 교회의 복마전 감독자인데, 그는 HTB 교회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강력한 “성령으로 죽임” (slaying in the Spirit, ‘입신’을 뜻한 듯) 의 “능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가 “능력”을 전달하는 한 전달 통로로 믿고 있다. Hill 을 개인적으로 경험해본 우리들로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내려 가기를 원하시면, 내려 가십시오'이다.2
“브라운스빌 폭포” (The Brownsville Outpouring) (즉 “성령의 쏟아부어짐”으로 알려진)
운동은 년 간 수십억 불의 수입을 올리는 각종 “부흥” 상품 판매의 가두 흥행 쇼가
되었다.3 The Pensacola News Journal 지는 브라운스빌 지도자들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과, 그들이 엄청난 현찰을 거두어들이고 그 중 일부가 개인의 부동산 속으로 잠적해 버리는 사례를 보도한 바 있다. 브라운스빌의 “능력”은, 아이크 (Ike) 목사의 말과 같이, 결국 “달라 능력” (green power) 인 듯하다.
알파 영국 (Alpha Brits)
Christianity Today 지는 1998 년 2 월 9 일 자 기사에서 “알파 브릿트가 상륙하다” (The Alpha-Brits Are Coming) 이라는 표제 하에 4 페이지에 달하는 특집으로 알파 코스를 다루고 있다. 투데이 지는 ALPHA 를 첫 머리 글자들로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A", 'Anyone', 누구든지, 기독교의 신앙에 대하여 좀 더 알고자 하는 자는; "L",
'Learning and Laughter' 배우며 웃는; “P", 파스타(먹으면서 교제하는) 음식; “H", 'Help-
ing', 서로 서로 도와주며 (소 구릅에서 강의 내용에 따라 야기된 문제들을 토의함); “A",
'Ask anything', 어떠한 질문도 너무 단순 것이 없으며, 어떠한 질문도 적대적인 것도 없다 는 의미이다.4
그러나 이 기사에서 투데이 지는 다른 의견들도 다루고 있다: 모든 사람이 알파 땅에서 편안한 것은 아니다.
“전염적인 열정, 기업가(企業家) 정신, 성장을 위한 대담한 계획등이 알파 최고 지도자 들의 상표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알파를 응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교 회 지도자들은 알파 교리가 너무 은사주의 적이다, 너무 경험 위주 이며, 전통 교회들 에 대해서 너무 부정적이다고 비판하고 있다. 영국 쉐필드 대학교의 종교 및 사회 연구 소 소속 링컨 신학원 장인 마틴 퍼시 (Martyn Percy)는 알파에 대해서 말하기를, “순 례 (巡禮, pilgrimage) 가 아니라, 여행 봇짐 (package)에 불과하다”고 평하고 있다. “알파는 자신감을 가지고는 있지만 기독교의 편협한 표현이며, 그것은 교회 내의 성령 의 사역 보다는 개인의 성령 경험을 강조하고 있으며. . .지적 난제를 도외시한 복음전 도 보다는 개인 경험주의로 지향하고 있다고 비판한바 있다.”5
그와 유사한 다른 많은 유행품처럼 알파 프로그렘도 데이빗드 C. 쿡 커뮤니게이션의 그럴사한 광고 효과에 덕을 보고, 세계적 성공을 즐기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적어도 현제는.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광고에 의하면, 1997 년 한 해만도 50 만명 이상이 이 코스를 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알파 소품(小品)들
알파 코스는 비데오, 카셋트, 책들, 소책자들, 간증들 및 인도자들의 비데오와 안내서들 등으로 전비(戰備)가 가추어져 있다. 이 모든 제품구입에는 수 백불의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알파 코스와 프로그렘들은 광체가 나는 여러 개인 간증들에 의해서 진흥되고 있지만, 면밀히 검토해 보면 성서적 진실에 미치지 못하는 많은 약점들이 가득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 8:20 절 말씀,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 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에게 정녕 빛이 없음이라” (. . .it is because there is no light in them) 는 말씀이 기억된다. 짐 존스라는 자도, 가이아나에서 그의 마지막 생애를 마치는 순간에도, 빛나는 간증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집단적인 응원이 진리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지에 실린 과거 펑크 락 가수였던 키드 프레스트리지 (Keith Prestridge) 간증에 의하면:
프레트리지는 알파의 주말 (수양회 때 경험한) 성령에 대해서 권투 선수 같은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들이 내게 안수할 때, 나는 해방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도 알지 않아 요? 성령을 느껴본 사람들은 어떻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고 있지요. 마치 한바탕 싸우고
나서 갑자기 쓰러져버리는 느낌 말입니다."6
여러분은 성령께서 사람을 권투선수처럼 쓰러트리는 구절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마치 존 윔버가 예수님을 수모 역도(力道) 선수들처럼 사람을 쓰러트리고 다니는 모습으로 설명한 것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7 성령님을 "느낀다"는 것은 성경에서 더 찾아보기 힘든 표현이다. 알파 코스는 대부분 빈야드나 은사주의 교회들에서 받아드려지고 있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나 성공회나 기타 여러 구릅에서도 사용하고 있다.8 딤 전 4:13, 16 절 말씀에도 불구하고 교리적 문제들은 무시되어 버리고 있다.
알파 비판
영국에서 출판되고 있는 기독교 연구 네트웍 져널 (The Christian Research Network
Journal CRN)지는 알파 프로그렘을 분석하고 다음 여섯 개 항목의 비판을 제시했다. 져널 지는 알파 코스는: "대량으로 과도하게 과장된 영적 기만이다. . .기독교 회심과 경험에 대한 전적으로 부적합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9 다음은 크리스 핸드 (Chris Hand)의 알파 분석이다:
1. 알파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 .그들은 성경에서 계시된 하나님을 우리 에게 제시하고 있지 않다. 알파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2. 알파가 다루고 있는 인간의 난제는 성경이 다루고 있는 것만큼 심각한 것이 아니다. . . .알파는 우리가 서 있는 상태에 대하여 강한 용어를 피하고 불분명한 말들을 사 용하고 있음으로 우리의 상태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죄란 우 리들의 삶을 망가트려 놓는 모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죄의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알파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경고하지 않고 있다. 알파는 하나님 께서 보시는 눈으로 우리를 보게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큰 태만이다.
3. 알파의 예수님은 성경의 예수님이 아니다. . .알파 코스 안에 "예수님은 죽으셨는 가?"라는 항목이 있지만, 그들은 이 질문에 대한 최종적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다.
4. 알파의 하나님 사랑은 성경의 하나님 사랑이 아니다. . .성경의 하나님은 사랑이시지 만 그 사랑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그런 사랑이다. 하나님의 거룩성과 완전 성이 문맥에서 배제된 사랑은 우리에게 그 사랑의 의미가 무의미하다.
5. 알파의 성령은 성경의 성령님이 아니다. . .알파의 '성령'은 성경 밖에서 역사하는 느 낌을 준다. 누구이든지 간에, 알파의 주말 (수양회)에서 받아드린 성령은 성경의 성 령은 아니다. 이 신비스런 손님들이 누구이든지간에, 그들은 뉴 에이지 열광분자들 과도 평안하게 어울릴 것이며, 비 기독교인들과도 별 문제 없을 것이다.
6. 알파의 회심은 성경의 회심은 아니다. . .그 것 (회심)은 대부분, 거룩함에 대한 어떠 한 깨달음도 없으며 죄로부터 구원받아야할 필요에 대한 어떠한 깨달음도 없이 그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정적 경험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 고,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 것은 우리 에게 진리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진술하고 있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상태를 충분이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고 있으며, '복음'을 우리에게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10
알파는 그저 옛 "성령 바텐더"의 주제에 새로운 의상을 입힌 것에 불과하다. 토론토와 브라운스빌의 재 상영에 불과하다. 다음과 같은 표제를 다시 붙이면 적합할 것 같은 운동이다: "광란의 단계들" "나의 느낌 속에서 하나님의 발견" "내부 동물의 방출". 그 결과들은 옛 에슬란 구릅들과 다를 바 없으며, 괴성의 치료와 마약 경험의 환희 같은 것이다.
알파의 결핍들
엘런 하우 (Allan Howe) 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알파 코스의 중심에 있는 것은 기독교의 복음이 아니라, 소위 "성령 주말"이란 것이며,
그 것은 "토론토 축복"에 들어가는 입교 절차를 약간 눈가림한 것이다. HTB 교회의
Nicky Gumbel 은 1994 년 5 월 토론토에서 돌아온 South-West London Vineyard
교회의 엘리노어 멈포드 (Eleanor Mumford) 의 "축복"을 받은 바 있다. 이 사건 이후
성령받기 위한 토론토 스타일의 가르침이 중심이 되었다. 한 알려지지 아니한 전도 도 구가 이렇게 해서 정통과 이단의 혼합된 제품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11
알파의 떨림과 굽기 (Alpha Shake and Bake)
CRN 져널에 기제된 Nicky Gumbel 의 말을 면밀하게 검토해보면, 알파 코스의 정체를 아는데 방향을 잡을 수가 있다. Gumbel 은 조금도 주저 없이 사람들을 밀교(密敎)적 경험으로 몰아가고 있다. 의식 상태의 변화, 자기 최면, 자아상실의 감정전입 등으로 이끌어서,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주장하고 있다. Gumbel 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사용하여서 사람들을 이끌고 궁극적인 목표인 히스테리, 자제력 상실, 정신상실 등에 이르게 한다. Gumbel 은 말하기를, 성령 주말의 목적은 각종의 이상한 출현들 (나
타남) 육체적 전율등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고 한다. 다음 내용을 보자:
때로 사람이 충만을 받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잎같이 떤다. 또 다른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숨을 들이마시는 것 같이 성령을 들여 마신다. 때로는 충만과 함께 신체적
열기를 손이나 기타 신체의 다른 부분에 실제로 느낀다. 어떤 사람은 온 몸이 "달아 오
른" (glowing all over) 체험을 하기도 한다. 한 여자는 온 몸에 "액체 열"을 느꼈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은 뜨겁지도 않은데 손에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12
이런 것은 몰몬 교도들이 "가슴이 타는" 체험들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은
느낌을 위해서 진리가 희생된 예들이지만, 우리는 몸의 저림이나, 감각적 느낌이나, 주관적
이며 항상 오류가 있는 인상들에 따라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이다.
이러한 경험은 이방신 쿤달리니 (Kundalini)를 섬기는 이방인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들인 것을 Gumbel 은 알아야할 것이다. 쉐이커 교도들의 극단적 감정표출들을 연구한 에드워드
엔드류스 (Edward Andrews) 는 Gumbel 이 진술하고 있는 내용과 동일한 현상들을 보고하고 있다. 알파 운동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들이 멀리나마 기독교와 연관이 있다고 격려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다. 그것들은 오히려 자기 최면, 암시, 의식 상태의 변개, 혹은 심지어는 아마 귀신들린 것이거나 사탄적 신비주의 같은 것일 수 있다.
알파 코스는 새로운 경험들을 추구하는 사회, 곧 새로운 무아경의 추구, 무절제한 감정주의 등을 추구하는 사회 속에서는 큰 성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의 맑은 빛에 조명하여 보면 그것은 엄청난 실패이다. 누가 그것을 발표했거나, 공증했거나 간에, 최종적 질문은:
어떻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를 이루는가?” 에 있다.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Gumbel 은 시사하기를 알파 코스는 변화해 가고 있다고 했다. 오늘의 알파가 내일의 알파는 아니라는 뜻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Gumbel 은 말하기를: "우리는 아직 모든 것이 완전한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알파는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13
알파 근원
본인은 Gumbel 의 저서 "인생의 문제들"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바로 알파의 주 교과서이다. 이 263 쪽에 달하는 책은, 잘못된 (교리의 주장자인) 존 윔버와 같은 사람들의 주장들도 포함하고 있지만, 대체로 주류 복음주의 작가들의 의견을 따르고 있다. 본인은 거의 전적으로 CRN Jounal 기사 내용에 동의하고 있지만, 약간 다른 견지에서 강조점을 다루고, 어떤 점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들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마귀에게도 제 몫을 준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CRN 은 "알파의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인생의 문제점들"
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교리를 제시하고 있지도 않고,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과, 특성들에 대한 교리를 가르치려고 시도하고 있지도 않다. 알파 지도자들은 아마 자기들의 기독교 신앙 입문에 대한 가르침은 기초적인 것이며 어떤 특정 주제들에 제한된 것들이라고 답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책은 예수님, 구원 및 기독교인의 삶에 관한 것이지, 다른 책들처럼 성경 전체의 조직 신학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전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기본 교리도 가르치지 않는다면, 전도받은 사람을 각종 정신적 우상들이나 뉴 에이지 사고방식들과 같은 잘못된 사고들 속에 그대로 둔 채로 그 사람을 회심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알파는 하나님의 인격 부분을 지나쳐 버리고 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 가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없이 전도를 했다는 것은 의심스러운 일이며 잘못된 일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 CRN 은 전적으로 옳게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 알파가 다루고 있는 인간의 문제는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상태보다 훨씬 심각하지 아니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래도 공정하게 평가를 한다면, Gumbel 은 "죄의 타락"이나 "죄의 권세" "죄의 형벌"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는 하다.14 로마서 3:23 절 말씀을 설명하고도 있다.15 Gumbel 은 또한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악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결과 야기된 우리들의 범죄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16 Gumbel 이 책의 처음 부분에서 다루고 있는, 죄의 결과들에 대한 강조는 독자들의 신분을 구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고는 있다. Gumbel 은 이 점에서는, 다른 문제를 다루는데와 같이, 완전히 요점을 잃은 것은 아니다.
다음 코멘트는 (CRN 의 주장하는 바에 대해서), "알파의 예수는 성경의 예수가 아니다"는 내용에 관한 것이다.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의 특성을 다루는 내용에서 Gumbel 은 좌쉬 멕도웰 (Josh McDowell), C. S. 루이스 (C. S. Lewis), F. F. 부르스
(F. F. Bruce) 등의 저서들로부터 직접 인용하고 있다. 예수님의 신성, 예언의 성취들, 구세주의 부활 등에 대해서 Gumbel 은 비교적 잘 다루고 있다. 위에 언급된 세 사람의 신학자들로부터 다른 것을 베껴올 수는 없을 것이다. Gumbel 의 책 중, "예수는 왜 죽으셨는가?"
라는 제목의 내용은 본인이 만족할 만큼 충분히 대속, 십자가,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그 다음 코멘트, 곧 "알파의 하나님 사랑은 성경의 하나님 사랑이 아니다"라는 부분은 첫 번 부분의 내용과 같이 (Gumbel 의) 결핍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다른 모든 특성들과 균형을 상실한 채 하나님의 사랑의 특성 만을 강조한 나머지 독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되 있다. 거룩과 공의가 없는 사랑은 아예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알파의 성령은 성경의 성령이 아니라"는 (CRN 의) 관찰에 대해서, Gumbel 은 약 13 쪽의 지면을 사용하여 비교적 주류의 성령 관을 기록하고 있다.17 "인생의 문제들"에서 제시된 성령은 정통적이며 교과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큰 문제는 그 다음 페이지에 담긴 내용들에 있다: "성령은 어떻게 역사하며 신자들에게 무엇을 행하시는가?"라는 제목의 부분에 기록된 내용이 문제다.
바로 여기에서, Gumbel 은 성서적 바른 길에서 벗어나 추측과 감정주의의 황혼지대로 들어가 버렸다. 알파의 성령은, 성령의 열매를 맺히게 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생활을 돕는 보혜사 (Comforter) 가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각종 괴상한 일들과 광란적 일들을 하게하는 변덕스런 존재로 기술되고 있다. 그의 주제곡은 아마 "흔들고, 떨고 굴러라"는 제목이 어울릴 것 같다. 성화 (sanctification) 에 관해서, 누가 이단을 말하려고 한다면, 바로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발견되는 개심자들 (converts) 이란, 온통 추측과, 인간의 상상, 및 극단적 감정 표출 등의 가시덤불과 잡목 속에 넘어지고 딩구는 자들 밖에는 없다.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방언에 대한 가르침과, 신체의 부분들이 탄다는 느낌 등에 관한 가르침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18 존 윔버가 가르친 지식의 말씀의 (은사)에 대한 가르침을 믿으라고 권하고 있다.19 신유에 관한 신구(新舊) 견해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20 환상과, 음성과, 꿈들에 대한 지도를 받으라고 권하고도 있다.21 산실(産室)이 변하여 새 신자들을 위한 황혼과 미로(迷路)가 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전형적인 은사주의 식품들이며 Gumbel 은 성경의 어떤 부분들이 역사적인 것이며 기술(記述, descriptive) 적인 것인지, 혹은 어떤 것이 규범(規範, prescriptive) 적인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오늘날에는 아무도 홍해를 가르는 일을 되풀이한 사람이 없으며,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오게 하거나, 죽은 자를 살리거나,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탈옥하게 하는 일들을 하는 사람이 없다. 오직 사람이 감정적으로 혹은 상태의 변경을 통해서 일어나는 선정(煽情)주의만 있을 뿐이다. 사실은, Gumbel 의 성령 역사에 대한 억측은 오늘날 성령과 그 분의 사역을 잘못 나타내고 있다. 선정주의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많지만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는 대단히 빈약하다. 이 분야에 대한 CRN 의 비판은 "정확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CRN 은 "알파의 회심은 성경의 회심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지적에 대해서는 오직 시간이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바탕에 의한 회심들이나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 의한 회심(悔心)들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회심자들은 (그들이 회심자들이라면 말이다), 의식변화, 무절제의 감정 주말(週末), 꿈과 환상들의 추구 등의 류사 (流沙, quicksand, 빠져 들어가는 모래사장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으며 장래에 소망이 없이 쓸려 내려가 버릴 것이다. CRN 이 자세하게 보도하고 있는 회심 간증들은 의심스러운 이야기들이며, 기독교인의 경험들이라기 보다는 사교(邪敎)적 신비주의에 가까운 것들이다. 우리는 오직 이들 "회심자들"에 대해서 애통할 뿐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들이 참으로 중생한 것인지 아니면 사산(死産)한 것인지를 아실 뿐이다.
알파 천국
CNR 이 다루지 아니한 한 가지 주요 분야는 Gumbel 의 "천국 도래 (Kingdom Now)" 신학이라는 것이다. "천국 도래 (혹은 천국 현재)" 라는 신학은 (통치주의, 혹은 승리주의로 불리우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궁극적, 완전한 천국에 약속된 신체적 건강의 축복들의 거의 전부를 (충분한 믿음으로) 받아 누릴 수 있다는 신학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천국의 거의 모든 은택을 현재 여기서 (here and now) 받아서 누리기 시작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미래 천국의 물체적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환상에 대한 Gumbel 의
주장이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천국은 '현재'와 '아직' (기다리는) 나라이다." Gumbel 은 또한 말하기를, 오는 세계는 원칙적으로 이 세계에서 실현될 수 있다. 그는 단정하기를:
"우리는, 오는 세상이 역사 속에 뚫고 들어온, 때의 중간에 살고 있다. 옛 세상은 계속 되고 있지만, 세 시대의 세력들이 이 세대 안에 일어났다. . . .신유는 예수님께서 시작 하신 천국의 표적들 중 하나이며 오늘 날 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께서 오늘 날도 기적으로 치료하실 것을 기대해야할 것이며 그 것은 하나님 나라의 활동의 한 부분이다."23
변증학자 헹크 헤네그레프 (Hank Hanegraaff) 는 천국 도래에 대한 허상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가짜 부흥의 지도자들은 천국 도래를 요구하고 있다!---천국에 수반되는 모든 물질적 부와, 대중으로부터의 찬사들과, 신체적 건강과 세상의 권세 등 모든 것을 이생에서 (받 아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다."24
Gumbel 은 그의 천국 도래의 신학을 두 성경 구절들에 대한 오해에 근거하여 주장하고 있다. 첫 번째는, 막 16:15-20 절 말씀이다. (이 구절은 논쟁이 되고 있는 구절이다). 그의 주장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점에 있어서도 그는 선택적이다. 그는 이 구절을 강하게 밀고 나가지는 않고, 오히려 그는 독사(毒蛇)들을 다루고 있거나 혹은 공도묘지를 깨끗하게 비울 수 있을런지 모르는 것으로 암시하고 있다. 왜 다 (한 거번에) 할 수는 없는지?
마가복음 16 장은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다. 역사적으로 성경에 대한 정통 입장은 성경의 신적 감동과 그 원본의 무오성이다. 아무도 그 전거가 의심되는 몇 개의 구절에 주요 신학적 주장을 근거해서는 않된다. 어떤 구절의 내부적 증거와 외부적 증거를 바탕으로하여 이러한 구절들을 받아드리지 아니한다고 해서 기독교인의 삶에 관한 교리는 조금도 변질되지 않는다.25
찰스 어드만 (Charles R. Erdman) 은 마가복음 주석에서 확인하기를,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은 일반적으로 후기 기록자가 첨가한 부록으로 이해된다."26
제네바 바이블 (The Geneva Bible) 은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에 대한 제설에 대해서:
학자들 간에 이 복음서의 끝 부분의 근원에 대해서 상이한 견해들이 있다. 어떤 헬라 어 사본들에는 이 부분이 들어 있지 않다. 어떤 사본들에는 이 9-20 절 (긴 끝 [longer Ending] 사본으로 알려짐) 을 포함하고 있으며, 혹은 어떤 사본에서는 "짧은
끝" (Shorter Ending) (1 절 정도로 마침) 으로 되어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사본들로 인하여 어떤 학자들은 9-20 절 부분을 마가가 기록하지 않고 후기에 다른 사람이 첨가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27
"천국 도래"의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Gumbel 은 계속해서 우리가 예수님 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는 요 14:12 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만약 Gumbel 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그는 정기적으로 사람들이 물 위로 걷도록 인도해야할 것이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되풀이 할 것이며, 죽은 자들을 살려야할 것이며, 변화된 몸을 보여줄 수 있어야할 것이며, 물을 포도주로 바꿀 수 있어야할 것이며, 불치병들을 대량으로 치료할 수 있어야할 것이며, 풍랑을 잠잠케 할 것이며, 물고기의 입에서 셋돈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 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히 Gumbel 은 자기가 가르치는 내용의 모델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넘어지게 하고, 두통이 살아졌다고 하고 팔굼치가 뜨거워졌다고 하는 정도는 예수님 사역의 능력과 범위에 비교하면 만화적 환상과 기만에 불과한 것이다.
Gumbel 은 정직하게 많은 성경해석 학자들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더 큰 일이란 많은 죄인들이 회심하는 일이 (예수님께서 일하실 때 보다는) 더 광범하게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고 지적했어야할 것이다. "더 큰"이라는 말은 능력의 범위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의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애 동안 하신 사역은 십자가 밑에서 불과 몇 명이 회심했을 뿐이다. 주님의 부활 후 사역은 사도들과 교회를 통해서 수백만의 구원을 경험한 것이다.
알렉산더 멕클레렌 (Alexander Maclaren) 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크고 작은) 비교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하신 제한된 영역과 작은 결과들과, 전 세 계에 걸쳐 성취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복음 사역의 결과에 대한 비교에 있다. 주님의 사 역보다 그의 종들이 이룬 보다 광범하고 완전한 영적 결과의 성취에 대한 비교를 의미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당신의 생애와 입술로 사람 영혼을 구하신 때 가능했 던 것보다 한 비천한 그리스도인이 다른 한 죄인을 불러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한 일이 주님 때의 하신 일에 비해서 더 큰일 된다는 의미이다."28
또한, 유명한 성경학자 올리버 그린 (Oliver B. Greene) 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헬라어 학자들은 말하기를 '그리고 이것들 보다 큰 것을 그가 하리라' (And greater
than these shell he do') 는 뜻이다. "일들 (works)" 이라는 말이 없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물리적 기적을 의미하고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수님의 뜻은 죽은 자를 살리거나 병든 몸을 고치거나 하는 것 보다 더 큰 규 모의 것을 의미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 보다 무언가
더 큰 것을 수행했다. 그리고 나는 예수님께서는 바로 복음 전파를 의미하신 것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부활하셔서 높이 올리심을 받은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만민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파하고, 어둠에 있는 영혼들에게 빛을 향하게 하여 불신자 들을 성령으로 중생케하는 일들이 문둥병자를 깨끗케하고 손마른 자의 손을 고치는 일 보다는 훨씬 더 큰 일이다."29
헤리 아이언사이드 (Harry Ironside) 박사의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의 복음을 불과 열 한 명의 제자들에게 맡기시고 땅 끝 까지 전하라고 명 하신 후, 이 장면을 떠나실 때, 온 세상은, 이스라엘의 극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방 종교를 믿는 불신의 어둠 속에 있었다. 그러나 불과 3 백년 내에 이방신을 섬기던 로마 제국의 모든 신전들은 거의 폐쇄되었으며, 회심자들은 수 백만에 달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더 큰 일이다. 수 세기의 역사를 통해 (하신 것 같이) 주님께서는 이 사 역을 계속하실 것이다.30
찰스 라이리 (Charles Ryrie) 는 요 14:12 절 말씀에 대해서:
(복음의 전 세계 전파를 통해서) 더 큰 범위에, 그리고 (영적 속량과 오순절 이래 무수 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몸 안에 인도하여 넣는) 효과를 의미한다.31
제네바 스타디 바이블 (Geneva Study Bible) 의 요한복음 주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4:12 의 보다 큰 일들. 개개인의 신자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 보다 더 큰 기 적을 행하리라고 예수님께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한 교회의 일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 보다 그 숫자에 있어서나
영토에 있어서 '더 큰' 것을 하리라는 뜻이다."32
어떠한 의미에서 이든지 간에, 천국은 "지금" 도래했는가? 물론 천국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체화되었다. 천국의 "현재" 양상이 왕께서 질병을 치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이 땅에 걸어 다니 실 때 그 일부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완전한 천국의 순간적 모습을 보게 하셨다. 승천하신 이후, 주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속죄와 구속과 구원을 통하여 천국의 영적 축복들을 제공하시고 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요 18:36) 고 하셨다. 온전한, 완성된 천국은 앞으로 올 것이다.
심지어는 주일학교 아이도 이 땅이 하늘나라는 아니며 그래서 우리는 나라가 임하옵시며 라고 기도하는 것을 알고 있다. 완전하고 최종적인 천국은 왕께서 다시 오실 때 도래할 것이다 (마 26:29).
우리의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을 입을 날이 올 것이다 (고린도 전서 15 장). 우리는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다 (롬 8:23).
조지 엘던 레드 (George Eldon Ladd) 는 영적 축복들 (및 현재의 중보적 천국의 은택들)과 훗날 완성되고 완전한 천국이 그 모든 축복들과의 예리한 차이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메시아의 구원이 임재한 (도래한) 사실이 예수님께서 병든자들을 치료하실 때에 "구원" 이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혈루증으로 부터의 구출을 의미하며 (막 5:34), 소경이 보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막 10:52), 귀신이 쫓겨나는 것을 의미하며 (눅 8:36), 심지어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 을 의미한다 (막 5:23).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해방들이 메시아적 구원이 도래한 것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말씀하셨다 (마 11:4-5). 이러한 것들은 최종적으로 몸의 영생을 의 미하는 종말적 하나님 나라의 삶을 약속하는 보증들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영 혼들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전 인간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33
레드는 계속해서:
"이러한 신체적 해방들에 대한 제한은 장차 나타날 것들과 비교되는 현재 천국의 상태 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 종말의 천국에서는 "부활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 들" 모두가 (눅 20:35) 부활한 후의 불멸의 영생 속에서 질병과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다. 천국의 현재 사역 기간 [곧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중]에는 이 구원의 능 력이 불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미친 것이다. 병든자들과 불구자들 모두가 다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다. 모든 죽은 자들이 다 살아난 것도 아니다. 복음서의 기록에 보면 오직 세 사람만이 죽음에서 살아났을 뿐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과 직접 접촉을 통해서, 혹은 제자들을 통해서 고침을 받았다 (막 6:56). 천국의 구원의 능력은 아직 우 주적으로 역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34
ALF - 알파
알파의 결핍들은 알파의 장점들에 비해 너무 크다. 이 결핍들을 ALF 를 첫 머리 글들로 표현할 수 있겠다:
Advocating Kingdom Now theories (천국 도래 이론들에 대한 옹호)
Locked into fickle emotions (변덕스러운 감정의 포로)
Faulty biblical understanding (잘못된 성서적 이해)
Gumbel 은 상당한 진실들을 말하고 있지만 오류가 더 많다. 알파 코스는 대단히 잘 포장되었지만 '이 콜리' (e. coli)를 포함한 음식과 같다. 영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위험이 많다. 순진한 사람들은 작은 아이디에 현혹되어 슬며시 들어온 큰 오류를 묵과할 수 있다.35
그 사상은 훌륭하게 생각되었던 관계가 결국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과 같이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치명적 사상이다. 알파 코스는 사람들을 이끌어 성경 공부를 인도한다고는 했지만 결국은 그들을 이끌어 자신의 감정들과 경험들에게로 향하게하는 코스이다. 알파 코스는 우회하며 윤회는 정함 없는 감정과 육신적 느낌들과 자기 중심 속으로 향하게 하여 영혼에 대한 참 사랑으로부터 격리시켜버린다. 이 코스는 사람들을 넋을 잃고, 혼돈케하여 종래는 더 악화된 상태로 빠지게한다. 소위 성령 주말이라고 하는 것들은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과 매일 동행하는 건전하고 균형있는 신앙생활과는 비교도 않된다.
교회 목사로서 나는 단 하루도 무슨 프로그렘이다, 비데오다, 혹은 교과 과정들이다 하는 것들을 소개하는 전화를 걸어 교회가 '되어가도록' 돕다는 물건을 파는 소개광고를 받지 않는 때가 거의 없다. 나의 신념은 나의 교회를 '되어가도록' 돕는 것은 성경 밖에 없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이런 저런 유행들을 판매하는 상품들로 마음이 팔려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단호하게 '노' 라고 대답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위 부흥 제품들이나, 기독교를 상품화하고 창녀화 시키는 것들에 눈을 돌리기 보다는 매일 성경과 마주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위해 일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딤후 3:15-17).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 가는 것들과 목숨을 위협하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들로부터 눈을 다시 돌려 우리들의 지역 교회를 위해 전력을 쏟을 것이며, 사역을 위해서 은사를 사용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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