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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미니안니즘이란..

알미니안니즘이란..
알미니안주의의 교리(엡4:14)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kho1105/6360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교리들을 채택함으로써 하이텔베르그 신조와 벨직 신앙 고백서 등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며 5개조의 항의문을 제출하였으나 통과되지 못하였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이 타락하기는 했지만 그의 자유의지의 선용으로 구원에 동참할 수 있다는 고전적 펠라기우스주의를 답습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도 하나님의 예정보다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있는 상대적인 것이며, 이러한 구원관은 보편적인 구원관으로 발전한다. 또한 인간의 구원 사역을 주관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도 인간은 스스로 저항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이미 구원의 반열에 속한 그리스도인들도 자신들의 행위 여하에 따라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알미니안 주의는 이중 예정론을 너무 강조하는 칼빈주의의 전통에 대한 반발로 비롯되었지만, 하나님의 권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1. 교리의 기원
1610년경 네델란드 신학교의 교수였던 제임스 알미니우스(James Arminius)가 죽은 뒤에 그의 제자들은 알미니우스의 신학적 입장을 정리한 그 당시 네덜란드 교회의 공식적 신앙고백서였던 하이델베르크 신조(Heidelberg Confession)와 벨직 신앙고백서(Belgic Confession of Faith)의 내용 중에서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5개조의 항의문을 내어 놓았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 조건적 선택, 보편적인 구속, 저항될 수 있는 성령의 은혜, 은혜에서의 타락 등이었다.
그들은 이 항의문을 네덜란드 전체 교회에 제출한 뒤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네덜란드 교회는 도르트(Dort) 총회를 1618년 11월 13일에 개최하여 1619년 5월 9일까지 154번의 회기를 거쳐 이 5개 항목을 심사한 뒤 성경에서 벗어난 교리이므로 부당하다고 판결하였다.

2. 교리의 내용
1) 인간의 능력
인간의 본성은 타락에 의하여 심각하게 오염되기는 했지만 전적인 영적 무력함의 상태에 빠지지는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스럽게도 모든 신자가 각각 회개하고 믿을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인간의 자유를 간섭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 일을 하셨다. 각 죄인은 자유의지를 소유하며, 그의 영원한 운명은 그가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에 달려 있다. 인간은 영적으로 선과 악을 자유스럽게 선택할 수 있으며, 그가 스스로 믿기 전에는 결코 성령에 의해 거듭나지 않는다. 믿음은 인간 측에서의 행위이며 그것은 구원에 대한 인간의 공헌이다.
2) 조건적 선택
세상이 생기기 이전에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택은 그들이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할 것을 예견하신 구분의 예지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유롭게 하나님을 믿을 사람들만을 택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므로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행하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이 믿는 것과 그 믿음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책임이 강조된다. 인간은 구원받기 위해 이 세상에서 도덕성이 요구되는 존재이며, 그의 구원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존재이다.
3) 보편적인 구속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어떤 특정한 개인들만의 구원을 위해 계획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계획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지만 구원은 오직 구분을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믿는다는 조건하에서는 죄인들을 용서하실 수 있게 하였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오직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선택한 경우에만 효력이 있다. 그러므로 구속은 인간 측에서의 '받아들임'이라는 행위에 의해 구체화된다.
만약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죄인들만을 구속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면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며, 인간들을 교만하고 책임 없는 존재로 만들뿐이다.
4) 저항할 수 있는 성령의 은혜
성령께서는 복음의 초청이라는 외적인 부르심을 통해 모든 사람들을 부르시며, 동시에 모든 사람들을 내적으로 부르신다. 성령께서는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가 하실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신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를 사용해 성령의 부르심에 저항할 수 있다. 인간은 아무 의지도 행사할 수 없거나, 누구에 의해 그 자유가 제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자유는 정말로 자유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인 인간이 스스로, 자유롭게 믿기 전까지는 성령도 죄인을 중생시킬 수 없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사역을 적용하는 데서 성령을 제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은 자발적으로 믿음을 수납하는 자들만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항력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서 저항될 수 있는 것이며 방해받을 수 있다. 그리고 때때로 사람에 의해 좌절되고 저항된다.
5) 은혜로부터의 타락
믿는 사람들과 진정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도 그들의 믿음과 그 밖의 신앙적 행위를 지키기에 실패함으로써 그들의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 인간은 책임 있는 자유로운 존재이므로 자기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모든 신자가 끝까지 구원이 보장된 길을 걷게 된다고 하면 인간은 책임 없는 존재가 되며, 또한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지 못하게 한다. 아무리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람일지라도, 신앙의 규범들을 잘 지키지 못할 때는 그 구원이 실패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은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알미니안주의의 교리를 요약해 보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나타내시며 각 사람은 그 사랑에 대한 태도에 개인적인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할 수도 있고, 심지어 신자일지라도 자신의 신앙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는 예정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는 반면 알미니안주의자는 구원의 조건이 그리스도만의 믿음이라고 믿는다. 알미니안주의는 칼빈주의의 도덕 폐기론적 경향에 대해 윤리적인 항거를 했던 것이다

1. 제임스 알미니우스
1) 생애
네덜란드의 신학자였던 알미니우스는 1560년에 오우더바터에서 출생하여 라이든 대학과 제네바에서 공부하였고, 암스테르담에서 목회하였으며, 1603년부터 라이든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칼빈주의자였으나 예정 교리에 대해 회의를 느껴 반대 입장에 서게 되었으며, 그의 사후(1609년) 그의 추종자들이 1610년에 '5개조 항의문'을 의회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2) 알미니안주의 교리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께서 어떤 자는 구원하고 어떤 자는 멸망시키시기로 이미 예정하셨다."고 하는 칼빈의 이중 예정설에 반대하면서 시작되었다.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구원은 전인류를 향한 것이며, 이 구원에 대해 인간은 받아들일수도 거부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것이다. 알미니안주의 추종자들이 1610년 의회에 제출한 '5개조 항의문'이 알미니안주의의 주요 신조가 되었다. 그 내용은 인간의 능력, 조건적 선택, 보편적인 구속, 저항될 수 있는 성령의 은혜, 은혜로부터의 타락 등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은 비텐보가에르트(J.Vytenbogaert)와 에피스코비우스(S.Episcobeus)에게 이어졌고, 계속 발전을 거듭하여 18세기에 영국의 존 웨슬리에 의해 감리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2. 하이델베르크 신조
종교 개혁이 일어난 후 독일에서는 열성저인 루터주의자들이 파문을 일삼았다. 이에 대해 프리드리히 3세가 하이델베르크 교수인 카스파르 올레비아누스에게 새로운 교회 규칙을 만들 것을 요청하여 1563년 독일의 개혁파에서 이를 채택하였다. 이 규칙의 구조는 두 개의 서론적 질문에 이어 인간의 비극과 인간이 구속, 감사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당시에 많은 혹평과 비판을 받았던 이 신조는 점차로 많은 교회들에 의해 체택되었다.

3. 벨직 신앙고백서
벨직 신앙고백(Belgic Confession of Faith)은 칼빈주의에 속하는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사용하는 하이델베르크 교리 문답과 도르트 신조와 더불어 3대 신앙 규범 중하나이다. 1561년 구이도 데 브레스에 의해 최초로 쓰여진 이 신조는 아드리아노 데 사라비아의 모데투스 윙겐 등에 의해 수정되었다. 처음에 불어로 작성되었던 벨직 신앙고백서는 네덜란드어와 독일어로 번역되었으며 칼빈의 위그노 교회를 위해 쓴 갈리아 신앙고백 내용을 많이 따르고 있다. 엔트위프 회의, 도르트 회의, 미델부르크 회의와 후에 네덜란드 국민회의에서 채택되었다.

4. 도르트 회의
1) 도르트 회의
1618년 11월에서 1619년 5월까지 네덜란드의 도르트에서 개최된 개혁교회 회의인 도르트 회의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항하여 전통적인 칼빈주의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이 회의는 네덜란드 의회에 의해 소집되어 각 지방 교회들의 대표들이 참석하였고, 영국, 스코틀랜드, 독일의 칼빈주의자들도 고문으로 참석하였다. 이 회의의 결과, 항변서를 냈던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저작물은 정통이 아니라고 판정됐고 항변하던 목사들은 축출당하였으며, 지도자들은 추방되었다. 그러나 예정론을 다루었던 이 회의의 배후에는 국가의 감독을 원했던 알미니안주의자들과 교회의 독립을 중요시하던 개혁파들의 갈등가 정치적인 문제들이 함께 얽혀 있었다.
2) 도르트 종규(Canon of Dort)
1610년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제출한 항의서에 대해 도르트 회의서에서 정통적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 도르트 종규이다. 그 내용은 인간의 전적 타락,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 제한된 속죄, 거부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견인 등의 다섯 가지를 확인하였고 이는 개혁교회 규범 중 하나로 채택되었다. 인간의 전적 타락이란 아담과 이브의 범죄로 하나님에 대한 선택이 없어졌음을 뜻하고, 무조건적 선택은 인간의 행위에 따른 선택은 아닌 하나님의 선택을 의미하며, 제한된 속죄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선택된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일단 선택된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없으며, 선택된 자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지키시고 영원히 선택하신다는 것이 성도의 견인이다.
이상의 내용들은 예정론과 관련된 정통 칼빈주의의 입장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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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미니안과 소시누스파 신학(엡2:8)

종교 개혁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혁자들에 반발하는 신학 사조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알미니안과 소시누스 신학에 대하여 고찰하고 있다. 알미니우스는 네덜란드 태생으로 라이덴 대학과 제네바에서 신학을 공부한 칼빈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칼빈의 예정론을 반박하던 더크 쿠른헤르트의 견해를 반박할 목적으로 연구하다가 오히려 그의 입장에 동의하게 되었다. 알미니안의 주장에 대항하기 위하여 도르트 회의가 소집되었고 여기서 '튤립'(TULIP)이라 불리는 칼빈주의 5대 신조가 결정되었다.
그리스도의 인과 사역에 대해 정통적인 입장에 반대하는 견해가 생기게 되었는데 이는 소시누스에 의해 정리되었다. 소시누스는 바젤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 교리, 원죄와 예정론을 부인했다. 이 둘은 모두다 비성경적이므로 교회는 이들을 정죄하고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야코부스 알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60-1609)는 1560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네바에 유학하여 테오도레베자(Th.Beza)에게 배웠고, 1588년 암스테르담에서 목사가 되었다. 그는 유능한 칼빈주의 신학자로 알려졌으나 쿠른헤르트설을 연구하다가 칼빈의 예정론에 대해 반대하기 시작했다. 그는 1609년에 사망했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그의 주장을 계속 발전시켰고, 그것을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라고 한다. 한편 파우스터스 소시누스(Faustus Socinus 1539-1604)는 이탈리아 출신의 법률가로 신학을 연구하고서 폴란드로 건너가 유니테리안 교회(Uniterian church)를 설립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 및 삼위일체 교리를 반대했다.

1. 알미니안
1) 알미니우스의 반론
유망한 칼빈주의 신학자로 알려졌던 알미니우스는 당시 문제가 되던 쿠른헤르트설을 논박해 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쿠른헤르트(Drick Koornhert)는 네덜란드 정부의 관리로 있다가 후에 할렘에서 공증인으로 일했다. 그는 1583년에 하이델베르크 소요리 문답서를 비판한 「테스트」(Test)라는 책을 저술하여 네덜란드 정부에 바쳤다. 정부는 라이덴(Leyden) 대학의 교수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에게 이것에 대해 토의하게 했으나 결론을 보지 못하자 알미니우스에게 그 일을 위탁한 것이다.
알미니우스는 성경과 초대 기독교신학, 그리고 대표적인 개혁자들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여 연구한 결과, 쿠른헤르트설에 찬성하여 그것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그는 1603년에 라이덴 대학의 교수가 되어 예정론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자 곧 같은 라이덴 대학의 교수인 고마루스(Francis Gomarus)와 충돌하게 되었다. 고마루스는 철저한 칼빈주의자였으므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알미니우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알미니우스와 고마루스는 예정의 근거에 대한 부분에서만 불일치했다. 두 사람 다 예정(predestination)의 존재 자체는 인정했다. 알미니우스는 교회론, 성례론 등은 칼빈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했다. 그러나 고마루스가 '신앙' 자체를 예정의 결과라고 주장한 반면, 알미니우스는 예정이 하나님의 예지(豫知)에 근거하며, 예정이란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인류의 중보자이며 구세주로 결정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알미니우스가 죽은 지 1년 뒤(1610년) 알미니우스의 후계자들은(S.Episcopius, J.Vytenbogaert) 소위 '항론'(抗論, Remanstrance), 즉 예정론에 대한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그 후 알미니우스의 추종자들은 '항론파'(Remonstrants)로 불렸다.
2) 논쟁의 요점
칼빈주의자와 알미니안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요약된다. 그들은 '항론'에서 5가지 조항을 발표했다.
① 예정이란 '하나님이 세상에 기초를 놓기 이전에 예수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로 결정하신 것'이라고 하여 예정론을 모호하게 정의했다.
② 그리스도 사역의 유익을 누리는 것은 신자들이지만, 원래 예수님은 전체 인류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하여 무제한적 속죄를 말했다.
③ 자신들이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인간의 자력으로는 선행을 할 수 없고, 그것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했다.
④ 그러나 그런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저항할 수 있는 것이다.
⑤ 또한 성경은 성도들 구원의 보장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상의 것들을 정리해 보면 이들은
① 칼빈주의가 인간의 전적타락을 주장한 데 반하여 자유의지의 잔존(殘存)을 주장하며, ② 무조건적 선택에 대해 예지예정을,
③ 제한속죄에 대하여 무제한 속죄를,
④ 불가항력적 은혜에 대하여 가항력적(可抗力的) 은혜를,
⑤ 성도의 견인에 대하여 그것의 불확실성을 주장했다.
3) 도르트 회의(Synod of Dort 1618-1619)
낫소의 영주인 모리스(Prince Maurice of Nassau)는 고마루스의 편을 들어 도르트 회의를 소집했다. 이것은 1618년 11월부터 1619년 5월에 이르기까지 개최되었다. 도르트 회의는 알미니안의 변호는 허락하지 않고 그들의 신조를 조사하여 1619년에 도르트 신조를 공포했다. 그결과 칼빈주의를 5대교리(즉 TULIP의 형태)로 정리하여 공포하고, 알미니안들을 국외로 추방하며, 이 신조에 불복하는 자들은 교직을 박탈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도르트 회의는 개혁과 신앙을 위협하던 큰 위험을 제거하였고, 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작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1625년에 모리스가 사망하고 하인리히(Heinrich)가 즉위하여 그 조치를 완화시켰다. 1631년에는 공식적으로 자유가 인정되었고 1634년에는 신학교와 교회가 조직되었다.

2. 소시니안
1) 생애와 사상
소시누스(F.Socinus 1539-1604)는 이탈리아 시에나 출신의 귀족이며 법률가이다. 그는 바젤에서 4년간 신학을 공부하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했다. 1597년 폴란드로 건너가 유니테리안 단체를 조직하고 라코유 교리 문답서를 작성했는데, 이것은 합리론과 초자연적 요소를 혼합한 것으로 당대인들에게 호감을 샀다. 그는 신앙이란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승인하는 행위라고 하였다. 예정론을 부인하고 자유의지를 강조했으며, 그리스도의 신인양성합일과 대속을 부인하며 그리스도의 모범설과 도덕행위에 의한 구원을 주장했다. 그것은 만인구원론으로 흐르게 되었고, 교회의 권위와 지옥을 부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원죄나 삼위일체 등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들을 모두 무시했다.
2) 소시니안 교회
소시니안 교회는 소시누스가 사망한 후(1695년) 슈말츠(Schmalz)가 조직했다. 그는 폴란드의 라크프 시를 중심으로 웅장한 교회와 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예수회의 핍박을 받아 학교와 교회는 폐쇄되고 설교자들은 추방당했다(1638년). 1658년에는 국회결의로 폴란드에서 추방당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와 영국에서는 확장되기도 하였다.
3) 유니테리안 교회
유니테리안 교회는 소시니안 교회의 후신(後身)으로 메이휴(Jonathan Mayhew 1720-1766)와 챠닝(William Channing 1780-1842)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들은 삼위일체 및 그리스도의 신성, 대속, 권리 등을 모두 부인한다. 그리고 의지의 자유와 도덕행위로 인한 구원을 주장한다. 이들의 교회는 회중정치 형태를 띠고 있으며, 현재 미국, 영국 그리고 캐나다 등지에서 굴지의 교파를 형성하고 있다.
알미니안과 소시니안의 주장은 대부분이 비성경적이다. 그것은 인간의 자력구원을 부추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엡2:8,9)을 부인한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다(고전1:21).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가지고 논쟁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그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1. 알미니우스의 예정론 반박
1590년대 초기에 로마서를 강의하던 중 알미니우스는 로마서 7장과 9장의 칼빈주의적 해석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일로 그는 죽을 때까지 칼빈주의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그의 예정론에 관한 견해는 '소감의 선언'에 전술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한 중보자로서 예수그리스도를 임명하기로 작정하셨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겠다고 한 모든 자를 용납하시며 구원하시기로 작성하셨고 그리고 완고한 불신자를 거절하기로 작정하셨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믿는자를 위하여 필요한 수단을 제공하시기로 작정하셨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개인들의 구원을 작정하셨다. 이런 점에서 알미니우스는 어거스틴적, 칼빈주의적 무조건적 선택의 사상을 거부했다. 또한 그는 중생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성결된 삶을 통하여 성화의 단계까지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진술하고 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개인의 택정은 그분의 주권적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지(豫知)를 통해서 예정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칼빈이 주장하는 무조건적 선택과 역(逆)이 되는 새로운 교리이다. 이러한 문제로 알미니안주의자(Arminias)와 칼빈주의자(Calvinist)로 나뉘게 되었다.
2. 알미니우스들의 5가지 항론
알미니우스의 죽음으로 많은 추종자들 가운데 1610년에 46명의 목사들이 고우다(Gouda)에 회합하여 항론(Remonstrance)이라는 다섯 가지 신앙고백서를 내놓았다.
①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 관해 믿고 끝까지 견디는 모든 자에게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기로 선택하셨다.
②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십자가상에 죽으심으로 만인을 위한 사죄를 획득하였으나 단지 믿는 자들만이 거기에 참여한다.
③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는 진실로 선한 어느 것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는 참으로 선한 어떤 것을 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새롭게 출생될 필요가 있다.
④ 우리는 하나님의 선행(先行)하시는, 깨우치시는, 계속되는 그분의 은혜가 없이는 어떤 선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은혜란 불가항력적인 것은 아니다.
⑤ 참된 신자는 은혜로 끝까지 견딜 수 있게 되며, 구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구원은 나태나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상실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이 은혜란 불확실한 것이다. 이 항론으로 인해 도르트 회의가 생겨난 것이다.

3. 소시니안(Socinian) 신학
루터는 로마교회의 전통적인 교리를 향하여 비평을 가하였다. 니케아 회의 아래 확립된 기독교 중심적 교리인 삼위일체는 그대로 승인하였다. 다만 루터 등은 중세의 스콜라주의자들처럼 추상적이며 철학적인 방법으로 이 교리를 설명하지 않고 신앙의 입장에서 설명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 교리에 반대하는 사상이 있었다. 이 신학사상은 파우스터스 소시누스(Faustus Socinus)에 의해서 주장되었다.
1) 신앙 :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신앙은 루터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인격과 인격간에 존재하는 신뢰와 합치가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승인하는 행위라고 했다.
2) 성경 :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신 다는 것을 가장 완벽하게 가르치고 있는 책이라고 했다. 또한 성경은 교리와 도덕을 잘 나타낸 책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지시하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인도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성경으로써 권위를 삼는 동시에, 도리의 권위를 인정하는 그들의 신학은 초자연적인 요소와 합리적인 요소로의 혼합물이라는 것이다.
3) 하나님 : 하나님은 최고 독재의 의지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또한 하나님의 뜻으로 향하는 바는 곧 의요 선이라는 것이다.
4) 기독론 : 그리스도의 사명에 관하여 교사로서의 사명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사명은 이 둘을 따라가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신인양성합일을 부인하여 그는 기적적 탄생으로 보통인간과는 다르게 태어나 전도에 착수하기 전에 하늘에 올리워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으며 부활 후 승천하여 하나님 나라를 지배하는 권력이 주어졌다고 하였다.
5) 속죄론 : 대속설을 반대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벌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필연 같은 것이 없다는 그의 사상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구원이라는 것은 언어의 표현에 불과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서 우리가 죄를 버리게끔 하는 의미에서 그가 죽으셨다는 것이다. 구약의 제사도 대속의 듯은 담겨져 있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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