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도적 개혁운동과 빌 해몬의 사도적 예언적 회복운동의 문제점
신사도적 개혁운동과 빌 해몬의 사도적 예언적 회복운동의 문제점
21세기 은사운동의 방향과 문제점을 비판한다(2)
사람 중심 교회에서 하나님 중심 교회로
21세기 은사운동의 방향과 문제점을 비판한다(2)
자료출처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co.kr)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01
2. 신사도적 개혁운동과 빌 해몬의 사도적 예언적 회복운동의 문제점
빌 해몬 감독은 실질적으로 사도적 회복운동의 지도자로 보아야 한다. 나는 그의 저서 "사도들, 선지자들과 앞으로 올 하나님의 운동들"에서 많은 부분에 심각한 교리적 모순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떤 부분은 위험할 정도까지 극단적이라 생각되었다.
1) 체험적 신앙
빌 해몬은 지난 10년 간 해온 선지자적 회복운동을 통해서 예언해온 예언들을 토대로 사도적 회복운동의 도래를 확신하고 있다. 전통적인 교회의 구조나 조직을 벗어나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흐름의 출현을 이끌고 있다. 성경의 진리보다 개인적 체험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2) 사도적 지도자의 자질
빌 해몬은 사도적 예언적 지도자의 자질로 "그들은 지혜와 성숙으로 초자연적인 능력 있는 사역을 행할 수 있는 성실성과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을 가진 자들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20페이지). 이러한 생각은 외형적인 교회의 성장을 추구하는데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교회성장을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으로 구별하여 생각한다면, 양적 성장은 인간의 탁월한 지도자적 자질을 통해서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질적인 성장은 인간의 노력이나 은사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질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지도자의 자질이나 능력이 교회의 질적인 성장과 양적인 성장을 다 할 수 있다면 그 지도자는 칭송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린도교회의 수많은 문제는 탁월한 지도자들로 인하여 발생하였다. 교회 안에 칭송 받는 탁월한 지도자의 출현은 또 하나의 분파를 양산하는 결과가 된다. 고린도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갈려지게 되었는데, 이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7)고 하였다.
현실적으로 한국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칭송 받는 목사들이 있는가. 그런데 이러한 탁월한 지도자들의 탐욕과 교만으로 한국교회는 갈기갈기 찢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많은 대형 이단들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다. 탁월한 지도자들이 있는 교회는 참된 주님이신 그리스도보다 종인 목사가 더 높임을 받은 기현상을 보게 된다. 이러한 추세는 연합이 없는 교회의 춘추전국시대를 만들어 놓았다. 주님께서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마 23:10)고 하셨다. 또한 위대한 사도께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1-23)라 기록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의 교회의 부흥을 탁월한 지도자에 의존하려 하고 있다.
빌 해몬 감목은 자신이 선지자요 사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을 통해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배출된다는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에 따르면, "내가 선지자의 사역에 충실해왔기 때문에, 그리고 선지자들의 무리를 예언적 사역자들과 예언적 사람들을 길러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같은 일을 하도록 사도의 직임과 기름부음을 주셨다고 말씀해 주셨다".(75페이지)
"하나님께서는 내가 선지자의 직임 사용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수 백명의 다른 선지자들을 재번식시킴으로써 숫자를 늘렸기 때문에, 나를 2중 연발식 산탄총(double barreled shotgun)으로 만드실 작정이셨다. 한쪽 산탄총은 선지자가 되고 다른 쪽은 사도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한쪽 산탄총은 사도를 혹은 선지자를 풀어주는 방아쇠냐 아니면 양쪽을 동시에 잡아당기는 방아쇠를 잡아 당겨야 하는데 관한 지시를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도적-선지자라고 말하거나, 혹은 선지자적-사도나 혹은 동등 하에 선지자-사도라고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도의 사역과 직임을 받아들이며 나타내는 동시에 선지자의 직임과 기름부음을 유지하기를 원하심을 알고 있다".(75페이지)
자신을 부를 때 감독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내가 감독의 명칭(Title)을 받아들였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성서적 용어이고 또 그것이 크리스챤 인터내셔날(C I)의 모든 사역들을 감독하는 자로서의 나의 위치를 묘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백 명의 선지자들을 길러내기 시작했을 때, 어떤 이들은 나를 "아빠"(Papa) 선지자", "고참-선지자" 혹은 그와 비슷한 어떤 것으로 부르기를 원했다. 지금은 사도적인 사역에서, 어떤 사람은 나를 "주장"(Chief) 사도", "주인(Master) 사도", "족장적(Patriarchal) 사도" 혹은 그 사역을 위한 지도자와 비전을 지닌 자의 위치를 확보할 만한 어떤 비슷한 것으로 부르기를 원했다. 이것은 비전과 감독자로서의 그 사람의 위치를 내포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우월한 최고 선지자나 혹은 사도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76-77페이지)
자신을 최고 우월한 선지자요 사도라고 칭하고 있다. 이것이 성경 말씀은 고사하고 상식적으로 맞는 말인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3) 빌 해몬의 교리적 오류
첫째, 부르심에 대한 오해
빌 해몬은 "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높은 부르심에까지 위임명령들에 도달한 적이 있는 사람은 적다".(89페이지). 그는 하나님의 은사들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라 믿기보다, 인간의 노력으로 도달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르신 목적은 사도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부르셨다. 그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연단을 주시는 것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기 보다, 사도를 인정하시기 위함이라고 믿고 있다.(90페이지)
둘째,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오해
"그러나 선택하시며 또 지명하시는 일은 하나님께 달렸다. 우리는 "네" 혹은 "아니요", 받든가 아니면 거절하든가를 반응으로 보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반응을 보이려 하지 않을 것으로 그 분이 결정하실 때까지 어느 기간 동안 계속하실 것이다."(91페이지) 만일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이 인간의 선택에 제한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겠는가. 오히려 주도권이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는 꼴이 된다. 이러한 생각은 알미니안주의에서 나온 것이라 보아야 한다.
셋째, 구원과 위임명령의 혼돈
그는 갈라디아서 6장 9절과 히브리서 10장 35절 36절을 인용하면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쓰러지지 아니하면 때가 되어 거두리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확신을 버리지 말라. 거기에 큰 상이 있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너희의 예언적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자의적 해석을 하고 있다. 여기서 "예언적 약속"에서 갈 6:9와 히 10:35-36은 사도적 위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빌 해몬은 구원의 중심을 대부분 은사적 위임으로 오해하고 있다.
넷째, 주님의 재림과 초림에 대한 이해 부족
지상왕국 - "예수님은 이 땅에 돌아오시길 원하시며 그의 신부(교회)와 결합하시길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두 번째 보내시기를 원하시지만 고난을 당하거나, 피를 흘리고, 죽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사랑하시는 교회를 불멸하시키시고 또 그 교회와 충분히 결합하셔서 이 땅 전체에 그의 왕국을 세우는 일에 그 분과 함께 교회가 동역할 수 있게 하시기를 위함이다"(128페이지). 이러한 생각은 예수 재림교(안식교 이단)의 교리와 흡사하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가 그의 왕국을 이 세상의 모든 왕국 위에 확립시킬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역이 너무나도 필연적이기 때문에 만일 그들이 그들의 예언적인 목적을 달성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무참한 파멸까지 이르도록 저주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실 것이다".(138페이지)
성취된 예언에 대한 혼돈 - "예수님은 선지자 엘리야가 먼저 온다는 것에 과한 예언은 이미 성취되었음을 선언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엘리야가 오게 될 때는 그것은 아직도 장래에 성취됨이다. 이번에는 그저 한 명의 선지자만이 아니라 그들은 큰 무리의 선지자들이며 그 길과 또 사람들을 예비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은 모든 것들(만유)을 회복하려고 할 것이다."(136페이지)
마지막 심판에 대한 오해 - "그들의 숙명은 그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예언의 반응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 세대가 인간 교회의 이 시대의 종말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나라들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공평과 의로움으로 그 분의 심판과 갈라내시는 사역을 성취할 수 있는 장소로 정렬시키고 계신다".(144페이지)
다섯째, 진리에 대한 오해 - "진실로 성령님이 계시로 나타내 주셨던 모든 새로운 진리는 지나간 회복운동 위에 세워졌다. (중략) 이제 예언적 사역은 개인적 복음 전파에 한 새로운 차원을 더해주고 있다.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들을 나타냄의 활성화와 훈련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언의 말씀을 길거리, 고속도로와 샛길에 보내어 사람들을 강권하여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 돌아서도록 함이다".(145페이지) 사도 바울은 내가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이 없다고 말씀하셨다.(갈 1:8) 그들은 개인적 예언을 새로운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섯째, 사도운동의 교만 - "이제 사도적 운동은 예언적 회복운동이 수천 명의 선지자들을 번식시켰던 것과 꼭같이 수천 명의 사도들을 번식시킬 만한 기름부음을 가져다 줄 것이다".(257페이지)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아니라 빌 해몬 개인의 말이다(렘 23:16). 그는 자신이 C I을 통해서 많은 선지자들을 길러낸 것처럼 사도들을 길러낸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일곱째, 초능력의 소유자 - "한 사역자가 어떤 종류의 사도인가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반드시 사도적 사역에서 나타나야 된다. 사도들은 다년간 경영자들, 교회 조직 체계에 관련되었고, 실질적 기독교와 다른 이들을 다스리기 위한 직임으로 묘사되어 왔다."(277페이지) 사도라는 자들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그들의 사도됨을 인정한다는 주장이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유대인들 가운데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이다. 그들이 사도가 된 것이 초자연적인 능력의 소유자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3. 사도적 은사가 구원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탁월한 은사를 소유했다 하더라도 그 은사가 그의 구원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 예가 가롯 유다이다. 그는 위대한 사도의 반열에 참여하였지만, 교만과 불신앙으로 마귀의 도구가 되고 말았다. 그는 결국 사도의 반열에서 제외되고 타인이 그 직분(은사)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뛰어난 외모와 출중한 용맹과 겸손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이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지명하여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세우셨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은사가 도리 그의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그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에 교만한 왕으로 변질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백성들과 장로들 앞에 높임을 받기를 원하였다.(삼상 15:12, 30)
빌 해몬 감독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과거의 많은 초자연적 은사의 소유자들의 탈선에 대해서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거의 반세기 동안 초자연적인 일을 나타내는 성도들과 사역자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나는 다음과 같은 일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역자들은 능력있는 사역들에서 성공적이었으나, 간음, 술취함, 성적타락, 부정직, 교만과 성경에 언급된 육의 모든 일과 같은 것으로 계속 되는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47페이지) 짐 베이케와 지미 스웨거와 같은 사람들의 비윤리적인 행위들은 미국이 복음주의의 몰락을 가져오게 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고 하셨다. 말씀에 순종함이 없는 초능력적인 은사의 소유자들은 도리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는 책망을 듣게 된다.
사도 바울께서도 말세에 나타날 사람의 미혹에 대해서 기록하기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8-10).
오늘 성도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초능력적인 은사가 구원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능력과 의지에서 나오는 믿음이 아니라 "이신칭의"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받게 됨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한다. 성령의 열매와 함께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4. 성령의 은사와 교회성장
왜 사역자들이 그렇게도 초자연적인 능력의 은사들을 추구하는가? 이제 결론에 이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한 관심이 교회성장에 초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놀라게 될 것이다. 교회성장과 은사라는 두 단어의 연관성은 현대교회의 가장 큰 오류 중의 하나라 생각한다.
정통 개혁교회의 구원론은 "이신칭의" "오직 은혜"라는 자신의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구원에 합당한 자로 거룩한 삶(착한 행실)을 가지게 되면 세상에 빛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은사주의자들은 자신의 구원보다 타인의 구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믿음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자신의 구원의 문제조차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타락한 존재이다. 그런데 하물며 타인의 구원을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은사주의자들은 알미니안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성장주의자들은 은사주의자들이고, 그들 또한 펠라기우스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추종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사상이 신본주의 교회를 인본주의 교회로 변질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모든 현실적 교회의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사상에서 인간의 교만이 싹이 트고 자라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는 자가 된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사 10:15). 은사주의자들의 교만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이제 인간 중심의 교회에서 하나님 중심의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사단은 아담을 유혹한 것처럼 늘 하나님 보다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영광으로 갈취하게 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주의 종들이 주인의 영광을 차지하여 주인의 행세를 하고 있는가 보라. 이 모든 것이 마귀의 궤계요 사탄의 미혹이다.
김진오 목사
21세기 은사운동의 방향과 문제점을 비판한다(2)
사람 중심 교회에서 하나님 중심 교회로
21세기 은사운동의 방향과 문제점을 비판한다(2)
자료출처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co.kr)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01
2. 신사도적 개혁운동과 빌 해몬의 사도적 예언적 회복운동의 문제점
빌 해몬 감독은 실질적으로 사도적 회복운동의 지도자로 보아야 한다. 나는 그의 저서 "사도들, 선지자들과 앞으로 올 하나님의 운동들"에서 많은 부분에 심각한 교리적 모순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떤 부분은 위험할 정도까지 극단적이라 생각되었다.
1) 체험적 신앙
빌 해몬은 지난 10년 간 해온 선지자적 회복운동을 통해서 예언해온 예언들을 토대로 사도적 회복운동의 도래를 확신하고 있다. 전통적인 교회의 구조나 조직을 벗어나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새로운 흐름의 출현을 이끌고 있다. 성경의 진리보다 개인적 체험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2) 사도적 지도자의 자질
빌 해몬은 사도적 예언적 지도자의 자질로 "그들은 지혜와 성숙으로 초자연적인 능력 있는 사역을 행할 수 있는 성실성과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을 가진 자들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20페이지). 이러한 생각은 외형적인 교회의 성장을 추구하는데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교회성장을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으로 구별하여 생각한다면, 양적 성장은 인간의 탁월한 지도자적 자질을 통해서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질적인 성장은 인간의 노력이나 은사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질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지도자의 자질이나 능력이 교회의 질적인 성장과 양적인 성장을 다 할 수 있다면 그 지도자는 칭송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린도교회의 수많은 문제는 탁월한 지도자들로 인하여 발생하였다. 교회 안에 칭송 받는 탁월한 지도자의 출현은 또 하나의 분파를 양산하는 결과가 된다. 고린도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갈려지게 되었는데, 이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7)고 하였다.
현실적으로 한국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칭송 받는 목사들이 있는가. 그런데 이러한 탁월한 지도자들의 탐욕과 교만으로 한국교회는 갈기갈기 찢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많은 대형 이단들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다. 탁월한 지도자들이 있는 교회는 참된 주님이신 그리스도보다 종인 목사가 더 높임을 받은 기현상을 보게 된다. 이러한 추세는 연합이 없는 교회의 춘추전국시대를 만들어 놓았다. 주님께서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마 23:10)고 하셨다. 또한 위대한 사도께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1-23)라 기록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의 교회의 부흥을 탁월한 지도자에 의존하려 하고 있다.
빌 해몬 감목은 자신이 선지자요 사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을 통해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배출된다는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에 따르면, "내가 선지자의 사역에 충실해왔기 때문에, 그리고 선지자들의 무리를 예언적 사역자들과 예언적 사람들을 길러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같은 일을 하도록 사도의 직임과 기름부음을 주셨다고 말씀해 주셨다".(75페이지)
"하나님께서는 내가 선지자의 직임 사용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수 백명의 다른 선지자들을 재번식시킴으로써 숫자를 늘렸기 때문에, 나를 2중 연발식 산탄총(double barreled shotgun)으로 만드실 작정이셨다. 한쪽 산탄총은 선지자가 되고 다른 쪽은 사도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한쪽 산탄총은 사도를 혹은 선지자를 풀어주는 방아쇠냐 아니면 양쪽을 동시에 잡아당기는 방아쇠를 잡아 당겨야 하는데 관한 지시를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도적-선지자라고 말하거나, 혹은 선지자적-사도나 혹은 동등 하에 선지자-사도라고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도의 사역과 직임을 받아들이며 나타내는 동시에 선지자의 직임과 기름부음을 유지하기를 원하심을 알고 있다".(75페이지)
자신을 부를 때 감독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내가 감독의 명칭(Title)을 받아들였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성서적 용어이고 또 그것이 크리스챤 인터내셔날(C I)의 모든 사역들을 감독하는 자로서의 나의 위치를 묘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백 명의 선지자들을 길러내기 시작했을 때, 어떤 이들은 나를 "아빠"(Papa) 선지자", "고참-선지자" 혹은 그와 비슷한 어떤 것으로 부르기를 원했다. 지금은 사도적인 사역에서, 어떤 사람은 나를 "주장"(Chief) 사도", "주인(Master) 사도", "족장적(Patriarchal) 사도" 혹은 그 사역을 위한 지도자와 비전을 지닌 자의 위치를 확보할 만한 어떤 비슷한 것으로 부르기를 원했다. 이것은 비전과 감독자로서의 그 사람의 위치를 내포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우월한 최고 선지자나 혹은 사도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76-77페이지)
자신을 최고 우월한 선지자요 사도라고 칭하고 있다. 이것이 성경 말씀은 고사하고 상식적으로 맞는 말인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3) 빌 해몬의 교리적 오류
첫째, 부르심에 대한 오해
빌 해몬은 "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높은 부르심에까지 위임명령들에 도달한 적이 있는 사람은 적다".(89페이지). 그는 하나님의 은사들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라 믿기보다, 인간의 노력으로 도달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르신 목적은 사도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부르셨다. 그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연단을 주시는 것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기 보다, 사도를 인정하시기 위함이라고 믿고 있다.(90페이지)
둘째,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오해
"그러나 선택하시며 또 지명하시는 일은 하나님께 달렸다. 우리는 "네" 혹은 "아니요", 받든가 아니면 거절하든가를 반응으로 보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반응을 보이려 하지 않을 것으로 그 분이 결정하실 때까지 어느 기간 동안 계속하실 것이다."(91페이지) 만일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이 인간의 선택에 제한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겠는가. 오히려 주도권이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는 꼴이 된다. 이러한 생각은 알미니안주의에서 나온 것이라 보아야 한다.
셋째, 구원과 위임명령의 혼돈
그는 갈라디아서 6장 9절과 히브리서 10장 35절 36절을 인용하면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쓰러지지 아니하면 때가 되어 거두리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확신을 버리지 말라. 거기에 큰 상이 있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너희의 예언적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자의적 해석을 하고 있다. 여기서 "예언적 약속"에서 갈 6:9와 히 10:35-36은 사도적 위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빌 해몬은 구원의 중심을 대부분 은사적 위임으로 오해하고 있다.
넷째, 주님의 재림과 초림에 대한 이해 부족
지상왕국 - "예수님은 이 땅에 돌아오시길 원하시며 그의 신부(교회)와 결합하시길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두 번째 보내시기를 원하시지만 고난을 당하거나, 피를 흘리고, 죽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사랑하시는 교회를 불멸하시키시고 또 그 교회와 충분히 결합하셔서 이 땅 전체에 그의 왕국을 세우는 일에 그 분과 함께 교회가 동역할 수 있게 하시기를 위함이다"(128페이지). 이러한 생각은 예수 재림교(안식교 이단)의 교리와 흡사하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가 그의 왕국을 이 세상의 모든 왕국 위에 확립시킬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역이 너무나도 필연적이기 때문에 만일 그들이 그들의 예언적인 목적을 달성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무참한 파멸까지 이르도록 저주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실 것이다".(138페이지)
성취된 예언에 대한 혼돈 - "예수님은 선지자 엘리야가 먼저 온다는 것에 과한 예언은 이미 성취되었음을 선언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엘리야가 오게 될 때는 그것은 아직도 장래에 성취됨이다. 이번에는 그저 한 명의 선지자만이 아니라 그들은 큰 무리의 선지자들이며 그 길과 또 사람들을 예비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은 모든 것들(만유)을 회복하려고 할 것이다."(136페이지)
마지막 심판에 대한 오해 - "그들의 숙명은 그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예언의 반응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 세대가 인간 교회의 이 시대의 종말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나라들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공평과 의로움으로 그 분의 심판과 갈라내시는 사역을 성취할 수 있는 장소로 정렬시키고 계신다".(144페이지)
다섯째, 진리에 대한 오해 - "진실로 성령님이 계시로 나타내 주셨던 모든 새로운 진리는 지나간 회복운동 위에 세워졌다. (중략) 이제 예언적 사역은 개인적 복음 전파에 한 새로운 차원을 더해주고 있다.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들을 나타냄의 활성화와 훈련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언의 말씀을 길거리, 고속도로와 샛길에 보내어 사람들을 강권하여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게 돌아서도록 함이다".(145페이지) 사도 바울은 내가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이 없다고 말씀하셨다.(갈 1:8) 그들은 개인적 예언을 새로운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섯째, 사도운동의 교만 - "이제 사도적 운동은 예언적 회복운동이 수천 명의 선지자들을 번식시켰던 것과 꼭같이 수천 명의 사도들을 번식시킬 만한 기름부음을 가져다 줄 것이다".(257페이지)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아니라 빌 해몬 개인의 말이다(렘 23:16). 그는 자신이 C I을 통해서 많은 선지자들을 길러낸 것처럼 사도들을 길러낸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일곱째, 초능력의 소유자 - "한 사역자가 어떤 종류의 사도인가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반드시 사도적 사역에서 나타나야 된다. 사도들은 다년간 경영자들, 교회 조직 체계에 관련되었고, 실질적 기독교와 다른 이들을 다스리기 위한 직임으로 묘사되어 왔다."(277페이지) 사도라는 자들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그들의 사도됨을 인정한다는 주장이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유대인들 가운데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이다. 그들이 사도가 된 것이 초자연적인 능력의 소유자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3. 사도적 은사가 구원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탁월한 은사를 소유했다 하더라도 그 은사가 그의 구원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 예가 가롯 유다이다. 그는 위대한 사도의 반열에 참여하였지만, 교만과 불신앙으로 마귀의 도구가 되고 말았다. 그는 결국 사도의 반열에서 제외되고 타인이 그 직분(은사)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뛰어난 외모와 출중한 용맹과 겸손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이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지명하여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세우셨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은사가 도리 그의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그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에 교만한 왕으로 변질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백성들과 장로들 앞에 높임을 받기를 원하였다.(삼상 15:12, 30)
빌 해몬 감독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과거의 많은 초자연적 은사의 소유자들의 탈선에 대해서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거의 반세기 동안 초자연적인 일을 나타내는 성도들과 사역자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나는 다음과 같은 일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역자들은 능력있는 사역들에서 성공적이었으나, 간음, 술취함, 성적타락, 부정직, 교만과 성경에 언급된 육의 모든 일과 같은 것으로 계속 되는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47페이지) 짐 베이케와 지미 스웨거와 같은 사람들의 비윤리적인 행위들은 미국이 복음주의의 몰락을 가져오게 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고 하셨다. 말씀에 순종함이 없는 초능력적인 은사의 소유자들은 도리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는 책망을 듣게 된다.
사도 바울께서도 말세에 나타날 사람의 미혹에 대해서 기록하기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8-10).
오늘 성도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초능력적인 은사가 구원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능력과 의지에서 나오는 믿음이 아니라 "이신칭의"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받게 됨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한다. 성령의 열매와 함께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4. 성령의 은사와 교회성장
왜 사역자들이 그렇게도 초자연적인 능력의 은사들을 추구하는가? 이제 결론에 이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한 관심이 교회성장에 초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놀라게 될 것이다. 교회성장과 은사라는 두 단어의 연관성은 현대교회의 가장 큰 오류 중의 하나라 생각한다.
정통 개혁교회의 구원론은 "이신칭의" "오직 은혜"라는 자신의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구원에 합당한 자로 거룩한 삶(착한 행실)을 가지게 되면 세상에 빛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은사주의자들은 자신의 구원보다 타인의 구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믿음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자신의 구원의 문제조차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타락한 존재이다. 그런데 하물며 타인의 구원을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은사주의자들은 알미니안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성장주의자들은 은사주의자들이고, 그들 또한 펠라기우스주의와 알미니안주의를 추종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사상이 신본주의 교회를 인본주의 교회로 변질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모든 현실적 교회의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사상에서 인간의 교만이 싹이 트고 자라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는 자가 된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 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일반이로다"(사 10:15). 은사주의자들의 교만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이제 인간 중심의 교회에서 하나님 중심의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사단은 아담을 유혹한 것처럼 늘 하나님 보다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영광으로 갈취하게 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주의 종들이 주인의 영광을 차지하여 주인의 행세를 하고 있는가 보라. 이 모든 것이 마귀의 궤계요 사탄의 미혹이다.
김진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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