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도적 개혁운동이 한국교회의 희망이 되는가
신사도적 개혁운동이 한국교회의 희망이 되는가
21세기 은사운동의 방향과 문제점을 비판한다(1)
자료출처
http://www.newsnjoy.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3400
20세기는 세계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그 중심에 오순절 은사주의 운동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방언, 예언, 신유, 환상과 같은 은사들은 번영신학과 함께, 고통 가운데 현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은사운동을 하는 교회로 몰려들게 되었다. 60년대부터 한국과 아프리카와 남미의 은사운동을 하는 교회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을 가져왔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교회는 정체되었다. 아니 급속도로 후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세계교회의 성장의 선봉에 있던 한국교회가 성장을 멈추게 되자 교회성장학자들에게 심각한 고민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90년대 초반에 나는 풀러신학교에서 피트 와그너 교수에게 교회성장에 관한 몇 과목을 수강하였다. 교회성장의 모델로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주로 거론되었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게 변하고 있다. 피트 와그너 교수(풀러신학교 사임 후, 미국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시 소재 '글로벌 추수사역원'(Global Harvest Ministries)의 총재와 '와그너 리더십 신학교'(Wagner Leadership Institute)의 총장으로 사역하고 있음)는 <목회와 신학>(www.glorianet.net)에 올린 "신사도적 개혁운동"에서 한국교회 정체의 원인과 새로운 부흥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교회의 역기능
이제까지 교회의 성장을 가져온 구조와 조직이 더 이상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인터넷을 통하여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 정보화 사회에서, 전통적인 교회가 해오던 사역들이 이제는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기능적 기능 장애를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그에 따르면 "이전에 전도, 양육, 예배, 사회봉사와 일반적인 사역을 위해 개발된 교회 구조 자체가 이제는 교회의 무기력과 정체성을 야기시키는 원인들이 되고 있다고 어떤 사람들은 주장한다. 오늘날 교회 구조의 역기능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현실 사회구조가 점점 더 전통적인 신앙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층에서 일어나는 생활의 변화는 기존의 교회 구조로는 대처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 맞벌이 부부의 증가, 여가생활의 다양화로, 밤과 낮, 평일과 주말의 개념이 따로 없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직업관이나 시간의 개념이나 신앙규범이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와 함께 교회 내부적인 문제점들을 많이 노출하고 있다. 이전에 나는 기독교 인터넷 <뉴스앤조이>에 올린 글 '한국교회의 적자경영과 구조조정'에서 교회성장의 가장 큰 장애요소로 개교회주의을 지적하였다. 도시 교회의 밀집된 형태는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주위 사람들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심어준다. 대부분의 현장 목회자들은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일치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문제점을 인식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오직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통해서만 되어지는 것이다. 한국교회 성장의 역기능이 "예배, 전도, 양육, 사회봉사와 일반사역"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은사, 신비주의와 개교회주의와 교회의 분열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피트 와그너 교수에 의하면, 오늘의 시대적 상황이 전통적으로 해온 교회의 구조와 조직에 역기능으로 작용하므로,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교회가 새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예배, 전도, 양육, 사회봉사와 일반사역"과 교회정치와 같은 전통적인 구조와 조직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신사도적 개혁운동"이라 그는 생각한다.
비은사적 경향
피트 와그너 교수에 의하면 신사도적 개혁운동은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어나는데, 이들 중에는 크게 비은사적 교회와 은사적 교회의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의하면, "이들은 소위 말하는 사도적인 은사를 가진 지도자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중에도 비은사적(Non-charismatic)교회라고 할 수 있는 윌로우크릭교회연합, 갈보리채플교회연합, 새들백밸리교회 등이 있고, 은사적(Charismatic)교회 중에는 빌 해몬 감독의 C I(Christian Int'l), 태드 해가드의 뉴라이프교회([지역교회 최고의 사명]의 저자), 존 아노트의 토론토공항교회 및 한국에서 셀 교회로 알려진 싱가포르의 믿음공동체 침례교회 등이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신사도적 교회 중 비은사적 교회는 2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인 은사를 전적으로 인정하고 실제 목회 사역에 적용하는 교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회들은 거꾸로 20%의 비은사적 교회의 모델은 수입하면서 80%의 은사적 교회 모델은 '이런 잘못된 신학, 영적 무지로 인한 저런 편견'으로 배척하는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교세가 10여년 동안 답보 상태에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는 절대 다수인 80%의 은사적 교회 모델을 받아들일 때라고 하겠다." (<목회와 신학>, "신사도적 개혁운동"에서)
나는 피트 와그너 교수의 이러한 생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처럼 가르치는 은사에 탁월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또한 그는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와 교회를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사를 동원하여 교회가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는 학자이다.
그러나 피트 와그너 교수가 주장하는 신사도적인 교회는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교회가 급성장을 이룩하고 이러한 여파를 타고 글로블 교회망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이미 지나간 흐름이고, 도리어 이제 그 역기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한국교회의 내면적인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위에 열거한 교회들(은사적 교회와 비은사적 교회)은 오히려 한국의 대형교회의 성장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사도적 개혁운동 이전에 한국에서 이런 유형의 대형교회들이 급속도로 생겼고, 이들 대형교회들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현재 군림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피트 와그너 교수가 주장하는 사도적 교회들이 80년대 이후에 얼마나 많이 출현하였는가. 비은사적 교회로는 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충현교회, 소망교회와 같은 교회를 들 수 있고, 은사적 교회로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락교회, 만민중앙교회, 예루살렘교회, 할렐루야기도원 같은 곳을 들 수 있다. (필자가 은사적 교회로 예를 든 곳 대부분은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거나 이단 시비가 있었던 곳임-편집자주) 이외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교회들도 있을 것이고, 나머지 대형교회들은 혼합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교회들 중에는 전국적으로 확장된 교세를 가진 교회들도 있다. 특히 은사적 교회들이 한국교회에 미치고 있는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스럽게 지적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들 가운데 초교단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들도 있다. 물론 이러한 교회들이 교회 성장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좁은 우리의 현실에서 이러한 교회가 전반적으로 교회들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히 부정적이라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 통합과 일치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나친 대형화는 교회로 하여금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윤리적으로 사회와 교회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사도적 지도자들의 비윤리적 삶과 교회세습과 헌금의 유용은 한국의 대형교회에 보편화된 문제라 생각된다.
그리고 피트 와그너 교수가 주장한 비은사적 교회와 은사적 교회라는 표현에서, 무엇이 비은사적이고 무엇이 은사적인가 의문이 생긴다. 위에서 말한 비은사적 교회도 분명히 그들 나름대로 은사를 사용하고 있다. 가르치는 은사,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목사와 교사의 은사, 섬김과 봉사의 은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꼭 예언, 방언, 신유,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은사를 사용해야만 은사적 교회라 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무리가 있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은사는 주로 사람을 현혹하는 가시적인 은사만을 은사로 인정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은사는 보편적이 아니라 개별적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은사주의 교회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나타나는 은사가 동일하게 나타나기를 원한다. 그것만이 성령의 역사이고 차원 높은 성도라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고전 12:29-30)라고 은사의 개별성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 은사주의 운동의 위험성은 같은 은사를 하는 자들끼리 모여 은사를 사용하는데 있다. 예언하는 자들은 예언하는 자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신유하는 자들은 신유하는 자들끼리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는 이러한 유형들이다. 몸의 각 지체들이 소리 없이 자신들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각각의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소리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섬김과 희생으로 봉사하여야 한다.
1. 신사도적 개혁운동이란 무엇인가?
신사도적 개혁운동의 중심에는 피트 와그너 교수와 C I의 빌 해몬 감독이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신사도적 지도자의 몇 가지 조건이 있다.
1) 초자연적인 능력의 소유자여야 한다.
2)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지도자여야 한다.
3) 초교파적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4) 세계적인 네트웍을 형성해야 한다.
5) 교회 성장의 주도적 역할을 하여야 한다.
피트 와그너 교수는 신사도적 개혁운동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개신교의 도래를 기대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사도적 개혁운동이란, 20세기의 마지막에 전세계적으로 개신교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특별사신 사역이다. 거의 500여년 동안 개신교는 이런 저런 교단의 형태로 존재해왔다. 특별히 1990년대에는, 비록 그 뿌리는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역교회의 정치 형태, 교회간의 연합, 재정, 전도사역, 선교, 기도, 지도자의 선택과 훈련, 초자연적인 능력의 역할, 예배 및 교회의 전반적인 분야에 새로운 형태와 사역과정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교단의 테두리 내에서도 일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은 조직이 느슨한 사도적인 네트웍의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사실 전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신사도적인 교회들이 가장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목회와 신학>, "신사도적 개혁운동"에서)
빌 해몬 감독은 피트 와그너 교수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초대교회 시대에 있었던 사도와 선지자들의 출현을 통해서 완전한 교회형태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다. (빌 해몬, "사도들, 선지자들과 앞으로 올 하나님의 운동들", (크리스찬 인터내셔날), 진이 엘 킴 번역,1999)
"마지막 세기 교회는 초대 사도적 회복운동만큼 위대한 사도적 개혁을 갖게 될 것이다. 초대교회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교회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 이제 마지막 때의 사도적 개혁은 교회에 최후의 완성을 위한 손질을 해주게 될 것이다." (17페이지)
"회복 운동은 제각각 지난 500년 동안 다음 운동을 위하여 예비하였다. 신교 운동은 성결 운동을 위하여 길을 예비하였고, 또 계속해서 오순절은 늦은비 운동을, 늦은비 운동은 카리스마적 갱신, 또 믿음 운동은 현재 예언적 운동을 위하여 예비하였다. 예언적 운동은 사도적 운동을 위하여 지금 길을 예비하고 있고, 그것은 또다시 성도 운동을 위하여 길을 예비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가장 높으신 분의 성도들에게 단 2:44, 7:18, 27과 계 11:15, 1:5-6, 5:9-10을 성취하도록 가능하게 할 것이다." (28페이지)
빌 해몬 감독은 자신이 지난 10년 간 해온 선지자적 예언 운동을 통해서 많은 선지자들을 길러내었고, 이제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사도적 회복운동의 사명을 맡기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새로운 형태의 개신교의 도래는 루터와 칼빈을 통해서 형성된 정통 개혁교회와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고 생각된다. 비록 그들이 그 출발점을 500년 전으로 잡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방향은 완전히 다르게 가고 있다. 빌 해몬 감독이 말한 성결 운동, 오순절 운동, 카리스마적 운동, 예언적 운동, 사도적 운동은 과연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말씀"을 근간으로 형성된 정통주의 교회의 형태와는 다른 유형의 교회이다.
교회의 회복(부흥)운동(르네상스=renaissance)는 어떤 새로운 유형의 운동의 출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2000년 교회사를 통해서 해온 것처럼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돌아가는 운동이다. 바울과 요한, 성 어거스틴, 루터, 칼빈, 조나단 에드웨즈로 이어지는 부흥운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거부하기 때문에 자꾸만 다른 유형의 운동을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려지는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말을 통해서, 인간은 끊임없이 의심을 통해서 사유하게 되고, 끊임없이 사유하는 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명제라 정의하였다. 그는 인간의 이성을 인간에게 돌려주었다.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자유함을 누리게 된 인간의 이성이 이제는 기독교의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정통교회의 두 축을 흔들어 놓게 되었다. 인간 이성이 자신에게 자유를 가져다 준 신에게 칼을 뽑아든 격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기독교 신학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하여 펠라기우스주의(반-펠라기우스주의)가 정통개혁교회에 도전해오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성결 운동, 카리스마적 운동, 예언 운동, 오순절 운동, 사도 운동 또한 알미니안주의, 복음주의, 신정통주의, 세대주의와 같은 분파들은 결국 인간의 이성과 의지를 하나님의 구원의 어떤 부분을 차지하게 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에게 인간의지의 전적타락을 부인하는 구실을 주었다.
사도와 선지자와 같은 전통 교회에서 사용하지 않은 새로운 은사의 출현이 현재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에 더 큰 혼란만 가져다 줄 것으로 여겨진다. 전적타락한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고, 성령을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거룩함에 이르는 것이 바로 개혁(부흥)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사역을 은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의 절대적 주체이시고, 인간은 구원의 절대적 객체라는 사실이다. 진정한 개혁은 "오직 은혜" "이신칭의"로 돌아가는 운동이다.
21세기 은사운동의 방향과 문제점을 비판한다(1)
자료출처
http://www.newsnjoy.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3400
20세기는 세계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그 중심에 오순절 은사주의 운동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방언, 예언, 신유, 환상과 같은 은사들은 번영신학과 함께, 고통 가운데 현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은사운동을 하는 교회로 몰려들게 되었다. 60년대부터 한국과 아프리카와 남미의 은사운동을 하는 교회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을 가져왔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교회는 정체되었다. 아니 급속도로 후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세계교회의 성장의 선봉에 있던 한국교회가 성장을 멈추게 되자 교회성장학자들에게 심각한 고민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90년대 초반에 나는 풀러신학교에서 피트 와그너 교수에게 교회성장에 관한 몇 과목을 수강하였다. 교회성장의 모델로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주로 거론되었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게 변하고 있다. 피트 와그너 교수(풀러신학교 사임 후, 미국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시 소재 '글로벌 추수사역원'(Global Harvest Ministries)의 총재와 '와그너 리더십 신학교'(Wagner Leadership Institute)의 총장으로 사역하고 있음)는 <목회와 신학>(www.glorianet.net)에 올린 "신사도적 개혁운동"에서 한국교회 정체의 원인과 새로운 부흥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교회의 역기능
이제까지 교회의 성장을 가져온 구조와 조직이 더 이상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인터넷을 통하여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 정보화 사회에서, 전통적인 교회가 해오던 사역들이 이제는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기능적 기능 장애를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그에 따르면 "이전에 전도, 양육, 예배, 사회봉사와 일반적인 사역을 위해 개발된 교회 구조 자체가 이제는 교회의 무기력과 정체성을 야기시키는 원인들이 되고 있다고 어떤 사람들은 주장한다. 오늘날 교회 구조의 역기능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현실 사회구조가 점점 더 전통적인 신앙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층에서 일어나는 생활의 변화는 기존의 교회 구조로는 대처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 맞벌이 부부의 증가, 여가생활의 다양화로, 밤과 낮, 평일과 주말의 개념이 따로 없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직업관이나 시간의 개념이나 신앙규범이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와 함께 교회 내부적인 문제점들을 많이 노출하고 있다. 이전에 나는 기독교 인터넷 <뉴스앤조이>에 올린 글 '한국교회의 적자경영과 구조조정'에서 교회성장의 가장 큰 장애요소로 개교회주의을 지적하였다. 도시 교회의 밀집된 형태는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주위 사람들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심어준다. 대부분의 현장 목회자들은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일치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문제점을 인식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오직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통해서만 되어지는 것이다. 한국교회 성장의 역기능이 "예배, 전도, 양육, 사회봉사와 일반사역"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은사, 신비주의와 개교회주의와 교회의 분열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피트 와그너 교수에 의하면, 오늘의 시대적 상황이 전통적으로 해온 교회의 구조와 조직에 역기능으로 작용하므로,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교회가 새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예배, 전도, 양육, 사회봉사와 일반사역"과 교회정치와 같은 전통적인 구조와 조직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신사도적 개혁운동"이라 그는 생각한다.
비은사적 경향
피트 와그너 교수에 의하면 신사도적 개혁운동은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어나는데, 이들 중에는 크게 비은사적 교회와 은사적 교회의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의하면, "이들은 소위 말하는 사도적인 은사를 가진 지도자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중에도 비은사적(Non-charismatic)교회라고 할 수 있는 윌로우크릭교회연합, 갈보리채플교회연합, 새들백밸리교회 등이 있고, 은사적(Charismatic)교회 중에는 빌 해몬 감독의 C I(Christian Int'l), 태드 해가드의 뉴라이프교회([지역교회 최고의 사명]의 저자), 존 아노트의 토론토공항교회 및 한국에서 셀 교회로 알려진 싱가포르의 믿음공동체 침례교회 등이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신사도적 교회 중 비은사적 교회는 2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인 은사를 전적으로 인정하고 실제 목회 사역에 적용하는 교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회들은 거꾸로 20%의 비은사적 교회의 모델은 수입하면서 80%의 은사적 교회 모델은 '이런 잘못된 신학, 영적 무지로 인한 저런 편견'으로 배척하는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교세가 10여년 동안 답보 상태에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지금이야말로 한국교회는 절대 다수인 80%의 은사적 교회 모델을 받아들일 때라고 하겠다." (<목회와 신학>, "신사도적 개혁운동"에서)
나는 피트 와그너 교수의 이러한 생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처럼 가르치는 은사에 탁월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또한 그는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와 교회를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사를 동원하여 교회가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는 학자이다.
그러나 피트 와그너 교수가 주장하는 신사도적인 교회는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교회가 급성장을 이룩하고 이러한 여파를 타고 글로블 교회망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한국적 상황에서는 이미 지나간 흐름이고, 도리어 이제 그 역기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한국교회의 내면적인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위에 열거한 교회들(은사적 교회와 비은사적 교회)은 오히려 한국의 대형교회의 성장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사도적 개혁운동 이전에 한국에서 이런 유형의 대형교회들이 급속도로 생겼고, 이들 대형교회들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현재 군림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피트 와그너 교수가 주장하는 사도적 교회들이 80년대 이후에 얼마나 많이 출현하였는가. 비은사적 교회로는 사랑의교회, 온누리교회, 충현교회, 소망교회와 같은 교회를 들 수 있고, 은사적 교회로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락교회, 만민중앙교회, 예루살렘교회, 할렐루야기도원 같은 곳을 들 수 있다. (필자가 은사적 교회로 예를 든 곳 대부분은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거나 이단 시비가 있었던 곳임-편집자주) 이외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교회들도 있을 것이고, 나머지 대형교회들은 혼합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교회들 중에는 전국적으로 확장된 교세를 가진 교회들도 있다. 특히 은사적 교회들이 한국교회에 미치고 있는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스럽게 지적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들 가운데 초교단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들도 있다. 물론 이러한 교회들이 교회 성장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좁은 우리의 현실에서 이러한 교회가 전반적으로 교회들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히 부정적이라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 통합과 일치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나친 대형화는 교회로 하여금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윤리적으로 사회와 교회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사도적 지도자들의 비윤리적 삶과 교회세습과 헌금의 유용은 한국의 대형교회에 보편화된 문제라 생각된다.
그리고 피트 와그너 교수가 주장한 비은사적 교회와 은사적 교회라는 표현에서, 무엇이 비은사적이고 무엇이 은사적인가 의문이 생긴다. 위에서 말한 비은사적 교회도 분명히 그들 나름대로 은사를 사용하고 있다. 가르치는 은사,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목사와 교사의 은사, 섬김과 봉사의 은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꼭 예언, 방언, 신유,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은사를 사용해야만 은사적 교회라 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무리가 있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은사는 주로 사람을 현혹하는 가시적인 은사만을 은사로 인정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은사는 보편적이 아니라 개별적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은사주의 교회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나타나는 은사가 동일하게 나타나기를 원한다. 그것만이 성령의 역사이고 차원 높은 성도라고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고전 12:29-30)라고 은사의 개별성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 은사주의 운동의 위험성은 같은 은사를 하는 자들끼리 모여 은사를 사용하는데 있다. 예언하는 자들은 예언하는 자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신유하는 자들은 신유하는 자들끼리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는 이러한 유형들이다. 몸의 각 지체들이 소리 없이 자신들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각각의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소리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섬김과 희생으로 봉사하여야 한다.
1. 신사도적 개혁운동이란 무엇인가?
신사도적 개혁운동의 중심에는 피트 와그너 교수와 C I의 빌 해몬 감독이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신사도적 지도자의 몇 가지 조건이 있다.
1) 초자연적인 능력의 소유자여야 한다.
2)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지도자여야 한다.
3) 초교파적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4) 세계적인 네트웍을 형성해야 한다.
5) 교회 성장의 주도적 역할을 하여야 한다.
피트 와그너 교수는 신사도적 개혁운동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개신교의 도래를 기대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사도적 개혁운동이란, 20세기의 마지막에 전세계적으로 개신교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특별사신 사역이다. 거의 500여년 동안 개신교는 이런 저런 교단의 형태로 존재해왔다. 특별히 1990년대에는, 비록 그 뿌리는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역교회의 정치 형태, 교회간의 연합, 재정, 전도사역, 선교, 기도, 지도자의 선택과 훈련, 초자연적인 능력의 역할, 예배 및 교회의 전반적인 분야에 새로운 형태와 사역과정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교단의 테두리 내에서도 일어나고 있지만, 대부분은 조직이 느슨한 사도적인 네트웍의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사실 전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신사도적인 교회들이 가장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목회와 신학>, "신사도적 개혁운동"에서)
빌 해몬 감독은 피트 와그너 교수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초대교회 시대에 있었던 사도와 선지자들의 출현을 통해서 완전한 교회형태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다. (빌 해몬, "사도들, 선지자들과 앞으로 올 하나님의 운동들", (크리스찬 인터내셔날), 진이 엘 킴 번역,1999)
"마지막 세기 교회는 초대 사도적 회복운동만큼 위대한 사도적 개혁을 갖게 될 것이다. 초대교회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교회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 이제 마지막 때의 사도적 개혁은 교회에 최후의 완성을 위한 손질을 해주게 될 것이다." (17페이지)
"회복 운동은 제각각 지난 500년 동안 다음 운동을 위하여 예비하였다. 신교 운동은 성결 운동을 위하여 길을 예비하였고, 또 계속해서 오순절은 늦은비 운동을, 늦은비 운동은 카리스마적 갱신, 또 믿음 운동은 현재 예언적 운동을 위하여 예비하였다. 예언적 운동은 사도적 운동을 위하여 지금 길을 예비하고 있고, 그것은 또다시 성도 운동을 위하여 길을 예비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가장 높으신 분의 성도들에게 단 2:44, 7:18, 27과 계 11:15, 1:5-6, 5:9-10을 성취하도록 가능하게 할 것이다." (28페이지)
빌 해몬 감독은 자신이 지난 10년 간 해온 선지자적 예언 운동을 통해서 많은 선지자들을 길러내었고, 이제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사도적 회복운동의 사명을 맡기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새로운 형태의 개신교의 도래는 루터와 칼빈을 통해서 형성된 정통 개혁교회와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고 생각된다. 비록 그들이 그 출발점을 500년 전으로 잡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방향은 완전히 다르게 가고 있다. 빌 해몬 감독이 말한 성결 운동, 오순절 운동, 카리스마적 운동, 예언적 운동, 사도적 운동은 과연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말씀"을 근간으로 형성된 정통주의 교회의 형태와는 다른 유형의 교회이다.
교회의 회복(부흥)운동(르네상스=renaissance)는 어떤 새로운 유형의 운동의 출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2000년 교회사를 통해서 해온 것처럼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돌아가는 운동이다. 바울과 요한, 성 어거스틴, 루터, 칼빈, 조나단 에드웨즈로 이어지는 부흥운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거부하기 때문에 자꾸만 다른 유형의 운동을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려지는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말을 통해서, 인간은 끊임없이 의심을 통해서 사유하게 되고, 끊임없이 사유하는 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명제라 정의하였다. 그는 인간의 이성을 인간에게 돌려주었다.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자유함을 누리게 된 인간의 이성이 이제는 기독교의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정통교회의 두 축을 흔들어 놓게 되었다. 인간 이성이 자신에게 자유를 가져다 준 신에게 칼을 뽑아든 격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기독교 신학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하여 펠라기우스주의(반-펠라기우스주의)가 정통개혁교회에 도전해오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성결 운동, 카리스마적 운동, 예언 운동, 오순절 운동, 사도 운동 또한 알미니안주의, 복음주의, 신정통주의, 세대주의와 같은 분파들은 결국 인간의 이성과 의지를 하나님의 구원의 어떤 부분을 차지하게 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에게 인간의지의 전적타락을 부인하는 구실을 주었다.
사도와 선지자와 같은 전통 교회에서 사용하지 않은 새로운 은사의 출현이 현재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에 더 큰 혼란만 가져다 줄 것으로 여겨진다. 전적타락한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고, 성령을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거룩함에 이르는 것이 바로 개혁(부흥)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사역을 은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의 절대적 주체이시고, 인간은 구원의 절대적 객체라는 사실이다. 진정한 개혁은 "오직 은혜" "이신칭의"로 돌아가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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