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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땅 위의 하나님의 왕국_ 로저 오클랜드

9. 땅 위의 하나님의 왕국  로저 오클랜드

하나님의 왕국은 이머징 교회의 중심 대화 내용이다. … 나는 “하나님의 왕국” 언어는 이머징 교회에서 정말로 큰 관건이라고 말하고 싶다.[i] - 덕 패이짙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 땅에 주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 땅에 유토피아를 결코 설립할 수 없다. 오히려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선과 악의 대립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마지막 때에 인간의 마음이 어떠한지에 대하여 요한 서술을 보자: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계 22:11).
요한의 예언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인간의 상태가 어떤 것일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현재 왕국(Kingdom Now) 또는 기독교 주권주의(Dominionism)라고 불리는 신학이 기독교 사상에 침투하고 있으며 이머징 교회 운동은 이 신학을 다음 세대로 신속하게 끌고 들어가고 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설립할 수 있다는 사상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세상을 기독교 세계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의 시스팀은 문자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세계관을 바꾸었으며 그들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지금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자는 사고 방식은 사탄의 모든 노력으로서 참된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지를 왜곡시키고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메시지를 제거하려는 수작이다.
지구의 미래에 관한 이머전트의 견해
이머징 교회 지지자들의 종말론에 관한 믿음을 조사해보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좀 더 알 수 있게 된다.
브라이언 맥클라렌의 책 자비로운 정통(generous orthodoxy) 을 보면, 맥클라렌의 미래에 대한 관점이 나타나는데 이 관점은 많은 다른 이머전트 지도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소제목 “버려짐의 종말론이 왕국의 관련 복음에 의하여 전수되다” 하에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복음주의적-세대주의의 “휴거” 종말론은 (세상에 7년 또는 1000년 이후의 7년에 세상은 멸망한다는 교리)  현대 세계에서 완전하게 이해가 되었었다.[ii]
경고 및 계시록의 메시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가르침을 비판하면서 맥클라렌은 다음과 같이 추가한다:
현대 권력의 중심이었던 그리스도인들은 (1800년대 영국에서, 1900년대는 미국에서) 산업의 현대화의 세속적 이야기 속에서 아무 것도 내다보지 못하고  … 오직 영적 침체와 지구의 멸망만을 보았다. 그들의 유일한 소망? 재림과 함께 오는 하늘의 갈고리이다. 모든 피조물은 마치 빈 사탕 껍질처럼 벗겨서 우주의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하늘로 데려가신다는 것이다. … 이 모델에 의하면 현재 이 땅의 피조물과 새하늘의 피조물 사이에는 실제적으로 연속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 땅과 피조물은 실수처럼 지워지고 재활용이 불가능한 우유통처럼 버려진다. 이 지구를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목적을 위해 다 사용된 껍질들을 아무 쓸모없는 우주의 쓰레기 장에 버리는데 누가 왜 감상적이 되어야 하겠는가?[iii]
맥클라렌은 묵시록적 관점에서 성경을 읽지 않는다. 그는 사실 묵시록적 관점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으로서 성경에서 기원한 것이 전혀 아니라고 함축한다. 그는 마지막 날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믿는 자들은 심각하게 오해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중적인 복음주의 종말론은 이해는 가지만 심각한 실수를 하였다. 그 종말론은 현대가 끝이 없었다면 미래가 얼마나 소망이 없었을 것인가에 대하여 바르게 평가를 하였지만 그러나 현대가 계속 존속할 것으로 잘못 확신하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이 로마 제국을 이겨내고 존재할 것을 상상하지 못한 것처럼 …. 19세기 및 20세기의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이 현대 시대, 즉 과학의 제국, 소비와 개인주의의 제국을 이겨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iv]
맥클라렌은 독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종말론적 견해들, 곧 묵시적이고 환난이 오는 등의 견해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항상 있어왔던 것들이라고 확신 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신학이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면 맥클라렌이 맞다. 그러나 현대 세상이 종말론의 저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저자이시다. 성경은 종말론적 신학을 지지하고 있다!
맥클라렌은 하나님의 왕국이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장래 언젠가 이 땅에 설립될 것을 믿고 그 믿음을 지원하기 위하여 여러 성경들을 다시 작업하였다:
대중적인 복음주의 종말론이 확장되기 위하여 구약 선지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많은 것들이 무시되거나 재해석되었다. 역사 내의 화평과 평화에 대한 예언적 비전들은 (사자들과 어린양, 어린이와 뱀들, 칼들과 곡괭이, 창과 갈고리 등이 상징으로 나타나는) 역사를 넘어서는 것들로 밀려 나면서 영적인 하늘이나 또는 시간과 영원 사이의 역사 후 시간의 영역인 천년 중간 단계들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 지금 우리 중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오늘날 접근이 가능한 하나님의 나라는 곁으로 밀쳐내야만 했다.[v]
맥클라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전반적 초점을 다 놓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 18:36)이라고 하셨고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다 (눅 17:21). 이는 주님께서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자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언급하고 계셨던 것이다. 맥클라렌은 이 땅에 설립된 공동체적 왕국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주께서 그의 나라를 설립할 것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인격적인 관계와는 상반된 사회 정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맥클라렌만이 하나님의 왕국을 이런 식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교회 성장 모델도 이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서 있다.
목적이 있는 포용적인 교회
릭 워렌은 피스(P.E.A.C.E) 라고 불리는 계획이 있는데 이 계획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도래케 하려는 것이다. 피스라는 각 음절의 뜻은 P(Planting 또는 Parenting Churches: 심고 양육하는 교회), E(Equipping Leaders: 지도자 양성), A(Assisting the poor: 가난한 자를 도움), C(Caring for the sick: 아픈 자를 돌봄), E(Educating the next generation: 차세대 교육)이다.[vi]
전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과 경제 지도자들도 이 세상의 여러 문제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이미 유사한 사회 프로그램들을 상의해 왔으나 지금까지 다 실패하였다. 그러나 워렌은 그들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한가지 중요한 요소가 빠졌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즉 모든 것을 포용하는 교회가 빠졌다고 한다.
이 포용하는 교회를 워렌은 ‘다리 세개의 높은 걸상(three-legged stool)’ 중에 세번째 다리라고 부르고 있다. 인터뷰에서 워렌은 이 말을 좀더 설명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너무 커서 모든 사람들이 그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다 실패하였다. 미국도 실패하였고 유엔도 실패하였다. 그 누구도 이 5가지 문제를 풀 수 없을 것인데 그 이유는 다리 세개의 높은 걸상이 없기 때문이다. 나라의 안정을 위하여 당신은 강하고 건전한 정부, 강하고 건전한 기업, 강하고 건전한 교회가 필요하다.
다리 세개의 높은 걸상은 안정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세계를 다니며 기업의 역할, 교회의 역할, 정부 지도자들의 역할을 가르칠 예정이다. 당신도 함께 이 일에 동참할 수 있다! 우리가 함께 일하지 않으면 이 세상 어디서나 이 문제를 풀 수 없다.[vii]
십중팔구 피터 드러커가 워렌에게 이러한 생각을 집어 넣은 것 같다. 드러커는 사회의 정치, 경제, 영적인 다리를 언급한다. 그 세개가 함께 일한다면 세계는 평화롭고 질서 있는 사회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의 가르침에 워렌의 생각이 추가된 부분은 교회가 다른 종교 및 세속 기관들과 함께 뭔가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며 이에 더욱 강력하고 효과적인 조직이 개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PBS 의 챨리 로스(Charlie Rose)와 인터뷰를 하면 워렌은 자신의 생각을 정의한다: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가난, 질병, 에이즈, 문맹, 불의에 대하여 우리와 함께 일하길 원합니까?” 라고 말할 때 내가 종종 발견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함께 일하려는 의향보다 그들이 우리와 함께 일하려는 의향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와 함께 일하기 위하여 당신들의 신앙을 바꾸라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당신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과만 일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을 제외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난에 대하여 일할 때 모슬림이 그들의 신앙을 바꿀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게이라 할지라도 나와 함께 일하기 위하여 그들의 믿는 바를 바꿀 필요가 없다. 그들은 나의 신앙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으며 나 또한 그들의 신앙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viii]
“당신들의 신앙을 바꾸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라는 말에 의하여 워렌은 모든 종교의 장벽을 넘어 온 세계적 평화 계획을 추진한다. 이를 위하여 그는 모든 종교 시스팀과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리 세개의 높은 걸상의 종교적 (또는 영적) 다리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 다리는 워렌이 “두번째 종교 개혁”[ix]이라고 언급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발생하였던 첫번째 종교 개혁과는 달리 워렌의 종교 개혁은 그 속성상 근본적으로 다르다. 워렌의 종교 개혁은 “교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 “행위에 관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교회가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라고 말한다.[x] 예수 그리스도가 통합적인 영적 조직의 주요 핵심이 되기 보다는 두번째 종교 개혁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공통 명분이다. (즉, 워렌이 언급하는 5가지의 거대한 온 지구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이다. 가난, 질병 등…)
챨리 로스와의 인터뷰에서 워렌은 주목할만한 언급을 하였다. 그는 게이 활동 그룹의 지도자와 만났던 사실을 말하였으며 그와 어떤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나는 방금 에이즈 대치 운동 액트업(ACT-UP)의 공동 창설자요 회장인 에릭 쏘여(Eric Sawyer)를 만났다. 나는, “에릭, 당신의 메시지가 나갈 수 있도록 제가 어떻게 당신을 도와야 하나요? 나는 당신이 여러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어떻게 당신의 메시지를 세상에 알리도록 제가 도울 수 있나요?” 라고 질문하였다. 그는 “당신의 도덕적 기관(교회)을 사용하십시오” 라고 대답해 주었다. 나는 이 친구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xi]
워렌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교회는 공통 명분으로 모든 신앙을 다 포함하고 있다. 이 포용적인 교회는 단지 충성된 그리스도인들 만큼은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피스(P.E.A.C.E) 계획에 동참하길 원하는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대환영이다. 인터뷰에서 챨리 로스는 워렌에게 그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카톨릭과도 함께 일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워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기독교는 범세계적(global) 운동이다. 사실 기독교는 누군가가 범세계주의(Globalism)를 말하기 시작하기 200년 전부터 범세계적이었다.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유일한 범세계적 기관이다. 이 세상에는 23억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xii]
워렌이 23억의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할 때 로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마도 그들 중 6억은 내가 믿기로는 카톨릭 신자이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이 연결되면 이 세상의 가장 큰 네트워크가 될 것이다. 나는 이 네크워크에 속하여 지난 26년 동안 지도자들을 훈련시켜왔다. 우리는 163개국에서 서로 다른 모든 종류의 교단으로부터 온 40만명의 목사들을 훈련시켰다. 이는 아직 전 세계의 기독교와 비교할 때 매우 작은 네트워크이다.[xiii]
2005년에 워렌은 자유주의 진영의 종교 포럼에서 연설을 했다. 피스(P.E.A.C.E) 계획의 통합적 속성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이 계획이 가지고 있는 범세계적 힘을 믿는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제 미국의 25% 가 기본적으로 카톨릭이고 미국의 28-29% 가 복음주의인데, 이 둘을 합치면 주류가 된다. 만일 어떤 특별한 관건에 이 둘이 함께 한다면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된다. … 나는 당신들이 복음주의 개신교와 카톨릭 간의 연동이 발전하고 있음을 보기를 장려한다.[xiv]
공통 명분을 위한 범세계적 협조를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도래시키겠다는 릭 워렌의 종교 개혁은 카톨릭, 모슬림, 동성주의자들을 다 포용할 것이다. 이러한 조합은 16세기의 종교 개혁과는 전혀 판이하다.
워렌은 챨리 로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으로부터 “교회의 역할”에 대하여 정의를 내린다. “100년 전만 해도 개신교는 나누어졌습니다. 한 그룹은 사회 복음에 초점을 맞추었고 (“선한 사회 구조를 가져옴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하게 하자”), 다른 그룹은 개인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물론 이 두 그룹 중에 어떤 것이 옳습니까? 글쎄요… 둘 다 옳겠지요. 그들은 이제 서로 다시 뭉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과 평화의 사람
일반 상식과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과 질병과 문맹이 없는 세상을 원할 것이다. 나는 고통 받는 자와 병든 자,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수고하며 돕는 모든 기관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찾아서 돌보라고 하셨다. 그러나 범세계적이고 범종교적인 일치를 통하여 이 땅에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것은 헛수고일 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내가 숙명론자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육체적으로 재림하셔서 주님의 나라를 친히 세우기 전까지는 눈물과 아픔과 가난과 고통이 없는 왕국이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을 지지하지 않는다.
또 다른 질문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만왕의 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세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릭 워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가오는 범세계적 왕국을 막는 장벽들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왕국을 세울 수 있는 전략을 알려 주셨다고 믿는다. 워렌이 이 계획을 세우기 전에 그는 예수님께 이 세상을 어떻게 주님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지 보여달라고 물었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그 일을 어떻게 하셨나요? 주님은 우리에게 아무 전략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나는 마태복음 10장과 누가복음 10장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주의 첫번째 제자들을 내 보내고 있다. … 주님은 “마을에 들어가 평화의 사람을 찾으라”고 하신다. 평화의 사람을 찾으라. 모든 마을에 평화의 사람이 있다. 모든 정부에, 모든 기업에, 모든 교회에 평화의 사람이 있다.[xv]
워렌은 평화의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예수님께 더 질문하였다. 다음은 그가 들은 주님의 대답이다:
나는 “평화의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다. 주님은 대답하시길, “만일 네가 평화의 사람를 찾게 된다면 그는 마음을 열고 너와 함께 일하려고 할 것이다. 너는 그를 축복하고 네 사역을 그곳에서 시작하라. 만을 그 친구가 마음을 열지 않고 너와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네 신발에서 먼지를 털고 다음 마을로 가거라. 너는 반드시 함께 일할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의 이 사람은 마음을 열고 영향력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
평화의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인일 필요는 없다. 그는 모슬림일 수도 있다. 유대인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평화의 사람을 찾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때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아직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시지 않았으며 부활도 아직 없었다. 이러한 때에 주님은 단지 밖으로 나아가 함께 일할 사람을 찾으라고 한 것이다.[xvi]
워렌은 자신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가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라는 주님의 음성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쓰인 예수님의 말씀으로 워렌의 믿음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예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내용들은 워렌이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이다. 예수님이 아직 돌아가시지 않고 부활하지도 않았다는 사실로 인하여 워렌은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을 평화를 선포하라고 파송한 것으로 생각한다. 아직 선포한 다른 메시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내 보내실 때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회개의 복음을 외치라고 보내셨다 (마 10:7). 이 메시지는 세례 요한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복음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외쳤던 회개의 복음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은 각 마을에서 “평화의 사람”을 찾으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은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고 하셨다 (마 10:11).
이제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이 사용할 인사를 말씀하셨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말라고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그 집에 유하라고 하셨다 (눅 10:5-7). 그러나 그 집에 머물게 되는 조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조건은 평화의 인사가 아니라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마 10:14).
사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메시지를 선포할 때 많은 사람들이 거절할 것을 분명히 알려 주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4).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복음을 전파함으로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그러나 릭 워렌은 이 두 문장을 거꾸로 뒤집어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평화를 외치도록 보내셨으며 그 이유는 그 당시 아직 선포해야 할 다른 메시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만일 우리가 이 땅에 통일된 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다른 복음을 믿는 사람들 및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과 손을 잡게 되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목적이 이끄는 통합 주의
릭 워렌의 야망찬 목적이 이끄는 피스(P.E.A.C.E) 계획은 매우 옳은 것처럼 들리고 또한 얼뜻 보면 성경적인 것처럼 보여도 그 표면 아래를 보면 문제가 많다.
워렌의 새로운 종교 개혁 프로그램을 이해하기 위해 기자 막크 켈리가 “릭 워렌 범세계적 사역을 시작하다(Rick Warren launches global initiative)” 라는 제목으로 쓴 기사를 보자:
세계적으로 수천개의 교회들이 수십억의 사람들을 짓누르는 5개의 “장대한 문제들(giant problems)”를 뿌리채 뽑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릭 워렌은 캘리포니아 애나하임(Anaheim, California)의 엔젤 경기장에서 4월 17일 새들백 커뮤니티 교회의 25주년 기념식에서 3만명이 모인 가운데 연설을 했다. 새들백 교회의 목사인 릭 워렌은 “수십억의 사람들이 매일마다 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하여 고통 당하고 있다” 고 말하였다. “영적 공허함의 문제, 이기적인 지도층 문제, 가난, 질병, 무지 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게 큰 조직은 전 세계의 수백만의 교회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것이다.[xvii]
또 다른 기자 단 우딩(Dan Wooding)은 워렌의 범세계적 사역의 시작을 잘 설명하고 있다:
4월 17일 주일, 엔젤 야구 팀의 고향인 엔젤 경기장에서 교회의 25주년 행사가 열린 가운데 릭 워렌은 놀라운 선언을 함으로 홈런을 쳤다. … 워렌은 피스 계획을 통하여 2020년까지 기독교 교회로부터 사명을 가진 10억의 보병을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21세기에 전 세계적 영적 각성을 위한 비전과 기독교 내의 새로운 종교 개혁을 향한 교회의 다짐을 공포하였다.[xviii]
켈리에 의하면 워렌은 또한 척 콜슨과 손을 잡고 함께 하나님의 왕국을 세워 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워렌은 또한 감옥 선교(Prison Fellowship)의 창설자인 챨스 콜슨(Charles Colson)을 소개하면서 그와 새로운 동반자가 되었다고 알렸다. 챨스 콜슨은 자신이 운영하는 감옥 선교를 통하여 워렌의 축제 복구 프로그램(Celebrate Recovery Program)을 108국의 감옥 선교에 소개하기로 하였다.[xix]
콜슨의 감옥 선교는 칭찬할만한 것이지만 그는 공통 명분들을 찾아서 개신교와 카톨릭을 하나 되게 하기 위하여 복음주의와 카톨릭의 연합(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 이라고 불리는 문서를 작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 점은 문제가 많다.
콜슨과 워렌 간의 협력 관계는 매우 의미가 깊은데 그 이유는 이 둘다 교회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또한 둘다 카톨릭 교회에 호의적이기 때문이다.
애나하임 모임에서의 워렌의 연설은 그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케 하려는 자신의 계획에 적극 협력하도록 격려하였다. 워렌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여러분 앞에 지금 자신있게 서 있다. 그리고 담대하게 여러분들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사용하여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 나는 이 경기장에 가득 찬 여러분들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왕국을 세울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주께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는가? 어떤 영적 각성이 발생하겠는가?[xx]
워렌이 “뭐든지 하겠다”고 하는 뜻은 무엇일까? 워렌의 계획 일정에 의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카톨릭과도 연합하겠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자연스런 동맹(A Natural Alliance)”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저자는 워렌 및 워렌이 그의 인생 가운데 꿈꾸는 종교 개혁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관찰을 보여준다. 데이빗 브룩스(David Brooks)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내가 복음주의 공동체를 볼 때, 나는 변환 중에 있는 공동체를 본다. 낙태나 동성 연예에 대한 전통적인 문제들을 넘어서서 어려운 자들을 돕는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에 더욱 관련되고 있다. 나는 릭 워렌을 보고 있는데, 그는 그의 새로운 피스(PEACE) 계획을 시발점으로 하여 가난과 질명과 싸우기 위해 수천명의 사람들을 롼다(Rwanda) 및 다른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에 보내고 있다. 또는 척 콜슨은 수단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것을 본다. 국제 복음주의 협회(th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의 리차드 씨직(Richard Cizik)은 기독교 보수 진영을 넘어서는 그러한 지원들을 끌어오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이 더욱 카톨릭의 사회 봉사에 의하여 더욱 영향을 받고 있으며 따라서 선행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나는 개인 구원을 강조했던 사람들과 사회 도덕성을 강조했던 사람들 사이의 균열이 역사적으로 치유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새로운 종류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본다.[xxi]
릭 워렌은 “십억의 보병”이 피스(PEACE) 계획을 설립하기 위해 부름을 받는 중이라고 하며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의 약속을 받은 자들”이요 “성경적 명령과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자들”이며 “이를 행하기 위하여 영적 권세를 가진 자들”이라고 언급하였다.[xxii] 시간이 지나보면 워렌이 목적이 이끄는 10억의 보병을 동원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하다. 이토록 많은 헌신된 지지자를 동원하려면 이는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점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를 왕래하는 통합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련에 대한 성경 예언
한때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던 많은 사람들이 잠이 들어 있다. 우리는 현재 많은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기독교 군중들에게 성경의 빛으로 우리 시대의 징조들에 대하여 관심을 쏟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한 걸음 더 나가서 시대의 종말에 대하여 성경의 예언을 믿고 말하는 사람들을 매우 부정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목적이 이끄는 삶 에서 워렌은 사실 어머징 교회의 새로운 개혁을 위한 기초 작업을 하였다. 이 새로운 개혁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생각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는 이미 범세계적으로 그리스도를 인식하는 차원에서 사람들 가운데 있다고 군중들을 설득하는데 분투하고 있다. 다음 내용에서 보겠지만 워렌은 성경의 예언에 대하여 우습게 여긴다. 아마 이 내용는 한때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세상을 향하여 야망을 갖게 되었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워렌은 다음가 같이 쓰고 있다:
제자들이 예언에 대하여 말하기를 원하였을 때 예수님은 신속하게 그 대화를 복음화로 바꾸었다. 주님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의 그들의 사명에 집중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주님은 요약하여 “나의 재림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다. 너희들의 할 일은 내가 너희에게 준 사명이다. 그 사명에 초점을 맞추라![xxiii]
나는 어떻게 이러한 류의 말을 하는 책이 오늘날 기독교 서점에서 뉴욕 타임즈의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날자와 시간을 알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주님께서 “나의 재림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다” 라고 의미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신속하게 주제를 바꾸어 주님께서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징조들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셨다. 마태복음 24장과 누가복음 21장은 성경에서 가장 긴 장으로서 예수님의 예언들과 징조에 관한 말씀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요약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우리는 주님의 재림의 시간과 날자는 알 수 없지만 성경의 예언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 마지막 시대에 주님의 말씀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후에 제자들 중에 하나인 요한은 한 권의 책 전부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로 채웠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깨어있으라고 경고하셨으며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비유를 통해서 또한 직설적으로 주님은 주의 재림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2:35-40절에서 예수님은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하셨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눅 12:35-40).
예수님은 종종 구약의 예언들을 참조하셨다. 그 예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그가 자신에 관하여 말한 것이 참임을 증거하였다.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사 9:6).
그러나 워렌은 독자들에게 성경의 예언 아닌 다른 것들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예수께서 곧 재림하시길 원한다면, 예언을 알아내려고 하지 말고 당신의 사명을 이루는데 집중하라.[xxiv]
더욱이 워렌은 이 책의 마지막을 사탄이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사명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마친다. 이때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맥락에서 빼어내어 응용한다. “누구든지 내가 그를 위해 세워 놓은 일로부터 (성경 예언을 연구하느라) 벗어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리빙 바이블, 눅 9:62). 그러나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할 때 주의 재림과 관련하여 말씀하고 있지 않다. 킹 제임스 버전을 보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라고 되어 있다 (눅 9:62). 목적이 이끄는 하나님의 왕국은 성경 예언을 위한 여지가 없다. 사실 성경 예언을 연구하는 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성령으로 감동을 받은 사도 베드로는 워렌과 다른 관점을 말한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벧후 1:19).
그리스도인들은 증인으로 그리고 파수군으로 부름을 받았다. 성경은 결코 우리에게 예수님의 재림을 알려주는 안내서로서의 사건들을 무시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만일 이러한 사건들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신랑을 기다리다 잠이 든 어리석은 처녀들과 같이 될 것이다 (마 25:1-13).
워렌의 종말에 관한 견해에서 볼 때 그는 이머징 교회를 어떻게 생각할까? 단 킴발의 책의 서문에 워렌이 한 말을 보면 그 답을 할 수 있다. 워렌의 언급이다:
오늘날 구도자들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상징과 은유와 체험과 이야기들을 갈급해 하고 있다. 구도자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처럼 그들에게 예민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 자신의 진영에서 그들을 기꺼이 만나주어야 하며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해야 한다.[xxv]
릭 워렌은 이머징 교회가 미래의 교회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머징 교회에 대하여 열광하고 있다. 당신이 보다시피 이머징 교회와 워렌은 성경 예언에 관한 견해에 있어서 동일하며 그 예언들을 빼고 하나님의 왕국을 도래시키려는 계획에 있어서 같은 입장이다.
예수의 비밀 메시지
브라이언 맥클라렌이 다가오는 종말론적 심판을 언급하는 계시록 성경을 거절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맥클라렌의 책 예수의 비밀 메시지 (The Secret Message of Jesus) 는 이 주제에 관한 그의 견해를 거의 드러내고 있다. 그 책에서 맥클라렌은 “지금까지 내가 쓴 모든 것은 이 책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라고 말한다.[xxvi] “왕국의 미래”라는 제목의 과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계시록은 오늘날 유대 묵시(Jewis apocalyptic)으로 알려진 고대 유대교의 통상적인 문학 장르의 예이다. 이러한 문학 장르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시록을 읽는 것은 스타 트렉 이나 또는 다른 과학 소설을 보면서 그것이 역사적 문서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또는 코메디를 보면서 종교적인 비유로 보거나, 풍자를 읽으면서 자서전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 또는 어느날 오후에 마르지 않는 콘크리트의 발자국을 보고 호랑이의 모든 것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 … 계시록은 먼 미래에 관한 책이 아니라 곧 발생하게 될 그 당시의 도전에 대하여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이 책은 경고 및 약속의 책이 되었다.[xxvii]
더욱이 맥클라렌은 계시록은 예언적 통찰력을 제공하는 책으로서 타당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만일 계시록이 먼 미래의 청사진이라면 그 당시의 독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어지는 세대의 독자들에게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오직 한 세대, 곧 그 책이 예측하는 어떤 기간에 우연히 살게 된 그 세대에게만 참으로 그리고 충분히 관련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계시록이 학대받는 자들을 위한 일종의 문학의 예라면 그 책은 언제나 연관성이 있는 경고와 약속으로 가득차게 된다. 또한 계시록은 각 세대에 필요한 영감과 지혜와 위로를 제시한다. 이러한 빛에서 볼 때 계시록은 지금 이곳에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강력한 책이 된다.[xxviii]
맥클라렌은 성경의 이 마지막 책은 “지금 이곳의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이라고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종말론적 심판의 기간에 대하여 아무 언급이 없으셨다고 주장한다:
다른 독자들은 예수님의 입술로부터 친히 말씀하신 징조들로 가득한 복음의 긴 구절들을 생각할 것이다. 그 징조들은 이 세상의 마지막과 관련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구절들을 마태복음 24장과 25장 같은 곳에서 가져온다. …
유대 묵시는 예수님 당시에 대중적인 장르였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그 장르에 영향을 받으셔서 그 장르에 해당하는 언어와 상징들을 사용하셨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 유대 묵시적 배경 속에서 우리는 세상의 멸망에 관하여 말한 것처럼 들리는 표현들 - “달이 변하여 피가 되고” 또는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요” -은 사실 유대 묵시의 판에 박은 문구들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더 이상 오늘날 우리가 신문에서 읽는 문구처럼 문자적으로 취해져서는 안된다.[xxix]
맥클라렌과 동의할 사람이 있다면 뉴에이지 지도자 바바라 마르크스 허바드(Barbara Marx Hubbard)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왕국 신학(the Kingdom Now Theology)을 약간 변조한다. 그녀는 이를 아마겟돈 대안 (Armageddon Alternative) 라고 부르는데 그 기본적인 개념은, 만일 충분한 사람들이 함께 연결되고 이 땅과 세상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계시록에 서술된 대참사의 종말 시나리오가 전혀 일어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멸망의 모서리에 서 있던지 아니면 범세계적인 협력의 재창조의 문지방에 서 있다. 멸망으로 가게 되면 세상이 지금까지 본 재난 중 가장 큰 재난이 임할 것이요 그 멸망은 지구를 영원히 불구로 만들어 오직 몇 사람들만이 살게 될 것이다. 한편 범세계적 협력 재창조로 나악가게 되면 이 땅의 각 사람들은 신성을 향하여 자신을 발전시키는데 매력을 느끼며 참여하게 될 것이다.[xxx]
위의 인용은 마르크스 허바드의 책 계시 (Revelation) 으로부터 한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녀는 뉴에이저들이 믿는 미래에 발생할 일들을 그대로 서술하고 있다. 즉, 사람이 신성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며 따라서 성경이 예언한 것들을 막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성경의 언어를 사용하여 허바드는 이 기간을 서술한다:
눈깜짝할 사이에 우리는 이 체험에 의하여 모두 변화될 것이다. 이는 군중적인 메타노이아 (Metanoia) 로서 인류가 나누게 될 영적 체험이 될 것이며 우리 모습 그대로 우리 안에 평화로운 두번째 신성이 임하게 될 것이다.[xxxi]
마르크스 허바드가 제시하는 것은 맥클라렌의 메시지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즉 왕이신 예수께서 물리적으로(신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으셔도 하나님의 왕국은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설립될 것이라는 것이다. 맥클라렌은 그의 모든 포용적인 왕국을 서술한다:
슬프게도 수세기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장소 가운데 기독교는 예수의 비밀 메시지를 경시하고 오해하고 망각하였다.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에 도래하게 하는 대신에 기독교 종교는 너무 자주 지구를 버리거나 도망쳐 하늘로 올라간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왔다. …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이 가장 작고 천하고 버려진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사람에게 허용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져 버렸다. 대신에 하나님의 왕국이 올바르고 깨끗하고 힘있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지성인들에게 허용되는 것으로 믿고 가르쳐왔다.[xxxii]
바바라 마르크스 허바드는 또한 임하는 새 왕국에서는 모든 인류가 자신의 신적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아마겟돈을 피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당신은 일곱째 인이 떼어지지 않도록 아마겟돈의 대안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그 대안은 범지구적 오순절이다. 즉 모든 군중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위대한 협력의 순간을 준비해야 한다.[xxxiii]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 “가장 큰 원수들 중에 하나”
지금 이 시대 가운데 그리스도의 재림과 말세의 대환난에 관한 시나리오를 외치며 경고하면 많은 적개심의 반박을 듣게 된다. 토니 캠폴로는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교회 역사의 마지막 단계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xxxiv] 그리스도인들은 “극단적인 피해를 끼치는”[xxxv]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산상수훈을 무시하고”[xxxvi] 어려운 자들을 돌보지 않으며[xxxvii] 인류의 지정학(geopolitics)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xxxviii] “전쟁으로만 이끌고 있다”[xxxix]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캠폴로에 의하면 그들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엉망이고, 그들은 이머징 영성이 더 확장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릭 워렌은 이러한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을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부르면서) “21세기의 가장 큰 원수들 중에 하나”라고 부른다. 그는 이들을 이스람의 근본주의자들 즉 테러범들로 연관시킨다.[xl]
나는 종종 이 주제에 대하여 매우 격분한 편지나 이멜을 받는다. 다음은 그러한 편지 중에 하나이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목사이다:
나는 목적이 있는 피스(PEACE) 계획에 대한 당신의 평을 읽었습니다. 슬프게도 당신은 당신의 세대주의 신학적 관점이 전통적인 성경적 기독교의 관점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180년 전까지만 해도 그 어떤 그리스도인도 성경을 전혀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고려해 보십시오. (성경 해석은 75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대중적이지 않았습니다. ) 당신이 릭 워렌의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견해가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교만한 것입니다.
이 편지는 내가 워렌이 피스(PEACE) 계획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피스(PEACE) 계획의 후원자들이 열거되었을 때 이에 관한 평을 출간한 직후에 온 것이다. 내가 평을 낸 의도는 판단이 목적이 아니라 피스(PEACE) 계획이 아무나 후원자로 삼으려는 통합적 계획의 위험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게 자신의 의견을 보낸 그 목사는 내 이유를 용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나의 평이 나의 편협된 신학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어느날 그리스도 앞에 설 때에 그는 우리에게 배고픈 자를 먹였는지, 벗은 자를 입혔는지, 감옥에 있는 자들을 방문하였는지를 물을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주 안에서 이러한 일을 하길 원하는 형제를 대항하여 이렇게 행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교리로 (특히 종말론으로) 당신과 나를 심판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 우리의 구원은 믿음으로만 가능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모든 신자들이 그들의 행위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배고픈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며 감옥에 갇힌 자를 방문하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러나 적어도 이 땅에 천국을 세우려는 어떤 패러다임을 위하여 이 땅의 마지막 날들에 관한 성경적 관점을 갖다 버리는 것은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것이다. 더욱이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고하길 마지막 때는 교리의 중요성을 거부하는 지도자들로 가득찰 것이라고 말한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교리)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 4:3-4).
흥미롭게도 베드로는 마지막 때에 관한 성경적 진리를 거부하는 일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베드로의 경고를 잘 듣고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 주자: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2-4)
유토피아적 왕국과 범세계적 치유?
이머징 교회는 이 땅의 하나님의 왕국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한다. 그러나 그 언어와 철학에 있어서 성경와 많이 다르다. 마르크 스캔드렡(Mark Scandrette)라는 어떤 이머전트 작가는 이머징 교회가 과거의 그 어떤 교회보다 “더 지혜롭고”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할 것를 소망하고 있다. “우리의 세상을 치유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전반적인 방법으로”으로 그가 믿는 바는 다음과 같다:
피조물 위에 운행하셨던 하나님의 영이 여전히 우리 세상에 임재하여 계신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우리의 창조주께 협력할 것을 초청하고 있다.[xli]
그는 이 땅의 공동체를 향한 비전은 유토피아의 세상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이란 더 아름답고 지속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믿는 생산적인 백성들을 말한다.[xlii]
덕 패이짙은 이머징 교회가 이 땅에 완벽한 왕국을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한다:
… 정말로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며 단지 오는 세상의 약속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참여하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서 좋은 소식을 바견한다. 나는 당신에게 “하나님의 왕국” 언어는 정말로 이머징 교회에서 크다고 말하고 싶다.[xliii]
우리가 아프리카의 가난한 자들, 미국의 집없는 자들, 에이즈로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러한 고통이 없는 세상을 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전파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지가 과연 범세계적 치유 및 고통과 아픔이 없는 세상을 약속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지금은 절대 아니다. 우리의 인간적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이러한 고통들을 원하시거나 허락하신다고 생각할 수 없어서 우리는 인류을 위한 목표는 일치, 평화, 무통, 더 이상 슬픔이 없어야 하는 것이라고 결정한다. 이를 이루기 위한 노력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망각이다. 예수님은 잃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으며 그들의 마음 속에 유토피아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운 자들을 돕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만 우리의 최대의 책임은 복음을 그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마르크 스캔드렡은 “하나님의 왕국의 신학에 대한 관심은 서로 연결된다는 느낌으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자리까지 간다.[xliv] 레오나드 스위트는 이러한 상호 연결을 “토에(TOE) 이론” (모든 것의 이론)이라고 부른다. 이 이론의 내용은 모든 피조물들이 새로운 빛이라고 불리는 영적인 힘을 통하여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스위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춤을 춰야 한다면 제일 먼저 흐느적 거리는 자신부터 제대로 세워야 한다. 제일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발고락(TOE)을 닿기 위하여 몸을 펴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는 토에를 장엄한 통일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그후, 오직 그후에만 “세상을 만드는” 믿음의 새로운 빛 운동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세상, 그러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세상을 창조하는 것을 돕기 시작할 것이다. 그후, 오직 그후에만 속인들은 이 단어들, 마지막 단어들 중의 몇가지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 토마스 멀톤이 언급하였다: “우리는 이미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xlv]
현재 왕국 신학(Kingdom Now Theology)과 이머징 교회의 유토피안 왕국은 자연적이고 세속적인 인간들이 가장 바라는 것들이다. 예수님은 고통 받는 자들, 가난한 자들, 궁핍한 자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평강이요 모든 것을 초월하는 평강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데로 주님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인간적 마음으로는 이를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우리 주변에 발생하는 무서운 고통들을 생각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만일 릭 워렌과 브라이언 맥클라렌이 그들의 이 땅 이곳의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메시지를 들고 아프리카의 오두막에 사는 가난한 사람에게 갔다면 그 메시지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이룰까? 그가 만일 그 오두막을 결코 떠날 수 없다고 가정하면 그들의 메시지가 그를 어떻게 도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로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믿음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그 후로 그는 날마다 자신 안에 내재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그의 남은 여생을 살아갈 수 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주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마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계 3:20).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이 세상은 항상 고통을 당할 것이며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이 말씀을 하심은 가난한 자와 고통 받는 자를 피하거나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시다. 그러나 주님은 주의 제자들이 이 땅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에게는 마지막 종착지가 아닌 것을 알기를 원하셨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다름과 같이 말하였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1, 4).
하나님의 참된 왕국은 믿지 않는 자들과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이해가 될 수 없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개념은 그들에게 어리석게 보일 뿐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생각에 맞는 인간의 계획과 신학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에게 지혜로운 것이 하나님께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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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인터뷰는 http://video.google.com/videoplay?docid=-5555324196046364882 에서 다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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