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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성체’ 그리스도의 재림 _로저 오클랜드

8. ‘성체’ 그리스도의 재림  로저 오클랜드

‘이머징 교회’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전 세계를 카톨릭 성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려는 카톨릭 프로그램인 새 복음화[i]을 주제로 하여 남아프리카에서 말씀을 전하고 돌아오는 때였다. 그때 나의 강연을 들은 어떤 자매가 이머징 교회에 대한 기사를 이멜로 보내주었다. 그녀는 “이머징 교회가 당신이 말씀하셨던 카톨릭의 새 복음화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라고 질문하였다. 그 때 나는 이머징 교회가 얼마나 큰 다리를 놓게 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성체 복음화 (Eucharistic Evangelization)
카톨릭 교회의 새 복음화 프로그램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간단하게 안내하겠다. 카톨릭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설립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모든 세계를 카톨릭 예수(즉, 성체적인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있다. 이 계획은 ‘분리된 형제’*를 포함한 전 세계가 로마/성체 예수의 통치와 관할에 들어오면 완성이 된다.
성체 성사의 예수는 카톨릭 사제가 미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화체(transubstantiantion: 떡과 포도주가 실제 기적을 통항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변한다는 믿음)의 역사를 통하여 그 성체로 임재한 그리스도를 말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성만찬을 카톨릭의 성체 전통과 같은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화체의 성체는 실제로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 살과 피로 바뀐 것이다. 이에 대하여 카톨릭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성체 성사는 가장 축복된 것으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 그리고 주님의 영혼과 신성이 그 성체에 있는 것으로서 모든 그리스도가 실제로, 참으로, 물질적으로 성체에 포함되어 있다.”[ii]
성체는 성체 안치기(Monstrance)라고 불리는 곳에 놓이게 되는데 그후 사람들은 예수님 그분을 예배함같이 성체 안치기에 놓인 성체를 예배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카톨릭 교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구원 자체가 성체 성사에 참여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점이다. 성체 성사와 함께 구원이 성찬화되어 그 예식에 참여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갈라디아서 2:16절에서 서술하는 그리스도만을 믿는 믿음에 의하여 의롭게 된다는 복음과 정반대이다. 이러한 카톨릭 교회의 가장 중심에 있는 성체 신비 체험은 우상의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예식에 보이는 관심은 신속히 커지고 있으며 특별히 그들 중에 이머징 교회가 있다.
카톨릭 교회 지도층은 카톨릭 교회 내에서 성체 성사에 대하여 무관심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새 복음화 프로그램”[iii]이라고 불리는 성체의 “놀라움을 다시 불 붙이려는”[iv] 소망을 가지고 있다. 두 가지의 목적, 곧 현재 카톨릭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복음주의자들을 카톨릭 교회로 이끌겠다는 목적으로 교회 지도층은 카톨릭 믿음의 핵심으로서 성체를 재 강조하려는 계획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의미는 성체의 신비적이고 초자연적인 요소를 더욱 강조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카톨릭 교도들은 변화된 빵인 성체(the Host)를 예배해야 한다. 만약 이 가르침에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 트렌트 공회에서 카톨릭은 다음 사항을 공식화하였다:
만일 누구든지 가장 거룩한 성체의 요소 안에 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신성, 그리고 그분의 피와 살이 참으로, 진실로, 물질적으로 포함되어 있기에 결과적으로 그 성체는 모든 그리스도라는 것을 부정한다면, 그래서 성체를 단지 상징이거나 모습이거나 힘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v]
누구든지 성체 성사를 통하여 영적으로만 그리스도를 받고, 화체적 그리스도나 실제 그리스도로 받지 않으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vi]
종교 개혁 및 카톨릭의 반개혁(Counter Reformation) 기간에 화체를 믿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복음을 향한 믿음 때문에 고문을 당하여 처형당했다. 지금은 이러한 역사적 실체 사건들이 다 잊혀졌다.
2003년 4월, 교황은 성체 성사를 위하여 “그 놀라움을 새롭게 불 붙이려는” 목적으로 “새 복음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회칙을 썼다.[vii]
그후 2004년 10월에는 요한 바울 2세가 전 세계를 성체 그리스도께로 이끌려는 복음화 계획의 일부로서 “성체의 해”를 발표하였다. 2005년 4월 교황 요한 바울 2세의 죽음 후, 그 즉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전임 교황의 사명을 그대로 전수 받았다. 그는 성체 예수께 “더욱 강열한 충성된 헌신”을 요구하였으며 성체 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라고 말하였다.[viii]
베테딕토는 전임 교황의 사역이 계속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에 관한 기사를 보자:
교황 베네딕토는 신자들에게 “다가오는 미래에 성체 예수께 더 큰 사랑과 헌신을 당부하고 또한 주님의 실제 임재를 분명하게 과감하게 표현할 것을 당부하였다.”[ix]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가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더욱 성체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마리아는 “성체 여인”이다. … 우리는 동정녀에게 기도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체의 신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더욱 깊어지게 하자. 그래서 그들이 예수와의 끊임없는 교통 가운데 주님의 마땅한 증인들이 되게 하자.[x]
카톨릭 미사의 모든 전제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각 미사마다 성체 예수가 피 없는 제사로 드려지고 있다. 이렇게 되풀이 되는 제사는 성경 히브리서 9:28절의 단 한번 새 언약으로 드려진 제사와 상충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 9:28).
여러 번이 아니라 단번에 한번 드려진 제사임을 주목하라. 그 이유는 분명하다. 어떤 제사이던 고통, 아픔, 손해의 요소가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죄에 대한 단 한번의 제사로 받으셨다. 이사야 53:10-11절은 이를 설명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갈보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유일한 단 한번의 제사이다. 그 이유는 그 제사만이 “주의 영혼의 수고한 것”을 포함한 유일한 제사이기 때문이다. 만일 카톨릭 변증론자들이 공식적으로 시인하듯이 미사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면 (실제로 포함하지 않고 있다), 제사로 드려질 수 없다. 그 이유는 이사야 53장의 맥락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히브리서 12:2절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 고 말한다. 따라서 미사는 예수께서 부끄러움의 상태에 계시는 십자가와 똑같은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미사는 아무 효력이 없다. 즉, 죄를 속죄할 수 없다.
놀라움을 새롭게 불 붙이기
새 복음화 프로그램은 성체 예수에 대한 관심을 다시 강하게 불 붙임으로 카톨릭 믿음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열광적인 사람은 교황 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추기경들, 감독들, 사제들까지 이 사명에 힘을 다하고 있다. 매우 중요한 뭔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성체 숭상은 카톨릭 교회의 새 복음화의 토대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뉴욕의 어떤 카톨릭 성당에서는 성체 성사를 기념하기 위한 특별 행사를 열고 담당 추기경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우리 하나님은 이 제단에 임재하여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과 영혼과 신성이 이곳에 있다.[xi]
그 추기경은 말하길, 그리스도께서는 “미사를 드리는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지독히 정결케 하셨다” 라고 하였다.[xii]
로마의 지도자들이 성체 예수께 새로운 헌신을 요청한대로 미국의 추기경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예식”[xiii]에 대한 참된 의미에 대하여 “충성스런 자들”을 재 교육하기 위하여 같은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성체 성사에 대한 뉴욕 행사에 관한 기사가 나왔을 당시에 나는 우연히 로마에 있었다. 그곳에 있으면서 나는 ‘크리스티 코르푸스(Christi Corpus: 예수의 성스러운 몸을 의미하는 라틴어)’ 축제에 목격할 수 있었다. 이 축제는 달을 바라보던 수녀가 영감을 받게 되면서 시작된 카톨릭 축제이다. 동료들과 함께 나는 인내를 가지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도착하기를 서서 기다렸다. 결국 우리는 수백 명의 보좌관 및 교회 관료들과 일반 백성을 구분해 놓은 철로 된 울타리까지 이르게 되었다.
마침내 거의 세시간 가량 서서 기다리니 교황과 그의 보좌관들이 도착하였다. 교황은 성체 안치기(monstrance) 속에 성체 예수를 들고 있었다. 그 날 이른 아침 성 베드로 성당에서의 미사 동안에 구별된 빵으로부터 만들어진 성체 예수였다. 그날 오후에 같은 예수는 또 다른 예식을 위하여 성 요한 성당으로 옮겨졌다. 마침내, 마지막 순서로 교황은 성체 예수를 동정녀 마리아 교회(Major Church of Mary)로 옮겼다.
교황은 성체 안치기를 들고 교회의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예수를 들어 올렸다. 그후 이 예수는 그 계단의 꼭대기에 세워진 임시 제단에 놓였다. 그러자 추기경 하나가 성체 안치기의 유리 창문을 열어 거룩하게 된 화체 예수를 꺼내어 재빨리 교회 안으로 들어가 성소에 예수를 안착시켰다. 이 체험은 내가 배교의 현장을 생생히 목격하는 사건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비밀이 드러나다
카톨릭 교회는 모든 사람이 성체 그리스도를 공적으로 볼 수 있도록 전 세계를 복음화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카톨릭 저자들은 미래에 새 복음화 프로그램이 어디로 향할 것이며 어떤 일들이 발생할 지를 알리는 여러 책들을 저술하였다. 예를 들어, 토마스 페트리스코(Thomas W. Petrisko)는 비밀의 어머니: 하늘이 조명하고 보호하는 한때 교회의 가장 큰 기적, 성체 기적으로부터 마리아 발현까지(Mother of the Secret: From Eucharistic Miracles to Marian Apparitions Heaven Has Sought to Illuminate and Defend What Was Once the Church’s Greatest Secret) 라는 책을 썼다. 성체 성사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믿는 페트리스코는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성체적 다스심을 증거할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말한다.
페트리스코의 책 뒷면에 이러한 글이 있다:
페트리스코는 우리의 믿음을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추척한다. 그는 한때 교회의 가장 큰 비밀이었던 것들이 어떻게 영광스런 새 시대의 모퉁이 돌이 되고 있는지 알려준다. 다가오는 새 시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한 성체 예식를 통하여 전 세계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xiv]
“영광스런 새 시대”가 무엇인지 페트리스코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한다:
비전가들은 인류가 세속적, 불가지론적, 실제적 무신론적 영역으로부터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는 믿음 및 하나님의 실체 가운데 흠뻑 취할 세계로 이동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예견자들은 인류가 이러한 실체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참된 평화가 다스릴 것이며 교회가 최상으로 다스릴 것이라고 한다. 많은 카톨릭 비전가들이 가장 분명하게 언급하는 것은 세상이 마침내 거룩한 성체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기적이요 이를 통하여 임하는 은혜와 자비와 능력을 깊게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xv]
페트리스코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세상이 그리스도의 성체적 통치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일어나야 하는 변화 과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발현되는 마리아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려왔으며 그 시대에서 성체적 그리스도가 온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페트리스코의 말을 들어보자:
동정녀 마리아에 의하면,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특별히 성체로부터의 자양(nourishment)에 대한 믿음이다. 마리아는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신비를 믿게 될 뿐만 아니라 이 신비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우리 시대에 있어서 마리아의 흠없는 마음의 승리는 전 세계를 참된 평화의 새로운 세대로 이끌고 있다. 그 때가 되면 거룩한 성체는 더 알려지게 될 것이고 귀히 사람들은 성체에 대한 감사를 알고 귀히 여기게 될 것이다. 성체는 교회 내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의 삶 및 모든 열방들을 다스릴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성체로부터 넘치는 무한한 은혜와 능력을 접할 수 있게 될 것이기에 성체는 더 이상 가장 큰 비밀이 되지 않을 것이다![xvi]
다시 오는 캐톨릭 양식
공의의 천둥(The Thunder of Justice)의 저자들인 테드와 머린 플린 부부(Ted and Maureen Flynn)는 하늘의 여왕으로부터 내려오는 예언적 메시지를 조사하였다. 그들의 책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예비한 것같이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비하신다. 마리아는 새로운 세상과 시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선포하신다. 그녀의 흠없는 마음의 승리와 두 번째 오순절(성령의 부으심)은 예수의 거룩한 마음으로 통치를 앞당길 것이다.[xvii]
플린 부부에 의하면,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한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너희들 가운데 세워질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통치와 이 땅에 임할 예수 재림의 때는 거의 다 되었다…. 이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지금처럼 대단하게 그의 재림을 준비하는 때가 없었다.[xviii]
이 새 시대를 문서화한 사람은 드와이트 롱에네커(Dwight Longenecker)로서 그는 전에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였고 로마로 가는 길: 카톨릭 교회로 가는 현대 여정(The Road to Rome: Modern Journeys to the Catholic Church) 의 저자이다. 그의 자서전에서 롱에네커는 그가 복음주의 가정에서 어떻게 자라났으며 후에 보수적인 기독교 대학에 다녔던 사실을 언급한다. 1995년 그와 그의 아내는 “카톨릭 교회로 받아들여지게 된다.”[xix]
롱에네커의 책은 카톨릭으로 개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그 책의 뒷면을 보면 이 책을 “교회의 미래 모습에 대한 일견”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세 째 새천년으로 들어가면서 카톨릭, 복음주의, 정교회는 계속 뭉칠 것이다. … 과거의 문화적, 국가적, 교리적 차이들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종교 개혁의 시대는 끝날 것이고 분열로 가득 찼던 구 천년대는 “둘째 봄”의 시대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교회는 한 번도 통합된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
[xx]
성체에 대한 교황의 관점을 그대로 말하면서 개신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한 스콧 한(Scott Hahn)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헬라 신약이 주의 ‘파루시아’라고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단지 멀리 발생할 사건이 아니다. 이미 성체 안에 주님이 계시다. 근본주의자들은 ‘파루시아’의 의미를 축소하여 역사 끝의 그리스도의 재림만을 의미한다. 그러나 1세기의 헬라인들에게 이 뜻은 “지금 임재”를 뜻한다. 카톨릭 신학은 이러한 원어의 뜻을 잘 붙들고 있다.[xxi]
성체 성사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는 카톨릭 양식의 주의 재림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이 이 점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곧 여러분들에게 보이겠으나, 이머징 교회는 분리된 형제들(개신교도들)을 모든 교회의 어머니의 품으로 교량 역할을 하는 가장 중요한 다리들 중에 하나이다. 이러한 예언적 관점은 매우 중요한다. 그러나 먼저 어떻게 복음주의 교회가 성체 그리스도를 환영하게 되었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성체 및 복음주의 교회
성체 숭배는 성경적 기독교와 상충되지만 대단히 많은 유명한 복음주의자들 (특히 이머징 영성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교리에 대하여 전혀 불편하지 않는 것 같다. 복음주의 내에 신비주의 및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들이 성체 및 성체 숭배에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승인은 카톨릭의 모든 것에 대항하였던 기존의 복음주의를 중성화하는 것이다.
1992년, 감옥 선교의 척 콜슨은 복음주의와 카톨릭의 연합(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 라고 불리는 문서를 작성하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이 문서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카톨릭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만들면서 카톨릭과의 공통 분모를 찾는 것과 연합하는 것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이 문서는 교황 요한 바울 2세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는 “세계 선교의 봄철을 맞이하고 있다” 고 말하고 있다.[xxii] 이 문서는 우리 모두가 같은 그리스도를 섬기며 카톨릭과 복음주의 사이의 긴장과 간격을 제거해야 할 필요를 말하고 있다:
이 세상 기독교에서 가장 복음적으로 분명하고 가장 신속하게 성장하는 두 개의 공동체는 복음주의자들과 카톨릭들이다. … 세계 여러 곳에서 발생하는 기독교 내의 갈등의 추문은 십자가의 추문을 애매하게 만들며 따라서 같은 한 분의 그리스도의 사명을 절뚝거리게 만들고 있다.[xxiii]
우리는 같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카톨릭의 성체 그리스도는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와 많이 다르다. 이를 감지하게 되면 심각한 문제를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신임을 받는 유명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남 침례 모임의 리차드 랜드(Richard Land)같은 사람들) 이러한 프로젝트를 제안하는데 참여하고 있다.[xxiv]
기독교의 또 다른 지도자들은 카톨릭과 성경적 기독교의 간격을 줄이는데 있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자신들의 의향을 밝혔다. 목적이 이끄는 삶의 저자인 릭 워렌은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였다:
* 소그룹 구조는 기독교의 모든 면을 (카톨릭을 포함하여) 새롭게 할 수 있는 구조이다.[xxv]
* 나는 당신들이 복음주의 개신교와 카톨릭 간의 연동이 발전하고 있음을 보기를 장려한다. 특히 카톨릭 내의 복음주의 진형을 보라.[xxvi]
* 미국의 25% 가 기본적으로 카톨릭이고 미국의 28-29% 가 복음주의인데, 이 둘을 합치면 주류가 된다. 만일 어떤 특별한 관건에 이 둘이 함께 한다면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된다.[xxvii]
워렌은 또한 카톨릭 형태의 목적이 이끄는 삶 프로그램을[xxviii] 개발하였다. 워렌의 pastors.com 웹사이트 상에 EFCA(Evangelical Free Church of America)의 목사인 래리 오스본(Larry Osborne)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체 및 사역 기능보다 설교자의 설교와 성품에 가장 큰 강조를 두는 교회는 거의 동등한 설교자들의 교환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xxix]
연합 감리교의 키쓰 하워드 맥일와인(Keith Howard McIlwain)은 성체에 연합하는 것이 교회의 갱신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성체 성사를 충성스럽게 꾸준히 집행하는 것이 교회의 갱신에 주요한 열쇠이다. … 만일 연합 감리 교회 및 작은 관련 부서들이 갱신을 경험하려면 우리는 성령께서 예배, 사역, 목양에 있어서 적절한 곳에 계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교회 갱신은 신학적으로 성체 성사를 성실하게 재점검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후, 오직 그 후에 우리는 효과적으로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변형의 길로 다시 이끌 수 있을 것이다.[xxx]
세계 복음화를 위한 목적으로 로마 카톨릭과 손을 잡는데 있어서 전혀 문제가 없는 또 다른 유명한 개신교 인물은 닉키 검벨(Nicky Gumbel)로서 그는 알파 코스를 기초로 하는 홀리 트리니티 브롬프톤(the Holy Trinity Brompton)의 창설자이며 대표이다. 2004년 2월 로마에서 교황 요한 바울 2세의 메시지를 듣던 중, 검벨은 교황의 손을 잡았다. 후에 그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복음화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많은 일을 이루신 교황 요한 바울 2세를 만난 것은 내게는 큰 영예였다. … 우리는 함께 하나가 되어 처절하도록 비참한 이 세상에 이 예수를 선포하기로 하였다.[xxxi]
어떤 사람들은 알파 코스가 카톨릭 신자들을 성경적인 복음으로 복음화할 것이라고 믿지만 나는 바티칸의 복음에 관한 개념은 전혀 반대임을 확신한다. 즉,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자들을 원하는 것이다.
카톨릭 사제 라니에로 캔탈라메사(Raniero Cantalamessa)(신부 또는 목사로 불릴 수 있는)도 분리된 형제들을 카톨릭의 성체 예수께로 소개하려는 일이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여러 번 그는 닉키 검벨의 알파 프로그램의 주 강사였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통하여 캔탈라메사는 알파 지도자들과 참여자들에게 성례 및 성자들, 하늘의 여왕 마리아에 관한 카톨릭의 견해를 소개하였다.[xxxii]
이제 곧 아무 의심이 없는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이 카톨릭의 새 복음화 프로그램의 목표물이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나는 카톨릭의 비전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들이 너무 적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곤 한다. 더 열악한 것은 이머징 교회를 지지하는 많은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들과 선생들이 성체 안에서의 예수의 임재에 대한 카톨릭의 견해를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체 숭배와 이머징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강력한 신비 체험을 추구하기 시작하는 것은 마치 비탈길에서 미끄러져서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 이머징 교회는 이미 이러한 비탈길 선상에 있다.
인터넷 웹 사이트와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그리고 여러 책들을 통하여 통합 운동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나는 그 반응이 어떠할 것인지에 대하여 미리 알고 있었다. 오늘날 성경적 진리를 위해 서는 것은 전혀 인기가 없다. 우리가 종종 듣는 메시지는 ‘무조건 통합’이다. 얼마 전 나는 지역 목회자 모임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나는 진리가 오늘날 인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전에 카톨릭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후 오후에는 어떻게 이머징 교회 운동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보여주겠다고 했다. 아침 강연을 마치고 강당을 떠날 때 그 집회를 주관했던 사람이 내게 와서 화를 내었다. “이 곳에 계신 목회자들을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오후에는 이머징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는 그러한 주제는 전혀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나는 기독교 목회자 모임에서 이러한 영적 기류에 대한 경고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 경고를 받았다.
“종교 예식으로 돌아가기: 여러 복음주의자들이 중세의 장엄 미사 예식을 탐구하다” 라는 제목의 기사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패러다임 전환을 설명한다:
60여 회원이 있는 무교단 교회인 뉴 호프 교회는 계속 성장하지만 아직은 작은 복음주의 교회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이 교회는 로마 카톨릭, 동방 정교회, 그리고 영국 성공회의 여러 장엄 예배 의식 전통에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던 예배 요소들을 체험하기 시작하였다.[xxxiii]
위의 글을 쓴 매튜 해이 브라운(Matthew Hay Brown)은 이 운동이 어떤 특정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주지하고 있다:
이 운동을 외적으로 또는 내적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은 성체 성사에 관한 복음주의자들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여 왔다. 또한 강림절, 사순절의 교회 양력들, 수도승적인 삶에 관심이 더욱 커졌다. 이러한 예식들은 초대 교회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xxxiv]
덕 패이짙이 2003년에 쓴 책 재발상 교회(Church Re-Imagined) 를 보면 그가 맨 처음 매력을 느낀 종교 예식은 성체 성사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우리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올해는 재의 수요일(the first Ash Wednesday)로 시작되는 사순절의 첫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 이때까지 나는 나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재의 수요일을 체험한 적이 없었다. 재를 다른 사람의 머리에 씌운 적도 없지만 내 머리에도 재를 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체험을 한 이후 어떻게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그토록 멋진 체험없이 19번의 부활절을 축하할 수 있었는지 의아하였다.[xxxv]
또 다른 이머징 교회 후원자인 스콧 맥나이트(Scot McKnight)는 노스 팍 대학(North Park University)의 종교학 교수이며 이머전트 빌리지의 협력 그룹에서 봉사하고 있다. 그는 이머징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길:
신학자로서 나는 수년 동안 이 운동을 연구하여 왔으며 또한 이 운동의 핵심 지도자들과 교류하여왔다. 심지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내 자신이 이 운동의 일부 또는 “대화자” 라고 생각하고 있다. 복음주의자로서 나도 염려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머징 그리스도인들이 테이블에 꺼내 놓은 것을 보면 건강한 교회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xxxvi]
맥나이트는 참된 마리아와 예수 신조 (The Real Mary and The Jesus Creed) 라는 책의 저자이다. 이 책은 성공회 예배에 대한 것으로서 맥나이트는 성체 성사를 중심으로 하여 언급한다:
일요일 아침에 성공회 교인들이 모이는 이유는 설교를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체 성사를 집행하면서 주님을 예배하기 위함이다. … 처음에 성경 몇 구절을 읽고 그후 설교가 있고 그 다음에 광고를 하고 그후 성체 성사 예전이 있다. 그때 모든 사람은 앞으로 나와서 무릎을 꿇고 공적으로 살과 피에 참예한다.[xxxvii]
맥나이트는 “성체는 심오하게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영광과 축복 가운데 임할 수 있도록 한다” 고 말한다.[xxxviii] 의심할 여지 없이 맥나이트는 이머징 교회 운동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성체 성사에 대한 견해는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는 윌로우 크릭의 소그룹 미팅과 전국 목회자 모임을 포함한 여러 행사에서 인기있는 연설자이다.
고(故) 로버트 웹버는 성체 숭배와 복음주의 교회와의 간격을 좁히는데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저작한 “고대 복음주의 미래로 부름(A Call to an Ancient Evangelical Future)”이라는 문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체 성사를 통하여 새롭게 역사하시는 점을 새롭게 고려해야 한다.”[xxxix] 두 유명한 복음주의 출판사, 베이커 북스(Baker Books)와 인터바써티 프레스(InterVarsity Press)(이 두 출판사는 이머징 교회 저자들의 글들을 출판하고 있다)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와 함께 이 문서를 지원하였다. 에이이에프(AEF) 라고 불리는 이 문서는 여러 이머징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추천되어져 있었다.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이 문서를 “강림절 또는 사순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설교 자료” 라고 불렀다.[xl] 이 에이이에프(AEF) 문서에 참여자들 중에는 미네소타의 벧엘 신학교, 달라스 신학교 등의 여러 기독교 신학교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나사렛 교단, 웨슬리 교단, 메노나이트 교단, 개혁 교단, 침례 교단 등 서로 다른 많은 교단으로부터 온 목회자들이 있다.
새로운 개혁은 신비주의자들로부터 얻은 영적 통찰력을 통한 영적 각성을 가져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참여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이끌리기 보다는 카톨릭 및 정교회의 권위와 예식에 이끌리고 있다. 로버트 웹버는 포스트모던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신비주의를 바라보고 있으며 또한 성체 성사를 더욱 바라고 있다”고 말하였다.[xli]
만일 로마로 향하는 현재의 발걸음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웹버의 예상이 사실이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웹버의 통찰력은 자신의 개인적 체험에 근거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예를 들어, 인터뷰에서 웹버는 “지금으로부터 25년 후 북미의 복음주의 교회는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되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세례 의식이나 성체 감사와 같은 성경적 상징들이 다른 의미를 띄게 될 것이다. 교회는 종말에 대하여 관심이 줄어들 것이며 대신에 마지막 공동체에 더욱 헌신하게 될 것이다.[xlii]
지난 수년에 걸쳐 웹버의 교회의 미래에 대한 예상은 정확한 것으로 드러났다. 예수님의 재림이 매우 가깝다고 느끼며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잠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길 “주님은 재림을 지연시켰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는 이 땅에 주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예수가 문자적으로 재림할 것이라고 가르쳤던 목사들과 선생들에게 속았다” 고 말하고 있다.
성체를 체험하기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은 타당한 질문을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로버트 웹버 같은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가 카톨릭의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웹버의 배경 및 그의 회심 체험을 알기 위해 나는 그의 간증집 기적의 표지들(Signs of Wonder) 라는 책을 읽었다. 웹버는 그 책에서 그 동안 알던 예배와는 다른 “가장 기억나는 예배 경험”[xliii]을 설명하고 있다. 그 예배 경험은 통합 주말 수련에서 있었다:
그 그룹은 카톨릭 신자들, 루터란 신자들, 장로교 신자들, 복음주의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한 달에 한번씩 만나서 성경을 읽고 토론하였다. 우리는 기도를 함께 나누고 대화를 하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 모임을 마치고 다른 장소로 옮겨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 2년 동안의 친교를 마무리하는 주말 수련을 갖기로 하였다. 장소는 근처 카톨릭 수련장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한번도 나누지 못한 관건을 다루게 되었다. 성찬식을 함께 해도 되는 것인가? 카톨릭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복음주의자들에게 주어도 되는 것인가? 복음주의자들이 카톨릭 사제로부터 빵과 포도주를 받을 수 있는 것인가?[xliv]
웹버는 그 자리에 있던 사제가 이 문제로 고민하였다고 말한다. 마치 카톨릭 교인이 아닌 사람이 카톨릭 성례에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듯 말이다. 그 사제는 그 그룹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규칙에 의하면 카톨릭 신자들은 오직 다른 카톨릭 신자에게만 주님의 몸과 피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로부터 분리된 형제들로 인하여 나는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다.[xlv]
그후 그 사제는 “카톨릭 전통을 깨뜨리기로” 결심하고 그 그룹의 각 사람에게 빵과 포도주를 주었다. 그 사제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왜 주었는가? 나는 당신들 모두가 우리 주님께 헌신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 말을 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이 빵과 포도주를 받는 것이 마음에 가책이 없을 수도 있다. 아무튼 알아서 결정하라. 이 예식을 받지 않기로 결정해도 당신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예식에 동참한다면 환영하겠다.[xlvi]
이 순간에 웹버는 자신의 믿음에 대하여 질문하기 시작하며 그 믿음을 ‘편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나는 이 사람들과 나누었던 영적 풍요를 고려하였다. … 그 기억은 “앞으로 나가라. 결국 하나의 주요, 하나의 교회요, 하나의 믿음이요, 하나의 세례요, 하나의 거룩한 성찬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해 주었다.
그 순간 하나님은 내가 그 동안 세워 놓았던 장벽. 다른 교단의 나의 형제 자매들과 내 자신을 구분하여 놓았던 그 장벽을 무너뜨리셨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편견과 내가 쌓아 놓은 장벽이 그 동안 내 자신과 다른 기독교 공동체와의 교제를 막으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을 막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 하나님의 교회의 부분을 거절함으로 우리는 교리에서 말하는 ‘성도의 교제’를 체험하지 못하였던 것이다.[xlvii]
웹버가 이 성찬 예식에 참여한 후에 그는 급격하게 변했다. 그의 책은 그의 믿음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서술하고 있다:
당신은 내가 기쁨으로 가득찬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내 인생 속에서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없다. 그 때 그곳에서 카톨릭 예배를 드리면서 나는 새로운 예배의 체험을 하게 되었고 이 체험은 나의 과거의 편견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새로운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나는 다른 전통의 체험들을 허락하게 되었고 다른 예배 전통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분명히 점점 더 풍요해지고 있었다.[xlviii]
이 체험은 자명하게 웹버의 생각을 뒤집어 놓았다. 그 이후의 그의 책들과 글들은 이 체험을 반복하여 말하고 있으며 로마와 새로운 개혁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들을 강력하게 밀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성체 예수는 신비주의적이다.
전통적으로 삶 가운데서 많은 예식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즉, 개신교 신자들) 미사의 분위기가 종교적으로 매우 고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따라서 관상 영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성체 성사에 관심이 많다. 많은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성체 성사가 집행되는) 미사 그 자체 또는 그 안에서는 신비적인 체험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관상의 시간이 추가되면 누구든지 신비체험으로 들어갈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은 복잡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신비주의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다. 관상 기도의 영역에서 중재자는 실제로 영적인 힘이나 능력과 접한다. 최근에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관상 기도와 성체 성사와 합쳐지고 있다. 카톨릭 교회에서 자라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합침에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카톨릭 교회 자체도 이 방법을 과거 시대의 강력한 카톨릭으로 회복하는 길로 보고 있다.
교황청에서 설교하는 신부 라니에로 캔탈라메사(Father Raniero Cantalamessa)는 성체 신비에 대하여 논한다:
나는 코르푸스 크리스티 축제 때에 해야 할 가장 필요한 일은 성체 성사의 어떤 면을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그 신비 앞에서 놀라움과 경이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본다.[xlix]
신비와 신비적 체험을 기독교의 믿음의 바탕으로 두려는 이러한 시도들은 모든 세계를 성경의 예수가 아닌 또 다른 예수에게로 이끌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특히 만일 예수가 초자연적인 치유를 행하였다고 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것을 생각해 보라: 만일 카톨릭 신도들이 예배하고 숭상하는 성체 예수가 주의 임재를 느끼며 찬양하는 자들을 기적적으로 치유하기 시작했다고 가정해 보라. 어떤 일들이 발생할 것인가? 카톨릭 교회 외부에 있는 자들을 얼마든지 끌지 않겠는가? 보스톤 대학의 교수이며 관상 지지자인 피터 크리프트(Peter Kreeft)는 그의 책 통합 성전(Ecumenical Jihad) 에서 예상하길, 성체 숭배는 강력한 통합 및 영성간 교류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교회를 재연합하고 세상을 이끌 수 있는 힘은 성체 숭배에 있다”고 말한다.[l]
지금 어떤 사람은 이러한 질문을 할 지도 모르겠다. 성체의 요소에 예수님의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임재가 있는 것인가? 또는 어떤 복음주의자들 및 이머전트들이 제안한 것처럼 성체에 어떤 특별한 임재와 능력이 있는 것일까? 이 두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절대 아니다’ 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듭난 모든 영혼의 마음 속에 내재하신다. 그들은 은혜를 통하여 믿음에 의해 주님께 속한 자들이다.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겠노라고 약속하셨다. 이 의미는 주님의 임재가 언제나 우리의 삶 가운데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위하여 어떤 특별한 예식에 참예할 필요가 없다. 또한 주님은 멋지게 생긴 생명없는 빵 조각과 포도주 (또는 주스)에 제한되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제자들이 주님이 언급하신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라는 말씀에 혼동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바울은 로마의 신자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참된 예수님을 부르는 것임을 언급한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8-13).
이 점에서 우리는 카톨릭과 복음의 빛 사이에 커다란 균열을 보게 된다. 이 복음의 빛을 개혁자들이 본 것이며 이 빛을 위하여 자신들의 생명을 드렸던 것이다. 그들은 성례에 참예하는 것이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카톨릭의 새 복음화가 작은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여야 한다. 산사태가 산을 휩쓸듯이 지금 어둠이 많은 기독교 교회를 휩쓸고 있다. 매일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희생양들을 잡아 삼키고 있다. 이러한 영적 사태의 결과를 가져오는데 있어서 이머징 교회의 역할은 모든 분변력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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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톨릭 교회는 개신교를 부를 때 참된 한 교회에서 나간 “분리된 형제”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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