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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복스러운 소망을 날려버림

5장 복스러운 소망을 날려버림
CHAPTER 5    BLASTING THE BLESSED HOPE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yoochinw/130035004405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한1서 3:2,3)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데살로니가전서 2:19)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약 이천년 전 인간의 범죄 이후 가장 비극적인 일이 예루살렘의 성스러운 도시 바로 밖에서 일어났다. 이스라엘의 약속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들이 미리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백성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메시아에 대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그림이 성경 안에서 이스라엘에 주어졌다. 예언 속에 포함된 한 그림은 메시아를 이스라엘의 '고난받는 종'으로 묘사했다. 이 메시아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로 인해 고난받음으로써 하나님과의 화해와 용서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 예언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사야서 53장이 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63:3-6)

그리고 시편 22편: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편 22:14-18)

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여기에는 (십자가형이) 로마인들에 의해 실시되기 수 백년도 전에 이미 십자가형벌의 고통스러운 죽음의 완벽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다.

구약의 긴 예언에서 명확하게 나타난 메시아의 또 다른 그림은, 예루살렘에서 세계의 왕국들을 다스리는 '정복의 왕'으로서의 메시아였다. 이런 예언의 대표적인 것은 스가랴 14장 16-18절일 것이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스가랴 14:16-18)

그리고 이사야 11:1-10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이사야 11:1-10)

메시아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개의 그림은 유태인들의 진짜 문제를 보여주었다. 어떻게 이리도 상반된 두 그림들이 한 메시아 안으로 조화될 수 있었는가? 어떻게 메시아가 동시에 고난당하는 종과 다스리는 영광의 왕이 될 수 있었는가? 그들은 단지 그들 메시아의 두가지 오심을 그려볼 수 없었던 것이다. 먼저 그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고난당하는 종으로서, 그 후 시온에서 그의 영광된 왕국을 세우기 위해 다시 오시는 승리의 왕으로서 오심을.

물론, 예수께서 드디어 오셨을 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이 즈음에는 그들이 로마의 억압 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볼 수 있었던 유일한메시아의 그림은 승리의 왕의 그림이었다. 그가 곧 오셔서 로마인들을 던져 버리고, 그의 왕국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모든 나라 위에 마땅한 자리에 높이실 것이었다.

따라서 메시아가 승리의 왕이 아닌 구유 속의 아기로 오셨을 때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편집증 때문에 그를 주목한 헤롯만 빼고는. 이스라엘 온 나라에서 오직 두 명, 시므온과 안나만이 성전에서 이 아기를 주님의 메시아로 알아 봤다. 절대다수의 유태인들이 그가 오셨을 때 그를 놓친 것은 그들이 승리의 영광스러운 왕을 찾았기 떄문이었다. 33년 후 같은 이유로 그들은 그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성경에 기록된 가장 슬픈 말들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예언하셨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요한복음 5:43)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 유대인들과 나머지 세상이 잠시 끌어안을 가짜 메시아인 적그리스도를 예언하신 것이다.

옛 이스라엘처럼, 이 종말의 시대에 교회가 오시는 왕에 대한 전혀 다른 두 그림에 직면하고 있음은 아이러니컬하다. 신약성경에 포함된 예언은 우리 주님이 그의 신부인 교회를 훔쳐 가기 위해 '밤중에 도둑같이' 돌아 오셔서, 교회를 그와 함께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데이브 헌트(Dave Hunt)는 적는다:
그리스도는 전혀 다른 이유로 우리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신다. 자신 있고 흡족한 인류와 잠자는 교회(마태복음 25:5)가 전혀 기대하지 않는 시간에 예수님은 오실 것이다.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24:44) 어떤 징후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 때의 세상이 절대 예상하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 사전경고는 없을 것이다. 이는 폭풍 전의 고요와 같을 것이다 - 하지만 이 경우 임박한 폭풍을 지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가 대홍수 직전의 상황과 비슷한 때에 오시겠다고 경고하셨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누가복음 17:27) 그의 오심은 평상적으로 일할 때, 놀 때, 미래를 낙관할 때 일어날 것이다. 홍수 직전에 그랬듯이, 세상이 가장 예기치 못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일 것이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아마겟돈을 묘사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일의 환경, 자기만족 그리고 경악이 앞선(첫째) 재림에 그저 해당할 것이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2:35-40)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이 그림에 반해서 우리는 신약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전혀 다른 또 하나의 그림을 가진다. 이 그림에서는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재림을 목격한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태복음 24:29-31)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요한계시록 1:7)

이 그림에서, 적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을 멸망시키고 나서 그분 자신의 의의 왕국-천년왕국을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선택받은 자들과 함께 오실 때,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를 볼 것이다. 주님의 재림의 전혀 다른 두 그림을 우리는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가? 말씀을 조화시키는 일리 있는 유일한 답은 그가 두 번 오신다는 것이다 - 먼저는 그의 성도들을 위해서, 그리고 두번째는 그의 성도들과 함께. 데이브 헌트(Dave Hunt)는 적는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오심을 경고하기 위한 명백한 징조 후 바로 따라 오시며, 동시에 그를 따르는 거의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밤에 도적 같이 오실 수 있는가? 어떻게 그분은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데살로니가전서 5:3)오시는 동시에 세상이 알던 그 무엇보다 파괴적 전쟁인 아마겟돈(전쟁) 중간에 오실 수 있는가? 어떻게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영원히 살기 위해 하늘로 들려지는 동시에 그와 함께 땅을 심판하러 하늘로부터 올 수 있는가? 어떻게 이렇게 서로 상반된 두 개의 시나리오가 맞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가능한 답은 오직 하나뿐이다. 분명하게도, 그분의 오심에 대한 정반대의 이 두 묘사는 같은 사건을 가리킬 수 없다.

이스라엘이 메시아의 오심에 관한 전혀 다른 두 그림과 마주쳤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렇다. 우선, 우리 주님은 우리가 모르는 어떤 날, 어떤 시각에 돌아오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대의 징조를 통해서, 그의 오심이 어쩌면 '바로 문 밖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가깝다는 것은 안다: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 31-35)

우리는 충실히 경계하며 하늘 신랑이 그의 신부(교회)를 위해 돌아 오셔서 우리를 그의 아버지의 집(요한복음 14:1-2)으로 데리고 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거기서 '분노', '야곱의 환난의 때' - '대환난'이 일어나는 동안, 우리는 신부실에 남아 있을 것이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덮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6:19-21)

이 7년의 심판기간이 끝날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앉아 "어린 양의 혼인 잔치"(요한계시록 19:7-9)를 경축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택하신 자'들 - 구약성도들, 신약성도들, 환난성도들 - 을 함께 모으시고, 우리는 결혼을 함께 경축하고 그제서야 우리는 그의 "하늘에 있는 군대(armies of heaven)"로서 주님과 함께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돌아올 것이다 (요한계시록 19:11-20:4).

그러므로, 환난이 있기 전 그의 성도들을 위해 먼저 오시는 그리스도, 크리스천들이 '휴거'로 알아 왔던 사건인 그의 첫 오심과, 그리고 환난 후 이 땅에 그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성도들과 함께 돌아 오시는 그리스도(두번째 오심)가 있다.

휴거는 '복스러운 소망'으로 불려진다 (디도서 2:11-13). 적그리스도 아래에서 핍박을 겪는 대신 우리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 이 땅에서 옮겨질 것을 약속을 받았다. 바울은 휴거와 관련해서 말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 (데살로니가전서 5:9)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했듯이 휴거라는 단어는 성경에는 없다. 삼위일체라는 단어도 역시 없다! 이 휴거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하르파드소(harpadso) [라틴어 라피오(rapio)]'의 라틴어 번역으로부터 왔다. 바울이 이 사건을 묘사하기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8)

단어 '하르파드소(harpadso)'는 글자 그대로 '끌어 올리다'라는 뜻이다. 바울은 부활시 살아 남아 있는 우리는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고 계시한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이 '휴거'를 통해 우리 살아 있는 성도들은 죽음을 우회하고, 예수께서 가지신 것과 똑같은 '죽지 아니하는' 영적 몸을 입는다고 계시한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린도전서 15:50-55)

(언제든 올 수 있는) 임박한 휴거의 복스러운 소망은 그리스도의 몸을 정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한1서 3:2,3)

크리스천들 사이에 정확히 언제 이 휴거가 일어나는 지에 대해서 - 대환난 전인지, 중간인지, 또는 환난이 끝난 직후인지 - 항상 의견 차이가 있어 왔다. 나는 성경이 환난 전 휴거를 명확히 가르치고 있다고 강하게 느끼는 반면, 환난중 또는 환난후 휴거를 가르치는 사람들도 그들의 신념을 대부분 성경에 의지하고 있음을 역시 인식하고 있다. 우리가 동의하고 함께 붙잡고 있는 것은 이 사건이 일어날 때, 우리는 죽지 아니함을 입고 공중에서 끌어 올려져 구름 속에서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이다. 주님의 육체적 임재 앞으로 끌려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이설은 '죽지 아니함'이 바로 여기 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있으며, 이 교리의 지지자들은 이 땅에서의 불멸화(immortalization)뿐 아니라 이 땅에서의 신격화(deification)도 함께 가르치고 있다!

휴거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 중에는, 그리스도가 오시는 날이 다가올수록 안으로는 배교(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역)로 인해 포위되고 밖으로는 점점 적대적이고 악해지는 세상에 의해 포위된 "남은 자"로서 종말의 때의 신약교회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바울은 적기를: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디모데전서 4:1,2)

그리고: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데살로니가후서 2:3)

예수께서는 교회를 미지근하고 잠자고 있는 남은자로 묘사했는데, 그 중의 여러 사람들은 예상 밖의 휴거로 데려감을 당할 것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요한계시록 3:15-17)

그리고: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8-13)

우리가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두 개의 다른 그림을 가지고 있듯이, 이 두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교회에 대해서도 두 개의 다른 그림을 가지고 있다. 휴거 시의 교회는 남은자로 묘사되는데, 의심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순수하지만 포위된 나머지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두번째 오실 때에는 우리는 정복군으로서의 교회를 본다 - 그와 함께 열방을 지배하고 통치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돌아오는 정복군.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정복왕으로만 봄으로써 그가 처음 왔을 때 그를 놓쳤듯이, 오늘날 교회는 피하는 포위된 남은자로서의 그림에는 눈이 멀었다. 오늘날의 교회는 스스로를 위대한 정복군으로 보기을 원한다. 그들은 교회를 멸시받는 남은자로 묘사한 성경을 배척하고 재해석했고 - 이에 반역(배교)했고 - 이제 정복군의 그림만 볼 수 있게 되었다. 옛 이스라엘과 똑같이, 그들은 주님이 깨어 있는 자들에게 밤중에 도둑같이 오실 때 그를 놓칠 큰 위험에 처해 있다. 복스러운 소망을 교회를 가로 막는 패배자, 도피자 심리(mentality)라고 딱지 붙이며, 그들은 이것을 배척하고 대신 비성경적 승리주의를 집었다. 죠지 워녹(George Warnock)은 초막절(The Feast of Tabernacles)에서 적기를: 

지옥의 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계속 이길 것인가? 위대한 농부가 패배를 인정하고, 곡식이 익어 이삭이 완전히 패기 전에 낫을 들이밀 것인가? 그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기 전에 곡식을 베어냄으로써 그의 영의 성급함을 증명할 것인가? 그가 성령의 은사를 그의 백성들에게 분여하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을 임명한 후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전에 그들 모두를 끌어 올릴 것인가? 아니다! 수천 번 아니다! 교회의 이 큰 슬픔과 고통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장차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은 심지어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 악하고 사악한 세대 앞에서 가리지 않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줄 것이다. 오순절로부터 지금까지의 교회의 긴 광야 여정 속에서의 슬픔과 비통함과 고통의 기도는 - 하늘의 유리병들에 채워져 왔고, 그것들은 곧 하늘이 진동하는 큰 사건과 함께 세상에 부어질 것이다. 어둠의 세력과 사탄을 왕좌에서 몰아내고, 시온 산에서 승리자들을 권위로 세우며.

신약에 묘사된 대로 교회를 멸시받는 남은자로 보기를 거부하는 것은 '늦은 비/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신학의 특성이다. 밀포드 커크패트릭(Milford Kirkpatrick)은 1948년 부흥에 대해 적었다:
주 안에서 우리 위에 있던 사람들의 일반적으로 일치된 의견은 우리가 부흥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종말시대에 살고 있었고 상황은 나빠질 예정이었고 우리는 고통스러운 종말(론)을 고수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종종 이 인용을 듣는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마태복음 24:22) 이는 우리 영을 더 우울하게 할 뿐이었고 우리는 자포자기의 지점에 있었다... 어느 특별한 날에 한 형제가 일어서서 예언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복의 날들에 대해 말씀하셨고 그가 모든 육체에 그의 영을 부어주시겠다고 하셨다. 패배주의의 분위기 속에 살아왔던 우리의 마음은 전율했다... 엄청난 기쁨이 캠프를 휩쓸었다.
전에도 지적했듯이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이설은 다수의 은사주의자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부분은 휴거에 대한 정통적 가르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80년대 중반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교리가 '킹덤나우(Kingdom Now)' 또는 '왕권/주권'운동의 형태로 재부상함에 따라 바뀌기 시작했다. 리차드 리스에 따르면:
...늦은 비 운동의 종말론적 관점의 여러 요소는 전 세계의 많은 은사주의자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이런 관점은 미조리 스프링필드의 빌 브리튼(Bill Britton), 텍사스 엘파소의 J. 프레스톤 에비(Preston Eby)... 캘리포니아 LA의 로버트 스티븐스(Robert Stevens) 등의 사역에서 두드러졌다. 1976년경에 이르러 이 사역들의 몇은 꽤 대규모였다. 늦은 비의 참여자였던 빌 브리튼은 1976년 여름 사역을 이와 같이 묘사한다: "필과 나는 방금 매우 성과 있는 동부해안으로의 여행으로부터 돌아 왔습니다. 5,500 마일을 운전하며 25개 도시에 걸쳐 41일 동안 47번의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리노이, 켄터키, 오하이오, .., 인디아나, 캐나다 온타리오) 여러 곳의 교회를 위해 섬겼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서로 다른 여러 곳에서 같은 성령, 같은 진리가 계시되는 것을 보는 것은 멋진 일이었습니다.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거룩한 교회, 그의 완전해진 몸, 승리한 자, 그분의 (여러) 아들(교회를 아들들의 집합으로 묘사함/역자) 등에 대한 진리와 하나님왕국에 '팔려버린' 많은 목사들을 보는 것은 감격적인 일이었다." ... 은사갱신 내부에서 광범위한 지하운동이 발전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지하운동은 늦은 비 부흥동안 일어난 여러 '종말진리'를 추종하는 개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빌 브리튼은 이 기간 중의 손꼽히는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지지자들의 하나가 되었다. 늦은 비 부흥과 '초막절' 책에서의 워녹의 선언 이래 발전된 그의 가르침은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교리의 꽤 대표적인 것이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본 휴거(A Closer Look at the Rapture)'에서 브리튼은 적기를:
당신은 당신을 이 세상 밖으로 옮기고 당신의 모든 문제를 풀어줄 '휴거'를 바라기를 그치고, 당신의 소망을 제자리로 돌려 놓을 수 있다... "열심히, 지속적으로, 참을성 있게 자기를 바라고 기대하는 자들에게 온전한 구원을 가져다 주시려고" 오시는 주님께로. 목사들은 아직도 열렬하게 설교를 하고, 사람들은 '여호와의 날'을 피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이 땅에서 데려 갈 '휴거' 이론에 아직도 필사적, 절망적으로 매달려 있다. 목사들이여. 수십억의 사람들이 마귀와 적그리스도의 발뒷굼치 아래에서 고난 받는 동안 그들은 흔들의자에 앉아서 그들을 그림 속의 떡이 있는 환상의 먼 나라로 데려가 줄 '휴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자 말자. 적그리스도와 지옥의 무리들의 모든 군대를 그들의 발아래에 놓고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사탄의 권세와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그들이 구원받고 부르심 받았다는 진리를 그들에게 말하자! 이것이 우리의 유산이요, 우리의 운명이다!

 '그림자를 벗어난 빛(Light Out of the Shadows)'에서 브리튼은 적는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진리를 사람들이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짜 교리들이 몇 있다. 이 중에서 교리적으로 약하고 성경에 기초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의 하나가 소위 '휴거'라고 불리는 전통적 교리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군대를 세우고 무기를 두르게 하느라고 2000년을 소모하고는, 시대의 진짜 전쟁이 시작되자 그들을 전장에서 갑자기 밀쳐버린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하나님의 불쌍한 작고 약한 교회가 적그리스도를 이길 수 없어서 전쟁에서 벗어나 영화된 몸이 되도록 데려가져야 함을 암시한다.

프레스톤 에비(J. Preston Eby)는 이런 감정을 되풀이 한다:
우리 주님이 그의 교회를 위해 오신다는 생각은 무지한 정신의 소유자들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성경을 그들의 망상을 지지하기 위한 환상적 이야기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꾸며낸 것이다. 잠자는 교회는, 물론, 구름 속으로 타고 올라가 그들이 발명한 하늘의 체험 속으로 끌려가 거기서 잠옷이나 비슷한 것을 입고 빈둥거리려는 것 외에는 별로 생각해 낼 것이 없을 것이다... '복스러운 소망'의 진실은 휴거가 아니다; 이는 주님의 출현이며, '복스러운 소망'은 환난으로부터의 구출이 아니고, 그의 백성들 속에서의 그의 영광된 출현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이 오랜 세상으로부터 데려갈 휴거를 기다리는 대신, 그의 택하신 자들이 이 세상의 진로를 바꿀 수 있도록 그들을 변환시키기 위해 그의 아들들의 깊은 내면의 존재(innermost being)로부터 그가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지지자 E. E. 브룩스(Brooks)는 적는다:
크리스천들은 옮겨지고 바뀔 것이지만, 우린 결코 은밀한 휴거로 이 땅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 크리스천은 옮겨지고 변화되고 예수님을 만나겠지만 에서 제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 크리스천은 영적 영역으로 잡혀가겠지만 이 땅을 떠나서 우주 속으로 가지는 않는다.

같은 사람이 다른 곳에서 적는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신적 본질을 가지셨다. 하나님의 충만함이 그분 안에 거주한다...육체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이 예수의 몸 안에 내주하심을 받아들이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신적 본질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역시 그들의 몸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을 가질 것이다!...당신이 엘로힘이다! 창세기 1장 26절은 하나님(엘로힘)이 그의 형상과 모양대로 당신을 만드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당신도 엘로힘이다. 이것이 성.경.이다. 스스로 확인해 보라.

그리고:
일단 신적 본질을 충만히 입으면 우리는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것이다. 모든 생각이 신적일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본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중 완전히 성숙한 자들은 변화를 받아, 인간의 죽음의 제한을 벗어 던지고 신적 불멸의 영역으로 들어갈 것이다.

"너는 신과 같이 되리라" 다시 신격화(아포데오시스)이다. '늦은 비/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지지자들과 환난전 휴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휴거교리를 불신하도록 매우 터무니없는 비난들을 내세웠다. 그랜트 제프리(Grant Jeffrey)는 적는다:
많은 현대의 저술가들은 환난전 휴거설이 1820년 경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 이론의 시발을 에마누엘 라쿤자(Emmanuel Lacunza, 1812),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 1816), 또는 마가렛 맥도날드(Margaret MacDonald, 1830)와 마지막으로 존 다비(John Darby)에게로 돌린다... 존 브레이(John Bray) 목사는 '환난전 휴거설의 기원(The Origin of the Pre-tribulation Rapture Teaching, 1980)'에서 선언한다: 오늘날 환난전 휴거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1812년 이전에는 가르쳐지지 않았던 것을 가르친다... 초기교회 교부들 중 누구도 환난전 휴거를 가르치지 않았다... 환난전 휴거의 가르침과 같이, 기간을 둔 이단계 예수재림을 가르친 1812년 이전의 문장, 설교, 논문이나 어떤 것도 발견하는 사람에게도 나는 500불을 주겠다.

J. 프레스톤 에비, 빌 브리튼과 기타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지지자들은 이 비난을 되풀이하며, 이것이 복스러운 소망인 환난전 휴거 교리가 엉터리라는 증거라고 말한다. 에비는 적기를:
이는 로마 카톨릭의 고안으로 시작되었다! 예수회(Jesuit) 신부인 리베라(Ribera)의 글이 어빙(Irving)에게 영향을 주었다. 어빙은 다비(Darby)에게 영향을 주었고, 다비는 스코필드(Scofield)에게, 스코필드와 다비는 D.L.무디(Moody)에게, 무디는 초기 오순절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가? 어빙, 다비, 스코필드와 무디, 초기 오순절주의자들을 말할 것도 없고, 이 모두가 어느 예수회 음모의 졸(卒)들에 불과했는가? 브레이와 다른 이들이 주장하듯 이 가르침이 1812년 이전에 가르쳐지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인가? 초기 교회의 누구도 이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인가? 다시, 그랜트 제프리는 적는다:
이런 수많은 저자들은 아래의 이유로 그들의 책의 개정판에 상당한 수정을 가해야 할 것이다. 두 개의 주목할 만한 문서의 발견은, 존 다비가 성경의 가르침을 재발견하기 수 세기 전, 이미 여러 크리스천 교사들이 휴거가 환난 기간 전에 일어날 것이라고 확실히 가르쳤음을 결정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초기 크리스천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시리아의 에브라임(Ephraem the Syrian, 306년에서 373년까지 살았음)은 초기 비잔틴 교회의 주요 신학자였다. 밑에 나오는 부분은 나의 요청에 의해 틴데일 신학교(Tyndale Theological Seminary)의 카메론 로즈(Cameron Rhodes) 교수가 번역한 서기 373년에 씌어진 에브라임의 중요한 본문 [종말의 때, 적그리스도, 그리고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의 주요 문구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무엇이 임박하고 절박한 지를 우리는 철저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나를 믿으시오 주님이 오심이 가까웠습니다. 나를 믿으시오 세상의 종말이 다가옵니다. 나를 믿으시오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모든 성도들과 주께서 택하신 모든 자들은 다가올 환난이 있기 전에 함께 모아져 주께로 데려가집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세상에 넘치는 혼란을 그들이 어느 때에도 보지 못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지금은 열한시입니다..." (초록색 저자에 의함)
확실히 에브라임(에프라엠)은 임박한 환난전 휴거를 가르쳤고, 성도들이 대환난 전에 이 땅에서 옮겨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랜트 제프리는 계속한다:
유명한 18세기 침례교 신학자인 존 길(John Gill) 박사는 신약성경에 대한 그의 주석을 1748년 출간했다. 그는 신학에 대한 많은 저서를 남긴 진지한 칼빈주의 학자로 여겨지고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4:15-17에 대한 주석에서 존 길 박사는 바울이 "새롭고 비범한 어떤"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길은 이 임박한 성도들의 옮겨짐를 '휴거'라고 불렀고 "이것은 갑작스럽고, 미리 알 수 없고, 전혀 예상되지 않은 때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임박한 환난전 휴거에 대한 명확하고 자세한 1748년의 가르침이다 (1820년 존 다비보다 80년 이른).

이 휴거음모론에 대한 반박에 관해 철저히 조사하려면 팀 라헤이(Tim LaHaye)의 뛰어난한 책 '폭풍을 두려워하지 않음(No Fear of the Storm)'을 추천한다 - 최근 '공격받는 휴거(Rapture Under Attack)'로 이름 바꿔 재간되었음. (팀 라헤이는 문제인물이라는 주장도 있음/역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교리'의 지지자들이 휴거가 있다는 것을 꼭 부정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다만 그들은 휴거를 여기 이 땅에서 일어나는 영화와 신격화(아포데오시스)로 재정의한다. 이것을 말씀에 끼워 맞추기 위해서는 그들은 말씀을 비틀어야 했다. 예수께서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을 때, 물리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들은 악인들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뒤에 남은 자들은 세상을 정복하고 왕국을 불러들일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요엘의 군대' 성도들이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 (마태복음 24:40-42)

E.E. 브룩스는 적는다:
의인과 악인 둘이 밭에 있다. 한 사람은 땅에서 옮겨지거나 데려가질 것이다. 말씀을 살펴봐서 누가 땅에서 진짜로 데려감을 당하고 누가 땅에 남는지를... 가라지를 먼저 거두라... 데려감을 당하는 것은 악인들이다! 가라지를 먼저 데려간다, 마태복음 13장 29-30절: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악인)를 뽑다가 곡식(의인)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악인!)는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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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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