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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가인의 길

9장 가인의 길
CHAPTER 9   THE WAY OF CAIN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yoochinw/13003747292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유다서 1:11)

두 형제 - 두 개의 길. 가인은 하나님의 길을 배척했고 아벨은 껴안았다. 히브리서 11장 4절은 이렇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히브리서 4:11)

이 말씀과 다른 말씀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다가갈 수 있는 지를 하나님께서 이미 보여주셨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님의 방법은 죄없는 대속의 - [죄 지은 자를 대신해서 죽는] - 희생을 요구하신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이 모아서 기운 무화과 잎들로써 그들의 반역의 결과물인 그들 자신의 벌거숭이의 수치를 가리려고 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힘으로 만든 덮개(커버링)는 하나님께 전혀 받아들여질 만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이셨다. 하나님은 죄 없는 동물을 죽이고 그 가죽으로 그들의 벗은 몸을 가리심으로써, 받아들일 만한 죄에 대한 보상(커버링)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 없는 것이 죽어야 하고 죄 없는 피가 뿌려져야 함을 보여주셨다.

이로써 하나님은 그가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그들을 구속하기 위해 죽으실 메시야의 죽음을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그는 둘째 아담 - [여인의 '씨'] - 이 될 것이다.

아벨이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믿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벨은 하나님께서 그의 부모에게 보이신 방식에 따라 제물을 바쳤다. 아벨의 믿음과 순종 때문에 하나님은 그의 제사를 존중하셨고 눈에 보이게끔 하나님의 승인하심을 보여주셨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창세기 4:4)

한편, 그의 형제 가인은 하나님이 그의 부모에게 보이신 접근방식을 믿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가인은 그 스스로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다가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부모가 원래 범했던 실수를 되풀이했다. 그들은 (이제 타락한) 그들의 본성에 따라 그들 손의 작업으로 그들을 가리려고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비록 아담과 하와는 이 과정에서 잘못했지만 그들에게는 '무지'라는 핑계는 있었다. 그들이 장래에 하나님께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를 하나님은 아직 그들에게 주시지 않았었다.

반면에 가인은 하나님이 세우신 방법 - [희생의 방법] - 에 관해 긴 세월동안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하나님이 부모를 통해서 분명히 길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가인에게는 핑계가 없었지만, 가인은 알면서도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 그의 육신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께 접근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창세기 4:3)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물을 거절하셨다. 가인은 화가 났고, 성경은 가인의 "안색이 변했다"고 말한다. 그는 낙심하고 풀이 죽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가인에게 다가가서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가인은 거절했고, 그의 제물을 거절한 하나님에 대한 그의 분노는 결국 그의 동생 아벨에 대한 증오로 (그리고 살인으로) 끝나게 되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7)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이 항상 지적해 왔듯이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다가가는 두 가지 길을 나타낸다 - 하나님의 길과 사람의 길. 아벨은 하나님의 길 타입으로, 희생과 무죄한 피를 의지하는 길로서 - 십자가의 길을 예시한다. 가인은 사람의 길 - [종교] - 을 나타낸다. 스스로의 손으로 이룬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세우는 길을 통해서, 사람은 자신의 의 안에서 하나님께 다가간다. 가인이 질투로 말미암아 그의 동생 아벨에 대한 증오에 찼던 것과도 같이, 종교적인 사람은 항상 의인을 증오하고 박해해 왔다.

예수님의 시대에 바리새인들은 스스로의 길, 스스로의 법과 전통을 발전시켰으며, 그들은 이것들을 성경의 말씀과 똑같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구속력이 있다고 여겼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전통을 무시했기 때문에 예수를 박해했고, 예수를 죽이는 수단이 되었다. 그 자신 바리새인이었고 초대 교회의 박해자 중 우두머리였던 바울이 인정하듯이,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전통에 대해 극히 열심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법과 그들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까지 높였으며, 이를 거부한 초대교회를 박해하고 '황폐토록' 했다.

후에 바울 - [이방인을 위한 사도] - 이 될 으뜸 박해자였던 사울은, 다마스커스(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이후 그가 어떻게 그의 전통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길만을 받아들였는지 설명한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립보서 3:3-9)

바울은 하나님의 길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박해자는 박해받는 자가 되었다.

암흑기 동안, 수십만의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은 '가인의 길'을 받아들였던 교회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바리새인들이 전에 그랬던 것과 똑같이, 자신의 전통을 성경과 같은 수준으로 높인 교회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길과 뻔히 상충되는 것이 많았던 그들의 전통에 열심이었던 나머지, 그들은 그들의 구원의 길에 따르지 않으려는 모든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하고 죽였다. 슬픈 사실은 이런 고집스러운 교회에 의해 학살된 크리스천들이 이교도 로마황제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보다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세기에 걸쳐 내려왔다. 아벨 교회는 항상 존재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길을 고수해왔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길을 고집하고 자신의 전통을 성경의 수준, 혹은 그 위로 높여온 가인 교회도 항상 존재했다. 가인 교회는, 그들의 길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계시된 길에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 과감히 나가서 '새 계시', '새 길' 또는 '새 일'을 찾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박해해왔다.

오늘날 오순절과 은사주의 세계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가는 것을 보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다. 사실은 오순절과 은사주의 세계뿐이 아니라 모든 기독교가 나뉘어 두 개의 교회를 이루고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이다 - ["가인의 길"을 따라,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해서"].

오늘날 늦은 비 '부흥'들과 그 지지자들로부터 불온한 호전성과 위협적인 말투가 나오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신비적 형태의 기독교를 성경적으로 방어하지 못하자, 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겁주고 위협하는 것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런 위협은 때로는 험악한 어투를 지녔으며, 내 의견으로는 그들은 감당할 수 없게 되어 갔다. 어떤 입장을 귀에 거슬리게 방어하는 것과 비판자들을 폭력과 죽음으로 위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그들이 채용한 전술은 '비난하는 자를 비난하기'였다. 그들은 공격적으로 나아가 그들의 비판자들을 '독선적인 바리새인과 위선자' 또는 '영적 바벨론'이라고 라벨을 붙였다. 앞에서 지적했지만 이런 경향은 1948년 부흥에서도 확연했다.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이설을 성경적으로 수호하지 못함에 따라 그들의 모든 비판자들을 함께 '영적 바벨론'이라는 타이틀 밑에 분류했다. 조지 호틴(George Hawtin)은 샤론의 '부흥'을 성격지었던 당파적 영과 영적 자만을 나중에 적는다:
이 위대하고 축복된 하나님의 움직임이 두 살도 되기 전에 분파의 영이 추한 머리를 들어 보이기 시작했었음을 나는 이제 확실히 볼 수 있다... 우리는 분파하지 않았음을 큰소리로 외친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점점 좁아져가는 우리의 울타리 안에 있지 않은 누구와도 교제를 가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참 교회였다. 우리가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었다. 우리는 기초 위에 섰었고 나머지는 모두 가라앉는 모래 위에 섰었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들을 가졌으며, 우리는 대환난 떄 '지휘'할 예정이었다... 나는 이 고래 뱃속으로부터 토해내어진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교리를 성경에 맞추어 수정하는 대신, 그들은 성경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풍유(알레고리)로 해석해서 그들의 교리에 맞추었다. 만일 당신이 그들의 교리와 해석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당신은 종말시대의 영적 바벨론에 속하는 운명이 되며,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그들 자신이 수행하려고 했을 것이다. 호틴은 "우리는 대환난 때 '지휘'할 예정이었다"라고 말했다. 그가 이 문장으로써 의도한 것은 죠지 워녹의 '초막절(Feast of Tabernacles)'을 읽으면 명확해진다: 

이제 우리는 종말 시대에 접어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배교의 시스템이 있으며, 하나님의 분노가 맹렬하게 그 위에 내릴 것이다... 온 세계 - [특히 배교한 기독교] - 가 여호와의 날의 강력한 충격을 느낄 것이다... 여호와의 날은 매우 가까웠고, 심지어 시대의 종말도 가까웠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발휘는 위대할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땅의 기초가 놓인 이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 대환난이 될 것이다. 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어둡고' '침울한' 날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부류에게는 이것은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을 (요엘 2:2)" 것이다. 하나에게는 대환난, 나머지 하나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인 것이다.
과연 정확히 누가 세상과 배교한 기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할 것인가? 물론 그들은 '요엘의 군대', 일명 '모세-엘리야 회군(company, 會群/집합)' 또는 '두 증인'이다: 

변화산의 장면은 권능의 그림이자, 모세-엘리야 회군(사역. ministry)을 만드시려고 영광된 시간에 주께서 그의 백성들 가운데로 오심을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다. 모세와 엘리야. 왜냐하면 이 날 이 시간은 옛 것이 새 것에 양보해야 하는 때이자, 죽음이 생명 속에 삼켜짐을 당하는 때이며, 율법이 은혜 속에 이루어져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세는 율법과 죽음의 옛 질서를 상징한다. 엘리야는 은혜와 생명의 새 질서를 말한다. 이 시간은 '시대의 종말'이라고 알려진 때로서, 한편으로는 교회와 세상에 관해 쓰여진 심판이 이루어져야 하는 시간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에 관해 쓰여진 모든 영광과 권능이 이루어져야 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모세-엘리야 회군이다: 그의 백성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충만함,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세우기 위한 충만함이다... 이 시간은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의 시간이며, 그의 백성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영광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런 것이 모세-엘리야 회군의 사역이다. '두 증인'은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는" 권세를 가질 것(요한계시록 11:6)이라고 우리는 배운다.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 왜냐하면, 그들은 승리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들의 뜻은 바로 그들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성령에 따라 심판을 집행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행사하기 위해 세상으로 내보내진다. 회개가 있는 곳에는 축복의 권세가 있으며, 적의가 있는 곳에는 파괴의 권세가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고린도후서 2:16)
당신이 나같이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이설을 거부하면 심란한 말들을 들을 것이며, 당신은 그들에게 기독교 배교자의 일원으로 여겨질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선을 긋는다. 당신은 그들의 이설들을 받아들여 그들과 합류하던지 아니면 '광야에서 죽던지' 할 것이다. 워녹은 적는다: 

만약 사람들이 그들의 크리스천 경험 속에서 지금 있는 그 자리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이 메시지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행히도 그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를 먹을 수 있고,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실 수 있고, 그들의 여행을 위한 치유와 건강을 받을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들은 광야에서 죽을 것이며, 성령의 위대한 유산을 보지 못할 것이다.
또 다른 당신은 누구입니까? (Who Are You)라는 책에서 워녹은 적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전쟁하는 교회로 예정되었으며 이를 위해 하나님의 군장으로 무장되었다... 하나님은 사랑받는 자들의 군대를 준비하고 계시며, 이들이 앞으로 나가서 여호와의 날에 악의 통치를 끝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압제자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안전과 무사를 약속한 재림에 관한 교리 속에 있던 당신의 피난처는 쓸려갈 것이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으로부터 그들을 채어 가실 것이라고 사람들을 안심시킨 자들과 교사들, 선지자들은 그날에 안전한 곳을 찾아 기어오르겠지만, 찾지 못할 것이 당연하다... 여호와의 날, 보복의 날. 무엇에 대한 보복인가? 그의 성전에 대한 보복이다. 하나님은 시온과 분쟁을 가지고 계시다. 시온을 깨끗하게 하신 후 하나님은 바벨론을 다루실 것이다... 그의 백성들을 사로잡고, 그들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처소가 되지 못하도록 한 그 시스템을.
워녹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처소"로 뜻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요엘의 군대를 지칭했음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집합 그리스도(그리스도의 회군)'말이다. 그들은 그들에게 반대해 왔고 그들을 저지해 왔던 우리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여기서 착오하면 안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영적 바벨론'의 일부이며, 그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그들이 실행할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당신이 이것은 워녹이 오래 전에 적은 것이고 오늘날 이것을 심각하게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최근 인터넷에서 가져온 실례를 인용하는 것을 허락하기 바란다. 이것은 1999년 3월 6일 쓰여진 선십-숨겨진 메시지(Sonship - The Hidden Message)라는 논설에 나온 것이다: 

선십(아들됨)의 두루마기(mantle, 기름부음의 겉옷/역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결쳐지기 시작했으며, 그리고 그 선십의 두루마기는 '정결해지고' 완전해지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이는 사람이 알았던 가장 높은 레벨의 삶으로의 부르심이다. 천사들과 그리스도 아래로 격하된 레벨이 아니라 주의 임재의 레벨, 우리를 위해 문을 여신 예수와 똑같은 레벨이다. 우리는 '달콤한 예수' 사고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들'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다. 큰 차이이다. 그랜드 캐년만큼 벌어진 차이이다... 사람들 속에서 선십이 나타나는 것을 막으려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세워진 높은 곳에서의 속임에 대한 심판이 오늘날 발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레벨이 이 땅에서 악의 요새를 쳐부수는 레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시간 하나님의 일을 이룩하는 레벨이다. 그 이하는 없다. 그리고 정상에는 몇 사람 없다. 속임은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침투해온 것이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권위와 권능의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간 하나님의 심판과 그의 자비의 대리인은 그의 아들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다가오는 것에 동조하고 사람들에게 경고할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것을 창조한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만약 사탄과 악의 주인이 당신의 인식을 충분히 무디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 레벨로 들어가지 못할 터인데, 이 레벨은 일들이 일어나도록 하는 유일한 레벨이다. 다른 메시지는 없다. 그리스도는 신약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과 함께 왔다고 하셨다... 지금은 삼손처럼 당나귀의 턱뼈를 가지고 일어나서 악을 소멸시키기 시작할 때이다... 명심하라. 심판은 지금 이 땅에 있으며 또한 오고 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의 산물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결코 악으로 이루어진 행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부지간(不知間)에 베푸는 자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시작된 이 대환난과 지구변화의 가장 큰 높이와 깊이를 가져올 자들이다. 하늘과 땅을 흔들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고 있다...그 말씀은 당신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씀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시대의 징후를 분별하도록 하라 - 우리는 시대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이 땅에 다가올 것에 대비해 준비하도록 하라 - 우리는 이것을 불러 들이는 사람들이다. (강조는 저자에 의함)
그들이 대환난을 불러들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수사법으로 보면, 그들이 진노를 대환난에서 퍼붓는 동안, 그들을 반대하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불신세상과 영적 바벨론을 향해 퍼부어지는 하나님의 진노에 성도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성경이 가르치는가?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7:16-18)

영적 바벨론 - [큰 음녀] - 에 대한 심판부터 시작해 보자. 이것은 종말의 때의 세계단일교회이다. 이 '음녀'의 상당한, 틀림없이 지배적인 부분은 신앙고백을 하는 기독교 교회일 것이다. '밭에 남겨져' (세상에) '태워질'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단으로 묶여진 (통합된) 가리지들이다. 18절은 이 여자가 로마시(市)로 확인된다고 말해 준다. 그녀의 권능과 권위의 자리는 로마시가 될 것이다.

우리가 또한 들은 것은 하나님이 그녀를 심판하실 것이며, 그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는 짐승(적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그의 나라에 참여할 열 뿔(통치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음녀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는 이 열 왕들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사실은, 대환난의 심판 그 어디에도 교회가 참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오직 예수님 혼자서, 그의 거룩한 천사들의 참여와 함께,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그의 적들에게 부으신다.

두루마기를 펴고 인을 떼어 하나님의 심판을 시작하기에 합당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하늘에 누구도 없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께서 인을 떼고 땅에 심판을 부으실 때 천사들이 예수께 참여하는 것을 우리는 본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교회가 이 심판에 참여한다는 것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우리는 사탄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쫓기는 것을 우리는 본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2:7-12)

여기 어디에도 성도들이 어떤 형태로도 이 전쟁에 참여한다는 말이 없음을 주의 깊게 살펴 보라. 천사들에 관해서만 말한다. 11절은 성도들이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를 어떻게 이겼는지만 보여주고 있다. 이 구절이 성도들이 발발한 하늘 전쟁에 참여했음을 암시한다고 하면 아마 추측이 지나친 것일 것이다. 하지만 토론을 위해, 성도들이 환난 기간에 사악한 천사들과의 전쟁에서 거룩한 천사들을 돕고, 사악한 천사들을 땅으로 내쫒는 데 돕는다고 하자. 이것은 교회가 하늘에 있음을 뜻하며, 휴거를 말해 준다. 이것은, 땅의 교회가 불신 세상과 배교 교회에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집행한다는 생각을 증진시키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이 성경구절은 영적으로 해석되어(spiritualized), 바로 여기 이 땅에서 '전략적 레벨의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성도들을 그리는 것으로 해석되어진다. 확실한 것은, 교회가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참여하거나 집행할 것이라는 어떤 증거도 우리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요한계시록 14:14-20)

이 구절에서 우리는 우리 주님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을 밟는 모습을 본다. 이사야서 63장 1-6절에서 분명히 같은 사건을 일컫는 내용을 우리는 다시 본다: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이사야 63:1-6)

더 이상 확실할 수 없다. 주께서는 이 땅에 대한 그의 분노를 집행하시는데, 천사들의 참여는 있어도 성도들의 참여는 전혀 없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우리는 환난의 끝에 [그의 성도들과 함께] 하늘에서 돌아오시는 주님을 본다. 바로 이 때, 이 세상의 왕들과 그들의 군대가 아마겟돈의 골짜기에 모여서 주께 대항함에 따라, 주께서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을 밟으신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시편 2:1-3)

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요엘 3:12,13)

우리는 요한계시록 19장에서 교회를 '하늘의 군대'라고 칭한 것을 본다. '땅의 군대'가 아니다. 이 때 이전에 이미 시작된 심판에 우리가 어떻게든지 참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암시조차 없다. 이제야 비로소 교회의 대적에 대한 승리를 향해 흰 말 탄 자를 의기양양하게 따르는 교회를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빌 해몬은 적기를: 

그리스도의 승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말씀하신 심판과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신적 판결을 집행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큰 종말군대가 준비되고 있다. 그것(심판)들이 하나님의 성스러운 군대...교회 - [영적 바벨론과의 전쟁에서의 하나님의 무기] - 를 통해서 집행되고 실행되기 위한 시간이 정해졌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의 철퇴 곧 무기라 나는 네가 나라들을 분쇄하며 네가 국가들을 멸하며; 너희 눈 앞에서 그들이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 내가 바벨론과 갈대아 모든 주민에게 갚으리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땅이 진동하며 소용돌이치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에 대한...계획이 섰음이라 (예레미야 51:20, 24, 29)
신비주의 선지자 릭 조이너(Rick Joyner)는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곧 일어날 '내전(Civil War)'의 환상을 그에게 주셨다고 한다. 다른 많은 현대 사도들과 선지자들도 같은 환상을 함께 나누고 있다. 1996년 5월호 모닝스타 예언회보(Morning Star Prophetic Bulletin)에서 조이너는 교회에 올 내전의 환상을 나눈다: 

올해 2월 23일에 교회가 '영적 내전'을 향해 가고 있음이 나에게 세 번째로 보여졌다... 이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란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의 참소자(비난자)의 거점(견고한 진)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교회에 닥친 그 어느 것보다 잔인한 전투가 될 것이다. 모든 내전이 그렇듯이, 교회에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형제가 형제를 맞서 싸워야 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이 싸움은 싸워야만 한다. 이 전쟁은 참소자를 교회 밖으로 몰아내고, 다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을 일치를 교회에 가져올 기회가 된다... 다가오는 것은 어두움이다. 때로는 전 세계 크리스천들이 그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르기조차 싫어하게 될 것이다. 신자와 불신자 모두 이것이 우리가 아는 기독교의 종말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또한 그렇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서 기독교의 정의 자체가 더 나은 것으로 바뀔 것이다. 다가오는 일로부터 떠오르는 교회는 전에 없는 은혜와 전에 없는 진리와 전에 없는 권능으로 충만할 것이다. (강조는 저자에 의함)
불길하게 들리지 않는가? 그는 '잔인함'과 '어두움'이란 단어들을 사용해서 마치 실제 전쟁과 피바다를 예측하는 것같이 들린다. 비록 조이너는 교회 안에서 싸워질 것이 '영적' 전쟁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동료 선지자나 신비주의자들은 이것이 단지 '영적' 전쟁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 다가오는 싸움은 무엇에 대항해 싸우는 것인가? 

미국 남북전쟁과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영적 내전은 역시 블루(북군의 군복색/역자)와 그레이(남군의 군복색) 간의 싸움이 될 것이다. 꿈과 환상에서 블루는 종종 천국적 사고(즉, 하늘은 파랗다)를 나타내며, 그레이는 그들 자신의 사고의 힘으로 사는 사람들(즉, 뇌는 종종 '회색물질'로 불린다)을 말한다. 이 싸움은 피차 진짜 크리스천들 사이의 다툼이 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자연적 정신과 인간적 지혜에 따라 주로 사는 사람들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 간의 다툼일 것이다.
이 전투의 한 편에서는 '블루'가 싸우는데, 그들은 현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환상과 계시'에 열려 있는 사람이다. 물론, 그들 사역에 따르는 "표적과 기사와 능력"도 함께. 반대편에는 '그레이'가 있을 터인데, 성경적 교리를 고집하며 성경외적 (적어도 성경과 합치하지 않는) 계시와 환상을 배척하는 '옛 진리' 크리스천들이다. 선지자 이사야에 따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리라"고 담대히 외쳐 온 모든 '바리새인들'과 '이단 사냥꾼들' 모두.

이 영적 내전에 있어서의 주된 분쟁점은 무엇인가? 미국 남북전쟁과 마찬가지로, 주요 목적은 노예들 - [성경적 정확성을 주장하는 '그레이'들에 의해 속박받고 있는 영적 노예들] - 을 해방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 얘기하자면, 임박한 내전의 요점은 노예 제도 - [혹은 영적 노예 제도] - 에 있다. '노예 제도(단체라는 뜻도 있음)'를 말할 때, 꼭 교단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그것보다는 사람들을 영적 속박 속에 잡고 있는, 교단이나 운동권을 포함하는, 조직을 말한다. 화합 등을 이유로 조종과 억제를 가하는 이런 제도들과 우리가 더 오래 타협할수록, 이 암덩어리를 우리 속에서 제거하는 비용은 궁극적으로 더 증가한다.
조이너는 이 영적 속박이 무슨 뜻인지 결코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았고 또한 그런 예를 들어 주지도 않았지만, 계속 읽어 보면 그의 설명은 명확해진다: 

미국남북전쟁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단지 '그들의 삶의 방식' 또는 '전통'을 유지하려는 많은 남부인들의 강박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임박한 영적 내전에서의 많은 분쟁요인이 될 것이다... '종교의 영'의 권능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과거에 하신 일을 존중함으로써 하나님이 현재 하시고 있는 일에 대한 그들의 반대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교회의 큰 부분이 이런 바리새인들에게 나타났던 종교의 영에 속박당해 있으며, 이것은 교회에 생기는 어떤 새로운 움직임이라도 공격할 것이다. 새로운 움직임이 기름부음 받을수록, 이들 전통주의자들은 이로 인해 위협받을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이를 더욱 격렬하게 공격할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종교적 '노예(예속)' 또는 '속박'이란, 베뢰아 사람들이 검증했던 것 같이 그들의 환상과 계시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검증할 것을 요구하는 어떤 사람이나 일 일체를 말한다. 그들의 비판자들을 '바리새인'이나 '종교의 영'으로 이름 붙이는 것은 그들이 좋아하는 전략 중 하나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유를 약속하나, 이는 거짓되며 비성경적인 자유 - [베드로가 예언한 자유] - 이다: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후서 2:18-22)

이 사람들이 약속하는 자유는 성경적 원리와 근신으로부터의 자유로서 종종 방종으로 변하기도 한다. 밥 존스(Bob Jones)나 얼 폴크(Earl Paulk) 같은 많은 이 현대 환상가와 선지자들은 도덕적 실패로 인해 교회로부터 징계를 받아야 했다. 문제는 이 영적 엘리트 의식이 '다른 사람에게 적용되는 규칙이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심리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 '암덩어리'가 내전 중에 어떻게 그들로부터 제거되려는 지에 대해서는 조이너는 사실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그레이'를 '영적으로 무자비하고 잔인한' 것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여기서 누가 정말 영적으로 무자비하고 잔인한가? 성경진리와 성경계시 위에 서 있으며, 믿음과 행위에 관한 일에 있어서 성경의 범위를 벗어나기를 거부하는 자들인가? 아니면, 조이너 등과 같이 가인의 길을 가는 것으로 보이며, 그들의 적들에게 죽음과 멸망을 예언하는 자들인가?

요엘의 군대라는 제목의 오디오테이프 메시지에서 잭 디어는 선언한다: 

하나님은 어떻게 교회에 심판을 가져 오고, 그 후 어떻게 땅에 심판을 가져 올 것인가? 크고 막강한 군대와 함께 이것을 하실 것이다. 이 군대는 어떤 군대인가? (요엘서 2장) 3절로부터 하나님은 이 군대가 전적으로 유일하다고 하신다. 이전에도 이런 군대가 없었고 앞으로 올 날들에도 이런 군대는 없을 것이다... "학살(괴멸시킴의 뜻도 있음/역자)을 시작하라. 성전에서 시작하라. 나의 백성의 지도자, 장로들로부터 시작하라." 그들은 대지를 가르고 학살을 시작한다. 하나님이 이것을 벌써 시작하신 것을 아는가? 하나님은 그의 세대에서 가장 이름이 큰 자들로부터 시작하신 것을 아는가? 그는 이미 학살을 시작하셨다...그리고, 이것은 교회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는 지도자들로부터 시작하실 것이지만, 교회 속으로 이동해 들어가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2절에서 "이 날은 기쁨과 행복의 날이 아니라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라고 하신 이유이다.
간단히 말한다 해도, 꽤 선동적인 수사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교회 안에서 어떤 물리적인 전쟁을 일으킬 예정을 가졌다는 것을 부인할 것이며, 다가오는 '영적' 전투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장들을 읽으면 그들이 정말 솔직한 지 의심이 들 것이다. 다른 이들은 이 내전 '환상'에 덧붙여 갔고 이는 점점 더 나빠져 간다. 웨스 캠벨(Wes Campbell)은 토론토 빈야드의 강단에서 선언한다: 

1984년, 우리는 술관원과 빵관원에 대한 환상만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또 다른 환상을 보았는데 그것은 교회에 관한 것이었다. 교회는 남북전쟁 시대의 크고 장엄한 저택의 무도회장에 모여 있었고 그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은 화려한 색의 옷을 입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움직이며, 웃으며, 춤추며, 그들의 삶에서 가장 멋진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고 있었고, 밥 [존스]는 웃기 시작했으며, 저 사람들 즐겁게 춤추는 것 좀 보라고 했다. 천사 하나가 와서는 멈추라고 했다. 아직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연회장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져,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고, 서로 편들기 시작했고, 블루 코트(북군군복)와 그레이 코트(남군군복)를 가지기 시작했고, 곧 내전이 터졌다.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터졌다. 제임스 라일(James Ryle)도 비슷한 환상을 보았었다. 심지어 주께서는 블루 코트가 계시적 사람들과 계시를 뜻하며, 그레이 코트는 회색물질, 인간의 지혜를 뜻함을 보여 주셨다. 이런 정황에서, 북측은 남측과 남측은 북측과 싸웠으며, 남측은 사람들을 계속 노예로 부리기를 원했다. 그들(남인들)은 그들(노예들)의 돈을 원했고, 그들의 몸을 원했다. 그들은 시스템이 지속되어 돌아가게 하기 위해 그들의 인간성을 원했다. 그러자 북측은 안 된다고 했다! 자유! 자유! 그리고는 끔찍한 싸움 속으로 들어 갔다. 아버지는 아들과 싸웠고, 형제들이 서로 사웠고, 사람의 적은 바로 그의 집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천사가 멀했다: "슬퍼 울지 않는 집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런 규모의 방문(강령)의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다 되면 당신은 모든 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 세계 기독교 공동체 전체에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대립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대립은 항상 존재해 왔다. 결국 전쟁이 생길 것이다. 당신 집 안에 전쟁이 일 것이다. 당신의 가족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할 지도 모른다. 당신의 가족들이 당신에게 대항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악'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그들이 크리스천으로서 성령의 이런 면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들이 크리스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크리스천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환상의 끝은 이것이다: 유혈참사가 지나면, 주께서는 갈라짐을 치유하실 것이다. (강조는 저자에 의함)
여기서 우리가 가진 것은 이것 - [형제들끼리의 "유혈" 내전] - 이다. 이 사람들이 그들의 환상에서 선포하는 것은 단순히 '영적' 전쟁이 아니라,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유형의 전쟁이다. 왜인가?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있는 암 덩어리, 에큐메니컬 세계단일종교에 동참하지 않는 고칠 수 없는 암 종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수술로서 제거되어야 한다. 웨스 캠벨은 그의 아내를 강단으로 부르고, 그녀는 '환상'을 말한다: 

이것은 방금 웨스가 말한 것과 매우 비슷합니다. 알겠지만 밥 존스와 다른 몇 명이 예언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주께서 여러 분께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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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성경적 상담과 치유, 개혁주의 신학을 연구합니다. 유튜브는 https://www.youtube.com/user/rptmini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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