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에이지 음악을 분별하려면
뉴 에이지 음악을 분별하려면
출처: 그리스도인과 대중문화http://blog.naver.com/ikstudd/4076570
근래 국내에서 일고 있는 뉴 에이지 음악 붐은 이 분야의 인기 피아니스트인 유키 구라모토가 지난 2003년 한 해 동안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 유료관객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로 쉽게 입증된다.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위축으로 순수 클래식 공연을 비롯한 각종 연주회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유키 구라모토를 위시해 앙드레 가뇽, 시크릿 가든, 이루마 등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뉴 에이지 계열 아티스트의 콘서트는 대부분 성황을 이룬다. 클래식도 팝도 아닌, 자칫 음악적 내용에 있어서 비판의 소지가 없지 않은 뉴 에이지 음악에 관객이 몰리는 것에 대해, 이를 기획사의 얄팍한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 어쨌거나 지금 연주회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모습은 한국인들이 뉴 에이지 음악에
단단히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분명한 증거로 읽혀진다. 이는 오늘날, ‘각박한 현실과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자연으로의 회귀’를 모토로 내걸고, 세계 각지에서 피곤에 지친 수많은 현대인들을 유혹하고 있는 뉴 에이지 음악이, 특히 IMF 이후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세대를 불문하고 긴장해소와 ‘쉼’을 위한 탈출구로 각광받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뉴 에이지 음악은, 80년대 조지 윈스턴으로 대표되는 사색적이고 감상적인 연주음악인 이른바 어쿠스틱 뉴 에이지 음악을 시발로 야니, 엔야 등 세계적 뉴 에이지 아티스트와 주로 일본의 피아니스트들이 경합을 벌이는 가운데 뉴 에이지 음악의 대중화가 진전되어 오늘에 이르렀고, 90년대 이후로는 인도, 유럽 등지의 심신 수련용 뉴 에이지 명상음악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뉴 에이지 명상음악은 근래 부는 웰빙 바람을 타고 대중화하며 수요가 급증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뉴 에이지 음악은 이제 연주회장과 음반시장, 인터넷과, TV의 광고, 드라마 음악으로 우리 주변에 좀 과장하면, ‘넘쳐 흐르고’ 있다.
기독교인이면서
뉴 에이지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과, 우리 주변에서 뉴 에이지 음악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기독교인 대다수에게는 이 음악에 대한 다소간 혼란과 갈등, 고민과 우려가 있다. 뉴 에이지 음악과 반기독교적 종교운동인 뉴 에이지 운동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갈등과 혼란의 상당 부분은 음악시장에서 사용되는 뉴 에이지라는 용어와 종교 운동으로서의 뉴 에이지라는 용어가 과연 일치하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에서 비롯된다. 그 이유는 60년대 탄생한 뉴 에이지 음악이 80년대 이후 상업화, 대중화의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 서정성이 강한 목가적(명상적) 연주음악'을 통칭하는 장르 용어로 음악시장에서 사용되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뉴 에이지 음악은 클래식으로부터 재즈, 감미로운 경음악(ea
sy listening)과, 제3세계의 민속음악(ethnic music) 등을 두루 포괄하는 광범위한 연주음악이면서 장르적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특히 해외에서는 뉴 에이지 음악에서 서정성과는 거리가 먼 프로그레시브한 전자 음악(electronic music)의 비중이 상당히 강하다. 이러한 뉴 에이지 장르의 지나치게 포괄적인 적용과 상업적 남용(?)으로 인해 뉴 에이지가 가졌던 본래의 종교적 개념과 이미지가 상당 부분 약화하거나 희석된 것이 사실이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뉴 에이지가 연주음악에 있어서 판매효과를 높여주는 하나의 ’인기상표‘로 떠오르면서 뉴 에이지 장르의 확대 적용 현상이 더 심해졌다. 뉴 에이지 운동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거나 아예 무관한 음악도 상업적 목적 하에 뉴 에이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뉴 에이지 음악을 가려내는 일은 한층 더 까다롭고 복잡한 작업이 되고 있다. 이제 뉴 에이지 음악을 단순히 기존의 스타일로만 구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게 되었고 우리가 경계해야할 뉴 에이지 음악 분별을 위해서는 보다 다각적인 접근과 세밀한 조사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검증은 음악의 스타일과 내용, 음악가의 사상과 종교, 음악의 제목과 가사, 음반 표지, 뮤직 비디오, 컨서트 등 전반에 걸쳐 두루 확인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대개 아래와 같이 불리는 음악(음반)은 전형적인 뉴 에이지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들이다. relaxation music(휴식,이완을 위한 음악), healing music(치유음악), ambient music(환경음악), music for meditation, music for contemplation(명상, 묵상을 위한 음악), inner music (내면의 음악) 등등. 이와 함께 윈덤 힐(Windham Hill), 나라다(Narada), 하이어 옥타브(Higher Octave), 리얼 뮤직(Real Music), 뉴 어쓰(New Earth), GTS 등 뉴 에이지 ‘전문’ 레이블(음반사)에 대한 정보도 알아두는 것이 좋다. 뉴 에이지 음악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근거는 기본적으로 뉴 에이지 운동의 이념들과의 연관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인간을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신적 존재로 보는 뉴 에이지적 인본주의, 인간 내면의 신적자아를 각성, 발전시켜야 한다는 뉴 에이지적 영성주의, 신과의 합일을 부르짖는 신비주의, 동서고금의 사상을 하나로 묶는 통합주의와, 지구촌주의, 그리고 영적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상주의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신으로 보는 범신론과 같은 뉴 에이지의 사상과 철학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음악은 음악의 스타일을 떠나서 일단 뉴 에이지 음악으로 보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뉴 에이지 음악을 구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음악이 단순히 감상용 연
주 음악인지 아니면 명상이나, 사색, 치유, 자아성찰, 자기계발, 심신수련, 의식개혁 등 ‘도(道)를 닦는 듯한’ 표어를 내세우는 ‘기능성 음악’인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요가나 초월명상, 선(禪) 등의 수행 목적 음악은 말할 것도 없다. 종교적 기능성을 띤 뉴 에이지 음악은 음악을 통해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다스리고 결국 이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을 조절(control)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대개 미세한 변화와 많은 반복으로 이어지는 뉴 에이지 음악은 시작과 끝을 구분할 수 없는 순환구조를 통해 명상과 사색에 이르고, 음악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을 이어 이성의 저 바깥 편으로까지 정신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음악들이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우울증과 같은 정서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영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뉴 에이지 음악의 붐과 함께 교회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이 늘어났다.
2004 등대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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