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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속에서의 뉴에이지

9. 종교 속에서의 뉴에이지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thebloodofx/20090898446

 

많은 기독교 목사들이 뉴에이지 운동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 실제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측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적인 운동의 영향력을 교회의 숫자나 교인들의 숫자, 또는 텔레비전 및 라디오 프로그램에 의해 평가하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뉴에이지 교회가 많은 장소에 보이지 않는 것 같으니 별로 경종을 울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업, 건강 관리, 교육, 상당 등 여러 사회 분야들이 이미 변형 체험을 한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미국의 종교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 영향이 매우 넓게 퍼져서 대부분의 주요 교단들은 뉴에이지 의식을 퍼뜨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관상은 가톨릭과 개신교 교회에 대규모로 침투해 들어가 있다. 몇몇 사람들은 교회 내의 관상은 뉴에이지 관상과 다른 것이며 단지 기도의 형태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면밀하게 조사해보면 교회 내에서 사용되는 관상 방법은 (주문, 호흡) 뉴에이지 요령과 정확하게 같다. 단지 함축하는 의미가 변화되었을 뿐이다. 나는 관상을 전체 영성, 동양과 서양의 신비적 전통의 결합 등과 같은 다른 용어들로 표현하는 것을 셀 수 없이 경험했다. 이러한 영성 훈련의 기원이 불교 또는 힌두교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구심 기도

 

구심에서 은혜를 찾아라(Finding Grace at the Center) 라는 책은 구심 기도를 지지하는 자들에 의해 쓰인 것이다. (구심 기도 및 관상 기도에 대해 더 알기 원하면 나의 책 떠날 시간 (A Time of Departing) 을 읽도록 하라.) 그 책 내용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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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동양의 고대 지혜의 열매를 사용하는데 주저해서는 안된다. 사실 사역을 하는 우리들은 가능한 많이 이러한 동양 요법을 습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1]

 

기도 생활을 심각하게 하기를 원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요가, 젠, 티엠 등과 같은 비슷한 유형의 훈련에 의해 도움을 받고 있다. 특히 믿을 만한 관상 교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내면의 형태와 의미를 지니기 위해 든든히 개발된 기독교 믿음을 가질 경우 좋은 결과들을 얻게 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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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견해에 의하면 기독교 서점에서 어떤 여성이 내게 다가와 그녀의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주문(mantra, 만트라)를 사용한다고 말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강제적인 고대 기도 형태를 지니고 있는 구심 기도는 기도 단어(prayer word)를 주문(만트라)으로 사용하여 마음을 비운다. 즉, 이나 크리쉬나 를 사용하는 대신에 예수, 하나님, 사랑 등의 단어를 사용한다.

 

오늘날 구심기도 그룹은 주류 종교 단체에서 번창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 교단 내에서 구심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가장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교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바질 페닝톤(Basil Pennington)은 그의 책 구심 기도(Centering Prayer)에서 그가 어떻게 다른 종교의 사람들과 이 기도 방법을 나누는지 말한다. 다음 내용은 구심 기도의 형태를 뉴에이지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근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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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힌두 수도승에 얼마나 충격이 될지 모르지만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평소처럼 구심기도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곧 우리는 함께 기도를 시작했고 아름다움과 충만함으로 넘치는 침묵에 이르렀다. 그 경험을 한 후에 나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 동양 친구를 바라 보았다. 그는 정말로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 얼굴은 깊고 찬란한 평화로운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 그는 부드럽게 자신의 체험을 말했다. 내 인생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었습니다. 이 체험은 내게 또 다른 차원의 확신을 주었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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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심기도로 매우 널리 알려진 또 다른 책은 예수원 사제 안토니 드 멜로가 쓴 사다나: 하나님께로 가는 길(Sadhana: A Way To God) 이다. 멜로에 의하면 사다나는 영적 연습[ii]을 의미한다. 이 책은 기독교 영성을 향상시키는데 있어서 동양 신비주의를 크게 환영하고 있다. 드 멜로는 처음부터 그의 독자들에게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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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예수원 친구 하나가 기도 시작 방법을 알기 위해 힌두 구루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때 그 구루가 대답하길, 당신의 호흡에 집중하십시오 라고 했다. 내 친구는 약 5분 동안 시키는대로 했다. 그러자 그 구루는 말하길, 당신이 내쉬는 공기는 하나님이며, 당신은 하나님을 들이쉬고 내쉬고 있습니다. 이를 의식하고 그 의식을 계속 유지하십시오라고 했다.[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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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멜로가 말한 다음 언급은 뉴에이저라면 누구든지 하는 말이다. 나는 당신이 침묵이 가져다 주는 계시를 발견하길 원한다.[iv]

 

침묵(Silence)는 물론 텅 빈 마음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형이상학자들의 입술에서 가장 많이 맴도는 단어이다. 어떤 사람이 침묵에 상태에 이르면 그는 우주를 향해 열리게 된다.

 

드 멜로는 의식의 또 다른 상태인 사다나를 향하는 과정 중에 반드시 체험하게 되는 침묵[v] 무엇인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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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텅 빈 순간 되면 당신은 아무 노력이나 훈련을 할 수 없다. 이러한 순간은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당신이 아니다. 오히려 침묵 자체가 당신을 장악하여 이끌어간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면 이는 매우 유익한 것이기에 아무 걱정하지 말고 당신의 모든 노력을 (물론 노력할 수도 없지만) 내려 놓고 당신 내면에서 당신을 장악하는 침묵에 항복하도록 하라.[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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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대한 침묵 또는 정지 상태는 힌두교의 삼매(Samadhi)의 상태인데 뭔가에 계속 집중함으로 야기되는 어떤 깊은 신비의 경지이다. 가톨릭 예수원 사제 윌리암 존슨은 실제로 이 상태는 동양 신비의 상태와 같은 것임을 인정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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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혁명이 있었던 20세기를 지나면서 이제 기독교 내에는 새로운 신비주의가 떠오르고 있다. 새 신비주의는 아시아의 위대한 종교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요가, 젠, 티벳 수도 등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새 신비주의는 자세와 호흡에 주의를 한다. 새 신비주의는 만트라 음악과 삼매의 침묵에 대해 잘 알고 있다.[v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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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멜로의 책 사다나 는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어떤 자료에 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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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가르치는 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기도의 예술의 걸작이다. 이 책은 1979년에 처음 발행된 이후 여러 해 동안 미국 가톨릭 베스트셀러 중에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 책을 읽기만 해도 도전을 주는 동시에 마음을 사로 잡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지금 이 책은 전세계적으로 어떻게 기도하는지에 대한 최고의 고전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사다나는 아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 명상, 묵상의 방법을 알리는 최고의 책인 것 같다.[v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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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에게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책의 뒷면에는 어떤 교회 지도자의 추천의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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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마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 관상, 묵상을 하는지에 대해 영어로 쓰여진 책 중에 오늘날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책이다.[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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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종종 사람들에게 기도의 방법을 가르칠 때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다. 가톨릭 교구, 양로원, 병원, 은퇴 센터, 그리고 여러 종교 단체들이 규칙적으로 이 책을 이용하고 있다.

 

만일 이 책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다나가 힌두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안다면 놀랄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힌두교 단어 사전은 다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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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디들(Siddhis, 영적 파워들)은 계몽 또는 지식 탐구의 직접 또는 간접인 결과다. 그러한 지식을 취득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을 사다나 (sadhana, 취득)라고 부른다. 사다나를 시행하는 사람을 샤다카(sadhaka, 여성의 경우 샤디카)라 하며 계몽을 이룬 샤다카를 사두(sadhu)라고 한다. 싯디들은 그 속성상 마술적이기 때문에 사다나 또는 사두 라는 용어는 흔히 마술 또는 마술사로 불리기도 한다.[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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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사다나: 하나님께로 가는 길(Sadhana: A Way To God) 이라는 책 제목의 뜻은 마법: 하나님께로 가는 길 이 된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가톨릭 교구 설립 학교는 또한 학생들에게 관상을 가르치고 있다. 가톨릭 학교의 학생들이 내게 알려주길 주문 관상이 학과의 한 부분이며 사제가 직접 이 수업을 가르친다고 한다. 가톨릭 고등학교 교과서 중에 당신의 믿음과 당신: 가톨릭 믿음 종합 을 보면 기도, 하나님과의 연합을 추구함이라는 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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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가톨릭 수련 센터에서는 요가 수련을 제안하고 있으며 젠(Zen) 관상 요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법들은 철저하게 불교와 힌두교의 믿음에서 가져온 것이다. 지금 이러한 요법들이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기도 방법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의식하는데 있어서 도움을 준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불교 및 힌두교인들도 자기 종교가 가르친 대로 믿고 그와 같은 똑 같은 요법을 사용하여 하나님과의 더 깊은 연합에 들어간다.[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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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불교 및 힌두교 신자들이 자신들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사용하는 똑 같은 요법을 사용하면서 그들의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있다고 보장할 수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형이상학적 관상은 어떠한 이름을 붙이던 정확하게 똑 같은 것들이다. 주문의 내용을 바꾼다고 하여 관상이 기독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관상 요법이 주류 기독교에 들어옴으로 인하여 교회가 크게 변화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구심기도야 말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길이라고 배우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성도는, 어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완전한 기독교인[xii]이 된다고 한다. 그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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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날 가톨릭 교인들은 젠 관상을 수행하고 있다. 인도에는 기독교-힌두 수도승들이 있다. 신부 (수도승) 라이문도 파니카는 기독교 신학을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보다 인도 철학이 더 나을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토마스 멀톤은 21세기는 두가지에 속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즉, 기독교와 젠이다. 오늘날 이 거대한 두 전통 및 여러 다른 전통들은 서로 배우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만나고 있다. 현재의 세상 전통들이 하나가 될 때 그 하나된 힘은 새로운 영적 시대를 도래케 할 수 있는 영적 힘이 될 것이다.[x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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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상태 메우기

 

왜 기독교의 주류 교단들이 관상과 전인 치유에 문을 연 것일까? 이에 대하여 캘리포니아 클래어몬트에 위치한 연합 감리교 대학에서 신학 교수인 데빗 그리펀(David R. Griffe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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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된 종교의 영적 진공 상태는 다른 신학(더 좋던 더 열악하던 상관없이) - 초 심리학, 초현상, 심령(또는 심령 과학)적 현상, 약간 경멸적인 말로 하면 뉴에이지 운동에 의해 메우게 된다.[x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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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는 영적 진공 상태를 매우 잘 인식하고 있으며 이 진공을 메우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형이상학의 지도자 제임스 패디먼은 다음과 같은 관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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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종교의 세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속도는 교단별로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 해 마다 각 종교 기관들의 회원들이 계속 빠져 나가자 그들은 마침내 그들이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들은 이곳 저곳을 뛰어 다니며 혁신적인 프로그램들과 개선책들을 찾고 있다.[x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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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무신론자들도 이러한 동향을 관찰하였다. 과학 소설 저자인 리차드 가이스(Richard Geis)는 그의 개인 저널에 다음과 같은 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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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을 추구하던 사회에서 활동을 하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표면적 종교 차원에 머물고 있다. 그들은 부패와 이탈과 침투와 전복에 가장 노출된 상태에 있다. 사교적 뉴에이지 책략가들은 대부분의 주요 기독교 종교의 메시지를 희석하거나 바꾸는데 매우 거대하고 성공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x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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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뉴에이지 서점 주인과 나눈 어떤 신문의 인터뷰를 보면 더욱 자명하여진다. 그 여주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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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옵니다. 그들은 어찌하든 개인적으로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xvii]

>

 

위 사실은 수없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뉴에이지 믿음에 대해 무지할 뿐만 아니라 전혀 경계함이 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허전함을 달랠 뭔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허함을 뉴에이지로 메우려는 사람 중에 가장 열심인 사람은 마커스 보그(Marcus Borg)다. 그는 교수이며 널리 알려진 많은 책들을 쓴 저자이기도 한다. 그가 쓴 책 중에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하나님 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그 책에서 자신이 어떻게 전통적인 기독교인으로부터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음을 보자.

<

나는 교수님들의 강의와 그분들이 부탁한 책들을 읽으면서 예수가 처녀에게서 탄생하지 않았고 또한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의 목적은 이 세상의 죄악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내가 30살이 될 즈음에 내 어린 시절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더니 회복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내 인생은 기독교 전통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다르게 이해하기 시작했다.[xviii]

>

 

자유주의 신학에 빠진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허무함을 느끼듯이 보그는 허무함을 느끼는 가운데 영적 진공상태를 메우기 위해 신비주의을 기대게 되었다. 보그는 다음을 고백한다.

<

나는 내 맘을 집중하고 또 집중하여 깊은 침묵으로 이끌도록 돕는 만트라의 사용을 배우게 되었다.[xix]

>

 

영향력이 있는 그의 책 기독교의 핵심 (The Heart of Christianity) 을 비롯하여 그의 책들에서 계속 되풀이 되는 주제가 바로 만트라이다. 마커스 보그는 자신을 뉴에이저라고 부르지 않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의 관점 및 그가 행하는 수행은 전통적인 뉴에이지 사상과 일치한다. (즉,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으며 각 사람은 신성을 담는 그릇이며 그 신성은 관상을 통해 닿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보그는 내가 이 과에서 말하려는 바를 정확하게 알리는 핵심적인 예라 하겠다. 그는 힌두 구루도 아니고 반문화적 성격을 띈 사람도 아니다. 그는 수백만의 성도가 있는 주류 자유주의 신학 교회를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서 있는 영적 기반은 순수한 뉴에이지이다. 그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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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이란 우리로부터 공간적으로 떨어진 어떤 다른 곳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산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주길 바라신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통 이러한 사실을 알거나 체험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영의 세상(the world of Spirit)지각(perceive)하지 못하고 있다.[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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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각이란 이미 앞에서 보인 것처럼 주문에 의해 야기된 침묵으로부터 오는 결과를 의미한다.

 

다음은 기독교가 얼마나 뉴에이지 사상에 대해 관용한지를 보여주는 표지라고 하겠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엠 스코트 펙은 더 짧은 여정 (The Road Less Travaled) 라는 책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유명한 베스트셀러를 썼다. 이 책은 심리학과 영적 성장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인생 문제에 대한 통찰력과 함께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제안을 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중심 주제는 또한 고대 지혜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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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가 신 자체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신성을 향해 자라나고 있다. 하나님은 진화의 목표이다. 진화를 할 수 있는 힘의 근원도 하나님이며 진화의 목표도 하나님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다. 즉, 처음과 나중인 것이다.

 

우리가 전혀 닿을 수 없는 높은 능력의 위치에서 우리를 잘 돌보아주시는 멋진 오랜 하나님을 믿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과 일치하는 위치에 닿을 수 있도록 우리를 마음에 두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x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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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담 블라바츠키 (Madame Blavatsky)와 앨리스 베일리라도 위의 표현보다 더 잘 표현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이제 펙은 자신이 걸은 길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 길은 괴상한 뉴에이지 책들이 아니라 건전한 뉴에이지 책들이었다.[xxii] 그 책은 뉴욕 타임지 의 베스트셀러로 400 주 가량 있었고 수년 동안 기독교 내에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펙은 이 책이 성경책들을 파는 자리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고 고백했다.

 

카발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뉴에이지라는 용어는 사회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유별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 누구라도 뉴에이지를 고상하고 안정된 종교로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유대교마저 뉴에이지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과거에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로 알려진 애매한 실행들이 구심기도가 기독교에 침투하는 것처럼 유대교에 깊게 침투하고 있다.

 

카발라 유대인들은 뉴에이지 스타일의 관상을 수행하면서 그들의 몸 깊이 임하는 세피롯(sephirot) 라고 불리는 강력한 에너지를 체험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에인 소프(Ein Sof) 또는 끝없는 빛(Limitless Light)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체험과 수행들은 유대교 배경이라는 점만 다를 뿐 뉴에이지 신비주의의 또 다른 형태이다.

 

카발라를 위해서만 책을 편찬하는 유대인의 빛들(Jewish Lights)이라는 출판사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물병 시대를 현실로 이루기 위해서는 계몽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뉴에이지 영성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카발라를 위한 유대교 내의 또 다른 주요 세력은 선생(Rabbi) 필립 보그이다. 그는 카발라에 관한 여러 책들을 썼고 전세계적으로 수십개의 카발라 센터를 세웠다. 그 목적은 한때 비밀이었던 카발라 고대 지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함이다.[xxiii] 보그 선생은 세상의 운명은 카발라에 접근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다.[xxiv] 카발라 센터에는 백명의 사범이 있고 그들은 전세계적으로 학생들에게 전화 상으로 카발라를 가르친다. 그 웹사이트는 매주 약 10만명 정도가 방문한다.

 

특별히 유대교 내에 이 운동을 구축하는 저자가 있는데 그는 멜린다 리브너다. 그녀는 그녀의 책 뉴에이지 유대교: 현대 세계를 위한 고대 지혜 으로 크게 돈을 벌었다. 유대인으로서 웨인 다이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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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는 하나님을 더욱 의식할 수 있기 위해서 다양한 관상 요법을 제시한다. 관상은 뉴에이지에서도 매우 중요한 행위인데 그 이유는 관상은 우리의 의식을 신혹하고 강력하게 변환하기 때문이다. 수년에 걸쳐 나는 관상 수행을 통해 나의 학생들이 가장 기적적인 방법으로 변환되는 것을 목격하였다.[xx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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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보그처럼 인정 받는 종교 그룹 내의 많은 사람들도 더 이상 이러한 활동을 의심의 눈이나 놀리는 차원에서 대하지 않는다. 한때 괴팍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 지금은 하나님을 깊게 체험하는 방법이 되었다. 리브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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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는 오늘날 놀라운 르네상스를 겪고 있다. 이스라엘의 집은 다시 한번 새롭게 세워지고 있다. 유대교의 모든 분야마다 생동감이 증가되고 있다. 종교적인 기관들마다 신비적인 가르침을 내 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러 정통 유대교 기관들이 카발라에 대항하여 격렬하게 반대하였었는데 이제 카발라를 가르치는 수업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유대교 개혁 운동 내의 선생들(rabbis)은 카발라를 가르치고 있다.[xx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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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세계적 종교

 

기독교 주류에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 사업, 건강, 교육, 상담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다. 기독교 세계는 이제 뉴에이지 영향력 안에서 다듬어지고 있다. 스타씨드 트랜스미션(Starseed Transmission) 에 나오는   라파엘이라는 존재는 이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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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와 함께 떨 정도로 동감을 하는 모든 자들과 함께 일한다. 그들은 우리의 영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진실하고 진지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그들이 현재 속한 믿음의 시스템 내에서만 일한다.[xxv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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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뉴에이저들이 자신들에게 동감을 하는 자들과 마음을 열고 함께 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을 여는 자들은 자신들의 현재의 믿음을 유지한 채 뉴에이지에 속할 수 있다. 즉 이 의미는 기독교라는 배경 속에서 관상을 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자들은 실제로는 라파엘과 같은 존재에게  연결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라파엘과 같은 존재는 관상을 하는 자들이 만나길 원하는 존재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관상과 신비체험을 기초로 한 범세계적 종교를 지시하고 있다. 뉴에이지 저자 데빗 스팽글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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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처럼 장래에도 여러 다양한 종교 및 영적 훈련들이 있을 것이다. 각 종교들은 서로 다른 종류의 감수성과 애착을 지닐 것이며 각각의 종교가 뿌리를 내렸던 특별한 문화적 토양에 의해 더 풍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범지구적인 영성이 있게 될 것인데 그 영성은 모든 인류로 하여금 적절한 축제들과 의식들과 거룩한 예식들을 기념하게 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실체에 대한 총체적 특성을 방대하게 이해하고 체험케 될 것이며 오늘날 신비주의로 부르는 관점을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신비주의는 언제나 특정한 종교의 전통을 초월하였으며 오는 새 세상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xxv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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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심기도의 등장은 많은 교회들로 하여금 변환의 중개인들이 되게 하였다. 구심 기도를 실행하는 자들은 단일 세계종교의 이상을 포용하는 경향이 있다. 구심 기도를 지지하는 주요 인사들 중에 한 사람이 다음 사실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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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는 다른 전통에서 온 많은 사람들과 함께 관상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침묵 안에 우리가 깊게 하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이성의 차원을 넘어서는 체험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오직 한 하나님을 함께 체험하였다. 나는 우리가 함께 앉아서 구심기도를 하면 선한 뜻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같은 체험을 한다고 생각한다. 즉, 구심을 통해 우리는 모든 철학적, 신학적 차이를 관통하는 듯한 어떤 동질감을 체험한다.[xx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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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경 속에서 우리는 모든 세계 종교들을 젖소 집단으로 비교할 수 있겠다. 각 젖소는 외적으로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우유는 다 같다. 서로 다른 종교 그룹들이 각자의 구별된 정체를 유지하지만 전우주적인 영적 수행은 그 모든 그룹들을 하나로 묶는다. 즉, 단일 세계 교회라기 보다는 단일 세계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동방 정교회 사제와 뉴에이지 지도자 매튜 폭스는 소위 깊은 통합(deep ecumenism)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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